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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98 kg
전체길이: 732 mm(개머리판 펼쳤을때) / 552 mm(접었을때)
총열길이: 198 mm
장탄수:  28발 박스형 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작동방식: 단순 블로우백



세계 1차대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고 실전에서 호평을 받은 기관단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2차대전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관단총이라는 범주에 대한 성능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벌어지는 거리가 일반적인 소총이 가지고 있는 사거리보다 훨씬 짧았다는 점은 근접전에서의 화력만큼은 소총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기관단총이 상대적으로 위력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연합군이건 추축군이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자국산 기관단총을 개발하거나 타국의 기관단총을 배껴서 쓰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하였습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라는 위치에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위상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호주는 영연방 소속 국가중 하나였고, 태평양 전선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본군에 맞써서 싸워야 하는 호주군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기관단총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호주군은 영연방 소속이라는 특징을 살려 영국군이 그 당시 쓰고있던 스텐 기관단총을 받아서 쓰는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만, 이 당시 영국군은 스텐 기관단총을 영연방 소속 국가들한테 대량으로 지급할 만큼 넉넉한 병기사정을 가지고 있질 않은지라(애초에 스텐의 개발이유가 영국군 병기부족의 결과였습니다), 호주군은 어쩔 수 없이 자국산 기관단총에 대한 개발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텐 기관단총(오스텐은 "오"스트레일리아제 "스텐"을 줄인 명칭입니다)은 호주군이 쓸 기관단총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개발되었지만 호주군에 맞춰서 개발되는 신형 기관단총이 아닌, 이미 존재하고 있는 화기들의 특징이나 외관상 구조를 최대한 많이 참고하여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오스텐 기관단총이 개발될 당시 참고가 된 기관단총은 영국군이 썼던 Mk.II 스텐과 독일군이 사용한 MP-40로 알려져 있는데, 이 화기들로부터 물려받은 특징은 아래와 같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텐으로부터 받은 특징: 총열, 리시버(혹은 총몸), 방아쇠 구조
MP-40로부터 받은 특징: 접이식 개머리판, 노리쇠, 공이, 그리고 왕복 용수철용 덮개


오스텐 기관단총은 MP40와 스텐의 특징을 꼽아 만들었지만 단지 카피작이라고 보기에는 독특한 특징들도 포함하고 있었던걸로 유명합니다. 이 화기의 독자적 특징이라면 반동제어를 위한 수직 손잡이가 기본적으로 부착되어 있다는 점(그리고 이 손잡이 안에는 청소용 도구가 수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몇몇 부품은 다이 캐스팅 주조방식을 사용하여 생산성은 물론 생산단가도 낮췄다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것도 모자라 개량형까지 개발되었던 오스텐 기관단총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오스텐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총 자체의 성능이 너무 나빴다기 보다는 같은 시기 호주군을 위해 만들어진 오웬(Owen) 기관단총의 성능이 너무 높게 평가되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오웬 기관단총은 정글전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아무런 고장 없이 잘만 작동해주는 놀라운 신뢰성을 보여준 반면에 오스텐 기관단총은 그런 인상을 심어주진 못한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호주군의 오웬 기관단총 제식 채용으로 인해 더이상 구매의사를 보이는 나라가 없어진 오스텐은 2만정이 안되는 생산량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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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6.5 x 50 mm SR 아리사카
전체무게: 3.95 kg
전체길이:  1,280 mm
총열길이:
781 mm
장탄수: 5발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군의 일원이였던 일본 제국이 38식 아리사카 소총을 보병용 제식화기로 사용한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총 생산량이 약 340만정이나 되는 아리사카는 그 생산량이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인 1930년대 말에는 일본군의 수요를 100% 충족할 수 있을 만큼이 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2차대전 초반 38식 소총의 대부분은 만주를 침공하는 주력군인 일본 육군에게 대부분 지급되는것이 일반이였고, 신형 소총에 대한 배치순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본 해군은 아리사카에 대한 배급을 충분히 받지 못하였습니다.

직접적인 보병단위 전투가 많은 육군이 해군보다 소총을 더 일찍 받는것은 당연한 것이고, 소총에 대한 배치가 느려진다고 해서 해군의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것이 일본군의 공식입장이였습니다만 일본 해군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다고 해서 쉽게 아리사카 소총에 대한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려 배치속도를 늘리는것은 불가능한 것이였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일본 내에서 생산되는 소총이 아닌, 해외에서 만든 총을 가져오는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신형 소총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한 나라는 다름아닌 이탈리아였습니다.


1937년 말 추축군에 포함된 이탈리아는 구 소련이 침공하는 상황이 발발할 시 추축군 참가국들이 서로를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은 방공협정(혹은 반코민테른 협정)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게 되었는데, 이 방공협정은 단순한 군사적 협조뿐만 아니라 군사적 물자에 대한 조달이나 요청도 포함되어 있던지라 일본 해군은 이 조약을 기반으로 이탈리아에 새로운 소총에 대한 개발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방공협정에 따라 이탈리아는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일본 해군이 쓸 새로운 소총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였고, 1939년 완성된 디자인을 내놓기에 이르렀는데, 이 물건이 바로 I식 소총입니다("I"는 숫자 1이 아니라 알파벳 "I(아이)"입니다)

I형 소총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일본 해군이 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군의 38식과 이탈리아의 칼카노 소총이 혼합된 물건으로서 개발되었습니다. 실제로 I식의 노리쇠 구조나 작동방식은 칼카노 소총의 것을 재활용하였지만 개머리판이 포함된 총의 몸통과 탄창의 구조는 38식 아리사카 소총의 것을 답습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다만 일본군 소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리시버 상부의 국화문양은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두 볼트액션 소총의 디자인을 혼합했음에도 불구하고 I식 소총은 실제로 사격을 할 시에 아무런 구조적 결함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I식 볼트액션 소총은 1938년 생산을 시작으로 1939년까지 약 8만정이 생산되었는데(이중 4만정은 베레타에서, 나머지는 이탈리아 정부 소속 조병창에서 생산) 이중 대부분은 1941년 이전에 잠수함이나 배를 통해 일본에 전달되었으며 이를 요청한 일본 해군 소속 병사들에게 지급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I식은 2차대전 당시 콰잘레인 환초나 필리핀에서 미군에 의해 노획이 되어 다수가 미국 내 민수용으로 들여와졌는데, 일본과 이탈리아 같이 비교적 2차대전 당시 유명하거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국가의 소총이 아닌만큼 이러한 총기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콜렉터가 아닌 이상 큰 인기가 있지는 않은 물건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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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8 x 22 mm 남부
전체무게: 3.5 kg(50발 탄창 장착시)
전체길이: 641 mm
총열길이: 229 mm
장탄수: 5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전쟁을 치룬 많은 국가들은 기관단총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권총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거리라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겠지만, 자동발사로 근접전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이 물건은 그 당시 쓰이고 있던 보병용 소총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보여주게 되었고, 이는 2차대전이 시작되는 시점에 가서는 대다수의 강대국들이 자의적이나 반 강제적으로 기관단총을 제식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기관단총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은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쓴 제식 기관단총인 100식 기관단총이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 않았고, 그나마 생산된 양도 특수부대나 공수부대쪽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 기관단총이 그런 대접을 받게 된것은 그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던 기관단총에 대한 이해 부족도 있지만, 기관단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일본군영의 편견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상부가 기관단총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것과 다르게 일본군에서는 기관단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차대전 이후 일본 육군과 해군은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던 기관단총(혹은 그 당시의 명칭으로는 기관권총)을 수입하여 이 물건들에 대한 작동방식을 연구하고 있었고, 그런 모델중 하나인 SIG사의 7.63 mm급 기관단총인 모델 1920(Model 1920)은 2차대전이 시작된 이후 동부전선에서 소수이지만 사용될 정도로 일본군이 가지고 있던 기관단총의 관심, 혹은 사랑은 다른 나라들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기관단총을 수입해서 사용하는것은 어느정도 한계가 있는 선택입니다. 자국산 화기를 사용하는것보다 가격도 비싸고 해당 화기를 생산하는 국가와의 외교적 수준에 따라 수입량이 차이가 날 수도 있는지라 1920년 말부터는 일본군영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자국산 기관단총을 생산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러한 개발의 선두주자에 있던 인물이 바로 키지로 남부였습니다.


일본군 개인화기 개발사에 있어서 빼먹을 수 없는 유명한 인물중 하나인 키지로 남부는 군용 화기라는 분야에서만 따져본다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그가 운영하고 있던 회사인 "남부-주 세이조쇼 K.K"사를 통해 1934년 일본에서 최초로 개발되는 기관단총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기관단총이 바로 2식-A형의 기반이 되는 1식 기관단총입니다.

1식 기관단총(2가지 버전이 있는데 모델 A는 분당 발사속도가 300발, 모델 B는 600발로 알려져 있습니다)은 그 당시 일본군이 소수나마 쓰고 있던 베르그만/SIG제 기관단총에서 쓰이고 있던 작동방식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그 당시 나온 기관단총들과 비교하였을때 상당히 놀라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래에 나온 사항들은 그 당시 1식 기관단총이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특징들입니다:

1) 권총 손잡이에 탄창이 들어가도록 설계하여 전체길이가 685 mm밖에 되질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권총 손잡이에 탄창이 들어가는건 체코제 Vz.23이 최초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남부의 디자인이 최초)
2) 권총 손잡이에 들어가는 탄창은 일반 박스탄창이지만 무려 50발이나 되는 장탄수를 자랑합니다
3) 탄창 끝에 접혀있는 철사 부품을 통해 특정 물체에 고정시켜놓고 지속사격을 할 수 있습니다


1식 기관단총은 이러한 특징들을 기반으로 1936년부터 1934년까지 군용 테스트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1식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바로 전체적으로 내구성이 좋지 못해 군용으로 쓰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점 때문이였는데, 총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가지고 있던 테스트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키지로 남부는 1식에 대한 개량 및 수리 요청을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개발된 남부의 개량형이 바로 2식-A형 기관단총입니다.

1935년 10월 정식 특허권을 받게된 키지로 남부의 2식-A형 기관단총은 1식의 내구성 문제점을 개량하고 나왔어야 했지만 실제로 테스트 했을 시 일본군 관계자들의 눈에 들 만큼 좋은 성적을 보여주진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1937년 8월 일본군 기병대가 다시 실험을 하고 개량사항을 요구할 정도로(특히 기병대의 경우 중국 내에서의 작전시 이를 소수지만 사용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해당 기관단총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높았고, 이러한 관심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아직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았던 1936년 1월에는 영국군이 군용 테스트를 위해 1정의 2식과 테스트용 1,000발의 권총탄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채용거부와 더불어 8미리 권총탄의 생소함으로 인해 생긴 해외에서의 판매 한계는 남부의 2식-A형 기관단총은 이렇다할 판매 실적을 보여주진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매부진은 결국 남부사는 다른 화기들에 대한 생산을 이유로 해당 화기에 대한 생산을 전면 중지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이후 100식 기관단총의 생산량이 모자라 다른 기관단총의 채용을 생각하고 있던 일본정부의 요청으로 인해 2식 기관단총에 대한 재생산이 잠시나마 언급되기도 했습니다만 이 마저도 전시상황으로 인해 흐지부지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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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1.02 kg
가로길이: 75 mm
세로길이: 150 mm
사용폭약: 암모날/TNT 혼합물
폭약량: .45 kg



2차대전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은 개전 초반, 패전을 거듭하던 영국 대륙 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은 유럽 본토에서의 연합군을 빼내기 위해 지상 최대의 탈출작전인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작전은 다른건 몰라도 유럽 본토내에서 말살위기를 막고 있는 연합군 병사들을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빼낸다는 계획이였는데, 작전 초기 의도치 않게 생긴 독일군의 진격 지체와 더불어 영국에서 영국군 구출을 위해 나온 자원 철수인력 덕분에 영국은 30만명 이상의 연합군을 성공적으로 철수시키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마친 영국에게는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의 영국 본토침략 계획과 물자부족이라는 상황이였습니다. 철수작전 당시 30만명 이상의 대병력을 빼내오자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철수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 전선에서 쓰이던 각종 중화기나 대형장비를 어쩔 수 없이 버리게 와야했고, 이 때문에 영국 본토내에서 독일군이 상륙을 시도할 시 쓰여야 할 방어용 장비들의 숫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지요

P.S) 그 당시 영국 육군 자료에 따르면 됭케르크 철수작전 당시 프랑스에 버리고 온 대전차포는 구경을 따지지 않고 계산해보면 무려 840문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문제는 철수 이후 영국 본토내에서 곧바로 쓸 수 있었던 대전차포는 겨우 167문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그 당시 대전차포와 그에 쓰이는 포탄의 숫자가 너무 적어 영국군은 훈련 목적으로라도 실탄을 사용하는것을 한시적으로 금지해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영국은 영국군과 본토 방어용 병력인 홈가드의 대전차 능력을 증강시키기 위하여 부랴부랴 대전차 화기들에 대한 개발 및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가지고 있는 물자만 가지고는 예전에 쓰이던 대전차용 무기를 빠르게 만들어 영국군 전군에 보급하는건 말 그대로 불가능한 요구였고, 이로 인해 단기간내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저렴한 대전차용 무기를 개발하는것이 절실해지게 되었지요. No.75 호킨스 대전차 지뢰/수류탄는 이러한 절박한 영국군의 상황을 타개해주기 위해 나온 물건중 하나였습니다.

No.75 호킨스 지뢰는 그 당시 TNT를 채워넣은 No.73 대전차 수류탄과 흔히 끈끈이 수류탄(혹은 점착식 폭탄)이라 불렸던 No.74 대전차 수류탄과 함께 영국 본토 방어전에 쓰일 목적으로 나온 대전차용 수류탄입니다. 이 지뢰는 사각형 모양의 상자에 폭약을 집어넣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곳에 묻어두면 차량이 지나가면서 이 지뢰의 윗부분을 밟아 화학약품이 섞어 폭팔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특히 이 지뢰는 유사시에는 차량에 그냥 던져서 폭파시키는것도 가능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전차 지뢰와 다르게 수류탄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는 특징이 존재했습니다.


호킨스 대전차용 지뢰/수류탄은 비록 영국 본토 방어전에서 쓰이지는 못하였지만 이후 유럽 내륙에서의 작전당시 대전차용 수류탄이나 지뢰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였고, 추가적인 부품을 달아주면 여러개를 동시에 폭파시킬 수 있어 다리 붕괴나 벽을 부시는 폭파장비로도 사용이 가능한 덕분에 범용성이 높은 장비로 각광받게 된 물건이였습니다. 영국군은 2차대전이 한참 지난 1955년까지 호킨스 지뢰를 제식 장비로 사용하였고, 2차대전 당시 많은 양의 호킨스 지뢰를 받아 쓴 미군은 이후 이를 기반으로 M7 대전차 지뢰를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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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도요정 자리야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7.03.12 23:10 신고

    이거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에서도 나오는데.ㅋ



사용탄약: .30-06 스프링필드
전체무게: 7.2 kg
전체길이: 997 mm
총열길이: 457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미국 내 범죄예방 및 종교적 이유를 토대로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지속된 금주법은 미국 내 주류시장에 대한 엄격한 단속을 의미하였습니다만, 실제로는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마피아와 경찰간의 경쟁이라는 부가적인 단점을 낳았습니다. 특히 금주법이 시작되기 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자동화기들은 민수용으로 비싸기는 했지만 아무런 제약없이 구입 및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돈이 많은 마피아들에게 주로 쓰이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경찰 조직이 범죄 조직보다 화력에서 밀리는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지요.

물론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경찰조직들은 이 자동화기의 화력에서 밀리게 된 경찰들은 공권력 강화 및 마피아 진압을 목적으로 그들이 쓰고 있던 속칭 "시카고 타이프라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톰슨 기관단총을 구입하기 시작하였고, 미국 내 전반적인 강력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미 연방수사국)도 그 당시 국장이였던 후버에 의해 본격적으로 자동화기에 대한 배치가 시작되었는데, 기대와 다르게 톰슨 기관단총의 전격적 배치는 그리 큰 변화를 가져오진 못하였습니다.


톰슨 기관단총은 자동화기를 특성상 근접전에서 적을 사살하는 점에서는 효율적이라는것이 입증되었습니다만, 권총탄을 사용한다는 특성상 약간의 장갑이라도 있는 차량이라면 제대로 된 성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초반 대중에 널리 보급되고 있었던 민수용 자동차들의 경우 심한 경우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철모보다 더 두꺼운 문과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근접거리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차문을 관통하는것은 쉽지 않은 것이였고, 이는 다시 말해서 차량을 이용해서 치고빠지는 전술을 사용하는 마피아들에게는 경찰의 톰슨 기관단총은 전혀 쓸모가 없다는것을 의미하는 것이였다 할 수 있지요. 콜트는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찰을 위해 새로운 물건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콜트 모니터 자동소총입니다.

콜트사의 경우 존 브라우닝이 개발한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B.A.R)의 경우 2차대전 당시에는 전군에 보급되어 사용될 만큼 큰 인기를 끌은 물건이였습니다만, 19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군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인하여 큰 매출을 보여주진 못하였고, 이 때문에 많은 수의 B.A.R가 민수시장에 풀리는 결과를 낳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온 버전들은 군용을 그대로 민수용으로 판매하던 것인지라 무게나 부피라는 측면에서 사용하기 굉장히 껄끄러운 물건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콜트는 R80을 개발할때 FBI같은 사법조직이 범죄소탕이라는 목적으로 쓰는것을 염두하였고, 이는 콜트 모니터가 오늘날과 같은 외형을 갖게 된 주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R80 콜트 모니터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찰이 시가전에서 사용하는것을 목적으로 한지라 많은 부분에서 개량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대표적인 개량을 뽑아보자면 전체적인 길이와 부피, 그리고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총열, 개머리판, 그리고 총열용 손잡이가 교체된것을 주로 들 수 있고, 이로 인한 반동제어가 힘들것을 염두하여 기존 B.A.R에는 존재하지 않는 소염제동기(M1928에 쓰였던 컷츠 컴팬세이터 개발사가 만들었다 합니다)와 권총 손잡이가 설치된것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작동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기존의 M1918 B.A.R을 그대로 답습하였기 때문에 굳이 따지고 보자면 B.A.R의 단순한 개량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31년 개발 완료 및 생산이 시작된 콜트 모니터 자동소총은 총 125정이라는 낮은 생산숫자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중 대부분(정확히는 90정)이 후버 국장이 직접 시연사격을 하는것을 필두로 FBI에 의해 쓰이기 시작하였고, 그중 하나는 금주법 당시 대표적 범죄자중 하나였던 보니 & 클라이드를 매복 공격하는데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보니 & 클라이드 소탕작전 당시 쓰인 B.A.R와 R80들은 해당 인물들이 타고 다니던 차량에 대한 무력화를 위해 철갑탄을 장착하고 사용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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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22 호넷(Hornet)
전체무게: 1.8 kg
총열길이: 360 mm
장탄수: 4발 박스탄창



전투기 조종사들은 대형장비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이로 인하여 최전선이건 후방이건 개인화기를 사용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제식화기를 지급받아 사용하는 일이 굉장히 드뭅니다. 하지만 전투기가 피격당해 추락당했을 경우 생존을 위해서 개인화기를 써야 하는 상황은 언젠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대비해 지급되는 권총같은 소형화기들은 조종사들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화기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사용할 개인화기들은 인간을 죽이는 목적으로 쓰이기 보다는 야생에서의 동물을 사냥하여 식량으로 쓰거나 위협적인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용도로 쓰는것이 일반적인데, 권총탄을 사용하는 권총들은 그 크기와 특성으로 인해 사거리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는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물론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소총이라는 물건이 존재합니다만, 조종사가 탑승하는 전투기의 경우 일반적으로 소총을 장비할 만큼 여유로운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생존용 화기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미군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이러한 요구에 응해 M4라는 이름의 생존용 소총을 만들었습니다.


M4의 경우 R&T사에서 개발한 M265 스포츠용 볼트액션 소총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사용탄약이 그 당시 운용되던 소총탄인 .30-06나 .30 카빈같은 물건이 아닌, .22 호넷이라는 상대적으로 소구경인 탄약을 사용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2 호넷의 경우 성능만 따져본다면 오늘날 사용되는 .223 레밍턴(혹은 군용으로 5.56 x 45 mm)에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다시 말해서 M4 소총은 그 당시 사용되던 풀 사이즈 소총탄보다는 이론적으로는 약할지 몰라도 일반적인 군용 소총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목재 스톡이나 긴 총열, 그리고 반동제어를 위해 필요한 악세사리를 달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과 야생동물 사냥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한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지요.

M4 생존용 소총은 ,22 호넷을 사용한 괜찮은 성능과 접이식 개머리판을 사용하면 휴대가 굉장히 쉽다는 점 덕분에 미 공군에서 1949년까지 약 3만정이 생산 및 사용 되었고, 1950년대 초반 개발이 완료되어 실전배치가 시작된 M6 생존용 소총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정식으로 퇴역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남겨진 M4 소총들은 민수시장에서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다만 총열의 길이가 상당히 짧다는 점 때문에 구입을 해야 할 시에는 ATF에 세금을 내고 정식 절차를 밟아야 구입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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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08 00:26 신고

    360cm면 3m.... 오타인가요



사용탄약: .303 브리티시
장탄수: 3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두 국가가 전쟁을 치룰 시 총력전에 돌입한다는 가정하에 본토의 제공권을 지키는것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는 적의 침략으로 정부의 수뇌부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점도 있지만, 본토 내에서 군용 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군수공장들의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2차대전 말기 높은 수준 높은 기술이 첨가된 장비를 뽑아낼 수 있는 여건이 있어도 연합군의 공습으로 생산라인에 큰 차질이 빚어 결과적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없었던 독일의 마지막은 이러한 제공권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제공권 보호의 중요성은 2차대전 말기 독일이 의도치 않게 좋은 예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전쟁 초기만 해도 이러한 상황은 독일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었습니다. 2차대전 초기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인해 프랑스가 함락되고 서유럽의 대부분이 나치 독일의 손으로 들어감에 따라 독일은 영국 본토에 공습을 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게 되었는데, 영국은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 1940~1941)으로 독일의 침략의도를 꺾을때까지 군수공장들이 폭격을 당해 생산라인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러한 군수공장 생산라인에는 대형장비들도 있었지만 리-엔필드 소총이나 브렌 경기관총 같은 개인화기들도 마찬가지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다양한 종류의 개인화기를 생산하고 있던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Royal Small Arms Factory)은 그 규모와 중요성으로 인해 독일 공군의 공습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던 상황이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개전 초기 잇따른 패배로 개인화기 무장이 부실하다 판단되었던 영국 육군을 공습 걱정없이 무장시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었는데, 이를 위해 나온것이 바로 Besal 경기관총입니다.

Besal 경기관총의 경우 그 당시 영국군의 주력 경기관총이였던 브렌 경기관총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물건입니다. 외관에서도 볼 수 있듯이 Besal의 경우 브렌과 상당히 비슷한 특징이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Besal 경기관총이 브렌을 대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이 폭격으로 인해 생산에 큰 차질을 빚어도 영국군이 충분히 무장할 수 있는 수량의 경기관총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비록 브렌 경기관총의 수요가 부족할 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되긴 했지만, Besal의 경우 단순한 보완용 경기관총으로 개발되지만은 않았습니다. 비록 브렌이 경기관총으로서는 높은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자잘한 단점이 없는것은 아니였고, 기왕 보완품을 만드는 김에 브렌을 그대로 카피하기 보다는 약간이라도 개선점을 추가해보자고 한것이 Besal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개량 시도로 인해 Besal 경기관총은 브렌 경기관총보다 가볍고, 생산 가격이 더 저렴하며, 생산라인에서 조립 및 생산을 하는것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와 다르게 Besal 경기관총은 브렌과 같이 영국군 제식 경기관총으로 채택되는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는 Besal 경기관총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1940년 후반 독일 공군의 영국 본토 공습이 점차 줄어듬에 따라 새로운 생산라인을 가동하면서 부품 호환이 되지 않는 경기관총을 굳이 생산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영국 정부에서 내려졌고, 이에 따라 Besal 경기관총은 프로토타입 제품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이 되지 않는 운명을 맞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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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7 x 57 mm / 6.5 x 55 mm / 7.92 x 57 mm / 7.62 x 54 mm R / 7.62 x 51 mm NATO / .303 브리티시
전체무게: 9.07 kg
전체길이: 1,143 mm
총열길이: 584 mm
장탄수: 25발, 30발, 4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450발



1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전차도, 독가스도 아닌 삼각대에 거치된 중기관총이였습니다. 진흙탕 범벅이 된 참호간의 평지를 건너는 병사들에게 적의 참호에서 날아오는 중기관총의 소리와 총알은 단순히 무시할 수 없는 압박감이였고, 실제로 1차대전 당시 기관총으로 인해 죽은 사상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는것은 잘 거치된 중기관총 하나가 얼마나 전선에서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 뼈아픈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비록 1차대전 당시 참호전으로 인해 중기관총의 효율성이 입증된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기관총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화기였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무게가 무겁고 운반하기 힘들다는 점은 중기관총이 교착화된 전선에서 쓸모가 있을지는 몰라도, 급박하게 바뀌는 전장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지는 못한 만큼 보병에게 큰 두려움을 안겨준 중기관총이라는 물건도 나름 문제는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중기관총의 휴대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것이 바로 탄창 급탄식의 경기관총입니다.


탄창 급탄식의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것이 아닌 독자적으로 개발된 녀석이기 때문에 중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중기관총이 전선이 앞으로 움직이면 보병들과 같이 움직이며 지원사격을 할 수 없지만 경기관총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전선이 후퇴할 시에는 중기관총은 최악의 상황시 버리고 도망가야 하지만 경기관총은 보병들과 같이 후퇴하며 엄호사격을 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경기관총은 1차대전 당시 그리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경기관총의 특성상 쉽게 과열된다는 점과 탄창을 급탄방식으로 쓰기 때문에 지속사격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당시 나온 경기관총들의 경우 너무 무거워서 경기관총이라고 부르기 어렵거나 내구성의 문제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녀석들중 그나마 평가가 좋았던 화기가 바로 오늘 소개하는 마드센 경기관총입니다.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마드센 경기관총은 오늘날 잘 알려진 경기관총들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 가장 독특한 특징이 바로 작동방식입니다. 현대 개인화기들의 경우 반동작동식을 사용한다면 쇼트 리코일이나 롱 리코일 둘 중 하나를 사용하는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마드센은 이 두 방식을 조합한 작동방식을 채택헀다는 점이 상당히 희한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레버액션용으로 개발되어진 볼트를 사용한다는 점은 마드센이 그 당시 나온 단순한 경기관총들과 다르게 상당히 복잡하면서 정교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화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마드센에서 쓰인 작동방식은 마드센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똑같이 쓰인 기록이 없습니다).

마드센의 경우 군용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실용적 경기관총으로서 덴마크군에 1902년 채택된 이후 덴마크군의 제식 경기관총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덴마크군을 제외하고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마드센의 탄창 급탄방식을 높게 평가하며 채용하였고,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쓰인 명작이라고 할 수 있지요(노르웨이군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쓰인 마드센의 경우 내구성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 만큼 절대적으로 좋은 물건은 아닙니다). 마드센의 경우 이후 현대형 기관총들이 속속 등장함으로서 대부분의 국가들의 제식 자리에서 내려오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많은 수가 예비로 비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최근 브라질군이 공여한 마드센을 브라질 경찰이 개조하여 사용한 기록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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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26 23:25 신고

    mad(미친)
    sen?

  2. 2012.10.28 18:53 신고

    메드센하면 1930년대가 주로 생각나는... 1차대전 이후 2차대전 초반정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종종 본것 같습니다.

 

 

사용탄약: 7.92 x 57 mm 마우저
전체무게: 10.5 kg
전체길이: 1,150 mm
총열길이: 672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참호전이라고 불렸던 세계 1차대전은 최초로 기관총이 엄청난 양으로 쓰이고, 그 엄청난 양으로 인해 수백만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첫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기관총은 여럿 전쟁에서 쓰이긴 했지만,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세계 1차대전은 전투의 특징과 기관총의 장점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 거의 모든 전쟁에서 기관총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상 세계 1차대전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은 제식 기관총을 적어도 1개 이상은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됨으로서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전투에서 효과적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대세였다고 하긴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수냉식 기관총에 국한된 이야기로서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혹은 공랭식 기관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주목을 받았던 경기관총의 중요성과 다르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만, 죽치고 앉아서 총열이 과열되도록 쏘는것이 일반적이였던 1차대전 당시 전투 양상과 비교했을때 수냉식 기관총은 공랭식 기관총을 압도하는 우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2차대전까지 공랭식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들은 모두 묻혔다고 하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비록 공냉식 기관총이 수냉식 기관총에 비해 지속 사격률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1차대전 이후 참호전이 아닌 전투의 비율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무겁고 운반하기 힘든 수냉식보다는 가볍고 운반하기 쉬우면서 다수의 인원이 필요하지 않은 공랭식 기관총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냉식 기관총의 대표주자로 나온 녀석중 하나가 세계 1차대전 이후 체코군에 의해 채택된 ZB vz.26입니다.

Zb.26은 세계 2차대전이나 그 이전에 등장한 경기관총들과 큰 차이가 없는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탄창의 위치와 탄창의 작동방식이 다른 경기관총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기관총들의 경우 탄창이 아래서 위로 급탄되는것이 일반적이고, 그리 자주 보이진 않지만 2차대전 당시에는 옆에서 약실로 급탄되는 탄창을 사용하는 경기관총도 몇몇 나온적이 있는데, 무거운 소총탄을 사용하는 만큼 옆이나 밑에서 급탄되는 탄창들의 경우 탄창의 급탄불량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탄창을 최대한 품질이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점이 있었지만, 다소 약한 스프링을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이 급탄이 가능했다는 점은 Zb.26가 다른 경기관총들보다 훨씬 더 고장이 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탄창이 위에서 급탄된다는 점이 zb.26의 유일한 장점은 아닙니다. 세계 2차대전 이전에 개발된 개인화기 치고는 상당히 사수에 대한 배려가 높으면서(개머리판에 반동을 줄이기 위한 어깨 받침대가 있다던지, 총열 밑에 잡을 손잡이 대신에 열로부터 최대한 떨어진 부분에 총열 교환용 수직그립을 설치했다던지 등등) 총 자체도 신뢰성이 상당히 높기로 소문난데다가 무게도 다른 경기관총들과 비슷한 수준(하지만 수냉식 기관총들보다는 훨씬 가볍다는 점) 덕분에 체코군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와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에 합병된 이후에는 독일국방군이 MG 26(t)라는 이름으로 제식명을 부여하면서 섰고, 영국군이나 일본군의 경우 2차대전 당시 zb.26을 기반으로 자국산 경기관총을 만들어 제식으로 사용한 만큼 zb.26은 2차대전 당시 경기관총 역사에 나름 큰 영향을 끼친 물건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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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2 16:14 신고

    묘하게 간지난다, 탄창 위에 달린거 말이죠



사용탄약: 7.62 x 54 mm R
전체무게: 13.0 kg
전체길이: 1,272 mm
총열길이: 605 mm
급탄방식: 47발 쟁반탄창 / 200, 25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600발



탄창을 급탄하도록 고안된 분대지원화기들은 실질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실용성에 대해서 많은 의문점이 제기된 몇 안되는 화기중 하나입니다. 탄창이라는 특성상 빠른 급탄과 재장전이 가능하여 실전에서 사용했을 시 다양한 장점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벨트를 급탄하는 화기들과 비교했을때 지속사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은 이러한 종류의 화기가 개발이 되는 순간부터 실제로 군용으로 제식 배치가 될때까지 상당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 때문인지 몰라도 무서운 속도로 나오던 탄창급탄식 분대지원화기들 중에서 현재 군용으로 널리 쓰이는 녀석들은 별로 없는것을 볼 수 있지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무서운 공세를 막아내고 반격을 시작한 소련의 경우 탄창급탄식 분대지원화기의 딜레마를 심하게 겪은 몇 안되는 국가중 하나였습니다. 소련군의 경우 2차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개발이 끝나 생산이 시작되었던 데그차료프의 DP와 개량형인 DPM을 사용하고 있었고, 총 자체는 신뢰성이나 내부구조가 단순하여 군용으로 쓰기 좋다는 평가를 받은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쟁반 탄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DP/DPM은 나름 고충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DP/DPM이 벨트를 급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거나 벨트급탄식 지원화기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벨트급탄식 지원화기로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쓰기 시작한 PM M1910 맥심 중기관총이나, 비록 제대로 된 생산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 개발을 완료했던 DS-39같은 화기들도 있었기 때문에 지속사격을 위한 기관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물론 여기에는 전쟁 후반부에 생산이 시작된 SG-43 고류노프도 포함됩니다), 맥심이나 DS-39같은 경우 분대와 함께 움직이며 쓸 수 있는 분대지원화기가 아닌 진지사격을 고안해서 만든 중기관총이였던지라 빠른 움직임을 가져야 하는 분대로서는 쉽게 운용할 수 없었던 물건이고, 자연스레 분대지원화기로 쓰이는 DP/DPM에 벨트급탄 방식이 적용되는것을 원하는게 자연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요청으로 인해 등장한 물건이 바로 RP-46이라는 이름의 경기관총입니다.

RP-46의 경우 이름은 DP/DPM와 상당히 다르게 나왔지만 실질적인 디자인은 데그차료프의 DP/DPM을 그대로 사용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RP-46의 경우 전작과 비교했을때 한가지 개량을 거쳤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결정적 차이점이 바로 벨트급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벨트 급탄용 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RP-46의 경우 위에서 설명했듯이 DP/DPM과 똑같은 디자인과 작동방식을 사용하지만 벨트급탄 부품을 사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급탄 키트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소련군에 의해 쓰였던 SG-43 고류노프 중기관총용의 벨트(200발과 250발 버전이 있지만 더 길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를 사용한다는 점이 DP/DPM와 다르게 지속사격이 가능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DP나 DPM 자체가 사실상 경량화급 분대지원화기였기 때문에 벨트 급탄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총열같은 쪽을 가볍게 만든만큼 RP-46의 경우 지속적인 사격이 가능하도록 총열을 굵게 하고 운반손잡이도 새로 장착하는등 나름 많은 쪽에서 개량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 덕분에 RP-46의 경우 가벼운 무게에 맥심이나 고류노프같은 중기관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지속사격을 보유한 완벽한 분대지원화기가 되어야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운반을 쉽게 하고 비상시 쟁반탄창을 사용할 수 있게 벨트 급탄 키트는 아무런 문제없이 탈부착이 가능하게 설계를 했습니다만, 총열을 비롯해서 몇몇 부품이 좀 더 다양한 능력을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무게를 늘렸고, 이로 인하여 경기관총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거운 무게를 가졌다는 단점이 존재하지요. 물론 이러한 점을 염두하고 개발했던 지라 실질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경기관총으로서 쓰기에는 조금 버겁다는 점과 더불어 2차대전 이후 7.62 x 39 mm M43탄이 대량으로 보급됨에 따라 이를 사용하는 분대지원화기인 RPK와 RPD, 그리고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PKM에 의해 자리를 물려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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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1.26 18:25 신고

    총열이 나팔관 (응?) 같이생겻으니 왠지 소련거라는게확신이되군요..

    • 2011.12.02 09:07 신고

      뭐 이쪽은 나팔모양의 소염기를 애용하는게 현실이니....
      그렇다고 러시아가 아닌곳이 소염기를 이렇게 만들지 않는건 아닙니다

  2. 2011.11.26 22:09 신고

    이 무게는(13kg이라니!) 어디 거치하고 쏘라는거지, 들고 쏘기엔 좀 거시기 합니다...(냉온수기 물통 큰게 18.9L인데 물의 밀도를 1g/ml로 잡으면 대략 18.9kg이라는 계산인데, 그걸 들고 휘두를 수 있는 사람만 들고 쏠 수 있겠군요)

  3. 2012.01.31 09:43 신고

    근데 정작 중요한 총열교환 가능 개조를 안하시다니... 고자라니!



사용탄약: .32 ACP /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1,090 g
전체길이: 310 mm
총열길이: 95 mm
장탄수: 6발(9 mm 파라블럼) / 8발(.32 ACP)



전쟁에서의 소음기가 달린 화기의 사용은 자주는 아니지만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정규군간의 전투에서는 소음기를 장착한 화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전투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극도로 적지만, 적진 뒤에서 활약을 하는 특수부대나 레지스탕스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화력지원이나 병력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적은 소음을 내는 화기를 사용하여 적을 사살할 수 있음과 동시에 다른 적군의 주의를 끌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소음 화기는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2차대전 당시 영국군의 경우 지리적 상황으로 인하여 독일군에 대항해 상당히 힘겨운 싸움을 한 나라인데, 영국군 특수부대의 경우 이러한 전황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영국군에 유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하여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레지스탕스들과 협력하여 저항군을 결성하는 일을 주로 맡은 기록이 많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SOE(Special Operation Executive)같은 영국의 대표적인 특수부대들은 소음기를 장착한 화기의 필요성이 절실한것이 당연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SOE을 위해서 다양한 무소음 화기가 개발되었지만 그중 가장 독특한 특징이나 외관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웰로드(Welrod) 권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웰로드 권총의 경우 일반적인 권총과 전혀 다른 외관이나 디자인을 염두하고 개발된 권총입니다. 2차대전 초/중반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동권총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채용하기에 이르는데(물론 영국군의 경우 웨블리 권총을 주로 사용하긴 했지만, 미국이 공여해준 M1911을 영국군이 쓰는 권총탄으로 변경하여 사용한 기록도 존재합니다), 웰로드의 경우 이러한 대세와는 다르게 볼트액션을 사용하는 디자인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웰로드 권총의 경우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에서는 상당히 쓰기가 곤란한 물건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만, 기타 특징들을 잘 살펴보면 웰로드는 단순히 적진 뒤에서 쓰려고 만든 단순한 권총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웰로드가 볼트액션을 사용한 이유는 소음 줄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볼트액션과 소음기가 내장된 총열을 새로 개발한 덕분에 웰로드의 경우 .32 ACP을 사용하는 화기중에서는 극도로 높은 소음 줄임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고, 아음속탄이 아닌 9미리 파라블럼을 사용해도 총열을 벗어나기 전에 탄두가 아음속으로 속도가 줄어들게 설계하여 따로 탄약을 개량하거나 소음기를 추가적으로 달아주지 않아도 소음효과를 충분히 낼 수 있게 했다는 점은 웰로드가 상당한 기술을 요구한, 특수부대를 위한 퀄리티 제품이라는것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웰로드의 경우 자동권총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단순함과 높은 내구성을 자랑하기로 유명합니다. 애초에 일반적인 권총처럼 쓰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도를 높이려는 시도나 장탄수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독자적인 디자인을 채용한 덕분에 볼트를 포함하고 있는 소음기 장착 총열과 탄창이 장착되는 권총 손잡이를 따로 분리해서 소지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는 총 자체의 내부구조를 단순화 하여 내구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적진에서 조립하기 전까지는 권총처럼 보이지 않게 소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점 이외에도 야간시 조준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게 가늠자/가늠쇠에 형광색 물질을 묻혀놓았고, 총이 적발되었을 시에 어느 공장이나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게 어디서 생산되었는지조차 마크를 넣지 않는등 자잘한 점에서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덕분에 웰로드의 경우 영국 SOE는 물론이고 미국의 OSS에서도 쓰일만큼 나름 이쪽 분야에서는 인기가 있었던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군 특수부대에서 쓰인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까지 쓰인것으로 볼 수 있지요). 다만 극도로 소음효과를 내면서 휴대성을 높이려고 한 시도 때문에 실제 유효사거리는 20 m 내외이기 때문에 영점사격을 하지 않는 이상 소음효과가 좋은 단발 권총 이상으로서의 가치는 부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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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8 16:34 신고

    오메_코앞에서_쏘라는_겨?.jpg

  2. 2011.10.30 01:48 신고

    권총에 소음...볼트액션...쿨럭;; 많이 짧은 저격소총인가요 ㅋㅋ

  3.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1.05 14:09 신고

    어째 델리즐의 현대판을바꿔서 쓴거같은데요 ..

  4. 2011.11.06 16:45 신고

    뜬금없이 리버레이터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사용탄약: 7.62 x 38 mm R(7.62 mm Nagant)
전체무게: 0.8 kg
전체길이: 235 mm
총열길이: 114 mm
장탄수: 7발



20세기가 시작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자동권총이라는 장르는 그 이전까지 쓰이고 있던 군용 혹은 경찰용 리볼버를 뛰어넘는 성능을 보여준 덕분에 데뷔 이후 많은 국가들에 군용으로나 경찰용으로나 채용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동권총의 성공 때문에 이전까지 쓰이던 리볼버들은 성능상으로 뒤쳐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멀쩡하게 쓰일 수 있어도 퇴역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데, 비록 오늘날까지 리볼버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어도, 이를 군용이나 경찰용으로 사용하는 국가들은 역사적 혹은 경제적 이유를 제외한다면 상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지요. 

비록 리볼버가 이렇게 20세기에 들어서 권총이라는 시장에서 자리를 뺏기고 후방으로 밀려나긴 했습니다만, 경제적으로 그리 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들이나 1900년대에 들어서기 직전에 리볼버를 제식 권총으로 채용한 나라들은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리볼버를 계속 사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 경제사정이나 사회적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러시아(혹은 소련)이 이러한 나라들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95년 러시아(러시아 혁명 이후 국가 이름이 소련으로 변경됨)군의 제식 권총으로 채택된 M1895 나강 리볼버도 이러한 트렌드 때문에 운좋게 채용된 녀석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 기존의 러시아군이 마땅히 쓸만한 자동권총이나 리볼버가 없던 상황에서 개발되어 채용된 최초의 자국산 권총이라 할 수 있는데(러시아군의 경우 나강 리볼버가 본격적으로 채용되기 전에는 스미스 앤 웨슨사의 리볼버같은것들을 사용했습니다), 나강 리볼버의 경우 이 당시 개발되어 채용된 리볼버들과 다르게 나름 새로운 구조를 고안해 기존의 리볼버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독창적인 녀석이 되길 원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일반적인 리볼버의 경우 탄창이라 할 수 있는 실린더가 움직일 수 있게 실린더와 총열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벌러나야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틈은 사실상 기본적인 리볼버로서는 당연히 가져야할 필수 조건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틈 때문에 총열과 실린더가 제대로 정렬되지 않았을 경우의 명중률 저하나 틈으로 화약 연소로 인한 가스가 새나가 탄두의 위력을 저하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 때문에 리볼버들의 경우 결과적으로 위력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반동이 높아지거나, 사수가 초보자여서 리볼버의 파지법을 제대로 연습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가스 분출로 손에 화상을 입을 수 있는등 나름 문제점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는데, M1895 나강 리볼버의 경우 이걸 성공적으로 해결한 몇 안되는 리볼버중 하나입니다. 


나강 리볼버가 시도한 것은 총열과 실린더 사이의 공간을 없앤 것과 새로운 탄약을 사용한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나강 리볼버의 경우 일반적인 리볼버와 같이 원래는 실린더와 총열 사이의 간격이 있지만 해머가 콕킹되면 실린더가 앞으로 전진해 총열과의 간격을 완전히 좁혀 가스 누출이나 총열과 실린더가 제대로 정렬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와 동시에 나강 리볼버의 경우 탄약도 새로 개발하여 디자인적으로 탄약의 가스가 다른곳으로 누출되는것을 최대한 방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 때문에 나강 리볼버의 탄약은 기존의 리볼버 탄약과는 상당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P.S) 나강 리볼버의 경우 이러한 구조적 특성 덕분에 세계 2차대전 이전까지 개발되었던 리볼버들과 다르게 소음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추가 장점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여 소련군의 경우 Bramit device이라는 이름의 소음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특수임무나 정찰임무를 가진 병사들에게 나강 리볼버와 함께 해당 소음기를 지급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Bramit device라는 이름의 소음기와 나강 리볼버의 경우 상당한 소음효과를 가진지라 세계 2차대전 이후 베트남전에서도 베트콩에 의해 쓰인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M1895 나강 리볼버의 경우 기존의 리볼버와 다른 아이디어로 시작해 기존의 리볼버보다는 훨씬 더 뛰어난 녀석이라는 장점을 가졌습니다만, 이러한 장점의 뒷면에는 상당한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나강 리볼버의 경우 구조적 특징상 리볼버의 실린더를 스윙아웃(Swing-out, 실린더를 총몸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젖혀서 재장전을 쉽게 할 수 있게 만든 구조) 방식으로 만들 수 없음과 동시에 탄피 배출과 새로운 탄약을 삽입하는 과정의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린다는 단점(콜트사의 SAA같은 구식 리볼버처럼 탄피를 일일이 꺼내고 일일이 삽입해야 하는 방식 때문에 스피드 로더같은것조차 사용이 불가능했지요)은 나강 리볼버의 독특한 장점을 상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비록 실전에서 이러한 재장전의 문제가 제기되었어도 러시아군에 제식으로 채택된 덕분에 나강 리볼버의 경우 세계 1차대전은 물론이고 세계 2차대전까지 소련군의 주력 권총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물론 1933년 제식 권총으로 채택된 토가례프의 TT-33이 나강 리볼버를 제치고 제식 권총자리로 자리잡았습니다만, 1945년까지 계속 생산을 한 덕분에 총 생산량이 200만정을 넘는등 19세기 말에 나온 리볼버로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지요 (세계 2차대전 이후 남은 나강 리볼버는 소련에서는 퇴역했지만 냉전당시 소련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대다수 공산권 국가들에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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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2 14:58 신고

    나강보고 깜놀 ㅋㅋㅋㅋ근데 스윙아웃이라는게 만화나 게임에서처럼 슥 기울이기만 해도 실린더가 빠지는 건가요?
    스윙아웃방식이면 실린더를 열고 닫는 래치라는게 있다던데 그걸 안써도 되는 겁니까?

  2. 2011.06.17 21:29 신고

    리볼버가 당신을 발사합니다!



사용탄약: 7.92 x 107 mm DS
전체무게: 10.0 kg
전체길이: 1,760 mm
총열길이: 1,200 mm
장탄수: 4발 



세계 1차대전은 그 이전에 일어났던 전쟁들 중에서 가장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으로 기록되는 녀석입니다. 물론 세계 2차대전과 이후 일어난 여러 전쟁이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것은 사실이였고, 이 당시 개발된 무기들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것으로 보아 이쪽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 당시 등장했던 신무기들의 경우 세계 2차대전과 다르게 그 신무기들의 모토를 제공함으로서 이후 같은 종류의 무기들이 나올때 엄청난 기술발전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세계 1차대전은 단지 최초의 세계대전으로서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현대전의 기반을 닦아놨다는 점에서도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에 개발된 무기들의 경우 대체 그 이전에 쓰이던 무기들과 다르게 꽤 높은 성능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인 물건은 전차라고 할 수 있지요. 전차의 경우 세계 1차대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졌던 전투 방식인 참호전에서 참호간의 공간을 통과하고 적 진지를 파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록 이 당시 전차의 경우 오늘날의 전차와 비교하면 방어력이나 화력 및 기동성에서 크게 뒤떨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수많은 병사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참호간의 거리를 통과해 적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 나온 전투목적의 무기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데뷔를 거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차의 등장은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전쟁들에서 전차가 주력으로 쓰이기 시작하며 엄청난 수의 전차와 높은 기술력, 그리고 다양한 전술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이끌어 냈는데, 이러한 전차의 등장으로서 보병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에 맞써서 싸워야 하는 문제에 부딛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경우 제블린같은 보병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나 전투기나 무장 헬리콥터같은 중장비들의 영향으로 전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는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이 당시에는 무반동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전투기같은 대형장비의 숫자도 그리 많진 않았기 때문에 대전차 화기를 쓰거나 만드는데 있어서 오늘날 만큼 꽤 많은 옵션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대전차 소총이라는 신 장르의 화기입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대전차 로켓같은것에 대한 개발이 부족했고, 보병한테 쥐어줄 수 있는 무기가 한정되어 있었던 만큼, 원래 쓰던 보병용 소총을 크게 만들고 탄약도 굵고 장갑을 관통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이를 이용하여 그 당시 그리 높은 방어력을 가지지 않았던 전차들(가뜩이나 기동성 낮은데 중장갑으로 무장하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 1차대전 당시의 전차들이라고 하는 물건은 오늘날 장갑차들보다 얇은 수준의 장갑을 보유)을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로 평가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대전차 소총은 세계 1차대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버전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지요.


폴란드에서 개발한 Wz.35라는 이름의 대전차 소총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35년 8월 즈음에 폴란드군의 요청으로 개발이 시작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개발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1939년 8월 즈음에나 전군 배치가 완료된 녀석이였기 때문에 대전차 소총으로서 실질적인 성능을 기대하긴 어려웠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문제와 다르게 실전에서 쓰였을때 Wz.35은 생각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다고 하는데, Wz.35가 대전차 소총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탄약과 화기의 구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Wz.35에서 쓰인 7.92 x 107 mm DS라는 탄약의 경우 1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대전차 소총들에서 쓰인 탄약들과 다르게 상당히 소구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관통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나온 대구경 소총탄들의 경우 실질적으로 탄속을 높이기 위해 탄약의 장약량을 늘림으로서 사수가 총을 발사하는데 많은 부담을 주었고 반동이 높아 정확도가 떨어진다는것에서 착안하여 DS의 경우 소구경을 사용하면서 장약량이 높아도 반동이 상당히 적도록 설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둘어 탄두의 구조의 경우 관통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텅스텐같은 재질이 아닌 것을 사용하여 관통을 우선시로 하는것이 아니라 전차나 장갑차의 승무원에게 파편을 뿌려 차량의 무력화에 집중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두번째로 Wz.35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총의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1차대전 당시 마우저사의 T-Gewehr가 사수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 단점을 많이 만들었던것과 다르게 총열 끝에 머즐 브레이크를 설치해 반동을 줄임과 동시에 4발 탈부착식 탄창을 사용하여 재장전 속도를 줄였고, 마지막으로 마우저사의 볼트액션 소총과 자국내 볼트액션 소총의 구조를 결합해 최대한 내구도를 향상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 덕분에 Wz.35의 경우 일반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다른 대전차 소총들과 다르게 1939년 폴란드 침공당시 독일군이 가지고 있던 대다수의 전차나 장갑차를 약 100미터나 300미터 내에서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는 특징을 가지게 됨으로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약 6천정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폴란드가 독일에 무력으로 합병됨에 따라 전량이 폴란드군에서 전량이 회수되었고,  이후 독일군에서 평가했을때 성능이 괜찮다 판단하여 PzB 35(P)이라는 제식명을 붙여서 종전까지 계속 사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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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4 05:59 신고

    관통력(? 맞는단언지... 알려주세요 ㅜ)은 어느정도인가요?
    콘크리트 200mm는 껌이겠죠?

    • 2011.04.04 06:00 신고

      앜ㅋ 말을 잘못했어요ㅜㅜ
      20mm는 껌이겠죠?

    • 2011.04.12 01:35 신고

      300미터에서 30도 각도로 쐈을때 15 mm정도의 장갑, 100미터에서는 약 33 mm정도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장갑차/전차 관통력이 이정도니 콘크리트라면 뭐 답이 나오겠죠

  2. 2011.04.04 23:04 신고

    NTW보다는 좀 짧은 소구경 대전차소총이군요 물론 NTW는 대전차소총이 아니긴 하지만...
    근데 DS는 무슨 약자죠?

  3. 2011.04.08 22:47 신고

    약 6000정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니... 저렇게나 좋은 총이었다면 더 뽑아냈어도 되는데...

    • 2011.04.12 01:39 신고

      독일이 미처 그거까진 생각을 못했나 봅니다....가 아니라
      독일이 이거보고 감명받아서 Panzerbüchse 39을 빨리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영향이 컸다는 증거겠지요

  4. 2011.04.17 22:02 신고

    사진에 나온 총기 상태가 굉장히 뛰어나군요. 복각으로 새로 만든 것일까요.

  5.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4.28 19:09 신고

    허허 ... 근데 .. 왠지 기동성최악+무게+길이허허... 너무...무섭네요 그냥 소련제를쓰고말겟어여 ,,, 아니면뭔 머스캣도아니고..

  6. 2011.08.27 15:00 신고

    이 무기 중국군이 쓰기도 하였나요? 게임에서 이 총을 본거 같아서요

    • 2011.08.29 08:22 신고

      폴란드와 독일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니 중국은 포함되지 않을걸로 보입니다
      아마 비슷한 놈이 여럿 있으니 이쪽을 찾아보시길

  7. 2011.10.10 22:33 신고

    PTRD를 대항하기 위해 나왔다면 매우 약한것이로군요..;T-34전차 장갑은 뚫려나..?

  8.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2.03 17:45 신고

    근데 ,.. 총열이 길으면 연사력이 떨어지나요?? 대신에 ... 총열이긴것은 뭔가요 ??

    • 2011.12.11 12:42 신고

      연사력과는 상관없는 총인걸 생각한다면 총열이 긴건 그쪽과는 상관이 없다는걸 알 수 있겠죠
      총열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신다면 과연 대전차 소총에서 총열이 왜 ㄱㅣㄴ지 알 수 잇겠죠














사용탄약: 7.62 x 54 mm R
전체무게: 13.8 kg
전체길이: 1,150 mm
총열길이: 720 mm
급탄방식: 200발/25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500발 ~ 700발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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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7.62 x 54 mm R
전체무게: 13.8 kg
전체길이: 1,150 mm
총열길이: 720 mm
급탄방식: 200발/25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500발 ~ 7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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