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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Britain's Comet

7장, A34 코메트, 대영제국 최후의 순항전차



다운그레이드


1942년 8월 챌린저의 개발이 실패로 끝난 후, 이의 원인을 분석한 왕립 육군은 챌린저의 실패가 높고 무거운 TOG2의 포탑을 사용한 것에도 있었지만, 17파운드 대전차포 자체가 영국산 순항전차의 소형 경량의 차체에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전차의 주력 전차포인 철갑탄의 위력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의 전장을 생각해서라도 왕립 육군에겐 그 이상의 전차포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결국 왕립 육군의 결론은 17파운드 대전차포를 영국 순항전차가 감당할 수 있도록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군의 구세주였지만 반면에 골칫거리기도 한 17파운드 대전차포.
발이 신에 맞지 않으니 이제는 신발 사이즈를 줄여야 했습니다.


비커스 사가 주도하는 'HV 77mm' 계획을 통해 17파운드 대전차포는 구경장을 55에서 50으로 줄이고, 17파운드의 강점이자 문제점인 대량의 장약을 17파운드 전차포와 구경이 같지만 위력이 낮은 미국제 76mm M6 3인치 대전차포의 장약으로 교체해 반동도 잡습니다.
이는 1943년 초에 영국군에 의해 77mm Mk.1 L/50으로 제식 채용되며 결실을 맺습니다. 사실 구경은 76.2mm 그대로였지만, 이미 연합군 내에는 76.2mm 급의 대전차포가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보급혼선을 막기 위해 이름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위력을 보자면, 원본의 위력의 비결이었던 장약을 줄인 덕에 17파운드 전차포에 비해 위력이 상당히 감소했고, 특히 APDS의 위력이 격감했지만, 판터의 75mm KwK 42 L/70에 약간 밀리는 수준으로 독일 중전차도 상대가 가능한 수준까지는 유지했습니다. 게다가 기존 17파운드 전차포에서 보인 명중률 저하 문제가 77mm 전차포에서는 상당히 줄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위력 감소는 감수할 만한 수준이었으니, 실패는 아닌 것이었습니다. 다운그레이드를 거친 77mm 전차포는 17파운드 전차포와 미군의 76mm M1 L/55 전차포와의 차기 채용 경쟁에서 개조 최소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내세워 둘을 따돌리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순항전차 차체에 맞는 전차포가 탄생했으니, 그에 걸맞는 전차 차체를 개발할 차례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순항전차의 성공 여부는 이 크롬웰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달려있었습니다.


최후의 순항전차, A34 코메트의 탄생


1943년 2월부터 기존 크롬웰과 센토어의 생산을 담당하던 레일랜드 사에서 크롬웰의 차체를 개량한 77mm 전차포 탑재 전차 A34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우선 포탑 링 부분이 1.4m에서 1.6m로 늘어나 77mm 전차포가 들어갈 공간이 확보되고, 크롬웰 Mk.7에서 사라졌던 차체 기관총이 다시 설치되며, 챌린저에서 없었던 서스펜션과 구동 장치 부분의 개조가 대폭 이루어집니다. 또한 크롬웰과 같이 A34도 차량 전체가 용접 결합 방식을 따릅니다. 이렇게 차량 전체를 무지막지하게 뜯어고치다 보니, 크롬웰과의 호환성과 주포에 맞춘 개조를 최소화하려 했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1944년 2월 1년만에 완성을 본 A34는 크롬웰과는 60% 이상 차이나고 있었습니다.
A34의 양산형은 1944년 9월부터 왕립 육군에 배치되기 시작하고, 혜성을 뜻하는 코메트라는 별명이 지어졌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영국군은 전차 명칭에 보병/순항이라는 명칭을 넣지 않았고, 코메트 이후 후계차량으로 개발되는 센츄리온부터는 아예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개념이 소멸되며 그들 자신의 체계가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됩니다.
또한 센츄리온에서부터 영국군의 전차는 홀스트만식 서스펜션을 사용하게 되므로, 코메트는 마지막 순항전차인 동시에 크리스티식 서스펜션을 사용하는 영국군의 마지막 전차가 됩니다.



A34 코메트. 77mm 전차포와 101mm의 전면장갑으로 무장한 2차 세계대전 영국군의 최종 전차입니다.


코메트는 다운그레이드형이었지만 전투력엔 문제가 없는 77mm 전차포로 무장했고, 600마력짜리 미티어 Mk.3 엔진에 크롬웰 후기형의 서스펜션을 유지한 덕에 최대속력도 47km로 비슷했습니다. 방어력은 전면장갑 102mm로 크롬웰과 별 차이가 없고, 독일국방군의 판터의 경사형 110mm 전면장갑에는 열세였지만 그 외에는 크게 뒤쳐지지 않았으므로 크롬웰이 4호전차 후기형과 비교된다면, 코메트는 판터와 비교될 만한 급의 전차였습니다. 다만 판터가 1943년 중순에 등장한 것과는 다르게, 코메트의 첫 유럽에서의 실전은 1945년 1월 벌지 전투에서였다는 점에서 코메트 쪽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또한 코메트에 와서도 영국의 전차는 수직장갑(원래는 경사장갑으로 만들려 했지만, 차재기관총을 설치하며 사실상 실패했고, 전차병들도 이 차재기관총에 불만이 많았습니다.)이었고, 영국의 전차 경사장갑은 그 후계인 센츄리온에서야 이루어집니다.


Britain's Comet
미군이 1945년에야 티거에 비견할 M26 퍼싱을 개발한 것처럼, 영국도 1945년에야 판터에 비견할 코메트를 개발했습니다.


짧았던 코메트의 실전


왕립 육군 사령부는 1944년 11월부터 코메트로 영국군 제 12 기갑사단의 왕립 전차연대에서 기존의 셔먼을 대신해 완편 전차연대를 구성하려 했지만, 주포인 77mm 전차포의 양산 지연과 더불어 한가지 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이는 미처 이뤄지지 못하게 됩니다. 독일국방군이 2개 기갑군을 동원해 서부전선 필사의 공세인, 오늘날 벌지 전투로 유명한 아르덴 공세를 가동한 것입니다.



아르덴 공세 당시 작전지역 지도


물론 이제는 더 언급할 것도 없이 히틀러와 룬트슈테트의 최후의 도박은 실패로 끝났고, 1945년 1월 영국 제 12 기갑사단이 이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코메트는 첫 실전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만 1945년 1월에는 이미 독일국방군의 모든 공세시도가 실패로 돌아갔고, 벌지 전투에서의 영국군의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코메트로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벌지 전투에서 코메트는 첫 실전을 치르지만, 1945년 1월에 벨기에에 남은 독일군이 영 많지를 않아서...


이후 1945년 3월 라인 도하 작전에서부터 코메트는 본격적으로 전장에서 전차전을 벌이게 되지만, 이미 코메트가 상대할 독일 전차는 아르덴 공세의 실패 이후로 한 줌정도나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Britain's Comet
3월 무렵부터 퍼싱이 그랬듯이 코메트도 본격적으로 실전에 들어갑니다.


Britain's Comet
1945년 4월, 독일의 엘베 강 인근에서의 코메트. 이쯤 되면 독일군이 이미 베를린 인근까지 몰렸겠군요.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생산 중단이나 퇴역을 맞는 다른 영국의 전차들과는 달리 이때까지 360량 가량 생산되었던 코메트는 전쟁 이후에도 계속 생산이 지속되어 센츄리온의 생산이 시작되기 전까지 약 1200량이 생산됩니다. 이후 코메트는 한국전쟁에서 크롬웰, 센츄리온, 처칠과 동반 투입되고 영국에서는 1958년까지, 남아공 등 일부 국가에서는 1980년대까지 제식 전차로 사용됩니다.



2차 세계대전에선 그리 오래 쓰이지 못했지만, 전후에도 코메트는 제법 오래 쓰입니다.


코메트는 사실 크롬웰의 발전형에 가까웠고, 2차 세계대전 말엽에야 등장했으며, 센츄리온의 등장 후로는 사실상 주력전차에서도 밀려나게 됩니다. 하지만 코메트에는 그동안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오류를 겪으며 영국이 나름대로 쌓아온 전차 기술이 집대성되어 있었고, 결국 그 기술은 서방 1세대 최고의 전차인 센츄리온으로 결실을 보게 되고, 전차 강국 영국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순항전차 A43 코메트 스펙


중량: 35560kg
승무원: 5명
엔진:

Rolls-Royce Meteor Mk.3 / 12실린더 / 600마력

속도: 47km/h
항속 거리: 도로: 198km
연료 용량: 139 gallon
전장: 7.66m
전폭: 3.05m
전고: 2.68m
무장:

77mm Mk.2 L/50 전차포
& 3 x MG
(1 x 7.92 mm Besa MG - 동축)
(1 x 7.92 mm Besa MG - 동축)
(1 x .303 cal(7.7mm) Bren - 대공 )

탄약:

77mm - 62발
7.92mm - 5175발
7.7mm - 600발

장갑: 14-102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comet.asp
http://www.mili.co.kr/ground/tank/uk/A34/A34.ph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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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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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9 13:11 신고

    어이쿠. 정말 레어 아이템들이 죽죽 나오네요. 감사합니다.
    코멧은 지금까지의 영국 전차들 중에서 꽤 준수한듯 하네요.
    예전에 종이공작 시리즈 중에서 코멧을 먼들어본 적이 있어서 관심이 갔더랬습니다.

  2. 2010.08.11 13:43 신고

    오오오 제가 언제쯤에 알아둬야겟다 라고 생각한것들만 뽑아서 해주시군요
    잘보고 잇습니당
    (정주행중 이상무)

  3. 2011.12.12 10:19 신고

    이분은 언제 돌아오시려나...(T34/85하고 카츄샤쨔응을 리뷰할 그날까지 기다림!)

  4. 2012.04.07 18:56 신고

    여담이지만... 영국 육군은 '왕립'을 안붙일걸요? 아마 공군과 해군만 Royal이 붙을 겁니다. 영국은 하위 편제 상 일부 부대를 제외하고 군 전체에 왕립을 허용하지 않을 거에요. 크롬웰이 반란 일으킨 이후부터 Royal을 박탈했다고 하던데요.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6장, 경전차 Mk.7 테트라크, 글라이더와 코만도의 친구



 
영국 경전차의 전성기와 몰락


1920~30년대만 해도 영국은 비커스 사의 카덴로이드 탱케트 시리즈를 개량한 각종 경전차를 1000여 량 이상 보유한 경전차 왕국이었습니다. 싸고, 간단하고, 그러면서도 기계화가 필요했던 국가들에게 이런 영국의 탱케트들은 당시 프랑스의 르노 FT 17과 더불어 매우 좋은 선택이었고, 또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의 전차 중 상당수가 영국의 카덴로이드 Mk.6 탱케트에 기반한 경전차들이었고, 그들의 기계화부대에서 주력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여러 유럽 국가들에 수출된 카덴로이드 Mk.6 탱케트. 장갑차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4톤 정도의 장갑차량이었지만 당시 싼 값의 군 기계화를 원했던 많은 나라에겐 FT-17만큼이나 매력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영국의 탱케트 경전차 시대를 연 경전차 Mk.1. 영국 또한 탱케트를 기반으로 경전차를 개발했습니다.



전격전의 첫 희생양인 폴란드의 주력전차는 영국제 탱케트를 개조한 TKS 탱케트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북아프리카 전선 초기의 사실상의 주력전차였던 CV33/35는 물론이고, 후반에
등장한 M15/42와 같은 전차들도 그 차체의 기반은 영국제 탱케트의 확장형이었습니다.



독소전 초기에 독일 전격전의 칼날을 막아내야 했던 T-26도 그 기원을 탱케트에 두고 있었습니다.



시대는 지나갔고 1930년대 말엽에 들어서 왕립 육군은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라는 2원 체제를 정립합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탱케트 기반 경전차들중 그나마 최신형이었던 Mk.6마저도 정찰이나 맡는 찬밥 신세가 되던지, 아직 수량이 부족한 순항전차의 대체제로서의 역할 외에는 그 존재이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탱케트 기반 경전차들 자체가 강해지는 추축군 전차들에는 더 이상 적수가 될 수 없는 약체였습니다.



비커스 사의 경전차 Mk.6. 최후기형에 가봐야 5톤 중량에 15mm 중기관총 무장이 전부였지만, 
정찰용으로 사용되거나 순항전차의 대역을 치르며 1942년까지 연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탱케트 개량 경전차는 이 무렵에 와서는 더이상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경전차는 점점 영국의 관심에서 벗어나갔지만, 1930년대 말엽 비커스 사는 아직 경전차의 황금시대를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37년 초, 비커스 사는 이제까지의 탱케트 기반 경전차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전차를 왕립 육군에 채용시키겠다는 목표 하에 신형 전차의 개발을 개시하게 됩니다.


크리스티식 경전차, Mk.7의 개발과 시련


새로운 경전차 계획인 A17의 골자는 2파운드 전차포로 무장한 선회포탑을 탑재하고, 14mm의 최대 전면장갑과 당시 영국 순항전차에 사용되기 시작한 크리스티식 서스펜션 갖춘 7톤의 차량이었습니다. 큐폴라가 없는 3인승 경전차였기 때문에 전차장이 장전수 또한 겸하게 됩니다. 14mm라는 기관총이나 겨우 막을 장갑은 솔직히 당시로서도 경장갑이었지만, 당시 영국군의 제식 순항전차였던 순항전차 Mk.1도 최대장갑이 14mm인 마당에 비커스 사도 A17에 굳이 장갑을 더 붙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계획은 매끄럽게 진행되어 1937년 12월 A17의 첫 시제차량이 무난히 생산을 마칩니다.



무난하게 개발을 마친 A17 경전차. 시대에 뒤지기는 했지만 비커스 사도
그동안 경전차를 개발해온 경력만큼 회사 나름대로의 내공이 있었습니다.


A17은 당시로선 그다지 기술적으로 우수할 것도 없는 165마력의 메도우즈 사제 MAT 엔진을 사용했지만, 7.5톤이라는 가벼운 몸체와 크리스티식 전륜 덕에 최대시속 64km로 펄펄 날아다녔고, 비커스 사도 이 따끈따끈한 신형 경전차가 빈약한 무장과 장갑 때문에 주력 채용은 무리더라도 최소한 정찰용 경전차로는 채용되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A17은 경전차 Mk.7로 채용되지만 당시 영국의 상황은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왕립 육군은 이미 성능이 입증된(?) 경전차 Mk.6의 생산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Mk.7의 생산은 지연됩니다. Mk.7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생산이 재개되려던 1940년 6월, 이번에는 덩케르크 철수로 대량의 기갑장비를 상실한 왕립 육군은 7.5톤의 경전차 따위보다는 당장 전장에 끌어갈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생산에 더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실제 생산은 1940년 11월에야 재개되고, 북아프리카에서 성능실험이 행해지지만, 열대 기후에서는 그다지 적합하지 못하다는 판정을 받고 또 배치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계속해서 물을 먹는 Mk.7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Mk.7의 시련은 1941년 Mk.7에 주목하던 영국 공수부대가 이를 글라이더 탑재용 공수전차로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여기고, 자신들의 부대에 채용을 요청하면서 어느정도 끝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경전차를 탑재할 대형 글라이더가 아직 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Mk.7이 빛을 보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공수전차로 재탄생하다. 경전차 Mk.7 테트라크


어쨌든 Mk.7은 1941년 소련에게 20량이 공여되기도 하고, 1942년 5월에 와서는 전차병들에게 인도어에서 근거한 이름인 '푸다'라 불리며 마다가스카르 작전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물론 경전차였던 만큼 직접적인 전투에서는 푸다의 첫 실적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속력은 무척 빨랐고, 크리스티계 경전차답게 궤도 파손시 여차하면 궤도를 벗겨내고 전륜만으로 주행이 가능한 등 기동 면에서는 딱히 꼬집을 면이 없었지만, 최대장갑이 고작해야 14mm였던 터였고, 주포도 2파운드 전차포인 만큼 동시대의 영국 경전차라고 할 만한 발렌타인에 비해 딱히 이렇다 할 전투력에서의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 일부 투입되기는 했다만 Mk.7의 앞날은 아직 불투명했습니다.


하지만 1943년 Mk.7을 수송할 수 있는 하밀카르 글라이더가 개발완료되면서 고작 커튼 자락 취급('푸다'는 커튼을 의미합니다.)밖엔 받지 못하던 Mk.7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하밀카르 글라이더에서 내리는 테트라크, 솔직히 그리 많이 쓰이진 않았지만, 자국 전차
로서 실전에서 제대로 쓰인 공수전차는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테트라크가 유일했습니다. 



영국의 소영주를 의미하는 테트라크로 개명된 Mk.7은 본격적으로 제 6 공수사단의 공수 기갑정찰연대에 인계되었고,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소수 투입되어 공수부대를 지원합니다. 이후 1945년에는 미국제 공수전차인 M22 로커스트와 라인 강 도하작전에 동반 투입되면서 공수전차라는 역할에 들어맞게 적지만 충실한 활약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1949년 영국의 글라이더 부대가 해체되면서 테트라크 역시 퇴역을 맞게 됩니다.
테트라크의 총 생산량은 177량으로, 1940년부터 1949년까지 소량이지만 생산이 이어졌습니다.


리틀존 어댑터


비록 7.5톤의 경전차일 뿐이지만, 테트라크에겐 공수전차라는 것 외에 또 하나의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쓰인 독일군의 독특한 대전차탄중 하나인 APCNR(Armour Piercing Composite Non Rigid) 계열의 40mm 포탄을 2파운드 전차포에 사용 가능하게 한 '리틀존 어댑터'라는 장치입니다. 구경감소포라는 특이한 포에서 발사되는 APCNR은 대전차 관통력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유탄 위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차피 2파운드 전차포에는 유탄도 없겠다, 이에 주목한 영국군은 2파운드 전차포가 APCNR 포탄을 사용할수 있게 포구에 끼우는 어댑터를 개발해 내니, 그것이 리틀존 어댑터였습니다.



테트라크에 장착된 리틀존 어댑터. 포구에 끼우는 식인데다 구경감소도 40mm->35mm여서
독일제만큼 강력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탄 자체가 텅스텐인지라 위력은 꽤 늘었습니다.



위력이 독일제만큼 크게 는 것은 아니었지만 독일제 APCNR의 위력과 기본 2파운드 전차포의 관통력을 통해 유추해 보면 대략 4호전차 정도는 문제없이 관통할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잘나봐야 경전차인 테트라크에겐 이정도 위력이면 충분한 셈이었습니다.
이 리틀존 어댑터는 테트라크의 후계로 개발되었던 경전차 Mk.8  해리 홉킨스에도 장비가 가능했지만, 해리 홉킨스 자체가 글라이더 수송이 불가능해 매장된 차량이었던지라 그쪽에선 쓸 일이 없었습니다.



리틀존 어댑터는 해리 홉킨스에도 부착이 가능했다만 별 의미는 없었습니다.


경전차 Mk.7 테트라크의 개량형과 파생형


테트라크에는 딱히 개량형이 없었고, 파생형도 2파운드 전차포의 유탄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3인치 유탄포 장착형 테트라크 CS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사용되었던 DD 셔먼의 DD 키트 실험용인 테트라크 DD 둘 뿐입니다.



테트라크에도 2파운드 장착형 전차들과 비슷한 목적으로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한 CS 사양 차량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소련에 공여된 마틸다 Mk.2. 테트라크 CS 자체의 사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


 

테트라크의 차체에 실험용으로 장착된 DD 키트는 이내 셔먼으로 옮겨갑니다.


테트라크 자체는 사실 이미 영국군 내에서 가치를 상실한 구식 개념인 경전차였고, 주포도 장갑도 빈약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벼운 중량 덕분에 영국 공수부대라는 의외의 고객을 만나는 데 성공했고, 2차 세계대전 동안의 전차역사에서 적게나마 공수전차로서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경전차 Mk.7 테트라크 스펙


중량: 7620kg
승무원: 3명
엔진:

Meadows MAT / 12실린더 / 165마력

속도: 64km/h
항속 거리: 도로: 225km
연료 용량: ??? gallon
전장: 4.11m
전폭: 2.31m
전고: 2.12m
무장: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
& 1 x MG
(1 x 7.92 mm Besa MG - 동축)

탄약:

40mm - 50발
7.92mm - 2,025발

장갑: 4-14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tanks-light/tetrarch.asp
http://glob.egloos.com/2603482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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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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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5 23:48 신고

    테트라크는 확실히 공수부대에 효과적이였을듯... 전투가 벌어질때, 방어가 취약한 곳을 골라서 보병 + 경전차를 글라이더로 내려보내니.... 그나마 테트라크가 공수부대에 이름을 날렸으니 다행일지도?

  2.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3 21:12 신고

    근데 영국 전차들보면 성공한게 왠지 쿠르세이더만??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5장, 순항전차 Mk.8 크롬웰, 살아서는 기병으로, 죽어서는 전차로.



여덣번째 순항전차, 크롬웰을 향하여.


1940년부터 너필드 사는 기존의 주력 순항전차인 크루세이더가 화력에서나 방어력에서나 충분치 않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크루세이더의 뒤를 이을 새로운 순항전차 개발 프로젝트인 'A24 크롬웰'에 착수합니다. 크롬웰이라는 이름은, 철기병으로 유명했고 과거 영국에서 유일한 공화정의 국가원수였던 군인 출신 정치가 올리버 크롬웰에서 따 온 것이었습니다. 개발 목표는 6파운드 전차포와 좀더 대형의 포탑링, 48km의 최대시속과 75mm의 전면장갑. 기존 크루세이더에서 이미 대박을 친 크리스티식 현가장치와 당시 영국의 전차포 중에선 가장 우수했던 6파운드 전차포, 그리고 스핏파이어와 훗날의 P-51 머스탱을 최고의 전투기로 끌어올려낸 롤스로이스 사의 걸작엔진, 멀린 엔진의 전차 탑재용으로 '개발 예정'인 미티어 엔진. 이 셋의 조합은 영국이 생각하던 우수한 순항전차의 필수요소로 빛을 발할 것이었습니다.




좋은 필수요소가 흥한 대작을 만들어 내듯이, 좋은 부품들도 조합만 잘하면 흥한 전차가 탄생하는 법이지요.



빠른 개발을 위해 너필드 사가 동분서주한 결과 1941년 초에 A24 '크롬웰'의 개발이 완료되어 그 모습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왠일일까, A24의 성능은 영국 전차위원회가 생각한 것만큼 성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영 시원찮은 전차였습니다.
최대장갑은 76mm, 주포는 6파운드로 적절했지만, 기동력 쪽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A24 크롬웰의 최대속력은 영국 순항전차로선(실패작 Mk.2는 논외입니다.) 최저인 시속 39km에 불과했고, 고장도 빈번한 수준이었는데, 이런 실패작이 나온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래 엔진으로 장비하려 했던 미티어 엔진은 당시 영국 본토 항공전을 겪는 상황에서 머린 엔진을 찍는 것도 바빴던 롤스로이스 사내 사정과 솔직히 사제 엔진을 더 오래 쓰고팠던 너필드 사의 욕심 때문에 개발이 늦어져 출력이 딸리는 크루세이더의 너필드 리버티 엔진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너필드 사 또한 구형 엔진을 그대로 쓰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410마력으로 출력을 늘리긴 했다만, 전차의 중량도 기존의 크루세이더보다 7톤은 더 늘었기 때문에 속력도 제자리걸음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너무 급히 개발한 탓인지 생산된 차체 여기저기서 기계적 결함과 문제가 발생해, 제식 순항전차로 쓰기엔 상당히 뒤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뒤늦게 미티어 엔진이 개발되어 이를 A24에 장착해 보았지만, 리버티 엔진도 잘 안 맞던 A24가 미티어 엔진에 어울릴 리가 없었습니다. 




A24, 순항전차 Mk.7 캐벌리어. 카베난터처럼 완전히 '썩어버린' 망작은 아니었다만, 차기 순항전차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베난터와는 달리 이렇게 구난전차나 포병지휘차량으로나마 전장에 나서게 됩니다.



때문에 A24 크롬웰은 이어서 등장한 A27 시리즈에게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1941년 6월부터 A27의 개발이 완료될때까지의 임시 제식 순항전차로 선정되어 순항전차 Mk.7 크롬웰로 1943년까지 500량 가량 생산되지만, 크루세이더가 잘 뛰고 있는 마당에  실패한 A24가 전장에 나설 일도 없었기 때문에 포병 지휘전차와 전차회수차량 사양의 파생형을 빼면 전부 훈련용으로 본토에서 썩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그나마 A27M이 크롬웰 순항전차로 확정된 후로는 이름까지 빼앗겨 캐벌리어(철기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떡밥이 썩었다! 그러길래 왜 오래된 부랄엔진을 이식받아서사용해서.........



썩은 떡밥을 쓴 합성물이 흥하지 못하듯이, 캐벌리어도 햄보칼수가 없었답니다.



이제 크롬웰의 개발계획은 새로운 경쟁자인 레일랜드 사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1941년 11월부터 시작된 A24의 개량판, A27 크롬웰의 개발은 주로 A24의 변속기와 서스펜션, 그리고 엔진 탑재 구획에 집중되었고, 그 결과 A27에 와서는 구동 문제와 신뢰성이 상당히 향상되며 동시에 미티어 엔진을 장착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엔진 호환성도 안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롤스로이스 사는 미티어 엔진을 많이 찍어낼 여력이 없다고 징징거렸고, 아직 미티어 엔진에 신뢰가 가지 않았던 레일렌드 사도 최소한 중박은 잡자는 생각에 리버티 엔진을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합니다. 이리하여 1942년 6월부터 미티어 엔진의 생산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때까지의 출력을 약간 줄인 395마력짜리 리버티 엔진 장비형인 A27L이 생산됩니다. 처음에는 크롬웰로 칭했지만, 이후 A27M이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센토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부르게 됩니다.



A27L 센토어, A27M 크롬웰과의 차이점은 엔진뿐입니다. 그 외에는 크롬웰 초기형과 동일했습니다.



센토어의 성능은 미티어 엔진 장착형인 A27M과 속력을 빼면 동일했고, 캐벌리어에서 생긴 문제점을 대부분 해결했기 때문에 주력전차로 쓰기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센토어나 크롬웰이나 첫 실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고, 그 무렵에는 크롬웰의 생산도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중이어서 캐벌리어처럼 센토어도 상당수는 훈련용으로 돌려지고, 대공전차나 95mm 유탄포를 장비한 화력지원형 같은 파생형 전차나, 엔진을 교체해 크롬웰로서 전장에 참여하게 됩니다.



센토어 CS. 95mm 유탄포로 무장했고, 80량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어 해변 돌파 역할을 맡았습니다.



쌍발 폴스텐 고사기관포로 무장한 센토어 AA Mk.2. 크루세이더 AA와 비슷한 용도로 쓰였을 거라 추정합니다.


1943년 1월부터 드디어 진정한 크롬웰이 완성을 보았습니다. 미티어 엔진이 본격적으로 양산되면서 그것을 장비한 A27M 크롬웰은 기존 캐벌리어와 센토어의 향상된 전투력에 최대시속 64km라는 날개까지 달게 되면서 2차 세계대전 각국의 주력전차중 가장 빠른 전차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그 빠르다는 판터와 T-34도 각각 46km, 53km 수준 정도입니다.)


 
A27M 크롬웰, 이제서야 영국이 원하던 6파운드 전차포와 크리스티식 현가장치, 미티어 엔진의 조합이 완성되었습니다.


크롬웰의 완성과 실전


크롬웰의 전반적인 성능은 M4 셔먼과 유사한 정도로, 미티어 엔진 덕에 상당히 앞서는 속력과 생산의 편의를 위해 수직장갑을 채용해 방어력에서 조금 뒤지는 것을 빼면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까지의 총 생산량 3000량 가량으로는 영국군 내에서 주력전차로 사용하기에는 수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크롬웰 전차연대로 완편된 사단은 왕립 제 7기갑사단뿐이었습니다. 그래서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데뷔전을 치른 크롬웰은 셔먼과 혼성 편성되거나, 그 속력을 살려서 영국 기갑사단의 정찰연대에서 활약하게 됩니다.(이러한 정찰 역할 때문에 영국 전차병들 중 상당수가 크롬웰을 싫어했습니다.) 또한 애초에 6파운드 전차포용으로 설계된 크롬웰이었지만, 당시 왕립 육군 내에 불던 75mm 전차포 바람을 타고 크롬웰도 이내 Mk.4부터 75mm 전차포를 장비하게 됩니다.(본격적으로 보급되는 것은 1944년 10월) 하지만 75mm 전차포의 철갑탄 위력 부족과 순항전차인 크롬웰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당시 영국군이 유탄의 위력과 보급 체계만을 지나치게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크롬웰도 Mk.4부터는 75mm 전차포 라인으로 갈아타게 되며 그 장단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후반 연합군 전차를 다룰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티거. 그건 크롬웰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크롬웰의 데뷔무대인 노르망디에서부터 연합군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티거와 판터는 여태까지의 연합군의 주류인 75mm 전차포가 먹혀들지 않았고, 셔먼에게도 그리했듯이 크롬웰에게도 무서운 천적이었습니다. 물론 빠른 속력을 살려 측면으로 우회하거나 후퇴할 가능성이 좀더 높기는 했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기에 크롬웰에게도 뭔가 대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크롬웰은 여러 업그레이드로 생존성을 늘리지만, 주포는 종전까지 75mm 전차포를 유지합니다. 또한 처칠처럼 크롬웰도 한국전쟁에서 영국군의 순항전차로 투입되어 사용되었으며, 이 중 일부가 북한군에게 노획되어 사용되기도 했답니다.



이래저래 사연이 많은 크롬웰. 한국전쟁 당시 크롬웰 전차 1량이 1.4 후퇴시 북한군에게 노획되었다가
다시 대한민국 해병대에게 노획당한 기구한 사연도 있었다고 합니다.(위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개조를 보면, 일단 방어력을 늘리기 위해 사실상의 최후기형인 크롬웰 Mk. VII에 와서는 전면장갑을 101mm까지 늘리고 이왕이면 엔진 수명도 늘리기 위해 서스펜션을 조정해 속력을 52km로 줄이게 됩니다. 주포 쪽에서 보면 사실 크롬웰 원형으로는 힘들었지만, 서부전선에 접어들며 옆동네 미군들도 76mm 개조하랴 울버린 투입하랴 공군 포병 부르랴 이리저리 바빴던 데에 비해 영국군에겐 여유가 있었습니다. 영국군은 이전부터 이미 17파운드 대전차포 자체와 그것을 자주화한 아처와 아킬레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독일의 중전차들을 잡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7파운드 대전차포를 장비한 전차 또한 필요했기 때문에 영국군은 1942년 중순부터 1943년 초에 걸쳐 셔먼과 처칠, 크롬웰을 각각 17파운드 전차포 탑재형 전차로 개조하는 계획을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실패한 17파운드 순항전차, A30 챌린저


17파운드 대전차포가 아직 개발 중이던 1942년 5월부터 이미 BCW(Birmingham Carriage & Wagon) 사가 주도하는 17파운드 형 크롬웰 개발도 진행중이었습니다. 17파운드 대전차포 자체는 크롬웰의 원래 차체만으로 견뎌내기에는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양쪽에 로드휠을 하나씩 늘리고 포탑링도 불려서 17파운드의 위력을 이겨낼수 있도록 개조하게 되고, 탄약고를 늘리기 위해 차재기관총을 제거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개조들은 그럭저럭 잘 진행되었지만 정작 문제는 포탑에서 발생했습니다.



1차대전의 전차에서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TOG(사진은 TOG2 17파운드 전차포형)
그나마 처칠이 등장하며 왕립 육군과 전차위원회에게 찬밥만 먹고 맙니다.


1942년 8월 완성된 A30의 시제차량에는 당시 1차 세계대전용 전차 개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원로들에 의해 진행되던 실패작, TOG2의 17파운드 전차포 포탑이 탑재되어 있었고, 이는 그다지 크롬웰 시절에서 달라진 것도 없는 A30의 구동장치에 크게 무리를 주게 되었던 겁니다. 생각없는 짓을 많이 벌이는 영국 전차위원회였지만 쓸데없이 큰 대형포탑이 문제를 일으킬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포탑 장갑을 줄이는 등 중량 감소를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신뢰성 부분에서 나빴고, 지나치게 전고가 높아져 적 전차나 대전차포의 맛좋은 표적이 되기에 딱 좋았습니다.


Britain's Challenger 
실패작 A30 챌린저. 中전차에 重전차급의 포탑을 얹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구동장치 부분의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덕택에, 속력이 51km로 떨어진 것은 어찌 봐준다 치지만, 신뢰성과 조종성까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단 1943년 1월에 중량을 줄인 A30의 최종 시제차량이 개발된 시점에서는 티거와 4호전차 장포신형에 대항할 만한 전차가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A30은 일단 챌린저(도전자)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달며 200량이 생산됩니다. 애초에 영국군은 이 200량분의 챌린저와 뒤이어 개발할 파이어플라이, 블랙 프린스를 각각 크롬웰, 셔먼, 처칠 보유 부대에 기존차량 3 : 17파운드 차량 1 비율로 지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의외의 상황이 터집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개발했던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대박을 터트린 겁니다.



챌린저 X까! 난 파이어플라이 탄다고! ...어째 영국제 전차보다 17파운드 대전차포를
더 잘 받아들인 것은 셔먼 파이어플라이나 M10 아킬레스 등의 미국제 전차들이었습니다. 


United Kingdom's Challenger
2차 세계대전의 전차전에서 저리 높은 전고로 적 전차, 특히 주포 명중률이
 좋은 독일 전차를 상대하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매한가지였습니다......


졸지에 존재의의를 상실한 챌린저를 개량하기 위해 어벤져 대전차자주포로 개량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는 1946년이 되어서야 성공합니다. 200량의 챌린저야 이미 만든 전차인데다 17파운드 탑재형이니 안 쓸 수는 없었고, 결국 기존 17파운드 전차포 탑재 전차 배분이 모조리 파이어플라이에게 돌아간 상황에서 챌린저는 전 차량이 크롬웰과 함께 기갑 정찰연대로 돌려지며 씁쓸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왜 아직도 썩은 떡밥포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데!!!!!!!!!!!!!!!!!!!!!!!!


순항전차 Mk.8 크롬웰의 개량형과 파생형


크롬웰의 실질적인 개량형은 6파운드 장비형인 Mk.1과 75mm 전차포를 장비한 Mk.5, 그리고 장갑을 늘이고 속력을 줄인 Mk.7이 있습니다. Mk.2는 채용되지 않았고, 그 외는 단순한 센토어의 미티어 엔진 탑재형이거나 95mm 유탄포를 장비한 근접지원형들입니다.
 

Cromwell tank hierarchy.png
크롬웰도 족보가 꽤 복잡한지라 위키에서 계보도를 빌려왔습니다...;;;


 
크롬웰의 기본형 Mk.1. 하지만 357량만이 생산되며 주류는 75mm
전차포형이 차지하게 됩니다. 6파운드 전차포 탑재형의 대표격입니다. 




75파운드 전차포 장비형인 Mk.5. 이때부터 용접 차체를 사용하게 됩니다.



크롬웰의 사실상의 최종형인 Mk.7. 속력은 줄었지만 장갑이 101mm로 늘어났습니다. 차체 기관총이 제거되었습니다.


파생형을 보면, 이 당시 공병전차는 처칠 계열과 센토어 계열 차량이 꽉 잡았기 때문에 의외로 적은 편입니다. 주된 파생형은 전차회수차량인 크롬웰 ARV와 포를 제거하고 통신장비와 목제 훼이크 포로 무장(?)한 지휘전차인 크롬웰 OP, 그리고 전후에 20파운드 대전차포를 탑재한 대전차 자주포 FV4101 채리어티어입니다.



전차회수차량 크롬웰 ARV. 엔진을 빼면 센토어의 동파생차량과 동일합니다.



콯 모 게임에서 빌려온(...) 크롬웰 지휘차량. 무전기 탑재 때문에
포를 철거했습니다. 비슷한 차량인 OP에서는 주포를 유지합니다.




전후에 등장한 20파운드 대전차포를 장착한 채리어티어. 20파운드도 실으면서 왜 17파운드는 실패한 걸까나요...



크롬웰은 개발될 당시 영국 전차기술의 종합적인 강화판으로 기대받았으며, 실제로 셔먼과 함께 영국의 주력 순항전차로서 잘 사용되며 성능도 비슷했고, 속력은 오히려 빨랐습니다. 하지만 수직장갑이나 보다 강력한 주포의 미탑재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영국의 전차는 모자란 점이 많았고, 이런 아쉬운 점은 영국 최후의 순항전차이자 최초의 MBT인 센츄리온에 와서야 해결됩니다.



순항전차 Mk.8 크롬웰 스펙(Mk.7)


중량: 28000kg
승무원: 5명
엔진:

Rolls-Royce Meteor / 12실린더 / 600마력

속도: 52km/h
항속 거리: 도로: 278km
연료 용량: 139 gallon
전장: 6.35m
전폭: 2.91m
전고: 2.83m
무장:

75mm Mk.V L/36.5 전차포
& 1 x MG
(1 x 7.92 mm Besa MG - 동축)

탄약:

75mm - 64발
7.92mm - 4,950발

장갑: 8-101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mk-vii-a24.asp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mk-viii-a27l.asp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mk-viii-a27m.asp
http://mili.co.kr/ground/tank/uk/A30/A30.php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9495&page=12&bbs=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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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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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0 23:07 신고

    언제나 지옥고냥이님 글을 즐겁게 애독하고 있습니다.
    코멧도 좀 다뤄주시면 감솨하겠음.
    암튼 좋은 글, 감솨함다.

  2. 2010.12.15 04:09 신고

    컴퍼니 모드 만드는데 참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많은글들, 계속해서 연재해 주세요

  3. 2011.12.11 17:39 신고

    자료 퍼가겠습니다!좋은자료 감사합니다~

  4. 2013.03.01 01:18 신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5. 2014.04.26 22:54 신고

    75파운드요? 세상 멸망시킬일 있나ㅋㅋㅋㅋㅋㅋㅋ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4장, 보병전차 MK.4 처칠, 전차가 된 수상 가카.



주의 : 본 글은 특정 인물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특정 단체나 인물을 비방하려는 일체의 의도도 없음을 미리 알립니다.

마틸다의 후계자

1939년 영국 전차위원회는 마틸다의 자리를 이을 차기 중보병전차의 계획을 수립하긴 했다만, A20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차기전차계획은 그다지 쓸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차대전 노장들의 보병전차 컨셉을 다수 수렴하여 이뤄진 이 A20은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에 맞춰 진행되었습니다.
  • 포탄 구멍과 수렁 돌파가 가능할 것
  • 장애물과 참호 돌파가 가능할 것 
  • 37mm 대전차포가 방어 가능하도록 장갑을 최대 60mm까지 장비할 것
  • 최대시속 16km 이상일 것
  • 2파운드와 베사 기관총을 차체 양쪽에 설치할 것, 차제기관총과 2인치 폭탄 발사기(;;;?)를 갖출 것(이후 마틸다의 포탑과 차체 양쪽에 기관총을 갖출 것으로 조정됨) 
  • 중량제한은 37.5톤일 것 


여기에 1차대전식 전훈과 프랑스제 보병전차들의 노하우가 녹아들어가며 탄생한 A20의 프로토타입은 마틸다 시리즈만도 못한, 전형적인 1차대전식 전차였습니다. 이런 전차로는 장차 개선될 적국의 신형전차들을 상대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습니다.




진보는 커녕 퇴보한 느낌만 잔뜩 드는 A20. 1차대전을 겪은 노장들에게 새로운 전차 개발은 무리였고,
이후 그들이 만들어낸 TOG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보병전차로서 개발이 계속되던 A20이었지만,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왕립 육군은 이런 모자란 전차계획은 차기 전차전에는 다 개뿔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1940년 6월 A20 계획을 때려치우게 됩니다.


수상 가카의 이름을 얻다, 보병전차 Mk.4 처칠의 탄생


1940년 A20계획 취소 후, 보병전차 사업에 눈독을 들이던 벅스홀 사는 A20의 차체 규모를 줄이고 양산을 좀더 쉽게 해 새로운 보병전차를 개발할 수 있다고 영국 전차위원회를 구워삶습니다. 전차위원회가 제시한 주 요구 조건은 A20보다 장갑이 향상된 100mm 이상의 전면장갑과 시속 20km의 최대속력, 그리고 2파운드 급의 주포였습니다.
당시 상황이 퍽 급했던지라 왕립 육군과 전차 위원회는 1년 안에 개발을 마치라고 벅스홀 사를 들들 볶았고, 벅스홀 사는 개발기간도 줄이고 참호 돌파능력도 남길 겸이었는지 A20의 차체를 개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됩니다. 우선 350마력짜리 베드포드 사제 가솔린 엔진으로 갈아끼우고 추가장갑을 덧씌운 다음, 2파운드 전차포의 유탄이 없다는 약점을 보완하기위해 3인치 유탄포를 차체에 설치하며(Mk.2부터는 효율 문제로 베사 기관총으로 교체됩니다.), 차체 양쪽의 포탑들은 탈출용 해치로 바뀌게 됩니다. 
1941년 6월, 벅스홀 사는 1년만에 A22의 개발을 마치게 됩니다. 완성된 14량의 시제전차는 차후의 상륙작전을 의식했는지 흡기관과 잠수장비까지 갖추며 영국 육군을 만족시키긴 했지만, 원본의 형편없는 품질이 어디 갈까, 개량판인 A22의 성능도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긴 했다만, 도로기준 시속 25km라는 속력과 잦은 고장과 조종상의 어려움 등 기동 계열에선 형편없는 퍼포먼스를 자랑했습니다.
물론 차기 보병전차가 필요했던 만큼 선정이야 되었겠지만, 어쩌면 그다지 큰 성공을 보이지 못했을지도 모를 A22에게 한줄기 서광이 비쳐옵니다. A22의 성능이 마음에 들었던 당시 영국 수상가카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A22에 양산 우선 순위를 부여한 것입니다.




처칠 가카 : 저...저거슨 크고 아름답다능! 있는 대로 지르라능!



그에 대한 답례인지, 벅스홀 사는 새롭게 제식전차로 선정된 보병전차 Mk.4에 처칠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후 처칠 보병전차는 1941년부터 1945연까지 총 약 5640량이 생산되며 영국의 주력 보병전차, 사실상의 중전차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A22는 곧 영국군 가카에게 인정받고 네번째 보병전차인 처칠 가카로 제식 전차가 되었습니다.



성능시험중인 처칠 전차 2량. 사실 초기형의 처칠 가카는 아직 A20에 3인치 유탄포 단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영국의 상황이 위태로웠던 만큼 처칠의 차체를 이용한 3인치 유탄포 탑재형 자주포가 일부 생산되지만, 50량만이 만들어졌고, 이후 등장한 비숍과 섹스톤에 밀려 전부 홈가드용으로 인계됩니다.



처칠의 차체를 사용한 자주포, 독일 침공에 대비해 싸고 많이 만들고자 한 것이지라 BOB 후 존재가치를 잃고 맙니다.



일단 마틸다에 비해 40mm가량 두터워진 장갑과 추가된 잠수능력 덕에 처칠 전차는 왕립 육군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지나치게 긴 차체와 기존의 단점 덕에 조종은 어렵고 고장도 잘 나는 전차라는 사병들의 불평거리가 되며 실전능력을 의심받게 됩니다. 이러한 단점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1942년 8월에 시행된 디에프 상륙작전에서 왕립 육군이 상륙전력으로 6000여 명의 병력과 30량의 처칠 전차를 주력으로 투입하며 처칠의 첫 실전이 시작됩니다.


디에프의 실패와 북아프리카의 성공, 가카의 환골탈태와 칠전팔기


디에프에서 행해진 영국과 캐나다군의 야심찬 상륙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6000여 명의 병력 중 반 이상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고, 상륙한 처칠들의 대부분도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 참담한 실패 앞에서 영국군 수뇌부나 수상 가카나 모두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지만, 당장 북아프리카 전선을 눈 앞에 둔 터라 영국군은 곧 패배의 충격을 극복하고 처칠의 대대적 개선에 들어갑니다. 




처칠 가카 : 그런데 뭐라능? 우리 처칠짱이 어쨌다능? 피쉬앤칩스를 코로 먹여주겠다능!
헬캣 : 사... 살려주세요!




디에프의 재앙 이후 다시 태어난 처칠 가카. 좀 허접해 보였던 초기형과는 다르게 Mk.3(사진은 증가장갑
 장착형인 듯)부터는 여러 약점들을 수정하며 서서히 왕립 육군의 중전차로서의 역할을 잡아갑니다.



처칠의 세번째 개량형인 Mk.3에서는 처칠의 약점 중 하나인 노출된 궤도에 장갑을 씌워 보강하고, 마침 새롭게 등장한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를 신형 대형포탑에 장비하며 화력에서나 방어력에서나 환골탈태하게 됩니다. 이렇게 강화된 처칠은 제 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 투입되며 디에프에서의 오명을 어느정도 씻어내지만,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펼쳐야 할 기동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짧은 항속거리와 속력, 부족한 신뢰성이 또다시 불거지면서 처칠 가카는 탄핵당할 위기까지 맞습니다. 


 
엘 알라메인의 처칠 전차들. 제 7 차량화여단 소속의 가카들은 무식한 중장갑을 앞세워 사막을 돌파하지만, 여러 결함이
가카을 탄핵시킬 지경까지 몰고 갑니다. 하지만 튀니지에서의 활약이 전환점이 되어서 왕립 육군에 잔류하게됩니다.



처칠의 주된 운용 방식은 보병지원전차라는 용도에 알맞게 2개 보병여단에 1개 처칠 여단을 합친 혼성여단이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보병전차 개념 자체에 대한 불신이 늘어갔고, 처칠 자체도 보병지원용 전차로서는 영 아니라는 의견에 따라 1943년부터는 이러한 비효율적인 편제를 폐기하고 기갑여단 편제를 따르게 됩니다. 오오, 발전하는 영국군~



하지만 그 뒤를 이은 횃불 작전과 튀니지 전역에서 처칠은 중장갑을 내세우며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제 역할을 다해냅니다. 덕분에 1943년 폐기될 뻔했던 처칠은 수명연장에 성공하며 3개 기갑여단까지 영국 기갑부대내에서 그 규모를 불리게 됩니다. 또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6파운드 전차포의 유탄의 위력 부족은 발렌타인뿐만 아니라 처칠에게도 고민거리였기 때문에 기존 처칠 Mk.3, Mk.4의 포탑에 격파된 그랜드나 셔먼의 미제 75mm 전차포를 6파운드 전차포 대신 장비하는 처칠 NA가 즉석에서 개장되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전훈으로 이후의 처칠 Mk.4 후기형과 Mk.6, Mk.7은 75mm 전차포로 무장하게 됩니다. 또한 처칠 Mk.3 중 후기형의 일부는 신형 57mm 6파운드 L/50 전차포로 교체하며 대전차 전투력이 더욱 강화됩니다.
이후 처칠 전차중 일부가 소련군에 공여되어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군의 한 축을 맡으며 독일의 성난 맹수군단과 맞서 싸우지만, 이미 KV-1이라는 처칠보다 빠르고 두꺼운 전차를 보유하고 있던 소련 적군 앞에서 이 파릇파릇한 수상 가카들은 다른 영국산 전차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Russia's Churchill
소련군에게 공여된 처칠 전차. 하지만 소련의 차디찬 벌판에서 수상 가카가 중전차 노릇을
하기에는 이미 한자리 차지하고 앉은 보로실로프 원수님의 텃세가 너무 셉니다.



이제는 프랑스로! 노르망디의 가카


마틸다와 발렌타인은 이미 영국군에서 나가떨어졌지만, 처칠은 서부전선에서까지 질기게 살아남아서 빈약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중기형과 후기형이 투입되어 연합군의 중전차 역할을 맡고, 개중 일부는 각종 파생전차로서 역할을 다하며 전장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다소 모자란 듯 한 보병전차였던 처칠이었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전개될 무렵에는 많이 진화해 75mm 전차포와 두터운 152mm 전면장갑으로, 덤으로 40톤 급으로 몸집까지 불리며 충분한 중전차의 품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노르망디에서 이동중인 처칠 전차. 독일 전차는 점점 강해지는데, 
처칠의 주포인 75mm 전차포는 이들을 관통하기엔 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독일군이 강해봐야 4호전차 후기형에 불가한 급이라 처칠이 충분히 상대할 정도의 급이었다면, 새롭게 등장한 판터와 티거, 쾨니히스티거 그리고 각종 구축전차는 오히려 6파운드 전차포를 사용하는 중기형이라면 모를까, 철갑탄의 위력이 떨어지는 후기형 처칠의 75mm 전차포로는 상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왕립 육군도 1943년부터 더 강력한 포인 17파운드 대전차포를 처칠에 탑재하는 A43 '블랙 프린스'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처칠 전차는 구식의 설계 덕에 포탑링이 좁았고, 이를 수정하며 개발기간이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1945년 5월에 이르러서야 시제품 6량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코메트와 센츄리온을 개발한 왕립 육군은 이 무겁고 느려터지기 짝이 없는 고도비만 가카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좁아터진 포탑링을 극복하고 어찌어찌 17파운드 전차포를 달기는 했다만, 속력은 시속 18km로 줄어들었고,
17파운드 플랫폼이 이미 충분한 상황에서 처칠 원판도 소화하기 버거웠던 영국군은 블랙 프린스를 무시했습니다.



또한 초기형에는 그나마 25km 정도였던 최대속력도 후기형에 이르러 무장과 장갑이 강화되며 점점 떨어져 20km 수준으로 줄어있었습니다. 처칠 전차는 새로운 적수들에게 있어 방어력에 있어서라면 모를까, 공격력에 있어서는 셔먼과 크롬웰이 그런 것처럼... 꼼짝없는 고자 수준이었고, 그나마 느린 기동력 덕에 도망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여러 사례에서 처칠 전차는 강력한 독일산 전차들이나 대전차포에 마구 얻어맞았스니다. 특히 야크트판터 3량에게 10량이 격파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1량에게 19량이 격파되기도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전장에서 처칠 전차를 개량한 퍼니 전차 시리즈는 각종 공병임무에 투입되며 제 역할을 마쳤고, 처칠 전차 자체도 M26 퍼싱이 등장하기 전까진 변변한 중전차가 없었던 연합군에게는 든든한 방어력을 가진 우군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좋은 시절은 지났지만, 처칠 가카는 아직 보병전차로서의 소임을 다하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처칠 전차는 이제까지의 전차들과는 달리 아직 성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한국전쟁에서 보병전차로 투입되기도 하였고, 1965년까지 현역을 유지하며 2차 세계대전 중 개발된 전차 치고는 비교적 긴 삶을 누렸습니다.


보병전차 Mk.4 처칠의 개량형


처칠 보병전차의 일반적인 개량형은 총 8종류에 달하며, 이 중 대표적인 종류를 들자면 2파운드 전차포의 초기형의 Mk.1과 6파운드 전차포의 중기형의 Mk.3, 75mm 전차포의 후기형의 Mk.7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처칠 Mk.1. 2파운드 전차포와 차체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하고 궤도가 노출된 초기형입니다. 디에프 상륙작전의 주역이었으며, 제 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 투입되었고, 일부는 질기게 살아남아 이탈리아 전선에서 고딕 라인에도 투입되었습니다. Mk.2와는 3인치 유탄포가 베사 기관총으로 교체된 것이 식별포인트입니다.



중기형의 대표격인 처칠 Mk.3. 궤도 상면에 장갑이 씌워졌고, 6파운드 전차포를 탑재한 좀더 대형의 포탑을 채용했습니다. 처칠 Mk.4는 용접이 아닌 주조포탑을 사용한 버전이고, Mk.5는 95mm Mk.1 L/20 유탄포 장비형 보병지원 전차입니다.
Mk.6부터는 75mm 전차포를 탑재하고, 후기형부터는 152mm로 전면장갑이 강화되어 88mm 고사포도 막아내는
무식한 똥맷집을 자랑합니다. (물론 88mm 대전차포까지 튕겨내기는 좀 어렵습니다.) 



처칠 전차의 실질적인 최후기형인 처칠 Mk.7. 궤도 앞부분까지 장갑이 씌워지고, 양 측면의 탈출용 도어가
원형으로 바뀝니다. 또한 중량이 늘며 속력이 시속 20km로 줄어들어버렸지만, 향상된 서스펜션과 변속기로
교체해 신뢰성은 오히려 향상되었습니다. 노르망디에 Mk.4, Mk.6과 함께 주력으로 투입되었고, 
Mk.7 중 상당수가 화염방사전차 처칠 크로커다일로 개조되어 맹활약합니다. 


호바트의 만화들, 처칠 퍼니 전차 시리즈


1942년 디에프 상륙작전을 말아먹은 후 연합군은 단순히 수륙양용전차로는 상륙작전에는 택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에 다음 상륙작전에 사용할 다양한 공병전차의 개발을 모색합니다. 그러던 중 영국군의 브룩 원수와 몽고메리 원수는 이 일에 딱 어울릴 최고의 적임자를 발굴해내니, 그가 바로 퍼니전차의 아버지 퍼시 호바트 경이었습니다.
참조 - http://cafe.naver.com/nuke92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23916#



보기에도 괴팍하고 한성깔 하실듯한 이 분이 퍼시 호바트 경입니다. 일찍부터 기갑전술과 사단 발전에 관심이 많았고,
한때 웨벨 원수에 의해 강제로 퇴역당하기도 하지만 이후 복직되어 연합군을 위한 공병전차 개발에 힘쓰게 됩니다.


호바트 소장은 여러 전차를 이용해 일명 '호바트의 만화'라 불리는 각종 기발한 공병전차의 개발에 힘썼고, 이들 퍼니 전차는 센토어, 셔먼, 발렌타인 등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보병전차 처칠이었습니다. 기발한 괴짜 발명가 호바트 소장과 무겁고 육중한 처칠 가카는 환상의 칵테일을 이뤄냈고, 개발된 처칠 퍼니 전차의 대부분이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연합군의 훌륭한 일원으로 활약합니다. 다양한 처칠 퍼니 전차가 있지만 이미 링크된 글의 저자이신 카이텔님께서 소개를 하셨으니 그 중 대표격인 일부만 다뤄볼까 합니다.



유명한 화염방사전차인 처칠 크로커다일,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잡것들을 태워버리겠다는 가카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칠 Mk.7로만 제작되었고, 차체의 베사 기관총이 있던 자리에 뒤에 달린 연료통에서 연료가 보급되는, 일명 '크로커다일 키트' 라고 불리우는 대형 화염방사기를 장착했습니다. 화염방사기의 지속력에서나 화염의 위력에서나 매우 뛰어났고, 연료통이 피탄되면 곧바로 분리가 가능했기 때문에 피격 시 위험도 비교적 적은 수작 화염방사전차입니다.
크로커다일 키트는 셔먼 전차에도 사용되어, 셔먼 크로커다일 화염방사전차가 소수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처칠 퍼니 전차인 처칠 AVRE. 기존 주포를 철거하고 290mm 스피곳 박격포,
즉 발사봉식 박격포를 장착한 공병전차입니다. 사거리는 짧았지만, 중장갑을 앞세워 단점을 상쇄시켰고, 
290mm나 되는 대구경 HESH(점착유탄)탄의 무식한 위력을 십분 살려 요새 및 벙커 파괴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각종 키트를 장착해 다양한 작업용도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산을 깎고 땅을 다지겠다는 가카의 건설정신이 보입니다.



처칠 ARV. 이미 구식이 된 처칠 Mk.1 혹은 Mk.2의 포탑을 제거하거나 훼이크 포탑을 달고
2정의 브렌 경기관총 마운트와 전차회수 크레인을 장착한 전차회수차량입니다. 
구식 전차를 되살려 망가진 전차 하나하나 재활용하겠다는 가카의 절약정신의 결정체입니다.



처칠 가교차량. 잠수능력을 살려 하천에 직접 들어가는 방식으로 가교를 설치했습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강을 메우고, 다리를 놓고, 운하를 파겠다는(...응?) '수상 가카'의 위대한 개척정신에 저도 모르게 감격에 젖습니다.



처칠 보병전차는 비록 처음에는 부족한 계획과 적절한 로비의 결과물로서 다소 부족한 성능의 전차로서 시작되었지만, 꾸준히 현장에 엔지니어를 파견해 부족한 점을 메우는 벅스홀 사의 프로정신과 계속된 개선과 보완으로 인해 최고는 아니지만 2차 세계대전을 치르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강화된 성장형 전차였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보병전차라는 개념 자체가 현대전에서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구식 개념이었고, 이에 충실했던 처칠은 보병전차의 약점인 부족한 기동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보병전차 Mk.4 처칠 스펙(Mk.3, Mk.7)

 

중량: 38500 / 40100kg
승무원: 5명
엔진:

Bedford Flat Twin Six / 12실린더 / 350마력

속도: 25/20km/h
항속 거리: 도로: 198/145km
연료 용량: 682 liters
전장: 7.35m
전폭: 3.25m
전고: 2.78m
무장:

57mm 6파운드 L/52 전차포
75mm Mk.V L/36.5 전차포
& 3 x MG
(1 x 7.92mm 7.92 mm Besa MG - 차체)
(1 x 7.92mm 7.92 mm Besa MG - 동축)
(1 x .303 cal(7.7mm) Bren - 대공 )

탄약:

57mm / 75mm - 84 / 84발
7.92mm - 8050발
7.7mm - 600발

장갑: 16-102/152mm


57mm 6파운드 L/50 전차포(후기형)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CBC Shot Mk.IX 92mm 82mm 71mm 61mm 52mm
APDS Shot Mk.I 142mm 127mm 110mm 95mm 83mm
 
 
APCBC Shot Mk.IX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APDS Shot Mk.I (APDS) - Armor Piercing Discarding Sabot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infantry/churchill.asp
http://cafe.naver.com/nuke92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23916#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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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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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3 18:25 신고

    영국 전차는 개량형이 참 많은듯 ㅇㅅㅇ

  2. 세미욘 티모셴코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0.07.14 00:29 신고

    보병전차 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활약을 했군요 ㄲㄲ
    개인적으론 290mm 박격포를 장착한 AVRE에 흥미가 생기는군요
    저걸 야크트티거에 쏘면 어떻게 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ㄲㄲ

  3. 2010.08.05 09:07 신고

    그나저나 독일군을 고자로 만들고 티거와 맞짱을 떴던 T-34는 언제 리뷰?!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3 21:09 신고

    참 처칠이 톰슨기관총 든거 퍼가고 싶군요 ㅋㅋ 근데 못퍼가는 1人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3장,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달려라 사막의 십자군




죽을 쑤는 순항전차


1935년부터 시작된 보병전차 개발이 그럭저럭 쓸 만한 결과물을 내놓은 반면, 1934년부터 진행중이던 순항전차는 연이어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1936년 개발된 A9, 순항전차 Mk.1이 영국군의 요구 사항을 맞추었다고는 해도 고작 14mm 수준의 전면장갑에 기관총탑을 주렁주렁 달고는, 아주 빠른 것도 아닌 40km(당시로선 빠른 편이지만...)의 속력 정도 뿐이었고, 애초에 보병전차로 설계되었다가 실패하고는 난데없이 순항전차 자리에 불쑥 주저앉아버린 A10, 순항전차 Mk.2는 30mm 전면장갑에 속력도 26km로 어느것 하나 내세울 장점 없이 이도저도 아닌 실패작이 되어버렸습니다.



순항전차 Mk.1. 아직 다포탑전차 인디펜던트의 영향이 남아있는지 차체 전면에 기관총탑을 두 개나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무장도 중량도 기동력도 장갑도, 그럭저럭 왕립 육군의 기준을 맞추긴
했다만... 그 기준이 기관포에도 벌집이 되어버릴 씌우다 만 약골이었다는게 문제였습니다.



 
보병전차로 개발되었다 실패한 후, 느닷없이 순항전차 타이틀을 꿰다찬 순항전차 Mk.2.
제식 판정에서 탈락했다가 이듬해 어떤 이유인지 생산이 시작되어 175량이 생산되었습니다.
보병전차와 순항전차 양 쪽에 어중간히 걸치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 지극히 영국스러운 전차라 하겠습니다.



영국산 크리스티식 순항전차의 개발


이렇게 순항전차에서 연이어 죽을 쑤며 속을 끓이고 있던 왕립 육군에게 한 줄기 생명수같은 떡밥소식이 내려왔으니, 1936년 아치볼트 웨벨 장군을 따라 소련군 참관단의 일원으로 다녀왔던 마텔 중령이 거기서 소련군의 BT 시리즈 전차들을 보고 감동해 본국에 제안한 크리스티식 현가장치였습니다.



비운의 전차 개발자 그로테와 쌍벽을 이룰만한 발명가 존 월터 크리스티. 최초로 4륜 구동 자동차를
개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비록 조국인 미국에서는 그의 전차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 사람의 
기술은 이후 영국과 소련에 이어져 각각 크루세이더와 크롬웰, BT 시리즈와 T-34로 그 결실을 맺게 됩니다.




크리스티 전차의 계보를 이은 소련의 BT-5 고속전차. 크리스티식 현가장치의 덕택에 최대시속
70km에 육박하는 괴력을 과시하며 씽씽 날아다녔고, 마텔 중령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마침 자국의 순항전차가 영 시원찮다고 생각했던 왕립 육군도 얼씨구나 이 싱싱한 떡밥을 덥썩 물었고, 모리스 사를 앞장세워서 크리스티에게 거래를 제안하게 됩니다. 마침 돈이 궁했던 크리스티도 '조쿠나!'를 연발하며 모리스 사와의 거래에 응했고,  트랙터로 위장한 크리스티식 전차 차체 2량이 1936년 말엽 영국에 도착합니다. 곧 모리스 사 산하의 전차회사인 너필드 사에서 이 전차들의 차체를 영국식으로 개조하고, 340마력짜리 너필드 리버티 엔진과 순항전차 Mk.1의 전차장 큐폴라를 확대한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 장비 포탑을 장착해 1937년 A13, 순항전차 Mk.3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장갑이 순항전차 Mk.1과 같은 수준인 14mm였기 때문에 장갑을 좀더 덧붙여 방호력을 최대 30mm까지 늘려낸 A13 Mk.2, 순항전차 Mk.4를 1938년 추가로 개발해냅니다.



순항전차 Mk.3. 크리스티식 현가장치 덕에 기동력이 월등히 향상되었지만 아직 주력전차로는 모자랐습니다.




1938년이 되어서야 왕립 육군에서도 좀 쓸만한 순항전차가 등장합니다. 순항전차 Mk.4.
순항전차 Mk.3의 장갑 강화형으로, 포탑 디자인은 이후 크루세이더에게 이어집니다.



이들은 성능에서 영국군을 전반적으로 만족시킨 덕에 각각 665량과 655량이 생산되어 프랑스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1942년 경까지 독일 전차들을 상대로 활약합니다. 하지만 이들 신형 순항전차도 왕립 육군의 눈에는 뭔가 모자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결국 이들이 개발되기 무섭게 1938년부터 새로운 순항전차의 개발이 시작됩니다.


영국 전차사 희대의 삽질물, 순항전차 Mk.5 카베난터


1938년부터 시작한 차기 순항전차 개발은 너필드 사와 LMSR 사와의 경쟁 구도로 시작되었습니다. LMSR사는 자신들이 진행 중이던 A14가 복잡하고 결함이 많은 물건으로 판명나자 이를 취소하고 1939년 4월 기존의 A13에 미도우 사제 Flat-12 D.A.V.엔진을 장착하고 장갑을 추가해 발전시킨 A13 Mk.3를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차고를 낮추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는데, 이 중 가장 엽기적인 것은 엔진과 라디에이터를 분리하고 이 라디에이터를 조종수 측면에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덕에 전차의 냉각시스템이 작동하지를 않아, 조종수의 전차 조종에 문제를 끼침은 물론이고, 전차 자체가 자주 퍼져버리는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 외에도 리벳으로 도배된 포탑과 지나치게 좁아진 포탑 바닥 덕에 포수와 장전수의 작업에 애로사항이 생기고, 심지어는 전차장의 다리가 포탑 회전시 끼어버릴 수도 있는 또다른 문제점도 일어납니다. 정말 어이없는 것은 이러한 심각한 결함들이 A13 Mk.3가 영국 청교도들의 이름을 딴 순항전차 Mk.5 '카베난터'라는 제식명을 받고 생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다.



순항전차 Mk.5 카베난터. 겉으로야 일단 멀쩡해 보이지만, 그 내용물과 카베난터와 관련된 비사를 살펴보면
영국 전차 역사상 최대의 코미디입니다. 하기야... 철도회사가 전차를 만들겠다고 뛰어들었으니...




내부 결함이 워낙 많으니 도저히 주력 순항전차로 쓸 성능이 아니었던...


거의 같은 시점에서 크루세이더가 개발되었고, 크루세이더가 신뢰성에서나 성능에서나 카베난터를 압도함에도 불구하고 LMSR 사의 입김이라도 불었는지, 영국 왕립 조병창은 그들이 2차 세계대전 동안 내린 결정 중 가장 멍청한 결정을 합니다. 카베난터는 크루세이더와 함께 영국의 제식 순항전차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위기에 처했던 1940년 여름에, 영국은 그동안 쌓아두었던 모든 막장력과 잉여력을 폭발시키고 맙니다. 영국군은 1943년까지 이 결함투성이 잉여 전차를 크루세이더와 병행 생산해, 1771량이나 찍어내었습니다.
일단 찍어내었으니 어떻게 소비라도 해야 할 참이라 카베난터는 폴란드 제 1 기갑사단에 선심쓰듯이 내팽개쳐졌고, 폴란드 제 1 기갑사단이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파견되면서 영국 제 9 기갑사단에 이양되었지만, 영국에서도 문제가 속출하는 카베난터가 뜨거운 중동에서 어찌되었을지는 너무나도 결과가 뻔했습니다. 결국 카베난터는 대부분이 영국 본토에서 썩을 수밖에 없었고, 실전은 택도 없었습니다.
카베난터가 격파당한 유일한 사례는 1942년 5월 31일 카베난터를 운송하던 열차가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된 것뿐이었습니다.



잉여전차든 뭐든 개선도 해보고 파생형도 만들어보며 어떻게든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형편없는 태생은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베난터와 왕립 조병창, 그리고 영국 육군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1943년에 접어들면서 카베난터의 잉여함에 질려버린 왕립 육군이 1700여 량에 이르는 카베난터들을 전부 스크랩 처리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형편없는 설계로 탄생한 카베난터는 자신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 존재이유조차 찾지 못한채 용광로에서 그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아니... 이럴거면 애초에 왜 만든 건데...


LMSR도 울고 왕립 조병창도 울고 카베난터도 울었습니다. 



십자군의 탄생,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의 등장.


카베난터 개발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순항전차 Mk.3, Mk.4를 개발해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은 너필드 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후계 순항전차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경쟁사인 LMSR 사가 기존의 A14를 그만두고 카베난터 개발을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진 너필드 사도 기존의 A15 계획을 중단하고 새로운 A15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개발 기간을 줄이기 위해 카베난터의 포탑을 차용하고 순항전차 Mk.4의 부품 상당수를 유용한 신형 A15는 카베난터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다만 카베난터의 라디에이터가 있던 조종수 측면 공간에는 베사 기관총을 장비한 기관총탑이 탑재되었는데, 이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A15 전차는 1939년 7월 완성되고, 순항전차 Mk.6으로 제식화되어 총 5300량 가량이 생산됩니다.



이제야 왕립 육군을 만족시킨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Mk.1 버전으로, 차체의 기관총탑이 특징입니다.



사실 제원만 놓고 따지면 43km의 최대시속, 2파운드 주포나 카베난터보다 한 정 많은 두 정의 베사 기관총, 40mm 전면장갑 등 카베난터와 큰 차이는 없어보였지만, 기계적 문제나 주행성, 항속 거리등을 따져보면 Mk.6은 한심해 빠진 카베난터를 완전히 능가하는 성공한 순항전차였습니다. 카베난터의 문제있는 리벳 뭉치 포탑을 그대로 가져온 덕에 포탑 공간이 좁은 것 외의 단점은 여전했고, 차체 기관총탑이라는 불필요한 무장을 장착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전의 순항전차와 달리 양쪽 로드휠을 5개로 늘려서 중량 밸런스를 조절하고, 카베난터의 약점을 극복한데다, 항속거리도 두 배로 늘어난 Mk.6의 성능은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하기에 충분했고, 영국군은 이를 마틸다와 함께 1941년에 6월에 계획된 대규모 반격작전인 배틀액스 작전에 순항전차 역할로 처음 투입합니다. 



격파된 4호전차를 지나치는 크루세이더, 비록 전투는 졌지만 크루세이더 전차의 활약은 준수했습니다.



물론 이 작전은 88mm 고사포를 앞세운 롬멜횽아 장군에게 영국군이 조낸 쳐맞는 참패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Mk.6은 2파운드 전차포의 빈약함, 초기형에서 등장하는 잦은 잔고장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기동력과 지금까지의 순항전차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쓸만한 방호력을 보여주며 왕립 육군을 만족시켰습니다. 뒤이은 크루세이더 작전에서도 투입된 Mk.6은 여기서도 순항전차로 투입되었고, 크루세이더라는 이름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크루세이더 또한 2파운드 전차포의 약점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고, 카베난터보다야 적긴 했지만 사막의 거친 환경에서 높은 신뢰성을 보여주던 발렌타인과는 달리 여기저기서 잔고장이 속출합니다. 또한 라이벌 격인 3호전차가 추가 장갑을 덧붙이고 장포신 50mm 전차포를 장비하며 크루세이더는 독일 전차와의 성능에서 점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틸다도 못 버티는 넘사벽 88mm 고사포야 말할 것도 없고 



주요 라이벌이었던 3호전차가 계속 강화되어가면서 독일군은 크루세이더로도 상대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크루세이더 전차 또한 기관총탑을 제거하고 장갑을 증가시키면서 기계적 신뢰성을 개선했고, 동시에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로 주포를 교체하는 개량을 진행했지만, 6파운드 전차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포탑 공간덕에 크루세이더는 2인용 포탑으로 역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북아프리카 전선이 종결되어가며 왕립 육군은 셔먼과 크롬웰 등의 더 훌륭한 전차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결국 북아프리카 전선 이후 크루세이더도 이들에게 주력전차의 위치를 빼앗기며 일부 파생형들만이 전장에 남게 됩니다.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의 개량형과 파생형


크루세이더의 개량형은 비교적 적은 편으로, 3개가 존재합니다. 기관총탑을 장비한 초기의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Mk.1, 기관총탑을 없애고 장갑을 49mm까지 늘린 순항전차 Mk.6A 크루세이더 Mk.2, 그리고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를 2인승 포탑에 장착한 크루세이더 Mk. 3입니다. 하지만 Mk. 3은 144량만이 생산되었으니, 크루세이더의 실질적인 주포는 2파운드 전차포입니다. 



크루세이더 Mk.1. 마땅한 사진이 없어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차체의 기관총탑이 식별포인트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크루세이더 Mk.2. 차체 기관총탑뿐만 아니라 기관총까지 들어내버린 영국스러운 개조가 돋보입니다.



최종형인 크루세이더 Mk.3. 6파운드 전차포 덕에 화력은 늘었지만
2인용 포탑 덕에 전차장이 장전수까지 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의외로 크루세이더의 파생형은 그리 다양하지 않습니다.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한 크루세이더 CS(근접지원차량)와 대공전차 시리즈가 주를 차지하며, 탄약 운반차 또한 개발되었습니다. 그 외에 잡다한 불도저, 상륙전차, 지뢰제거차량 버전이 있지만 처칠과 발렌타인 개조차량에 밀려 실용화되지는 않았습니다.



크루세이더 역시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하고 근접지원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40mm 보포스 기관포를 오픈탑식 포탑에 장비한 크루세이더 AA Mk.1.
오스트빈트나 M19 GMC, ZSU-37과 그 역할이 비슷해 보입니다.



포탑을 20mm 오리콘 기관포 2정과 폐쇄식 포탑으로 대체한 크루세이더 AA Mk.2. 이쪽은
비르벨빈트와 M16 GMC에 비교할 만하군요. 여기서 무전기를 교체한 것이 Mk.3입니다.



크루세이더 포운반 차량. 주로 17파운드 대전차포나 25파운드 야포같은 중형 견인포를 운반했습니다.



크루세이더는 동시대에 등장한 전차치고는 그리 성능이 나쁘지도 않았고, 영국의 순항전차의 기준에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연합군의 좀더 발전한 전차인 셔먼과 크롬웰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과도기형 전차일 뿐이었고, 그 임무를 훌륭히 마친 뒤에는 마틸다와 발렌타인이 그러했듯 전장에서 한발 물러서게 됩니다.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스펙(Mk.2, Mk.3)

중량: 19000 / 22100kg
승무원: 5 / 4명
엔진:

Nuffield Liberty Mark III/IV / 12실린더 / 340마력

속도: 43km/h
항속 거리: 도로: 322/204km
연료 용량: 120 gallon
전장: 5.98 / 6.41m
전폭: 2.64m
전고: 2.24m
무장: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
/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
& 2 x MG
(1 x 7.92mm 7.92 mm Besa MG - 동축)
(1 x .303 cal(7.7mm) Bren - 대공 )

탄약:

40mm / 57mm - 110 / 65발
7.92mm - 5000발

장갑: 7-52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mk-v.asp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mk-vi.as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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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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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2 12:06 신고

    일본이나 영국이나 같은 섬나라끼리 기기묘묘한걸 만드네요....

    그나마 전투기 쪽을 제외하면 졸작과 괴작들 --

  2. 2010.06.22 17:44 신고

    잘봤습니다. 영국특유의 전차개념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순항전차와 보병전차로 이분화시킨 것도 그렇고...
    전차를 처음 해군성에서 발주한 것이 이런 화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원래 순항전차와 보병전차의 개념이 순항전함과 전함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암튼 재미있게 봤습니다. 감솨..

  3. 2010.06.24 18:18 신고

    엄마 귀엽긴한데..

    저거 왜써?....

  4. 2010.06.26 16:56 신고

    짤방보고 왔다능.. ㅇㅅㅇ

  5. 2010.09.14 23:41 신고

    아 네;.....

  6. 2011.10.12 19:26 신고

    근데 BT-5라 올려주신 사진은 5가 아니라 BT-2 같네요.

  7. 2012.02.10 19:40 신고

    음..... 어쨰 미국은 천조국 답게 전차 성능은 독일 넘사벽이고 결국 물량 승부고 ㄷㄷ;(하지만 일본군과 싸울때는 엄청난 성능을 발휘했다던) 영국은 그래도 전차가 준수 한데 거의다 경사장갑이 아니고 어째 경전차가 대부분인거 같고 그나마 소련은 경사장갑을 최초로 썼다나 해서 전차 성능은 준수하고 물량은 쩔었다는데 개인적으로 소련 전차가 가장 좋은듯 ㅇㅅㅇ? ㅋㅋ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2장, 발렌타인, 실패한 순항전차를 성공한 보병전차로.


또다른 보병전차의 개발


1936년 비커스-암스트롱 사에서 개발된 A9, 순항전차 Mk.1와 같은 시기에 동시에 보병전차로 개발되었던 A10이 영국군의 요구조건이었던  2파운드 전차포의 장비, 60mm 전면 장갑과 시속 20km의 속력에 맞추지 못하고 물을 먹으면서, 비커스 사는 자기들이 만들었어도 너무 대충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A10을 손봐 제법 멀끔한 보병전차를 탄생시킵니다. 1938년부터 A10의 차체, 135마력짜리 AEC 엔진, 서스펜션, 기어 변속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거기에 동축기관총인 베사 기관총을 배치해 개발했던 프로토타입이 1939년에 완성되고 이어서 1940년에 제식 채용되면서 기존의 영국 전차에 붙던 'A' 형식 없이 그대로 발렌타인이라는 제식명이 붙게 됩니다.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보면, A10의 개발자인 카덴 경의 풀네임 '존 발렌타인 카덴'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오늘날에는 초콜릿상술로 유명한 발렌타인 데이 그 자체에서 따왔다고도 합니다.



영국군의 세번째 보병전차인 보병전차 Mk.3 발렌타인은 보병전차답게 느려터졌지만 성능은 괜찮았습니다.


뭐 실패하기는 했어도 일단은 순항전차 베이스였던 A10의 신뢰성 좋고 괜찮았던 구동 장치들과 선회력에 마틸다 2보다 조금 못한 65mm의 전면장갑을 가진 덕에 발렌타인의 성능은 24km의 속력 빼면 당시 전차로선 퍽 좋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16톤이라는 중량 한계에 무리하게 맞추느라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를 갖춘 2인승 포탑을 채용하게 되었고, 이 덕에 포수가 장전수까지 맡아야 하는 영국스러운 설계사상이 발렌타인의 가장 중요한 약점이 됩니다.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의 활약


마틸다 2보다는 조금 늦은 1941년 초부터 서부사막군에 배치되기 시작한 발렌타인은 크루세이더 작전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신뢰성도 좋고 방어력도 문제없다는 호평을 듣습니다. 여전히 느려터지긴 했어도, 거친 사막에서 곧잘 잔고장을 보이던 마틸다와는 달리 발렌타인은 사막에서도 큰 고장 없이 잘 굴러갔기 때문에 롬멜 장군의 등장과 함께 이미 망조가 보이기 시작한 마틸다의 자리를 순조롭게 넘겨받고 1945년까지 총 8275량이나 생산되며 영국군의 주력 보병전차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파운드 전차포라 88mm 고사포에 떡실신나는 것은 숙명이었지만 마틸다보다는 그래도 장점이 많았습니다.



기계적 고장이 적은 덕에 이렇게 6파운드 대전차포같은 경포를 견인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의 전차들이 강해지고 있었지만 발렌타인은 마틸다에 비하면 그래도 미래를 생각한 전차였기 때문에 좀더 나은 무장으로 교체가 가능했습니다. 약점인 2인승 포탑과 2파운드 포가 3인승 포탑과 2파운드보다 관통력도 좋고 약해도 유탄도 발사 가능한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로 각각 교체되면서 발렌타인은 당시 독일의 주력전차인 3호전차 후기형에도 그리 밀리지 않게 되었고, 이후 최후기형인 Mk.XI에 들어서는 미군의 넘쳐나는 75mm 포탄을 사용하고 유탄의 위력을 늘리기 위해 관통력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구경이 늘어난 75mm Mk.V L/36.5 전차포로 교체하게 됩니다.
다만... 이 두 포 다 4호전차 장포신형이나 티거 중전차에는 대책이 없어서 그랜트와 셔먼에 의지하는 수밖엔 없었습니다.
이탈리아의 개똥같은 산길과 시골길에서도 잘만 굴러가던 발렌타인은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영국의 주력전차로 잘 뛰지만, 1944년 서부전선에 들어서는 크롬웰과 처칠 같은 더 우수한 전차들에 밀려 더는 사용이 힘들어지며, 여러 파생형 전차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됩니다.


  
그동안 잘 부려먹긴 했지만 발렌타인에게도 이제 은퇴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발렌타인도 처칠과 마찬가지로 소련에 공여되었는데, 16~19톤 정도밖에 안 나가는 중량 덕에 발렌타인을 공여받은 소련 적군은 이를 경전차 수준으로 취급했지만 똥덩어리에 2파운드 전차포 무장이 전부였던 마틸다보다는 높이 치며 총 2690량(도중에 400량은 침수) 그럭저럭 잘 써먹었고, 자국의 76.2mm 전차포를 달아 써먹기도 합니다. 



확실히 티거나 4호 후기형에게는 끔살감이어서 주력으로 쓰긴 무리였어도,
아직 부족했던 소련군 전차전력을 메워주기엔 그리 나쁘지 않았던 듯 합니다.


발렌타인의 개량형과 파생형


깔 게 많아 즐거웠던 마틸다와는 달리 깔 게 없어 슬펐던 발렌타인입니다.  이러면 글이 재미없어지거든요 =ㅅ=...
다행히도(?), 기본은 탄탄했던 발렌타인 전차 원형과 개량형과는 달리, 발렌타인의 주된 파생형인 비숍과 아처는 그 괴상한 설계 덕에 장착한 무장들의 원래 성능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기염(?)을 토하니만큼 까기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본인 스타일상 외전행.
어쨌든 우선 개량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발렌타인 전차 개량형들의 계보도, 워낙 개량형이 많아서 위키에서 계보도를 별려왔습니다.


주된 계보를 살펴보자면, AEC 사제 디젤엔진을 장비하기 시작한 발렌타인 Mk.2, 캐나다제 생산형인 발렌타인 Mk.6과 Mk.7, 6파운드 전차포를 장착한 발렌타인 Mk.8, 마지막으로 75mm 전차포와 제너럴 모터스 사제 디젤엔진을 장비한 발렌타인 Mk.11이 있습니다.
(Mk.5는 2파운드 전차포형, Mk.9와 Mk.10은 6파운드 전차포형입니다.)


 
기본형이자 유일하게 AEC사제 가솔린 엔진을 장비한 Mk.1.



3인용 포탑과 함께 131마력짜리 거꾸로 가는 AEC 사제 디젤엔진을 새로 장착한 Mk.3.
Mk.4와 캐나다산 후기형들은 이 엔진을 그대로 씁니다.



다시 135마력으로 업된 제너럴 모터스 사제 디젤엔진으로 엔진을 교체하고 동축기관총도 미제 M1919A4로 갈아끼운 
Mk.V. 엔진과 기괸총은 이대로 종전까지 우려먹습니다. 여담이지만, 발렌타인 전차가 개발될 무렵부터 등장한 7.7mm 브렌 경기관총이 이후 영국산 전차들의 전차장 큐폴라에 대공기총으로 지급되게 됩니다.



Mk.3의 포탑에 6파운드 전차포를 장착한 Mk.8. 철갑턴의 관통력은 최후기형인 Mk. XI보다 오히려 낫습니다.



75mm 전차포로 갈아탄 최후기형 Mk.11. 이쯤 되니 속력 좀 모자란 셔먼 초기형 정도로 보이네요.


어째 모자란 글을 사진으로 떼우는 느낌이 들지만, 파생형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발렌타인이 좀 느려터졌어도 차체 자체가 워낙 잘 만들었기 때문인지 파생형 차량이 좀 많았는데, 실제로 성공한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성공한 파생형들도 어째 시원찮은 구석들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파생형으론 발렌타인의 차체에 87,6mm 25파운드 L/28 야포를 탑재한 전투실을 설치한 좆망자주포로 유명한 비숍과 역시 발렌타인의 차체에 영국군의 최강 대전차포였던 76mm 17파운드 L/55 대전차포를 탑재한 전투실을 괴상하게 설치한 좆망대전차 자주포인 아처가 있습니다. 나중에 많이 깔 테니 지금은 그냥 넘어갈...(88mm로 조낸 쳐맞는다...)



어설픈 개조로 좋은 포였던 25파운드 야포까지 패키지로 망쳐버린 비숍 자주포.
후계인 섹스톤 자주포가 등장한 후로는 빠르게 교체되어버립니다.




역시 재료가 좋았음에도 허접한 설계 덕에 괴작으로 남아버린 아처 대전차 자주포. 그런데 이건 당시 영국군에게 
17파운드 대전차포 탑재차량이 절실했던지라 버리기도 쉽지가 않아서, 구려도 울며 겨자먹기로 써야 했습니다.


 
이제 왜 그러는 지는 아시겠지요...?


발렌타인에게는 다행히도, 그 외 나머지 파생형 차량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지뢰제거전차인 스콜파온과 스네이크, 상륙전차인 발렌타인 DD, 발렌타인 가교전차들이 생산되어 이용되었고, 이외 화염방사전차, 박격포 탑재 차량등이 있지만 채택되지 못하거나 더 나은 후계 차량 덕에 연습용으로 사용되는 데 그칩니다.



전선에서 몽고메리의 영국 제 8군에 의해, 롬멜의 방어선이었던
지뢰지대, 일명 '악마의 정원'을 돌파하는데 한몫했습니다.



상륙전차인 발렌타인 DD. DD 셔먼처럼 부양막으로 부력을 얻었으며, DD 셔먼이 개발되기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한
연습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DD 계열 아니랄까봐 부양막 찢어지면 고기밥되는 것도 똑같습니다 =ㅅ=;;;



발렌타인 Mk.2의 포탑을 들어내고 가교설비를 장착한 발렌타인 가교전차입니다.


발렌타인은 보병전차라는 실패한 컨셉을 따랐다는 한계는 그대로였지만, 마틸다보다는 분명히 진보했고 미래를 바라본 전차였던 덕에 일찍 퇴역을 겪고 만 마틸다와는 달리 무장을 교체하고 파생형으로 개조되며 전쟁 말까지 그 명맥을 잇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두껍고 강력한 보병전차였던 보병전차 Mk.IV 처칠에게 주력 보병전차 자리를 물려주고 동맹국들에게 공여되거나 태평양 전선으로 보내지며 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서서히 물러나게 됩니댜.




보병전차 Mk.2 발렌타인 스펙(Mk.8, Mk.11)


중량: 16000~19000kg
승무원: 5명
엔진:

AEC/GMC / 6실린더 / 135마력

속도: 24km/h
항속 거리: 도로: 145km
연료 용량: 67 gallon
전장: 5.89m
전폭: 2.64m
전고: 2.29m
무장: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
/ 75mm Mk.V L/36.5 전차포
& 2 x MG
(1 x 7.62mm M1919A4 - 동축)
(1 x .303 cal(7.7mm) Bren - 대공 )

탄약:

57mm / 75mm - ??발
7.62mm - 1,575발

장갑: 8-65mm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초기형)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C Shot Mk.VIII 94mm 76mm 57mm 44mm 33mm
APCBC Shot Mk.IX 86mm 76mm 66mm 57mm 49mm
 
 
APC Shot Mk.VIII (APC) - Armor Piercing Capped
APCBC Shot Mk.IX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75mm Mk.V L/36.5 전차포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C M62 Projectile 81mm 67mm 52mm 40mm 31mm
 
 
APC M62 Projectile (APC) - Armor Piercing Capped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infantry/valentine.as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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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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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0 09:26 신고

    어째 생긴건 귀엽게 생겼습니다
    다만 속도가 조루 ㅠㅛㅠ
    77 미리 박격포보니 저런것도 굴러가는 구나 생각합니다 ㅋㅋ

  2. 2010.06.10 19:03 신고

    진리는 셔먼 ㅇㅅㅇb

  3. 2010.06.15 05:50 신고

    제가 좋아하는 발렌타인 전차로군요. 오랜만에 들렀는데 제가 좋아하는 전차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어서 반갑네요.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3 21:15 신고

    참 ... 콜듀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탱크 순위 1위 t-34 순위 2위 m4셔먼 3위 참... 영국 전차 쿠루세이더만...

  5. 2011.03.21 16:29 신고

    M3스튜어트도 괜찮던데 .. 어쨋든 잘보고 갑니다^^

  6. 2011.12.19 01:12 신고

    dafher

  7. 2012.03.31 23:24 신고

    퍼가요~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1장, 보병전차 Mk.1/2 마틸다, 몰락한 사막의 여왕들 



전차 종주국의 자존심 세우기


영국군이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악명높은 참호 진지를 돌파하기 위해 최초로 전차를 개발해 사용했다는 것은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어지간히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전차 종주국으로서의 영국의 명성은 1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서서히 흔들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재정부족도 부족이었고, 방귀 좀 뀐다는 열강들이 연이은 전차개발을 시작해대며 쓸만한 물건들을 뽑아내기 시작했으니, 왕립 육군으로서는 똥줄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유럽의 라이벌 프랑스도 쓸만한 물건들을 쑥쑥 뽑아내고...


[Medium-A.jpg]
바다건너 양키들까지 슬슬 신경을 긁더니...



아니, 이제는 동쪽 섬나라의 하등한 'Mon-Keigh'들까지! 점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영국이었습니다.


그래도 망한 부자가 3년 간다고, 아직 영국도 전차 종주국으로서 명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 재정 상황과 비싼 장비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기계화는 필요했던 여러 고만고만한 나라들의 추세에 맞춰 영국 육군은 일명 탱케트(Tankette, 우리 나라에서는 콩전차 혹은 두전차라 합니다.)라 불리는 기관총과 기본적인 장갑만 두른 경장갑차량들을 대략으로 찍어내어 자기들 무장으로도 쓰고 여러 나라에 내다 팔기도 하며 근근히 전차 종주국으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카덴 로이드 시리즈로 불리는 6톤 대 탱케트들이었습니다.



모습이야 장갑차만도 못한 아담한 차체에 장갑 씌우고, 빅커스제 기관총 하나 달랑 단 빈곤한 모델이었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카덴 로이드 탱케트 시리즈가 히트치는 비결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명색이 전차 종주국인 영국이 이런 상자곽 탱케트 나부랭이들 좀 잘 팔았다고 체면치레 하기엔 뭔가 모자랐습니다. 거기다 3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기껏 즈려밟아 놓았던 독일도 슬슬 힘을 키우며 전차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으니, 왕립 육군의 고집불통 영감들도 뭔가 더 나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슬슬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보병전차와 순항전차


1920년대에 탱케트들을 굴리며 쌓은 기동전술 노하우와 신진 장교들을 필두로 한 새로운 기갑부대 전술 이론의 발전들을 겪으며 영국이 앞으로 개발할 신형전차의 컨셉이 슬슬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을 겪은 원조 전차 전문가 늙다리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보병 지원에 충실한 전차의 재현을 원하고 있었고, 결국 차후의 신형전차 컨셉은 두터운 장갑과 보병지원용 화기로 무장해 보병과 보조를 맞추며 참호돌파를 담당하는 보병전차. 최소한의 경장갑을 갖추고 새로운 전술에 따라 충격전술을 통한 전선돌파를 담당하는 순항전차로 나뉘게 됩니다.



중장갑과 보병의 이동속도에 맞춘(이라고 쓰고 느려터진이라고 읽는) 속도로 보병을 지원하는 보병전차! 



장갑은 얇아도(라고 쓰고 없다고라고 읽는) 빠른 기동력으로 적진을 돌파하고 종심타격을 이뤄낼 순항전차!


옆동네 프랑스가 이와 비슷한 보병전차/기병전차 컨셉에 따른 전차 개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 보병전차/순항전차 컨셉은 이들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전차개발 컨셉과 비교해 봤을 때 상당히 시대에 역행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일단 컨셉 자체가 앞으로의 현대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식의 것이었고, 자칫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전차들이 만들어질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쨌든 자신들의 컨셉에 만족한 왕립 육군은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개발을 지시했고, 이들이 성공할 지에 대한 의문은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보병전차, 마틸다 1과 마틸다 2의 개발


1935년, 첫번째 보병전차의 개발 기준이 정해집니다.  50mm 전면장갑과 2인승 승무원, 시속 10~15km의 노상 주행성능에 보병 지원을 위한 최소한의 무장이라는 기준은 순전히 1차 세계대전적인 개념을 갖춘 늙다리 장군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전차전이라고는 생각도 안해본 이런 황당한 개념에 맞춰져 일단 개발 컨셉이 잡혀지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완성된 보병전차의 디자인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일단 노친네들이 만들자는 대로 만들어보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새로 만들어진 A11, 보병전차 Mk.1은 실패작에 가까웠습니다. 요구 조건보다 조금 더 두터워진 60mm의 전면장갑이야 일단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인 37mm 대전차포를 견뎌낼 만큼 씌우긴 했지만, 버스용 엔진인 70마력짜리 포드 V8 페트롤 엔진 덕에 기동력은 거북이 수준이었고, 완전히 노출된 궤도는 적 공격에 너무 취약해 보였으며,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무장도 고작해야 .303구경(7.62mm)의 빅커스 기관총 하나 정도였고 일부 기종의 경우 화력 향상을 위해 .50구경 짜리 중기관초으로 바꿔달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차에는 택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껏 적 전차의 포탄을 튕겨내도 상대쪽에선 따끔거리지도 않을 기관총이나 갈겨대야 할 신세였고, 전차 대 전차의 싸움이 주 전장이 될 2차 세계대전의 전투에서 이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래도 제식으로 쓸 의사는 있었는지 '마틸다'라는 애칭까지 붙었는데, 또 이 이름 붙은 유래가 코미디였습니다. 당시 영국 조병창을 담당하던 휴즈 엘스 장군에 의하면... 


'덩치도 작고 생긴 것도 굴러가는 것도 오리같잖아.'(오리같으면 여자라는 겁니까...)


영국군도 이런 전차로 전쟁을 할 용자급 용기는 없었는지, 다음 해인 1936년 9월 좀더 현실적인 보병전차의 디자인인 A12, 보병전차 Mk.2 마틸다 2가 짜여졌습니다. 완전히 말아먹은 전작에 비하면 그래도 쓸 만한 물건이었는데, 우선 무장이 당시 영국군의 표준 대전차포인 40mm 2파운드 L/52 대전차포로 바뀌었고, 초기형에는 빅커스 기관총이, 후기형에는 체코제 기관총을 라이센스 생산한 7.92mm 베사 기관총이 동축기관총으로 설치되며 전반적인 화력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전면장갑이 70mm로 당시로선 상당한 수준의 떡장갑이 씌워졌고, 약점이었던 궤도에도 보호 장갑이 씌워지며 생존성이 매우 늘어나게 됩니다. 또한 이 무렵부터 영국군 전차 내부에 무전기가 지급되며 승무원도 4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좀 전차다운 모양을 갖춘 마틸다 2. 한심한 언니에 비하면 연년생인 주제에 많이 컸습니다. 


다만 늘어난 중량과 무장에 맞춰 87마력짜리 AEC사 엔진 2개로 갈았고, 변속 장치와 서스펜션을 개량했는데도 느려터진 기동력은 제자리걸음이었고, 주포인 2파운드 포용 유탄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적 진지와 화포 제압용으로 76mm 3파운드 유탄포로 주포를 교체 가능하도록 해두긴 했어도. 훗날 이것이 마틸다 2에게 커다란 멍에가 됩니다.

어쨌든 A11과 A12은 각각 제식명도 얻어 마틸다 1과 2가 되었고, 마틸다 1은 1937년부터 140량, 마틸다 2는 1938년 165량씩 영국군으로부터 주문받아 빅커스-암스트롱 사와 불칸 사에서 생산을 시작하게 됩니다. 마틸다 2는 이후로도 생산이 계속되어 총합이 2987량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 독일이 단치히 할양을 빌미로 폴란드를 침공해 접수한지 6개월 여 후, 이번에는 아르덴 고원을 넘어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이들 둘은 첫 실전을 맞게 됩니다.


프랑스에서의 데뷔


마틸다 1과 2는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 원정대 중 제 7 왕립 기갑연대 소속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중 23량이 마틸다 2였고, 나머지는 구닥다리 마틸다 1이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프랑스 전역동안 마틸다 1은 쓸모없는 전차로 판정났지만, 마틸다 2는 70mm의 두터운 장갑 덕에 당시 독일 전차들과 대전차포를 대부분 튕겨낼수 있었고, 2파운드 전차포면 그 당시 2호 전차와 3호, 4호전차의 초기형들을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뛰어난 전투력을 과시했습니다.



제 7 왕립 기갑연대 소속의 마틸다 2. 이 정도면 당시 독일 전차를 충분히 제압했습니다.


드골과 롬멜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붙은 아라스 전투에서 마틸다 2는 독일 전차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지만, 역으로 독일국방군은 여기서 마틸다를 상대하는 해법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독일군이 이미 스페인 내전에서부터 여차하면 중대전차포로 써먹던............



88mm Flak 36/37 L/56!!!:
마틸다가 뭐 어쨌다고? 뼈와 살을 발라주마!



88mm 고사포 앞에서 마틸다 2는 철저히 무력했습니다. 일단 지금까지의 장난감같은 대전차포와는 달리 88mm 고사포는 100mm는 기본으로 뚫어버리는 데다가, 마틸다 2의 주포인 2파운드 전차포의 사거리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거기다가 2파운드 포의 치명적인 약점인 유탄이 없다는 점 때문에, 느려터진 기동력으로 2파운드 전차포의 사거리까지 기어와도, 마틸다 2는 거의 먹히지 않을 철갑탄과 동축기관총으로 88mm 고사포들을 상대해야 했고, 곧 마틸다 2의 존재를 눈치챈 88mm 고사포의 철갑탄을 얻어맞고 뼈와 살이 분리되기 일쑤였습니다. 어차피 이겨도 전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할 전투긴 했지만, 결국 아라스 전투에서 마틸다들을 비롯한 연합군의 마지막 반격 세력들은 무차별적으로 깨지고 맙니다. 결국 여기서 언니인 마틸다 1은 영국군의 보병전차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말지만, 동생인 마틸다 2의 운명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사막의 여왕, 화려한 시절 그리고 몰락


마틸다(이 무렵 마틸다 1이 폐기되었으니, 이제부턴 마틸다 2를 마틸다라 부르겠습니다.)의 본무대는 지중해 아래 북아프리카였습니다. 1940년 말 무렵, 옛 로마제국의 재현이라는 허황된 꿈 아래 무솔리니는 로돌포 그라치아니 장군에게 30만여 명의 훈련도 안 된 병사들+약간의 구식전차와 장비들을 맡기고는 북아프리카를 석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비록 허접하기는 했지만 30만여 명의 대군인데다가 당시 이집트에 주둔하던 서부 사막군은 많이 잡아봐야 2만여 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탈리아군이 시디바라니까지 진군했을 때 이들을 저지하기엔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2만의 왕립 육군은 잘 훈련되었고, 약간의 마틸다 2와 이탈리아의 것들보다는 나은 다른 전차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치볼트 웨벨 장군이 입안한 콤파스 작전을 통해 영국군은 자신들의 15배에 이르는 이탈리아군을 시다바라니에서 철저히 박살내었고, 1940년 11월에는 이집트를 수복한 것도 모자라 리비아로 쳐들어가면서 바르디아와 토브룩까지 빼앗았습니다. 마틸다는 이 기간 내내 이탈리아 기갑전력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주력이었던 CV 시리즈 탱케트들이나 M11/39 전차로는 마틸다에게 택도 없었고, 그나마 이탈리아의 대전차포인 47mm Cannone M37 L/32도 마틸다의 전면장갑에는 맥없이 나가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마틸다의 위력에 감동한 영국군 전차병들은 '사막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두터웠던 장갑, 그럭저럭 쓸만한 전차포 덕에 마틸다는 이탈리아군을 마구 쳐부수며
그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고, 졸지에 사막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마틸다가 잘나서가 아니라 이탈리아군이 너무 못나서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짧았던 좋은 시절도 다 갔습니다. 이탈리아군이 얻어터지는 것을 보다못한 독일국방군이 1941년, 아라스에서 마틸다 자매의 천적 88mm 고사포를 포함한 독일 아프리카 기갑군과 함께 '사막의 여우'로 불리게 될 에르빈 롬멜 장군을 파견한 것입니다.



(에르빈 롬멜횽아의 존안)
형 지금 아프리카 왔다. 형 지금 존내 화났다. 지금부터 천미터 내로 접근하는
영길리 새퀴들은 고사포로 존내 쳐맞는 거다. 팔백 구백 그런거 없다. 정확히 천미터인 거다. 

아라스 전투에서 이미 88mm 고사포가 마틸다의 천적이라는 것을 배웠고, 이를 기억하고 있던 롬멜 장군은 88mm 고사포를 진지에 배치하거나 매복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이미 그리스로 주력이 빠진 서부사막군은 마틸다를 앞세우다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반격에 처참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1941년 6월, 롬멜 장군이 토브룩에 묶여 있는 동안 웨벨 장군은 200여량의 마틸다를 수령받아 이들을 앞세운 배틀액스 작전을 입안하지만, 이도 88mm 고사포 앞에 무너져 64량이나 되는 마틸다를 잃고 후퇴해야 했습니다.



크루세이더, 발렌타인과 함께, 후계 전차들이 족족 나오면서 마틸다의 전성기는 빠르게 끝나갔습니다.


또한 88mm 고사포가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리카 기갑군에 마틸다의 전면을 관통 가능한 50mm Pak 38 L/60 대전차포와 이를 장착한 3호전차 후기형들이 지급되고, 장포신형 75mm 전차포를 장비한 4호전차들까지 등장하면서 마틸다는 전차전 능력에서도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상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장 강화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왕립 조병창에서도 '마틸다 블랙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를 장비한 마틸다를 개발하려 했지만, 마틸다의 또 하나의 결함이 여기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개발 당시 양산과 방어력에만 신경을 쓴 탓에 포탑링이 너무 좁아 대형포탑을 장착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1943년에 소련군에 랜드리스된 1084량의 마틸다도 찬밥 대접을 받아야 했고, 1942년에는 일선에서 완전히 밀려난 마틸다는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태평양전선으로 보내져 일본의 부실한 전차들에게나 위세부리는 신세가 됩니다. 


보병전차 Mk.2 마틸다 2의 개량형과 파생형


마틸다 1이야 만들어진 수도 얼마 안되었고 워낙에 졸작인 터라 개량이고 파생이고 볼 것 없었지만, 마틸다 2는 그래도 꽤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량도 좀 되었고, 1942년에 잉여화된 후에는 이 남아나는 똥덩어리들을 소화할 방법도 필요했습니다.
우선 개량형으로는 동축기관총으로 빅커스 기관총 대신 7.92mm 베사 기관총을 장착한 마틸다 2 Mk.2, 95마력짜리 레일랜드 사제 엔진 2개로 교체한 마틸다 2 Mk.3, 더 향상된 레일랜드 엔진과 향상된 라디오로 교체한 마틸다 2 Mk.4,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어 변속기를 교체한 마틸다 2 Mk.5형이 있습니다.



마틸다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Mk.2. 본 글에서 쓴 대부분의 사진도 다 Mk.2입니다.



사진이 거의 없어 그림으로 대체한 Mk.3/4의 사진, 사실 마틸다는 내용물만 조금씩 다르지,
주포나 겉모양은 달라지는게 없습니다. 원판이 워~~~낙 잘 만드신 탱크시라 말이시지요.



 
파생형을 들어도 제법 다양합니다. 76mm 3파운드 유탄포를 장비한 마틸다 CS와 포탑을 제거하고 지뢰제거용 장비를 장착한 바론 지뢰제거전차, 마틸다 스콜피온 지뢰제거전차와 장애물 제거용 폭약을 운반하는 마틸다 캐럿, 호주에서 제작한 화염방사전차 마틸다 프로그와 로켓발사대를 장착한 마틸다 헤지호그가 있습니다.



근접지원용 마틸다 CS. 전차전은 포기하고 근접 지원용 3파운드 유탄포를 달았습니다.
마틸다 후에 나오는 전차들에서도 이런 파생형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셔먼 크랩과 비슷한 지뢰제거용 도리깨를 단 바론 지뢰제거전차.
 이게 콯 모 게임에 나오면... '보병 갈아 죽이기'도 비슷하게 가능한 걸까요... 




마틸다 캐럿, 앞에 달린 수레(?)에 폭약을 얹어 운반하는 방식인가 봅니다.



마틸다 프로그. 잉여 마틸다들을 공여받은 호주군이 개발해 호주군 내에서만 사용된 파생형으로, 1945년 보르네오 전투에서 정글에 숨은 일본군을 태워 없애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역시 호주군 용이었던 마틸다 헤지호그, 영국 왕립 해군에서 쓰던 헤지호그 로켓을 7개의 발사관으로 발사합니다.
(가만...이거 자주로켓포잖아...그럼 2차대전 비주류 로켓포로...? 아냐... 귀찮아...)

마틸다 보병전차는 비록 잠시 전성기를 맞기도 했고, 사막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지만, 애초에 잘못된 설계사상인 '보병전차'로 태어난 태생의 한계 덕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뒤이은 발렌타인, 처칠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들에 말려 사라져갔습니다. 마틸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개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영국은 이후 빈번한 개발 실패와 성능 부족에 시달리며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보병전차 Mk.1 마틸다 스펙


중량: 11160kg
승무원: 2명
엔진:

Ford Petrol V8 / 8실린더 / 70마력

속도: 12km/h
항속 거리: 도로: 125km
연료 용량: 50 gallon
전장: 4.85m
전폭: 2.28m
전고: 1.85m
무장:

1 x HMG(1 x .50 cal(12.7mm) VicKus HMG - 포탑)
or 1 x MG(1 x .30 cal(7.62mm) Vickus  MG - 포탑)

탄약:

12.7mm - ???발
7.62mm - 4000발

장갑: 10-60mm



보병전차 Mk.2 마틸다 2 스펙


 

중량: 26500kg
승무원: 4명
엔진:

AECx2 / 6실린더 / 174마력

속도: 24km/h
항속 거리: 도로: 256km
연료 용량: 112 gallon
전장: 5.61m
전폭: 2.59m
전고: 2.51m
무장: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 & 1 x MG
(1 x .30 cal(7.62mm) Vickus  MG
or 7.92 mm Besa MG
- 동축)

탄약:

40mm - 발
7.62mm - 2000발

장갑: 13-78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infantry/infantry-mk-i-matilda-mk-i.asp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infantry/matilda.asp
http://www.wwiiequipment.com/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64:matilda-mk-ii-infantry-tank-a12&catid=38:infantry-tanks&Itemid=56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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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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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1 15:05

    비밀댓글입니다

  2. 2010.06.01 16:36 신고

    엌 잉여전차도 왕으로 만들어주는 이탈리아, 일본군 포에버(음?)

  3. 2010.06.02 08:37 신고

    영국 리뷰 끝나고 나면 주류 로켓포나 소련군 기갑을 리뷰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4. 2010.06.02 12:21 신고

    극동의 몬케이라니(Mon-Keigh)! 영국이 엘다라니!

  5. 2010.06.02 13:48 신고

    어째 머리가 좀 크네요?

  6. 2010.06.03 22:42 신고

    다음계획만?! 이 세갤 다 하신다고요?! T-34/85, KV중전차, 카츄샤 로켓포,

    • 2010.06.08 20:33 신고

      카츄샤는 안해요 ㅇㅅㅇ

      아마 T-26, BT-7, T-28, T-35(이 둘은 다포탑전차로 그냥 묶어버릴지도...), T-34, KV-1, T-60, T-70, IS-1, IS-2, IS-3...이라는 미친 계획을 세우고 있기는 한데... 제가 군대갈 적까지 이걸 다 마칠지는 미지수...

  7. 2011.06.04 00:12 신고

    영국군:대공포로 탱크 때려잡는건 사기라고 10새야!
    도길군:그럼 대전차포로 계속 노크나 하고 있으라는 거냐?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APC 리뷰



1장, M2/M3 하프트랙 장갑차



M2 하프트랙과 M3 하프트랙의 개발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미 육군은 전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허접하지만 자신들 나름대로의 전차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차가 느려터져서 알보병으로도 충분히 호위가 가능했지만 전차의 수준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 속력에 맞춰 보병, 전차, 포병 합동 전술을 수행할 포평과 보병의 기계화 수단을 개발할 필요도 높아져 갔습니다. 미군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군용 트럭에 포를 견인하고 병사들을 태운다는 간단한 방법으로 떼우려 했지만, 트럭의 형편없는 험지, 특히 진흙탕이나 개천에서의 기동성과 모자란 방어력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미군이 찾은 해법은 독일군이 개발한 반궤도 보병 수송 장갑차들에 있었습니다. 기관총을 막아낼 적당한 방어력과, 반궤도를 통해 접지압을 줄인 결과 험지도 제법 잘 주파해내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은 미 육군은 자신들의 너절한 트럭들을 반궤도화하는 실험을 해보았고, 비록 느려터지긴 했지만 효과가 있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반궤도 트럭들에 적군의 기관총탄을 막아낼 만한 수준의 장갑을 추가하는 개조를 통해 1939년에는 반궤도 정찰차량인 M1 하프트랙이 만들어져 기병대에 소수 배치되었습니다.이후 미군의 하프트랙 기술은 더욱 발전해, 1939년 12월에는 미군의 하프트랙 차량 중 하나였던 T7의 보기륜과 반궤도를 M3 정찰장갑차에 장착하고, 화이트 사의 160AX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프로토타입 T14 하프트랙이 개발되어 군용 하프트랙 장갑차로서 뛰어나다고 인정받았습니다.


M3a1022.jpg
M3 정찰장갑차. 앞부분이 익숙하실 겁니다. 왜냐면 이 녀석과 아래의 T9의 결합품이 바로 M2/M3 하프트랙이니깐요.


 

비교적 성공적인 하프트랙 장갑차었지만, T7 자체는 딱히 쓰인 곳도 없이 묻혀버렸습니다.
하지만 보기륜과 트랙은 M3 정찰장갑차의 차체와 함께 이후 M2 하프트랙의 기반이 되었지요.


1940년 9월 마침내 T14 하프트랙이 제식화된 M2 하프트랙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미 군수 위원회에 의해 전투 및 정찰, 포 견인을 컨셉으로 한 M2 하프트랙 장갑차와, 보병 수송 용도를 위해 차체 후부를 10인치 늘린 M3 하프트랙 장갑차가 제식화되었고, 화이트 모터 사를 포함한 3개 회사에서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M2 하프트랙의 전체적인 외관은 트럭과 상당히 유사했지만 장갑화된 차체는 전면의 타이어를 빼면 이 당시 국가들의 표준 경기관총 정도는 무리없이 막아낼 방어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대부분의 APC들이 그랬듯이 상부 장갑이 없어 유산탄이나 항공기의 기총 소사에는 무력했습니다. 대신 악천후를 대피한 방수 천막을 씌울 수 있었지만 기관총 사격에 방해된다거나 이외 애로사항 덕에 실제로는 천막을 걷어내고 작전을 수행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탑승인원은 승무원 3명에 추가로 기계화보병 7명을 탑승시킬수 있었으며, 차량 전면에는 M2 중기관총이, 양 측면에는 M1917 수냉식 경기관총(이후 M1919로 교체)들이 장비되어 장갑차 안에서 보병들이 사격을 가할 수 있었습니다.


USA's M2 Half Track
M2 하프트랙 초기형. 초기형에는 험지 돌파용 롤러가 정면에 붙어 있어
지형 조건이 나쁜 지역에서도 무리없이 잘 움직이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Image: M2A1 (29K)
이후 정면 롤러를 견인기나 롤러 거치대로 바꾸고 장갑판을 추가했으며 기관총 거치대를 개량한 M2A1도 생산되었습니다.



M2의 개발과 함께, 좀더 본격적으로 보병 수송 장갑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차체를 좀더 연장시킨 M3도 개발되었습니다. M3은 얼핏 보아서는 M2와 큰 차이가 없었고, 실제 수행 임무도 비슷했지만 세부적인 차이는 제법 많았습니다.
3명이 더 늘어 13명이 된 탑승량과, M2와는 다르게 차체 중앙에 장착된 중기관총 마운트, 병력 승하차용 도어 등 몇 가지 면에서 업그레이드된 M3 하프트랙은 본 임무인 보병 수송에도 좀더 적합했고, 넓어진 차체 공간덕에 좀더 다양한 장비를 탑재 가능하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대전차포, 야포, 중기관총 등 수많은 장비를 탑재하며 그 유용성을 증명했습니다.


좀더 길어지고 문도 달린 M3 쪽이 아무래도 기계화보병 수송에는 더 유리했습니다. 


M2와 M3 하프트랙은 각각 1943년과 1944년까지 13458대, 12499대나 생산되는 기염을 토하며 괴물 천조국의 기상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프트랙들이 미 육군의 기계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2차대전 내내 뛰어난 기동성을 보여주는 미군의 기계화부대를 보면 잘 알수 있을 것입니다.



M3A1 하프트랙, 차체가 좀더 길어진 M2A1입니다.


이렇게 두 종류의 하프트랙을 찍어내며 자신들이 쓸 물량은 그럭저럭 확보한 미군이었지만, 정작 소련군과 영국군에게 퍼줄 물량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미 육군은 그동안 3개의 회사에서 생산하던 하프트랙 생산처를 좀더 늘리기로 마음먹고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 1942년 6월부터 M5(M3의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사 판), M9(M2의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사 판) 하프트랙의 생산을 허가했습니다. 이들은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사의 143마력짜리 엔진을 사용하고, 표면경화장갑을 사용한 것 외에는 기존의 M3, M2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M5 하프트랙. 표면경화강판을 사용해 무게가 좀 무거워지고, 조금 출력이 낮은 엔진을 사용한
M3의 다운그레이드 양산판이라 보시면 무방합니다.


 

이쪽 M9도 원판인 M2 하프트랙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M5와 M9도 이후 각각 M5A1과 M9A1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11017대 가량이 생산되어 소련과 영국에 주로 랜드리스되며 M2와 M3 하프트랙의 부족분을 충실히 메워주었습니다. 이렇게 1940년부터 꾸준히 쌓이기 시작한 하프트랙 장갑차들은,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함께 머지않아 실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M2/M3 하프트랙의 실전


미군의 하프트랙 장갑차들의 첫 실전은 1941년 12월 필리핀 전역에서였습니다. 여기에는 일반 하프트랙뿐만 아니라 대전차용으로 75mm 유탄포를 장비한 M3 GMC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의 전투에서 미군 하프트랙은 빈약한 장갑 때문에 상당한 손상과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장갑 강화가 제안되지만 '저품질 대량 양산'이라는 자신들의 컨셉에 충실하기로 했던 미 육군은 결국 이대로 밀고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질이 안되면 양으로 미는 게 당시 미국의 근성이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이후 1942년 후반 횃불 작전 등에서도 하프트랙들은 빈약한 장갑 덕에 상당히 시달렸지만, 이후 1943년 여름부터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트럭 등이 도저히 진군할 수 없었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차들의 뒤를 능숙히 따라가며 반궤도 차량의 유용성을 입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M2/M3 하프트랙들은 여러 험지에서 성공을 거두며 보병들의 발빠른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에 고무된 미군도 기계화부대의 하프트랙 정수를 늘리고 서부전선에서 이를 대거 투입하여 연합군은 독일군에 비해 뛰어난 기동력을 보여주며 서부 전선을 그런대로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뭐 신사의 나라의 병맛 몽 모 장군의 마켓가든이나 뭐 굿우드 작전이나 이런 건 빼고 이야기합시다 -ㅅ-...)
2차대전, 한국전쟁 이후 좀더 발전된 APC들이 등장하며 이들 하프트랙 장갑차들은 빠르게 도태되어 갔지만, 개중 일부는 여러 나라에 뿌려져 1980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나가기도 합니다.  


                 
                                  구닥다리가 된 M2였지만 뭐 돈 없는 가난한 나라에선 어쩌겠습니까.


미군이 그들의 보전포 합동전술을 위해 개발한 하프트랙 시리즈들은 다소 빈약한 장갑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전장에서 유용성을 증명하며 보병의 발로, 야포의 운반책으로, 심지어는 그들 자신이 직접 포를 얹고 전장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차후에 직접 포를 얹은 이들 하프트랙 GMC 시리즈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M3A1 하프트랙 스펙



중량: 9300kg
승무원: 13명(조종사 3명, 탑승 정원 10명) 
엔진:

White 160AX / 6실린더 / 147 or 128마력

속도: 64km/h
항속 거리: 도로: 282km
연료 용량: 60 gallon
전장: 6.18m
전폭: 2.22m
전고: 2.26m
무장:

1 x HMG(1 x 12.7mm M2 - 전면)& 3 x MG
(2 x 7.62mm M1919A4 - 양 측면)
(1 x 7.62mm M1919A4 - 후방)
이외 소총, 기관단총, 수류탄, 대인/대전차 지뢰 수송

탄약:

12.7mm - 700발
7.62mm - 7750발

장갑: 6.35-12.7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sa/half-tracks/m3.asp
http://blog.naver.com/rectek2?Redirect=Log&logNo=10081379436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http://kionize.egloos.com/2965930





※이번 M2/M3 하프트랙, 특히 개발사 부분에서는 개강사님의 워 파일 블로그의 하프트랙 리뷰를 참고하다 못해 거의 배껴버리다시피 하고 말았습니다... 뭔가 퍽 죄송한지라...여기에나마 사과드리는 글을 남깁니다. Sd.kfz 250과 251은 좀더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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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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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3 18:30 신고

    질문이 있습니다

    자료 출처는 모르겠는데....

    이 하프트럭이 아마 이스라엘 전쟁 초기에 썼다라고 기록되어있던데.....

    사실입니까??



    만약사용했다면 이스라엘이 정말로 잘하는 개조해서 쓰지 않았을까요.....

    궁금하군요... ㅋㅋㅋㅋ

    뎃글 달았으니깐 저격은....즐.....

    • 지옥고양이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0.04.13 18:36 신고

      거기까진 안파보아서...자세히는 모르겠다만 미군의 영향을 받는 나라였다면 대부분 흘러갔을 거라 생각합니다.

    • 지나가는행인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1.01.29 17:43 신고

      사용했습니다
      그냥 공격용으로 사용은 안 했고
      본분인 보병 수송 용으로 사용했습니다
      나중에 가선 이넘이 뚜껑이 없어서 안에서 보병전투차처럼 사격이 가능해서, M-113보다 이걸 더 좋아했다더군요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 전차 리뷰



외전 2장. 미 육군의 자주포



수도사로 부활한 두 장군 M7 프리스트


미군은 예나 제나 '3보 이상 차량 이동' 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부대 기계화에 충실했고, 그들이 조금만 껄끄러운 상대를 만났다 싶으면 여지없이 마이크에 대고 불러제끼는 '공군!' 만큼이나 포병도 사랑하는 대놓고 화력덕후 군대였습니다.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75mm급 유탄포 사용할때 미군은 105mm를 기본으로 사용했고, 군단 포병에는 155mm나 203mm 급의 거물들이 즐비했지요.



파란 나라는 탈것이 넘쳐났습니다. 트럭이면 트럭, 장갑차면 장갑차. 지프면 지프, 넘쳐나서 다른나라 퍼주면 퍼주었지 자기들 타기 부족한 적은 없었습니다. 장갑차가 모자라서 사단당 1개 대대 정도나 태워주던 회색 나라나, 
그나마 그것도 없어서 탱크 위에 다닥다닥 붙어다녔던 빨간 나라와는 천지 차이였지요.


 

온몸으로 보여주는 엉클 샘 아저씨들의 포사랑. 성능 너끈한 신형포들도 즐비했고, 
워낙 부자군대라 포탄도 아낌없이 팍팍 털어넣었습니다. 당하는 상대만 죽을 맛이지요.


미군의 차사랑 포사랑이 이리도 각별하다 보니 자연히 자주포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프랑스 전역에서 독일이 사용한 자주중보병포들의 유용성은 미 육군에게 자주포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듭니다. 그래서 M3 하프트랙에 75mm 유탄포나 105mm 유탄포를 장비한 M3 GMC나 T19 등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에서 기존 견인포들에 비해 월등한 기동력과 전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실험삼아 만들어 본 자주포들이 생각보다 잘 굴러가자 미군은 이번에는 전차 차체로 자주포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독일군이 2차대전 초반 서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사용한 비존 자주중보병포들이 미군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미군에서 처음으로 실용화된 자주유탄포 T19. 곧 이를 이어 여러 전차형 자주포가 등장하게 됩니다.


미군이 새로운 자주포의 주포로 선택한 화포는 요즘 기준으로도 무척 잘 만들어진 야포계의 베스트셀러 105mm M2A1 L/22 유탄포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여러 국가에서 쓰일 정도로 우수한 화포였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말할 것도 없는 좋은 유탄포였던 만큼 포는 문제가 없었지만, 차체가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신형 자주포가 막 개발되려 하던 1942년 초반에 자주포 차체로 딱 적절한 물건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셔먼의 개발이 잘 진행되면서 슬슬 망조를 보이기 시작하던 M3 전차, 즉 리 및 그랜트 장군들이었습니다.



105mm의 교과서격인 M2A1 유탄포. 아직도 미군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 중에선 우려먹는 부대가 퍽 많다고 합니다. 
(저도 군대가서 보직이 구리면 볼 수 있겠죠 =ㅅ=...)


 
 
이제 슬슬 연합군의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M3 리와 그랜트가 새 자주포의 차체로 내정됩니다.


1941년 후반 경 M3 리의 전투실과 포탑을 제거한 차체에 M2A1 유탄포가 장착되어 실험명 T32가 되었고, 상황이 좀 급하기도 했던지라 퍽 빠른 시간인 1942년 2월만에 신형 M7 자주포의 개발이 끝났습니다. 기존의 M3의 75mm 주포가 장착되었던 차체 우측 스판산에는 근거리 보병 방어용 M2 중기관총이 탑재되었습니다. 이외 주요한 특징은 상부 전체가 개방되어 주포가 노출된 형태를 띄었다는 것인데, 이는 중량 감소 및 신속한 장전과 화력지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적 반격에 노출될 시 승무원 및 포병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지만, 보통 제공권과 물량에서 앞섰던 미군에게 이런 돌발상황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고, 프리스트의 상부 개방은 이후 미군의 자주유탄포들에게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4월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이 시작된 M7의 기관총탑이 마치 교회의 설교대와 비슷하다고 해서 M7 자주포를 미군보다 먼저 수령받은 영국 제 8군은 이를 프리스트라고 부릅니다.



시대에 뒤져가는 M3 전차였지만, 새로운 M2A1 유탄포를 장착하고 다시 한번 전장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M7 프리스트는 1942년 버나드 몽고메리가 독일 아프리카 기갑군을 격파한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처음 데뷔했습니다. 프리스트는 여기서 기존의 견인포 부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서 영국군을 기쁘게 만들었고, 프리스트에 만족한 영국군은 무려 5000량이나 이 신형 자주포를 주문합니다.(물론 수량을 채우진 못했습니다.)
이후로도 프리스트는 총 3000여 량이나 생산되어 이탈리아 전선, 서부전선, 태평양 전선 등 연합군이 참전한 전 지역에서 연합군의 주력 자주포로 맹활약하고, 전후 한국전쟁에서도 한번 더 활약할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또한 M7 프리스트의 후계기로 좀더 가볍고 저렴하게 움직이기 위해 채피의 차체애 같은 M2A1 유탄포를 장비한 M37 자주포도 500량 가량 생산되어서 활약했고, M7 자체도 M4A3 셔먼의 차체를 쓴 M7B1과 한국전쟁용으로 포신과 기관총좌를 좀더 고각으로 개량한 M7B2로 개량되었습니다.



다수가 생산되어 연합군에 배치된 프리스트는 연합군이 싸우는 전선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던 친숙한 자주포였습니다.


 

M24 채피의 차체로 좀더 가볍게 만들어진 M37 자주포도 105mm 유탄포로 전장에서 한몫합니다.


영국군이 비록 프리스트의 성능에 반해 다수 발주하긴 했지만 105mm급 야포를 사용하지 않던 영국군이었기 때문에 또다른 보급 문제가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국군은 대체품으로 좀더 가볍고 성능에서도 문제없는 자신들의 25파운드 야포를 캐나다에서 생산되던 램 전차의 차체에 장비해 2150량 가량의 섹스톤 자주포 시리즈를 캐나다에서 라이센스 생산하기도 했고, 일부는 아예 포를 들어내 보병 수송 장갑차인 캥거루로 쓰기도 했습니다. 섹스톤 자주포도 허접한 비숍 자주포를 효율적으로 대체했고, 캥거루도 다소 얇은 유니버셜 캐리어들에 비해 방호력에서 뛰어났던 덕에 영국군을 만족시키기는 충분했습니다.



105mm 포탄을 그대로 쓰기는 자존심도 상하고 보급 문제도 있어서 영국군은
미군의 105mm 주포를 자신들의 야포인 25파운드 야포로 갈아끼워서 섹스톤 자주포로 명명합니다. 
리의 차체를 쓴 섹스톤 1과 셔먼의 차체를 쓴 섹스톤 2 자주포가 있습니다.


 
kangaroobpn2.jpg
운이 나쁜 프리스트들은 아예 포도 걷어낸 채로 병사들을 태우는 캥거루 보병 수송 장갑차가 되었습니다.
작달막한 유니버셜 캐리어들에 비해선 좀 크고 느리긴 했지만 그만큼 생존성도 좋았고, 병력도 많이 실을 수 있었습니다.



M12 GMC, 좀더 크고 아름답게.

미군은 105mm 급의 M7 프리스트의 개발에만 만족하지 않고 M3 리의 차체에 좀더 크고 아름다운 포를 얹어 보고 싶었습니다. 미군 포병위원회가 견인포가 3시간 걸릴 일을 자주포는 30분이면 해치우리라는 믿음과 함께 155mm 급 자주포의 개발을 주장하자 이러한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미군이 다음 자주포의 주포로 선택한 대상은 강력한 155mm M1917로, 1차대전에 쓰였던 프랑스제 중야포였습니다. 다소 구식이라 신형 포들에 비해 사거리가 살짝 밀리기는 해도 일단 155mm 급이었기 때문에 화력 하나는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중포를 탑재하는 개조라 1941년 6월로 프리스트보다 일찍 개발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료된 시점은 프리스트와 같은 1942년 6월이었는데, 이는 대구경 포의 탑재를 위해 엔진을 옮기고 차체 후방에 전투실을 만드는 개조를 병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록아일랜드 조병창에서 새로 개발해 낸 T6 자주포는 프리스트와 같은 오픈 탑 구조였지만, 워낙 포 자체가 큰 만큼 포 전체가 차량 밖으로 노출되었고, 공간도 부족해 탄약을 고작 10발밖에는 휴대할 수가 없어서 보호용으로 차체 뒤쪽에 M2 중기관총을 추가한 탄약운반차인 M30도 같이 개발되었습니다. 
개발은 프리스트보다 다소 힘들었지만, 중포를 자주화한 만큼 화력에 있어서는 프리스트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에 T6은 곧 M12 GMC로 제식화되었고 1942년 10월부터 1943년 3월까지 100량이 선행양산됩니다. 



M12 GMC 자주포. 구식 야포를 퇴물 전차에 얹은 개조지만 155mm의 화력은 듬직합니다.


하지만 일치감치 영국군에 합류해서 독일군에게 105mm의 위력을 톡톡히 과시한 신부님들과는 달리 100량의 M12 자주포들에겐 좀처럼 출격의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고, 미 본토에서 실험용으로 쓰거나 훈련용 자주포로 사용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M12 GMC와 M30 탄약운반차. 아쉽게도 이 둘에겐 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 뛸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좀더 높은 화력을 제공해야겠다고 느낀 미 육군 병기국은 1944년 5월까지 74량의 M12 자주포의 현가장치를 셔먼의 것으로 개량하고, 이외 기계적 업그레이드도 행합니다.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상륙이 성공하고 본격적으로 서부전선이 개막하면서 이 74량의 M12 자주포들은 미군 소속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특히 이들은 1945년 경의 쾰른 포격과 지크프리트 라인 벙커 파괴, 갑작스레 등장한 독일 중전차 무력화에 주로 쓰이면서 155mm급 다운 훌륭한 파괴력을 보여주었고, 병사들에게 '매드 독'이라는 애칭까지 얻게 됩니다.



헤드샷! 프리스트에 비하면 많이 늦긴 했고 수량도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M12 GMC도 155mm 중포로 제법 활약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탱크 타는 톰 아저씨 M40 GMC


경포의 프리스트와 중포의 M12가 미군 자주포 부대의 구색을 맞춰주긴 했지만, M12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게 됨니다. 바로 M12 GMC의 주포였던 155mm M1917/M1918 중포의 재고가 다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로 인해 M12의 생산까지 문제가 생기자 미군은 이 구닥다리 야포들을 더 생산하기보단 자신들의 최신 야포인 155mm M1 L/23. 일명 '롱 톰'이라 불리던 물건을 대체품으로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구닥다리 M3 리의 차대는 이 신형 포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빈약했고, 포의 무게와 반동을 이겨내질 못했습니다.



155mm M1 L/23 '롱 톰'. 155mm계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만큼 많이 만들어졌고, 성능도 출중한 화포입니다. 


이에 미 육군 병기국은 아예 차체도 신식의 셔먼으로 바꿔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셔먼들 중 가장 성공적이고 HVSS 서스펜션을 장비한 M4A3E8의 차체에 M2 곡사포가 얹혀진 T83 자주포, 일명 '빅 샷'의 프로토타입이 1944년 3월 5량 생산되었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롱 톰을 얹은 T83. 뭔가 허접해보이는 M12와는 뭔가 완성도가 있어보입니다.


아무래도 주포와 차체에서부터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 만큼, 결과는 M12보다 화력에서나 ,사거리에서나, 방어력에서나, 기계적 문제에서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T83이 맘에 든 병기국은 1945년 1월 304량의 T83과 304량의 T30 탄약운반차의 생산을 허가합니다.
또한 괴물같이 거대한 203mm M1 중유탄포를 얹은 자주포 T89(이후 M43으로 제식화)도 이 시기에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포스에 간지가 좔좔 넘치지만, M40이 독일군을 상대한 전투 중에 굵직한 것이라곤 쾰른 전투 정도였습니다.




더 크고 아름다운 203mm 중포를 장비한 M43. 하지만 M40보다도 더 늦게 나와서 서부전선에서도 테스트용으로 겨우 1량 등장하였고(M40도 1량 투입되었다고도 합니다.) 활약도 당연히 전무했습니다. 그래도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군의 포병대 아래에서 203mm의 위엄을 톡톡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1945년 3월에서야 M40으로 제식화된 이 새로운 자주포가 전장에서 활약할 기회라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극소량의 M40 GMC가 한 량의 T89와 함께 제 991 포병대대에 배속되어서 쾰른 공격에 참여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활약도 없이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대신, M12의 뒤를 이어 미군의 주력 자주포가 되었던 M40 GMC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과 중국군을 상대로 155mm의 크고 아름다운 화력을 유감없이 선사하게 됩니다.



콩사탕들에게 크고 아름다운 155mm 포탄을 아낌없이 뿌려주는 M40 GMC.
적진에서 북한군의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처절한 음성이 절절히 들려옵니다 =ㅅ=


미군 자체가 부자군대였던데다가 차량화를 중요시했던 만큼, 미 육군에서 좋은 자주포들이 등장하는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이렇게 2차대전의 많고많은 전선에서 포병으로서 공군, 대전차 자주포와 함께 보병과 전차들의 든든한 기둥으로 군림한 자주포들이었던 만큼, 후한 평가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겁니다.



M7 프리스트 스펙



중량: 28500kg
승무원: 7명
엔진:

Continental R-975 C1 / 9실린더 / 375마력

속도: 39km/h
항속 거리: 도로: 201km
연료 용량: 179 gallon
전장: 6.02m
전폭: 2.88m
전고: 2.54m
무장:

105mm M2A1 L/22 유탄포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탄약:

90mm - 69발
12.7mm - 300발

장갑: 12-62mm




M12 GMC 스펙



중량: 26800kg
승무원: 6명
엔진:

Continental R-975 C1 / 9실린더 / 400마력

속도: 38km/h
항속 거리: 도로: 225km
연료 용량: 200 gallon
전장: 6.73m
전폭: 2.69m
전고: 2.67m
무장:

155mm M917/1918 야포

탄약:

155mm - 10발

장갑: 12-50mm




M40 GMC 스펙



중량: 40500kg
승무원: 8명
엔진:

Continental R-975 C1 / 9실린더 / 400마력

속도: 38km/h
항속 거리: 도로: 225km
연료 용량: 200 gallon
전장: 9.04m
전폭: 3.15m
전고: 2.84m
무장:

155mm M2 L/22 야포

탄약:

155mm - 20발

장갑: 12-107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sa/self-propelled-guns/m7-m37.asp
http://www.wwiivehicles.com/usa/self-propelled-guns/m12.asp
http://www.wwiivehicles.com/usa/self-propelled-guns/m40-m43.as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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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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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2 06:36 신고

    프리스트는 배필1942하면서 처음 접했던 건데, 화력이 꽤 좋아서 자주 끌고다니면서 보병학살이나 대전차용으로 썼지요 ㅇㅅㅇ

    문제는 안습적인 성능과 조종석이 2개라는 점 -ㅅ-;

  2. 2010.03.02 14:15 신고

    흐으음.. 203mm 헐퀴..
    파괴력이 얼마나 된다는 고얌 #ㅅ#
    지난번에.. 디스커버리에서 타이푼인가> 하여튼 박격포인지먼지..
    퐁하니까 펑@@

  3. 2010.03.24 17:04 신고

    잘 봤습니다.
    글 내용도 다 좋고 표현도 다 좋은데
    비유를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빨간나라는 뭐고 파랑나라는 뭐고 회색 나라는 뭐고
    콩사탕은 뭔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4. 2010.04.05 02:59 신고

    후덜덜더럳럳러더럴ㄹ.. 더러운 캥거루 (CoH 한자만 알수 있다는 그것!) 는 전차에서가 아니라 자주포에서 파생된거였구나.

  5. 2010.05.26 08:08 신고

    좋은 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다만 중간에 나온 사진의 M1 곡사포는 롱톰이 아닙니다. 사진에 나온 M1 155mm 곡사포는 2차대전 이후에 M114로 명칭이 바뀌고 한국에서 지금도 현역으로 사용하는 곡사포입니다.(KH179의 대량보급 이후 2선으로 돌려졌고 주로 예비군 훈련에서 많이 보이는 물건이 됐죠)

    M40의 주포로 사용된 M2 롱톰에 대한 건 아래 주소에 나와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mirejet/110066633183

    M59란 이름은 2차대전 이후 M2에서 명칭이 변경된 겁니다.

  6. 2011.01.07 22:48 신고

    미군의 쇼 미 더 머니는 무섭죠... (일설에 의하면 미군이 쇼미더 머니를 쳐갈기는 순간 못 쳐바를 [존재]는 없다는 말도... 예를 들자면 이라크?)

  7.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3 21:17 신고

    참.. 웃기네요 ㅋㅋ 근데 미국 전차중에 최악인거 잇음 ... 탱크포가 2개달린 탱크 이름이??m1전차엿던가?

  8. 2011.08.27 23:15 신고

    아나 마지막 사진들 때문에 댓글씀ㅋㅋ
    잘봤습니다.

  9. 2011.08.27 23:16 신고

    아나 마지막 사진들 때문에 댓글씀ㅋㅋ
    잘봤습니다.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 전차 리뷰



외전 1장, 첫번째 GMC, 미 육군의 대전차 자주포.



GMC의 정의


GMC, 즉 Gun Motor Carriage는 '포 운반 차량'을 뜻하는 미군의 여러 자주포, 대전차 자주포, 자주대공포를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이 GMC들의 차체는 전차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때로는 하프트랙이나 장갑차 등에 여러 화포를 장착해 GMC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군이 사용했던 여러 포 만큼이나 이 GMC의 양도 다양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GMC 전체가 아니라 전차의 차체를 쓴 유명한 대전차 자주포 3종, 자주포 3종만을 과감히 분리해서 다룰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프트랙에 75mm 야포 하나 달랑 얹은 물건이나


     
                     이런 기기괴괴 다포탑전차도 미군이 GMC라고 주장하면 GMC인 것입니다.



가죽을 덜 얹어 슬픈 오소리 M10 울버린

 
2차 세계대전 초반까지만 해도 미 육군은 아직 전차전 용도의 전차라는 개념을 익히지 못했고, 여전히 전차는 보병 지원용 물건이라고 우기는 늙은 장군들이 사령부에 우글거렸습니다. 그래도 적 전차를 잡긴 잡아야 했기 때문에 '대전차 자주포'라는 신개념 대전차 병기들이 속속 등장하였습니다. 여러 대전차 GMC가 개발되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적 전차의 빠른 발견을 위해 상부 개방형의 전투실을 가져야 한다는 것(M18 헬캣 제외), 빠른 대응을 위해 회전포탑을 장비해야 한다는 것(전차형에 한정), 높은 기동성과 낮은 전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맞춰 닷지 트럭에 37mm M3 L/53.5 대전차포를 얹은 M6 GMC나 M3 하프트랙에 75mm M3 L/40 전차포를 얹은 M3 GMC들이 개발되었고, 제법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솔직히 추축국의 전차에 대적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File
        닷지 트럭에 37mm 대전차포 얹고 M6 GMC라고 부른 미군. 솔직히 어디다 쓰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M3 GMC도 트럭이 하프트랙으로 변하고, 37mm가 75mm로 불어났을 뿐이지 여전히 전차에겐 제물일 뿐입니다.


미 육군 병기국도 도저히 이걸로는 택도 없겠다 싶었는지 1941년부터 이들을 대체할 여러 GMC 개발안이 제시되었습니다. M3 리의 차체를 이용한 여러 안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왔기는 했지만, 의외로 M4A2 셔먼의 차체에 M7(개발 당시 T12) 3인치 대전차포를 상부 개방형 전투실에 탑재한 T35 대전차 자주포가 합격점을 받았고, 차고를 좀더 낮추고 측면장갑을 경사화한 T35E1이 그대로 M10 GMC로 낙점받았습니다. 영국군은 M10 GMC를 미국 알래스카 등지에 사는 오소리류 중 하나인 '울버린'이라고 불렀습니다. 전후반에는 M4A3의 차체로 M10 GMC를 생산했으며, 이것은 M10A1으로 불립니다.


                  
                       M10 GMC. 드디어 미 육군이 대전차 자주포 다운 대전차 자주포를 얻었습니다.


       
                 M10A1. M4A3 셔먼으로 만들었고 잡다한 개량이 행해진 것 외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M10 울버린은 당시 미군이 보유한 전차포 중 가장 우수한 3인치 대전차포를 장비했고, 이 3인치 대전차포는 당시 미군이 개발한 신형탄 HVAP를 사용하면 500m 거리에서 티거의 전면장갑을 뚫는 것도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기동성에 있어서도 최대시속 48~51km으로 빨라서 적 전차 등장에서도 빠른 대처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단점이 있었는데, 유압식이었던 셔먼과는 다르게 포탑 회전 방식이 수동이었고, 상부 개방형인 만큼 적의 유탄 공격에 취약했고, 장갑도 독일군의 전차를 직접 상대하기에는 빈약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특히 상부에 덜 얹은 가죽이 문제였습니다. 서부전선에서 많은 수의 울버린이 적의 공중작렬탄에 당해야 했고, 결국 후기형 울버린에는 일부에 상부 장갑판을 덧씌우기도 했습니다.


                           
            많은 수의 울버린이 이렇게 포탑 후방에 M2 중기관총을 장착해 보병을 상대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미군이 원하는 대전차 자주포로서 합격점을 받은 울버린은 1943년 튀니지 전역에서 자유프랑스군 소속으로 처음 데뷔했고, 이후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보병 지원용으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대전차 자주포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리라 기대된 1944년 노르망디 전역 이후로는 3인치 대전차포의 위력 부족으로 크게 활약하진 못하고, 셔먼이 M1 76.2mm 전차포를 사용하면서 높은 화력이라는 장점도 퇴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6406량이라는 많은 양이 생산된지라 퇴역하지는 않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M36 잭슨을 보조하거나 보병을 지원하는 것에 그 임무가 한정되게 됩니다.


자주포로 외도한 지옥고양이 M18 헬캣.


1941년, 울버린과는 별개로 좀더 고속으로 치고 빠지는 경대전차 자주포의 개발도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크리스티 구동 방식에 37mm 대전차포를 장비한 디자인은 점점 진보해 토션 바 방식에 장포신형 셔먼에도 채용된 76mm M1A1 L/53 전차포를 밀폐형 회전포탑에 장비하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이 디자인을 유용해 1943년 경 개발한 T70은 M18 GMC. 일명 '헬캣'이라는 별명과 함께 채용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미 미 해군 항공대에 F6F 헬캣이라는 함재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 헬캣이 아니라


      
                이 M18 GMC 헬캣을 리뷰하는 것이지요. 최근에 정신줄놓고 헬캣을 잭슨으로 올렸다가
                                      제대로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답니다 =ㅅ=...(;;;;;;)


M4A1 셔먼의 콘티넨탈 항공기 엔진을 개량한 엔진에 토션 바 방식을 채용하고, 장갑을 포기해 중량을 18톤까지 낮춘 덕에 헬캣은 최대시속 80km라는 2차대전 당시 기갑차량 중 가장 빠른 경이로운 속력을 자랑했습니다. 다만 심각한 약점이 있었는데, 전면 25mm와 측면 13mm라는 빈약한 방어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추축국의 장갑차량을 개조해 만든 급조 대전차 자주포에 비하면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M18 헬캣. 셔먼의 차체를 뜯어고친 울버린과는 달리 애초에 차량 자체가 고속의 대전차 자주포 전용으로
             만들어진 덕에 적절한 화력에 발군의 기동성을 자랑하는 우수한 대전차 자주포가 되었습니다.


총 2507량이 생산된 M18 헬캣은 1944년 1월 안치오 상륙작전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며 데뷔했습니다. 이후 주로 이탈리아 전선의 산악지대에서 그 기동성을 살려 활약했고, 특히 헬캣 대전차 자주포를 주로 지급받은 제 630 대전차 대대의 경우 17량의 헬캣만을 잃으며 53량의 판터와 티거, 15량의 자주포를 파괴하는 우수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얇은 장갑 때문에 근거리에서는 기관총이나 기관포에도 맥없이 주저앉기도 했고, 무엇보다 1944년 9월부터 강력한 90mm 대전차포를 장비한 M36 잭슨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M10 울버린도 찬밥이 되는 마당에 헬캣이라고 이를 피해갈 리 없었습니다.
결국 유감스럽게도 헬캣은 뛰어난 설계의 대전차차량임에도 불구하고 그 잠재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전후반의 울버린처럼 지원포격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최고의 장군, 최고의 자주포, M36 잭슨


1942년 말엽, 비록 M10A1 울버린이 미군의 대전차자주포로서 잘 뛰고 있기는 했지만 점점 강력해지는 독일군의 전차들을 감안할 때 좀더 크고 아름다운 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미군 내에 널리 퍼졌습니다. 중전차는 필요없다고 M26의 개발까지 늦춰버린 꼴통 원로 장군들도 대전차 자주포는 좀더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했고, 미 육군 병기국은 90mm M1 고사포를 개량해 대전차포로 개발한 90mm T7(제식화 후 M3) L/53 대전차포를 개발해 이 포를 M10A1 울버린의 전투실에 기존의 3인치 대전차포 대신 장비한다는 개발계획을 수립합니다. 


           
      기존의 3인치 대전차포를 대체한 새로운 90mm M3 L/53 고사포. 고사포는 독일만 쓰는 게 아닙니다 =ㄴ=


하지만 기존의 울버린의 포탑은 이 대형의 전차포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좁았기 때문에 신형 포탑을 개발해야 했고, 1942년 12월 새로운 대형포탑에 T7 전차포를 장비한 차량이 M36 GMC 잭슨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여기서의 잭슨은 남북전쟁 시절 남군의 리 장군을 보좌했던 4장군 중 최고로 꼽힐 만한 토마스 '스톤웰' 잭슨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였습니다.. 속력도 적절했고, 무엇보다 강력한 90mm 전차포의 위력 덕에 미군 병사들은 M36을 장타자라는 의미의 슬러거라고도 불렀습니다. 또한 작렬탄에 약한 미군 대전차자주포의 특징을 보완하고자 M36 잭슨에는 상부 장갑판이 처음부터 설치되었습니다.


         
         M10A1 울버린 용으로 개조해 두었던 M4A3 셔먼의 차체로 만든 M36 잭슨. 슬러거라는 별명에도 맞게
                                    강력한 90mm 대전차포라는 금속배트를 보유했습니다.


                                         
      리 장군의 오른팔로 활약한 불세출의 명장 토마스 '스톤웰' 잭슨. 남군 소속이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M36 잭슨에는 이외 2가지 형식이 더 있는데, M10A1 울버린 용으로 개조하지 않은 일반 M4A3 셔먼의 차체로 만든 M36B1 잭슨과 M10 울버린 용의 M4A2 셔먼 차체로 만든 M36B2 잭슨이 있습니다. 사용한 차체 외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특이하게도 형식 번호에 A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B를 사용했습니다.  


               
                                   M36B1 잭슨. 일반 셔먼으로 만들어 그런지 좀 어설픕니다.


1944년 6월 제식화된 M36 잭슨은 이후 울버린의 자리를 꿰차며 티거와 판터의 만만찮은 적수로 등극합니다. 하지만 총생산량이 2324량으로 비교적 적었고, 늦게 등장했기 때문에 종전까지 울버린, 헬캣과 병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또한 강화되었다고는 해도 겨우 76mm 정도로 장갑이 얇은 축이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했기도 합니다. 
이후 M36 잭슨은 2차대전 종결 후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M18 헬캣과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고. 한국전쟁에서 퍼싱과 함께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미군의 대전차자주포는 사실 경장갑에 강력한 포를 장비한 것을 빼면 전차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주력전차 셔먼이 부족한 대전차능력으로 허덕일 때, 이들 대전차 대대는 포병과 공군과 함께 2차대전의 끝까지 셔먼의 든든한 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M10 울버린 스펙


중량: 29600kg
승무원: 5명
엔진:

GM 6046 / 6실린더 / 420마력

속도: 48km/h
항속 거리: 도로: 322km
연료 용량: 164 gallon
전장: 6.83m
전폭: 3.04m
전고: 2.57m
무장:

76.2mm M7 3인치 대전차포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탄약:

76.2mm - 54발
12.7mm - 300발

장갑: 19-57mm



M18 헬캣 스펙



중량: 17700kg
승무원: 5명
엔진:

Continental R974-C4 / 9실린더 / 400마력

속도: 80km/h
항속 거리: 도로: 161km
연료 용량: 192 gallon
전장: 6.66m
전폭: 2.87m
전고: 2.56m
무장:

76.2mm M1A1 L/53 대전차포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탄약:

76.2mm - 45발
12.7mm - 800발

장갑: 19-76mm



M36 잭슨 스펙


 

중량: 28100kg
승무원: 5명
엔진:

Ford GAA V8 / 8실린더 / 500마력

속도: 48km/h
항속 거리: 도로: 320km
연료 용량: 192 gallon
전장: 7.46m
전폭: 3.04m
전고: 2.71m
무장:

90mm M3 L/53 대전차포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탄약:

90mm - 47발
12.7mm - 1000발

장갑: 19-76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destroyers/m10.asp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destroyers/m18.asp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destroyers/m36.asp
http://blog.naver.com/mirejet?Redirect=Log&logNo=110039810497
구글 내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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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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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2 02:38 신고

    울버린이 깔끔하고 좋은데ㅋ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 전차 리뷰


6장, M26 퍼싱. 천조국의 자존심 되찾기



미국의 중전차 개발 시도


2차대전 내내 여러가지 전차를 개발해 운용했던 미국이었지만, 유독 중전차만은 미군의 생각대로 만들어지지가 않았습니다. 1942년에 개발된 M6 중전차가 있기는 했지만, 주포인 76.2mm 전차포가 딱히 M6만을 위해 준비된 전차포도 아니었고 대전차 자주포와 셔먼에 장착될 예정이었던 만큼 소량 생산후 국내용으로만 쓰이게 되었습니다.



40량만이 생산되어 실전은 없었던 M6 중전차. 북아프리카에 투입되었다면 활약했을 법 한데,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M3 스튜어트, M3 리와 함께 늘어선 M6. 다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는데 M6만 왜 유독 찬밥신세였는지...


하지만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 본격적으로 서부전선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미군 장성들의 '티거와 판터는 새로운 76mm묘면 충분히 잡아낸다.' 라는 말만 믿고 중전차 개발을 각하했던 아이젠하워는 자신이 76mm 드립에 낚여 퍼덕거리는 생선 신세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서부전선에서 본격적으로 연합군을 반기기 시작한 판터와 티거는, 그동안 자국 보수 장성들의 말만 믿고 독일 중전차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 안한 아이젠하워 장군님에게 아주 좋은 스트레스 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젠하워의 닥달로 미군은 티거와 판터를 잡아내기 위한 히든카드로 대공포를 개조해서 만든 강력한 90mm M3 L/52 전차포를 개발해냈고, 이를 탑재한 M36 잭슨 대전차자주포를 1944년 9월 실전에 투입했지만, 이는 방어력의 명백한 부족을 감수한 절반적인 성공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잭슨 장군님이 독일산 맹수들을 선빵으로 한 번에 제압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바로 역관광이었습니다...


물론 90mm 전차포를 개발할 동안 미국이 마냥 중전차에 대해 손놓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1943년 중반 즈음 들어, 미 육군 병기국은 그들의 새로운 전차포를 장비할 M6의 후계 중전차의 개발을 시작하던 참이었습니다.


M26 퍼싱 중전차의 개발


미국의 본격적인 신형 중전차 개발 프로젝트인 T25와 T26은 1943년 3월 시작되었습니다. T25는 기존 셔먼을 대체하기 위한 T23 실험전차의 포탑을 90mm 전차포용 포탑으로 교체한 것이고, T26은 T25의 장갑강화형이었습니다. 둘 다 중량이 40톤을 약간 넘는 중전차였으며, 티거와 판터와의 교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무장과 장갑 면에서 기존의 주력전차 M4 셔먼보다 월등히 강화되었습니다. 엔진의 경우는 따로 중전차용 엔진을 개발하지 않고 이미 M4A3에 장착된 바 있는 포드 사의 GAA-III 엔진을 개량한 500마력의 GAF 엔진을 이용했습니다. 양 실험전차는 각각 1944년 1월 40량, 10량씩 생산되어 성능시험을 거쳤습니다. 이후 이 둘은 각각 T25E1과 T26E1으로 발전했으며, 이 중 T26E1이 중전차로서 좀더 뛰어남을 인정받아 T26E3으로 개량된 후 20량이 추가생산되었습니다.


USA's T25 Medium Tank
T23에서 머리만 갈아끼운 T25. 뭔가 소련의 보 모 원수스러운 포스가 느껴지는 것은 저뿐입니까;;;?



T25의 차체와 장갑을 보다 개선해 방어력을 티거 수준으로 높여낸 T26. 이제 슬슬 퍼싱의 자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추가생산된 T26E3은 HVAP탄 사용시 1000m 기준 관통력이 192mm에 이르는 강력한 90mm 전차포와 티거와 판터의 전면장갑을 넘어서는 114mm의 전면장갑을 자랑하며 중전차로서 충분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40톤으로 늘어난 중량에도 불구하고 500마력에 불과한 엔진 덕에 출력과 기동력 면에서 최대시속 40km로 셔먼보다 떨어지기는 했지만, 중전차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넘어갈 문제였습니다.



T26E3에 와서는 사실상 차기 중전차는 T26계열로 내정되었습니다.


미 육군 병기국에게 합격 판정을 받은 T26E3은 그대로 미군의 신형 중전차로 선택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미군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전차에 사람 이름을 별명으로 붙이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1945년 4월에 새 중전차는 1차대전 동안 미 원정군을 지휘한 존 조셉 퍼싱 장군의 이름을 따서 M26 퍼싱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M26 퍼싱 중전차. 독일이나 영국, 소련에 비하면 한참 늦었지만, 미국도 드디어 강력한 중전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M26 퍼싱 중전차가 되신 존 조셉 퍼싱 장군. 1차대전에서 미 원정대를 지휘하셨습니다.


뭐 하지만 후반부 미국 전차가 다 그렇듯이, 퍼싱도 나온 시기나 활약이나 과히 좋지는 못합니다. 1944년 12월 독일의 아르덴 공세에서 등장한 쾨니히스티거가 미군의 전차들을 무지막지하게 도살하다시피 하자 야전 지휘관들은 퍼싱의 투입을 더욱 재촉했고, 결국 1945년 1월 벌지 전투의 막바지에서 퍼싱 중전차는 벨기에 앤트워프에 도착해 제 3 기갑사단 소속으로 처음 데뷔합니다.



아군의 퍼싱 중전차를 발견한 미군이 그것을 독일 중전차로 알고 기절초풍했다가, 나중에야 그것이 아군 전차임을 깨닫고 서로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고도 합니다.


이후 퍼싱 중전차는 독일 중전차, 특히 미 기갑부대의 숙적이었던 티거를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인정받았고, 초기에 출발한 20량에 이어 총 310량이 서부전선에 투입되게 됩니다. 퍼싱 중전차가 쾰른이나 루르 포켓, 레마겐 철교 전투 등에서 독일 중전차들을 상대로 선전하는 전과를 보이기는 하지만, 1945년 1월 이후로 독일의 기갑전력은 사실상 씨가 말랐기 때문에 퍼싱이 할 만한 일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판터나 티거가 보이면 이 새로운 장군님은 곧잘 맹수들을 진압해 내었고, 1945년 5월 서부전선 전역 종결까지 그럭저럭 무난한 한 때를 보내게 됩니다. 이외 5월 태평양 전선에서도 오키나와에 상륙하기는 하지만, 일본 본토 전투가 무산되며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습니다.



1945년 4월, 미 제 3군 소속 M26 퍼싱 중전차. 제 3군의 지휘관 조지 패튼 장군은 중전차가 아군의 기동을 방해한다며 퍼싱을 그리 반기지 않았지만, 이리 굴러다니는 것을 보아하니 츤츤거리면서도 제법 써먹으신 모양입니다. 

퍼싱이 크게 활약한 또다른 전쟁은 바로 한국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내내 퍼싱은 셔먼과 신형전차 M46 패튼과 함께 투입되어 북한군의 T34/85를 상대로 멋지게 선전하며 중전차의 위력을 과시합니다.


한국에서의 M26 퍼싱. 이제 한반도에서 더 이상 미국의 전차가 불을 뿜는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2차대전 서부전선 최종보스 대결, T26E4 슈퍼 퍼싱 VS 6호전차 B형 쾨니히스티거!!! 


서부전선에 새롭게 투입된 퍼싱 중전차는 티거와 판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점했지만, 미군이 아직 넘지 못한 또 하나의 넘사벽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방금 전에도 언급한, 아르덴의 벵골호랑이 쾨니히스티거였습니다!



어흥~! 독일 전차의 끝판대왕인 쾨니히스티거. 2차대전 최강주포인 88mm KwK 43 L/71 전차포와 최대 180mm의 전면장갑은 퍼싱으로서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습니다.


어차피 많이 남지 않은 쾨니히스티거였지만, '호랑이도 넘어선 마당에 왕호랑이라고 못 넘어서랴.' 라고 생각한 미 육군 병기국은 퍼싱 중전차를 좀더 업그레이드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주포부터 바뀌었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90mm T15E2 L/73 전차포가 기존의 전차포를 대신했고, 길어진 주포를 감당하기 위해 부양장치와 포가, 탄약고 개량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방어력 업그레이드를 위해 판터의 장갑까지 뜯어서 용접하는 노력 끝에 전면장갑이 80mm 더 두꺼워져 이제는 쾨니히스티거에도 충분히 대항할 만해졌습니다.
이 새로운 호랑이 사냥꾼은 T26E4 슈퍼 퍼싱으로 명명되었고, 실험기로 약 20량 소량 생산되었습니다. 실전에도 투입되기는 했지만, 1000량을 발주할 계획이 취소되어 이후 양산되지 못하고 그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독일 쾨니히스티거만 끝판대왕이냐! 여기도 끝판대왕 있다! : 슈퍼 퍼싱은 단 한 번의 조우였지만, 쾨니히스티거를 격파해 내면서 미국 VS 독일의 자존심 승부에서 모처럼만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전차가 거의 씨가 마른 상황에서 놀랍게도 슈퍼 퍼싱은 쾨니히스티거를 실제로 마주했고, 격파하기까지 합니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 2곳에서 퍼온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jhgmusic?Redirect=Log&logNo=20032838496 
http://flager8.egloos.com/2451378
 
단 2대만이 생산되어 그 중 1대가 실험용으로 미 제3기갑사단 제33기갑연대에 배치된 중전차인 슈퍼 퍼싱(T-26E4-1) 전차가 77톤에 달하는 독일의 티거 II 전차와 포화를 교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파데르본 전투를 시작으로 엘베강 유역의 데사우 전투까지 약 열흘간 동안 전장에 선을 보인 슈퍼 퍼싱 전차는 퍼싱 전차를 개조한 것으로 기형적으로 긴 90mm 전차포(T15E1)을 장착하고 유럽 전장에서 시험용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그동안 판터, 티이거에 눌려 별볼일 없은 기갑부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미군의 회심작이 퍼싱과 이를 보다 개조한 슈퍼 퍼싱 전차였다.

90mm 전차포(T15E1)는 독일의 88mm 전차포에 대항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으로 1000m의 30도 경사 210mm 장갑판을 간단히 관통하였고, 100m에서는 무려 330mm를 관통하였다. 초구속도가 1,170m/s로 티이거 II의 88mm 전차포 초구속도보다 약 182m/s 정도 빨랐다.

그러나 이러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있었다. 대전 말, 독일이 기갑부대가 거의 소멸되고 슈퍼 퍼싱이 상대해야 할 티이거 전차는 거의 보이지 않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티이거 II를 상대할 기회가 찾아오는데...

1945년 4월 21일, 제3기갑사단의 베테랑인 조 마두리 하사의 슈퍼 퍼싱 전차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다.

제3기갑사단은 데사우에 대한 4방면에 걸친 공격을 시작했다. 도시의 방어상태는 견고하여 부대는 수많은 콘크리트 장애물을 파괴한 다음에야 서서히 진입할 수 있었다. 전차들 뒤로 제36보병사단 대원들이 뒤를 따르며 도시에 진입하는데...슈퍼 퍼싱 전차도 교차로에 진입하여 우측 코너에 대해 사격을 시작하였다.

그 순간, 1대의 티이거 II 전차가 두 블록 정도의 거리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그 방향은 미군이 향하려는 방향이었다. 이 거리라면 티이거 II전차가 쉽게 교전할 거리로 즉각 티이거의 악명 높은 88mm 전차포가 슈퍼 퍼싱 전차를 향해 발사되었다.

18살로 어린 포수인 존 어윈 상병은 즉각 반격을 가해 90mm 포탄을 티이거 II에 날렸다. 그러나 이 포탄은 철갑탄이 아닌 고폭탄으로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여 티이거의 전면 장갑을 맞고 튕겨나가 버린다.

당시 슈퍼 퍼싱 전차는 시가전을 예상하여 고폭탄을 장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윈 상병은 즉각 장진수에게 “철갑탄”을 준비하라고 소리친다. 그 순간 포탑 안에 있던 전차병들은 굉장한 진동을 느꼈다. 티이거 II가 발사한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종류의 포탄일 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살아 있다는 것이 아직 우리 전차가 파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던가?..허긴 추가 장갑판을 덕지 덕지 붙인 덕이었을 것이다.


(이 대목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든 무사히 철갑탄을 장전한 슈퍼 퍼싱이 첫번째 철갑탄으로 쾨니히스티거(티이거 II)의 스프로켓을 명중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두번째 철갑탄으로 탄약고를 명중시켜 격파했다는 내용입니다.

역사적인 두 괴물들의 전투를 분석할 겨를이 없이 전투는 격렬했고 슈퍼 퍼싱 전차는 불타는 티이거 II를 지나치며 또 다른 목표를 찾아 전진하였다. 도심의 거점에서는 여전히 기관총탄이 빗발쳤고 팬저파우스트들이 날아다녔다.

슈퍼 퍼싱 전차와 티이거 II 전차와의 대결은 단 20초 만에 싱겁게 끝나버렸고, 평원에서 여러 대가 맞붙는 진정한 전투는 아니더라도 슈퍼 퍼싱 전차의 장갑과 공격력을 테스트한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었다.

데사우 전투는 다음 날 모두 끝나는데, 슈퍼 퍼싱 전차는 또 하나의 독일 괴물을 격파하는데, 5호 전차 판터를 단 2발을 발사하여 격파한다. 한 발은 스포라켙을 명중시켜 기동 불능으로 만들었고, 다른 한 발이 판터 옆면을 완전히 관통하여 파괴하였다.


결국 남은 독일 4호전차 승무원들은 슈퍼 퍼싱에게 완전 겁먹어 항복했다고 합니다 =ㄴ=......


M26 퍼싱의 개량형과 파생형.


2차대전 끝에서나 등장한 퍼싱이었던지라, 파생형도 딱 하나뿐입니다. 바로 기존 퍼싱에 105mm M4 L/22.5 유탄포를 장착한 M45 중전차입니다.



보병 지원용 유탄포를 장착한 M45. 그런데... 대두에 저런 짧은 포를 장착하니, 좀 없어 보인다고 느껴집니다 -ㅅ-


M26 퍼싱은 2차대전 미군이 마지막으로 투입한 전차로, 미군의 첫 중전차이기도 합니다. 비록 중전차로 보기엔 좀 어정쩡한 중량이기도 하고, 너무 늦게 투입되어서 독일군의 찌꺼기 전력이나 치우는 청소부 신세가 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강력한 화력과 장갑은 그동안 독일군의 맹수들을 상대로 잃어버렸던 미 육군의 자존심을 충분히 살려주었습니다.



M26 퍼싱 스펙



중량: 41900kg
승무원: 5명
엔진:

Ford GAF / 8실린더 / 500마력

속도: 40km/h
항속 거리: 도로: 161km
연료 용량: 832 gallon
전장: 8.65m
전폭: 3.51m
전고: 2.78m
무장:

90mm M3 L/53 전차포 & 2 x MG
(1 x 7.62mm M1919A4 - 동축)
(1 x 7.62mm M1919A4 - 차체)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탄약:

90mm - 90발
7.62mm - 5000발
12.7mm - 550발

장갑: 12.7-114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yanagi.0kr.net/ground/tank/us/m26/m26.php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s-heavy/m26.as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http://kionize.egloos.com/296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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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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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2 16:35 신고

    퍼싱 프로토타입을 보니 전설의 괴작 전차 KV-2가 생각나는군요..(소문으론 장갑에 콘크리트를 넣었다고..)

  2. 2010.01.25 10:25 신고

    크고 아름다운 퍼싱짜응~

    컴퍼니오프히어로에서의 방어모드에서는 심하게되면 퍼싱이 때로 몰려옵니다;;

  3. 2010.02.02 20:17 신고

    퍼싱이 소수 투입됬지만 티거 잡은 사례는 꽤 되더군요.

  4. 2010.05.31 23:50 신고

    퍼싱때로 오면 난 판저슈렉으로 존나게날리고 판터전차로 신나게 잡아줌
    그리고 소수투입되서 미군으로 퍼싱 따면 독일 녺는데

    • 2010.06.21 18:28 신고

      티거도 잡는 퍼싱인데
      판터로 잡으신다니 ㅇㅅㅇ
      쾨니히스티거 같은거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위에 보니 COH이야긴가 보군여 ㅇㅅㅇ;;

    • 2011.01.12 02:30 신고

      뭐 상황에 따라 퍼싱이 판터에게 잡힐수도 있습니다. 전쟁이란 변수가 항상 있고 운도 따라야되죠. 객관적인 스펙상 자료로는 확실히 괴히니스티거가 퍼싱보다 강력한 전차입니다.

  5. 2010.06.20 05:45 신고

    내가 찾던 정보가 요기잉네!!

  6. 2010.08.16 18:30 신고

    역시 퍼싱 짱!!!!

    • 2011.01.12 02:31 신고

      그래도 결국 제대로 활약못해본전차고 금방 묻힌전차인건 어쩔수없지요.

  7. 2011.01.30 18:29 신고

    근데 소련군은 티거를 그냥 T-34물량빨로 밀어 붙인건가?(모랄빵도 뒤엎는 전설의 우라돌격!)

  8. 2011.02.15 14:46 신고

    한국전에서는 T-34킬러!!!

  9. 2013.01.19 16:27 신고

    퍼싱은 2차대전이 끝나고 바로 중전차로 분류 한국전에 투입되엇죵

  10. 2013.07.15 15:55 신고

    http://panzerkatz.egloos.com/327316

    슈퍼퍼싱과 쾨니히스티거가 벌인 데사우 교전은 부정되어있는게 정설입니다. 일단 미육군 제3기갑사단에서 정비장교로 참전했던 (고) 벨튼 쿠퍼씨의 회고록 "Death Traps: The Survival of an American Armored Division in World War II"의 경우 슈퍼퍼싱의 장갑 개수에 참가했었지만 데사우에서 슈퍼퍼싱이 쾨니히스티거와 교전을 붙었다는 일에 대해서는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데사우 교전에서 슈퍼퍼싱이 정체 불명의 독일전차와 붙은건 스티븐 잘로가 교수의 아머드 썬더볼트에 기록되어있지만 쾨니히스티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 전차 리뷰

 

5장, M24 채피, 강해지고 싶었던 마이너


M7 전차 개발의 실패


2차대전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 육군은 그들의 경전차 M5 스튜어트가 화력에서나 장갑에서나 그들의 적인 독일 전차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아무리 정찰용 경전차라고는 해도, 조우하는 적, 특히 적 전차를 상대할 최소한의 화력은 필요하다고 판단한 미군은 스튜어트의 뒤를 이을 새로운 경전차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T7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초창기에는 11톤 정도의 무난한 경전차로 만들어졌고, 영국군의 6파운드 전차포를 라이센스한 57mm 전차포를 장비하며 그럭저럭 미군을 만족시키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작달막한 경전차에 너무 많은 요구를 걸었고, 이것저것 야금야금 강화시키고 부품을 탑재하다 보니 1942년 말 즈음 들어 완성될 무렵에는 T7은 더 이상 경전차로 불릴 수 없을 만큼 몸집이 불어버렸습니다.



완전 불운한 비운의 전차 M7. 제식화까지 해놓고도 쓸데가 없어 7량 만들고 버렸습니다.


미군 쪽에서도 그동안 들인 비용이 아까워 일단 M7로 제식화는 했지만, 25톤으로 몸집이 불어버린 이 '경전차'를 정찰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그렇다고 주력전차로 만들기에는 셔먼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M7은 중(中)전차로 제식화되기는 했지만, 7량 정도만 테스트용으로 만들고 이내 도태되는 실패한 전차가 됩니다.


실패를 넘어서, 2차대전 최강 경전차 M24 채피의 탄생


M7을 말아먹으면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미군의 차기 경전차 개발에 대한 의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찰용 경전차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랐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란 것을 깨달은 미 육군 병기국은 눈높이를 약간 낮춰서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했고, 이에 맞는 적당한 수준의 경전차에 적당한 수준의 대구경 전차포를 장착하기로 합니다. 75mm급 전차포를 원했던 병기국은 이에 맞는 주포를 찾던 중 의외의 곳에서 그 적임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B-25 미첼 폭격기의 대함용 개량형인 B-25G.

 

여기 달려있는 75mm M6 L/40 캐논포가 병기국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B-25G 미첼의 노즈 터렛에 대함용으로 장비된 75mm M6 L/40 캐논포는 항공기용으로 반동이 적기 때문에 경전차용으로 적당했고, 또한 기본은 단포신형 셔먼의 75mm M3 L/40 전차포와 같은 포신이었기 때문에 화력도 제법 좋았습니다.
M6 캐논포에 만족한 병기국은 1943년 4월에 카디라크 사에 이 캐논포를 주포로 하는 경전차의 개발을 의뢰했고, 1943년 10월에 M6 전차포와 M5 스튜어트의 엔진, 새로운 토션바 서스펜션을 장비한 신형 경전차 T24가 등장했습니다. 신형 경전차는 1945년 1월까지 총 4070량이 생산되었고, 1944년 6월 M24로 제식화되었습니다. 영국군은 이 M24를 미군 기갑부대 창설자인 애드너 R. 채피 장군의 이름을 따 M24 채피라고 부릅니다.



M24 채피 경전차. 당시 동급의 경전차 중에선 최강의 화력과 그에 걸맞는 훌륭한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Painting:  Adna Romanza Chaffee.  By Cedric Baldwin Egeli.
M24에 이름을 남기신 애드너 R. 채피 장군. 특이하게도 남북전쟁 시대 인물이 아니십니다.
 
M24 채피 경전차는 단포신형 셔먼급의 공격력을 가졌고, 얇지만 경사장갑을 가진 덕에 독일군의 중전차는 몰라도 4호전차 정도의 전차라면 열세지만 상대가 가능할 정도였고, 18톤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중량과 시속 56km의 빠른 속력 덕에 정찰용 경전차로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미 육군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켰습니다. 


병사들과 사진 한 방 찍고 계신 채피 장군님


하지만 개발 시기가 너무 늦었습니다. 채피의 데뷔는 1944년 12월 독일의 아르덴 공세에서나 가능했고, 이후에도 스튜어트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채로 2차대전이 종결되게 됩니다.
 
 
 
성능이야 훌륭했지만 너무 늦게 나온 탓에 채피의 활약은 썩 좋지는 못했습니다.


채피 경전차는 6.25 전쟁 초기에 잠시 미군의 주력전차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나빴습니다. 북한군이 보유한 T34/85는 도저히 채피의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나게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뒤이어 상륙한 퍼싱과 셔먼에게 주력전차 자리를 이내 빼앗기는 등 채피의 전차 일생은 그다지 쿨하지 못하게 마감됩니다. 

   
채피의 성능은 좋았지만, 전차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M24 채피의 개량형과 파생형


M24 채피의 주된 개량형으론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M7 프리스트의 대체용으로 105mm 유탄포를 탑재한 M37 GMC 자주포이고, 다른 하나는 40mm 보포스 대공포를 2연장으로 탑재한 무시무시한 M19 GMC 대공전차입니다. 하지만 본래 차량 자체가 늦게 등장한 덕에 둘 다 대전 말에나 등장했고, 생산량도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M37 GMC. 프리스트의 대용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벼운 채피의 차체로 만든 덕에 기동성 면에서 좀더 나았습니다.


USA's M19 Gun Motor Carriage
M19 GMC 대공전차. 보포스 대공포를 쌍으로 장비한 덕에 위력 하나는 강력했습니다.
 
 
M24 채피 경전차는 빠른 기동력과 제법 높은 화력이 합해져서 2차대전의 경전차 중에서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능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게 나온 탓에 2차대전에서는 활약할 기회가 없었고, 이후 등장하는 강력한 전차들의 홍수 속에서 경전차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후계기 워커 불독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M24 채피 스펙



중량: 18370kg
승무원: 5명
엔진:

2 x Cadillac Twin 44T24 / 16실린더 / 220마력

속도: 56km/h
항속 거리: 도로: 281km
연료 용량: 110 gallon
전장: 5.49m
전폭: 2.95m
전고: 2.46m
무장:

75mm M6 L/40 전차포 & 2 x MG
(1 x 7.62mm M1919A4 - 동축)
(1 x 7.62mm M1919A4 - 차체)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탄약:

75mm - 48발
7.62mm - 3750발
12.7mm - 440발

장갑: 9.5-38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s-light/m24.asp
http://ko.wikipedia.org/wiki/M24_%EC%B1%84%ED%94%BC
http://yanagi.0kr.net/ground/tank/us/m24l/m24.ph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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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 전차 리뷰


4장, M22 로커스트, 뛰지 못한 메뚜기


전차를 수송기에 실어보자! 공수전차의 개발


2차대전 초중반의 독일국방군의 공수부대 '팔슈름예거'와 이에 맞서는 소련 적군의 공수 군단들은 상대적으로 경무장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전투력과 활약을 보여주었고, 미군이 공수부대 육성에 관심을 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군은 공수부대를 위해 카빈소총과 무반동포 등의 여러 무장을 개발하지만, 미군은 공수부대에 좀더 강한 장비를 얹어주고 싶었습니다.


  
더글라스 사의 C-54 스카이마스터 수송기. 당시 수송기 중에선 상당히 잘 만든 물건이었지만, 이걸로는 리나 셔먼은 고사하고 스튜어트도 나르기 힘들었습니다.


중량이 문제였습니다. 미군이 여태까지 개발한 전차들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수송기로는 나르기에는 경전차인 스튜어트조차도 너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 육군 병기국은 미군의 주력 수송기 중 하나인 C-54 스카이마스터에 수송이 가능한 초미니 공수전차를 아예 새로 만들기로 작정했습니다.


공수전차 프로젝트, T9


새로운 공수전차 프로젝트가 1941년 2월 계획되었고 T9라는 실험전차명이 붙었습니다. T9는 특수목적의 공수전차였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제법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습니다.





1. 차량 중량은 7.5톤은 넘지 말 것.

2. 전장은 3.5m, 전고는 1.67m를 넘지 말 것.

3. 승무원은 최소 3명(조종수, 전차장, 포수)을 탑승시킬 것.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불과 2개월만에 마몬-해링턴 사에서 시제품을 찍어냈고, 시제품은 곧 T9로서 합격했습니다. T9는 스튜어트와 같은 M6 37mm L/53.5 전차포를 주무장으로, 1정의 동축기관총과 차체 양쪽의 고정식 차재기관총 2정을 부무장으로 장비했고, 0-435-T 6기통 항공기용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하지만 이 T9는 아직도 C-54 수송기가 싣기에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주포 스태빌라이저와 전동식 포탑 구동장치, 차재기관총을 들어낸 T9E1에 와서야 1943년 양산을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M22 로커스트의 모습을 다 갖춘 T9E1. 스튜어트보다 더 작고 더 얇았습니다.


일단 생산을 허락받고 1900대가 발주되긴 했지만, 일단 만들고 보니 별로 쓸 데가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낙하산 강하도 불가능한 로커스트를 수송기로 직접 공수부대에 실어주는 것도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고, 지상 전투용으로 쓰기에는 고작 25mm의 전면장갑과 37mm 전차포가 너무 약했습니다. 
천조국이라는 미국도 이런 사용할 곳 없는 공수전차 찍어내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에 반도 못 넘는 830량만이 1944년 9월까지 생산되었습니다. M22라는 제식명도 생산이 끝난 9월에야 붙게 되었습니다.


영국군에서의 초라한 데뷔, M22 로커스트


생산된 M22의 대부분은 딱히 사용할 곳도 없었기 때문에 고국에서 초라히 썩어갔지만, 생각치도 않은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M22를 실어나를 수 있는 하밀카르 글라이더를 보유했던 영국 공수부대에서 이들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230량 가량의 M22가 곧 영국군에 랜드리스되었고, 영국군은 특이하게도 이 공수전차에는 장군 이름이 아닌, 메뚜기를 뜻하는 로커스트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하밀카르 글라이더에서 내리는 M22 로커스트. 미군과는 달리 영국군에서는 로커스트가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로커스트가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이미 자체적으로 개발한 테트라크 공수전차를 상당수 보유중이었고, 이는 공격력 면에서 오히려 로커스트보다 나았기 때문에 테트라크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첫 실전을 치르고, 노르망디에서 웃고, 네덜란드에서 쥐어터지는 동안 로커스트는 그저 출격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어딜 가나 로커스트는 잉여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단 한번, 로커스트에게도 출격 기회가 주어지긴 했습니다. 라인강 도하작전에서 영국군 소속의 로커스트 12량이 하밀카르 글라이더를 통해 실전에 투입되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었고, 이후 로커스트는 종전까지 별 활약도 없이 창고에나 눌러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험장에서 T28과 함께. 어딘가 초라해 보입니다.


로커스트는 미군에서 최초로 수송기에 실을 수 있는 공수전차로 개발되어 공수부대의 든든한 우군이 될 것으로 기대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장비와 기술역의 한계 덕에 로커스트가 뛸 만한 자리는 전장 어디에도 없었고 결국은 미군이 아닌 영국군의, 그것도 테트라크의 들러리 신세로서 그 초라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M22 로커스트 스펙



중량: 7400kg
승무원: 3명
엔진:

0-435-T / 6실린더 / 240마력

속도: 64km/h
항속 거리: 도로: 217km
연료 용량: 55 gallon
전장: 3.94m
전폭: 2.16m
전고: 1.82m
무장:

M6 37mm L/53.5 전차포 & 1 x MG
(1 x 7.62mm 7.62mm M1919A4 - 동축)

탄약:

37mm - 50발
7.62mm - 2500발

장갑: 8-25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s-light/m22.asp
http://ko.wikipedia.org/wiki/M22_%EB%A1%9C%EC%BB%A4%EC%8A%A4%ED%8A%B8
구글 내 이미지 검색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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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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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2 16:00 신고

    마...마다가스카르에서 실전이라니!!!

    그나저나 중간에 오류가 있는듯요. "자치를 인정"가 아니라 "가치를 인정"....;;

    • 지옥고양이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0.01.12 18:56 신고

      1942년 비시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 전에서 투입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치라니;;; 얼른 수정해야 쓰겠군요!

  2. 2010.01.25 10:31 신고

    글라이더를 타고 슝슝 내려왔는데

    앞에 김판터가!!

    앙대!!

    곶아라니!!

  3. 2011.02.15 14:46 신고

    태트라크보다못한자식 임 잉여의인생. 카베난터같은?

  4. 2012.02.24 11:59 신고

    잉여전차라도 멋지긴하네요

(???)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이라 쓰고 국적불명이라고 읽는)전차 리뷰



3장, 3부. 파이어플라이, 티거를 향해 쏴라!



※시리즈 잇느라 어쩔 수 없이 이름붙인거지만 사실 셔먼 파이어플라이는 미국 전차가 아닙니다. 영국군이 랜드리스받은 셔먼에 17파운드 전차포를 탑재한 국적불명 영국 전차입니다-ㅅ-


영길리의 필살무기, 17파운드 대전차포


1941년 말부터 영국군은 자신들이 보유한 똥덩어리 2파운드 대전차포는 물론이고, 6파운드 대전차포로도 더 이상은 독일 전차를 감당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실감하고 보다 강력하고, 사거리도 길고, 유탄도 발사 가능한 새로운 대전차포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43년 2월부터 영국군은 25파운드 유탄포의 포가에 새로운 포신을 끼운 QF 17파운드 대전차포를 일선에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이후 전용 포가도 개발합니다.)



영길리의 필살무기인 17파운드 대전차포. 2차대전 서방 연합군의 대전차포 중에서는 최강이었습니다.



17파운드 대전차포는 동급, 즉 75mm급 구경의 대전차포 중에서는 최강을 달리는 강력한 대전차포로, 미국의 M1A2 대전차포보다 일반 철갑탄과 특수탄에서 모두 30mm가량 높은 관통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러한 관통력의 비결은 55구경장에 이르는 긴 포신의 길이와 대량의 장약 운용도 있었지만, 당시 영국이 최초로 개발한 필살의 대전차탄 APDS(장탄통 분리철갑탄, 포탄이 발사되는 과정에서 텅스텐 관통자를 둘러싼 장탄통이 분리되어 떨어져나가고 관통자만이 목표물을 관통하는 철갑탄으로, 2차대전 철갑탄 중 최강급의 위력을 자랑했지만, 탄도와 입사각이 조금만 불안정해도 불발되기 일쑤였고, 원거리일수록 명중률이 감소하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훗날 관통자에 날개를 담으로서 개선한 것이 APFSDS, 즉 날개안정 분리철갑탄입니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APDS탄을 장전한 17파운드 대전차포의 100m, 500m, 1000m 관통력은 각각 221mm, 204mm, 185mm에 달했고, 이는 티거의 100mm 수직 전면장갑 정도는 문제없이 뚫어버릴 강력한 위력이었습니다.



17파운드 대전차포의 사용탄들. 왼쪽부터 APDS, APC, APCBC 순서입니다.



영국군은 17파운드의 파괴력 덕에 큰 재미를 봤지만, 1941년에 75mm Pak 40 L/48 대전차포를 배치했던 독일국방군이 겪은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영국군도 겪습니다. Pak 40의 두 배에 달하는 3톤의 중량이 문제였습니다.



여섯 명으로도 다 못 가리는 크고 아름다운 17파운드 대전차포. 이건 사람이 밀 수 없습니다.




영국군이 대전차포 밀고 다닐 때, 독일군은 타고 다닙니다.(사진은 마더 2)



예전의 2파운드와 6파운드 대전차포는 배치도 금방이었고, 사람이 밀고 다니는 것도 가능했지만 무거운 17파운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차량 견인이 필수인데다가 진지 구축도 어려웠기 때문에 17파운드 자체의 야지 운용에는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결국 독일이 마더 시리즈를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듯이, 영국군도 이 17파운드를 자주화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17파운드와 셔먼의 만남, 호랑이 잡는 셔먼 파이어플라이


영국군은 자신들의 전차와 차량을 이용해 17파운드 대전차포를 탑재한 대전차 차량을 개발하려 했지만, 설계가 형편없거나, 너무 늦게 개발되거나, 기계적인 문제에 시달리거나(한번 맞춰봅시다 -ㄴ-) 하는 이유로 사실상 대부분 실패해 버렸고, 유일하게 성공한 모델이 바로 미국에게서 랜드리스받은 M4 셔먼이었습니다. 다른 계획들의 실패를 대비해서 보험으로 개발해본 셔먼은 의외로 까다로운 17파운드를 잘 받아들였고, 셔먼의 빠른 포탑회전과 강력한 17파운드의 만남으로 영국군은 셔먼 파이어플라이라는 성공적인 전차 킬러를 얻습니다. 주로 M4A1 셔먼과 M4A4 셔먼이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고, 각각 IIC 파이어플라이와 VC 파이어플라이로 제식화됩니다.



영국군의 필살병기 셔먼 파이어플라이, 티거와 판터도 잡아내는 강력한 공격력 덕에
독일 전차병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상대였습니다.




이쪽은 M4A1 셔먼을 개조한 IIC 파이어플라이이고,




이쪽은 M4A4 셔먼을 개조한 VC 파이어플라이입니다. 궤도와 인간 증가장갑을 추가 부착함으로서
생존성의 향상을 꾀한......(질질질질......)


일반 셔먼과 파이어플라이는 차이점이 많았는데, 55구경장의 긴 주포와, 장전수용 해치와 무전기용 외부 박스, 영국군용 연막탄 발사기의 추가 등이 주요한 차이였습니다.
17파운드를 자주화하기는 꽤 힘들었지만, 일단 자주화를 마치자 그 효과는 훌륭했습니다. 강력한 17파운드 전차포 덕에 파이어플라이는 티거와 판터 같은 기존의 넘사벽 독일 중전차들을 1000m 거리 내외에서 격파하는 것이 가능해서 독일군 전차병들의 또다른 고민거리이자 강력한 적수로 부상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티거와 판터가 파이어플라이의 밥이 되었고, 2차대전 독일군 최강의 전차 에이스로 꼽히던 미하일 비트만의 최후도 탑승한 티거가 파이어플라이에게 측면을 가격당해 탄약고 유폭으로 전사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을 정도입니다.(타이푼 전폭기나 근처의 캐나다군에게 전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파이어플라이는 무서운 티거 중전차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건 다른 티거고, 미하일 비트만의 티거는 완전히 작살나 탄약고 유폭으로 포탑까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파이어플라이는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꽤 있었습니다. 우선 개조하지 않은 M4A1이나 M4A4에 포탑만 갈아끼운 것이기 때문에 방어력이 빈약한 초기형 셔먼 그대로여서 4호전차나 3호전차에도 얄짤없이 격파당해버리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주포인 17파운드 포의 결함이었습니다. 특수탄인 APSD가 아직 불완전했기 때문에 때로는 2000m 거리에서도 티거를 날려버리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800m 거리까지 접근해야 탄이 먹히는 등 안정성이 들쑥날쑥했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명중률도 확 떨어졌습니다. 또한 장탄통이 분리되지 않아 불발되거나 경사장갑에 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단점은 노출되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이어플라이에 된통 데인 독일 전차병들은 긴 포신의 셔먼만 보면 주저하지 않고 1순위로 삼아버렸기 때문에 파이어플라이의 전차병들은 항상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영국 전차병들이 파이어플라이에 탑승하길 무서워했고, 파이어플라이를 감추기 위해 위장망, 위장도색, 가짜 파이어플라이등 별의별 위장술을 다 동원하는 웃지 못할 희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파이어플라이가 독일 맹수들을 떡실신내기도 했지만




종종 이렇게 역관광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방어력에서 딸리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별의별 노력이 다 필요했습니다.(다른 나라도 별로 다를 건 없지만요.)



미군은 처음에는 영국군 포를 쓰기에 자존심이 상해서 파이어플라이를 공여해 주겠다는 영국의 역랜드리스 제안을 거절했지만, 나중에는 필요를 느꼈는지 미군의 요청으로 M4A3 셔먼를 개조한 IVC 파이어플라이가 발주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90mm급 전차를 개발하면서 재미있는 역랜드리스 계획은 곧 취소됩니다.


파이어플라이는 애초에는 17파운드 자주화 계획의 보험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곧 800량 가량이 생산되어 영국군의 히든카드이자 독일군의 호적수로 자리잡으며 독일 기갑부대의 맹수들을 위협하는 등 화려한 활약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파이어플라이의 활약 뒤에는 자국 전차들이 17파운드를 받아들일 형편이 되지 않아 자존심구기며 랜드리스받은 셔먼을 개조해야 했던 영국군 기갑부대의 민망함도 적잖게 감춰져 있었습니다 -ㄴ-


※파이어플라이의 스펙은 포를 빼면 M4A1과 M4A4와 거의 동일합니다.


76.2mm QF 17파운드 L/55 전차포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C Shot Mk.IV 140mm 130mm 119mm 108mm 99mm
APDS Shot Mk.I 221mm 204mm 185mm 167mm 151mm
 
 
APC Shot Mk.IV (APC) - Armor Piercing Capped
APDS Shot Mk.I (APDS) - Armor Piercing Discarding Sabot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puzzlet.org/archive/angelhalo/view/%ED%8C%8C%EC%9D%B4%EC%96%B4%ED%94%8C%EB%9D%BC%EC%9D%B4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foreign/m4-medium.as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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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6 15:47 신고

    제가 2차대전 전차라면 병맛 지식이지만, 이 녀석은 언제나 기억하고 있지요 'ㅅ'

    참으로 좋은 녀석이라능! 길고 아름답다(....)

  2. 2009.12.27 22:12 신고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이곳 어제 처음 들어왔는데 군사관련정보가 많더군요.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

  3. 2009.12.29 20:16 신고

    다음리뷰는..T-34입니까?

  4. 나한테뭘바라는건데앙?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09.12.31 12:06 신고

    호오 하지만공중폭격이나선다면어떨까
    공!!
    중!!
    글자수가안맞아!!!

    • 지옥고양이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0.01.01 12:42 신고

      그런데 노르망디 전역 이후엔 사실 롱톰이나 203mm같은 중포가 더 활약했다는군요.

  5. 2010.02.02 20:04 신고

    와 잘봤어요

  6. 2010.02.19 02:55 신고

    잘봤습니다

  7. 2010.04.15 18:17 신고

    그냥 M4 Sherman+17파운드 대전차포.....

  8. 2010.06.20 05:54 신고

    잘봣슴

  9. 2013.07.15 15:47 신고

    http://panzerkatz.egloos.com/353426

    미하일 비트만의 죽음의 경우 셔먼 파이어플라이 설은 이미 부정되었죠. 미하일 비트만의 제거작전에 참가한 영국군 셔먼 파이어플라이의 포수로 참전한 고인이 된 조 에킨스씨가 자기는 그때 겁에 질려있었다고 말했죠. 실제로 140m 이하 정도의 거리에서 캐나다군의 M3 75mm포를 장비한 셔먼들이 다굴을 했다는 기록이 있었죠

  10. 2014.12.24 18:51 신고

    ㅋ ㅋ 샤먼vc사러감다

  11. 2015.01.08 23:14 신고

    중간에 돈좌된 티거I은 빌레르보까쥬에서 1SS 101의 1중대 차량입니다. 비트만(2중대 212호)이 단기 활극을 펼치고 난 이후에 정리하러 들어왔다가 당한 것이지요. 비트만의 최후를 장식한 007호 대대장 차량은 전혀 다른 곳에서 돈좌 되었고 시기도 다릅니다.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캐나다 셔부룩 푸질리에의 래들리월터스대의 단포신 셔먼 다구리가 범인일 가능성이 제일 높구요. 잘 정리 하셨는데 지나가다 조금 첨언하고 갑니다.


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미군 전차 리뷰


3장, 2부. M4 셔먼, 호랑이 없는 전장에서 왕 노릇하는 여우.



서부 유럽, 역경과 고자


셔먼 역경의 서곡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 27대의 DD 셔먼들이 고작 2대만 남기고 바닷물에 가라앉은 참극으로 시작됩니다. 상륙 후 여태까지 큰 어려움 없이 활약해오던 셔먼들에게 일대 재앙이 닥치고 맙니다.
미군들이 이미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끝판대왕으로 상대했던 티거 중전차들이 프랑스에선 전차 에이스들이 즐비한 중전차 대대 규모로 굴러다니고 있었고, 측면을 빼면 티거만큼이나 무서운 판터 전차들까지 새로 등장해 미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합니다.



악마같은 표범 탱크 5호전차 판터와,



마귀같은 호랑이 탱크 6호전차 티거. 셔먼으로는 둘 다 답이 없는 상대였습니다.


이들의 100mm가 넘는 두터운 전면장갑은 여태까지 대부분의 셔먼들이 장착했던 75mm M3 L/37.5 전차포로는 영거리에서 사격해도 관통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티거와 판터의 주포는 높은 명중률과 원거리 사격을 상정한, 단포신형 셔먼들의 어정쩡한 전차포와는 수준이 틀린 대전차용 전차포였습니다.
세 전차의 전차포와 전면장갑 수준이 얼마나 차이나는지 스펙을 봅시다.


단포신형 셔먼의 전차포...;;;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 M72 Shot 88mm 73mm 59mm 47mm 38mm
APC M62 Projectile 71mm 64mm 57mm 51mm 45mm
 
 
AP M72 Shot (AP) - Armor Piercing
APC M62 Projectile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판터의 전차포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Panzergranate 39/42 138mm 124mm 111mm 99mm 89mm
Panzergranate 40/42 194mm 174mm 149mm 127mm 106mm
 
 
Pzgr.39/42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Pzgr.40/42 (APCR) - Armor Piercing Composite Rigid (텅스텐 심)

티거의 전차포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Panzergranate 39 120mm 110mm 100mm 91mm 84mm
Panzergranate 40 171mm 156mm 138mm 123mm 110mm
 
 
Pzgr.39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Pzgr.40 (APCR) - Armor Piercing Composite Rigid (텅스텐 심)

M4A1, M4A3(단포신형)의 최대장갑 : 75mm

판터 G형의 전면장갑 : 110mm

티거의 전면장갑 : 100mm


결과는 참담합니다. 셔먼의 전차포가 사거리에 들기도 전에 티거와 판터의 철갑탄이 번번히 셔먼들을 박살내었고, 기껏 셔먼이 접근해 선제공격에 성공하더라도, 75mm 전차포의 철갑탄으로는 이 두 맹수의 전면장갑에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고가 높기로 악명높았던 M3 리의 차체를 쓴 관계로 셔먼의 전고 또한 매우 높아 자주 원거리에서 피격되었고, 탄약고 설계상의 문제로 피탄되기라도 하면 그대로 불타버리거나 폭발하기 일쑤였습니다. 때문에 독일군 전차병들은 셔먼을 지포라이터, 혹은 론슨 라이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미군도 1944년 2월부터 M4A3 셔먼을 장포신형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뒤늦게야 M26 퍼싱 중전차의 개발을 서두르는 등 독일 전차들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티거 중전차 1량을 잡기 위해 최소 5량의 셔먼이 필요하다는 교전 수칙까지 퍼지고 있었습니다. 1941년 독일군이 소련 땅에서 겪은 집단 고자화가 재현되었던 것입니다.  



티거와 셔먼과의 관계 : 넘사벽 티거 중전차를 상대로 셔먼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다수의 물량으로 밀고 들어와 측면을 노리는 것이나, 무전기에 대고 공군과 포병을 부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마저도 못하면, 그냥 고자라니!!!



뭐 그래도, 셔먼과 미군 전차병들에게는 대전차 자주포 대대와 포병, 공군, 그리고 그들 자신의 장점인 막대한 물량이 있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는 공군의.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는 포병과 대전차 대대에 힙입어, 셔먼 전차는 자신들을 가로막는 무서운 독일 맹수들을 하나둘씩 거꾸러뜨리며 승리를 향한 발판을 마련해 갑니다.



아무리 독일군이 잘났어도, 역시 물량 앞에 장사는 없었습니다. 막대한 량의 셔먼과...



 


포병과


 


공군과



 


대전차 대대(좌 M10 울버린, 우 M36 잭슨)를 앞세운 미군은 차차 서유럽을 독일의 손에서 해방시키기 시작합니다.


독일 전차에 맞서라! M4A3 셔먼의 진화


서부 전선에서 승기를 잡아가는 연합군이었지만, 여전히 미군 전차의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대처가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미 육군은 기존의 셔먼 중 가장 나은 성능의 M4A3을 보다 업그레이드해보기로 결심했고, 두 가지의 뚜렷한 개량형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M4A3 셔먼의 첫 번째 개량형은 미군의 또다른 실험전차였던 T23의 포탑을 장착한 셔먼에 추가 장갑을 용접해 차체 전면 139mm, 포탑 177.8mm 까지 떡장화시킨 M4A3E2 점보 셔먼이었습니다. 중량이 꽤 증가해 38톤으로 늘었고, 당연히 속력도 시속 35km로 쪼글아들었습니다. 그러나 판터와 티거의 전차포도 중거리에서는 튕겨넣는 무시무시한 방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주포는 여전히 기존의 75mm 전차포를 사용했지만, 현지에서 76.2mm 개수를 거치기도 했습니다. 생산 중간에 M26 퍼싱 중전차의 생산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총 254량만 생산되었지만, 전장 각지에서 미군의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전면 장갑에 무지막지한 떡장장갑을 이어붙인 M4A3E2 '점보' 셔먼. 88mm 고사포도 막는 전면장갑 덕에 점보 뒤의 미군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M4A3 셔먼의 두번째 진화는 바로 셔먼의 2차대전 최종 개량형인 M4A3E8 '이지 에잇' 셔먼이었습니다. 이지 에잇은 기존의 문제많던 VVSS 서스펜션에서 벗어난 수평형의 HVSS 서스펜션을 장비했고, 이 덕에 경쾌한 기동성과 속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개량이 모두 집약되어 피탄시 탄약고 유폭을 막기 위한 습식 탄약고, 셔먼 후기형의 108mm의 차체 전면장갑과 89mm의 포탑 전면장갑, 장포신형 셔먼들의 76.2mm M1 L/55 전차포를 갖추며 전체 전투력이 4호전차 후기형과 대등한 수준(방어력은 오히려 높습니다.)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의 업그레이드가 모두 집약된 M4A3E8 '이지 에잇' 셔먼. 사실상 셔먼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50량이 조금 넘는 점보 셔먼에 모두가 기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지 에잇 또한 늦어도 한참 늦은 1944년 12월이 되어서야 전장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미군 전차병들은 아직 문제많은 VVSS 서스펜션에 75mm 전차포와 얇은 장갑을 가진 셔먼으로 독일 기갑부대와의 전투를 치뤄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76.2mm용 HVAP(고속 철갑탄. 독일의 APCR과 같은 개념의 특수철갑탄으로, 기존의 철갑탄처럼 포탄 자체가 장갑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텅스텐 관통자를 포탄 내부에 집어넣어 관통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이 탄을 쓰면 이론적으로는 판터와 티거의 전면장갑도 1000m 거리에서 관통 가능했지만, 텅스텐 부족으로 셔먼 한 대 당 겨우 한두 개 지급되었고, 셔먼이 전면에서 티거를 격파한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탄을 개발하고, 기존 셔먼들에도 장포신과 HVSS 서스펜션을 장비하며 장갑을 덧대는 등 점진적으로 셔먼의 약점들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또한, 76.2mm 고속포를 장비하며 유탄의 위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 미 육군은 셔먼에 105mm M4 L/22.5 유탄포를 장착한 M4 셔먼과 M4A1 셔먼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105mm 유탄포를 장착한 M4 셔먼, 보병 지원용이었지만 급할 때는 HEAT탄으로 93mm까지도 관통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셔먼을 업그레이드하는 동안, 독일군도 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미군이 개량형 셔먼과 대전차 자주포를 내놓을 때, 독일국방군은 티거의 성능을 뛰어넘은 괴물 중전차 쾨니히스티거와 각종 구축전차를 개발해대고 있었습니다.



괴물같은 전차계의 끝판대왕. 왕호랑이 탱크 6호전차 B형 쾨니히스티거와,


 


요괴같은 구축전차계의 끝판대왕. 사냥꾼 호랑이 탱크 6호 구축전차 야크트티거!!!!!!



 


미군 전차병 일동 :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결국 대전 끝까지, 셔먼 이하 미 육군의 전차들은 독일의 괴물딱지들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ㅅ-


동부 유럽. 셔먼의 또다른 수난



연합군의 여러 전차가 그렇듯이, M4 셔먼도 주로 디젤엔진을 쓰는 M4A2가 주로 소련군에 공여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부전선에 투입된 셔먼들에 대한 소련 전차병들의 평가는 영국의 마틸다나 발렌타인보다는 나았지만, 또 그리 좋지가 못한 것이 포야 뭐 그런 대로 쓸만했지만 T-34에 비하면 접지압과 서스펜션이 떨어져서(M4A2는 문제많은 VVSS 서스펜션을 사용했습니다.) 소련의 진흙뻘 지옥을 돌파하기 힘들었고, 장거리 주행을 잘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독소전쟁사를 읽어보니, 이 문제가 극동전선에서 심하게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T-34도 못 이기는 독일 중전차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어쨌든 10968량의 M4A2 셔먼중 상당 수가 소련군의 전차로 동부전선에서 나름대로 전차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소련군의 셔먼에 대한 평가는 M3 리/그랜트나 영국의 마틸다, 발렌타인보다는 후했지만, 그렇다고 T34보다 높은 점수를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태평양, 미군 기갑부대의 파라다이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은 들고, 셔먼에게도 찬란한 서광이 비칩니다. 서부전선의 아수라장에서 고자라니와 공밀레를 외치는 가련한 동지들의 비명을 뒤로 하고,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서 미 해병대 소속의 M4A1 셔먼들은 그야말로 천국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굴러다니는 닭장 수준의 전차들이 이들이 상대할 적수였기 때문입니다.
단포신형 셔먼의 전면장갑에조차 똥포인 47mm 전차포와 유탄으로 맞춰도 부숴질 닭장장갑을 가진 치하 전차 이하 일본 기갑부대는 그야말로 천황 폐하가 미군 전차병들에게 하사하신 제물들이었습니다.



셔먼에게는 티거 한 대 보다도 덜 무서운 일본 치하 전차들. 57mm 단포신형은 고사하고 47mm 장포신형도 셔먼의 전면장갑에 흠집 하나 내질 못합니다.



당연히 셔먼은 치하 이하 일본 기갑부대의 넘사벽으로 군림했고, 종전까지도 일본군은 단포신형 셔먼조차도 쉽게 넘어서지를 못하는 추태를 보이며 일방적으로 미군에게 학살당했습니다.



화이아!!! 태평양 전선의 셔먼은 그야말로 호랑이 없는 전장의 왕여우였습니다.



태평양 전선의 셔먼들이 신명나게 치하를 작살내는 상황에서 이들은 치하를 격추 카운트에 넣지 않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서부전선에서 티거와 판터, 4호전차들을 상대하는 동료들의 분노를 염려해셔었다고도 한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돌기도 합니다 -ㄴ-



이오지마에서 회수중인 M4 셔먼 전차.



2차대전 이후의 셔먼


2차대전이 끝난 이후, 셔먼은 다양한 국가로 퍼져나갔고 한국전쟁에서 M4A3E8 이지 에잇 셔먼이 투입되어 인민군의 T34/85 전차를 상대로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중동 전쟁에서 105mm 강선포를 장착하고 측면장갑을 경사화한 M51 슈퍼 셔먼을 생산해 중동의 전차들을 상대하기도 하고, 전쟁영화에도 단골 출연하면서 셔먼은 비교적 평탄한 노후를 보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슈퍼 셔먼으로 다시 한번 현역으로 뛰어주셨기도 하고~



 


지금도 이렇게 영화(라고 쓰고 드라마라고 읽는 BOB)에도 틈틈히 출연하십니다. 곧 나올 퍼시픽 잇힝!!!



M4 셔먼의 개량형과 파생형


셔먼 전차는 미군의 주력전차였던 만큼, 독일의 4호전차만큼이나 수많은 파생형이 존재했습니다. 우선 전투용 차량의 예를 보자면, 자주포인 M7 프리스트 후기형과 M12 GMC 후기형, 대전차 자주포인 M10 울버린과 M36 잭슨,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지포 셔먼과 셔먼 크로커다일, 로켓포를 장착한 T34 칼리오페와 M17 위즈뱅이 있습니다.



이미 지난번에도 언급한 적 있는 M7 프리스트와



 


M12 GMC 자주포. 후기형부터는 M3 리가 아닌 M4 셔먼의 차체로 만들어졌습니다.



 


M4 셔먼의 차체를 개조하고 상부 개방형의 76.2mm M7 3인치 전차포를 단 M10 울버린. 장포신형 셔먼과 같은 계열의 주포를 장착했지만 고속철갑탄 지급 순위에 있어 셔먼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에 실제 화력은 셔먼보다 위었습니다.


 


울버린을 한번 더 개조해 강력한 M3 90mm L/52 전차포를 장착한 M36 잭슨. 티거나 판터도 쉽게 잡아내는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했고, 낮은 방어력 때문에 주로 원거리 전투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차포에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지포 셔먼.


 


렐릭 사에서 만든 콯 모 게임 덕에 크로커다일식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셔먼 크로커다일이 더 유명하지만, 사실 그건 많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미군의 주력 다연장 로켓포였던 T34 칼리오페. 그냥 M4A1에 플라스틱 로켓발사대 하나 얹은 간단한 개조입니다.


 


요상하리만큼 짧은 사거리의 M17 위즈뱅 다연장 로켓포입니다.


비전투차량에서도 전투차량만큼이나 많은 불도저 장착형, 상륙전차용인 DD(Duplex drive) 셔먼, 지뢰제거용인 셔먼 크랩, 전차회수차량 M32 등 여러가지 파생형이 있었습니다.



불도저를 단 셔먼, 장애물 치우기 용도였습니다.


 



부양막을 접은 상태와 펼친 상태의 DD 셔먼. D.D 라는 이니셜 때문에 '도날드 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사실 부양막 자체의 내구성과 속력 문제 같은 것이 해결되지 않은 이유로 노르망디에서 피를 보았고, 이후 더는 쓰이지 않은 실패한 상륙전차였습니다.


 


M4 '크랩' 셔먼 지뢰제거전차. 저기 달린 쇠도리깨를 고속 회전시켜 지뢰가 든 땅을 파헤쳐 터트리는 식입니다. 이것도 콯에 등장하는데, 쇠도리깨를 보병에 가까이 대면... 독일군 보병이 분쇄되어 버립니다 -ㅠ-...



M32 전차회수차량. M31 전차회수차량과는 달리 목제 훼이크 포도 없는, 그야말로 ' 여기 표적이니 날 잡아 잡수쇼.' 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네요.



M4 셔먼 전차는 자신들의 주력전차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던 미 육군 병기국의 훌륭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비록 서부전선에서 독일 전차들을 상대로 고전하기는 했지만, 5만량이 넘게 생산되어 다양한 국가에 보급된 뛰어난 생산성과, 공수주가 골고루 분배된 주력전차로서의 높은 실용성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아르덴 공세 이후의 서부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서는 그야말로 호랑이 없는 산골의 왕 여우라 해야 할 것이지요! 후후후. (대놓고 ㅁㅃ모드중~~~~~~~)


M4A1 셔먼(단포신형)/M4A3E8 '이지 에잇' 셔먼(장포신형) 스펙


모델: M4A1 M4A3E8
중량: 30400kg 37100kg
승무원: 5명 5명
엔진:

Continental R-975-C1 / 9실린더 / 400마력

Ford GAA-III / 8실린더 / 500마력

속도: 42km/h 41.8km/h
항속 거리: 도로: 193km 도로: 249km
연료 용량: 662 liters 636 liters
전장: 5.89m 7.54m
전폭: 2.62m 2.97m
전고: 2.74m 2.67m
무장:

75mm M3 L/40 전차포 & 2 x MG
(2 x 7.62mm M1919A4 - 차체)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76.2mm M1A2 L/52 전차포 & 2 x MG
(2 x 7.62mm M1919A4 - 차체)
& 1 x HMG
(1 x 12.7mm M2 - 대공)

탄약: 75mm - 97발
7.62mm - 4750발
12.7mm - 300발
76.2mm - 71발
7.62mm - 6250발
12.7mm - 600발
장갑:

포탑 전면: 76.2
차체 상부 전면: 50.8
차체 하부 전면: 76.2
포탑 측면: 50.8
차체 상부 측면: 38.1
차체 하부 측면: 38.1
포탑 배후면: 50.8
차체 배후면: 38.1
포탑 윗면/바닥면: 25.4 
차체 윗면/바닥면: 12.7/25.4
포방패 : 76.2

포탑 전면: 88.9
차체 전면: 50.8-108
포탑 측면: 63.5
차체 상부 측면: 38.1
차체 하부 측면: 38.1
포탑 배후면: 63.5
차체 배후면: 38.1
포탑 윗면/바닥면: 25.4 
차체 윗면/바닥면: 19/25.4
포방패 : 108

75mm M3 L/40 전차포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 M72 Shot 88mm 73mm 59mm 47mm 38mm
APC M62 Projectile 71mm 64mm 57mm 51mm 45mm
 
 
AP M72 Shot (AP) - Armor Piercing
APC M62 Projectile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76.2mm M1A2 L/52 전차포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 M72 Shot 101mm 93mm 84mm 76mm 69mm
HVAP M93 Shot 192mm 165mm 137mm 113mm 94mm
 
 
APC M62 Projectile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HVAP M93 Shot ( Armor Piercing Composite Rigid )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s-medium/m4a1.asp
http://www.wwiivehicles.com/usa/tanks-medium/m4a3.as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짤방 출처 : 카페 내 게시글/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http://blog.naver.com/doraneiuos?Redirect=Log&logNo=80072086987(대략 도라 공님 블로그-ㅅ-)


 
 
P.S : 전차리뷰하면서 셔먼처럼 질질싸며 고생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ㅜㅡ... 원래는 너무 힘들어서 3편까지 만들려고 했지만, 로커스트, 채피, 퍼싱... 뒤의 녀석들을 생각하면 안될것 같아 오늘 끝마쳤답니다. 그런 의미로, 더 많은 덧글을 주시오!!!(질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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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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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0 22:55 신고

    ;;;네이버에서 긁은 것도 아닌데..180 문제가....오늘은 못하고... 차후에 해결하겠,,,,(질질질...)

  2. 2009.12.21 05:09 신고

    앙대! 파이어 플라이가 언급되지 않았다니!!! 고자라니!!!(...)

    • 지옥고양이 수정/삭제> 댓글주소
      2009.12.21 09:56 신고

      파이어플라이는...영국 전차 쪽에서 우려먹어야 하니
      까요...!(까먹었다는 것은 안자랑)

  3. 2009.12.29 18:57 신고

    소련전차병들은 T-34보다 m4셔먼에 타기를 더 좋아한거같다고 하더군요(넓어서)

  4. 2010.01.11 18:01 신고

    참... 셔먼은... 장난감... 무선 RC 조종 비비탄 탱크 ㅋㅋㅋ

  5. 2011.02.15 14:45 신고

    방어력향상때문에 무한궤도를 덕지덕지붙이고 시맨트를바르고 모래주머니를 쌓고 살기위한 전차병들의 피눈물나는 노력

  6. 2011.02.15 14:54 신고

    사진이 엑박뜸... 지식인에서 하라는짓 다했음

  7. 2011.06.10 01:08 신고

    그런데 진흙탕에서 못빠져나온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 장거리 주행에서 문제가 많았다니, 부품 수급, 정비 부족으로 인한 문제였을 것 같은데요? 단순히 떼삼사보다 셔먼이 주행능력이 좋지 않았다거나 서스펜션 문제였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을 것 같고, 거기다 미제라면 떼삼사에 비해 호화수준의 구성일텐데 불곰들이 마다할 입장이 아닐테구요.

  8. 2012.12.03 23:25 신고

    댓글 달라는 사진 퍼갑니다.

  9. 2013.07.15 16:02 신고

    http://panzerkatz.egloos.com/309357
    http://panzerkatz.egloos.com/327222

    미군의 셔먼이라고 독일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셔먼전차의 숙련병들은 자신들의 전차에 한계가 있다는걸 알고는 백린탄을 사용해 전차를 버리도록 유도했죠.

  10. 2014.11.06 08:03 신고

    역시 사진들이 안보여요 ㅠㅠ 글 잘봐습니다!!

  11. 2014.11.06 08:03 신고

    역시 사진들이 안보여요 ㅠㅠ 글 잘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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