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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영상은 K5 자동권총의 패스트 액션 시연을 위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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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02 00:15 신고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이 뭉텅한 느낌이 들어서 45구경 M1911A1 모델로 좀 잘 빠진(?)느낌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9mm 한계 이야기가 나오니.. 차기권총사업에서는 다시 45구경이 되기를..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 2016.10.21 06:23 신고

      .45 ACP의 경우 사실 미국을 제외하면 큰 인기가 없는 탄약이고, 9미리보다 훨씬 제어하기 어려운 물건인 만큼 단기간 동안 군에서 복무하면서 제한적인 시간과 예산으로 권총 사격을 하는 장병분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글록 19같이 조작하기 쉽고 튼튼한 폴리머 소재 자동권총을 새로 채용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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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영상은 1분 40초부터 M16/AR-15을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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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영상은 2분 38초부터 AK-47을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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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년도: 1950년
중량: 1.07 kg
전체길이: 362 mm
유효 투척거리: 15 ~ 20 m
사용 폭약: TNT, RDX
화약량: 0.567 kg
신관: 충격신관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시 이를 상대해야 했던 보병들은 적 보병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적에 맞써 싸워야 한다는,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전장에서는 기술 발달로 인하여 보병이 전차를 상대하기 보다는 아군 전투기나 전차가 이를 상대하는 경우가 많고, 만약 보병이 전차를 상대로 교전을 해야한다고 할 지라도 대전차 미사일이나 로켓의 개발로 1차대전 때보다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거리나 위험도는 상대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있기 전인 1900년대 초/중반에는 보병이 모든것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기술적 진보로 인해 다양한 대전차 무기가 등장하기 이전인 1차대전 말기, 전차가 등장했을 시 이를 잡기 위해 쓰인 물건들중 하나는 바로 수류탄이였습니다. 수류탄의 경우 1차대전 이전부터 쓰이기 시작하였지만 전차가 아닌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인지라 대전차용으로 곧바로 쓰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개발된 대전차 전용 수류탄들은 폭약량을 많이 넣거나 대전차 로켓 발사기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던 성형작약탄을 써서 장갑 관통은 물론 안의 승무원을 무력화시키는것이 가능하다는것이 알려졌고, 쓸모가 있다는 판단하에 이 단순하고도 고전적인 물건은 1차대전 말고도 2차대전 당시에도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대전차 수류탄은 두 차례 세계대전 당시 나름 쓸모가 있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받은 병사들이 해당 물건을 좋아했다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비록 전쟁 초기에는 쓸모가 있을지는 몰랐어도 2차대전 말기에 들어서면 기존의 대전차 수류탄들로는 중장갑을 갖춘 전차들의 측면이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없는 상황이 수두룩하였고, 설사 장갑관통이 가능한 전차라고 해도 가까이 근접해서 수류탄을 던지거나 부착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대전차 수류탄으로 전차를 상대해야 하는 병사들의 평균수명은 짧을 수 밖에 없었던지라 대전차 수류탄을 썼던 쓰지 않았건 대부분의 강대국들은 냉전 당시 대전차 로켓 발사기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전차 수류탄이라는 범주의 물건은 자연스레 도태가 되는듯 싶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대전차 수류탄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것과 다르게 소련만큼은 대전차 수류탄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2차대전 도중 제대로 된 대전차 로켓 발사기를 개발하거나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냉전 초반 값싸고 쓰기 쉬운 RPG 시리즈가 나온 만큼 소련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실용성이 점점 떨어지는 대전차 수류탄에 대한 생산을 중단하는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소련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대전차 수류탄을 "대전차용" 용도가 아닌 타 용도로 쓰는것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대전차 수류탄이 냉전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MBT(Main Battle Tank, 주력전차)는 대전차 수류탄이 어느곳에서 터지든간에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장갑 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장갑 차량이나 병력 수송용 경장갑 차량(APC)들은 이러한 대전차 수류탄에 대해서 완벽한 방호능력을 갖추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RPG 시리즈는 대전차 수류탄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안전하게 사격을 할 수는 있지만 휴대하기가 힘들어 적에게 발각되기 쉽고, 설사 발사를 하는데 성공한다 할 지라도 로켓에서 나오는 연기 및 화염으로 인해 노출되어 적의 사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지라 근접거리에서 확실한 명중률을 보장할 수 있는 대전차 수류탄들은 특정 상황(특히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있는 게릴라들)에서는 오히려 더 효과적인 경장갑 차량용 무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RKG-3(Ruchnaya Kumulyativnaya Granata, 휴대용 성형작약 수류탄)는 이러한 소련의 대전차 수류탄에 대한 애정으로 탄생한 물건으로서, 2차대전 당시 쓰이던 RPG-40나 RPG-43, 그리고 RPG-6 대전차 수류탄의 계보를 있는것과 동시에 성능적 향상을 기대하고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실제로 RKG-3는 전작들과 다르게 장갑 관통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RPG-40는 20 mm, RPG-43는 75 mm, 그리고 RPG-6는 100 mm 장갑 관통능력을 가졌었는데 RKG-3는 기본형 장갑 관통능력이 최소 170 mm로 측정), 성능적 향상 말고도 RKG-3는 여러가지 특징들을 더 도입한 물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RKG-3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수류탄용 보조 낙하산의 도입이였습니다. RKG-3나 기타 대전차 로켓들에서 흔히 쓰이는 성형작약탄은 특성상 장갑과 특정한 각도에서 충돌을 해야 최대한의 관통능력을 보여주는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RKG-3는 안전핀을 제거하고 던질 시 수류탄 손잡이에서 보조 낙하산이 튀어 나오도록 설계가 되었고, 이 낙하산이 낙하하는 수류탄이 격파하고자 하는 물체와 90도 각도로 충돌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다만 사용자가 각도로 인한 최대 관통효과 보다는 빠르게 던지는것을 더 요구할 경우에는 보조 낙하산을 제거하고 일반 수류탄처럼 던지는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RKG-3 대전차 수류탄은 1950년대 초반 소련군에 의해 채용이 된 이후 수차례 개량이 진행되었고, 소련군 내에서는 RPG-18와 같이 휴대성이 높은 대전차 로켓 발사기가 등장함에 따라 정규군용으로는 더이상 사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게릴라 전에서 손쉽게 쓸 수 있는 대전차 수류탄이라는 특성 덕분에 RKG-3는 퇴역 이후에도 소련의 물자지원을 받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아랍연합과 이스라엘 사이에 일어난 욤 키푸르 전쟁이나 2000년도 중/후반에 진행되었던 이라크 전 당시 다수의 RKG-3가 사용되거나 사용되기 전의 상태로 종종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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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4.34 kg
전체길이: 851 mm
총열길이: 203 mm
장탄수: 32발, 50발 박스형 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2차 세계대전 초반 연이은 패전은 물론 덩게르크 철수작전으로 유럽 본토 내 기점을 잃어버린 영국은 독일을 포함한 추축군의 본국 침공이라는 야욕을 막기 위해 철수작전이 끝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방어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본토 사수라는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던 영국군은 끊임없는 물자부족으로 인하여 이도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겪었는데, 이러한 난감한 상황은 그 당시 영국군이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그저 본토 사수만 가능하다면 어떠한 시도라도 해보는 저돌적인 자세를 가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지요. 란체스터 기관단총도 이러한 결과물들중 하나였습니다.

란체스터 기관단총의 개발역사는 덩게르크 철수작전 이후의 영국군의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군과의 보병단위 전투에서  기관단총의 실용성을 처음 깨닫게 된 영국군은 철수 직후 곧바로 자국산 기관단총 개발에 착수하였지만 물자적 부족이라는 난관과 더불어 기관단총에 대한 제대로 된 개발 노하우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후 영국군의 제식화기로 선정될 스텐 기관단총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는 몇몇 군사조직들은 이를 기다리는 대신 기존에 있던 것들을 재활용하거나 배껴쓰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그들의 눈에 들어온것은 바로 주적인 독일군이 쓰고 있던 MP28입니다.


MP28 기관단총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최초의 실용적인 기관단총으로 인정받은 MP18 기관단총을 개량한 물건으로, 나중에 MP40 같은 걸출한 기관단총을 개발한것으로 알려진 휴고 슈마이저의 지휘로 만들어진 화기였습니다. 간단해진 탄창과 자동/반자동 셀렉터를 탑재함으로서 약간이지만 성능 향상을 염두하고 만들어진 MP 28는 그 당시 나온 물건들중 가장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기관단총이였다는 것은 사용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물론 이를 접한 사람들도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였는데, 비록 적군의 화기이기는 하지만 물불 가릴새가 없었던 영국군은 이를 카피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란체스터 기관단총(란체스터라는 이름은 해당 화기의 생산을 맡았던 스털링 조병창의 책임자인 조지 허버트 란체스터의 이름을 따서 명명)은 영국군을 위해 만들어진 MP28의 카피판이지만, 사실은 영국 육군 보병들이 사용하는것을 염두한것이 아니라 영국 공군이 비행장을 지키는 용도로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하지만 개발 당시 영국 육군도 스텐 기관단총이 나오기를 무작정 기다릴 바에는 이것이라도 쓰겠다는 심정으로 개발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작 란체스터 기관단총을 가장 많이 쓴 부서는 육군이나 공군이 아닌 해군인것을 감안하면 그 당시 영국군의 사정은 눈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는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MP28의 단순한 카피형으로 나온 만큼 란체스터 기관단총은 기본이 되는 물건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단순 블로우백이라는 작동방식이나 좌측에서 탄창을 급탄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던가 등등) 기관단총에 쓰이는 목재 개머리판이나 총검 장착대는 리-엔필드 소총의 것을 강하게 참고하기도 하였고, 이후 나온 개량형 버전(Mk.1)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생산할 수 있게 자동/반자동 셀렉터를 없애고 조준기를 단순화 시키는등 영국군이 필요로 하는 몇몇 특징도 도입했다고 하는데, 복제도 철저히 한 덕분에 성능상으로는 기본작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좋은 물건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란체스터 기관단총은 1941년 중반 첫 5만정 생산을 시작으로 1943년 말까지 생산을 지속하였고(28개월이라는 기간동안 매달 약 3,400정씩 생산한것으로 추산), 이 당시 만들어진 물건들은 영국 해군같이 기관단총의 수요가 은근히 많은 곳에 요긴히 쓰였습니다. 영국 해군은 란체스터 기관단총을 예비물자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 가지고 있었고, 쓰지 않는 물건들은 콜렉터들에게 팔거나 이를 필요로 하는 타국에 판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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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중량: 2.5톤
전체길이:
17 m
생산댓수: 약 5대
운용인원: 300명(운반), 8명(조작)
최대사거리: 약 30 ~ 40미터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개발과 구상이 끝났지만 정작 실전에서의 대량사용은 한참 지연이 된 화염방사기는 처음 참호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을때 병사들에게 공포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실제 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능을 떠나 불을 뿜는 병사라는 이미지는 화염방사기가 확실히 적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심리적인 장점과는 다르게 이 물건은 대량으로 쓰여도 좋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화염방사기가 같은 시기 처음 대량으로 쓰여 군 개인화기 개발사에 큰 영향을 미친 기관총과 다르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에는 화기의 한계점이 큰 몫을 차지하였습니다. 보병이 휴대할 수 있게 만든 화염방사기는 발사시간이 굉장히 짧거나 아니면 사거리가 짧은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고 해서 발사 지속시간과 사거리를 늘린 물건을 만들자니 보병 여러명이 이를 운송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고 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1차대전 당시 등장한 리벤스 대형 화염방사기는 이러한 보병용 화염방사기의 성능상 한계를 해결하고자 등장하였습니다.


영국군 공병 출신 장병인 윌리엄 하워드 리벤스(William Howard Rivens)는 1차대전 당시 뛰어난 아이디어 제공으로 인해 화학전과 화염방사기 개발에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만든 리벤스 대형 화염 방사기는 사거리나 성능을 희생시켜 보병용 화염방사기를 만들 바에는 차라리 대형 화염방사기를 만들어 제대로 된 성능을 구현하도록 하자는 발상을 통해 개발되었고, 실제로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개인단위로 운반이 불가능하게 커진지라 300명의 병사들이 전선으로 분해된 화염방사기 부품을 나르고 8명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이를 조립 및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시제품 4대가 1916년 처음 솜 전투 당시 참호간의 처음으로 시연을 보일 예정이였지만 독일군의 포격으로 인해 4대중 2대가 부서져 버린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4대중 온전히 남아있던 2대는 공세시작 직후 사용이 되었고,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배치된 지역은 영국군이 적은 사상자만으로 최전선 돌파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운반하기 힘든 만큼 제 몫을 해냈다는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요.


솜 전투 이후 1917년 벨기에 딕스마이데(Diksmuide)시 근처 공세 당시에도 쓰인 기록이 존재하는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그 성능이 입증되기는 했지만 참호전에서 쓰려면 무인지대(No Man's Land, 적군과 아군 참호간의 평지를 지칭하는 단어) 아래로 화염 방사기를 묻을 수 있는 터널을 파야한다는 번거로움과 더불어 실제 성능이 대량생산을 해야할 수준으로 보이지 않다는 평가에 의해 솜 전투와 딕스마이데시 공세 이후 생산 및 사용이 중단되었습니다(이후 버려진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2010년 5월 영국에서는 부품을 모은 몇몇 전문가에 의해 실제 성능이 구현된 모델이 재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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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98 kg
전체길이: 732 mm(개머리판 펼쳤을때) / 552 mm(접었을때)
총열길이: 198 mm
장탄수:  28발 박스형 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작동방식: 단순 블로우백



세계 1차대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고 실전에서 호평을 받은 기관단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2차대전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관단총이라는 범주에 대한 성능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벌어지는 거리가 일반적인 소총이 가지고 있는 사거리보다 훨씬 짧았다는 점은 근접전에서의 화력만큼은 소총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기관단총이 상대적으로 위력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연합군이건 추축군이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자국산 기관단총을 개발하거나 타국의 기관단총을 배껴서 쓰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하였습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라는 위치에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위상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호주는 영연방 소속 국가중 하나였고, 태평양 전선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본군에 맞써서 싸워야 하는 호주군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기관단총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호주군은 영연방 소속이라는 특징을 살려 영국군이 그 당시 쓰고있던 스텐 기관단총을 받아서 쓰는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만, 이 당시 영국군은 스텐 기관단총을 영연방 소속 국가들한테 대량으로 지급할 만큼 넉넉한 병기사정을 가지고 있질 않은지라(애초에 스텐의 개발이유가 영국군 병기부족의 결과였습니다), 호주군은 어쩔 수 없이 자국산 기관단총에 대한 개발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텐 기관단총(오스텐은 "오"스트레일리아제 "스텐"을 줄인 명칭입니다)은 호주군이 쓸 기관단총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개발되었지만 호주군에 맞춰서 개발되는 신형 기관단총이 아닌, 이미 존재하고 있는 화기들의 특징이나 외관상 구조를 최대한 많이 참고하여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오스텐 기관단총이 개발될 당시 참고가 된 기관단총은 영국군이 썼던 Mk.II 스텐과 독일군이 사용한 MP-40로 알려져 있는데, 이 화기들로부터 물려받은 특징은 아래와 같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텐으로부터 받은 특징: 총열, 리시버(혹은 총몸), 방아쇠 구조
MP-40로부터 받은 특징: 접이식 개머리판, 노리쇠, 공이, 그리고 왕복 용수철용 덮개


오스텐 기관단총은 MP40와 스텐의 특징을 꼽아 만들었지만 단지 카피작이라고 보기에는 독특한 특징들도 포함하고 있었던걸로 유명합니다. 이 화기의 독자적 특징이라면 반동제어를 위한 수직 손잡이가 기본적으로 부착되어 있다는 점(그리고 이 손잡이 안에는 청소용 도구가 수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몇몇 부품은 다이 캐스팅 주조방식을 사용하여 생산성은 물론 생산단가도 낮췄다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것도 모자라 개량형까지 개발되었던 오스텐 기관단총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오스텐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총 자체의 성능이 너무 나빴다기 보다는 같은 시기 호주군을 위해 만들어진 오웬(Owen) 기관단총의 성능이 너무 높게 평가되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오웬 기관단총은 정글전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아무런 고장 없이 잘만 작동해주는 놀라운 신뢰성을 보여준 반면에 오스텐 기관단총은 그런 인상을 심어주진 못한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호주군의 오웬 기관단총 제식 채용으로 인해 더이상 구매의사를 보이는 나라가 없어진 오스텐은 2만정이 안되는 생산량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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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7.92 x 57 mm 마우저
전체무게:  60 kg
급탄방식: 드럼탄창
발사속도:  분당 1,600발



가스트 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해당 화기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쓰이기 위해 개발된 중기관총입니다. 가스트 건은 일반적인 기관총들과 다르게 두개의 총열을 하나의 몸통에 연결시킨 뒤, 초탄이 발사될때 나오는 반동으로 다른 총열에 있는 탄약을 급탄하는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작동방식 덕분에 일반적인 단총신 기관총에서는 보기 힘든 분당 1,600발이라는 높은 수준의 발사속도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이 발사속도는 가스트 건이 일반적인 박스형 탄창으로는 지속사격을 할 수 없게 하는 한계점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스트 건에는 특별히 180발짜리 드럼탄창이 각 총열마다 1개씩 부착되도록 설계가 되었는데, 부피나 무게에도 불구하고 숙련된 사수의 경우 드럼탄창을 교체하는데 드는 시간이 몇초밖에 걸리지 않을만큼 쓰기가 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16년 1월 칼 가스트라는 이름의 기술자에 의해 처음으로 선보여진 가스트 건은 프로토타입이 개발될 당시 Gast - Maschinengewehr Modell 1917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1917년 독일군 관계자들에게 처음 선보인 이후 놀라운 성능 덕분에 3천정의 주문량(각 총기당 10개씩 배치될 약 3만개의 드럼탄창과 정비용 예비부품 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생산 초기당시 예측으로는 첫 100정의 가스트 건이 1918년 중순에나 배달되고, 이후 매달 500정의 가스트 건을 배달하는것으로 예측이 되었었는데, 생산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짐에 따라 독일군은 기존 3천정 이외에도 1918년 9월까지 추가로 6천정의 가스트 건을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60 kg라는 무지막지한 무게 때문에 지상용이 아닌 항공기 탑재용으로 주로 쓰인 가스트 건(실제로 총열 사이에 광학 조준기가 장착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은 간단한 작동방식과 디자인 덕분에 독일군에게 쓰였지만 정작 이 화기에 대한 존재는 잘 알려지질 않았습니다. 이는 독일정부가 1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이 화기의 존재를 숨기려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연합국 조사단이 1921년 쾨니히스베르크(구 동프로이센의 수도) 근처에서 가스트 건과 탄약이 보관된 상자를 발견하기까지 가스트 건의 정체는 비밀리에 숨겨져있었다고 합니다.

가스트 건에 대한 정보와 실물을 입수한 미군은 해당 화기가 실제로 작동을 하는것은 물론 군용으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내구성이 좋다는 평가르 내렸습니다만,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기관총들을 대체할 만큼 가스트 건의 성능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군에 의해 제식으로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밖에도 가스트 건은 7.92 마우저탄이 아닌 13 x 92 mm TuF탄을 사용하는 버전(Gast-Flieger MG)에 대한 개발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만, 프로토타입 이후 실제로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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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의 민수용 화기 시장은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하고, 이로 인하여 이 시장 안에서 판매를 하려는 개인화기 개발/생산회사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미국 내 개인화기 시장을 충족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종류, 혹은 양의 개인화기들이 오랜기간동안 유통되었다는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 비록 많은 양의 개인화기가 존재한다 한들 총기의 가격은 아무나 원할때 곧바로 살 수 있을 만큼 값이 싸지만은 않았습니다. 개인화기가 비싼 가격을 자랑하게 된 상황은 여러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이유를 떠나서 권총같은 물건에 수십만원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은 어딘가에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저렴히 구입할 수 있는 화기들에 대한 요구도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세러데이 나잇 스페셜("토요일 특별 할인가"로 직역이 가능합니다)은 이러한 미국 내 개인화기 시장의 상황을 기반으로 개발된 화기들을 지칭하는 말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값이 싼 총기"를 의미합니다. 값이 싼 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을 쓸 수 있지만, 세러데이 나잇 스페셜들은 대부분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가진것으로 유명했습니다:


1) 녹는점(혹은 용해점)이 낮아 사용 및 변형이 쉬운 물질(대표적으로는 아연 다이캐스트)를 사용한다
2) 총기에 큰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저위력의 탄약(.22 LR이나 .25 ACP)을 주로 쓴다
3) 사용 재료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작게 만들어진다
4) 생산단가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단순하고 간단하게 설계된다

위에서 나열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세러데이 나잇 스페셜 총기(줄여서 SNS)들은 가격도 싸고 다루기도 쉬우면서 구하는것이 다른 총기들보다 상대적으로 쉽다는 장점으로 인하여 1970년 초, 중반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SNS 화기들의 인기에 반해 항간에서는 이러한 화기들을 사용할 시 사수가 부상을 입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만, 미국 법률의 구조상 총기를 사용하다 사수가 큰 부상을 당하면 총기회사가 이를 물어줘야 하는것이 일반적인지라 총기회사들은 총기를 최대한 싸게 만들게 하되 사수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준까지 성능을 타협을 보았고, 이 덕분에 SNS 화기들은 성능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할지는 몰라도 일단은 안전성에서는 합격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1970년대 높은 인기를 자랑한것과 다르게 SNS 화기들은 그리 순탄한 길을 걷지는 못하였습니다. 저가의 총기를 많이 유통시키는것은 범죄자들이 총기를 쉽게 습득할 수 있게 만든다는 우려에 따라 1968년 미 의회는 총기규제(Gun Control Act of 1968)를 통해 해외에서 저가 권총들이 미국 내로 수입되는것을 전면 금지하였고, 연방법 이외에도 총기규제가 심한 주들에서는 이러한 총기들에 대한 생산이나 거래, 혹은 사용 자체를 금지시키기도 하였습니다(1968년 이전 당시 SNS 화기로 규정되는 총기들을 판매하던 몇몇 해외 회사들은 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생산공장을 미국 내로 이전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와 다르게 SNS 화기들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반박하는 편도 존재하였습니다. 총기규제 반대측은 비싼 총기만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것은 인종차별보다 더한 차별이라는 반대의견을 내기도 하였고(실제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하던 19세기 말 미국에선 노예제도에서 해방된 흑인들이나 가난한 백인들이 싼 가격의 권총을 구입하는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SNS 총기를 통한 미국 내 총기 관련 사고율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식보다 한참 낮다는 것을 예로 들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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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357 매그넘, .38 스페셜
전체무게: 0.9 kg
총열길이: 102 mm, 153 mm
장탄수: 6발
발사방식: 더블액션



MP412 "REX"는 러시아에서 개발 및 생산이 된, .357 매그넘과 .38 스페셜을 사용할 수 있는 더블액션 리볼버입니다. 현대에 등장하고 있는 리볼버들이 거의 대부분 스윙아웃 방식(실린더가 좌측으로 튀어져 나오지만 총에서 떨어지지는 않는 구조)를 사용하는것과 반대로 MP412는 중절식 장전방식을 활용하는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해당 리볼버는 중절식 장전방식을 사용할 시 탄피를 실린더에서 자동으로 배출시킬 수 있는 장점을 구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다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이 자동 배출방식을 사용하지 않게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REX(Revolver for EXport, 수출용 리볼버의 약자)의 경우 IZHMECH에 의해 1990년대 후반 개발 및 생산이 진행되었지만 실제로 많은 수량이 판매가 되지는 못하고 생산이 중단된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러시아 내에서는 중절식 리볼버보다 스윙아웃식 리볼버가 더 내구성이 좋고 쓰기가 편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였기 때문에 REX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고, 러시아제 리볼버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가질만한 미국 시장에서는 1990년대 보리스 옐친(그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빌 클린턴(그 당시 미 합중국 대통령) 사이에 이루어진 양국간의 무기수출 금지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수입이 되는것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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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블로우백이라는 작동방식을 사용하는 자동화기들은 노리쇠가 격발시 후퇴하는 거리와 노리쇠의 질량으로 발사속도가 결정됩니다. 이로 인하여 노리쇠가 가볍고 왕복거리가 짧을 경우 의도치 않게 발사속도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실제로 소형화된 기관권총이나 기관단총들의 경우 의도하지 않았어도 발사속도가 분당 1천발을 가뿐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당 1천발이 넘어가는 수준의 발사속도를 가진다는 것은 근접전에서 화력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하지만 이와 동시에 반동제어 및 명중률 유지가 굉장히 힘들다는것과 탄창에 있는 잔탄을 너무 빨리 소모한다는 단점을 초래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소형화된 기관권총이나 기관단총들은 대부분 근접전에서 총알을 말 그대로 "뿌리는" 용도로 쓰일 수 밖에 없다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케이스도 존재하기는 하는데, 냉전당시 체코에서 제작 및 판매가 된 vz. 61 스콜피온 기관단총이 이러한 소형화 자동화기들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높은 발사속도)를 줄여보고자 새로운 방식을 채용한 대표적인 화기중 하나였습니다.


vz. 61 기관단총의 내부구조(반동제어 관련 부품은 권총 손잡이에 부착)



보병용 제식소총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원래는 특수부대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이후 차량 승무원이나 장교들에게도 지급)에게 지급하는것을 목적으로 개발된 화기인지라 스콜피온 기관단총은 개발 초기부터 최대한 작게 만들어져야 했고, 이 때문에 프로토타입의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서 시험사격을 했을시 분당 발사속도가 1천발 수준으로 나오는것으로 집계되었었습니다. .32 ACP라는, 비교적 반동이 약한 탄약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빠른 발사속도를 가지는것이 용납되는것은 아니였던지라 명중률 향상을 위해 vz. 61은 모종의 조치가 필요했는데, 개발자들이 이를 위해 도입한것은 바로 발사속도 저하를 위한 신형 메카니즘의 탑재였습니다.


기존의 스콜피온 기관단총의 부피를 증가시켜 휴대성을 떨어트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권총 손잡이에 설치되도록 설계된 vz. 61의 발사속도 저하 메카니즘은 스프링과 이와 맞물려 움직이는 피스톤, 그리고 이를 총의 노리쇠와 연결해주는 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콜피온이 이 구조를 통해 발사속도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래의 작동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초탄 격발로 후퇴된 노리쇠는 스프링 탄성으로 고정된 고리에 걸려 후퇴된 상태로 정지  

2) 관성과 후퇴된 노리쇠로 인하여 권총 손잡이에 부착된 피스톤이 권총 손잡이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  

3) 권총 손잡이 맨 아래부분을 강타한 피스톤은 스프링의 탄성으로 위로 상승  

4) 제자리로 돌아온 피스톤은 스프링의 탄성으로 고정되어 있던 고리를 헤제  

5) 고리가 벗겨진 노리쇠는 앞으로 다시 전진하면서 차탄 급탄을 완료 




권총 손잡이 내 피스톤이 움직인



권총 손잡이 내 피스톤이 움직이기




권총 손잡이에 부착된 발사속도 제하 메커니즘을 장착한 vz. 61 스콜피온 기관단총은 원하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해당 메커니즘이 장착되기 전에는 분당 1천발로 사격하던 물건이 장착 이후 분당 850발 수준으로 줄어든것은 확실히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을 한다는것을 알려주는 지표라 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하여 스콜피온 기관단총은 자동사격으로 발사하는 상황에서 사수가 반동제어를 하는게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및 본문출처: Forgotten Weap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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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주력 기관총으로 쓰인 MG-42는 그 이전까지 쓰여왔던 기관총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이나 효율성을 입증하였고, 이는 다양한 국가들이 종전 이후 MG-42의 디자인을 강하게 빌린 다목적 기관총(MG3이나 CETME Ameli)이나 디자인적인 공통점은 없지만 같은 컨셉을 기반으로 한 물건(FN-MAG)을 개발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주적으로서 큰 활약을 보였던 미국도 마찬가지로 2차대전 당시 MG-42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지라 종전 이후 이를 기반으로 M60이라는 새로운 기관총을 개발 및 운용하게 되었는데, 미국에서의 MG-42의 영향력은 M60에서 그치질 않았습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의 개인화기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던 인물들 중에는 조지 하이드(George Hyde)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 기술자는 FP-45 리버레이터 권총이나 M3 그리스건 개발에 기여할 만큼 나름 비중이 있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MG-42를 처음 접한 이후 이 화기에서 쓰이는 몇가지 특징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이후 자신이 개발하는 화기에 이를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물로 나온것이 바로 M1944 하이드 카빈이였습니다.




하이드 카빈은 MG-42의 카피판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이 화기에서 따온것이 분명한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 M1944 카빈이 가지고 있던 가장 대표적인 MG-42용 특징은 바로 총열 방열구멍과 총열 교체 디자인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근거리 교전이라는 점에서 쓰이는 카빈(혹은 기관단총)이라는 특성상 사진에 나오는 수준의 방열구멍이나 총열 교환 디자인을 굳이 써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일단은 그 당시 미국인 기술자 조차도 MG-42같은 화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지요.

M1944 하이드 카빈은 MG-42의 특징을 몇개 빌려오긴 했지만 무조건 카피만 한 화기는 아니였습니다. .30 카빈탄을 사용한지라 M1 카빈과 잦은 비교가 되었지만 훨씬 더 명중률이 높았다고 알려져 있었고, 탈부착식 탄창(20/30발)을 사용하여 전자동 사격이 가능했다는 점은 M1944 카빈이 단순한 기관단총보다는 2차대전 당시 처음 등장하는 돌격소총이라는 컨셉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지요.

하이드 카빈은 정확히 어떻게 개발되었고, 어떤 절차를 거쳐 탄생한 물건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철판 프레스 방식을 대폭 채용한 물건 답게 생산하기도 쉽고 내부구조도 단순하였지만 이미 미군은 이러한 개인화기들에 대한 채용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M1944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질 않았고, 결국 개발자였던 조지 하이드가 1960년대 초반 사망함에 따라 역사속으로 사라진 화기가 되었습니다.

[제원]
사용탄약: .30 카빈
구경: 7.62 mm
작동방식: 블로우백
발사속도: 분당 600발 ~ 1200발
급탄방식: 20발/30발 탈부착식 탄창



본문 및 사진출처: Forgotten Weap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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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5.45 x 39 mm(AB-5.45), 7.62 x 39 mm(AB-7.62), 7.62 x 54 mm R(AVB-7.62)
전체무게: 3.6 kg(AB-7.62), 3.9 kg(ABV-7.62)
전체길이:  960 ~ 1,000 mm(개머리판 펼쳤을때),  710 ~ 750 mm(접었을때)
총열길이: 415 ~ 455 mm
장탄수: 10발, 20발, 30발 탄창
발사속도: 분당 750발



1차,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인 보병용 제식 소총들은 오늘날 자주 쓰이는 돌격소총용 소총탄들보다 구경도 크고 장약량이나 탄피라는 점에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는, 말 그대로 "풀 사이즈" 탄환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이즈의 탄약을 쓰게 된 이유에는 역사적 이유(흑연화약을 쓰는 시절의 탄약과 비교했을때 이런 소총탄들은 이미 구경이 상당히 작아져 있었던 것이라는 점)와 실전적 이유(그 당시 만들던 소총들의 경우 반자동 아니면 단발로 쏘는것이 대부분이였던지라 단기간 화력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사거리와 대인 저지력/관통력을 높인 결과물)이 있기 때문이였다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소총탄들은 돌격소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화기가 등장함으로서 보병 제식용 소총탄이라는 자리에서는 퇴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돌격소총의 등장으로 소구경 고속탄이 대세화 되었고, 그렇지 못하였던 풀 사이즈 소총탄들은 자연스레 기관총이나 저격총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소총탄들이 더이상 쓸만한 가치가 없어서 도태된것만은 아니였습니다. 풀 사이즈 소총탄들은 탄도학적이나 사거리적으로나 돌격소총탄들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을 보이고 있었지만 자동사격으로 발사할 시 이것에서 나오는 반동을 충분히 상쇄시켜줄 만한 소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지 않게 된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AVB 시리즈는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보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습니다.


AVB 소총 개발의 중심에는 아나톨리 F. 바리셰프(Anatoly F. Baryshev)라는 기술자가 존재했습니다. 아나톨리는 국가의 기술적, 혹은 자원적 지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AVB 소총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였는데(1969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26년이라는 기간이 소요),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것은 "풀 사이즈 소총탄을 자동사격으로 문제없이 사용이 가능한 소총"의 구현이였던지라 기존의 AK-47와 같은 소련군용 제식 돌격소총의 구조적 특성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 보다는 AK의 디자인은 최대한 유지하되 내부구조를 완전히 바꾸는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AVB 소총이 그 당시 AK시리즈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인건 해당과 같았습니다:

1) 레버 지연방식의 블로우백: 레버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은 노리쇠가 초탄 격발직후 후퇴되는 과정을 레버를 통해 지연시키는 방법으로서 비슷한 작동방식인 단순 블로우백이 노리쇠의 질량과 스프링의 탄성으로 후퇴속도를 조절하는것과 다르게 제대로 설계가 된 레버만 존재한다면 가벼운 노리쇠로도 충분히 안정히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가스 작동방식으로 발사되는 소총들과 비교했을때 훨씬 단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2) 오픈볼트(개방형 노리쇠): 오픈볼트 구조는 노리쇠를 포함한 뭉치가 총몸의 후방에 고정되어 있다가 방아쇠를 누르면 앞으로 전진하면서 격발을 하는 방식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이를 사용할 경우 열이 잘 받을 수 있는 약실을 쉽게 식혀준다는 장점과 총 자체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대폭 절감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버 지연방식과 오픈볼트 격발구조는 이미 오래전에 개발되었던 작동구조들이였고 AVB 소총은 이러한 방식을 강하게 참고하여 개발된 소총인지라 기존의 개인화기들과 구조적이나 성능적으로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아야 하는것이 정상이였습니다. 하지만 빠른 시간내에 개발되어 군용으로 채택되던 AK나 다른 군용 소총들과 다르게 AVB는 아나톨리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연구를 하면서 개발을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요.

아나톨리의 장인정신이 만들어 낸 AVB-7.62 전투소총은 1980년대 초반 구 소련 군 관계자들에게 처음으로 시연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소련군 관계자는 물론 GRU같은 특수부대 조직이나 KGB같은 사법조직들의 주요 인원들도 참관하던 이 자리에서 시연된 AVB-7.62는 원하던 풀 사이즈 소총탄에 대한 반동제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던 특수부대 관계자 다수는 AVB 시리즈 소총의 가능성을 보고 이에 대한 채용에 큰 관심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평과 다르게 AVB 소총은 결과적으로 소수라도 군용으로 채택되는 행운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등장하였던 전투소총, 아니 21세기에 등장하고 있는 그 어떤 전투소총들보다도 풀 사이즈 소총탄을 자동으로 사격하는 면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능을 구현했지만 오픈볼트 구조로 작동되는 소총들의 고질적인 단점인 내구성 문제(노리쇠가 후퇴된 채로 사격되기 때문에 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잔고장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와 오발사고의 위험성(마찬가지로 오픈볼트 방식으로 인해 떨어트렸을 경우 스스로 격발이 되는 상황이 가능하다는 점)은 AVB 소총이 반동제어라는 특성만 가지고는 군용으로 채택될 만한 자격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던거라 할 수 있지요.

P.S) AVB 시리즈 소총은 90년대 초반 소련 붕괴로 인해 더 이상 자국 내 채택 가능성이 없어지게 되자 체코로 넘어가 CZW 시리즈로 다시 탄생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쪽에서도 법적 분쟁으로 인해 더이상 판매가 불가능하게 된 AVB 소총은 현재 생산이나 추가 개발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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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5.45 x 18 mm MPT
전체무게: 960 g
전체길이: 195 mm
총열길이: 125 mm
장탄수: 24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1,800발

 

냉전당시 소련의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즈가 자본주의 연합군 진영의 후방으로 침투한 뒤 교란작전을 벌여 군수지원 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시작된 PDW(Personal Defense Weapon, 개인방어화기) 개발 프로젝트는 냉전이 종식된 이후 더이상 군용으로 쓸 일이 없어졌기 때문에 사장될 운명에 처했었습니다만, 방탄복 관통이 가능하고 반동이 낮은 기관단총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화기의 특징 덕분에 대테러부대나 특수부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 말 그대로 죽다가 살아난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PDW를 논할 때에는 대부분 자본주의 진영에서 개발된, P90/MP7와 같은 상징적인 PDW들을 이야기하는것이 대부분이지만 놀랍게도 공산주의 진영에서도 자본주의 진영과 마찬가지로 PDW에 대한 관심은 비슷한 수준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토군 진영이 스페츠나즈에 대한 두려움으로 PDW에 대한 개발을 시작한것과 다르게 이쪽은 방탄복 관통이 가능한 기관단총 즈음으로 PDW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냉전당시에는 그저 탄약이나 이를 사용하는 프로토타입 개발에 그쳤지만 냉전이 종식된 이후 경찰 및 군사조직들이 세분화 됨에 따라 이러한 무기에 대한 판매가 구 소련 내에서 가능할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다양한 러시아 회사들이 PDW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데, OTs-23 "드로틱(Drotik)"도 이러한 녀석들중 하나였습니다.


대부분의 PDW들이 개발 초기에 방탄복 관통이 가능하고 반동이 적게 나오도록 설계된 "소구경 고속탄"을 먼저 개발하는 절차를 밟는것과 다르게 OTs-23는 이미 냉전 당시 PDW용으로 개발된 신형 권총탄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이 신형 화기 개발에 쓰도록 결정된 5.45 x 18 mm MPTs (제식명: 7N7) 탄약은 1970년대 초반 PSM 자동권총을 위해 개발된 신형 탄약으로서 케블라 소재의 섬유질을 약 30장에서 45장까지 관통하는것은 물론 방탄복이 아닌 재질에 대한 관통력도 어느정도 인정해줄만한 수준이였기 때문에 PDW용으로서는 안성맞춤인 물건이였다 할 수 있는데, 특히 PSM 자동권총은 KGB같은 사법조직에서 구 소련시절 당시 큰 인기를 끌은지라 이미 해당 탄약에 대한 시장이 구축되어 있다는 점도 OTs-23가 이 탄약을 선택한 주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OTs-23가 서방측 PDW들과 가장 큰 차이를 둔 것은 바로 화기 디자인에 있었습니다. 서방측 PDW들은 기관단총의 것을 모방하고 개발한지라 휴대하기는 편할지라도 본격적으로 숨기고 다니는, 호신용이라는 면에서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한 녀석이라 할 수 있는데, OTs-23은 군용으로 쓰이도록 개발된것은 맞지만 성능보다는 휴대성에 더 큰 초점을 두고 개발되었던지라 기관단총 디자인보다는 기관권총의 디자인을 따라가도록 설계되었지요. 하지만 기관권총의 대표적인 단점인 자동사격시의 명중률을 보완하기 위해 분당 1,800발의 속도로 발사되는 OTs-23 기관권총은 정확도 향상을 위해 3점사와 단발 사격만 가능하게 설정이 되었고, 총구에도 소염제동기를 설치하여 최대한 반동제어가 쉽도록 구성되었습니다.


OTs-23 드로틱 기관권총은 이러한 개발과정을 통해 1990년대 초반 출시가 되었지만 실제로 많은 수량이 생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모종의 이유로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5.45 x 18 mm 탄약이 다른 PDW들의 탄약과 마찬가지로 대인저지력이 높질 않아 특수부대나 경찰조직에서 선호하질 않아서 그랬다는 가설과 이후 개발 및 생산이 시작된 OTs-33 뻬르냐끄 기관권총의 개발에 도움이 되도록 개발된, 말 그대로 "실험작"이라는 가설이 존재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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