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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중량: 2.5톤
전체길이:
17 m
생산댓수: 약 5대
운용인원: 300명(운반), 8명(조작)
최대사거리: 약 30 ~ 40미터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개발과 구상이 끝났지만 정작 실전에서의 대량사용은 한참 지연이 된 화염방사기는 처음 참호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을때 병사들에게 공포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실제 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능을 떠나 불을 뿜는 병사라는 이미지는 화염방사기가 확실히 적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심리적인 장점과는 다르게 이 물건은 대량으로 쓰여도 좋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화염방사기가 같은 시기 처음 대량으로 쓰여 군 개인화기 개발사에 큰 영향을 미친 기관총과 다르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에는 화기의 한계점이 큰 몫을 차지하였습니다. 보병이 휴대할 수 있게 만든 화염방사기는 발사시간이 굉장히 짧거나 아니면 사거리가 짧은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고 해서 발사 지속시간과 사거리를 늘린 물건을 만들자니 보병 여러명이 이를 운송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고 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1차대전 당시 등장한 리벤스 대형 화염방사기는 이러한 보병용 화염방사기의 성능상 한계를 해결하고자 등장하였습니다.


영국군 공병 출신 장병인 윌리엄 하워드 리벤스(William Howard Rivens)는 1차대전 당시 뛰어난 아이디어 제공으로 인해 화학전과 화염방사기 개발에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만든 리벤스 대형 화염 방사기는 사거리나 성능을 희생시켜 보병용 화염방사기를 만들 바에는 차라리 대형 화염방사기를 만들어 제대로 된 성능을 구현하도록 하자는 발상을 통해 개발되었고, 실제로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개인단위로 운반이 불가능하게 커진지라 300명의 병사들이 전선으로 분해된 화염방사기 부품을 나르고 8명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이를 조립 및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시제품 4대가 1916년 처음 솜 전투 당시 참호간의 처음으로 시연을 보일 예정이였지만 독일군의 포격으로 인해 4대중 2대가 부서져 버린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4대중 온전히 남아있던 2대는 공세시작 직후 사용이 되었고,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배치된 지역은 영국군이 적은 사상자만으로 최전선 돌파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운반하기 힘든 만큼 제 몫을 해냈다는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요.


솜 전투 이후 1917년 벨기에 딕스마이데(Diksmuide)시 근처 공세 당시에도 쓰인 기록이 존재하는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그 성능이 입증되기는 했지만 참호전에서 쓰려면 무인지대(No Man's Land, 적군과 아군 참호간의 평지를 지칭하는 단어) 아래로 화염 방사기를 묻을 수 있는 터널을 파야한다는 번거로움과 더불어 실제 성능이 대량생산을 해야할 수준으로 보이지 않다는 평가에 의해 솜 전투와 딕스마이데시 공세 이후 생산 및 사용이 중단되었습니다(이후 버려진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2010년 5월 영국에서는 부품을 모은 몇몇 전문가에 의해 실제 성능이 구현된 모델이 재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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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기존의 리뷰 포맷이라면 타이틀 사진과 제원을 기재하고 해당 화기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야 합니다만, 한 소총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첨부된 형식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리뷰형식이 아닌 문서자료 형식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각 화기에 대한 제원과 사진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발배경]

해당 화기의 시초는 2차 보어전쟁 당시의 영국군이 처한 문제로 시작되었습니다. 2차 보어전쟁은 영국군이 남아프리카 내 지배권을 확장하고 해당 지역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그 당시 영국에 대항하는 트란스발 공화국-오렌지 자유국의 연합군을 처리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을 가르키는 말인데, 이 당시 영국군은 숫적 및 장비적 열세를 가지고 있었던 연합군을 제거하고 해당 지역을 영국의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 전쟁은 영국군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전쟁당시와 전후 보고를 따져보니 영국군이 모든 전투 상황에서 우세하다는 것은 아니였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 당시 영국군이 사용하던 리엔필드 소총과 .303 브리티시 탄약이였는데, 영국군에 맞써서 싸운 연합군이 사용한 마우저 1895 소총이 사용하는 7 x 57 mm 탄약이 놀라운 정확도와 저지력을 보여준 반면 리엔필드에 쓰이는 .303 브리티시 탄약은 그렇지 못하다는것으로 판명이 났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 직후 리엔필드를 개조하여 새로운 탄약을 사용하는 소총을 개발하려 했지만, 소총의 노리쇠 디자인이 .303 브리티시 탄약이 아닌 독자규격의 탄환을 사용할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것이 판명났고, 이에 따라 1910년 영국 소화기 위원회는 영국군 제식 소총으로 새로운 작품을 채택한다고 발표하였고, 영국군 제식화기로 새로 채택될 소총의 요구조건을 내걸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나온 사항들은 그 당시 영국 소화기 위원회가 제시한 소총의 최소 조건들입니다

1) 마우저 타입 소총들이 사용하는 노리쇠 디자인을 사용해야 한다
2) 개머리판이 일체화되어 있어야 한다
3) 소총 탄약 규격이 기존의 브리티시 탄약보다 소구경이여야 한다


이에 따라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이 해당 제시조건을 받아들여 개발을 시작하였고, 디자인한 여러 프로토타입중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판단된 한가지 프로토타입을 1911년 개발을 완료하고 내놓게 되는데, 이때 내놓게 되는 화기가 바로 아래 나오는 Pattern 13 엔필드 소총입니다 (이름에 13이 들어가는 이유는 제식으로 채택되기 이전의 테스트가 시작된 시기가 1913년이기 때문입니다).


Pattern 13 Enfield



사용탄약: .276 Enfield
전체무게: 3.9 kg
전체길이: 1,200 mm
총열길이: 660 mm
장탄수: 5발 클립

P13 소총은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에서 나온 볼트액션 소총으로, 기존의 SMLE 리엔필드가 가진 노리쇠 구조가 아닌 마우저가 디자인하고 많은 국가들이 따라하기 시작한 마우저 패턴의 노리쇠를 사용한 소총입니다. 이 점 이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일체형 개머리판을 사용하도록 디자인이 새로 도입되었는데, P13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은 노리쇠 구조도 아니고 디자인도 아닌, .276 엔필드라는 이름의 신형 탄약입니다.

.276 엔필드 탄약은 .256 탄약에 기초하여 나온 디자인중 하나입니다(.256 탄약의 경우 소구경 고속탄이라는 점은 .276 엔필드와 동일하지만, 소구경임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탄약의 경우 기존의 .303 브리티시가 가지고 있던 장거리에서의 명중률과 저지력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P13에서 쓰이게 채택되었다 할 수 있는데, 비록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은 엔필드 소총과 해당 탄약이 잘 맞아 떨어질거라 판단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는 못하였습니다.


세계 1차대전 당시 P13은 Rifle, Magazine, Enfield, .276-inch이라는 이름으로 제식으로 채택되어 쓰이기 시작하였지만,  최전선에서 리엔필드를 쓰다가 이 총으로 제식소총을 교체한 영국군 병사들의 평가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존의 .303 브리티시보다 장거리 명중률이 뛰어난것은 인정 받았어도 총구 화염이 심하기 때문에 사격하기가 힘들다는 점, 소구경 탄환을 빠른 속도로 발사하다 보니 총이 금방 달아오르고 총열에 새겨진 강선이 금방 마모가 된다는 점은 P13이 제대로 실전 테스트를 받지 않고 급하게 전선에 나온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애로사항들이 접수됨에 따라 영국군 상부는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에 6가지 추가 디자인 개량형을 요구하였고, 실제로 해당 회사도 이를 받아들여 개량을 시작하였지만, 1차대전 당시 영국군은 새로운 탄약을 전쟁 중간에 도입하고 기존의 SMLE 리엔필드를 제식에서 퇴역시킬 만큼 엔필드 소총이 효과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P13에 대한 추가적인 생산 및 배치를 중단하게 됩니다.


Pattern 14 (M1914 Enfield)




사용탄약: .303 브리티시
전체무게: 4.25 kg
전체길이: 1,175 mm
총열길이: 660 mm
장탄수: 5발 클립

비록 .276 엔필드 탄약을 사용하는 P13에 대한 생산은 영국군이 중단하였기 때문에 끝났지만, 전쟁 당시 영국군의 소화기 부족현상이 심한 관계로 기존의 리엔필드를 계속 생산하는것과 더불어 P13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되, 사용 탄약을 기존에 쓰던 .303 브리티시로 개조하여 전선에 보급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이미 제식 생산을 위하여 P13용 생산 설비가 갖춰진것은 물론, 실제로 뽑아냄으로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만큼 P13을 .303을 사용하도록 개량해서 만든다면 P13이 가진 단점들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인한 결정였다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등장한 소총이 바로 P14입니다.

P14의 경우 기존의 P13 시설을 갖추고 있던 영국 내 공장에서 생산하는것을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만, 그 당시 영국의 생산능력이 소화기 부족현상을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다 판단하여 영국은 같은 연합군 소속은 아니지만 영국을 원조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P14에 대한 추가 생산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에 있는 윈체스터와 레밍턴사가 P14에 대한 부품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두 회사가 약 120만정의 소총을 생산하기에 이르렀지요.


P14은 P13에서 탄약과 약간의 개량만 거친 녀석인지라 기존의 P13이 가지고 있던 총알 관련 문제를 해결하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총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1차대전 당시 만들어진 볼트액션 소총으로서는 꽤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기는 했습니다만, 총을 받은 영국군 병사들의 경우 근접전에서 사용하기가 힘들며, 전체길이나 무게가 기존의 SMLE와 많이 달라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근접전이나 총을 들고 적진에 돌격할 걱정이 없는 저격수들의 경우 총열의 디자인과 조준기 시스템, 그리고 무게가 장거리 저격에서 SMLE 리엔필드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평가하였지요.

이러한 엇갈린 평가로 인하여 P14은 최전선 병사들이 사용하는것이 아닌 후방 전선의 예비군 병사들과 장거리 저격을 선호하는 저격수들에게 지급되었습니다만, 1947년 리엔필드보다 더 나을게 없다는 판단하에 정식 생산은 물론 제식에서 퇴역하는 수모를 맞게 됩니다.


M1917 Enfield



사용탄약: .30-06 스프링필드
전체무게: 4.17 kg
전체길이: 1,175 mm
총열길이: 660 mm
장탄수: 5발 클립

미국의 경우 1903년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을 제식으로 채택하였고, 총이나 탄약에 대한 아무런 불평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과 다르게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이 시작되고 나서 미군이 유럽전선에 개입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 M1903의 생산량이 유럽전선에 보내질 병사들의 숫자에 충족하기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고(1차대전에 미군이 개입하기 직전 M1903의 총 생산량은 84만정이였는데, 미국 내에 존재하는 보병이나 실제 유럽에 투입될 보병의 숫자는 기존 생샨랑을 웃도는 수준이였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급하게 M1903의 부재를 메꿀 수 있는 소총을 찾게 되는데,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M1917입니다.

M1917은 미군이 새로 개발한 소총이 아니라 기존의 P14을 .30-06 스프링필드 탄약을 쓰도록 개조한 물건입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영국군의 소화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미국의 윈체스터와 레밍턴사에 P14에 대한 생산을 요청하였는데, 그 당시 2년도 안되는 시간 내 120만정이나 뽑아낸 P14을 판단해봤을때 기존의 M1903용 생산설비를 늘리는것보다 P14에 .30-06을 사용하도록 살짝 개조해서 뽑아내는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미군의 기준에 따른 결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U.S. Rifle, Caliber .30, Model of 1917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을 시작한 M1917은 미군의 예상에 맞게 빠른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917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M197 소총은 고작 1년동안 무려 210만정을 뽑아내는 기록을 세웠고, 이때 생산된 소총들은 유럽전선에 투입된 미군 병사 숫자의 75%을 무장시킬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생산량과 다르게 미군의 M1917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영국군에게서 문제작이라는 소리를 받은 P14을 그냥 탄약만 새로운 버전을 쓰도록 개량하였기 때문에 미군도 영국군과 마찬가지로 소총의 무게와 전체길이가 참호전이라는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이 때문에 1차대전 이후부터는 미국 저격수들이나 최전선이 아닌 병사들에게 지급되다 결국 M14의 도입으로 현역에서 퇴역을 하게 됩니다.



문서출처: 위키백과 & IMF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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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303 브리티시
장탄수: 10발, 20발, 65발 탄창



볼트액션이라는 방식을 사용하는 소총들은 수백년을 지나도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군용 개인화기 장르중 하나입니다. 간단한 구조와 높은 정확도를 사용하여 장거리 전투에서 적을 사살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다양한 최첨단 개인화기들이 개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트액션이라는 고전적 작동방식의 화기가 아직까지도 사랑받게 한 주요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볼트액션도 단점이 존재하지 않은 완벽한 개인화기 작동방식은 아닙니다.

세계 1차대전 당시 중기관총의 도입으로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이 죽어야만 했고, 오늘날까지도 중기관총의 역할이 보병간 전투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것을 자동화기가 실제 전투시 볼트액션보다 더 유용하다는것은 굳이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답이 나오는 문제입니다. 실제로 1차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이 분대 내 반자동 소총이나 자동화기의 숫자를 늘리려 한것은 화력에서의 우위가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것을 알게 해준 1차대전 당시의 교훈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당시 기술력이나 자동화기의 요구사항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함으로 이해 생긴 한계점으로 인해서 1차대전 당시 개발 및 사용이 되었던 중기관총이 아닌 자동화기들은 전반적으로 평가가 그리 좋지많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진행된것이 바로 반자동 소총의 새로운 장르였습니다. 물론 반자동 소총이라는 장르가 그 이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신 장르는 아닙니다만, 군용으로 쓰이는 소총들은 대게 볼트액션이 아니면 완전자동인 경우가 많았고, 만약 볼트액션보다 더 빠른 발사속도를 자랑하지만 복잡하고 무거우면서 반동이 센 자동소총의 룰을 대신할 수 있는 총을 고르라면 반자동 소총이라는 장르가 가장 적합한 물건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1차대전 이후 나오기 시작한 개런드나 SVT-38/40, 그리고 G43가 군용 제식소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건 반자동 소총의 실제 효율성이 인정을 받아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엔필드 소총과 빅커스 중기관총, 그리고 소수이지만 지급되었던 루이스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의 경우 1차대전 당시 다른 나라들과 병력의 무장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 당시 독일의 MP18이나 미국의 M1918 B.A.R 및 톰슨 기관단총의 개발은 강대국들이 분대내 자동화기의 숫자를 늘려 화력을 증강시키려는 노력을 한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은 이러한 자동화기가 아닌 반자동 화기 개발을 추진하였고, 그러한 결과물로 나온것이 바로 Farquhar-Hill 소총입니다.


일반적인 화기들이 개발을 거친다음 곧바로 군에 채용이 되거나 사정상 채용이 되지 않는것과 다르게 Farquhar-Hill 소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이 화기는 사실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08년 5월 디자인과 시제품 생산이 완료되었고, 영국과 미국에서(영국은 1908년, 미국은 1909년) 독특한 작동방식을 특허로 받은데다가 그 시점에서 영국군에게 테스트를 받는것이 원래 계획이였습니다만, 복잡한 구조로 인한 잔고장이 많아 영국군 소화기 위원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후 몇가지 개량을 해서 다시 제출을 하였지만 이 역시 거부됨으로서 Farquhar-Hill의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요(참고로 이 당시 영국군을 포함해서 미군에도 마찬가지로 테스트가 진행되었지만, 이 역시 거부당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Farquhar-Hill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운의 화기는 아닙니다. 비록 초기 시제품 테스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한 이후 전선에서 반자동 화기의 필요성이 두각됨에 따라 영국군도 기존에 포기를 했던 이 제품에 대해서 재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복잡하다는 기존 평가와 다르게 최전선에서는 화력증강이라는 면에서 쓸모가 있다는 평을 받아 영국군 제식화기까지는 아니여도 점차 생산량을 늘려나가 영국군 전군에 대량보급을 할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성능은 제법 괜찮다는 평을 받았어도 실제 전선상황은 Farquhar-Hill에게 절호의 기회를 부여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비록 전선에서 호평을 받아도 영국군이 이 화기를 영국 소화기 편제에 포함시키고 정식생산을 시작할 시기가 1차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8년도였고, 실제로 생산이 시작될 무렵 영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독일 제국과 바르사유 조약을 치루면서 더이상 반자동 소총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해당 화기에 대한 주문이 취소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공군의 2인승 전투기에 화력 증강을 위해서 배치가 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쓰인 양은 숫자는 상당히 소수였고, 2차대전 발발 이후에도 해당 화기에 대한 재 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P.S) 위키백과에 따르면 해당 화기는 자동발사가 가능한 자동소총으로 등장합니다만, 몇몇 소스에 따르면 실제 공개가 된 프로토타입이나 생산형은 다 반자동 사격만 가능한 녀석이라고 하기 때문에 본문이나 제목에 해당 화기를 자동화기가 아닌 반자동 화기로 표기하였습니다. 만약 반자동 화기가 아닌 실제 자동화기 버전이 존재한다면 차후 수정시 해당 내용을 추가하겠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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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13.2 x 92 mm TuF
전체무게: 18.5 kg
전체길이: 1,691 mm
총열길이: 984 mm
장탄수: 1발



세계 1차대전은 그 이전에 일어났던 전쟁들 중에서 가장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으로 기록되는 녀석입니다. 물론 세계 2차대전과 이후 일어난 여러 전쟁이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것은 사실이였고, 이 당시 개발된 무기들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것으로 보아 이쪽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 당시 등장했던 신무기들의 경우 세계 2차대전과 다르게 그 신무기들의 모토를 제공함으로서 이후 같은 종류의 무기들이 나올때 엄청난 기술발전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세계 1차대전은 단지 최초의 세계대전으로서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현대전의 기반을 닦아놨다는 점에서도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에 개발된 무기들의 경우 대체 그 이전에 쓰이던 무기들과 다르게 꽤 높은 성능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인 물건은 전차라고 할 수 있지요. 전차의 경우 세계 1차대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졌던 전투 방식인 참호전에서 참호간의 공간을 통과하고 적 진지를 파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록 이 당시 전차의 경우 오늘날의 전차와 비교하면 방어력이나 화력 및 기동성에서 크게 뒤떨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수많은 병사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참호간의 거리를 통과해 적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 나온 전투목적의 무기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데뷔를 거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차의 등장은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전쟁들에서 전차가 주력으로 쓰이기 시작하며 엄청난 수의 전차와 높은 기술력, 그리고 다양한 전술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이끌어 냈는데, 이러한 전차의 등장으로서 보병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에 맞써서 싸워야 하는 문제에 부딛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경우 제블린같은 보병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나 전투기나 무장 헬리콥터같은 중장비들의 영향으로 전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는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이 당시에는 무반동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전투기같은 대형장비의 숫자도 그리 많진 않았기 때문에 대전차 화기를 쓰거나 만드는데 있어서 오늘날 만큼 꽤 많은 옵션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대전차 소총이라는 신 장르의 화기입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대전차 로켓같은것에 대한 개발이 부족했고, 보병한테 쥐어줄 수 있는 무기가 한정되어 있었던 만큼, 원래 쓰던 보병용 소총을 크게 만들고 탄약도 굵고 장갑을 관통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이를 이용하여 그 당시 그리 높은 방어력을 가지지 않았던 전차들(가뜩이나 기동성 낮은데 중장갑으로 무장하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 1차대전 당시의 전차들이라고 하는 물건은 오늘날 장갑차들보다 얇은 수준의 장갑을 보유)을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로 평가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대전차 소총은 세계 1차대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버전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지요.


마우저사에서 개발한 T-Gewehr는 이러한 대전차 소총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녀석으로서, 세계 최초로 대전차 소총이라는 장르를 실현시킨 녀석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녀석의 경우 독일군이 마크 1같은 연합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개발을 요청해서 나온 녀석으로서, 기본적인 작동방식은 마우저사에서 개발했던 Gewehr 98과 별반 다를바가 없고, 단지 탄의 구경 및 장약량을 늘리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 총의 스케일을 크게 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소총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전차를 근거리에서 관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실제로 T-Gwehr의 경우 전차에 대한 실험을 한 결과 100미터에서는 약 20 mm, 300미터에서는 약 15 mm정도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T-Gewehr는 독일군에 의해 총 15,800정이 생산되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가장 널리 쓰인 대전차 소총으로 평가되었고, 이 실적은 최초의 대전차 소총치고는 꽤 성공적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 일선에서 나왔던 평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요. 1918 탱크 게베어의 경우 근거리에서 장갑판을 어느정도 관통시킬 수 있는 장점은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관통한 탄두가 안에 있는 승무원들을 효과적으로 사살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장갑 관통만 생각하고 만든 녀석이라는 단점이 있었고, 사거리가 어느정도 떨어지면 심각하게 관통력이 떨어지고 장갑의 경사도가 변해도 관통력이 심각하게 변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대전차 소총으로서 요구했던 능력보다는 약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T-Gewehr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것은 이러한 관통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사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이였습니다. 아무래도 대전차 소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그냥 무식하게 크게 만든 녀석이였던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녀석은 반동이 너무 센 나머지 사수에 대해서 꽤나 큰 부담을 주었으며(양각대와 권총 손잡이가 있었지만, 이 이외에는 충격/반동을 흡수할 수 있는 제어 시스템이 전혀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무게또한 18 kg 수준으로서 일반적인 소총이나 이후 나온 대전차 화기들과 비슷하거나 몇몇 경우에는 오히려 더 무겁고 휴대하기 불편할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전차 소총으로서는 최소한의 성능만 가지고 있지만 그 이외에서는 그리 널리 쓰일만큼 매력적인 녀석은 아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용자에 대한 불편과 더불어 전쟁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전차의 방어력으로 인하여 더이상 효과를 볼 수 없게 된 T-Gewehr의 경우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고, 세계 2차대전 당시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을 정도로 최초로 쓰인 대전차 소총으로서는 너무나도 짧은 실전 사용기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전차 소총이 이후 대전차 로켓 발사기가 등장할때까지 최전선에서 큰 활약을 했고, 오늘날에는 그러한 녀석들이 대물 저격총으로서 쓰이고 있는것을 감안한다면 이 녀석은 성능이 나빴어도 꽤 중요한 화기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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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8 00:27 신고

    제원은 18.5 kg인데 내용은 13kg네요...;;

  2. 2010.10.08 02:11 신고

    12.7X99mm 같은 녀석들과 비교했을때 저 13.2X92mm탄의 관통력은 어느정도인가요?

  3. 2010.10.13 17:00 신고

    음 얘길 들어보면 1차대전때도 기술력의 한계와 전차의 발전으로 큰 성과를 얻기 어려웠다는 얘기인데 그럼 2차대전때 쓰였던 대전차소총같은것은 뭘로 만들어졌길래 그당시 전차를 격파할수있었나요.

    • 2010.10.14 11:28 신고

      2차대전 당시 나온 대전차 소총(예를들어 PTRD-41/PTRS-41)같은 녀석들도 비슷한 아이디어로 나왔어도 성능 자체는 M1918과 다를건 없었습니다. 다만 이 녀석들의 경우 전면 장갑이 아니라 측면이나 후방장갑을 노리도록 설계되어 사용되었으니 상대적으로 마우저 T-Gewehr보다는 많은데서 쓰였지요(저격용으로도 쓰이고 말입니다)

  4. 2011.01.11 12:17 신고

    장탄수 1발의 압박

  5. 2011.02.19 17:02 신고

    대표적인 녀석으로 몇가지 좀만더 알려주세요ㅜㅜ

  6.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4.28 19:13 신고

    wz보다좋네 ..뭐 너무길지도않고 고전적인멋도잇기때문에 근데 한발이라는게 안습 =ㅅ=



사용탄약: .445 Webley Mk.II / .38 ACP
전체무게: 1.24 kg
전체길이: 280 mm
총열길이: 190 mm, 152 mm, 101 mm
장탄수: 6발(.445 Webley Mk.II), 8발(.38 ACP)



리볼버라는 물건은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군용 권총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할 정도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던 화기였습니다. 비록 최대 6발 혹은 7발이라는 장탄수의 한계와 싱글 액션을 사용함으로서 생기는 불편한 점(다시 말해서 매번 공이를 뒤로 젖혀야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은 리볼버의 한계성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근접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기로서, 그리고 반자동은 아니지만 볼트액션 소총보다는 훨씬 더 다루기가 쉽다는 점 덕분에 리볼버는 사병은 아니더라도 장교들이나 기병들의 손에 들려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리볼버는 세계 1차대전이 끝나고 난 뒤 군용으로서는 더이상 큰 메리트를 가지지 못하고 급속도로 몰락을 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리볼버라는것이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근접전을 생각한다면 좋은 화기인것은 사실이였습니다만, 리볼버의 최대 적수라고 불리우는 자동권총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부터는 자동권총의 장점을 이길 수 없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더이상 군용으로서는 설 자리가 없게 되었고, 세계 2차대전까지는 그럭저럭 예전에 쓰던 물량이 남아있었지만 냉전이라는 시기가 시작된 이후 리볼버는 민수용이나 경찰용으로나 팔리게 되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리볼버는 이러한 자동권총의 등장으로 인하여 급속도로 몰락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리볼버라는 존재가 자동권총에 대항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리볼버의 경우 비록 그 구조나 사용 탄환으로 인한 한계점이 있긴 했지만, 만약에 리볼버의 단점이라고 불린 장탄수 문제나 공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자동권총보다는 좀 더 낫거나 얼추 비슷한 성능을 보장할 수 있고, 이런 성능을 보여주게 된다면 그 당시 비싸게 등장하기 시작했던 자동권총한테 그리 쉽게 군용 제식권총의 자리를 내주진 않을거라는 전제 하에 1900년대 당시 리볼버는 꽤 다양한 구조와 디자인, 그리고 작동방식을 사용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할 수 있는데, Webley와 Fosbery가 합작으로 만든 Webley-Fosbery 반자동 리볼버는 자동권총에 대항하기 위해 나왔던 최신식 리볼버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Webley-Fosbery 리볼버의 경우 이 당시 나왔던 자동권총의 특징과 리볼버의 특징을 같이 조합하려고 만든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그 당시 나온 자동권총의 경우 슬라이드를 이용하여 약실에 새로운 탄약을 급탄하고, 발사후 슬라이드가 후퇴했을때 이 후퇴한 슬라이드가 공이를 뒤로 젖혀주기 때문에 싱글액션 리볼버와 다르게 싱글액션 자동권총들의 경우 처음 장전시에만 공이를 젖혀주고, 이후에는 그럴 필요 없이 탄이 모두 소모될때까지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국-인도군 소속의 조지 빈센트 Fosbery 중령이 고안한 이 디자인은 이 자동권총에서 처음 등장한 슬라이드를 이용한 작동방식을 그대로 리볼버의 디자인에 이식시켰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시도 덕분에 Webley-Fosbery 리볼버의 경우 리볼버 역사상 최초로 "후퇴가 가능한 실린더 탄창"을 구현한 물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리볼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실린더 뿐만 아니라 방아쇠 및 권총 손잡이와 공이를 제외한 모든 부품이 뒤로 후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리볼버의 특성상 슬라이드라는 부품을 도입시킬 수 없고 탄창의 경우 실린더 방식이라 자동권총처럼 탈부착이 가능한 단/복열 탄창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총열을 포함한 모든 부품이 뒤로 후퇴할 수 있게 디자인이 된건 Webley-Fosbery 리볼버의 고유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작동방식으로 인하여 Webley-Fosbery 리볼버의 경우 싱글액션 방식의 자동권총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이 가능한 물건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리볼버의 경우 일반적인 리볼버와 다르게 일일이 공이를 젖혀줘야 할 필요가 없으며, 처음 실린더에 탄을 장전한 다음 방아쇠 위에 있는 실린더 포함 부품들을 뒤로 당겨서 장전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당시 사용되었던 싱글액션 자동권총들과 같은 성능을 구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점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리볼버와 동일한 내부구조와 작동방식, 그리고 실린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동권총으로서의 특징 뿐만 아니라 일반 리볼버로서의 특징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동권총과 리볼버의 적절한 조합으로 Webley-Fosbery 리볼버는 그 당시 나온 리볼버중 가장 기발한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녀석의 경우 그 당시 웨블리 리볼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영국군 장교들이 사비로 구입을 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들고 다니는 경우가 꽤 있었고, 타겟 슈팅을 전문적으로 하는 권총 사격가들의 경우 이러한 특이한 작동방식 덕분에 방아쇠압이 낮다는 장점 덕분에(일반적인 리볼버는 공이를 뒤로 젖혔다 쏘지 않을 시에는 방아쇠압이 꽤 높아서 쓰기가 불편했습니다만, 이 녀석은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이 무조건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Webley-Fosbery 리볼버 디자인의 경우 일반적인 리볼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리볼버들과 부품 호환성이 굉장히 낮았고, 고유 작동방식의 특성상 팔힘이 세지 않은 사람이라면 총이 제대로 새로운 탄약을 급탄할 수 없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일반 웨블리 리볼버보다 훨씬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영국군에 제식 권총으로 채용되지는 못했고, 이러한 저조한 판매실적 때문에 웨블리사의 경우 1915년 이 녀석에 대한 추가적인 생산을 전면 중단함에 따라 생산량이 고작 5천정밖에 생산하지 못한것을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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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01 18:39 신고

    이거 퍼시픽 에서 썻던걸로 기역하는데 ㅋㅋ



사용탄약: 8 x 50 mm R Lebel
전체무게: 9.07 kg
전체길이: 1,143 mm
총열길이: 470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240발



참호전이라고 불렸던 세계 1차대전은 최초로 기관총이 엄청난 양으로 쓰이고, 그 엄청난 양으로 인해 수백만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첫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기관총은 여럿 전쟁에서 쓰이긴 했지만,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세계 1차대전은 전투의 특징과 기관총의 장점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 거의 모든 전쟁에서 기관총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상 세계 1차대전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은 제식 기관총을 적어도 1개 이상은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됨으로서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전투에서 효과적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대세였다고 하긴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수냉식 기관총에 국한된 이야기로서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혹은 공랭식 기관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주목을 받았던 경기관총의 중요성과 다르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만, 죽치고 앉아서 총열이 과열되도록 쏘는것이 일반적이였던 1차대전 당시 전투 양상과 비교했을때 수냉식 기관총은 공랭식 기관총을 압도하는 우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2차대전까지 공랭식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들은 모두 묻혔다고 하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세계 2차대전에 비하면 꽤 적은, 그리고 낮은 생산량을 기록했지만 1차대전 당시에도 "보병이 들고 같이 움직이며 쏠 수 있는 기관총"에 대한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이에 몇몇 군에서는 독자적으로 경기관총을 발명하거나 다른 곳에 제작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제식 경기관총으로써 쓰이고, 다른 연합군에도 많은 양이 퍼졌던 쇼샤라는 경기관총도 이러한 경기관총의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나온 녀석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쇼샤의 경우 경기관총이라는 범주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세계 1차대전 이전에 개발이 시작된 녀석이다 보니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나 우습게 생기고 전체적인 작동방식도 많은 면에서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러 특징들을 보면 이 녀석도 확실히 경기관총이라는 범주의 메리트를 확실히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일단 이 녀석은 경기관총이라는 이름에 맞게 무게가 9 kg정도로서 비록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 무거운 수준이지만 그 당시 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가벼웠다는 평가를 받았고, 발사속도는 약 분당 240발로서 빠른 발사속도로 반동 컨트롤이 어렵지 않아 자동사격시에도 정확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20발 박스탄창을 사용함으로서 총열에 대한 과열걱정이 사라지고 운용인원도 벨트식을 사용했을때와 다르게 1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그 당시 쓰였던 중기관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괜찮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쇼샤의 경우 이러한 장점들과는 다르게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녀석으로 기억된다고 할 수 있는데, 당장 작동방식이라고 쓴 롱 리코일의 경우 꽤 긴 총열과 노리쇠과 긴 거리를 왕복하는 특징 때문에 반동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총의 경우 꽤 조밀하게 설계되고 탄창도 잔탄 확인을 위해 옆쪽에 구멍이 크게 뚤어놓음으로서 1차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후였던 진흙탕에서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의 경우 탄창 뒤에 보조 손잡이가 달린 기형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서서 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고, 경기관총용으로 운용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 특수 제작된 탄창의 설계 조차도 기형적으로 만들어져 재장전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한 탄창당 담을 수 있는 탄약의 양이 20발 밖에 되지 않는등 끊임없는 문제점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문제는 사실상 쇼사가 "세계 1차대전 당시 쓰인 가장 최악의 기관총"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세계 1차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새로 개발한 경기관총인 FM 24/29에 의해 대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총 자체의 성능은 둘째치더라도 그 당시 경기관총을 만드는 곳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생산속도가 빠른 녀석인지라 쇼샤의 경우 성능과 별개로 많은 양이 생산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1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연합이였던 미국이나 러시아같은 곳에서도 꽤 많은 수를 수입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물론 실제 성능을 확인하고 나서는 대부분 폐기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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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7 13:46 신고

    생긴건 그럴싸 한데
    총탄을 보니 조루보다 더 심한 발기부전 정도?

  2. 2011.12.02 22:23 신고

    들은 바로는 미군용 '30.06 스프링필드'를 사용하도록 만든 모델은 말 그대로'개악'이라고 하던데
    총이 고장나는 건 둘째치더라도 내부부품이 박살나는 게 흔하다고 들었스비낟.

















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871 g
전체길이: 222 mm
총열길이: 98 mm
장탄수: 8발 박스탄창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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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1 15:39 신고

    2차대전 최고의 득템! 루거!

  2. 2010.05.02 02:47 신고

    모,,이거 지난번에 kr 98소총이랑 같이 팔던데.. 머//ㅋㅋ





























사용탄약: 7.62 x 25 mm Borchardt
전체무게: 1.16 kg
전체길이: 355 mm
장탄수: 8발 박스탄창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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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8 21:49 신고

    왠지 헬싱에 나온 늑대인간이 쓰는 총과 비슷?

  2. 2010.02.09 06:55 신고

    개머리판을 달았는데 어..어울려?




















사용탄약: 6.5 x 50 mm Arisaka
전체무게: 3.95 kg
전체길이: 1,280 mm
총열길이: 800 mm
장탄수: 5발 클립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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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3 18:52 신고

    덴노헤이카 반자이~~



사용탄약: 7.92 x 57 mm Mauser
전체무게: 17.8 kg(화기) + 3 kg(냉각수)
전체길이: 1,445 mm
총열길이: 720 mm
급탄방식: 100발, 20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450발



19세기 말 맥심이라는 사람에 의해 개발된 맥심 중기관총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전쟁의 양상을 확연하게 바꾼 녀석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일전에 게틀링이 개발한 자동화기가 있었지만, 그 게틀링과 다르게 맥심은 전자동으로 사격이 가능한 최초의 기관총이였고, 이 기관총이 등장한 이후 전선에서는 라인배틀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참호전이라는 전술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지요. 이때 등장한 참호전은 실질적으로 오늘날 전쟁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만, 기관총이라는 분야는 오늘날에도 세계의 모든 군대들이 생산 및 사용을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지요.

맥심이 개발한 중기관총은 사실상 참호에서 상대방 참호에서 나오는 병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다 보니 오랜시간 사격을 하면서 내구성이 어느정도 뛰어나야 하는데, 이러한 문제 때문에 맥심 중기관총을 비롯한 라이센스 생산품(대표적으로 독일의 MG-08과 영국의 빅커스 중기관총)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운용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요. 물론 기관총을 들고 다닌다는 발상이 아니라 한곳에 박아놓고 적을 섬멸할때까지 계속 쏴야 하기 때문에 수냉식 총열을 사용한다는 점은 나중에 맥심같은 중기관총들이 1차대전 이후 큰 빛을 발하지는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온것이 1차대전 말기부터 등장한 경기관총들인데, 경기관총들의 경우 수냉식 총열이 아니라 공랭식 총열을 사용하고, 다소 간편한 급탄 방식(벨트를 사용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탄창 급탄식)을 사용하고, 이러한 점 덕분에 휴대가 간편하면서 무게도 어느정도 낮다는 특징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만, 경기관총이 빛을 발하게 되는 시기는 세계 1차대전이 아니라 2차대전 부터였고, 1차대전 당시에 나왔던 경기관총들은 너무 늦게나와 많이 쓰이질 못하거나, 일찍 나왔어도 나쁜 내구성과 평가를 받은게 대부분이였지요.

맥심은 확실히 우수한 성능의 중기관총입니다. 맥심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참호전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꽤 쓸만한 내구성을 보여주었는데, 경기관총을 새로 개발해서 모험을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맥심을 조금 더 가볍게 개조해서 사용하면 훨씬 쓰기도 편하고 내구성도 좋아서 신뢰성도 괜찮을 거라는 의견으로 만들어진 녀석이 바로 MG08/15라는 바리에이션입니다.


MG08/15 경기관총은 사실상 베이스가 MG08, 그러니깐 맥심의 독일군 버전이다 보니 맥심과 전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여러가지 개량을 실시한 것은 꽤나 돋보인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녀석의 경우 기존의 지속 사격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냉식 총열을 계속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지만, 맥심하면 떠오르는 운반용 수레나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개머리판과 권총 손잡이를 달아준 다음에 양각대를 다는 방식으로 개량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점 덕분에 기존의 맥심이 기본 30 kg을 넘어갔던 점에 비해 이 녀석은 수냉식 총열에 냉각수를 채워도 전체무게가 20 kg밖에 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보유하게 되었지요.

MG08/15이 실시한 개량은 사실상 큰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습니다만, 그 효과는 꽤 대단했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 1차대전 당시 맥심의 무게에 학을 떼던 병사들은 20 kg 내외의 새로운 MG08/15의 등장을 환영하였고, 실제로 이 녀석을 운용해본 병사들은 기존의 맥심의 지속 사격력과 신뢰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무게는 한층 가벼워진(물론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아직도 무겁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무게가 줄어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특징 덕분에 이 녀석은 종전 전까지 MG08 기본형보다 4배 더 많은 숫자가 독일군에서 쓰였고, 이후 2차대전 초반에 MG-34/42의 부족으로 1942년 초반까지는 독일군에서 많인 양이 쓰였다고 합니다.

P.S) MG-08/15의 성공 이후 사실 이 녀석을 기반으로 공랭식 총열을 사용하여 무게를 더 줄인 MG-08/18이라는 녀석이 등장하였습니다만, 종전 직전에 개발된 녀석이다 보니 큰 빛을 발하지는 못하였지요.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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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3 12:58 신고

    그러니까 흔히들 슈판다우라고 부르는 게 이녀석임?


























사용탄약: 7.63 x 25 mm,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1.13 kg
전체길이: 312 mm
총열길이: 140 mm
장탄수: 6발 클립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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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5 07:03 신고

    간지 ㅇㅅㅇ. 어떻게 보면 루거보다 더 간지나는 녀석.

  2. 2009.10.25 12:30 신고

    꺄흐응! 이런 간지를.....뭔가 강렬해 보이는 녀석....

  3. 2009.10.25 20:51 신고

    최초의 자동권총은 아니지만 최초의 실용적인 대량 생산 자동권총이죠.
    작동방식은 베레타 M92와 비슷한 플립업 쇼트리코일 입니다.
    처음에는 고정식 탄창에 10발이 들어갔지만 뒤에 기관권총으로 개량된 버전이
    나오면서 탈착식 탄창(10/20/30발)이 사용됩니다.
    영화나 만화에 자주나오는 단골 권총이죠. 젤 최근에 본건 영화 '원티드'에서
    모건 프리먼이 쓰더군요.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3.11 19:32 신고

    허허 ㅋㅋ 왼지 1914 년꺼를 보는느낌일세 90세할아버지에게 주면 ㅇㅅㅇb!이당 ㅋ























사용탄약: .303 British / .30-06 Springfield
전체무게: 13.0 kg
전체길이: 1,280 mm
총열길이: 670 mm
장탄수: 47발/97발 쟁반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 600발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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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4 10:31 신고

    혹시 저건 수냉식입니까?!?

    것보다 첫번째 사진이 심히 왜곡된 듯한...(총몸이랑 총열이 따로 놀고 있어!)

  2. 2010.11.03 18:30 신고

    오 데그챠레프가 생각나는건 왜지??

  3.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7 07:47 신고

    저건 1917년에 만들어져서 2차때도사용햇다능 .... 전설의 기관총!!!
































사용탄약: 7.62 x 54 mm R, 7.92 x 57 mm Mauser
전체무게: 9.1 kg
전체길이: 1,143 mm
총열길이: 584 mm
장탄수: 25발, 30발, 4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450발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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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4 05:08 신고

    통통한게 귀엽네요.

  2. 2009.10.24 10:25 신고

    일본의 뭐시기식 경기관총이 생각나는걸...?

  3. 2011.04.22 17:28 신고

    M1하고 브렌을 떡쳐놓은듯한 디자인이 뭐 여기선 어떤 특징을 지닌건지요?











사용탄약: 7.62 x 54 mm R
전체무게: 64.3 kg
전체길이: 1067 mm
총열길이: 721 mm
급탄방식: 25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600발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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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6 13:35 신고

    저 투박하게 생긴 녀석이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걸 생각하면 뭔가 오묘한 느낌이 듭니다.

  2. 2009.10.16 14:11 신고

    아! 맥심 기관총...
    권총, 소총, 기관총 등등 자동으로 장전되고 발사되는 자동화기의 원조이며,
    세계사를 바꾼 총이죠.

  3. 2009.10.16 15:34 신고

    시모하이허가 스코프도없이쏴서 사수얼굴에맞았다는게 저 총인가요...

    • 2009.10.16 23:54 신고

      시모 하이하라고 하기보다는, 겨울전쟁 당시 소련군이 겪은 일화중 하나라지요. 그만큼 핀란드 병사들의 저격솜씨가 얼마나 우수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랄까요 ㅇㅅㅇ

  4. 2009.10.16 15:43 신고

    왠지 저 기관총을 다루었던 퇴역군인들은 꼬부랑 할배들이 되었을것 같군요.......

  5. 2009.10.17 13:55 신고

    아 커피!

  6.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7 07:53 신고

    맥심 ㅋㅋ 누워서 쏘와서 다리맞은줄도몰랏던 기관총 오옷!! 장하다 소련!!

  7. 2011.02.17 22:55 신고

    참고로 이녀석을 개발한 맥심은 [발명왕]이었어요;;;(커피도 만드셨다는 일화!)





























사용탄약:
.30-30 Winchester
전체무게: 3.1 kg
전체길이: 960 mm
총열길이: 508 mm
장탄수: 6발, 7발 튜브탄창



사진 출처: http://www.deactivated-gu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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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9 11:41 신고

    역시 레버액션 답게 다소 약한 탄을 사용하는 군요 홍홍홍....
    탄환장전구가 어딨지....?

  2. 2009.09.17 01:48 신고

    돌리고픈 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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