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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 전차 리뷰



2장. M3 리/그랜트, 북아프리카의 1이닝짜리 구원투수. 


 

임시방편 전차의 개발, M3 리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9월, 미군이 가진 중(中)전차라고는 M2 경전차를 대형화한 M2 전차뿐이었고, 이는 그나마 32mm 전면장갑에 37mm 포 하나에 기관총 8개 달린 보병지원전차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개발시기에는 뭐 그럭저럭 굴릴 수 있을 수준은 되었지만, 미군은 그들의 잠재적 적국이 될지도 모를 독일의 3호전차와 4호전차의 전투력에 큰 충격을 받았고, 보다 대구경포를 장착한 전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1939년 당시 미국의 주력전차였던 M2A1. 2차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 8월에야 생산이 시작되어 총 1000량이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보다 강력한 전차의 필요성을 깨달은 미군의 관심이 끊어지면서 M2와 M2A1을 합쳐 고작 109량 정도만 생산되고, 훈련용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독일이 사용한 4호전차의 75mm 전차포에 주목한 미 육군은 자국의 야포를 개량해 만든 75mm M2 L/31 전차포를 재빠르게 개발해냈지만, 이를 M2A1의 작디작은 포탑에 우겨넣기에는 공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결국 미 육군 병기국은 M2A1을 포기하고 75mm 전차포를 수용가능한 대형포탑을 갖춘 M4 셔먼의 개발에 착수했지만, 미군에게는 그 동안 전쟁에 투입할 다른 전차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1940년 6월에 병기국은 임시방편으로 M2A1의 차체에 75mm 전차포를 장착한 실험전차였던 T5E2와 M2A1의 차체를 참고해 차체 우측 부분에 75mm 전차포를 우겨넣은 구조의 전차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1940년 8월 공식적으로 시작된 M3 전차의 개발은 록아일랜드 조병창과 크라이슬러 사의 협력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1941년 3월 설계가 완료되고 시제차량도 생산됩니다. 완성된 시제차량의 모습은 좋게 말하자면 특이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기괴한 모양이었습니다.



M3 리의 초기 양산형, M2A1에 75mm 끼우고 기관총탑 하나 얹은 못생긴 전차였지만, 셔먼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미군이 굴릴 전차라고는 스튜어트 경전차와 이 리 전차 정도였지요. 다포탑에 리벳투성이였지만, 어차피 미군은 리보다는 후계기인 M4 셔먼에 더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에, 리의 결함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주포인 75mm M2 L/31 전차포는 차체 우측에 고정식으로 장착되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포를 끼워넣는 처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체 전고도 높아졌고, 여기에 기존 M2에도 있던 37mm M5 L/53.5 부포 포탑, 전차장 큐폴라의 기관총탑까지 붙이면서 완성된 전차는 영락없는 다포탑전차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육중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항공기용 엔진이었지만 400마력에 달하는 컨티넨탈 사의 R-975-EC2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고 M4에도 사용된 우수한 전륜과 궤도, 서스펜션을 채용한 덕에 기동력도 노상시속 40km로 양호했습니다.
M3의 단점은 다포탑전차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다수의 승무원과 방어력 문제였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주포와 부포에 사수와 장전수가 따로 달라붙다 보니 승무원이 7명으로 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후 영국 사양의 그랜트에서는 전차장이 무전을 맡으며 승무원이 한명 줄게 되지만, 이런 다수의 승무원 체제는 전차 내부의 명령 전달 효율을 떨어뜨리는 구시대적인 약점이었습니다. 전면장갑도 스튜어트보다 별로 나을 바가 없는 50.8mm에 불과했기 때문에 독일군의 50, 75mm 대전차포나 3호전차, 4호전차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질 못했고, 리벳 결합 방식은 승무원들에게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75mm 전차포를 사용 가능하다는 이점과 더불어 이전 M2보다는 확실히 나은 전차였고, 뒤이어 나올 M4 전차를 믿었던 미군은 M3의 단점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본래 미군은 M3에 많은 기대를 걸지는 않았기 때문에 M4 전차가 개발될때까지만 소량생산할 요량이었지만, 현실은 미군이 생각하는 대로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북아프리카의 구원투수, M3 그랜트


미군이 M3 전차의 개발을 마무리짓고 본격적으로 생산할 무렵, 1941년 5월 북아프리카에서는 마틸다와 크루세이더를 굴리던 영국군이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과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야심차게 감행했던 배틀액스 작전을 말아먹으며 한참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똥.덩.어.리 2파운드 전차포에 질려버린 영국군에게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이 시작되면서 M3 전차는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이 무렵 독일과 영국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미국의 생산시스템이 발동걸리기 시작하면서 M3 전차의 생산량은 1941년 4월에서 1942년 12월까지, 개량형을 합치면 총 6258대에 달합니다!


3.jpg
한참 M3을 찍어내는 미국의 군수공장. 천조국이 막 쇼 미 더 머니 치트를 치기 시작한 무렵입니다!


영국군용으로 랜드리스된 M3전차는 영국군이 요구하는 사양에 맞게 포탑이 일부 개량됩니다. 포탑 후방에 무전기를 탑재하기 위해 37mm 포탑이 좀더 넓어지고, 불필요한 기관총탑도 폐지되었습니다. 또한 이 무렵 M3 전차의 주포가 75mm M3 L/40 전차포와 37mm M6 L/53.5 전차포로 교체됩니다. 영국군은 자신들에게 공여된 M3 전차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최고의 명장이자 훗날 미국의 대통령에까지 올랐던 율리시스 그랜트의 이름을 본따 M3 그랜트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이후 영국군은 미군 사양의 M3 전차도 남군의 최고의 명장이었던 리 장군의 이름을 딴 M3 리라고 부르게 됩니다.



영국군 사양의 M3 전차. 영국군은 그랜트라고 불렀습니다.


 


영국형 M3 전차에 이름이 붙은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입니다. 장군으로서는 대성공했지만, 정치와 사업에서는...;;;


 


미군 사양의 M3 전차. 영국군은 리라고 불렀습니다. 



 


미국형 M3 전차에 이름이 붙은 로버트 E. 리 장군입니다. 라이벌이었던 리 장군과 그랜트 장군은 몇 가지 점에서 묘한 대치를 이루지요. 노장군과 젊은 장군, 남군과 북군, 초반의 선전과 후반의 승리, 백발과 흑발, 패장과 승장......



리와 그랜트를 비교하기 좋은 사진입니다.



M3 그랜트의 데뷔무대는 1942년 5월 가잘라 전투였고, 이후 그랜트의 75mm 주포가 영국군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였던 4호전차들을 격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M3 그랜트는 영국의 기갑전력의 주요 전차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비록 75mm 포가 고정식인지라 한계는 있었지만, 자신들의 전차에 달린 주포의 두 배 가까이 커진 대구경포는 지금까지 (마틸다를 빼면)얇실한 장갑과 약한 전차포로 독일군을 상대해야 했던 영국군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랜트의 주포는 독일 전차들에 유효함은 물론이고, 2파운드 포와는 달리 유탄이 발사 가능해 지금까지 골칫거리였던 독일군 진지와 88mm 고사포에도 대처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M3 그랜트는 영국에 총 2653량이 공여되면서 영국군이 크롬웰과 처칠을 개발하고 셔먼을 지원받을 때까지 그들의 주력전차 중 하나로서 쓰였습니다. 
영국군과 기타 국가에 공여되는 과정에서 M3 전차는 M3A5까지 여러 번의 개량을 겪지만, 엔진을 교체하거나, 리벳 차체를 주조, 용접형으로 바꾸거나, 약점이었던 양쪽 탈츨 해치를 막아버리거나, 서스펜션의 개량 등의 소소한 개조뿐이었습니다.
1942년 11월 횃불 작전을 계기로 미군이 북아프리카 전역에 끼여들면서 기존의 미군용 M3 리도 미 제 1 기갑사단과 함께 전장에 나타나지만, 더 이상 전장은 M3 그랜트와 리에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빨라도 너무 빠른 M3의 강판


1943년 독일군에는 이미 장포신의 4호전차와 소수의 6호전차 티거가 지급되었고, 이들은 이미 시대에 뒤진 리 전차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전차전술 쪽에서 미숙했고 장비의 질에서도 밀렸던 미군은 독일군의 막강한 신형전차들의 등장과 잘 짜인 전술에 휘말려 큰 타격을 입고 말았고, 새로운 지휘관으로 조지 S. 패튼이 도착하고 나서야 상황을 수습하고 승기를 잡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이 무렵 리는 새로운 미군의 제식 전차인 M4 셔먼에게 그 위치를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사실 태생부터가 셔먼의 임시 대용이었던 리의 운명은 애초에 정해졌던 것이었습니다. M3 리는 이미 1941년 10월 대체 제식 병기(성능은 표준형에 뒤떨어지지만 대용은 가능)로, 1943년 4월에는 한정 제식 병기(훈련용으로 사용 가능)로, 1944년 4월에는 사용 부적당 병기로 점점 미군에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M3A2 리, 차체 상부와 포탑을 용접 결합으로 바꾸었지만, 이미 퇴물인 리로는 뭔 개조를 해도 어림없었습니다.



리 전차의 비극은 동부전선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디젤 엔진으로 개량한 M3A3과 M3A5가 1386량 소련에 공여되어 실전에 투입되었지만, 소련 적군은 이미 T-28과 T-35의 실패를 겪으며 다포탑전차 = 쓰레기라는 공식을 달달 외우고 있었고, 또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강력한 대전차화기들과 판터, 티거, 4호전차 H형들이 들끓는 1943년의 동부전선에서 리가 할 일은 없었습니다. 승무원이 7명이란 이유로 '일곱 동지의 관'이라는 조롱까지 듣던 리 전차는 이후 핀란드 전선으로 돌려져 그곳에서 독일이 쓰다 만 퇴물 전차들이나 상대하며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리와 그랜트 전차의 활약은 북아프리카에서 끝나고 만 것입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나, 동부 전선에서나 1943년을 기점으로 M3은 독일군의 조롱거리일 뿐이었습니다.



M4 셔먼의 등장과 함께 M3 리는 빠르게 연합군 속에서 사라져버리며 구원투수 노릇을 마무리하게 되지만, 노장군의 퇴역을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한 마지막 굵직한 활약이 있었습니다. 1944년 태평양 전선의 임팔 전투에서 영국군의 M3 그랜트를 지급받은 호주군이, 일본 3대 괴장 중 한 명인 무다구치 렌야의 엉터리 작전으로 정글에서 거지꼴이 된 일본군을 완전히 밀어버립니다.




한물 간 M3이라지만, 예전엔 건수께나 올린(?) 노장군 앞에서 일본군의 굴러다니는 닭장들은 그저 제물일 뿐!


M3 리/그랜트의 개량형과 파생형


전장터에서 구식화되어 그 가치를 잃은 리였지만, 그 차체에는 나름대로 새로운 삶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M3 전차의 포탑을 제거하고 차체 중앙에 105mm 유탄포를, 차체 우측 주포가 있던 자리에 M2 중기관총을 설치한 M7 프리스트가 3769량 생산되어 자주포로서 크게 활약했고, 이 역시 영국에 랜드리스되었습니다. 그리고 155mm 유탄포를 장착한 M12 GMC도 미국의 자주포로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언제 나온다고 장담 못하는 외전에서 알아봅시다 -ㄴ-(질질질...)



리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불도저 전차, M31 전차회수차량, 지휘전차 또한 만들어져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불도저 장착형 M3 리. 불도저 장착 셔먼과 비슷한 목적이었겠지요?



이쪽은 주포를 제거하고 목제 훼이크 포를 단 M31 전차회수차량입니다.



M3 리/그랜트는 미국의 M2A1이라는 구식 전차와 M4 셔먼이라는 현대형 전차의 과도기를 떠맡았던 임시용 전차로, 개발에서 양산까지 가장 빨랐던 2차대전 전차로 손꼽힙니다. 비록 1943년 이후로는 독일전차의 강화와 셔먼의 등장으로 전장에서 밀려나고 말았지만, 북아프리카의 구원투수로 활약하며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으니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M3 리 그랜트/스펙

중량: 27900kg
승무원: 7명(그랜트 6명)
엔진: Continental R-975-EC2 / 9실린더 / 400마력
속도: 도로: 40km/h
항속 거리: 도로: 193km
연료 용량: 662 liters
전장: 6.12m
전폭: 2.72m
전고: 3.12m
무장: 75 mm M2 L/28 전차포 or 75mm M2 L/31 전차포(차체)
& 37mm M5 L/53.5 전차포 or 37mm M5 L/53.5 전차포(부포 포탑)
& 3 x 7.62mm M1919A4
(2 x MG - 차체)
(1 x MG - 동축)
(1 x MG - 기관총탑)(그랜트에는 없음)
탄약: 75mm - 46발
37mm - 178발
7.62mm - 3100발
장갑 (mm/각도):

포탑 전면: 76.2/47
차체 전면: 38~51/0~45
포탑 측면: 50.8/5
차체 측면: 38/0
포탑 배후면: 50.8/5
차체 배후면: 38/0
포탑 윗면 / 바닥면: 22/90
차체 윗면 / 바닥면: 25/90(앞쪽), 13/90(뒷쪽)
포방패 : 76/0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 M72 Shot 76mm 62mm 54mm 42mm 33mm
APC M62 Projectile 63mm 57mm 51mm 45mm 40mm
 
 
AP M72 Shot (AP) - Armor Piercing
APC M62 Projectile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 M72 Shot 88mm 73mm 59mm 47mm 38mm
APC M62 Projectile 71mm 64mm 57mm 51mm 45mm
 
 
AP M72 Shot (AP) - Armor Piercing
APC M62 Projectile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s-medium/m3.asp
http://bbs.defence.co.kr/bbs/bbs.cgi?db=landarms&mode=pub&num=16470
http://www.ww2incolor.com/forum/showthread.php?t=3957
위키피디아 검색, 구글 내 이미지 검색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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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0 13:44

    2차대전에 사용된 전차중에 가장 못생겼다고 느끼는 녀석이지요

    굽시니스트님 책에 보면 이 녀석 대신 착한사람만 보이는 전차가 오히려 더 쓸모있다 나오는;;;;

  2. 2009.12.10 18:54

    솔직히 미군도 이녀석을 임시 땜빵용으로 봤으니, 말 다한 것이겠지요?

  3. 2010.09.21 13:12

    때..땜빵이지만
    도...독특하게 생겻다지만
    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전차중 하나이빈다 ㅇㅇ...

  4. 2012.02.04 13:59

    영화 사하라에서 처음 접하고 묘하게 생긴 외관 덕분에 잊혀지지 않았던 전차네요 ㅎㅎ

  5. 2012.04.17 19:35

    죄송 하지만 중간쯤에 영국군 앉아 있는 사진은 버마-고나의 사진이구 전차는 스튜어트 전차인듯합니다.

  6. 2012.04.23 07:36

    월드 오브 탱크라는 게임에서는 무려 망리라고 불립니다.. 포각이 최악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