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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중량: 2.5톤
전체길이:
17 m
생산댓수: 약 5대
운용인원: 300명(운반), 8명(조작)
최대사거리: 약 30 ~ 40미터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개발과 구상이 끝났지만 정작 실전에서의 대량사용은 한참 지연이 된 화염방사기는 처음 참호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을때 병사들에게 공포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실제 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능을 떠나 불을 뿜는 병사라는 이미지는 화염방사기가 확실히 적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심리적인 장점과는 다르게 이 물건은 대량으로 쓰여도 좋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화염방사기가 같은 시기 처음 대량으로 쓰여 군 개인화기 개발사에 큰 영향을 미친 기관총과 다르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에는 화기의 한계점이 큰 몫을 차지하였습니다. 보병이 휴대할 수 있게 만든 화염방사기는 발사시간이 굉장히 짧거나 아니면 사거리가 짧은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고 해서 발사 지속시간과 사거리를 늘린 물건을 만들자니 보병 여러명이 이를 운송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고 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1차대전 당시 등장한 리벤스 대형 화염방사기는 이러한 보병용 화염방사기의 성능상 한계를 해결하고자 등장하였습니다.


영국군 공병 출신 장병인 윌리엄 하워드 리벤스(William Howard Rivens)는 1차대전 당시 뛰어난 아이디어 제공으로 인해 화학전과 화염방사기 개발에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만든 리벤스 대형 화염 방사기는 사거리나 성능을 희생시켜 보병용 화염방사기를 만들 바에는 차라리 대형 화염방사기를 만들어 제대로 된 성능을 구현하도록 하자는 발상을 통해 개발되었고, 실제로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개인단위로 운반이 불가능하게 커진지라 300명의 병사들이 전선으로 분해된 화염방사기 부품을 나르고 8명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이를 조립 및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시제품 4대가 1916년 처음 솜 전투 당시 참호간의 처음으로 시연을 보일 예정이였지만 독일군의 포격으로 인해 4대중 2대가 부서져 버린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4대중 온전히 남아있던 2대는 공세시작 직후 사용이 되었고,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배치된 지역은 영국군이 적은 사상자만으로 최전선 돌파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운반하기 힘든 만큼 제 몫을 해냈다는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요.


솜 전투 이후 1917년 벨기에 딕스마이데(Diksmuide)시 근처 공세 당시에도 쓰인 기록이 존재하는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그 성능이 입증되기는 했지만 참호전에서 쓰려면 무인지대(No Man's Land, 적군과 아군 참호간의 평지를 지칭하는 단어) 아래로 화염 방사기를 묻을 수 있는 터널을 파야한다는 번거로움과 더불어 실제 성능이 대량생산을 해야할 수준으로 보이지 않다는 평가에 의해 솜 전투와 딕스마이데시 공세 이후 생산 및 사용이 중단되었습니다(이후 버려진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2010년 5월 영국에서는 부품을 모은 몇몇 전문가에 의해 실제 성능이 구현된 모델이 재등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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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 74 mm
전체무게: 8.0 kg
전체길이: 1.5 m
운용인원: 2명
개발년도: 1944년
생산숫자: 약 3,500정


[개발동기]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인 일본은 미국이 가진 막강한 전차들을 쉽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물량이 있다면 포병사격이나 전투기의 도움을 받아 전차와 교전을 할 수 있었지만 막상 보병단위 전투에서 전차가 등장했을 경우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자살돌격을 감행해야 할 만큼 일본군의 대전차화기의 수요는 절박할 정도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다급하게 대전차 화기를 만들기 위해 참고한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군이 쓰던 바주카 대전차 로켓 발사기였습니다.

[개발과정]

M1/M9 바주카를 기반으로 개발을 시작된 일본의 대전차 로켓 발사기는 바주카를 그대로 카피해서 생산하기 보다는 일본의 기술력 및 생산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게 변형이 되었습니다. 일단 대전차용 탄두가 안정적인 비행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장착하는 안정핀에 대한 설계를 미군의 바주카는 로켓 탄두에 직접 장착한것과 다르게 순간적으로 구경이 작아지면 이로 인하여 전진하고 있는 탄두가 회전을 시작하는 벤투리 법칙을 이용한 원형관을 제작하여 안정핀 없이도 로켓이 회전을 할 수 있게 만든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방식을 사용함으로서 4식 발사기나 탄두의 생산단가를 절약한것을 볼 수 있지요.

두번째 변형으로는 격발기구의 변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주카의 경우 초기형 버전에서는 배터리를, 그리고 실제 채용버전에서는 전자석을 이용한 격발기구를 사용한것과 다르게 4식은 기존의 일본군 편제에 있었던 81 mm나 91 mm 박격포 탄에서 사용되던 뇌관과 이 격발을 위한 공이치기식 격발기구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조의 경우 바주카에서 사용되던 전자석 격발기구와 내구성이나 구조적으로 큰 장점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일본군이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려고 한 발상은 주목할만 합니다.

물론 이러한 특징을 제외하면 4식은 바주카에서 사용된 몇가지 특징을 그대로 답습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3.5인치 발사기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였던 2단 분리식 발사기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여 휴대시 분해해서 가지고 다닐 수 있게 설계를 하였고, 발사용 튜브에 트리거 그룹을 같이 부착시켜서 운용시킨것을 대표적인 두 발사기의 공통점이라 볼 수 있지요.

P.S) 4식 대전차 로켓 발사기의 경우 일반적인 대전차 화기들과 다르게 99식 경기관총에서 쓰이던 양각대와 비슷한것을 사용하였고, 발사시 사수와 부사수의 경우 발사기가 향하는 방향에서 포복자세로 45도 각도로 몸을 틀고 사격하도록 권장한 것을 보았을때 발사시 로켓에서 나온 연기로 인해 사수에 대한 노출이 컸거나 로켓이 추진함으로서 생기는 화염이 생각보다 심각했을 수 있다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실전운용]

4식 대전차 발사기는 1944년도에 개발이 완료된 이후 종전까지 3,500정 씩이나 만들어졌기 때문에 미군 전차에 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습니다만, 해당 화기의 실전운용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1945년 초반부터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 패배한 일본군 진영이 유사시 본토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해외에 주둔중인 일본군에게 지급하는것을 거부했기 떄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에 따라 해당 화기들의 생산 및 사용은 잠정 중단되었고, 미군의 주둔시기에 전량이 폐기처리된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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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7.92 x 107 mm DS
전체무게: 10.0 kg
전체길이: 1,760 mm
총열길이: 1,200 mm
장탄수: 4발 



세계 1차대전은 그 이전에 일어났던 전쟁들 중에서 가장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으로 기록되는 녀석입니다. 물론 세계 2차대전과 이후 일어난 여러 전쟁이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것은 사실이였고, 이 당시 개발된 무기들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것으로 보아 이쪽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 당시 등장했던 신무기들의 경우 세계 2차대전과 다르게 그 신무기들의 모토를 제공함으로서 이후 같은 종류의 무기들이 나올때 엄청난 기술발전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세계 1차대전은 단지 최초의 세계대전으로서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현대전의 기반을 닦아놨다는 점에서도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에 개발된 무기들의 경우 대체 그 이전에 쓰이던 무기들과 다르게 꽤 높은 성능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인 물건은 전차라고 할 수 있지요. 전차의 경우 세계 1차대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졌던 전투 방식인 참호전에서 참호간의 공간을 통과하고 적 진지를 파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록 이 당시 전차의 경우 오늘날의 전차와 비교하면 방어력이나 화력 및 기동성에서 크게 뒤떨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수많은 병사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참호간의 거리를 통과해 적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 나온 전투목적의 무기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데뷔를 거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차의 등장은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전쟁들에서 전차가 주력으로 쓰이기 시작하며 엄청난 수의 전차와 높은 기술력, 그리고 다양한 전술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이끌어 냈는데, 이러한 전차의 등장으로서 보병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에 맞써서 싸워야 하는 문제에 부딛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경우 제블린같은 보병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나 전투기나 무장 헬리콥터같은 중장비들의 영향으로 전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는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이 당시에는 무반동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전투기같은 대형장비의 숫자도 그리 많진 않았기 때문에 대전차 화기를 쓰거나 만드는데 있어서 오늘날 만큼 꽤 많은 옵션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대전차 소총이라는 신 장르의 화기입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대전차 로켓같은것에 대한 개발이 부족했고, 보병한테 쥐어줄 수 있는 무기가 한정되어 있었던 만큼, 원래 쓰던 보병용 소총을 크게 만들고 탄약도 굵고 장갑을 관통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이를 이용하여 그 당시 그리 높은 방어력을 가지지 않았던 전차들(가뜩이나 기동성 낮은데 중장갑으로 무장하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 1차대전 당시의 전차들이라고 하는 물건은 오늘날 장갑차들보다 얇은 수준의 장갑을 보유)을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로 평가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대전차 소총은 세계 1차대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버전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지요.


폴란드에서 개발한 Wz.35라는 이름의 대전차 소총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35년 8월 즈음에 폴란드군의 요청으로 개발이 시작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개발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1939년 8월 즈음에나 전군 배치가 완료된 녀석이였기 때문에 대전차 소총으로서 실질적인 성능을 기대하긴 어려웠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문제와 다르게 실전에서 쓰였을때 Wz.35은 생각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다고 하는데, Wz.35가 대전차 소총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탄약과 화기의 구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Wz.35에서 쓰인 7.92 x 107 mm DS라는 탄약의 경우 1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대전차 소총들에서 쓰인 탄약들과 다르게 상당히 소구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관통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나온 대구경 소총탄들의 경우 실질적으로 탄속을 높이기 위해 탄약의 장약량을 늘림으로서 사수가 총을 발사하는데 많은 부담을 주었고 반동이 높아 정확도가 떨어진다는것에서 착안하여 DS의 경우 소구경을 사용하면서 장약량이 높아도 반동이 상당히 적도록 설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둘어 탄두의 구조의 경우 관통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텅스텐같은 재질이 아닌 것을 사용하여 관통을 우선시로 하는것이 아니라 전차나 장갑차의 승무원에게 파편을 뿌려 차량의 무력화에 집중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두번째로 Wz.35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총의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1차대전 당시 마우저사의 T-Gewehr가 사수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 단점을 많이 만들었던것과 다르게 총열 끝에 머즐 브레이크를 설치해 반동을 줄임과 동시에 4발 탈부착식 탄창을 사용하여 재장전 속도를 줄였고, 마지막으로 마우저사의 볼트액션 소총과 자국내 볼트액션 소총의 구조를 결합해 최대한 내구도를 향상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 덕분에 Wz.35의 경우 일반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다른 대전차 소총들과 다르게 1939년 폴란드 침공당시 독일군이 가지고 있던 대다수의 전차나 장갑차를 약 100미터나 300미터 내에서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는 특징을 가지게 됨으로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약 6천정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폴란드가 독일에 무력으로 합병됨에 따라 전량이 폴란드군에서 전량이 회수되었고,  이후 독일군에서 평가했을때 성능이 괜찮다 판단하여 PzB 35(P)이라는 제식명을 붙여서 종전까지 계속 사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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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4 05:59 신고

    관통력(? 맞는단언지... 알려주세요 ㅜ)은 어느정도인가요?
    콘크리트 200mm는 껌이겠죠?

    • 2011.04.04 06:00 신고

      앜ㅋ 말을 잘못했어요ㅜㅜ
      20mm는 껌이겠죠?

    • 2011.04.12 01:35 신고

      300미터에서 30도 각도로 쐈을때 15 mm정도의 장갑, 100미터에서는 약 33 mm정도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장갑차/전차 관통력이 이정도니 콘크리트라면 뭐 답이 나오겠죠

  2. 2011.04.04 23:04 신고

    NTW보다는 좀 짧은 소구경 대전차소총이군요 물론 NTW는 대전차소총이 아니긴 하지만...
    근데 DS는 무슨 약자죠?

  3. 2011.04.08 22:47 신고

    약 6000정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니... 저렇게나 좋은 총이었다면 더 뽑아냈어도 되는데...

    • 2011.04.12 01:39 신고

      독일이 미처 그거까진 생각을 못했나 봅니다....가 아니라
      독일이 이거보고 감명받아서 Panzerbüchse 39을 빨리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영향이 컸다는 증거겠지요

  4. 2011.04.17 22:02 신고

    사진에 나온 총기 상태가 굉장히 뛰어나군요. 복각으로 새로 만든 것일까요.

  5.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4.28 19:09 신고

    허허 ... 근데 .. 왠지 기동성최악+무게+길이허허... 너무...무섭네요 그냥 소련제를쓰고말겟어여 ,,, 아니면뭔 머스캣도아니고..

  6. 2011.08.27 15:00 신고

    이 무기 중국군이 쓰기도 하였나요? 게임에서 이 총을 본거 같아서요

    • 2011.08.29 08:22 신고

      폴란드와 독일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니 중국은 포함되지 않을걸로 보입니다
      아마 비슷한 놈이 여럿 있으니 이쪽을 찾아보시길

  7. 2011.10.10 22:33 신고

    PTRD를 대항하기 위해 나왔다면 매우 약한것이로군요..;T-34전차 장갑은 뚫려나..?

  8.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2.03 17:45 신고

    근데 ,.. 총열이 길으면 연사력이 떨어지나요?? 대신에 ... 총열이긴것은 뭔가요 ??

    • 2011.12.11 12:42 신고

      연사력과는 상관없는 총인걸 생각한다면 총열이 긴건 그쪽과는 상관이 없다는걸 알 수 있겠죠
      총열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신다면 과연 대전차 소총에서 총열이 왜 ㄱㅣㄴ지 알 수 잇겠죠



사용탄약: 13.2 x 92 mm TuF
전체무게: 18.5 kg
전체길이: 1,691 mm
총열길이: 984 mm
장탄수: 1발



세계 1차대전은 그 이전에 일어났던 전쟁들 중에서 가장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으로 기록되는 녀석입니다. 물론 세계 2차대전과 이후 일어난 여러 전쟁이 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것은 사실이였고, 이 당시 개발된 무기들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것으로 보아 이쪽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 당시 등장했던 신무기들의 경우 세계 2차대전과 다르게 그 신무기들의 모토를 제공함으로서 이후 같은 종류의 무기들이 나올때 엄청난 기술발전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세계 1차대전은 단지 최초의 세계대전으로서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현대전의 기반을 닦아놨다는 점에서도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에 개발된 무기들의 경우 대체 그 이전에 쓰이던 무기들과 다르게 꽤 높은 성능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인 물건은 전차라고 할 수 있지요. 전차의 경우 세계 1차대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졌던 전투 방식인 참호전에서 참호간의 공간을 통과하고 적 진지를 파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록 이 당시 전차의 경우 오늘날의 전차와 비교하면 방어력이나 화력 및 기동성에서 크게 뒤떨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수많은 병사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참호간의 거리를 통과해 적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 나온 전투목적의 무기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데뷔를 거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차의 등장은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전쟁들에서 전차가 주력으로 쓰이기 시작하며 엄청난 수의 전차와 높은 기술력, 그리고 다양한 전술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이끌어 냈는데, 이러한 전차의 등장으로서 보병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에 맞써서 싸워야 하는 문제에 부딛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경우 제블린같은 보병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나 전투기나 무장 헬리콥터같은 중장비들의 영향으로 전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는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이 당시에는 무반동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전투기같은 대형장비의 숫자도 그리 많진 않았기 때문에 대전차 화기를 쓰거나 만드는데 있어서 오늘날 만큼 꽤 많은 옵션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대전차 소총이라는 신 장르의 화기입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대전차 로켓같은것에 대한 개발이 부족했고, 보병한테 쥐어줄 수 있는 무기가 한정되어 있었던 만큼, 원래 쓰던 보병용 소총을 크게 만들고 탄약도 굵고 장갑을 관통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이를 이용하여 그 당시 그리 높은 방어력을 가지지 않았던 전차들(가뜩이나 기동성 낮은데 중장갑으로 무장하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 1차대전 당시의 전차들이라고 하는 물건은 오늘날 장갑차들보다 얇은 수준의 장갑을 보유)을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로 평가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대전차 소총은 세계 1차대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버전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지요.


마우저사에서 개발한 T-Gewehr는 이러한 대전차 소총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녀석으로서, 세계 최초로 대전차 소총이라는 장르를 실현시킨 녀석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녀석의 경우 독일군이 마크 1같은 연합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개발을 요청해서 나온 녀석으로서, 기본적인 작동방식은 마우저사에서 개발했던 Gewehr 98과 별반 다를바가 없고, 단지 탄의 구경 및 장약량을 늘리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 총의 스케일을 크게 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소총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전차를 근거리에서 관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실제로 T-Gwehr의 경우 전차에 대한 실험을 한 결과 100미터에서는 약 20 mm, 300미터에서는 약 15 mm정도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T-Gewehr는 독일군에 의해 총 15,800정이 생산되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가장 널리 쓰인 대전차 소총으로 평가되었고, 이 실적은 최초의 대전차 소총치고는 꽤 성공적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 일선에서 나왔던 평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요. 1918 탱크 게베어의 경우 근거리에서 장갑판을 어느정도 관통시킬 수 있는 장점은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관통한 탄두가 안에 있는 승무원들을 효과적으로 사살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장갑 관통만 생각하고 만든 녀석이라는 단점이 있었고, 사거리가 어느정도 떨어지면 심각하게 관통력이 떨어지고 장갑의 경사도가 변해도 관통력이 심각하게 변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대전차 소총으로서 요구했던 능력보다는 약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T-Gewehr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것은 이러한 관통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사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이였습니다. 아무래도 대전차 소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그냥 무식하게 크게 만든 녀석이였던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녀석은 반동이 너무 센 나머지 사수에 대해서 꽤나 큰 부담을 주었으며(양각대와 권총 손잡이가 있었지만, 이 이외에는 충격/반동을 흡수할 수 있는 제어 시스템이 전혀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무게또한 18 kg 수준으로서 일반적인 소총이나 이후 나온 대전차 화기들과 비슷하거나 몇몇 경우에는 오히려 더 무겁고 휴대하기 불편할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전차 소총으로서는 최소한의 성능만 가지고 있지만 그 이외에서는 그리 널리 쓰일만큼 매력적인 녀석은 아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용자에 대한 불편과 더불어 전쟁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전차의 방어력으로 인하여 더이상 효과를 볼 수 없게 된 T-Gewehr의 경우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고, 세계 2차대전 당시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을 정도로 최초로 쓰인 대전차 소총으로서는 너무나도 짧은 실전 사용기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전차 소총이 이후 대전차 로켓 발사기가 등장할때까지 최전선에서 큰 활약을 했고, 오늘날에는 그러한 녀석들이 대물 저격총으로서 쓰이고 있는것을 감안한다면 이 녀석은 성능이 나빴어도 꽤 중요한 화기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지요.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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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8 00:27 신고

    제원은 18.5 kg인데 내용은 13kg네요...;;

  2. 2010.10.08 02:11 신고

    12.7X99mm 같은 녀석들과 비교했을때 저 13.2X92mm탄의 관통력은 어느정도인가요?

  3. 2010.10.13 17:00 신고

    음 얘길 들어보면 1차대전때도 기술력의 한계와 전차의 발전으로 큰 성과를 얻기 어려웠다는 얘기인데 그럼 2차대전때 쓰였던 대전차소총같은것은 뭘로 만들어졌길래 그당시 전차를 격파할수있었나요.

    • 2010.10.14 11:28 신고

      2차대전 당시 나온 대전차 소총(예를들어 PTRD-41/PTRS-41)같은 녀석들도 비슷한 아이디어로 나왔어도 성능 자체는 M1918과 다를건 없었습니다. 다만 이 녀석들의 경우 전면 장갑이 아니라 측면이나 후방장갑을 노리도록 설계되어 사용되었으니 상대적으로 마우저 T-Gewehr보다는 많은데서 쓰였지요(저격용으로도 쓰이고 말입니다)

  4. 2011.01.11 12:17 신고

    장탄수 1발의 압박

  5. 2011.02.19 17:02 신고

    대표적인 녀석으로 몇가지 좀만더 알려주세요ㅜㅜ

  6.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4.28 19:13 신고

    wz보다좋네 ..뭐 너무길지도않고 고전적인멋도잇기때문에 근데 한발이라는게 안습 =ㅅ=



전체무게: 3.6 kg
전체길이: 600 mm
발사시간: 0.5초
유효사거리: 27 m



화염방사기라는 물건은 세계 2차대전과 베트남전을 지나면서 더이상 사용되지 않게 된 구식화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실제로 베트남전 이후에 보병이 화염방사기를 군용으로 사용하는것이 자주 목격되지 않는것을 보면 이 말이 맞는것 같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네이팜같은 물건이 등장하기 전에는 화염방사기는 보병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화염방사기의 경우 헤아릴 수 없는 문제점들이 많았고 이에 따른 애로사항도 많았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을 겪으면서 배운 참호전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던 추축군이나 연합군에게는 참호를 소탕하기 위해 매번 탱크나 지원사격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토치카나 벙커를 청소할 수 있는 화염방사기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화염방사기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도 굉장히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화기인데, 사용하기 까다로움과 동시에 만들기도 까다로운 물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화기들은 개인단위로 지급되는 물건이 아니라 일종의 지원화기로 굉장히 소수만 지급되는 것이 기본적인 배급 방식이였고, 이는 화염방사기를 보유하지 않은 분대가 참호나 토치카를 청소하는데 큰 제약을 주게 되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등장한 아이디어가 바로 "휴대용 화염방사기"라는 물건이였습니다 

휴대용 화염방사기라는 물건은 몇가지 특징과 요구조건이 있는데, 휴대성을 중시하기 위하여 크기가 일반적인 화염방사기보다 작아야 하고(일반적인 화염방사기는 발사기와 탱크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무게가 상당하고 조작법도 불편하면서 부피도 꽤 큽니다), 작동방식이 단순하여 초보자도 쓰기 쉬워야 하며, 마지막으로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오늘 리뷰하는 Eintossflammenwerfer 46은 이런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나온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Einstossflammenwerfer 46가 등장한 배경은 휴대용으로 쓰기 편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만, 종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자재부족에 대한 이유도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이 개발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44년 말에 독일은 여러 전선에서 열세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재에 대한 부족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기존의 "손이 많이가고 가격이 비싼 화염방사기" 대신에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이 녀석이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이 휴대용 화염방사기는 의외로 평가가 좋았다고 할 수 있는데, 비록 1/2초만 발사가 가능한 일회용 화염방사기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으로도 화염방사기로서의 충분한 성능은 발휘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 녀석은 대량생산이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꽤 여러 독일군 분야에서 쓰이는 성과를 보이게 되었지요(원래는 국민돌격대에서 쓰이려는 목적이였습니다만, 간편하고 쓰기 쉬운 화염방사기가 필요한 팔쉬름예거같은 곳에서도 쓰이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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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09 05:08 신고

    미군제식 에프킬라인가?!

  2. 2010.01.09 21:57 신고

    엄청 못생겼네

  3. 2010.01.10 07:58 신고

    2분의 1초라 하면.. 0.5초>>> 머임.. 멀잡으라는 거지??
    바퀴잡것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2010.01.12 13:11 신고

    웨어울프님이 올린 글 보니, 대략 6초라던데... 아무리 1회용이라도 0.5초는 살짝 심한거 아닌가요?

    • 2010.01.12 13:37 신고

      웨어군이 어디서 글을 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찾아본 몇몇 사이트(위키포함)에서는 1/2초내지 1초만 발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는 사실상 맞다고 할 수 있는게, 저 녀석은 3.6 kg라는 무게 때문에 많은 양의 가솔린 및 점화제를 탑재할 수 없으며, 일회용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없음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등에 매고 쏘는 화염방사기"가 6~8초만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면 저녀석이 6초 이상의 발사를 하는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지옥고양이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0.01.14 09:19 신고

      아항. 화염방사기에 대한 지식이 없는지라, 용량에 대해 큰 착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해결되네요 =ㄴ=

  5. 2010.11.21 12:19 신고

    근데 발사시간이란 개념이 뭔지요?

  6. 2013.09.11 11:35 신고

    1회용 화염 방사기는 ATV를 타고 다닐때 쓰이는 무기니까 비디오게임 한판 깨고 싶은것 같애요^^



사용탄약: 20 mm 로켓탄약
전체무게: 6.5 kg
전체길이: 1,500 mm
장탄수: 9발



세계 1차대전 이후 급격이 발전하기 시작한 항공 관련 기술은 세계 2차대전에 와서는 전투기의 기술로 변경되어 큰 활약을 하게 되었는데, 단지 지상뿐만 아니라 공중에서 지상을 공격하는것은 상상 이상으로 큰 전과를 올리기에 충분한 기술이라 인정받았고, 이는 세계 2차대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전투기 개발사업에 큰 노력을 하는 이유로 자리잡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와 더불어 전투기를 제압하려는 시도도 같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세계 2차대전 당시 전투기를 상대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다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사실상 아주 고전적인 방식이거나 이전의 사용되던 화기를 재활용 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표적으로 2차대전 당시 쓰인 대공용 화기로는 중기관총의 마운트를 개조하거나 여러정 묶어서 쓰는 방식이나 대전차포를 이용하여 전투기를 상대하는 대공포 시스템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지요.


실질적으로 세계 2차대전 당시 항공기들은 대부분 프로펠러 전투기가 대부분이였고, 제트기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굉장히 소수인데다가 시험적으로 운용되는것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에 중기관총이나 대공포로 전투기를 상대하는것이 불가능한것은 아니였습니다만, 이 두 시스템 모두 단점이라는게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지요. 대체적으로 중기관총 마운트는 이동하기는 쉽지만 실질적인 전과는 높진 않았고, 대전차포를 이용한 대공포 시스템은 높은 성능(물론 무조건 쏜다고 맞추게 되는 정도의 정확성은 아닙니다만, 그 당시에는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였지요)은 보유하였지만 무게가 상당하여 이동시키기가 어렵고 목표물로 띄기에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대략 이런 이유로 등장한 것이 바로 MANPADS(Man Portable Air Defense Systems, 휴대용 대공방어 시스템)라고 할 수 있는데, MANPADS는 2차대전 당시에 전투기를 잡기위해 중기관총이나 대공포를 따로 운용해야 하는것과 다르게 보병이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발사기를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전투기를 상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현시켜 주게 되었지요. MANPADS의 경우 물론 휴대용으로 개발된 녀석이다 보니 어느정도 제약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만, 적어도 보병화기로 전투기를 제압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이후 대공 미사일과 전투기 사업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지요.


기본적으로 MANPADS하면 세계 2차대전 이후 냉전이 본격화 되면서 개발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지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세계 2차대전 끝자락부터 개발되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위에 나오는 Fliegerfaust(혹은 Luftfaust이라고 부릅니다만, 어느쪽으로 부르나 상관은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은 세계 2차대전 도중에 유일하게 실전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개발된(이후 소련에서 시험삼아 만들긴 했습니다만, 적외선 유도방식이 본격적으로 등장함에 따라 쓰이지는 않았지요) 무유도 대공 미사일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지요.

Fliegerfaust의 특징이라면 무유도 로켓을 발사하는 발사기라고 할 수 있는데, 2차대전 당시에는 사실상 유도라는 기술을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으로 이식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 녀석은 그 당시 기술로 나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무유도 로켓방식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냉전당시 등장한 MANPADS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실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일단 최초의 MANPADS라는 면에서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Fliegerfaust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하면 사거리라고 들 수 있는데, 비록 그 당시 기술 부족으로 인하여 무유도 로켓을 사용했다고 합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유효사거리가 500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정확도와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따라 9발을 연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지요. 이와 동시에 세계 2차대전이 끝나가는 즈음에 개발되어서 생산량도 적었으며(약 1만정의 발사기와 4백만정의 로켓이 생산 및 배치될 예정이였습니다만, 실제로는 80기 미만으로만 실전사용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지요), 그에따라 최초의 MANPADS임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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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07 12:43 신고

    20mm라고는 하지만 반동이 꽤나 있을듯
    유도라면 헬기정도는 충분하겠네요

  2. 2010.01.08 11:12 신고

    왠지 미니건처럼 돌아갈꺼같군요 (.........)

  3. 2010.01.09 10:05 신고

    난사하면 비행기 하나는 겨우 잡겟군



구경: 50 mm
전체무게: 2.6 kg(Type 10) / 4.7 kg(Type 89)
전체길이: 525 mm(Type 10) / 610 mm(Type 89)
총열길이: 240 mm(Type 10) / 254 mm(Type 89)
장탄수: 1발



이미 여러 리뷰에서 언급이 되었지만, 인간이 던지는 수류탄의 한계, 즉 다시 말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수류탄 같은 물건을 던질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존재하지 때문에 성능이 뛰어난 수류탄일지라도 사거리는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시도가 있었고, 그러한 시도들에 의하여 생긴 변종 수류탄이 바로 유탄이나 총류탄이라는 물건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등장한것은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기본적인 특징이나 작동방식, 베이스같은것은 맨 처음 당시 나왔던 총류탄이나 유탄의 특징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는것을 볼 수 있지요.

일반적으로 세계 2차대전의 경우를 본다면 총류탄이 가장 많이 쓰인 전쟁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각국에서 이미 수류탄은 개발된 상태에서 여러차례의 전투 및 테스트를 겪음과 동시에 군부에서는 수류탄을 멀리보낼 수 있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구지 새로운 화기를 만들지 않고 기존의 소총을 활용해서 발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이러한 결과물로 총류탄이 나오게 됨에따라 여러 각국에서는 각자 자기 입맞에 맞는 총류탄을 개발 및 실전 채용함으로서 2차대전은 총류탄이 전성시대를 맞았던 시기중 하나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사실 오늘날 많은 면에서 2차대전 화기들은 나쁜 평가를 받는 나라중 하나인데, 화기 자체의 성능은 별로 일지는 몰라도 일본도 다른 강대국들이나 2차대전 참전국들처럼 새로운 방식의 화기 및 기존의 화기의 성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화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일본의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화기들은 사실 2차대전 당시 꽤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연합군 및 전후 이후 2차대전 화기 컬렉터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녀석은 바로 "박격포"라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격포 자체는 그리 신기한 물건이 아닙니다. 2차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박격포에 관한 연구(사실 박격포의 근본적인 기능은 현재로부터 수백년 전입니다만, 오늘날 사용되는 박격포의 모양 및 비슷한 스펙을 가진 녀석들은 1차대전이 되서야 등장하기 시작했지요)가 진행되었고,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거의 대부분의 참전국들이 각자 개발한 박격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국의 박격포를 보고 신기해 할 필요나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만, 일본군이 사용했던 박격포는 그동안 개발되었던 박격포들과 다르게 굉장히 특이한 모습 및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기게 되었지요.


일본군이 세계 2차대전 동안 사용했던 박격포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유명했던 녀석을 들라면 오늘 리뷰를 하고있는 Type 10(10식)과 Type 89(89식)을 들 수 있는데, 사실 이 녀석들은 구경으로 보나 사용 탄환으로 보나 박격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설프고, 실제로 일본군에서는 유탄 발사기(당시에는 Grenade Launcher가 아니라 Grenade Discharger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뭐 두개다 같은 말이긴 합니다)라는 범주로 사용했지요. 이 녀석들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사용된 박격포(혹은 유탄 발사기)중에서는 가장 실험적이고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용탄환이 수류탄이라는 것이였습니다(참고로 이 녀석들의 경우 10식 및 89식용 전용 탄두가 개발되기는 했습니다만, 이후 개발된 다용도 수류탄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2차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박격포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한가지만 들라면 "박격포용 탄두"가 따로 존재했다는 것인데, 이 10식과 89식의 경우 일본에서 개발한 수류탄(10식의 경우 플레어나 연막탄같은 녀석을 사용하도록 전문적으로 개발되었고, 후기형인 89식은 수류탄만 사용하도록 개발되었습니다>>> 물론 10식에서 수류탄을 사용하는 것이나, 89식에서 연막탄을 사용하는것도 가능하기는 합니다)을 사용하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수류탄 모두를 사용할 수 있다는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류탄으로 사용이 가능하면서 동시에 유탄처럼 사용을 할 수 있는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당시 굉장히 실험적인 도전이였고, 실제로 이러한 성능은 나중에 10식 및 89식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지요.


10식이나 89식 유탄 발사기의 경우 특이하게 "Knee Mortar(무릎 박격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2차대전 당시 일본군과 교전을 하다가 이 발사기들을 노획한 미군들은 생긴것이 박격포인데, 땅에다가 안정적으로 지지를 시켜주는 지지대가 허벅지에 놓고 쏘기 좋은 모양새로 보여져서 실제로 "허벅지에 대고 쏠 수 있는 박격포" 같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허벅지 박격포가 아니라 무릎 박격포라고 부른 이유는 무릎쪽으로 놓아야 각도가 기울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은듯 싶습니다). 실제로 몇몇 미군들의 경우 노획한 10식 및 89식을 가지고 무릎에 대고 쏘려는 시도를 했던 경우가 있었는데, 이 병사들의 경우 허벅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후 미군들은 이 녀석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진 않게 되었지요.

10식 및 89식 유탄 발사기의 경우 Knee Mortar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을 보면 굉장히 유명하고 많이 쓰인 녀석으로 보일지는 모릅니다만, 실제로 이 녀석들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찾기가 힘듭니다. 물론 기본적인 제원이나 사용 탄환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얼마나 생산되었고, 실전에서 평가가 어땠는지(참신한 아이디어와 실용성은 언제나 같이 따라다니는 특징은 아니지요)는 정확하게 설명이 되어있지 않지요. 다만 노획된 수가 꽤 많고, 2차대전 당시 이 녀석으로 인한 사상자가 꽤 되었다는 것을 보았을때, 다른 2차대전 당시 일본군 화기들 처럼 그렇게 실패적이거나 저질스러운 화기는 아니였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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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7 19:25 신고

    사실 이 무기는 미군들의 허벅지를 부상시켜 전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개발 된 무기로....(농담입니다.)
    제가 알기론 이 녀석 사용 설명서를 잘못 해석 해서 허벅지에 격착(?)하여 쏘는 물건으로 착각 한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만...지지대 때문에 그런거군요 ㄱ-
    역시 미군센스란...<<

  2. 2009.08.28 11:30 신고

    저도 미군이 노획한 이 박격포를 무릎이나 허벅지에 거치하고 쏘다가 다쳤다는 얘기 많이 들어봤어요



사용탄두: Infantry Projector, AT, Mk 3/L
전체무게: 14.4 kg
전체길이: 990 mm
장탄수: 1발



세계 1차대전은 전차가 최초로 대량으로 사용된 시기로서, 보병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가던 참호전의 양상을 바꾼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차대전 당시 전차들의 경우 열약한 내구성이나 무장상태로 인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이후 많은 나라들은 각자 자국산 전차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고, 세계 2차대전은 쿠르스크 전차전같은 엄청냔 양의 전차전이 벌어지는 시기가 됩니다.

전차의 경우 세계 1차대전 당시 무장이나 방어력이 약하기 떄문에 대부분 대전차 소총에 의해서 관통이 가능했습니다만, 당장 세계 2차대전부터는 엔간한 탄에는 끄떡도 없는 방어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에따라 대구경 소총탄보다는 강하지만 보병이 사용할 수 있는 탄에 대한 개발이 시작되게 되는데, 이 당시 등장한 것은 나중에 M1 바주카나 판처슈렉(Panzerschreck)에 쓰이는 성형작약탄두라는 물건입니다.


성형작약탄두는 그 당시 나온 법칙인 먼로호과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한 획기적인 대전차 탄두였는데, 탄두의 모양을 기존의 소총탄처럼 뾰족히 만드는게 아니라 폭약 앞에 뾰족한 원뿔을 장착하면 관통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탄두였는데, 이 방식을 기초로 여러 강대국들은 대전차화기를 만들게 됩니다. 영국도 그런 나라중 하나였습니다만, 미국이나 독일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개발이 전개가 됩니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한 1939년 전후는 사실상 많은 나라들이 대전차 화기를 채용, 혹은 개발하는 시기였습니다만, 영국은 조금 특이한 녀석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No.68라는 이름의 ATG(Anti-Tank Grenade: 대전차 수류탄)이였는데 1940년경에 개발이 완료된 이 녀석은 종전 전까지 영국군 보병들이 사용한 대표적인 대전차 화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No.68의 경우 성형작약탄두를 사용한 최초의 대전차 화기로서 50 mm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P.S) No.68의 경우 소총에 따로 컵을 장착한다음 발사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지(일종의 총류탄같은 방식), 말 그대로 핀을 뽑은 다음 전차를 향해 던지거나 장갑에 부착 시키는 대전차 수류탄은 아닙니다.


뭐 No.68 자체의 경우 괜찮은 성능을 발휘하기는 했습니다만, 사거리가 짧고, 재장전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고, 그 당시 나오는 대전차화기들(대부분 무반동포의 원리를 이용하는 화기들)의 효과들이 괜찮다는 평을 받자 영국군도 새로운 대전차 화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1941년 당시 나오게 된 녀석이 PIAT(Projector, Infantry, Anti Tank) 대전차 화기입니다.

P.S) 참고로 영국군의 경우 또다른 대전차 화기로 Blacker Bombard라는 이름의 박격포를 사용하긴 했습니다만, 실적이나 생산량은 미미했습니다.


PIAT는 그 당시 나온 대전차 화기와는 약간 다른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2차대전 당시 등장한 대전차 화기들은 무반동포의 원리를 사용했던데 반해, PIAT는 무반동포가 아닌, 일종의 총류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반동포같은 방식이 그 당시 트랜드였고, 효과가 여러모로 입증된 화기였습니다만, 무반동포의 경우 뒤가 뚫려있기 때문에 후폭풍(Backblast)가 심하다는 단점, 그리고 연기로 인해서 사수가 적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는데, PIAT의 경우 무반동포가 아닌 방식을 사용해서 그럴 걱정 자체가 없었다는게 PIAT(피아트)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PIAT의 경우 대전차 화기답지 않게 큰 소음이나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여러모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녀석이기도 합니다. 일단 피아트의 경우 무반동포가 아니기 때문에 탄두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스프링을 사용했었어야 했고, 그에따라 심한 반동이 크게 문제로 지적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탄두 자체도 완전히 명중되지 않으면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고, 이러한 문제에 따라서 1950년 미국의 M20 수퍼 바주카(Super Bazooka)와 칼 구스타프 무반동포(Carl Gustav)에 의해 대체되기는 했습니다만, 2차대전 종전까지 많은 양이 생산되어서 쓰인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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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2 15:07 신고

    한 번 쏘고 다시 쏘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는 그 녀석;;

  2. 2012.03.24 16:11 신고

    퍼가요~



사용탄약:
M6A1 성형작약(M1) / M6A3/C 성형장약(M9) / M28A2 HEAT(M20)
전체길이: 1370mm(M1) / 1550mm(M9) / 1524mm(M20)
구경: 60mm(M1/M9) / 89mm(M20)
운용인원: 2명(사수+부사수)
유효사거리: 365m(M1) / 450m(M9) / 275m(M20)



대전차 화기로서는 RPG-7 못지않게 유명한(?) M1/M9/M20 바주카 로켓런처입니다(종류가 꽤 다양합니다)


이 화기는 1차대전 당시 미군이 "대전차 화기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다는것을 알고있었던 Robert Hutchings Goddard 라는 사람이 개발한 무반동포로서, 1차대전 말기인 1918년 미 메릴랜드주에서 미군에게 테스트를 받았었습니다(참고로 그당시 스프링필드에서는 .60 구경을 사용하는 대전차 라이플을 개발중이였습니다). 그당시 테스트는 성공적이였고, 미군도 이 포를 채용한다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했지만 이 테스트가 있은지 5일후에 독일이 항복을 함으로서 1차대전은 종전을 했고, 그에따라 이 포는 찬밥신세가 되고 말았었습니다. 그에따라 로버트는 1923년까지 계속 이 포를 연구해서 지속적으로 미군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냉담한 미국의 반응때문에 1923년 개발을 전면 중단을 하게됩니다.


1923년 연구가 끝난 뒤로 이 총은 그냥 묻히는 듯 했지만, Henry Mohaupt(헨리 모하웁트)가 1930년에 "성형작약 수류탄"을 개발하면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헨리는 대전차용으로 쓸 수 있는 총류탄(Rifle Grenade)을 개발하고 있었고, 실제로 M1이나 M9A1을 개발했었습니다(이 녀석들은 총이 아니라 그냥 총류탄입니다)


그리고 그때 미군 장교로 있었던 Edward G. Uhl이 "이 총류탄들은 던지기는 너무 무거우니까 로켓발사기에 장착을 하면 좋겠다"라는 제안을 했고, 그에따라 여러 연구기관(대부분 대학교)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여 마침내 1942년 "M1"이라는 이름으로 바주카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참고로 그당시 이 바주카에 들어가는 탄두는 박격포의 탄을 많이 참고했었다고 합니다)


이 로켓 발사기는 그 당시 미 사령관이였던 아이젠 하워가 "이 총이 연합군이 주축군을 이길 수 있게 해준 녀석중 하나이다"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굉장히 실용성이 높았고, 또 미군에서 정말 많이 쓰인(제식으로) 녀석이였습니다. 특히 세계 2차대전 당시 최초로 HEAT(High-Explosive Anti Tank)탄을 썼기 때문에 기존의 무반동포를 발전시켰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총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관통력"입니다. 비록 그당시 독일군의 전차였던 티거같은 중전차는 상대하기 힘들었지만, 그보다 약한 경전차나 차량, 혹은 진지, 벙커를 제거하는데 굉장히 좋은 실력을 발휘했었습니다. 그리고 무반동포이기 때문에 대전차 라이플처럼 반동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2명이서 간단하게 운용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일단 기존의 M1/M1A1에서 탄두를 발사하기 위해서 베터리를 장착해야 한다는 점(그로인해 야전에서 잘못했다간 탄두는 있는데 발사가 안되는 처참한 상황)이 있었고, 또 나무로 된 부품들은 쉽게 부서질 수 있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또 반으로 나눠서 운용하는게 아니라 튜브 전체를 들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공수부대나 기타 특수부대에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는 점도 꼽을 수 있습니다(물론 이 단점들은 후기형에서 다 개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총은 2차대전때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여 한국전쟁때 엄청난 양이 사용이 되었고, 다수가 남한군에 지원이 되었었다고 합니다. 또 소수는 베트남전에서도 쓰였고, 현재는 제식에서는 물러났다고 합니다

아래는 바리에이션을 설명한 표입니다.


  • M1/M1A1 "Bazooka": 1942년 6월 14일 L.A. Skinner에 의해서 처음 소개가 된 녀석으로, A1 버전은 M1에서 제기되었던 기계적 문제, 전기문제를 해결한 버전이라고 합니다

  • M9 "Bazooka": M1A1을 개선한 버전으로서, 1945년에 M1A1을 완전히 대체한 버전입니다.

  • M9A1 "Bazooka": M9을 개량한 버전으로, 2개의 튜브로 분리가 가능하게 설계가 되었고, 기존의 배터리사용이 아닌 "전자석"을 사용할 수 있게 개량되었다고 합니다(M9A1은 혼자서 운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 M20 "Super Bazooka": 2 차대전 이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했던 T-34전차의 관통을 위해 개발된 버전으로, 200 mm장갑을 관통할 수 있게 탄두가 89mm로 늘어났고, 사거리도 150m정도로 개량이 된 버전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주력으로 사용한 버전이라고 합니다.

  • M20B1 "Super Bazooka": M20가 너무 무거워서 경량화를 한 버전으로서, 알루미늄을 대폭 사용했고 부품들을 경량화 했다고 합니다. M20과 한국전쟁에서 활약을 한 버전입니다

  • M20A1/A1B1 "Super Bazooka": M20을 개량한 버전으로, 손질/조립이 쉽게 개량이 되었고, 1952년부터 본격 생산이 된 버전입니다. 역시 M20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서 다수가 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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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38 신고

    세계대전 당시에 바주카 잘 들고 다닌 양키's는 힘좋은 나라>>?!!!

  2. 2010.01.31 13:32 신고

    구경이 의외로 RPG-7보다 큰데...RPG-7보다 관통력은 더 좋은건가요?

    • 2010.04.11 21:45 신고

      아니요 RPG7은 대략 RHA기준 300밀리 관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RPG2라는게 존재했습니다
      RPG7은 60년대 부터 대량으로 쓰였습니다

  3.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2.15 21:50 신고

    줘도 판져슈렉 원할기분




구경: 88mm
전체무게: 9.25kg(RPzB 43) / 11kg(RPzB 54)
전체길이: 1640mm(164cm)
유효사거리: 150m
장탄수: 1발


판처슈렉 대전차 로켓발사기입니다.


이 녀석이 개발된 이유는 소련군의 최신(?)전차였던 T-34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군이 새로 개발했던 Panzer IV 전차에 위협을 느낀 소련군은 새로운 전차인 T-34을 개발해냈고, 보병들은 이 녀석때문에 골치를 앓아야 했었습니다.


비 록 그당시 독일군에게는 유탄발사기(Grenade Launcher)였던 G.z.b 39(P.z.b 39의 변형)가 있었지만, 이 녀석으로 막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개발되었던 판처파우스트도 미군이 개발했던 M1 바주카에 비하면 실용성/사거리가 떨어졌기 때문에 독일은 아프리카 전선에서 미군의 바주카를 노획해서 이 녀석을 기초로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개발당시 독일군은 M1을 거의 카피하듯이 만들기는 했지만 구경을 88mm로 늘려서 M1 바주카의 2배에 달하는 관통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이 바로 판처슈렉입니다(그당시 미군들에게 판처슈렉은 "탱크 테러"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녀석도 M1 바주카처럼 상형작약을 썼다고 합니다.


이 녀석은 비록 3년밖에 쓰이지 않았지만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화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미군이 가졌던 M1 바주카가 독일군 전차를 격파하지 못해서 고생을 했던데 반해 판처슈렉은 단 한번의 사격으로 거의 모든 연합군 전차를 무력화 시킬 수 있었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약 200mm의 장갑을 격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보병이 들고 다니는것에서 시작해서 차량(독일군의 하프트랙)에 거치한다음 지원사격용으로 쓰일 수 있는것 까지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장점이 있긴 했지만 판처슈렉도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었습니다. 일단 무게가 11kg까지 증가해서 2명이서 운용을 해야 했고, 나중에 개발된 M9A1 바주카가 2단분리가 가능했던데 비해 이 녀석은 후기형에서도 2명이서 운용을 해야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후폭풍"으로 인해서 앞에 방열판을 꼭 장착해야 했었고, 발사직후 연기로 인해서 적의 표적이 되기 쉬워서 재빠르게 이동을 해야하는 단점도 존재했다고 합니다(특히 방안에서 쐈을때는 후폭풍뿐만 아니라 독성이 강한 연기로 인해서 사수의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의 바리에이션으로는 RPzB 54와 RPzB 54/1가 있으며(기본형인 RPzB 43과의 차이는 "방열판 장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총 생산량은 약 30만정정도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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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43 신고

    이건뭐 바주카가 200mm를 뚫다니 뭐... RPG도 가끔 불발로 험비를 뚫으니
    소련군은 바주카 보고 ㅌㅌㅌ

  2. 2011.07.22 21:56 신고

    어 밑에 있는 저총 콜옵4에서 본거 ㅋㅋㅋ



탄두구경: 149 mm(P-30)
전체무게: 5.1 kg(P-30)
전체길이: 약 104.5cm(P-30)
유효사거리: 약 30m(P-30) / 약 60m(P-60) / 약 100m(P-100)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주요 대전차 화기였던 판처파우스트입니다


예 전에 리뷰했던 대전차 화기들처럼 이 화기도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서 개발된 무반동포입니다. 1차대전때 처음 개발되었던 대전차 라이플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장갑이 두꺼워짐에 따라서 거의 무용지물이 되버렸고, 그에따라 그당시 신기술로 나오게 되었던 "상형작약"을 이용한 대전차 화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화기는 독일소재 회사였던 HASAG에서 개발을 1942년부터 시작했는데, 최종적으로 나온 프로토타입이 바로 이 판처파우스트의 기초가 된 파우스트파트로네(Faustpatrone)였습니다(그당시 이 녀석의 제원은 전체무게 3.2kg, 전체길이 98.5cm, 탄두구경 10c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파우스트파트로네는 좋긴 했지만(그래서 약 2만정이 주문/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대전차 화기로 쓰기에는 사용 탄두의 구경이 작았기 때문에 구경을 크게하고 여러가지를 개량해서 최종적으로 개발된게 바로 우리가 알고있는 판처파우스트 30 (원래 명칭은 파우스트파트로네의 후기형이라는 뜻의 Faustpatrone 2)입니다. 일단 이 판처파우스트 30은 기존의 파우스트파트로네의 탄두지름을 크게 하는게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10cm짜리 탄두크기를 14cm로 늘렸고, 탄두 안에 들어가는 화약의 양도 약 2배나 더 넣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기존의 부실했던 철판 관통력은 무려 200 mm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또 이 판처파우스트는 1회용으로 제작되는것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총의 몸통은 저급 철로 만들어진 튜브를 사용했고, 방아쇠나 조준기도 간단하게 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판처파우스트를 다루는 병사는 사용뒤 남은 튜브를 그냥 버리고 새걸 쓸 수 있었고, 그에따라 따로 장착되지 않은 탄두를 보유하지 않고 있어도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참고로 이 녀석은 약 56000정 정도가 생산되었지만 그 이후로 나온 Panzerfaust 60에게 밀려났다고 합니다)


위 에서 설명했던 Panzerfaust 30은 다 좋았지만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었습니다. 바로 유효사거리인데, 이 녀석은 30m안에서만 명중률을 보장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병들은 너무 위험한 행동을 했었어야 했고(코앞까지 다가가서 쏘는 행동), 그에따라 개발된 녀석이 바로 Panzerfaust 60입니다. 이 녀석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거리가 60m로 늘어났는데(실제로는 80m까지 사격이 가능), 그 이유가 바로 "탄두의 개량"에 있었는데, 이 녀석은 기존의 탄두의 속도를 45m/s까지 올렸기 때문에 이런 사거리 향상이 가능했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은 1944년 12월까지 약 130만정이나 생산된 녀석이라고 합니다.


Panzerfaust 60덕분에 판처파우스트는 최대 사거리가 80m 까지 증가했지만, 이것도 너무 가깝다는 생각에 또다시 HASAG사는 개발을 시작했고, 그에따라 Panzerfaust 100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Panzerfaust 100은 P-30(판처파우스트 30의 줄임말)에서 P-60으로 진화를 한 방식을 고대로 사용, 사거리가 최대 150m 까지 늘어나는 성과를 거둔 녀석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화기의 무게가 6.8kg까지 늘어나는 단점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P100이후에도 HASAG가 또다시 개발을 시작했지만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 못한, 혹은 생산조차 하지 못한 녀석들이 3가지 있는데, 하나는 Panzerfaust 150이고 다른 하나는 Panzerfaust 250, 그리고 특이한 녀석인 Grosse Panzerfaust/Hecht 10,5cm 가 있습니다.


일단 P-150의 경우 P-30가 맨처음 개발될때 기초가 되었던 "일회용"에 대한 문제(여러개의 판처파우스트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단점)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발된 녀석으로서, 한 튜브에서 최대 10발까지 사용을 할 수 있도록 새로 개발을 한 녀석입니다.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한 덕분에 사거리는 150m까지 올라갔고, 그에따라 독일군도 이 녀석에 대한 대량주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개발이 왼료된 시기가 종전 바로 직전인 1945년이였고, 그에따라 아주 소수만 생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온 녀석으로 P-250이 있는데, 이 녀석은 HASAG가 개발한 가장 마지막 판처파우스트의 바리에이션으로서, P-150을 따라서 재사용이 가능한 튜브를 사용하고, 또 권총손잡이를 사용하면서 탄두의 속도를 150m/s까지 올린 괴물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 녀석은 단 한정도 생산이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첫 생산이 시작될 시점이 1945년 9월쯤이여서 그렇다고 합니다(9월이면 이미 일본도 항복해서 세계 2차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이상한 녀석(?)이 있는데, 그게 바로 Grosse Panzerfaust / Hecht 10,5cm인데(참고로 GP는 HASAG가, Hecht 10,5cm는 다이나밋 노벨이 개발), 이 녀석들은 1945년 전쟁 말기당시 소련군이 새로운 괴물전차를 실용화 시킬거라는 소문(그 전차의 이름은 "Schtschuka")때문에 개발을 시작한 녀석으로, 기존의 판처파우스트 250을 기초로 무려 400mm의 철판을 관통할 수 있도록 개량된 괴물(?)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 녀석들도 정식 생산이 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 판처파우스트 시리즈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바로 "Backblast", 즉 "후폭풍"을 들 수가 있는데, 그당시 모든 무반동포가 그랬던 만큼 이 녀석도 후폭풍으로 인해서 좁은 건물 내에서 쓰는것은 거의 자살이나 다름없었고, 그에따라 총 자체 문구에도 "Achtung! Feuerstrahl!(조심해라!! 후폭풍이 있다!)"라는 경고문구를 집어넣을 만큼 후폭풍의 정도가 심각 했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http://www.geocities.com/Augusta/8172/panzerfaust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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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43 신고

    이녀석은 뭐... RPzB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로다
    400cm를 뚫다니 참 대단한 놈이군요 << 400mm가 아닌가효



사용탄약: 14.5 x 114mm
전체무게: 17.3 kg (PTRD) / 20.3 kg (PTRS-41)
전체길이: 2020 mm
총열길이: 1350 mm(PTRD) / 1219 mm(PTRS-41)
장탄수: 1발(PTRD) / 5발 클립(PTRS-41)



예전에 했던 L-39와 마찬가지로 1차대전때 처음 등장한 전차는 굉장히 위협적이였고, 그에따라 몇몇 소수 국가들이 대전차화기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이나 핀란드도 마찬가지였고, 1차대전때 참전을 했다가 나온 소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12.7 x 108mm탄을 쓰는 대전차화기를 개발할려고 했지만 이 12.7탄의 관통력이 시원치 않아서 나중에 개발한 14.5 x 114mm탄을 가지고 개발된것이 바로 이 PTRD입니다.

맨처음 PTRD는 100미터 거리에서 최대 40mm 두께의 장갑을 격파하는 괴력을 발휘했고, 2차대전이 시작되자 전선에서 쓰이기 시작합니다. 비록 관통력은 좋긴 했지만 독일의 경우 장갑을 더 덧붙이는 추세때문에 탱크의 전면장갑을 상대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었고, 그에따라 중전차보다 약한 경전차나 트럭같은 무장갑 차량에서 효과적인 성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총의 경우 단점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단발"이였다는 것이였습니다. 기존에 나왔던 핀란드의 L-39와 대조적으로 이 총은 한발을 쏘고 다시 총알을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였다고 합니다(물론 단발식으로 인해 고장이 나는일이 적고, 손질이 쉬우며,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또 무게가 무겁고 길이가 길어서 2인 1조로 운용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2차대전이 끝난 후 이 PTRD는 RPG시리즈(RPG-2/RPG-7)에 자리를 내주고 후방으로 밀려났으며, 나중에는 현대화(.50탄환을 쓸 수 있는 총열과 고배율 스코프)를 해서 세계 최초의 .50 구경 저격총으로 변경을 했다고 합니다.


PTRS-41은 데그차례프 기관총을 개발한 바실리 데그차례프와 SKS를 개발한 세르게이 시모노프가 개발한 대전차 저격총으로서, PTRD와 동시대에 쓰인 녀석입니다. 일단 기존의 PTRD와 같은 탄을 쓰기는 했지만 PTRD가 가졌던 가장 큰 문제점인 "단발"을 반자동(클립사용)으로 변경했다는 의의를 가진 총입니다. 비록 반자동으로 변경이 되긴 했지만 PTRD와 같은 성능(100미터 거리에서 40mm 장갑관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PTRD와 대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총도 PTRD와 마찬가지로 중전차를 상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경전차나 트럭, 혹은 기관총 진지를 격파할때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또 몇몇 병사들은 이 총으로 비행기를 상대했고, 몇대정도 격추가 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합니다(또 바실리 자이체프같은 소련 저격수가 이 총을 시험삼아 사용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름) 특히 이 총은 몇몇이 독일에 입수되었고, 그에따라 독일군은 그것을 카피한 Panzerbüchse 784(r), 혹은 PzB 784(r)을 운용했다고 합니다(굉장히 소수)


물론 이 총도 문제점이 있긴 합니다. 일단 내부구조가 복잡해 짐에 따라서 가격은 자연스레 높아졌고, 실전에서 고장이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PTRD와 PTRS-41은 2차대전이 끝나면서 공식적으로 소련군에서 더이상 사용을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중공군이나 북한군에 보급이 되어서 한국전쟁당시 남한군과 유엔군을 상대로 쓰였다고 합니다(대전차용과 저격용으로)



원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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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46 신고

    엘련님께서 헬싱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대물 저격하면 역시 세라스 빅토리나 누님이지요
    88mm 대공포도 한손으로..[응?]

    여자 벰파이어니까 가능해효

  2. 2009.08.25 21:48 신고

    콜옵에서나오는거

  3. 2011.07.18 15:32 신고

    혼자서 아랫것을 운용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혼자서 들고다니는 매뉴얼 사진이 있음.)

  4. 2011.08.06 14:59 신고

    저 무거운걸 쏘려면 누워서 쏴야하나...



사용탄약: 20 x 138mm Solothurn Lon
전체무게: 49.5kg
전체길이: 2235mm
총열길이: 1300mm
장탄수: 1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30발



Lathi L-39는 2차대전당시 핀란드군에서 썼던 대전차 소총입니다. 사용탄약은 전혀 흔하지 않은 20 x 138mm탄입니다(이 틴약은 바렛이 쓰는 .50 BMG보다 훨씬 큽니다) 1차대전, 2차대전역사에서 잘 나오듯이 그당시 전차가 약했기 때문에 대전차 라이플을 생산하는게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라고 생각한 여러나라는 대전차 소총을 개발했고(물론 탱크의 장갑이 두꺼워 지면서 격파는 실패) 핀란드도 그중의 한 나라였습니다

사실 이 무기의 개발자인 아이모 라띠는 맨처음에는 20미리 화기를 개발할 생각대신 "13미리 기관총을 개발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의도와 다르게 아이모는 20미리 탄을 사용하는 대전차화기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20미리를 쓰는게 13미리를 쓰는것보다 관통력이 더 좋을거라는 생각때문이였습니다. 이 아이모는 정부가 13미리 기관총을 원했지만 최종적으로 20미리 화기를 만들었고, 실전테스트에서 "20미리가 13미리보다 더 관통력이 높다"라는게 인정되면서 이 화기가 핀란드에서 쓰이기 시작합니다. 이 화기가 바로 Lathi L-39입니다.


사실 이 화기는 2차대전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쓰이기 시작했었습니다. 바로 소련과의 겨울전쟁때부터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13미리나 20미리 대전차화기는 굉장히 소수만 군대에 보급이 되었고, 별로 전과없이 전쟁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제 2차 소련-핀란드 전쟁(Continuation War)이 발발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이 무기는 장점/단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제 2차 소련-핀란드 전쟁때 드러난 이 총의 단점은 바로 "관통력"과 "무게"였습니다. 비록 20mm나 되는 총알을 반자동으로 쏘기는 했지만 그 당시 소련이 쓰던 T-34나 KV-1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는 없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총 무게만해도 50kg, 탄창 하나당 2kg에 가까웠기 때문에 전시가 수시로 변하는 전장에서는 쓰기가 굉장히 곤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총의 아예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단 벙커나 관측소에 있는 관측병을 사살해서 적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쓰이기도 했고 소수 전문 저격병은 이 총으로 그당시 소련의 전투기였던 Ilyushin Il-2의 조종수나 기관총사수를 제거할때도 쓰였다고 합니다(물론 고도를 낮게하고 비행하는 전투기에서만 사용이 가능). 참고로 나중에 이 총의 전자동버전이 대공기관총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총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화기로서는 끝내주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병용 총기로서는 "불합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총의 사정거리가 6km나 되서 장거리 저격에는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지만 기존의 목적이였던 대전차용으로는 불합격점을 받았고, 사용횟수나 생산량이 적어서 그냥 조용히 묻혀버린 총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총은 2차대전 후에도 핀란드군이 "헬리콥터 격추용" 화기로 사용을 했고, 미 수집가들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총이라고 합니다. 총 생산량은 약 2000정 미만이라고 합니다.



출처: 위키백과(http://en.wikipedia.org/wiki/Lahti_L-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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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48 신고

    근데 대물 저격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고대인들은 대물저격을 이리 잘써먹는지
    20 x 138mm... 바렛보다 무서운 놈이구려

  2. 2009.04.14 05:26 신고

    20mm 이상이면 분류상 '포' 라고 부르지 않나요. 가령 Bf109의 회전축에 달려있던게 20mm 기관'포' 인데..?

  3. 2009.10.11 16:55 신고

    양각대가 썰매타도 될 정도로 생겻다 ㅋㅋㅋㅋ 아님 흔들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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