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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두구경: 149 mm(P-30)
전체무게: 5.1 kg(P-30)
전체길이: 약 104.5cm(P-30)
유효사거리: 약 30m(P-30) / 약 60m(P-60) / 약 100m(P-100)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주요 대전차 화기였던 판처파우스트입니다


예 전에 리뷰했던 대전차 화기들처럼 이 화기도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서 개발된 무반동포입니다. 1차대전때 처음 개발되었던 대전차 라이플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장갑이 두꺼워짐에 따라서 거의 무용지물이 되버렸고, 그에따라 그당시 신기술로 나오게 되었던 "상형작약"을 이용한 대전차 화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화기는 독일소재 회사였던 HASAG에서 개발을 1942년부터 시작했는데, 최종적으로 나온 프로토타입이 바로 이 판처파우스트의 기초가 된 파우스트파트로네(Faustpatrone)였습니다(그당시 이 녀석의 제원은 전체무게 3.2kg, 전체길이 98.5cm, 탄두구경 10c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파우스트파트로네는 좋긴 했지만(그래서 약 2만정이 주문/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대전차 화기로 쓰기에는 사용 탄두의 구경이 작았기 때문에 구경을 크게하고 여러가지를 개량해서 최종적으로 개발된게 바로 우리가 알고있는 판처파우스트 30 (원래 명칭은 파우스트파트로네의 후기형이라는 뜻의 Faustpatrone 2)입니다. 일단 이 판처파우스트 30은 기존의 파우스트파트로네의 탄두지름을 크게 하는게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10cm짜리 탄두크기를 14cm로 늘렸고, 탄두 안에 들어가는 화약의 양도 약 2배나 더 넣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기존의 부실했던 철판 관통력은 무려 200 mm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또 이 판처파우스트는 1회용으로 제작되는것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총의 몸통은 저급 철로 만들어진 튜브를 사용했고, 방아쇠나 조준기도 간단하게 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판처파우스트를 다루는 병사는 사용뒤 남은 튜브를 그냥 버리고 새걸 쓸 수 있었고, 그에따라 따로 장착되지 않은 탄두를 보유하지 않고 있어도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참고로 이 녀석은 약 56000정 정도가 생산되었지만 그 이후로 나온 Panzerfaust 60에게 밀려났다고 합니다)


위 에서 설명했던 Panzerfaust 30은 다 좋았지만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었습니다. 바로 유효사거리인데, 이 녀석은 30m안에서만 명중률을 보장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병들은 너무 위험한 행동을 했었어야 했고(코앞까지 다가가서 쏘는 행동), 그에따라 개발된 녀석이 바로 Panzerfaust 60입니다. 이 녀석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거리가 60m로 늘어났는데(실제로는 80m까지 사격이 가능), 그 이유가 바로 "탄두의 개량"에 있었는데, 이 녀석은 기존의 탄두의 속도를 45m/s까지 올렸기 때문에 이런 사거리 향상이 가능했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은 1944년 12월까지 약 130만정이나 생산된 녀석이라고 합니다.


Panzerfaust 60덕분에 판처파우스트는 최대 사거리가 80m 까지 증가했지만, 이것도 너무 가깝다는 생각에 또다시 HASAG사는 개발을 시작했고, 그에따라 Panzerfaust 100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Panzerfaust 100은 P-30(판처파우스트 30의 줄임말)에서 P-60으로 진화를 한 방식을 고대로 사용, 사거리가 최대 150m 까지 늘어나는 성과를 거둔 녀석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화기의 무게가 6.8kg까지 늘어나는 단점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P100이후에도 HASAG가 또다시 개발을 시작했지만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 못한, 혹은 생산조차 하지 못한 녀석들이 3가지 있는데, 하나는 Panzerfaust 150이고 다른 하나는 Panzerfaust 250, 그리고 특이한 녀석인 Grosse Panzerfaust/Hecht 10,5cm 가 있습니다.


일단 P-150의 경우 P-30가 맨처음 개발될때 기초가 되었던 "일회용"에 대한 문제(여러개의 판처파우스트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단점)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발된 녀석으로서, 한 튜브에서 최대 10발까지 사용을 할 수 있도록 새로 개발을 한 녀석입니다.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한 덕분에 사거리는 150m까지 올라갔고, 그에따라 독일군도 이 녀석에 대한 대량주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개발이 왼료된 시기가 종전 바로 직전인 1945년이였고, 그에따라 아주 소수만 생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온 녀석으로 P-250이 있는데, 이 녀석은 HASAG가 개발한 가장 마지막 판처파우스트의 바리에이션으로서, P-150을 따라서 재사용이 가능한 튜브를 사용하고, 또 권총손잡이를 사용하면서 탄두의 속도를 150m/s까지 올린 괴물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 녀석은 단 한정도 생산이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첫 생산이 시작될 시점이 1945년 9월쯤이여서 그렇다고 합니다(9월이면 이미 일본도 항복해서 세계 2차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이상한 녀석(?)이 있는데, 그게 바로 Grosse Panzerfaust / Hecht 10,5cm인데(참고로 GP는 HASAG가, Hecht 10,5cm는 다이나밋 노벨이 개발), 이 녀석들은 1945년 전쟁 말기당시 소련군이 새로운 괴물전차를 실용화 시킬거라는 소문(그 전차의 이름은 "Schtschuka")때문에 개발을 시작한 녀석으로, 기존의 판처파우스트 250을 기초로 무려 400mm의 철판을 관통할 수 있도록 개량된 괴물(?)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 녀석들도 정식 생산이 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 판처파우스트 시리즈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바로 "Backblast", 즉 "후폭풍"을 들 수가 있는데, 그당시 모든 무반동포가 그랬던 만큼 이 녀석도 후폭풍으로 인해서 좁은 건물 내에서 쓰는것은 거의 자살이나 다름없었고, 그에따라 총 자체 문구에도 "Achtung! Feuerstrahl!(조심해라!! 후폭풍이 있다!)"라는 경고문구를 집어넣을 만큼 후폭풍의 정도가 심각 했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http://www.geocities.com/Augusta/8172/panzerfaust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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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43

    이녀석은 뭐... RPzB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로다
    400cm를 뚫다니 참 대단한 놈이군요 << 400mm가 아닌가효



사용탄약: 14.5 x 114mm
전체무게: 17.3 kg (PTRD) / 20.3 kg (PTRS-41)
전체길이: 2020 mm
총열길이: 1350 mm(PTRD) / 1219 mm(PTRS-41)
장탄수: 1발(PTRD) / 5발 클립(PTRS-41)



예전에 했던 L-39와 마찬가지로 1차대전때 처음 등장한 전차는 굉장히 위협적이였고, 그에따라 몇몇 소수 국가들이 대전차화기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이나 핀란드도 마찬가지였고, 1차대전때 참전을 했다가 나온 소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12.7 x 108mm탄을 쓰는 대전차화기를 개발할려고 했지만 이 12.7탄의 관통력이 시원치 않아서 나중에 개발한 14.5 x 114mm탄을 가지고 개발된것이 바로 이 PTRD입니다.

맨처음 PTRD는 100미터 거리에서 최대 40mm 두께의 장갑을 격파하는 괴력을 발휘했고, 2차대전이 시작되자 전선에서 쓰이기 시작합니다. 비록 관통력은 좋긴 했지만 독일의 경우 장갑을 더 덧붙이는 추세때문에 탱크의 전면장갑을 상대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었고, 그에따라 중전차보다 약한 경전차나 트럭같은 무장갑 차량에서 효과적인 성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총의 경우 단점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단발"이였다는 것이였습니다. 기존에 나왔던 핀란드의 L-39와 대조적으로 이 총은 한발을 쏘고 다시 총알을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였다고 합니다(물론 단발식으로 인해 고장이 나는일이 적고, 손질이 쉬우며,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또 무게가 무겁고 길이가 길어서 2인 1조로 운용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2차대전이 끝난 후 이 PTRD는 RPG시리즈(RPG-2/RPG-7)에 자리를 내주고 후방으로 밀려났으며, 나중에는 현대화(.50탄환을 쓸 수 있는 총열과 고배율 스코프)를 해서 세계 최초의 .50 구경 저격총으로 변경을 했다고 합니다.


PTRS-41은 데그차례프 기관총을 개발한 바실리 데그차례프와 SKS를 개발한 세르게이 시모노프가 개발한 대전차 저격총으로서, PTRD와 동시대에 쓰인 녀석입니다. 일단 기존의 PTRD와 같은 탄을 쓰기는 했지만 PTRD가 가졌던 가장 큰 문제점인 "단발"을 반자동(클립사용)으로 변경했다는 의의를 가진 총입니다. 비록 반자동으로 변경이 되긴 했지만 PTRD와 같은 성능(100미터 거리에서 40mm 장갑관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PTRD와 대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총도 PTRD와 마찬가지로 중전차를 상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경전차나 트럭, 혹은 기관총 진지를 격파할때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또 몇몇 병사들은 이 총으로 비행기를 상대했고, 몇대정도 격추가 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합니다(또 바실리 자이체프같은 소련 저격수가 이 총을 시험삼아 사용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름) 특히 이 총은 몇몇이 독일에 입수되었고, 그에따라 독일군은 그것을 카피한 Panzerbüchse 784(r), 혹은 PzB 784(r)을 운용했다고 합니다(굉장히 소수)


물론 이 총도 문제점이 있긴 합니다. 일단 내부구조가 복잡해 짐에 따라서 가격은 자연스레 높아졌고, 실전에서 고장이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PTRD와 PTRS-41은 2차대전이 끝나면서 공식적으로 소련군에서 더이상 사용을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중공군이나 북한군에 보급이 되어서 한국전쟁당시 남한군과 유엔군을 상대로 쓰였다고 합니다(대전차용과 저격용으로)



원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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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46

    엘련님께서 헬싱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대물 저격하면 역시 세라스 빅토리나 누님이지요
    88mm 대공포도 한손으로..[응?]

    여자 벰파이어니까 가능해효

  2. 2009.08.25 21:48

    콜옵에서나오는거

  3. 2011.07.18 15:32

    혼자서 아랫것을 운용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혼자서 들고다니는 매뉴얼 사진이 있음.)

  4. 2011.08.06 14:59

    저 무거운걸 쏘려면 누워서 쏴야하나...



사용탄약: 20 x 138mm Solothurn Lon
전체무게: 49.5kg
전체길이: 2235mm
총열길이: 1300mm
장탄수: 1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30발



Lathi L-39는 2차대전당시 핀란드군에서 썼던 대전차 소총입니다. 사용탄약은 전혀 흔하지 않은 20 x 138mm탄입니다(이 틴약은 바렛이 쓰는 .50 BMG보다 훨씬 큽니다) 1차대전, 2차대전역사에서 잘 나오듯이 그당시 전차가 약했기 때문에 대전차 라이플을 생산하는게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라고 생각한 여러나라는 대전차 소총을 개발했고(물론 탱크의 장갑이 두꺼워 지면서 격파는 실패) 핀란드도 그중의 한 나라였습니다

사실 이 무기의 개발자인 아이모 라띠는 맨처음에는 20미리 화기를 개발할 생각대신 "13미리 기관총을 개발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의도와 다르게 아이모는 20미리 탄을 사용하는 대전차화기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20미리를 쓰는게 13미리를 쓰는것보다 관통력이 더 좋을거라는 생각때문이였습니다. 이 아이모는 정부가 13미리 기관총을 원했지만 최종적으로 20미리 화기를 만들었고, 실전테스트에서 "20미리가 13미리보다 더 관통력이 높다"라는게 인정되면서 이 화기가 핀란드에서 쓰이기 시작합니다. 이 화기가 바로 Lathi L-39입니다.


사실 이 화기는 2차대전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쓰이기 시작했었습니다. 바로 소련과의 겨울전쟁때부터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13미리나 20미리 대전차화기는 굉장히 소수만 군대에 보급이 되었고, 별로 전과없이 전쟁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제 2차 소련-핀란드 전쟁(Continuation War)이 발발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이 무기는 장점/단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제 2차 소련-핀란드 전쟁때 드러난 이 총의 단점은 바로 "관통력"과 "무게"였습니다. 비록 20mm나 되는 총알을 반자동으로 쏘기는 했지만 그 당시 소련이 쓰던 T-34나 KV-1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는 없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총 무게만해도 50kg, 탄창 하나당 2kg에 가까웠기 때문에 전시가 수시로 변하는 전장에서는 쓰기가 굉장히 곤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총의 아예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단 벙커나 관측소에 있는 관측병을 사살해서 적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쓰이기도 했고 소수 전문 저격병은 이 총으로 그당시 소련의 전투기였던 Ilyushin Il-2의 조종수나 기관총사수를 제거할때도 쓰였다고 합니다(물론 고도를 낮게하고 비행하는 전투기에서만 사용이 가능). 참고로 나중에 이 총의 전자동버전이 대공기관총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총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화기로서는 끝내주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병용 총기로서는 "불합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총의 사정거리가 6km나 되서 장거리 저격에는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지만 기존의 목적이였던 대전차용으로는 불합격점을 받았고, 사용횟수나 생산량이 적어서 그냥 조용히 묻혀버린 총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총은 2차대전 후에도 핀란드군이 "헬리콥터 격추용" 화기로 사용을 했고, 미 수집가들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총이라고 합니다. 총 생산량은 약 2000정 미만이라고 합니다.



출처: 위키백과(http://en.wikipedia.org/wiki/Lahti_L-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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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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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48

    근데 대물 저격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고대인들은 대물저격을 이리 잘써먹는지
    20 x 138mm... 바렛보다 무서운 놈이구려

  2. 2009.04.14 05:26

    20mm 이상이면 분류상 '포' 라고 부르지 않나요. 가령 Bf109의 회전축에 달려있던게 20mm 기관'포' 인데..?

  3. 2009.10.11 16:55

    양각대가 썰매타도 될 정도로 생겻다 ㅋㅋㅋㅋ 아님 흔들의자



사용탄약:
7.62 x 54mm R
전체무게:
4.2kg
전체길이: 1260mm
총열길이:
627mm
장탄수:
15발 탄창

2차대전 이전에 개발이 되어서 2차대전 당시 소수가 쓰인 AVS-36 자동소총입니다.


그당시 어느 나라도 반자동 소총을 개발을 해서 채용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심지어 그 흔하다는 M1도 2차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도입) 소련의 세르게이 시모노프는 생각이 달랐었습니다. 그당시 볼트액션이 굉장히 뛰어난 총이기는 했지만 여러 리뷰에서 언급을 했듯이 장전시간이 너무 오래걸리고, 사거리가 지나치게 길다는 문제가 병사들의 실전경험에서 계속 지적이 되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시모노프(참고로 이 시모노프는 나중에 SKS45를 개발하게 됩니다)가 1930년부터 디자인을 시작해서 1931년에 첫 프로토타입이 선보이게 되었고, 3년의 수정 기간을 통해서 1934년 총의 거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끝내고 그 다음년인 1935년 토가례프가 디자인한 총과 경합을 벌여서 마침내 AVS-36이라는 이름으로 소련군에 정식 채용이 되게 됩니다(AVS는 Avtomaticheskaya Vintovka Simonova의 약자이고, 36은 1936년 모델이라는 것의 약자입니다).


이 총은 생긴건 별로 특이해 보이진 않았어도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개런드와 같은 클립식이 아닌 탄창식을 통해서 한번에 15발이 장전이 가능했고, 특이하게도 이 녀석은 반자동 사격 이외에도 자동 사격(!!!)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를 했고, 또 다른 바리에이션 없이 저격총으로도 사용이 가능해서 거의 "M1 개런드같은 대박"이 가능할것 같았던 총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총의 운은 거기서 끝이였습니다. 이 총이 1938년 모스코바에서 처음 실전테스트를 받았을때 이 총의 결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내구성"과 "조작성"이였습니다. 자동/반자동 사격이 가능하게 했던 만큼 총의 부품수는 많아지고 구조도 볼트액션에 비해 엄청나게 복잡해졌으며, 그에따라 먼지가 조금만 들어가도 고장이 쉽게 나게 극악의 내구성을 증명(?)했었습니다(특히 핀란드와의 전쟁에서는 그리스가 발라진 상태로 AVS-36을 쓰다가 그 윤활유가 얼어버리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런 점은 AVS-36의 문제점이라고 하기보다는 소련군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 이 총은 전자동 사격시 엄청나게 높은 반동으로 인해서 "자동사격시 컨트롤을 할 수 없다"라는 소리까지 나왔고, 또 이 자동사격이 가능하게 15발 탄창을 채용한 것에 대해서 "너무 길어서 휴대가 불편하다"라는 지적도 받기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런 단점들로 인해서 1938년 다시 실시한 채용 시험에서 시모노프의 총은 탈락하고, 토가례프의 총이 나중에 승리를 하게 되면서 이 총은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참고로 토가례프가 설계를 했던 총은 나중에 SVT-38로 소련군에 채용이 되게 됩니다)

비록 SVT-38에게 지기는 했지만, 이 녀석은 짧은 기간동안 무려 65,800정이나 생산되어서 소련군에 공급이 되었고, 나중에 이 총은 시모노프의 PTRS-41이나 SKS45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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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8 23:35

    7.62X51보다 반동이 강하고 SVD 드라구노프에 쓰이는
    탄을 자동으로 쏠 생각을 하다니 ㅎㄷㄷ

  2. 2010.07.21 14:59

    SKS도 어차피 주력으로 쓰이진않는걸로 기억하는데요 SKS다음이 무슨총이었더라

  3.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2.15 21:51

    연사사격 인정못함 그거쓰면 넌정신나감 이런뜻??



사용탄약:
7.62 x 54mm R
전체무게:
3.85kg
전체길이:
1226mm
총열길이:
625mm
장탄수:
10발 탄창


SVT-38와 SVT-40은 세계 2차대전이후 소련군이 참전을 하기전에 개발해서 채용을 시작했던 반자동 소총입니다. 이 녀석은 나중에 설명할 AVS-36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는데, 사실 이 녀석이 등장하기 전까지 소련군의 제식화기는 M1891/30 모신나강 볼트액션 소총이였습니다.

뭐 M1891/30 모신나강 소총의 경우 내구성이 좋고 사거리가 길다는 장점을 가져서 좋은 평가를 받은 총입니다만, 그당시 대부분의 볼트액션 소총들 처럼 연사력이 떨어진다는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었습니다. 그런 문제로 소련군은 모신나강을 제식에서 퇴역시키고 반자동 소총을 새로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 여러 기술자들 중 토가례프라는 사람도 이 개발에 참여중이였습니다. 이 토가례프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경우 1935년 어느정도 기초가 잡힌 녀석이 나오긴 했지만 이 녀석이 나오기 전인 1936년에 나온 AVS-36이라는 이름의 자동소총이 먼저 소련군에 채용됨으로서  채용이 되질 못했고, 결국 "채용이 되지 못하고 사라진 총"이 될뻔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AVS-36의 단점이 속속 지적되기 시작했고, 2년뒤인 1938년 다시 두 총은 붙게 되서 결국 토가례프의 총이 채택이 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오늘날의 SVT-40의 기본토대가 된 SVT-38입니다.


이 SVT-38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나온 AVS-36와 많은 비교가 되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이 녀석은 AVS-36와 마찬가지로 쇼트 스트로크 방식을 채용하긴 했지만 "반자동"만 사용했다는 점에서 AVS-36와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비록 자동사격이 불가능하긴 해도 실전에서 별 탈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내구성을 높이는데 성공했고, 또 총의 컨트롤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도록 디자인/개발을 했었다고 합니다(다만 많은 리뷰들이 "내구성이 좋지 않아서 고장이 자주 났다"라고 언급을 하는 이유는 그당시 소련군의 대부분 병사가 "재대로 된 총기조립/분해 훈련"을 받지 않은 상태였고, 그에따라서 총기청소를 잘 안했기 때문에 실전에서 고장이 난다는 것이였지, 이 총 자체가 "고장이 잘난다"는 것은 아니였다고 합니다)


추신) 많은분들이 SVT-38이나 SVT-40은 명중률이 안좋았다고 하셨는데, 많은 수의 SVT 시리즈들도 스코프를 장착해서 저격버전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 총은 AVS-36와 마찬가지로 핀란드와의 "겨울전쟁"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그에따라 AVS-36가 겪었던 문제점들을 똑같이 겪었었다고 합니다. 일단 SVT-38 자체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휴대하기 불편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고, AVS의 경우처럼 윤활유를 닦지 않은 상태에서 윤활유가 얼어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총기 문제점으로 탄창이 자기 혼자 떨어지는등 여러가지 문제가 또다시 생기기 시작했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SVT-38도 AVS-36처럼 채용된지 얼마 안된 시기(1940년 5월)에 생산이 중단되었고, 그에따라 토가례프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한 SVT-40을 내놓게 됩니다(참고로 SVT-38은 약 15만정이 생산)


이 SVT-40의 경우 "SVT-38을 단순화"하는데 많은 초점을 맞춰서 개발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이 총은 무게도 가벼워지고 대량생산에도 적합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그 덕분에 단 1년만에 무려 7만정이나 생산된 기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당시 모신나강을 생산하던 회사들도 SVT-40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SVT-40은 그리 많은 수가 보급되지 않았고, 거의 90%이상의 소총이 모신나강이였다고 말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SVT-40은 엄청난 생산량을 기록하긴 했었습니다. 그 예로 "1941년당시 독일의 침공"당시 소련군 3명중에 1명은 SVT-40을 소지할 정도로 엄청난 수를 소련군은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1941년 이후 시작된 소련-독일 전쟁당시 소련군은 엄청난 양의 SVT-40와 모신나강을 잃어버렸고, 그에따라 약간 복잡한 SVT-40보다 엄청나게 단순한 M1891/30 모신나강의 생산이 다시 시작되었고, 그에따라 SVT-40의 대량 생산라인은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새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총기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서 M1891/30 모신나강 훈련을 받는것 만으로 훈련을 끝냈고, 마침 그때 개발된 PPSH-41은 SVT-40의 생산량을 능가하는 생산능력을 보여줌으로서 SVT-40대신에 대량생산을 시작하게 됨으로서 SVT-40는 거의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적은 생산량"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SVT-40은 생산을 멈추지 않고 계속 생산을 지속한 덕분에 1941년까지 26만 4천정이라는 생산량을 기록하게 되면서 "대박은 아니여도 망하지는 않은 총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SVT-40은 1945년 1월 정식 생산이 중단될때까지 총 백 6십만정(1,600,000정)이 생산되었고, 그 중 약 5만 5천정이 저격용으로 2차대전 당시 쓰였다고 합니다. 또 2차대전 당시 많은수의 SVT-38/40을 노획한 추축군도 이 총을 썼었다고 합니다


이 총은 1955년 소련군에서 정식으로 퇴역을 했으며, 남은 SVT들은 핀란드나 쿠바, 베트남에 지급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총은 또 SKS45, AG-42나 G43, FN-49(FN-FAL의 조상격인 총)같은 반자동 소총을 개발하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이 총은 바리에이션이 아예 없는듯 하지만 딱 2가지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합니다. 바로 AVT-40라는 녀석과 SKT-40라는 녀석인데요(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2차대전 화기들중 하나) 일단 AVT-40은 모양이나 구조는 SVT-40을 많이 참고했었지만 AVS-36처럼 자동과 반자동 사격을 동시에 할 수 있게 개발을 한 녀석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 총은 기관총처럼 쓸려는 용도로 개발이 되었지만 자동 사격시 컨트롤이 어렵고, 총이 부러지는 현상등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어서 생산이 별로 되지 않은 녀석이라고 합니다

가장 마지막 바리에이션은 SKT-40인데, 이 녀석은 그냥 SVT-40의 카빈 버전으로서,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 못한 녀석이라고 합니다(거의 찾아볼 수 없을정도로 적은 양)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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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7 16:14

    엔하위키에서 이총이 "거지같은 명중률"을 가지고 있어서 독일 저격수들이 게베어 43을 이용했다는데...
    진짜그런가요?

    • 2009.06.28 01:55 신고

      SVT-38/40나 G-43이나 거기서 거기의 명중률을 가졌습니다. 사실상 기존의 볼트액션 소총보다야 발사속도는 빨라졌습니다만, 볼트가 수시로 움직이고 챔버가 따로 급탄을 하느라 움직이다 보니 정확도는 사실상 많이 떨어지게 되었지요. G43이나 SVT-38/40나 거기서 거기의 명중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ㅇㅅㅇ

  2. 2009.09.14 04:25 신고

    m1 카빈 이 2차 세계대전 기간중 가장 많이 생산된녀석이고 이녀석이 그 다음이라는데 정말인가요?

  3. 2011.10.14 19:57

    소련군이 사용했던 많은 2차대전 물건이 6.25전에 쓰였다니... 이녀석도 땅 파보면 나올기세...

    p.s. 기록에 따르면, 6.25에 중공군이 AK47을 지극히 일부가 썼고, 그걸 호주군인가가 노획했다고 하는군요.

    • 2011.10.22 01:54 신고

      정확히 어느 자료로 AK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적인 정설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AK는 쓰인일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4. 이터널1건파이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2.02.12 14:09

    꼭 세계대전때 쓰던 SVD라고 생각이 드는건 저 뿐인가요?



사용탄약: 6.5 x 50 SR Arisaka
전체무게: 4.4 kg
전체길이: 1045 mm
총열길이: 520 mm
장탄수: 25발
발사속도: 분당 600발




 
Fedorov Avtomat은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개발된 자동소총입니다.

볼트액션 소총이 개발된 이후로 보병전의 양상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무조건적인 라인배틀이 아닌 참호전이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참호안에 숨어서 서로를 쏘게되는 방식의 전투를 맞이하면서 각 진영들은 그당시 혁신적이였던 녀석으로 부각된 볼트액션 소총말고도 자동으로 탄이 발사되는 녀석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에따라 그당시 게틀링이 디자인을 해서 개발된 게틀링 기관총이 쓰였고, 나중에는 이 녀석을 대체하기 위해서 맥심의 본격적인 중기관총이 등장하게 되었지만, 두 녀석은 공통적으로 두가지의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운용인원"과 "총 자체의 무게"였습니다. 일단 맥심이나 게틀링이나 반동제어를 편하게 하고 지속사격율을 높이게 하기위해서 과도하게 무게가 증가되었고, 그에따라 효율적인 사격은 가능하지만 능동적인 사격에는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또한 무게 뿐만 아니라 탄약 문제로 인해서 이 녀석들은 기본 2명이서 운용을 하게되었고, 이런 점이 서서히 큰 문제로 부각됨에 따라서 "혼자서 들고다닐 수 있으면서 동시에 지원사격이 가능한" 경기관총들이 속속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대략 이런 문제로 나오게 된 녀석들로선 루이스 기관총이나 쇼사 기관총, 그리고 AVS-36 자동소총을 들 수 있는데, 이런 녀석들보다 일찍 나온 녀석이 바로 이 Fedorov Avtomat입니다.


Fedorov Avtomat은 1906년 Captain V. Fedorov의 주도로 개발된 녀석인데, 맨 처음에는 그당시 러시아군이 쓰던 M1891/30의 제식탄이였던 7.62 x 54 mm R을 사용하면서 5발 내장형 탄창을 탑재하고 반자동 발사방식만 쓰이도록 개발되었었다고 합니다(이 초기버전들은 나중에 2차대전당시 소련군의 보병화기 개발사에 큰 영향을 미친 데그차례프와 같이 개발한 녀석이라고 하네요). 이 처음 프로토타입 버전은 러시아에 의해서 소수가 채용되었고, 이후 Fedorov는 이 녀석을 기반으로 완전자동으로 사격이 가능한 녀석에 대해서 개발을 착수하게 됩니다.

Fedorov는 애초에는 7.62 x 54 mm R을 사용하는 자동화기를 고안했었습니다만, 7.62 mm의 고질적인 반동으로 인해서 경량화가 되었으면서 자동사격을 가능하게 했다가는 컨트롤이 어렵다는것을 잘 알고있었고, 그에따라 그당시 일본에서 사용하던 6.5 mm 아리사카 소총탄을 참고로 한 탄을 사용하도록 하고 화기를 개발하기 시작하게 됩니다(이때 사용된 탄약의 이름은 6.5 mm Fedorov입니다). 그리하여 몇몇 프로토타입이 나오게 되었고, 이 녀석들이 실전에서 테스트를 받았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개발/생산은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이때 Fedorov는 6.5 mm Fedorov보다는 6.5 mm 아리사카탄이 조금 더 실용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존에 나온 버전중 대부분을 아리사카 탄을 사용할 수 있게 변환하게 됩니다. 이 녀석이 바로 Fedorov "Avtomat" 자동소총입니다.


이 녀석은 일단 작동방식이나 실용성에 대해서는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습니다만 6.5 mm 아리사카탄은 소련에서 대량생산을 하도록 개발된 탄환이 아니였고, 대량생산이 시작될 무렵즈음에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게 되면서 사실상 생산이 잠정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후에 맥심 기관총이나 DPM, 그리고 PPD-40같은 자동화기들이 개발됨에 따라 추후 생산계획은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Fedrov Avtomat 자동소총은 약 3200정을 만드는 것으로 생산이 끝났지만 이 녀석의 실용성 덕분에 세계 1차대전은 물론 겨울전쟁에서도 보였었다고 합니다(세계 2차대전때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본문출처: 위키백과 + 월드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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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1 01:02

    소련이 일본군의 제식탄을 사용하는 화기를 만들어내다니 재밌네요.



사용탄약:
7.62 x 54mm R(림식)
전체무게: 최대 4.1kg
전체길이: 1232mm(기본형) / 1013mm(카빈)
총열길이: 730mm(기본형) / 514mm(카빈)
장탄수: 5발 클립



이 총에 관한 개발동기는 18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당시 발발했었던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베르단이라는 단발소총을 사용했고, 터키군의 경우 윈체스터 레버소총을 사용했습니다. 그에따라서 비록 러시아가 승리를 하긴 했지만 엄청난 사상자 낳는 참사를 겪었고, "이 총으로는 전쟁을 할 수가 없다"라는 생각의 커맨더(장군)들이 "클립을 사용하는 소총"을 찾기 시작했고, 그에따라 새로운 소총의 개발을 지시하게 됩니다.

당시 이 총을 개발한 사람은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모신(Sergei Ivanovich Mosin)이라는 러시아군 장교였는데, 당시 같이 일하던 리온 나강(Leon Nagant)라는 사람과 같이 기존의 탄들보다 작은 .30(7.62mm)탄을 사용하는 총을 디자인하게 되었고, 1891년 그 첫 프로토타입이 나와서 시험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전체투표수가 14이였는데 10의 찬성투표를 얻어서 최종적으로 낙찰을 받았고, 나중에 장교들의 요청으로 디자인 개량을 거쳐서 Model 1891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채용을 받게됩니다. 이게 바로 M1891 모신나강 소총입니다.


첫 개발이 시작된 1882년부터 이 총은 소련이 그당시 이 총을 대량생산할 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을 외국공장에서 주문을 했으며,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까지 무려 380만정의 모신나강 소총이 생산/수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후에 러시아는 약 400만정 정도의 모신나강을 외국에서 주문을 했고, 러시아 공산혁명이 발발하기 전까지 계속 생산/수입을 계속했다고 합니다(차마 수입되지 못한 대부분의 총기들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군사훈련때 쓰였다고 합니다)

이 총은 러일전쟁때부터 시작해서 공산혁명, 내전, 1차대전, 2차대전동안 대량생산을 시작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독일이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한 1941년부터 종전시기인 1945년까지 이 총은 2차대전때만 약 174만정이나 생산될만큼 소련군에서 엄청나게 쓰인 총이라고 합니다(현재까지 생산된 모신나강의 숫자는 어림잡아서 3천 7백만정이나 된다고 합니다) 또 이 총은 1965년에 정식생산을 중단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 일어났던 한국전쟁, 그 이후에 일어난 베트남전에서도 다수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일부는 아프가니스탄전의 게릴라들이나 러시아를 상대로 했던 체첸 반군들이 쓴 경력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총의 장점을 보자면 대표적으로 "정확성"과 "가격", 그리고 "내구성과 구조"를 들 수가 있습니다. 일단 대량생산을 위주로 개발된 소총이다 보니 가격면에서는 엄청나게 쌌고(심지어 현대에 와서도 20만원을 내면 살 수 있는 소총중 하나), 엄청나게 좋은 내구성과 신뢰도는 이 총이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또 싸게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총이 가진 정확도는 그 어느 볼트액션 소총들 부럽지 않게 높으며 그래서 나중에 AK가 보급된 이후에도 저격소총으로 다수 사용이 되었다고 할 만큼 뛰어난 정확도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단순한 구조덕분에 많이 배우지 못한 병사들도 쉽게 총에 적응을 할 수 있고, 그만큼 훈련시간도 짧아지고 숙련도?높아지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특히 단순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장치도 장착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단점으로서는 일단 총의 무게가 4kg나 되고, 전장의 길이가 1.2m를 넘을만큼 총기의 휴대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특히 대검을 착검한 상태에서는 일반 건장한 청년보다 긴 총의 길이가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농담이 퍼질만큼 강한 반동은 이 총을 그당시 최고의 볼트액션 소총이라는 명예를 안겨줄 수 없게한 주요 문제점들이라고 합니다. 물론 카빈버전이 출시됨으로 인해 휴대성에 관한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기존 M1891에서는 끝까지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래는 소련에서 생산을 했던 바리에이션에 관한 설명입니다.

소련

Model 1891 Infantry Rifle ― 1891년부터 1931년까지 쓰인 주력소총입니다. 이 기간동안 노리쇠, 가늠좌, 총열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나온 바리에이션들의 토대가 된 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ragoon Rifle ― 이 총은 드래군(스타의 드래군이 아니라 기마병)을 위해서 개발되었으며, 사용하기 편하도록 총의 길이를 64mm정도 줄이고, 무게도 .4kg정도 낮췄다고 합니다. 이 총은 나중에 개발된 M1891/30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Cossack Rifle ― 이 총은 코사크(전문 기마병)를 위해서 개발되었으며, 기마병들이 쓰던 드래군 소총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착검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Model 1907 Carbine ― 카빈이라는 말 그대로 기본의 M1981 소총의 길이를 289mm 줄이고 무게도 .95kg정도 줄인 버전입니다. 이 총은 기술자, 포병같은 보직의 사람들에게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총도 크로색과 마찬가지로 착검이 불가능하며, 1917년까지 생산이 된 모델이라고 합니다.

Model 1891/30 – 모신나강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생산된 모델로서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소련군이 주력으로 생산/사용을 한 모델이라고 합니다. 또 많은 양의 M1891/30이 저격용으로 개조가 되었고, 볼트손잡이가 길어졌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Model 1938 Carbine ― M1891/30을 기반으로 한 카빈버전이며,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생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이 기간동안 생산이 되었다고 하지만 굉장히 소수만 생산이 된 버전이라고 합니다. 카빈이라는 말 그대로 총의 길이/무게가 대폭 축소되었고, 역시 착검이 불가능한 버전이라고 합니다.

Model 1944 Carbine ― 이 총은 1943년에 처음 소개가 되어서 1948년까지 생산을 한 모델로사, M1938과 별 차이는 없지만 착검이 가능하도록 개조를 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총은 소련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꽤 쓰인 모델이라고 합니다.

Model 1891/59 Carbine ― 기존의 M1891/30의 총열을 짧게 잘라낸 버전으로, 카빈용으로 쓰인 녀석입니다. 별다른 특징은 없다고 합니다.


아래 표는 소련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생산을 한 버전을 표기한 글입니다.

핀란드

M24 - 설명없음

M27 - 설명없음

M27Rv ― M27의 카빈 버전으로서 약 2217정이 생산되었고, 약 304정 정도가 현재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모신나강 바리에이션중에서는 가장 소수만 생산된 녀석입니다.

M28 ― 경비대를 위해서 개발된 버전으로서, 2차대전당시 500명이상의 사살전과를 올린 전설의 시모 하이아가 썼던 소총이라고 합니다.

M28-30 ― M28의 업그레이드 버전

M91/35 ― M27과 M28, 그리고 M28-30을 대체하기 위해서 개발된 버전으로서 정확도를 높이고 소염기를 장착한 버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식 채용은 되지 않았으며, 나중에 개발된 M39에 많은 영향을 끼친 버전이라고 합니다.

M39 ― 군대와 경비대 두곳에서 동시에 채용을 목표로 개발된 버전으로사, 권총손잡이가 달린것이 주요 특징이라고 합니다. 겨울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약 10정만 생산이 되었으며, 그 이후 제 2차 핀란드-소련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약 9만 7천정정도가 생산/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생산이 지속되어서 총 생산량은 약 102,000정 정도라고 합니다.

M56, M28/57 ― 설명없음

M85 ― 모신나강을 이용해서 개발한 현대 저격총 버전입니다


체코 슬로바키아

VZ91/38 Carbine ― M91/M59와 굉장히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M38 스타일의 카빈이라고 합니다. 다른 총들과 마찬가지로 흔하지 않은 모신나강 시리즈중 하나라고 합니다.

VZ54 Sniper Rifle ― M1891/30을 기본으로 제작한 저격총으로서, 현대적인 모습을 한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중국 / 헝가리

Type 53(중국) ― 소련군의 M1944 라이센스 생산버전으로서, 기존의 M1944와 다른 목재를 사용하는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M/52(헝가리) ― 소련군의 M1891/30을 데드카피한 버전으로서, 검푸른 철을 사용했으며, 질이 좋고 02라는 도장이 찍혀있다고 합니다(02가 헝가리제인것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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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52

    m1891 바로 글 읽지도 않았는데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능... 나 아무래도 m계열 빠돌이인듯

  2. 2009.05.18 14:24

    1800년대에 만들어진 총이 아직까지 쓰이고 있다니 (물론 공식적인건 아니지만) 대단하군요. 미국에서 훈련용으로 쓰인다는건 M1에 들어가는 그 7.62를 쓴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된건가요? 남아도는 모신나강을 개조해서 쓴건가요..?

    • 2009.05.19 07:13 신고

      남아도는 모신나강을 개조한게 아니라, 러시아에서 요청했던게 사실상 소련으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같이 보내질 탄환도 소비할겸 그냥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하더군요 ㅇㅅㅇ

    • 2011.06.17 21:37

      볼트액션 자체가 구조 간단에 1~2차대전 당시 총들이 워낙 견고해서 100년 넘은 녀석들도 관리만 잘되면 몇백미터 저격하는데도 별 문제 없음. 아직도 일부 분쟁지역에서는 리엔필드부터 Kar98k, 마링카 M38같은 듣보잡들도 현역으로 쓰이고 있음.

  3. 2009.10.05 14:24

    M1보다 장탄수, 연사속도, 파괴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정확성과 가격만큼은 뒤지지 않는군요.

    그나저나 소련군 저격수들은 간혹가다 귀신 들러붙은 것 같이 용하게 잘 맞는 모신나강에 스코프를 달아 사용했다고 하던데 그러면 도대체 그건 도대체 얼마나 정확하다는 거....?

  4. 2010.02.28 21:01

    3차대전이 끝나도 남아있을 진리의 무기..... ㅋㅋㅋㅋㅋ

  5. 2011.02.14 22:41

    정말 좋은정보입니다 ㅎㅎ 가져가요~

  6. 2011.04.09 20:52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7. 2011.04.27 14:44

    누가 구해다주시오! 돈은 얼마든 드릴테니!

  8. 2011.06.04 15:46 신고

    ㅋㅋㅋ 어제 이놈 사가지고왔다능....

  9. 우크라이나에서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6.17 21:33

    땅을 파면 나오는 초강력 장작

  10. 3차대전에서도 쓰일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6.17 21:34

    일 바퀴벌레총의 전설... 그런데 은근히 러시아가 이 모신나강의 위치를 대신하는 총을 만드는데 애를 많이 먹고 있는것 같지 말입니다.

  11. 2011.10.14 19:50

    이녀석 카빈형은 많이 생산이 되어서 일반병에게 까지 지급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차우에 나온건 좀 심하게 짦은듯 보였는데요, 6.25에 카빈형이 북한군에게 지급되었습니까?

  12. 2012.01.25 13:42

    오타있네요... 1982년이 아니라 1882년이아닌지?

 

 

사용탄약: 7.92 x 57 mm Mauser

전체무게: 4.5 kg(초기형) / 4.9 kg(후기형)

전체길이: 937 mm(초기형) / 1060 mm(후기형) 

총열길이: 502 mm

장탄수: 10발 /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900발(초기형) / 분당 600발(후기형)

 


세계 2차대전당시 독일이 개발한 자동소총 FG-42입니다(이름의 약자는 팔쉬름예거 게베어로 번역하자면 "공수부대 소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의 개발사는 독일이 만들어서 세계 2차대전에서 꽤 큰 활약을 펼친 팔쉬름예거(독일군 공수부대를 지칭하는 용어)의 창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사실 이 총이 개발된 이유가 다 팔쉬름예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쉬름예거의 경우 세계 2차대전당시 독일이 전격전을 시작했을때 처음 실전에 투입되어서 연합군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성적을 거두면서 2차대전 이후 거의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공수부대 하나쯤은 보유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이 팔쉬름예거의 경우 무장을 그당시 독일군이 제식으로 쓰고있었던 MP40, Kar-98k, MG-34/42로 하고 있었는데 이 무장에 대해서 팔쉬름예거들이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팔쉬름예거같은 공수부대같은 경우 무게가 무거우면 신속한 작전을 펼칠 수 없고, 무게가 과다하면 자칫 잘못해서 낙하도중 사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게를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동시에 지원병력이 올때까지 버틸 수 있을만큼 많은 탄약을 보유하는게 가장 최우선 과제였는데 Kar-98k의 경우 막강한 화력지원을 할 수 없으며 너무 길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MP-40의 경우 화력지원은 괜찮았지만 사거리가 너무 짧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MG-34의 경우 자체만으로 무게가 장난이 아니였기 때문에 개인 혼자서 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군부는 그리 개의치 않았고, 권총과 기관단총으로만 무장한 팔쉬름예거들이 대량으로 크레타에 상륙하다가 죽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잘 알려진 작전중 하나인 크레타 작전인데, 이 작전때 많은 팔쉬름예거를 잃은 독일정부는 "팔쉬름예거들이 들고다닐 수 있으면서 동시에 충분한 화력을 낼 수 있는 자동화기가 필요하다"라는 결정을 내리고 헤르만 괴링의 주도하에 따라 새로운 화기를 주문하게 됩니다. 그당시 헤르만 괴링은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 총의 전체길이가 1미터 이상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 Kar-98k과 비슷한 무게를 가지되, Kar-98k보다 훨씬 무겁지는 않아야 한다


- 반자동 발사시 클로즈드 볼트를 사용하고 자동발사시 오픈볼트로 작동해야 한다


- 10발이나 30발 탄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조건에 따라 독일내 6개 회사가 경합을 벌였고, 결국 레지멘탈에서 개발한 프로토타입이 독일군에 정식으로 채용되게 됩니다. 이 녀석이 바로 FG-42입니다(프로토타입의 경우 몇가지 문제로 인해서 2번 개량이 실시되었고, 이때 FG-42의 가격이나 무게가 약간 상승했다고 합니다)



이 FG-42의 경우 팔쉬름예거들이 실전에 사용하면서 꽤 많은 문제점을 가진 화기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일단 FG-42의 급탄이 왼쪽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총 자체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고, 화력이 센 마우저탄을 그냥 자동으로 발사하기 때문에 총의 컨트롤이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합니다. 또한 발사시 화염이나 소음이 커서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이 문제의 경우 다른 자동소총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문제점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지적되었기 때문에 레지멘탈은 초기형을 개량한 후기형을 새로 내놓게 됩니다. 이 후기형의 경우 초기형에서 문제되었던 디자인 문제점(권총손잡이나 개머리판)이나 발사속도, 무게를 개량함으로서 좀더 나은 성능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2차대전 후기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초기형, 후기형을 합해서 약 7천정밖에 생산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녀석은 나중에 미군이 GPMG로 활약했던 M60의 개발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외 다수 영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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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8 22:47

    급탄이 왼쪽에서 이루어졌다면 격발시 총자체의 반동과 급탄시의 스프링의 반발력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1시 방향으로 쏠리겠군요...

  2. 2009.10.11 16:59

    저 위에 독일어 '팔슈름야거게베어'라고 써있는겁니까?

  3.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2 10:37

    이거한방쐇다고 귀완전 먹엇던 독일군들 ㅜㅜ 슬프다

  4. 2011.02.12 22:55

    7.92쿠르츠가 일찍나왔다면... ㅠㅠ


 

사용탄약: 7.92 x 33 mm Kurz

전체무게: 3.7 kg

전체길이: 893 mm

총열길이: 400 mm

장탄수: 10발 / 3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350 ~ 450발

 

 

 

세계 2차대전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개발이 되었지만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는 StG-45(M) 돌격소총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 StG-44를 대체하기 위해 나온 녀석입니다. 뭐 StG-44의 경우 세계 최초로 군용으로 채용된 돌격소총답게 그당시 개인화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보여주기는 했었습니다만, 그당시 자원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의 사정으로 인해서 철판프레스 방식을 사용해서 개발이 되었고, 그에따라 무게가 총만 5kg을 넘는 안습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P.S) 뭐 혹자는 5kg가 넘는 무게로 인해서 발사시 탄착군이 좁아지고 유사시 분대지원화기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만, StG-44의 정식 목적은 "돌격소총"이지 "경기관총"이 아니기 때문에 무게의 경우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뭐 무게도 문제였지만 그당시 StG-44의 경우 가격이 70마르크로 대량생산에는 약간 비싼 가격이라는 단점과 총의 전체길이가 너무 길어 휴대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제기됨에 따라 1944년 말기부터 마우저사에서 StG-44에 대한 대대적인 개량작업을 실시해서 새로운 녀석을 만들게 됩니다. 그 녀석이 바로 Gerat 06 인데요... 이 Gerat 06 의 경우 테스트에서 좋다는 평을 받긴 했지만 내부구조가 MG42을 참고로 했기 때문에 구조가 조금 복잡했고, 그에따라 내부구조를 바꾼 새로운 녀석을 개발하게 됩니다. 그 녀석이 바로 StG-45(M)의 기초가 된 Gerat 06H입니다.

 

 

이 Gerat 06H의 경우 Gerat 06과 달리 내부구조를 MG-42의 가스작동식이 아닌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전작보다는 비교적 구조가 단순해졌고, 원래 목적이였던 가격 낮춤(StG-45(M)의 가격은 한정당 45마르크로 StG-44ㅂ다는 약 25마르크정도 저렴합니다)과 경량화에도 성공을 했습니다. 또 발사속도도 어느정도 늦춘 덕분에 유효사거리도 더 높아졌다는 평을 받았습니다(또 StG-45의 경우 StG-44에 쓰이는 철의 양의 반밖에 쓰지 않아서 자원절약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1945년 독일은 이 녀석을 StG-45(M)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비밀리에 대량상산을 준비하기에 이릅니다.

 

 

이 녀석의 경우 약 30정을 만들 수 있는 부품을 생산한 바로 직후 연합군에 의해 StG-45(M)을 개발한 주요인물중 한명인 Mauser Werke을 생포함에 따라 정식으로 독일군에 쓰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일단 이 총의 개발자중 한명인 Ludwig Vorgrimler의 경우 종전직후 프랑스에 채용시키기 위해 AME 49라는 녀석을 개발했고(참고로 프랑스는 이 총을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스페인에서 StG-45(M)을 기초로 해서 CETME 전투소총을 개발하게 되고, HK의 경우 이 CETME를 이용해서 전투소총의 명작이라 불리는 G3 시리즈 + MP5 시리즈를 개발하게 됩니다(사실 StG-45의 외형보다는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썼지요) 또 2차대전직후 개발된 전투소총중 하나인 스위스의 SIG-510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출처: 위키백과 + 월드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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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9 21:00

    도통 철판프레스 가공법이 무엇인지...

    • 2009.04.09 23:44 신고

      철판 프레스가 뭐냐면 예전의 총들은 절삭가공이라고 해서 주요 부품들을 철을 깎아서 만든 방식이였는데 이 방식의 경우 총의 품질 자체는 굉장히 우수했습니다만 분당 제작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게 철판 프레스인데, 철판 프레스는 간단하게 말해서 그냥 틀에다가 용광로 철물을 넣은다음 찍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2009.10.05 14:13

    stg44와 더불어 G3의 전신이 된 녀석이로군요. 그나저나 좀 못생긴듯....

  3. 2011.02.12 22:57

    AK와 M14를 제외한 모든 총기는 여기서 갈라졌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사용탄약: .30-06 스프링필드(7.62 x 63mm)
전체무게: 3.9kg
전체길이: 1140mm
총열길이: 610mm
장탄수: 5발 클립


M1903이라는 제식명을 가진 스프링필드 볼트액션식 소총입니다

이 총은 기존에 있던 Krag - Jorgensen 소총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기존의 크레그 소총의 경우 .30-40 Krag라는 제식탄을 썼는데 이 탄의 경우 흑색화약때문에 파괴력이 너무나도 강했고, 장전방식도 "한번쏘고 한발 넣어서 쏘는", 그야말로 단발식을 썼기때문에 사용하기가 굉장히 불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레그 소총 이외에도 마우저사에서 생산한 총이나 Lee M1895, M1885 레밍턴 소총등 다양한 총들이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군에 채용이 되었지만, 사정은 크레그와 마찬가지였고, 새로운 총의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근 30년동안 이 크레그 소총은 미군의 제식소총으로 남아있었고, 1900년대에 이르러서 이 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소총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됩니다

사실 이 총이 정식으로 채용되기 전에도 이미 무연화약을 쓰는 소총들이 대거 등장했고, 소수지만 여러종류의 총들이 이미 미군에 채용이 되었습니다(대표적인 예로 1882 Lee Model). 하지만 대부분 그냥 수백정을 채용하는것으로 끝이 나버렸고,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소총개발을 생각하던 스프링필드사가 총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마우저사의 소총이였던 모델 93이였습니다.


미군-스페인전쟁당시 스페인이 무장했던 M93을 처음 본 미국은 "이거 좋은데??"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기존의 단발식 소총과 다르게 클립을 사용해서 재빠르게 장전을 할 수 있었으며 크레그 소총과 동일한 파워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스프링필드는 이 총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총을 만들게됩니다. 그게 바로 M1903이였습니다

일단 M1903이 나오기전에 마우저사의 총의 특징을 잘 표현한 프로토타입이 1900년에 정식으로 나왔고, 1903년부터 정식생산이 들어갔습니다. 이 총의 이름은 Model 1901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M1901을 현대화/개량을 시켜서 정식으로 미군에 채용시킨게 바로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입니다


이 소총의 경우 단 2년동안 무려 8만정이나 생산되었고, 그당시 루즈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아니라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요청으로 베요넷(대검)을 장착할 수 있는 M1905도 생산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총은 미군뿐만 아니라 프랑스등 여러나라에서 소수/대량 채용이 되었으며, 그당시 가장 유명했던 .30-06탄을 쓰는 스프링필드 소총인 M1906을 또 개발했다고 합니다(스프링필드중 베스트 셀러작)

1차대전이 시작된 이후 이 총은 미군에서 약 84만정 정도가 쓰였고, 2차대전 당시에는 한 회사에서만 3백만정이상이 생산될 만큼 불티나게 쓰인 소총이라고 합니다. 또 이 총을 발견한 독일군이 Gewehr 249(a)라는 총을 새로만들때 참고했을만큼(사실 카피버전이라고 해도 무관한) 신뢰성/실용성면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 2차대전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때도 소수가 사용되었으며(베트남전때는 대부분 저격용으로) 현대에 와서는 JROTC(주니어 ROTC)에서도 연습용으로 쓰이고, 사격장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을정도로 인기가 좋았고, 대량생산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밑의 설명은 바리에이션을 설명한 표입니다.

1. M1903 (1903) — .30-06탄을 쓰는 기본형으로서, 기본 목재 개머리판을 채용
2. M1903 (1905) — 루즈벨트 대통령의 요청으로 수정한 대검을 장착할 수 있는 모델
3. M1903 (1906) — 새로 개발한 .30-06을 사용하는 모델. M1903과 별반 차이가 없다.
4. M1903 Mark I (~1918) — 소구경 탄환을 사용할 수 있게 개량을 한 버전(페더슨 장비라고 불리움)
5. M1903A1 (1930-1939) — C형 개머리판과 권총손잡이를 사용한 버전(레밍턴사에서 1941년까지 약 35만정 생산)
6. M1903A2 (1930s–40s) — A1, A3버전을 개량한 버전
7. M1903A3 (1942) — 대량생산에 적합하게 개량을 한 버전
8. M1903A4 (1942) — M1903A3을 저격용으로 개량한 버전(M73 / M73B1 같은 2.2배율 스코프 장착)
9. M1903 Bushmaster carbine (1940s) — 파나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카빈버전. 약4,725정이 생산되었지만 거의 쓰이지 않았고 2차대전 후에 대부분 폐기처리된 버전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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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2 22:54

    책에서 보니까 M1903에 패더슨 장비를 부착해서 쓴다고 하는데 패더슨 장비가 정확히 무엇인지요?

    • 2009.04.13 03:09

      페더슨 장비는 기존의 .30-06보다 짧은 .3구경 탄환을 반자동으로 사격할 수 있는 일종의 컨버젼 킷입니다 ^^ M1903 스톡과 트리거 그룹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볼트구조만 반자동 구조의 급탄시스템을 바꾸는거지요 ㅎㅎㅎ 급탄은 길다란 탄창을 위에 부착해서 사격합니다 ㅇㅅㅇ

  2. 2010.06.15 20:28

    비밀댓글입니다

  3. 2012.06.20 14:39

    페더슨장비는 볼트액션을 반자동으로전환하는게아니엿나요?

  4. 2014.06.28 23:53

    잔탄제거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사용탄약: .30 카빈탄
전체무게: 2.4kg(탄창 없을시)
전체길이: 904mm
총열길이: 457mm
장탄수: 15발/3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850~900발(M2 카빈에 해당)



 
m1 카빈은 2차대전당시 있던 M1 개런드나 M1A1 톰슨 기관단총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소총입니다


일단 M1개런드의 경우 강한탄을 쓰고 반자동이여서 좋긴 했지만 길이가 너무 길고 명중률이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작은 총이 필요한 공수부대나 총을 휴대하지만 평상시에 총과 관련된 것이 아닌 것을 하는 병사(엔지니어, 타이프라이터, 의무병등등)에게는 M1 개런드가 너무 버거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물론 리볼버나 M1911A1 콜트같은 권총을 무장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권총들의 경우 주무장으로서의 위력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전투원들에게 M1 톰슨을 지급하자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하지만 M1톰슨의 경우 근접전에서 확실한 효과를 인정하긴 했지만 M1개런드나 그당시 활동하던 M1903 스프링필드 소총과 다를바없이 무겁고 휴대하기 불편했으며, 장거리 전투시 별로 쓸모가 없다는게 입증이 되면서 이것도 무산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M3 그리스건이 나중에 발명되긴 했지만 그리스건이 발명되기 이전에 이미 미군은 새로운 총의 개발에 착수를 하게됩니다. 바로 그게 M1 카빈이였습니다


이 새로운 소총을 개발하기에 앞서서 미군은 일단 기존에 유효사거리가 30야드밖에 되지않는 권총탄이나 유효사거리가 5~600야드씩이나 되는 소총탄의 중간이 필요하다는것을 알아채고 새로운 탄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이 탄의 경우 300야드정도의 유효사거리를 보유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그 탄이 바로 .30 카빈탄입니다

이 탄약은 기존에 있던 .30-06 스프링필드 탄약(그당시 M1개런드에 쓰였던 탄약)의 탄자지름은 동일하게 하되, 탄피의 길이를 줄이고 화약의 양을 줄여서 사거리가 기존 소총탄보다 짧고 화력도 약하게 개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신 권총탄보다는 더 긴 사거리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탄을 기초로 미군은 새로운 총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새로 개발된 소총은 M1개런드보다 다루기쉽고, 무게가 가볍고, 적은 반동을 가졌지만 M1911 권총보다는 긴 사거리와 정확성을 가지게 하도록 설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개발시기동안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는데, 맨처음 개발한 존 브라우닝의 의붓형제였던 에드 브라우닝은 이 총을 개발하던중에 사망하고, 나중에 개발에 참여한 개발자가 개조한 프로토타입도 여러가지 문제점(극한환경에서 고장이 잘난다는점)때문에 채용이 되질 못합니다. 이 1939년부터 시작한 모델생산은 나중에 정식으로 채용된 날짜까지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2년동안의 고비끝에 1941년 10월 M1 카빈의 프로토타입이 미군에서 합격통지를 받고 정식으로 채용이 됩니다. 그리고 전선에서 처음으로 시험을 받고 평가를 받게됩니다


일단 이 총은 정식무장이 필요하지 않지만 경우에따라서 사격이 필요한 병사들이나 가벼운 무장이 필요했던 공수부대에 굉장히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총을 사용한 병사들의 직책을 보자면 무전병, 탱크/차량 승무원, 포병, 공병대, 공수부대등등 굉장히 많은 곳에서 이 M1 카빈을 원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공수부대를 위한 접절식 M1A1(톰슨이 아니라 카빈의 바리에이션)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있도록 설계가 되었지만 사정상 제거가 된 자동사격방식도 나중에 개발된 M2 카빈에서 쓰였으며, 이 두버전은 2차대전뿐만 아니라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도 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히 이 M1 카빈의 경우 2차대전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꽤나 쓸만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에 생각했던 대로 근접전이나 약간 긴 전투에서는 효과적인 성능을 보였지만, 그 이상으로는 권총탄이나 소총탄을 메꿔줄만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이 역할을 나중에 개발되는 돌격소총들이 메워줍니다) 특히 이 총 자체내에 있는 스프링이 추운지방에서 잘 고장이 나서 사격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또 기존에 있던 소총들과 달리 정확성이 너무 낮아서 불평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따지자면 M1 카빈은 2차대전이 끝날때까지 총 625만정 이상이 생산되어서 미국이 생산한 총들가운데 TOP 5에 들수 있을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신뢰성이 높았고, 사용할 수 있는 조건/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그만큼 많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2차대전 이후 개발된 돌격소총에게는 뒤지는 성격이였지만, 그당시로서는 소총탄과 권총탄의 중간역할을 굉장히 잘 수행해낸 소총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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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17

    블로그에도 한번 동영상이 나왔었지요

    탕탕 탕 탕 탕 탕탕 핑~

  2. 2009.05.22 10:31

    월남 초기때 국군이 M2 를 사용했었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까 M1에다가 바나나형 탄창 끼운 모양새던데 그저 M1에 연사기능을 추가한것 뿐인건가요..?

  3. 2009.06.08 20:49

    난 이녀석을 볼때마다...참 탄창이 깜찍해 보여요...-ㅅ-

  4. 2009.08.25 21:59

    여기다가 30-06탄환을 쓰게하면? ㅋㅋㅋ

  5. 2010.02.28 11:50

    이놈의 카빈 한국전쟁때 관통력이 좀 조루여서 중공군 방한복도 제대로 관통못했다는 설이..

  6. 2010.05.27 00:41

    관통력 조루, 명중률조루 등 내가 개런드를 사랑하게 만들수 밖에 없는
    고자총 응?

  7. 2010.06.22 20:31

    625만정? 미군 병사들 총 합해도 그정도는 안됬을텐데

  8. 2010.09.26 13:37

    이거 '전우' 드라마에서 박중사가 쓴 총이랑 비슷한데 m1카빈인가요 아니면 m14인가요? (전우 보신분들은 아실 것 같음^^)

  9. 2010.10.16 20:2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 2010.11.17 00:53

    음... 항상 볼때마다 생각나는 거지만
    M1 카빈과 M2 카빈의 차이점이 뭔가요?
    그저 탄창의 차이 뿐인가요?

  11.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1 20:06

    정말 어쩡쩡한 소총?? 이거 어쩌면 기관단총이라도 해야돼는거 아닌가요 ,... 권총탄쓰던만 m1개런드 소총탄 쓰면 ㅋ?? 쩔겟군

  12. 2011.02.12 22:51

    아이고... .30카빈이 아닌 30-06을 절반으로 잘라낸 총탄을 개발해서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성공했을까요?

  13. 2011.03.12 15:02

    이물건 기본탄창이 10발만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예비군 가면 다뤄보는 총인데.....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30-06 스프링 필드 이정도면 숫제 거의 괴물수준 위력임니다 굵은 기차 레일 용 침목을 순식간에 절단해버리는 ...... 파워나 초속으로 보나 정말 끝내주는 위력인데 문제는 이놈의 반동....... 8발 다쏘고 나니 어깨에 피멍이 들던데......

    • 2011.03.16 07:24 신고

      1. M1 카빈은 15발/30발 탈부착식 탄창을 사용합니다
      2. M1 카빈에 사용된 탄은 .30 카빈 탄이지, .30-06 스프링필드가 아닙니다
      3. 8발 말씀하시는거로 봐서 M1 카빈이 아니라 개런드를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뭐 사실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드는것 자체는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지라, 네이버 블로그 하다가 조금 스타일이 지루하면 이곳에서 와서 블로그를 해보자....라는게 개인적인 의견이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네이버 블로그는 여러가지로 많이 불편합니다. 뭐 레이아웃이나 스킨, 그리고 폰트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나, 잘만 글 쓰거나 독특하게 개성있는 글 쓰면 메인에 떠서 하루 방문자가 수십만명이 올라간다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그건 극 소수의 블로거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고, 밀리터리 관련 글은 솔직히 말해서 주목을 받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은 녀석들이지요. 그래서 덕분에 개인화기 자료만 잔뜩 올려논 제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zzang1847)와 다음 서브블로그(http://blog.daum.net/zzang1847)의 경우 사람은 대충 들어옵니다만, 지속적으로 운영할 만큼 재미가 있는 그런 블로그는 못되고, 블로그로 인한 수입도 없다는게 밝혀졌지요(뭐 블로그를 돈벌이로 하는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약간의 금전적인 이익이 있다면 블로그질을 하는데 있어서 조금 더 수월하겠지요)


뭐 사실 네이버 블로그에 개인화기 타이틀을 걸었을 때는 "내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블로그 대학가기전에 파워블로그(네이버에서 좀 알아주는 블로그들을 선정하는 시스템인데, 작년 2008년에 한번했고, 이번에 또 할 예정입니다)에 선정되고 말꼬당!"이라고 다짐을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런일은 없을듯 하고, 약간 제약이 좀 있는듯한 네이버 블로그에서 약간 벗어나 보려고 티스토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일단 오늘은 이 글만 올리고, 앞으로 이제 네이버 글을 이리로 대부분 옮겨올 생각입니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못했던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 그러니까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여기서 집중적으로 다뤄볼까 합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하고 자보도록 하지요


P.S) 솔직히 조금 걱정되기는 합니다. 과연 이 블로그에는 사람이 얼마나 들어와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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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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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7 18:48 신고

    블로그 개설 축하드려요^^ 멋진 공간으로 꾸리시길~~
    많은 분들이 찾아오실 것 같은 느낌이 벌써부터 드는군요!

  2. 2009.04.07 19:25

    와하하하 MC이가 다녀 갑니다요...

  3. 저땅끝에서온 엔이에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09.04.07 22:57

    개설축하드립니다

  4. 2009.04.07 23:52

    축하드려요 ^^
    놀러왔다갑니다~ 릿힝

  5. 2009.04.07 23:52

    블로그 개설 축하드리지만 완벽하게 도전 하실려면 주소를 안알려주시는게 낮지 않나 싶은데요;

  6. 2009.04.08 01:09

    개설 축하드려요~
    저는 얼음집에 오기를 빌었는데요 ㅋㅋㅋ

  7. 2009.04.08 18:00

    축하드려요 근데 이제 네이버 블로그는 운영 안하시는지요?

  8. 2009.04.09 00:53

    오~~ 오~~
    개설 축하드려요
    개설 축하 짤방을 올리고 싶으나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므로 pass

  9. 2009.04.14 05:11

    성지순례 (?).. 티스토리 초대장 오면 저한테도 보내주세요. (?x100)

    이제 슬슬 블로그 관리에 도가 터가려고 하는 느낌이 들랑말랑 합니다. (하루 조회수가 100 이제 막 넘어가기 시작) 네이버 파워블로그는 제가 잡아먹겠습니다 (?x999)

    티스토리를 하고싶은 이유중 하나가 구글의 애드샌스로 돈을 벌수 있다는 거지요 흠흠. (?x∞)

    • 2009.04.14 08:36 신고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늘 초대장이 와야하는데, 대략 글의 수가 적은지 안오는군요 ;;;;다음달 14일을 기대해봐야 할 듯 합니다만, 초대장의 글의 수도 문제지만 사람도 많이 와야 한다니...난감합니다 ;;;;

      P.S) 네이버 파워블로그 정말 되기 어렵습니다 ㅋㅋ 전 죽을힘을 다해도 안되더군요 ㅎㅎㅎㅎ

      P.S) 돈에 눈이 트셨군요 ㅎㅎㅎ 하지만 그것도 방문자가 많아야 할 수 있는 녀석이지, 무턱대고 넣는다고 돈벌어주는 기계는 아니랍니다 ㅋㅋ

    • 2009.04.15 08:20

      우오오, 에일리언님 감사합니다. (넙죽) 유용하게 사용하겠음.

      홍보가 필요하다면 제가 facebook 에 'Korean Pron Site' 라고 애들을 낚아볼까요 (??)

    • 2009.04.15 09:52

      아 님하 제발 ;;;;; 그냥 순수하게 밀리터리만 좋아하는 사람만 이곳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

  10. 2009.08.03 23:03

    앜ㅋㅋ바렛님 낚시신공ㅋㅋ 그럼 저는 구글에<퍽

  11. 2009.08.03 23:04

    하여간 개설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