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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2.3 kg(철제 개머리판 장착시) / 2.7 kg(목재 개머리판 장착시)
전체길이: 659 mm (개머리판 펼쳤을 시) / 359 mm (접었을 시)
총열길이: 213 mm
장탄수: 32발 박스탄창 (MP-40용 버전도 사용이 가능)
발사속도: 분당 750발
작동방식: 지연방식의 블로우백


두번의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된 기관단총은 기존의 소총보다 휴대하기 편하지만 자동사격을 통해 근접전에서의 화력 우세를 점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비록 기관단총이라는 범주에 대한 이해나 개발을 함에 있어서 참고해야 할 전작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긴 했지만 전시 상황에서 휴대용 자동화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점은 병사에게 큰 위안이 될 만큼 기관단총의 실제 영향력은 생각보다 높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장점이 있었어도 기관단총들의 단점은 쉽게 가려지지만은 않았습니다.

소총보다 휴대가 편하고 자동사격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기관단총은 생각과는 다르게 휴대하기가 무조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기관단총에 대한 이해 부족은 1차대전 말이나 2차대전 초반에 나오기 시작한 기관단총들이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거추장한 모양새를 가지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는데, 이 점과 권총탄의 제한된 유효사거리, 그리고 돌격소총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나온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기관단총이 군용에서 점차 도태되기 시작하는 명분을 제공하게 됩니다.


비록 돌격소총의 등장으로 기관단총의 입지는 좁아졌어도 기관단총의 부피와 무게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저가 기관단총이라는 범주아래 진행되었습니다만 이러한 화기들의 무게 감소는 2차대전 당시 나온 화기들보다 높았을 지 몰라도 부피라는 점에서는 큰 변화를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무게를 줄일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부피가 거기서 거기인 상황이 된 이유는 일반적인 기관단총들의 작동방식이 단순 블로우백이라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MGD사에서 만든 PM9 기관단총은 이러한 기관단총들의 단점을 해결하고자 나온 신작이였습니다.

단순 블로우백 방식은 간단한 구조의 노리쇠가 앞/뒤로 왕복을 하면서 탄을 급탄 및 사격하는 방식인데, 이 작동방식은 내부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생산가격이 낮고 내구성이 높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왕복하는 공간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노리쇠가 기준치 이상의 부담을 받아 위험해질 수 있고 발사속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기관단총으로서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양날의 검을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는데, PM9은 이 단순 블로우백이 아니라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을 사용한것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내새웠지요.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 PM9이 사용한 것은 바로 태엽 스프링과 이를 포함하는 하우징의 사용이였습니다. PM9의 노리쇠는 태엽 스프링 구조와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는데, PM9이 이 태엽 스프링과 이를 포함하는 하우징으로 총을 발사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1) 총알이 발사되면서 장약의 연소시 압력으로 노리쇠가 후퇴된다
2) 노리쇠가 후퇴하면서 이와 연결된 스프링이 감겨지기 시작하면서 후퇴속도를 지연시킨다
3) 노리쇠가 완전히 후퇴하면 스프링이 완전히 감겨지고, 탄피 배출과 더불어 스프링의 장력으로 노리쇠가 전진한다
4) 노리쇠가 전진하면서 탄창의 새로운 탄을 급탄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1)번과 같이 다시 작동이 시작된다


태엽 스프링을 통한 내부구조 개발은 PM9의 부피 감소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단순 블로우백이라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관단총들이 느린 속도로 발사를 하려면 노리쇠의 무게를 무겁게 하거나 왕복거리를 늘려야 하는 것 때문에 부피감소나 무게감소를 일정치 이상으로 할 수 없었던것과 다르게 PM9은 무게나 부피를 큰 걱정없이 줄일 수 있었고, 이는 탄창삽입구와 개머리판을 접을 시의 부피는 오늘날 나오는 기관단총들보다도 작을 만큼 PM9의 휴대성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부피적 감소 성과에도 불구하고 PM9은 본격적인 생산단계에 접어들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부피가 작아서 휴대가 쉽다 할 지라도 그 당시 부피를 완전히 줄인 기관단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군 부대나 경찰이 존재하지 않았고,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다 남겨진 잉여 기관단총 숫자가 너무 많아서 신형화기를 새로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따라 PM9은 긴 총열이나 목재 개머리판을 사용하는 버전이 따로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PM9은 프로토타입 개발 단계에서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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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07 03:12 신고

    기관단총계의 리버레이터라 불리만한 총이군요

  2. 2013.03.21 22:49 신고

    못생긴(?) 총이네요 ㅎㅎ

  3. 2013.06.02 09:52 신고

    신뢰성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긴 하는데... 어떨까요.



사용탄약: 7.5 x 54 mm French / 7.62 x 51 mm NATO
전체무게: 9.75 kg
전체길이: 1,080 mm
총열길이: 600 mm
급탄방식: 벨트
발사속도: 분당 900발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등장한 기관총들은 대게 중기관총과 경기관총으로 나뉘어 개발 및 생산되는것이 일반적이였습니다. 이는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기관총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전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가지 기관총을 단지 한 나라의 제식 화기를 위해 생산한다는 것은 군수체계를 복잡한다는 단점이 존재했었지요.

독일군에 의해 개발된 MG-42는 GPMG(General Purpose Machine Gun, 다목적 기관총)은 이러한 기관총들의 단점을 해결하려 등장한 새로운 장르의 화기였습니다. 개발 초기나 쓰이기 시작했을때 다수의 병사들은 한가지 기관총으로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한다는 MG-34/42의 컨셉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용은 물론이고 공축 기관총이나 대공용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된 MG 시리즈는 2차대전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이 GPMG라는 새로운 장르에 눈을 떠 새로운 기관총을 개발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AA-52는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겪은 고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프랑스군의 주력 다목적 기관총입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재무장을 할 당시 제대로 된 군수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경우 미국이나 영국이 지급해준 개인화기들로 군을 무장시켰는데, 세계대전 당시 노획하여 사용하고 있던 독일군 무기까지 포함되어있던 당시 프랑스군의 군수체계는 말 그대로 엉망이였고, 전투에서 탄약을 급탄하거나 추가 부품을 공급하는것이 상당히 까다로웠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것이 바로 이 기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GPMG의 개발과 다르게 프랑스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약간 독특한 개발사를 거치며 탄생하였습니다. 이는 냉전 당시 프랑스와 미국간의 사이가 좋지 않음으로 인하여 프랑스의 군사체계가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공산진영과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자본진영과 다르게 독자노선을 걷게 됨으로서 생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AA-52은 일반적인 공산권 GPMG나 비 공산권 GPMG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과 탄약을 사용하게 되었지요.


AA-52에 쓰인 7.4 x 54 mm 프렌치 탄약은 1차대전까지 쓰였던 프랑스군의 제식 소총탄환인 8 mm Lebel보다 성능면에서 뛰어나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채택되었고, 마찬가지로 AA-52에서 쓰인 레버 지연방식의 블로우백은 제대로 쓰인다면 강한 파워를 가진 소총탄을 가지고도 낮은 반동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존재했다는것은 AA-52가 이 두 독자 디자인을 잘 배합한다면 다른 GPMG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명작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지만, 실제로 나온 AA-52은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AA-52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내구성이나 디자인적으로 그리 효율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였습니다. 프랑스의 7.4 mm 탄약은 NATO가 제시했던 7.62 x 51 mm 탄약과 큰 차이가 없었긴 했지만 레버 지연방식의 블로우백과 결합했을때 경쟁작인 PKM이나 FN-MAG보다 좋은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고, 양각대 위치나 운반 손잡이가 제대로 균형이 맞지 않게 총을 들게 한다는 점, 그리고 GPMG 치고는 무게가 좀 많이 나가기 때문에 휴대가 불편하다는 점은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의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AA-52가 프랑스군으로부터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를 제공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문제중년님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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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4 14:29 신고

    아, 나 이거 들은 적 있음. 바게뜨제 기관총은 호치키스 이후로 전부 바게뜨 퀼리티라는 전설을 이어나가는 그 물건?



사용탄약: 7.5 x 54 mm French
전체무게: 4.7 kg
전체길이: 1,100 mm
총열길이: 580 mm
장탄수: 10발 박스탄창



세계 2차대전이 지난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돌격소총이라는 장르는 20세기 들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르의 화기라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비록 1944년 처음 등장할때는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이 범주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면서 "보병이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자동화기"라는 점이 부각됨에 따라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들은 각자 자국산 돌격소총이나 다른 국가의 뛰어난 성능을 가진 돌격소총을 사용하는 트렌드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처음 등장하기는 했지만, 돌격소총이라는 장르는 개발과 채용, 그리고 생산이 굉장히 오래걸리는 녀석이였습니다. 물론 총 자체도 볼트액션같은 구식 소총에 비하면 많이 복잡해졌기 때문에 생산하기가 어려운것도 있었습니다만, 돌격소총이라는 녀석은 그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기술을 접목해서 만든 녀석인만큼 거의 모든 국가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총은 아니였고, 이에 따라 냉전 초기에는 많은 국가들이 강대국이 개발한 돌격소총을 빌려 쓰거나 이를 모토로 개발하는 일이 잦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1945년 종전이 될때까지 이렇다 할만한 돌격소총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름 돌격소총이라는 장르의 개발에 많은 고충을 겪은 나라중 하나입니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기존의 다른 국가들이 잘 사용하던 볼트액션 소총이라는 카테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MAS-36이라는 이름의 소총을 사용하였고, 소총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평을 받지는 않았던지라 딱히 쓰는데 불평/불만이 접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각 강대국들이 자국산 돌격소총을 만드거나 다른 나라의 소총의 디자인 혹은 내부구조를 본따 만드는것과 다르게 자국산 소총을 새로 개발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결과로 나온 물건이 바로 MAS-49 소총입니다.

MAS-49은 NATO군의 표준을 따라야 하지 않아도 되는 프랑스군의 장점아닌 장점을 살려서 프랑스 내에서 직접 개발한 7.5 x 54 mm라는 탄약을 사용하였고, 작동방식도 1901년 당시 프랑스군에 채용하기 위해 기초적인 설계만 완성되었던 가스 직동식(오늘날 M16에서 볼 수 있는 그 작동방식)을 응용했다는 점에서 나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하지만 해당 화기의 경우 그 당시 등장하던 전투소총/돌격소총들과 다르게 반자동만 가능한 소총이라는 점에서 나름 차별화를 생각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반자동 소총이라는 점이 MAS-49의 큰 단점으로 부각되게 됩니다.


비록 MAS-49가 2차대전 말 다양한 종류의 소총 사용으로 소총 통일화가 사실상 사라진 프랑스군(이 당시 MAS-36 볼트액션 소총을 포함해서 리엔필드 No.4, M1917 소총이나 독일제 Kar-98k도 쓰일만큼 프랑스군이 제식소총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복잡했다고 할 수 있지요)을 통일했다는 점에서 MAS-49 소총 시리즈는 나름 프랑스군에 의의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소총의 카테고리 자체라는 한계상 보병전에서 상대방이 돌격소총을 가지고 있다면 수적으로 우세하더라도 화력에서는 밀린다는 단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MAS-49가 단지 단점만 가지고 있던 문제작이라는것은 아닙니다. 가스 직동식이라는 독특한 작동방식을 사용한 반자동 소총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총 자체의 신뢰성은 군용으로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고, 특수한 리시버 구조 덕분에 5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발 및 채용된 광학 조준기(제식명은 APX 806L)를 사용했을 시에는 800미터 밖의 목표물도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돌격소총들과 차원이 다른 정확도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점 덕분에 MAS-49 시리즈 화기들은 바리에이션을 포함하여 약 30만정 가까이 생산되었고, 79년 FAMAS 시리즈 돌격소총이 등장하기 전까지 프랑스군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할 만큼 성능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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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03 23:02 신고

    유럽 짱개의 고대 기술은 라팔은 명황성 외계인과 대 행성 결전을 벌였고 그리고 명황성 퇴출
    소총이........ 민수용 삘이나는데 =ㅅ= 물건은 괞찮고 역시 유럽 짱개도 만만치 않은거였군

  2.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1.05 14:07 신고

    뭐미국도 m14를만들엇지만(다음에 sr16을만들엇죠??).. 프랑스는 발전이없엇던거군요 .

    • 2011.11.10 01:07 신고

      발전이 없었다기 보다는 그냥 대세를 따르지 않은거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뭐 어짜피 그 동안 인도차이나쪽에서 말썽을 일으킨것 빼고는 크게 전쟁한게 없으니
      파마스를 늦게 채용해도 딱히 문제될일은 없었죠

 


사용탄약: 7.62 x 51 mm NATO
전체무게: 4.53 kg
전체길이: 1,040 mm
총열길이: 500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세계 2차대전이 지난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돌격소총이라는 장르는 20세기 들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르의 화기라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비록 1944년 처음 등장할때는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이 범주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면서 "보병이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자동화기"라는 점이 부각됨에 따라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들은 각자 자국산 돌격소총이나 다른 국가의 뛰어난 성능을 가진 돌격소총을 사용하는 트렌드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처음 등장하기는 했지만, 돌격소총이라는 장르는 개발과 채용, 그리고 생산이 굉장히 오래걸리는 녀석이였습니다. 물론 총 자체도 볼트액션같은 구식 소총에 비하면 많이 복잡해졌기 때문에 생산하기가 어려운것도 있었습니다만, 돌격소총이라는 녀석은 그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기술을 접목해서 만든 녀석인만큼 거의 모든 국가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총은 아니였고, 이에 따라 냉전 초기에는 많은 국가들이 강대국이 개발한 돌격소총을 빌려 쓰거나 이를 모토로 개발하는 일이 잦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1945년 종전이 될때까지 이렇다 할만한 돌격소총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름 돌격소총이라는 장르의 개발에 많은 고충을 겪은 나라중 하나입니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기존의 다른 국가들이 잘 사용하던 볼트액션 소총이라는 카테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MAS-36이라는 이름의 소총을 사용하였고, 소총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평을 받지는 않았던지라 딱히 쓰는데 불평/불만이 접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각 강대국들이 자국산 돌격소총을 만드거나 다른 나라의 소총의 디자인 혹은 내부구조를 본따 만드는것과 다르게 시대적으로 뒤쳐지는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 선택이 바로 MAS-49라는 물건입니다

MAS-49은 NATO군의 표준을 따라야 하지 않아도 되는 프랑스군의 장점아닌 장점을 살려서 프랑스 내에서 직접 개발한 7.5 x 54 mm라는 탄약을 사용하였고, 작동방식도 1901년 당시 프랑스군에 채용하기 위해 기초적인 설계만 완성되었던 가스 직동식(오늘날 M16에서 볼 수 있는 그 작동방식)을 응용했다는 점에서 나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하지만 해당 화기의 경우 돌격소총이 아닌 반자동 소총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녀석인지라 보병전에서 상대방이 돌격소총을 가지고 있다면 수적으로 우세하더라도 화력에서는 밀린다는 단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였고, 이는 NATO에 속하지 않았어도 다른 나라의 침공에는 어느정도 대비를 해야하는 프랑스군으로서는 나름 골치아픈 사안이였다 할 수 있지요.


물론 프랑스가 오늘날까지 MAS-49을 사용하고 있다는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직접 개발한 불펍형 돌격소총인 FA-MAS를 사용하고 있고, MAS-49의 경우 79년 정식으로 프랑스군 제식 소총에서 퇴역을 한지라 더이상 이에 관한 문제는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만 1979년까지 MAS-49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리고 그 와중에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크나큰 패배를 당한 프랑스군으로서는 임시적이라도 쓸만한 돌격소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프랑스군을 위해 나온 물건이 바로 FA-MAS Type 62 전투소총입니다.

FA-MAS Type 62의 경우 이름은 단일 물건이지만 사실 MAS사에서 1952년부터 62년까지 약 10년여에 걸친 40개의 프로토타입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 물건중 하나입니다. 해당 40개의 프로토타입 디자인들의 경우 FA-MAS Type 62와 비슷한 물건도 있었고 전혀 다른 디자인이나 컨셉의 물건도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화기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보면 프랑스군이 대충 어떤 성능을 가진 화기를 원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해당 40개의 디자인,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나왔다고 할 수 있는 Type 62을 보았을때 프랑스군이 원했던 물건은 놀랍게도 "NATO군이 쓰고있는 디자인이나 성능을 최대한 카피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Type 62의 경우 숫제 벨기에에서 개발한 FN-FAL 전투소총의 디자인을 카피했다고 할 정도까지 참고한 물건이고, 다른 물건들도 디자인은 좀 달라보일지 몰라도 사용 탄환이 여태까지 프랑스군이 쓰던 7.5 mm탄이 아닌 NATO표준의 7.62 x 51 mm NATO탄이라는 것을 보면 프랑스군이 NATO에서 나와서 독자적인 편제를 갖춘 독립국가로 성장하려고 한 시도와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는 직/간접적으로 NATO에 포함되지 않았어도 사실상 프랑스군의 경우 NATO나 NATO에 속한 국가들의 무기를 최대한 비슷하게나마 만들어 써보려는 시도를 몇차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FA-MAS Type 62의 경우 프랑스군에 채용될 만큼 퀄리티가 높거나 가격대비 성능이 높은 물건은 아니였고, 총 자체도 7.62급 전투소총인지라 나름 한계를 가졌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이 물건을 MAS-49을 대체할 물건으로 채용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때 쓰인 62식 소총의 대검이 이후 프랑스군의 제식 소총으로 선정되는 FA-MAS 돌격소총에 쓰이는등 FA-MAS와 해당 소총은 나름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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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15 17:15 신고

    너_FAL이랑_닮았다.jpg

  2. 2011.09.15 21:42 신고

    음식은 맛있지만 돌격소총은 이거건 지금쓰는 파마스건 어딘가 삐걱거리는 나라 프랑스..;;

  3. 2011.09.19 15:02 신고

    개인화기 부분에서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준 부분이 많은 프랑스이지만....

    정작 자신들 무기는 그다지 좋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4.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1.11 20:01 신고

    이것도어째..반자동이라서 너무한다는. .



사용탄약: 8 x 50 mm R Lebel
전체무게: 9.07 kg
전체길이: 1,143 mm
총열길이: 470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240발



참호전이라고 불렸던 세계 1차대전은 최초로 기관총이 엄청난 양으로 쓰이고, 그 엄청난 양으로 인해 수백만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첫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기관총은 여럿 전쟁에서 쓰이긴 했지만,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세계 1차대전은 전투의 특징과 기관총의 장점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 거의 모든 전쟁에서 기관총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상 세계 1차대전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은 제식 기관총을 적어도 1개 이상은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됨으로서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전투에서 효과적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대세였다고 하긴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수냉식 기관총에 국한된 이야기로서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혹은 공랭식 기관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주목을 받았던 경기관총의 중요성과 다르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만, 죽치고 앉아서 총열이 과열되도록 쏘는것이 일반적이였던 1차대전 당시 전투 양상과 비교했을때 수냉식 기관총은 공랭식 기관총을 압도하는 우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2차대전까지 공랭식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들은 모두 묻혔다고 하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세계 2차대전에 비하면 꽤 적은, 그리고 낮은 생산량을 기록했지만 1차대전 당시에도 "보병이 들고 같이 움직이며 쏠 수 있는 기관총"에 대한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이에 몇몇 군에서는 독자적으로 경기관총을 발명하거나 다른 곳에 제작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제식 경기관총으로써 쓰이고, 다른 연합군에도 많은 양이 퍼졌던 쇼샤라는 경기관총도 이러한 경기관총의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나온 녀석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쇼샤의 경우 경기관총이라는 범주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세계 1차대전 이전에 개발이 시작된 녀석이다 보니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나 우습게 생기고 전체적인 작동방식도 많은 면에서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러 특징들을 보면 이 녀석도 확실히 경기관총이라는 범주의 메리트를 확실히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일단 이 녀석은 경기관총이라는 이름에 맞게 무게가 9 kg정도로서 비록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 무거운 수준이지만 그 당시 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가벼웠다는 평가를 받았고, 발사속도는 약 분당 240발로서 빠른 발사속도로 반동 컨트롤이 어렵지 않아 자동사격시에도 정확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20발 박스탄창을 사용함으로서 총열에 대한 과열걱정이 사라지고 운용인원도 벨트식을 사용했을때와 다르게 1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그 당시 쓰였던 중기관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괜찮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쇼샤의 경우 이러한 장점들과는 다르게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녀석으로 기억된다고 할 수 있는데, 당장 작동방식이라고 쓴 롱 리코일의 경우 꽤 긴 총열과 노리쇠과 긴 거리를 왕복하는 특징 때문에 반동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총의 경우 꽤 조밀하게 설계되고 탄창도 잔탄 확인을 위해 옆쪽에 구멍이 크게 뚤어놓음으로서 1차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후였던 진흙탕에서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의 경우 탄창 뒤에 보조 손잡이가 달린 기형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서서 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고, 경기관총용으로 운용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 특수 제작된 탄창의 설계 조차도 기형적으로 만들어져 재장전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한 탄창당 담을 수 있는 탄약의 양이 20발 밖에 되지 않는등 끊임없는 문제점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문제는 사실상 쇼사가 "세계 1차대전 당시 쓰인 가장 최악의 기관총"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세계 1차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새로 개발한 경기관총인 FM 24/29에 의해 대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총 자체의 성능은 둘째치더라도 그 당시 경기관총을 만드는 곳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생산속도가 빠른 녀석인지라 쇼샤의 경우 성능과 별개로 많은 양이 생산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1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연합이였던 미국이나 러시아같은 곳에서도 꽤 많은 수를 수입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물론 실제 성능을 확인하고 나서는 대부분 폐기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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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7 13:46 신고

    생긴건 그럴싸 한데
    총탄을 보니 조루보다 더 심한 발기부전 정도?

  2. 2011.12.02 22:23 신고

    들은 바로는 미군용 '30.06 스프링필드'를 사용하도록 만든 모델은 말 그대로'개악'이라고 하던데
    총이 고장나는 건 둘째치더라도 내부부품이 박살나는 게 흔하다고 들었스비낟.



사용탄약: 5.56 x 45 mm NATO
전체무게: 3.61 kg(F1) / 3.8 kg(G2)
전체길이: 757 mm(F1) / 965 mm(G2)
총열길이: 448 mm
장탄수: 25발 박스탄창, 30발 STANAG
발사속도: 분당 900발 ~ 1100발


 
2차대전 당시 독일에게 굴욕적으로 패배를 했던 프랑스는 연합군의 연승행진 덕분에 1944년 말 독일의 손아귀로부터 해방되었고, 그에따라 세계 2차대전이 끝나는 시기부터는 군대를 재편성하고 재무장을 해야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당장 프랑스의 경우 독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시기부터 자국산 소총에 대한 개발 및 생산이 중지되었던지라 소총을 다시 개발할 기반시설이 부족했고, 2차대전 종전에 등장한 돌격소총이라는 물건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다른 나라들이 돌격수총을 개발 및 채용하는 상태에서 자국만 돌격소총이 아닌 고전적인 볼트액션 소총이나 반자동 소총을 채용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종전과 동시에 새로운 돌격소총을 개발하기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게 되었지요.

프랑스의 경우 사실상 잘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돌격소총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이 있었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개척정신이 강했기 때문에 1950년 초반까지 돌격소총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 및 개발을 실시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경우 돌격소총탄으로 미국이 개발한 7.62 mm탄은 물론이고 StG-44에서 쓰인 7.92 mm Kurz탄, 그리고 궁극적으로 돌격소총탄으로는 실패한 .30 카빈탄까지 연구하면서 여러가지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새로운 돌격소총에 대한 채용을 기대했습니다만, 이 당시 나온 프로토타입들(한두정이 아니라 무려 수십정에 이릅니다)이 모두 군용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그 당시 프랑스 내의 유명한 개인화기 관련 회사인 MAS(2차대전 당시 사용된 MAS-36도 이 회사에서 개발한 물건이지요)에서 개발한 MAS-49을 당분간 쓰도록 결론을 짓게 되었지요.


MAS-49은 오늘날 잘 알려지지 않은 소총중 하나로서 2차대전 이후에 개발된 군용 소총으로는 특이하게 NATO 제식탄으로 선정된 7.62 x 51 mm NATO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7.5 x 54 mm탄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반자동 기능만 쓸 수 잇도록 만들어진, 굉장히 레어하고 재미있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의 경우 성능과 가격, 그리고 전체적인 성능을 떠나서 반자동만 사용하고 프랑스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탄을 썼다는 점에서 일찍이 많은 불만을 만든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프랑스의 경우 2차대전이 끝난 시점을 방금 지난지라 당분간은 전쟁을 치루지 않을거라 예상했고, 그에따라 새로운 소총을 도입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더군다나 국방예산도 빠듯한 시점에서, 새로운 소총의 개발 및 채용은 너무 많은 돈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베트남전이 일어나기 전에 베트남 내 프랑스 주둔군과 북베트남군이 싸운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당시 북베트남의 경우 소련과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군을 뛰어넘는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결국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서 베트남에서 철수하는 일이 발생하였지요. 물론 프랑스 자체는 2차대전 당시 많은 전력을 상실한 나라인지라 전쟁을 할 형편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지만 북베트남을 상대로 치룬 전쟁에서 지게되지 프랑스 군부에서는 다소 당혹하게 되었지요(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프랑스를 깨부셨으니 프랑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지요)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만, 돌격소총이 채용되는 시점에서 자국산 반자동 소총만을 고집한 프랑스 군부의 책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장 인도차이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는 시점에서 북베트남군은 중국과 소련이 지원해준 AK-47 및 56식 소총에 대한 사용이 가능했고, 그에따라 자동화기를 상대로 반자동 소총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는 점이라고 결론이 나오게 되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는 1950년 이후 그만두었던 돌격소총 개발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지요(새로운 돌격소총이 나올때까지는 MAS사에서 H&K의 G3와 HK-33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게 됩니다)

프랑스가 실시한 새로운 돌격소총 사업은 FAMAS(영어로 직역하면 Rifle of the Saint-Étienne's Weapon Factory라고 하여서 대충 번역하면 Saint-Étienne이라는 공장에서 만든 새로운 소총이라는 뜻이 됩니다)라는 이름으로 1967년부터 실시되었는데, 이 당시에도 사실상 많은 프로토타입이 나왔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불펍방식을 사용하고 그 당시 나토 제식탄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던 5.56 x 45 mm NATO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였고, 수년간의 노력끝에 나온 화기가 바로 오늘날 잘 알려진 FAMAS라는 돌격소총입니다.


FAMAS는 1978년부터 프랑스군에 제식으로 선정되어(개발은 1975년 끝이 났고, 이후에 군용 화기로 적합한지 여러 테스트를 거치면서 3년을 소요하게 됩니다) 오늘날 프랑스군 일선은 물론이고 후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돌격소총인데, 이 녀석의 경우 프로토타입 때부터 디자인 되었던 불펍방식의 디자인을 사용하고 5.56 mm 나토탄을 사용하는 녀석으로서 오늘날 유럽에서 나온 돌격소총중에서는 꽤나 유명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FAMAS의 경우 일단 프랑스가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여러 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실전 평가가 나올거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보면 평가가 꽤 레어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대부분의 리뷰들의 경우 사실상 외관상이나 게임상의 성능만 언급하지, 실총의 언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FAMAS의 경우 잘 알려진 외관과 다르게 불투명한 성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인 스펙으로도 어느정도 성능이 나오는지는 짐작할 수 있지요.


FAMAS 소총에서 지적될 수 있는 문제는 몇가지가 있는데, 일반 첫번째 나온 F1의 경우 25발 박스탄창을 사용하고 5.56 mm 나토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늘날 나토 제식 표준탄창이라고 불리는 STANAG탄창과 호환이 가능할것이라 생각될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 FAMAS F1의 경우 호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토군에서 사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후기형인 G2에서는 이것이 STANAG 탄창으로 바뀌게 됨으로서 해결되었습니다만, 아직 전군이 G2로 갈아타지 못한 이상, 앞으로 계속적으로 지적될 문제인것은 부정할 수 없지요. 두번째 단점은 발사속도인데, FAMAS F1이나 후기형인 G2의 경우 굉장히 빠른 발사속도(F1은 분당 900발에서 1000발, G2는 분당 1000발에서 1100발까지 됩니다)을 가졌고, 이에따라 자동발사시에 5.56 mm일지라도 반동이 상당하다는 문제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총 자체도 3 kg 후반대이고 반동제어를 위해서 양각대가 기본옵션으로 나오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돌격소총보다는 경기관총에 가까운 발사속도 때문에 병사들 사이에서도 정확도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FAMAS 패밀리의 경우 스펙상으로는 큰 문제때문에 프랑스군에서 별로 좋지않은 평가를 받을듯 싶습니다만, 실상을 보면 그렇게 나쁜 녀석이라고 평가되는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요. 프랑스군 병사들의 경우 FAMAS을 꽤 괜찮은 내구성을 가졌고, 전투에서 믿을만한 녀석이라고 칭찬을 하고 있고, 이에따라 총 14개국에서 FAMAS가 제식 및 소수가 사용되는 성공을 얻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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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9 01:52 신고

    현역 소총 중에서 가스압 작동방식이 아닌 레어 소총이죠.
    G3나 HK33도 가스압 작동식이 아니긴 하지만....

  2. 2009.09.29 04:30 신고

    현대 돌격소총 중에서 MG3랑 연사력 놓고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총기!! 크아~이제 보편적으로 알려진 총기 리뷰들이 업뎃업뎃!!

  3. 2009.09.29 15:04 신고

    파마스 이름 풀이하니 더럽게 기네 [.....]

  4. 2009.09.29 15:18 신고

    어이쿠, 1초에 16발이라니.....

  5. 2009.12.06 20:38 신고

    저기요, 30발들이 탄창하고 25발들이 탄창하고 탄환 크기가 같은건가요..?

    그리고, 30발들이 탄창은 저 위에있는 사진과 같은 모양인가요..?

  6. 2010.11.02 18:41 신고

    아나 FAMAS가 저렇게 긴걸 줄인거로군

  7. 2010.11.03 12:49 신고

    흠. 질문이요! 저기있는 파마스의 ┌┐요런 모양은 먼가요? 분리가능할까요?

    추가질문 파마스 같은경우 연사력이 장난아닌데 반동조절은 가능한가요?

    • 2010.11.03 14:07 신고

      ㄷ자로 생긴것은 유탄 발사기에 달린 조준기(총류탄이나 유탄 발사기 둘다 호환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이고, 반동조절은 5.56급이라 완전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다만 분당 1천발 수준이 누구 집 개소리는 아닌지라 완전자동보다는 점사를 더 많이 쓴다고 하더군요)

  8. 2011.02.27 13:01 신고

    FAMAS하면 분당 1000발의 위엄이 생각남

  9. 2011.07.18 13:55 신고

    1. 저 풀네임 뭐죠? 무섭지 말입니다!(위대한 군대를 위한 돌격용 소총정도로 해석했습니다만...)
    2. 저 연사력은... 참호 분쇄용 소총인거 같지 말입니다.

  10. 2011.10.10 23:05 신고

    제 책에는 탄알이 5.56mmX45 Type France라는데 이건 그러면 나토랑 다른탄인지 아니면 같은건지 모르겠네요.;



사용탄약: 7.5 x 54 mm
전체무게: 9.75 kg
전체길이: 1080 mm
총열길이: 600 mm
장탄수: 25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450발



세계 1차대전을 대표하는 전쟁의 양상은 누가 뭐래도 참호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참호전으로 인해서 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이 참호전으로 인해서 각 국가들은 전술과 전략, 그리고 기관총이라는 물건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 일어난 세계 2차대전은 참호전이 주종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러 전투에서 참호전은 엄폐해서 공격을 하는 적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지요.

세계 1차대전 당시 참호전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단연 기관총이라는 녀석이였습니다. 참호당 몇정씩 지급되는 기관총은 참호사이의 공간을 건너려는 병사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잔인성을 보여주었고, 기관총에 대한 위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국가들도 참호전을 겪으면서 기관총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으로 인해서, 혹은 세계 1차대전 덕분에 기관총이라는 물건은 오늘날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지요.


궁극적으로 세계 1차대전 당시 사용된 주요 기관총들의 경우 중기관총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짜피 그리 한번 참호에 거치하면 줄기차게 사격하도록 고안된 녀석들인지라 지속 사격능력 및 정확도를 위해서 지나치게 무거워졌었습니다. 물론 세계 1차대전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가 크게 등장하진 않았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사실상 참호전에 대한 양상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무작정 중기관총만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게 되었지요.

실제로 1차대전 이후 각 나라마다 중기관총을 지속적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경기관총이라는 물건을 개발하기 시작하는데, 프랑스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사실 세계 1차대전부터 경기관총이라는 개념을 운용해온 몇 안되는 나라였고, 화기 목록을 보면 프랑스의 경우 쇼사라는 녀석이 제식 경기관총으로 운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영국도 사실 그 당시 루이스 경기관총을 운용했지요)


쇼사라는 녀석은 Mle 1915라는 이름으로 프랑스군에서 제식 기관총으로 활약한 녀석인데, 이 녀석의 경우 사실 생긴것은 굉장히 특이한 녀석으로서 세계 1차대전 당시 큰 성과를 거둔 녀석이였습니다만 정작 프랑스군 내에서는 불만의 대상이 되어왔던 녀석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 탄창 급탄방식에 공랭식인것은 큰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만 총 내부가 복잡하기 때문에 고장이 자주 나는 현상이 일어났고, 탄창 자체도 사실상 많이 뚫려 있는 녀석인지라 먼지가 들어가서 잼이 발생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탄창의 2/3은 거의 잼 발생 때문에 사용하지도 못하고 버려졌다고도 합니다) 또한 총 디자인 자체도 인체공학적 설계나 반동흡수와는 전혀 거리가 멀게 나왔고, 작동 방식도 강력한 탄환을 사용하면서 롱 리코일 방식을 채용한 지라 반동도 높아서 명중률도 그닥 좋지는 않았다고 평이 나왔지요.

뭐 세계 1차대전이야 워낙 급한 상황이다 보니 새로운 기관총을 채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남으로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된 프랑스군은 쇼사를 대체할 기관총을 새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일단적으로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성공적인 경기관총들 몇몇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대표적으로 Browning M1918 B.A.R가 언급되었지요) 실제로 어느 프랑스내 회사에서는 브라우닝을 기반으로 한 기관총을 만들었습니다만 결국 프랑스군은 브라우닝의 내부구조를 약간 비슷하게 만든 녀석을 채용하게 되었고, 이 녀석이 바로 오늘날 FM 24/29의 베이스가 되는 녀석입니다.


실질적으로 이후에 쓰이는 녀석과 1930년 초반에 등장한 프로토타입은 내부구조 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만, 사용탄환이 7.5 x 57 mm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두고 있었지요(사실상 구경은 똑같습니다만, 프로토타입에 쓰인 탄약의 경우 이후 쓰이는 제식 탄환보다 탄피가 길고 장약량이 많아서 실질적으로 반동이 상당했고, 탄 자체도 굉장히 허접하게 만들어진지라 잼도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기존에 쓰이던 프로토타입들은 이후 등장하는 제식버전이 대량 생산이 시작된 이후 대부분 제식에서 퇴역했다고 합니다.

FM 24/29은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경기관총입니다. 25발 상부급탄 탄창을 사용하는 방식의 기관총들의 평가가 좋았듯이 이 녀석 또한 내구성이나 정확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요. 사실상 세계 2차대전 동안 프랑스 영토가 독일군에 점령되는 바람에 계속 생산을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다수가 독일군에 포획된 뒤 독일군은 이 녀석을 많이 전선에서 사용했으며, 이후 2차대전 말기 북 아프리카 전선에서 재집결된 프랑스군도 이 녀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맨 처음에는 M1919A2가 지급될 예정이였습니다만, 프랑스군의 경우 이 녀석이 브라우닝 자동소총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되진 못했지요) 이 녀석은 세계 2차대전이 종전을 맞이함으로서 새로 개발된 AA-52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만, 2000년도까지 프랑스군 경비대(Gendarmerie Nationale Regional Brigades)에 의해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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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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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1.23 07:50 신고

    방아쇠가 두개야.. 징그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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