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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6.5 x 50 mm SR 아리사카
전체무게: 3.95 kg
전체길이:  1,280 mm
총열길이:
781 mm
장탄수: 5발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군의 일원이였던 일본 제국이 38식 아리사카 소총을 보병용 제식화기로 사용한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총 생산량이 약 340만정이나 되는 아리사카는 그 생산량이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인 1930년대 말에는 일본군의 수요를 100% 충족할 수 있을 만큼이 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2차대전 초반 38식 소총의 대부분은 만주를 침공하는 주력군인 일본 육군에게 대부분 지급되는것이 일반이였고, 신형 소총에 대한 배치순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본 해군은 아리사카에 대한 배급을 충분히 받지 못하였습니다.

직접적인 보병단위 전투가 많은 육군이 해군보다 소총을 더 일찍 받는것은 당연한 것이고, 소총에 대한 배치가 느려진다고 해서 해군의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것이 일본군의 공식입장이였습니다만 일본 해군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다고 해서 쉽게 아리사카 소총에 대한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려 배치속도를 늘리는것은 불가능한 것이였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일본 내에서 생산되는 소총이 아닌, 해외에서 만든 총을 가져오는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신형 소총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한 나라는 다름아닌 이탈리아였습니다.


1937년 말 추축군에 포함된 이탈리아는 구 소련이 침공하는 상황이 발발할 시 추축군 참가국들이 서로를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은 방공협정(혹은 반코민테른 협정)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게 되었는데, 이 방공협정은 단순한 군사적 협조뿐만 아니라 군사적 물자에 대한 조달이나 요청도 포함되어 있던지라 일본 해군은 이 조약을 기반으로 이탈리아에 새로운 소총에 대한 개발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방공협정에 따라 이탈리아는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일본 해군이 쓸 새로운 소총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였고, 1939년 완성된 디자인을 내놓기에 이르렀는데, 이 물건이 바로 I식 소총입니다("I"는 숫자 1이 아니라 알파벳 "I(아이)"입니다)

I형 소총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일본 해군이 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군의 38식과 이탈리아의 칼카노 소총이 혼합된 물건으로서 개발되었습니다. 실제로 I식의 노리쇠 구조나 작동방식은 칼카노 소총의 것을 재활용하였지만 개머리판이 포함된 총의 몸통과 탄창의 구조는 38식 아리사카 소총의 것을 답습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다만 일본군 소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리시버 상부의 국화문양은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두 볼트액션 소총의 디자인을 혼합했음에도 불구하고 I식 소총은 실제로 사격을 할 시에 아무런 구조적 결함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I식 볼트액션 소총은 1938년 생산을 시작으로 1939년까지 약 8만정이 생산되었는데(이중 4만정은 베레타에서, 나머지는 이탈리아 정부 소속 조병창에서 생산) 이중 대부분은 1941년 이전에 잠수함이나 배를 통해 일본에 전달되었으며 이를 요청한 일본 해군 소속 병사들에게 지급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I식은 2차대전 당시 콰잘레인 환초나 필리핀에서 미군에 의해 노획이 되어 다수가 미국 내 민수용으로 들여와졌는데, 일본과 이탈리아 같이 비교적 2차대전 당시 유명하거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국가의 소총이 아닌만큼 이러한 총기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콜렉터가 아닌 이상 큰 인기가 있지는 않은 물건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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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22 호넷(Hornet)
전체무게: 1.8 kg
총열길이: 360 mm
장탄수: 4발 박스탄창



전투기 조종사들은 대형장비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이로 인하여 최전선이건 후방이건 개인화기를 사용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제식화기를 지급받아 사용하는 일이 굉장히 드뭅니다. 하지만 전투기가 피격당해 추락당했을 경우 생존을 위해서 개인화기를 써야 하는 상황은 언젠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대비해 지급되는 권총같은 소형화기들은 조종사들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화기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사용할 개인화기들은 인간을 죽이는 목적으로 쓰이기 보다는 야생에서의 동물을 사냥하여 식량으로 쓰거나 위협적인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용도로 쓰는것이 일반적인데, 권총탄을 사용하는 권총들은 그 크기와 특성으로 인해 사거리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는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물론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소총이라는 물건이 존재합니다만, 조종사가 탑승하는 전투기의 경우 일반적으로 소총을 장비할 만큼 여유로운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생존용 화기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미군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이러한 요구에 응해 M4라는 이름의 생존용 소총을 만들었습니다.


M4의 경우 R&T사에서 개발한 M265 스포츠용 볼트액션 소총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사용탄약이 그 당시 운용되던 소총탄인 .30-06나 .30 카빈같은 물건이 아닌, .22 호넷이라는 상대적으로 소구경인 탄약을 사용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2 호넷의 경우 성능만 따져본다면 오늘날 사용되는 .223 레밍턴(혹은 군용으로 5.56 x 45 mm)에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다시 말해서 M4 소총은 그 당시 사용되던 풀 사이즈 소총탄보다는 이론적으로는 약할지 몰라도 일반적인 군용 소총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목재 스톡이나 긴 총열, 그리고 반동제어를 위해 필요한 악세사리를 달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과 야생동물 사냥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한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지요.

M4 생존용 소총은 ,22 호넷을 사용한 괜찮은 성능과 접이식 개머리판을 사용하면 휴대가 굉장히 쉽다는 점 덕분에 미 공군에서 1949년까지 약 3만정이 생산 및 사용 되었고, 1950년대 초반 개발이 완료되어 실전배치가 시작된 M6 생존용 소총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정식으로 퇴역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남겨진 M4 소총들은 민수시장에서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다만 총열의 길이가 상당히 짧다는 점 때문에 구입을 해야 할 시에는 ATF에 세금을 내고 정식 절차를 밟아야 구입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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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08 00:26 신고

    360cm면 3m.... 오타인가요


P.S) 기존의 리뷰 포맷이라면 타이틀 사진과 제원을 기재하고 해당 화기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야 합니다만, 한 소총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첨부된 형식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리뷰형식이 아닌 문서자료 형식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각 화기에 대한 제원과 사진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발배경]

해당 화기의 시초는 2차 보어전쟁 당시의 영국군이 처한 문제로 시작되었습니다. 2차 보어전쟁은 영국군이 남아프리카 내 지배권을 확장하고 해당 지역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그 당시 영국에 대항하는 트란스발 공화국-오렌지 자유국의 연합군을 처리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을 가르키는 말인데, 이 당시 영국군은 숫적 및 장비적 열세를 가지고 있었던 연합군을 제거하고 해당 지역을 영국의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 전쟁은 영국군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전쟁당시와 전후 보고를 따져보니 영국군이 모든 전투 상황에서 우세하다는 것은 아니였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 당시 영국군이 사용하던 리엔필드 소총과 .303 브리티시 탄약이였는데, 영국군에 맞써서 싸운 연합군이 사용한 마우저 1895 소총이 사용하는 7 x 57 mm 탄약이 놀라운 정확도와 저지력을 보여준 반면 리엔필드에 쓰이는 .303 브리티시 탄약은 그렇지 못하다는것으로 판명이 났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 직후 리엔필드를 개조하여 새로운 탄약을 사용하는 소총을 개발하려 했지만, 소총의 노리쇠 디자인이 .303 브리티시 탄약이 아닌 독자규격의 탄환을 사용할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것이 판명났고, 이에 따라 1910년 영국 소화기 위원회는 영국군 제식 소총으로 새로운 작품을 채택한다고 발표하였고, 영국군 제식화기로 새로 채택될 소총의 요구조건을 내걸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나온 사항들은 그 당시 영국 소화기 위원회가 제시한 소총의 최소 조건들입니다

1) 마우저 타입 소총들이 사용하는 노리쇠 디자인을 사용해야 한다
2) 개머리판이 일체화되어 있어야 한다
3) 소총 탄약 규격이 기존의 브리티시 탄약보다 소구경이여야 한다


이에 따라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이 해당 제시조건을 받아들여 개발을 시작하였고, 디자인한 여러 프로토타입중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판단된 한가지 프로토타입을 1911년 개발을 완료하고 내놓게 되는데, 이때 내놓게 되는 화기가 바로 아래 나오는 Pattern 13 엔필드 소총입니다 (이름에 13이 들어가는 이유는 제식으로 채택되기 이전의 테스트가 시작된 시기가 1913년이기 때문입니다).


Pattern 13 Enfield



사용탄약: .276 Enfield
전체무게: 3.9 kg
전체길이: 1,200 mm
총열길이: 660 mm
장탄수: 5발 클립

P13 소총은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에서 나온 볼트액션 소총으로, 기존의 SMLE 리엔필드가 가진 노리쇠 구조가 아닌 마우저가 디자인하고 많은 국가들이 따라하기 시작한 마우저 패턴의 노리쇠를 사용한 소총입니다. 이 점 이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일체형 개머리판을 사용하도록 디자인이 새로 도입되었는데, P13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은 노리쇠 구조도 아니고 디자인도 아닌, .276 엔필드라는 이름의 신형 탄약입니다.

.276 엔필드 탄약은 .256 탄약에 기초하여 나온 디자인중 하나입니다(.256 탄약의 경우 소구경 고속탄이라는 점은 .276 엔필드와 동일하지만, 소구경임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탄약의 경우 기존의 .303 브리티시가 가지고 있던 장거리에서의 명중률과 저지력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P13에서 쓰이게 채택되었다 할 수 있는데, 비록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은 엔필드 소총과 해당 탄약이 잘 맞아 떨어질거라 판단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는 못하였습니다.


세계 1차대전 당시 P13은 Rifle, Magazine, Enfield, .276-inch이라는 이름으로 제식으로 채택되어 쓰이기 시작하였지만,  최전선에서 리엔필드를 쓰다가 이 총으로 제식소총을 교체한 영국군 병사들의 평가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존의 .303 브리티시보다 장거리 명중률이 뛰어난것은 인정 받았어도 총구 화염이 심하기 때문에 사격하기가 힘들다는 점, 소구경 탄환을 빠른 속도로 발사하다 보니 총이 금방 달아오르고 총열에 새겨진 강선이 금방 마모가 된다는 점은 P13이 제대로 실전 테스트를 받지 않고 급하게 전선에 나온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애로사항들이 접수됨에 따라 영국군 상부는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에 6가지 추가 디자인 개량형을 요구하였고, 실제로 해당 회사도 이를 받아들여 개량을 시작하였지만, 1차대전 당시 영국군은 새로운 탄약을 전쟁 중간에 도입하고 기존의 SMLE 리엔필드를 제식에서 퇴역시킬 만큼 엔필드 소총이 효과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P13에 대한 추가적인 생산 및 배치를 중단하게 됩니다.


Pattern 14 (M1914 Enfield)




사용탄약: .303 브리티시
전체무게: 4.25 kg
전체길이: 1,175 mm
총열길이: 660 mm
장탄수: 5발 클립

비록 .276 엔필드 탄약을 사용하는 P13에 대한 생산은 영국군이 중단하였기 때문에 끝났지만, 전쟁 당시 영국군의 소화기 부족현상이 심한 관계로 기존의 리엔필드를 계속 생산하는것과 더불어 P13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되, 사용 탄약을 기존에 쓰던 .303 브리티시로 개조하여 전선에 보급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이미 제식 생산을 위하여 P13용 생산 설비가 갖춰진것은 물론, 실제로 뽑아냄으로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만큼 P13을 .303을 사용하도록 개량해서 만든다면 P13이 가진 단점들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인한 결정였다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등장한 소총이 바로 P14입니다.

P14의 경우 기존의 P13 시설을 갖추고 있던 영국 내 공장에서 생산하는것을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만, 그 당시 영국의 생산능력이 소화기 부족현상을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다 판단하여 영국은 같은 연합군 소속은 아니지만 영국을 원조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P14에 대한 추가 생산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에 있는 윈체스터와 레밍턴사가 P14에 대한 부품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두 회사가 약 120만정의 소총을 생산하기에 이르렀지요.


P14은 P13에서 탄약과 약간의 개량만 거친 녀석인지라 기존의 P13이 가지고 있던 총알 관련 문제를 해결하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총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1차대전 당시 만들어진 볼트액션 소총으로서는 꽤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기는 했습니다만, 총을 받은 영국군 병사들의 경우 근접전에서 사용하기가 힘들며, 전체길이나 무게가 기존의 SMLE와 많이 달라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근접전이나 총을 들고 적진에 돌격할 걱정이 없는 저격수들의 경우 총열의 디자인과 조준기 시스템, 그리고 무게가 장거리 저격에서 SMLE 리엔필드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평가하였지요.

이러한 엇갈린 평가로 인하여 P14은 최전선 병사들이 사용하는것이 아닌 후방 전선의 예비군 병사들과 장거리 저격을 선호하는 저격수들에게 지급되었습니다만, 1947년 리엔필드보다 더 나을게 없다는 판단하에 정식 생산은 물론 제식에서 퇴역하는 수모를 맞게 됩니다.


M1917 Enfield



사용탄약: .30-06 스프링필드
전체무게: 4.17 kg
전체길이: 1,175 mm
총열길이: 660 mm
장탄수: 5발 클립

미국의 경우 1903년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을 제식으로 채택하였고, 총이나 탄약에 대한 아무런 불평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과 다르게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이 시작되고 나서 미군이 유럽전선에 개입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 M1903의 생산량이 유럽전선에 보내질 병사들의 숫자에 충족하기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고(1차대전에 미군이 개입하기 직전 M1903의 총 생산량은 84만정이였는데, 미국 내에 존재하는 보병이나 실제 유럽에 투입될 보병의 숫자는 기존 생샨랑을 웃도는 수준이였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급하게 M1903의 부재를 메꿀 수 있는 소총을 찾게 되는데,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M1917입니다.

M1917은 미군이 새로 개발한 소총이 아니라 기존의 P14을 .30-06 스프링필드 탄약을 쓰도록 개조한 물건입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영국군의 소화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미국의 윈체스터와 레밍턴사에 P14에 대한 생산을 요청하였는데, 그 당시 2년도 안되는 시간 내 120만정이나 뽑아낸 P14을 판단해봤을때 기존의 M1903용 생산설비를 늘리는것보다 P14에 .30-06을 사용하도록 살짝 개조해서 뽑아내는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미군의 기준에 따른 결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U.S. Rifle, Caliber .30, Model of 1917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을 시작한 M1917은 미군의 예상에 맞게 빠른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917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M197 소총은 고작 1년동안 무려 210만정을 뽑아내는 기록을 세웠고, 이때 생산된 소총들은 유럽전선에 투입된 미군 병사 숫자의 75%을 무장시킬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생산량과 다르게 미군의 M1917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영국군에게서 문제작이라는 소리를 받은 P14을 그냥 탄약만 새로운 버전을 쓰도록 개량하였기 때문에 미군도 영국군과 마찬가지로 소총의 무게와 전체길이가 참호전이라는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이 때문에 1차대전 이후부터는 미국 저격수들이나 최전선이 아닌 병사들에게 지급되다 결국 M14의 도입으로 현역에서 퇴역을 하게 됩니다.



문서출처: 위키백과 & IMF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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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303 브리티시
장탄수: 10발, 20발, 65발 탄창



볼트액션이라는 방식을 사용하는 소총들은 수백년을 지나도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군용 개인화기 장르중 하나입니다. 간단한 구조와 높은 정확도를 사용하여 장거리 전투에서 적을 사살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다양한 최첨단 개인화기들이 개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트액션이라는 고전적 작동방식의 화기가 아직까지도 사랑받게 한 주요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볼트액션도 단점이 존재하지 않은 완벽한 개인화기 작동방식은 아닙니다.

세계 1차대전 당시 중기관총의 도입으로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이 죽어야만 했고, 오늘날까지도 중기관총의 역할이 보병간 전투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것을 자동화기가 실제 전투시 볼트액션보다 더 유용하다는것은 굳이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답이 나오는 문제입니다. 실제로 1차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이 분대 내 반자동 소총이나 자동화기의 숫자를 늘리려 한것은 화력에서의 우위가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것을 알게 해준 1차대전 당시의 교훈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당시 기술력이나 자동화기의 요구사항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함으로 이해 생긴 한계점으로 인해서 1차대전 당시 개발 및 사용이 되었던 중기관총이 아닌 자동화기들은 전반적으로 평가가 그리 좋지많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진행된것이 바로 반자동 소총의 새로운 장르였습니다. 물론 반자동 소총이라는 장르가 그 이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신 장르는 아닙니다만, 군용으로 쓰이는 소총들은 대게 볼트액션이 아니면 완전자동인 경우가 많았고, 만약 볼트액션보다 더 빠른 발사속도를 자랑하지만 복잡하고 무거우면서 반동이 센 자동소총의 룰을 대신할 수 있는 총을 고르라면 반자동 소총이라는 장르가 가장 적합한 물건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1차대전 이후 나오기 시작한 개런드나 SVT-38/40, 그리고 G43가 군용 제식소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건 반자동 소총의 실제 효율성이 인정을 받아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엔필드 소총과 빅커스 중기관총, 그리고 소수이지만 지급되었던 루이스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의 경우 1차대전 당시 다른 나라들과 병력의 무장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 당시 독일의 MP18이나 미국의 M1918 B.A.R 및 톰슨 기관단총의 개발은 강대국들이 분대내 자동화기의 숫자를 늘려 화력을 증강시키려는 노력을 한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은 이러한 자동화기가 아닌 반자동 화기 개발을 추진하였고, 그러한 결과물로 나온것이 바로 Farquhar-Hill 소총입니다.


일반적인 화기들이 개발을 거친다음 곧바로 군에 채용이 되거나 사정상 채용이 되지 않는것과 다르게 Farquhar-Hill 소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이 화기는 사실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08년 5월 디자인과 시제품 생산이 완료되었고, 영국과 미국에서(영국은 1908년, 미국은 1909년) 독특한 작동방식을 특허로 받은데다가 그 시점에서 영국군에게 테스트를 받는것이 원래 계획이였습니다만, 복잡한 구조로 인한 잔고장이 많아 영국군 소화기 위원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후 몇가지 개량을 해서 다시 제출을 하였지만 이 역시 거부됨으로서 Farquhar-Hill의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요(참고로 이 당시 영국군을 포함해서 미군에도 마찬가지로 테스트가 진행되었지만, 이 역시 거부당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Farquhar-Hill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운의 화기는 아닙니다. 비록 초기 시제품 테스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한 이후 전선에서 반자동 화기의 필요성이 두각됨에 따라 영국군도 기존에 포기를 했던 이 제품에 대해서 재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복잡하다는 기존 평가와 다르게 최전선에서는 화력증강이라는 면에서 쓸모가 있다는 평을 받아 영국군 제식화기까지는 아니여도 점차 생산량을 늘려나가 영국군 전군에 대량보급을 할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성능은 제법 괜찮다는 평을 받았어도 실제 전선상황은 Farquhar-Hill에게 절호의 기회를 부여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비록 전선에서 호평을 받아도 영국군이 이 화기를 영국 소화기 편제에 포함시키고 정식생산을 시작할 시기가 1차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8년도였고, 실제로 생산이 시작될 무렵 영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독일 제국과 바르사유 조약을 치루면서 더이상 반자동 소총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해당 화기에 대한 주문이 취소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공군의 2인승 전투기에 화력 증강을 위해서 배치가 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쓰인 양은 숫자는 상당히 소수였고, 2차대전 발발 이후에도 해당 화기에 대한 재 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P.S) 위키백과에 따르면 해당 화기는 자동발사가 가능한 자동소총으로 등장합니다만, 몇몇 소스에 따르면 실제 공개가 된 프로토타입이나 생산형은 다 반자동 사격만 가능한 녀석이라고 하기 때문에 본문이나 제목에 해당 화기를 자동화기가 아닌 반자동 화기로 표기하였습니다. 만약 반자동 화기가 아닌 실제 자동화기 버전이 존재한다면 차후 수정시 해당 내용을 추가하겠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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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45 ACP
전체무게: 3.74 kg
전체길이: 894 mm
총열길이: 210 mm
장탄수: 7발, 11발 박스탄창




특수부대, 특히 적의 후방에 잠입해 미션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들의 경우 화기 선택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수부대의 특성상 굉장히 소수로 움직이기 때문에 최대한의 성능을 낼 수 있는 화기를 원해야 한다는 이유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적진 후방에서 조용히 미션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군용 화기로 고안된 녀석들을 무턱대고 사용하다간 미션에 포함된 임무나 특수부대원들의 생명에 큰 위협을 주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특수부대의 경우 특이하게 2차대전때부터 소음기를 이용한 화기를 개발 및 사용하는데 꽤나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비록 2차대전 당시 만들어진 화기들중에서 소음기를 사용한다고 큰 효과를 보는 녀석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새로 개발해봤자 뭐가 다르겠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사람의 목숨이 달리고 미션의 중요성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전장에서의 임무인만큼, 소음기를 사용하는 화기들은 단지 소음을 줄여주는 용도 이외에도 꽤나 큰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군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코만도라는 부대도 이러한 특수부대의 개인화기 선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부대중 하나로서 대부분의 미션중에서 적병을 소리없이 사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음기를 장착한 화기에 대한 요구가 꽤나 중요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코만도의 고충을 들어 개발된 화기가 바로 드 라일이라는 이름의 무소음 볼트액션 소총입니다.

드 라일의 경우 특수부대용으로 나온 특별 화기이지만 그래도 같은 영국군에서 사용하는 화기들과 부품의 호환성을 위해서 꽤나 많은 점들을 다른 화기들에서 빌려왔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 드 라일의 작동방식이나 개머리판같은 스톡은 영국군용 제식 소총이였던 리엔필드의 것을, 총열은 미군이 2차대전 당시 랜드리스로 공여해준 톰슨의 총열을, 탄창은 .45 ACP을 사용하는 권총중 가장 구하기 쉬운 M1911의 탄창을 개조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상당 부분에서 다른 2차대전 화기들과 비슷한 외관을 가지고 잇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드 라일에서 가장 특이하게 나오는 장점은 바로 소음기의 활용성입니다. 그 당시 소음기를 이용한 화기들이 그리 많진 않았지만 이 녀석의 경우 소음기의 내부구조를 꽤나 공을 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비록 .45 ACP라는 권총탄을 사용해도 굉장히 낮은 발사속도를 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녀석의 경우 몇몇 소스에 따르면 발사할때 나오는 소리보다 볼트를 후퇴시켜 재장전을 하는 소리가 더 크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소음성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요

P.S) 드 라일의 놀라운 소음 효과는 소음기의 사용으로 인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것 이외에도 사용 탄환을 일반 탄약이 아니라 서브소닉탄(Subsonic, 아음속으로 날아가는 탄환)을 사용하고, 볼트액션이라는 구조상 가스가 외부로 쉽게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비록 권총탄을 사용하고 볼트액션이라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속도나 전체적인 사거리는 낮지만 드 라일은 높은 성능 덕분에 코만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세계 2차대전 당시 널리 쓰인 화기로 유명합니다. 특수부대의 특성상 총 생산량은 130정을 넘지 못했고, 이마저도 1945년 종전과 동시에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화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성능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세계 2차대전 이후에도 다수가 현역으로 남아 쓰일 만큼 좋은 평가를 받은 명작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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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5 13:26 신고

    차..참으로 사랑스럽게 생겼어?!

    넌 내꺼야..

  2. 2010.10.28 17:02 신고

    볼트소리가 더 크다니.... 엄청난 소음효과로군요;;

  3. 2010.12.12 05:04 신고

    권총탄인데 볼트액션이라니~! 특이한총이네!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2 10:34 신고

    한마디로 ... 이건 완전.. m1카빈의 사촌동생이구만. 후덜덜 이거 쓰는거보다 그냥 리-엔필드 쓰고만다

    • 2011.02.12 23:00 신고

      애초에 특수부대가 소수의 주요인물 조지려고 만든 녀석입니다, 장거리에서 몰래 한명 쏴잡으려고 만든거니까요 그것도 적진 한가운데서 말이죠, 리엔필드는 너무 길고 무거워서 기동성이 떨어지죠, 결과적으로 이게 나아요.

    • 2011.02.13 02:43 신고

      M1과는 관련없는 녀석입니다
      리엔필드를 기초로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5. 2011.04.21 11:17 신고

    소리가 어느정돈지 궁금하신 분은 http://www.youtube.com/watch?v=AMei19G_hqA&feature=related
    여기로.

    P.s 엘련님 이런종류로 소음기가 아예 달려서 나오는 현대 개인화기는 무엇이 있을까요?

    • 2011.04.23 01:10 신고

      일단 댓글이 제한된건 영문링크가 있어서 자동적으로 된거니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요즘에는 탈부착식 소음기가 고정식 소음기만큼 성능이 좋은지라 저렇게 나오는 놈은 없습니다

      뭐 레밍턴사 쪽에서 저격총 총열을 아예 통째로 소음기로 만든 경력이 있긴 하지만
      이쪽도 상당히 오래전에 나온 녀석인지라 현대라고 하긴 뭐하죠

  6. 2011.04.27 22:51 신고

    안녕하세요! 총기 관련 자료가 필요해서 들렀습니다. 정말 많은 정보가 있네요. 대단하세요!
    아시는 분께서 군대에서 쓰이는 총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신 것 같아서 이 블로그를 추천해드렸답니다. 미리 허락받지 않은 점 정말 죄송합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길...

    • 2011.04.29 11:44 신고

      딱히 이 보잘것 없는 블로그를 홍보해주신다는거로 죄송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보잘것 없는 블로그에서 이상한거나 잔뜩 올린 제가 죄송할 따름이죠

    • 2011.05.01 10:58 신고

      이미 네이버 블로그는 파워블로그로 지정되었는데 그거보다 더 잘된게 이거 같습니다, 이건 너무 지나친 겸손 같습니다.

    • 2011.05.03 00:41 신고

      자만 떠는거보다는 겸손하게 사는게 더 현명한 거라고 생각하지 말입니다

  7. 2011.10.10 22:55 신고

    장전하다 들켜서 죽을기세.avi

  8. 2011.11.08 21:43 신고

    A :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측 병사 다수가 발각되었고 그중 몇몇은 전사하였다.

    B : 작전이 성공적이라니 매우 기쁘다, 하지만 우리측 병사가 발각되고 전사한 이유가 뭔가? 발사음이 너무 컸나?

    A : 아니, 발사음은 확실히 적었다, 우리는 장전음 때문에 들킨것이다.


    ㅎㅎ

  9. 2013.03.19 21:24 신고

    들라일이라고 읽는다 알고 있습니다.

    • 2013.03.20 06:43 신고

      들라일이라는 발음이 맞습니다만, 희한하게 한국에서는 델리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더군요
      (아무래도 들라일이 영어로 써여있어도 영어가 아닌 점 때문에 생긴 실수로 보입니다)
      글 쓴지 오래되서 실제 명명표기를 알았어도 수정을 안했는데 지금이라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0. 2013.08.04 23:19 신고

    이건 브레이크 쓰루에 나오는 명총!



사용탄약: 12/16 게이지 산탄, 9.3 x 74 mm R
전체무게: 3.4 kg
전체길이: 1,066 mm
총열길이: 650 mm
장탄수: 2발(산탄) / 1발(소총탄)



전투기 조종사라는 직업은 군대에서 개인화기와 거리가 일반 보병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멀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루더라도 전투기를 이용해서 전투를 하다보니 조종사들에게는 개인화기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드물고, 이러한 병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전투병이 받게 되는 개인화기를 지급하는 일도 자연스레 드물게 되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일반적으로 유사시에 대비하여 권총을 휴대하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개인화기를 사용하지 않는 직종이다 보니 권총을 가지고 있는것도 굉장히 특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유사시에 전투기가 적진으로 추락했을 시에 적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느정도 인명 살상을 할 수 있는 화기가 필요하고, 조종사가 앉아있는 전투기 자리의 경우 굉장히 협소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총을 가지고 있기 불편해 권총이라는 컴팩트한 화기를 소지할 수 밖에 없게 되었지요.


권총은 처음 나온 이후로 현재까지 군용으로나 민수용, 경찰용으로 엄청난 양이 생산 및 판매가 되고 있는 녀석인지라 그 실용성이 얼마나 큰지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만, 권총탄을 사용하는 컴팩트한 화기라는 특성상 권총에게는 일반적인 소총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권총탄을 사용하는 만큼 근접전에서 적을 무력화 하는데는 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수십미터 이상의 거리부터는 명중률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에 적군이 소총을 가지고 있다면 전투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이는 적진에 떨어진 조종사들이 권총을 가지고 유사시에 전투를 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온 Survival Rifle이라는 장르의 화기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2가지 이상의 탄약을 사용할 수 있는 복합화기로 고안된 녀석들입니다. 이 녀석들의 경우 전투기 조종사들의 공간적 제약, 다시 말해서 컴팩트한 화기를 가지고 다녀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거리에 따른 다양한 전투를 한가지 화기만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장거리로 쓰일 수 있는 소총탄과 근거리에서 가장 높은 화력을 자랑하는 산탄을 사용하도록 고안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독일에서 개발된 M30 루프트바펜-드릴링이라는 화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으로서 불렸던 이름인 루프트바페 소속의 조종사들이 전투중 전투기가 불시착해 적진에 떨어졌을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소총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 사실 생긴것 자체는 일반적인 중절식, 더블바렐 산탄총과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만, 산탄을 사용하는 총열 밑에 소총을 사용하는 총열을 따로 만들고, 이를 위한 구조 변경을 한 덕분에 소총탄 1발과 산탄 2발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복합 탄약의 사용은 드릴링 소총(독일어로 드릴링은 3을 의미하기 때문에 총열이 3개달린 소총을 의미하지요)이 산탄을 이용한 근거리와 더불어 소총을 이용한 중/장거리 전투가 가능해졌다는 장점을 가지게 했다고 할 수 있지요.

P.S) 사실상 소총탄이 1발밖에 들어가지 않는 상황에서 중거리 전투를 어떻게 수행하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인 조종사들의 무장이 근거리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권총이였던것을 생각하면 드릴링 소총의 다양한 탄약 사용은 일반 육군의 병사들의 소총보다는 못하더라도 일단 예전에 쓰던것들 보다는 훨씬 낫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 덕분에 드릴링 소총은 루프트바페에 1941년 채용된 이후 약 1년간 JP 자우어사에 의해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만, 제식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였고, 루프트바페 병사들에게 모두 지급하는것이 아니라 일종의 대안화기로 지급되었던 녀석인지라 괜찮은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총 생산량은 약 2,500정밖에 생산되지 않는 선에서 끝을 맺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화기들의 경우 대부분은 루프트바페 소속의 조종사들이 권총과 같이 사용하거나 이 녀석만 사용하는데 다수가 투입되었으며, 전후에는 많은 수가 민간인 콜렉터 손에 들어가 고가에 거래되는등 꽤나 인기가 많았던 화기라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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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29 08:20 신고

    그런데 별로 크기가 작지는 않군요.

    • 2010.11.29 12:53 신고

      권총탄보다 긴 사거리를 위해서 소총탄을 썼는데
      권총만큼 작게 만들면 사실상 권총을 쓰는것보다 못하게 되죠
      실제로 미군이 냉전당시 채용한 M6라는 녀석도 저 녀석과 같이
      중절식의 소총 모양새를 하고있습니다

  2. 2011.03.12 14:56 신고

    이런 물건은 군용으로 쓰기에는 상당히 비쌀텐데....... 보통 수평쌍대 샷건이나 상하쌍대 샷건 더블배럴 트리플 배럴 총기들이 아주 비싼가격인것을 감안한다면 거기다 라이플 탄이 CAL 9,3X74R 라면 이건 숫제 코끼리 잡는 .......

  3. 바실리코슬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7.31 17:39 신고

    이거웬지 미국에서 할아버지 건들면 할아버지가들고나올것만같은 총같음 흐미 ㄷㄷ..



사용탄약: .303 British
전체무게: 7.3 kg
전체길이: 1,150 mm
장탄수: 10발 리엔필드용 탄창, 30발 브렌 경기관총용 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세계 2차대전은 기관총이라는 녀석이 실질적으로 전선에서 엄청난 양이 쓰인 두번째 전쟁으로 기록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은 거치식으로 만들어져 지속사격을 중시한 중기관총이 전장을 휩쓸었다면, 세계 2차대전부터는 여러가지 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기관총이나 가볍게 쓸 수 있는 경기관총, 그리고 대공용이나 장거리 사격용으로 개발된 중기관총이 실질적으로 전선에서 대량으로 쓰이게 되었고, 이 2번의 세계대전 동안 기관총이라는 장르는 가장 큰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지요.
 
기관총이라는 녀석의 경우 세계 1차대전 이전부터 쓰이기 시작한 물건인지라 사실상 굉장히 많이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가끔은 기관총의 생산량이 최전선에서 필요로 하는 양보다 적게 생산되어 제때 도달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몇몇 부대는 아예 기관총이라는 장르의 화기 자체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종종 생기게 됩니다. 물론 기관총이라는 것이 생산을 하기가 복잡한 물건이고, 소총처럼 막 지급할 수 있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 생산이 되어 전선에 도달하는것에 대한 시간이 걸리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급박한 전시상황에서 이런 문제는 그냥 그려러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요.


2차대전 당시 영국과 영국연방에 소속된 나라들의 경우 제식 중기관총으로는 빅커스, 제식 경기관총으로는 Zb.26을 영국군의 제식소총 탄약인 .303 브리티시 탄을 사용하도록 여러가지 수정을 한 Mk.I/II 브렌을 사용한 것이 일반적이였는데,  빅커스 중기관총이야 1912년부터 제식으로 생산된 녀석인지라 어느정도 물량이 남아있어서 지급을 많이 하지 못하는 점은 없었습니다만 브렌의 경우 빅커스와 다르게 생산량이 조금 딸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브렌 자체도 굉장히 단순하게 만든 녀석인지라 생산량이 적은 수준은 아니였습니다만, 초기형인 Mk.I의 경우 1937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물건이고, 초기버전을 변경하여 대량생산에 적합하게 만든 Mk.II의 경우 1940년대 초반에서야 등장하기 때문에 세계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경기관총이라는 장르에서는 수량이 부족해 전선에 100% 보급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생기게 되었지요(물론 세계 1차대전 당시 생산된 루이스가 어느정도 있긴 했었습니다만, 이 녀석도 숫자가 충분하지는 못했지요).
 
물론 빅커스가 어느정도 물량이 있기 때문에 빅커스를 더 배치하자는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분대단위가 아니라 중대단위로 보급되는 빅커스를 사실상 분대지원화기 급으로 만들거나 배치하는것 자체도 사실상 불가능한 옵션이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을 제외한 다른 영연방은 독자적으로 자기네 국가들이 쓸 수 있는 간략한 경기관총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를 가지게 되었는데, 뉴질랜드에서 만든 Charlton 반자동 및 자동소총은 이러한 경기관총의 수적 열세를 메우기 위해 등장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harlton 반자동 및 자동소총(반자동 및 자동소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사실상 이 녀석은 반자동으로 사용하되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을때는 완전자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요. 한마디로 말해서 "반자동으로 사용하는것을 적극 추천하며, 엔간한 상황이 아니면 자동으로 쓰는것은 추천하지 않는다"라는 것과 동일한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의 경우 1941년 뉴질랜드에서 개발된 독자적 경기관총으로, 생긴것은 굉장히 신뢰성이 가지 않게 생겼습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생긴것과 다르게 꽤 재미있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Charlton은 사실상 루이스나 브렌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만든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아무래도 그 당시에 흔하게 널려있던 소총의 부품을 조금이라도 사용하여 생산량을 늘려보자는 시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몇몇 부품은 Lee-Metford 소총중에서 더이상 쓰지 않는 녀석들의 부품을 사용하였고, 탄창은 Lee-Enfield의 10발 탄창이나 이후에는 브렌 경기관총용 30발 박스탄창을 사용한 것을 보면 이 녀석이 얼마나 급박하게 만들어졌고 얼마나 생산량을 늘리려고 했는지 노력을 한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Charlton 반자동 및 자동소총의 경우 사실상 제식으로 만들어진 녀석은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성능을 보장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적어도 전장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진 않았습니다. 애초에 분대지원화기로 만들어진 녀석이다보니 반자동 및 자동사격이 가능하게 디자인되었고, 지속사격을 위한 총열 및 양각대를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녀석의 경우 브렌이 본격적으로 지급되는 2차대전 중/후반이 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뉴질랜드군에서 어느정도 환영을 받은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이러한 성능 덕분인지는 몰라도 뉴질랜드를 포함해서 호주군에서도 Mk.III 리엔필드 소총 탄창을 사용하도록 하는 비슷한 녀석을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의 경우 사실상 브렌의 부족한 숫자를 임시적이나마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다 보니 브렌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나서는 사실상 더이상 쓰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못쓸정도의 성능은 아니였습니다만 브렌보다는 쓰기가 까다로운 녀석이였고, 애초에 브렌이 등장하면 더이상 쓰지 않을것을 고려한 녀석이였기 때문에 1500정밖에 생산되지 못하고 2차대전 이후에는 박물관 전시용을 제외하고 모두 소각된 비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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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7 04:04 신고

    읭?? 303 브리티쉬??
    이건 먼가요? 듣보잡인데///

  2. 2010.03.22 09:49 신고

    소각되다니..!

  3. 2010.10.07 15:05 신고

    총이탈까

  4. 2010.10.08 13:32 신고

    앞에있는건 삼각대인가?!

  5. 2011.10.12 23:23 신고

    찰진총이라 하여 찰튼



사용탄약: .30-06 Springfield
전체무게: 4.3 kg
전체길이: 1,156 mm
총열길이: 558 mm
장탄수: 10발 로터리 탄창


 
2차대전 당시 소총의 주요 트랜드는 볼트액션이였습니다. 2차대전 이후에는 돌격소총이 등장함에 따라 볼트액션 소총을 제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남았지만, 그 당시에는 볼트액션은 진정으로 단발식이였던 소총의 역사를 뒤흔든 새로운 패러다임이였기 떄문에 그 당시에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남았던 방식이라 할 수 있지요.

비록 볼트액션이 그 당시 소총의 대표적인 트랜드라고 했지만, 사실상 볼트액션은 전군채용을 위한 소총으로서는 여러모로 부족한 녀석이였고, 그에따라 볼트액션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등장한 반자동 소총이 등장하는 시기에 볼트액션을 계속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장점보다는 그것을 사용함으로서 생기는 단점이 많았기 때문에 반자동 소총을 채용하자는 의견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전군 반자동 소총을 채용한 나라가 바로 미군입니다.


미군의 경우 세계 2차대전이 시작되기 얼마 전인 시기에 M1 개런드를 채용함으로서, 세계 최초로 반자동 소총을 전군채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만, 실제로 미군의 경우 M1 개런드 말고도 다른 반자동 소총을 전군으로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리뷰하고 있는 M1941이라는 녀석입니다. M1941의 경우 미국에서 화기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맬빈 존슨이 개발한 소총으로서, 사실상 존 개런드가 디자인한 M1 개런드와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녀석이지요.

M1941의 경우 반자동이라는 방식에서는 존 개런드의 M1과 비슷합니다만, 급탄구조가 다르다는 점에서는 M1과 꽤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M1 개런드가 8발 클립탄창을 사용한 점과 다르게 M1941은 개런드의 장탄수보다 2발 많은 로터리 탄창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M1 개런드보다는 탄창을 덜 갈아줘도 된다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지요(뭐 2발 차이가 얼마나 날 수 있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2발의 차이는 전장에서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M1941 반자동 소총은 M1 개런드와 다르게 굉장히 유명하지 않은 녀석인데, 이 녀석의 경우 개런드와 경쟁하는 시기에 미군이 채용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사실상 M1941의 경우 개런드와 비교해서 훨씬 뛰어난 점이 없었으며, 탄창이나 총의 전체적인 내부구조 및 생산가격이 개런드보다 비싸다는 이유 때문에 M1 개런드가 채용된 이후 M1941은 제식으로 채용될 가능성이 아예 없어지게 되었지요.

존슨 반자동 소총의 경우 미군 제식소총으로 채택되지 못하는 비운을 겪기는 했습니다만, 실상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세계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 개런드가 전군채용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새로운 화기를 접할 기회가 늦어지는 해병대나 해군 쪽에서는 M1 개런드를 지급받지 못해 M1903 스프링필드 볼트액션 소총을 계속 쓰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M1 개런드보다는 못하지만 M1 개런드가 도착할때까지 화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M1941 존슨 반자동 소총이 등장했으니, 개런드가 도착할 때 까지 만이라도 이 녀석을 사용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그에따라 소수이기는 하지만 존슨 반자동 소총이 미군에 채용되는 행운을 겪기는 했지요(하지만 생산에 대한 미군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기 때문에 생산량은 2만정 미만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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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9 08:35 신고

    왠지 잡다하게 섞어 놓은듯한 느낌이...물씬 풍기는데요?
    엘련님 28주후라는 영화에서 주인공과 함께 거의 후반부까지 살아남은 병사있잖아요, 그가 사용했던 총기를 보니까 이오텍과 스코프를 동시에 사용하던데 가능합니까?

  2. 2009.11.13 18:11 신고

    잘 퍼갑니다^^

  3. 2010.10.07 15:06 신고

    존슨이란단어에 민감하게반응한 남자 1人

  4. 2011.10.12 23:24 신고

    이봐 존슨 이 총은 너와같이 아무도 좋아하지않아....끄흑흔믈ㄴㅇ흐

  5. 2011.10.17 18:10 신고

    기억해라, 네녀석이 들고있는 총은 최고성능입찰자가 만든 총이 아니고 최저가격입찰자가 만든 총이라는거.
    -어떤 전쟁에 관한 명언중-

    이녀석을 보면 이게 생각나더군요...



사용탄약: 7.62 x 54 mm R, .303 British, .30-06 Springfield, .30-40 Krag
전체무게: 4.1 kg
전체길이: 1,067 mm
총열길이: 711 mm
장탄수: 5발 내장탄창(Internal Magazine)


미국의 서부시대를 상징하는 화기중 하나인 레버액션 소총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빠른 시간내에 여러발을 사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후 나오는 반자동 소총들에 비하면 훨씬 느린 속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볼트액션 소총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빠른 속도로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은 사실상 윈체스터 소총이 오늘날까지 개인화기 발달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그 발자취가 오늘날까지 민수용 소총으로서 큰 성공을 이루는 큰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윈체스터사의 레버액션 소총의 경우 공통적으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탄약"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윈체스터 레버액션 소총에서 쓰이는 탄환들의 경우 사실상 오늘날 쓰이는 탄약들의 모양새와 많이 다른것을 볼 수 있는데, 레버액션 소총의 주요 특징중 하나인 튜브탄창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군용 소총탄과는 약간 다른 모양의 소총탄을 사용해야 하는 단점(혹은 특징이라도 할 수 있지요)이 있었고, 이는 19세기 이후 윈체스터 소총이 군용소총으로는 더이상 쓰이지 않는 이유를 제공하게 되었지요.


윈체스터사의 경우 사실상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겪으면서 여러 화기들을 군용으로 판매한 전력이 있습니다만, 사실상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레버액션 소총에이나 리볼버 계열에만 투자를 하는 경우였기 때문에 자사가 가진 소총이나 리볼버를 군용으로 채택시킬 만한 이유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윈체스터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버액션 소총을 군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개량을 한 녀석이 바로 Winchester Model 1895라는 레버액션 소총입니다.

윈체스터 모델 1895의 경우 사실 외관상 특징으로만 본다면 그리 큰 특징은 없습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내부구조 및 작동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용탄환이 가장 특이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일전에 언급했듯이 윈체스터 레버액션 소총의 경우 독자적인 소총탄을 사용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1895라는 녀석의 경우 그 당시 군용 소총탄으로 채택되려고 하는, 혹은 채택되어 있던 녀석들(7.62 x 54 mm R, .303 British, .30-06 Springfield, .30-40 Krag)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나왔다는 점에서 독특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윈체스터 소총을 군용으로 사용한 경력이 있는 나라들의 경우 이후 나온 볼트액션 소총과 비교했을때도 윈체스터 소총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군용 소총탄을 사용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윈체스터 소총에 대한 사용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잘 알던 윈체스터는 1895에게는 이러한 소총탄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요.


사실 소총탄을 사용하는 레버액션 소총이라는게 그리 어려울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여러 면으로 따져봤을때 군용 제식 소총탄을 윈체스터에서 만든 소총에 사용하는것은 여러모로 까다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소구경, 저압의 탄약을 사용하도록 나온 소총인만큼 윈체스터 소총의 경우 강력한 탄을 사용하려면 여러가지 면에서 개량을 해야했고, 뾰족한 탄환을 사용하다 보니 탄환의 지름이나 구조상 튜브탄창을 사용하는것으로 얻는 단점이나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에 윈체스터 레버액션 소총으로서는 특이하게 튜브탄창이 아니라 박스탄창(클립으로 급탄하는, M1 개런드나 다른 볼트액션 소총들의 구조들과 비슷한 내장 탄창입니다)이라는 구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녀석은 다른 윈체스터 시리즈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험 정신(새로운 탄과 새로운 방식을 쓴다는게 그리 쉬운일은 아니지요) 덕분인지는 몰라도, 1895는 그리 나쁜 성적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이 녀석의 경우 나온 이유였던 군용 소총으로서의 판매를 어느정도 거두었고(러시아가 30만정을 세계 1차대전 이전에 구입했고, 다른 연합군들도 아주 소수지만 구입을 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였던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이 녀석에 대한 별명 및 극찬을 함에따라 꽤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미 제식 소총이 볼트액션 소총으로 정해진지 꽤 되었고, 이미 많은 양이 최전선에 배치된 상황에서 약간 나은 성능 때문에 윈체스터 소총을 채용하려는 국가는 별로 없었고, 그에따라 이 녀석은 나은 성능과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1931년 생산이 중단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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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1 12:03 신고

    40대 아저씨들의 로망 윈체스터(응?) 아버지한테 어버이날 선물로 드리면 딱이겟네요

  2. 2009.10.21 13:36 신고

    원체스터하면 사실 유물스러운 총으로 여겼는데... 이런 개량품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3. 2009.10.21 15:55 신고

    적절하게 모신나강이랑 닮았.....

  4. 2010.07.18 23:21 신고

    그런데 레버액션은 어떻게 다음 탄을 급탄하나요? 볼트액션이 볼트를 당겨주는 것처럼요. 그리고 혹시 놈놈놈에서도 이런 류의 총기가 나오나요?

  5. 2010.12.31 18:24 신고

    멋진 디자인의 윈체스터! 리뷰 잘 보았습니다^^

  6.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5 09:24 신고

    현대판은 샷건인데.. .. 1944 년에 이걸썻나요?? 서부시대 때만 쓴걸로기역하는데..ㄷㄷ
    쏴고 내리고 싸고 내리고 ... 북한놈들에게 주면 어떻게될가 큌



사용탄약: 7.92 x 33 mmKurz
전체무게: 4.27 kg
전체길이: 960 mm
총열길이: 380 mm
장탄수: 30발 박스탄창



세계 2차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45년 당시 추축군의 상황은 굉장히 절망적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 유럽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독일의 경우 압도적인 수적 열세 및 장비의 열세, 그리고 전략적 판단착오로 인하여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에게 연전연패를 당하고 있던 시점이였고, 이 상황에서 국민 돌격대라는,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않은 시민들을 데리고 전쟁을 할 만큼 독일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는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돌격대의 경우 바로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굉장히 낮은 기술을 보유한 군대중 하나로서 굉장히 단순한 훈련만 실시하고 전장에 보낸 군대인만큼 지급된 장비도 굉장히 낮은 질적수준을 자랑했는데, 아무래도 종전이 임박하는 시점에서 독일 본토 폭격이 실시되었고, 이와 더불어 물자부족까지 시달리게 됨에 따라 제식 소총이였던 Kar-98k 볼트액션 소총에 대한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그나마 생산한 물량도 정규군에게 지급하느라 국민돌격대에게 굉장히 소수만 지급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국민돌격대에게 지급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게 바로 VG 시리즈라는 녀석들인데, Kar-98k와 비슷한 구조, 같은 탄약을 사용하도록 고안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Kar-98k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값도 싸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실질적으로 VG의 정식 생산버전으로 채용되려고 나온 녀석들의 경우 굉장히 안습적인 성능과 사수에게 큰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정도의 나쁜 내구도를 가짐에 따라 사실상 맨 처음에는 독일 군부에 의해 거절되었지만, 상황이 긴박해지자 각 관구마다 VG 시리즈를 자체 개발 및 채용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지요.

VG시리즈의 경우 종류가 꽤 많았는데, 사실상 독일군 개인화기를 만드는 독일내 회사부터 전투기를 제조하는 회사에서까지 개발할 정도로 시리즈가 많았고 각자 특징도 있었고 문제점도 많았습니다만, 이 녀석들의 경우 볼트액션을 사용한다는 소총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지요. 물론 사실상 Kar-98k가 종전까지 제식 소총으로 사용된 만큼 볼트액션을 사용한다는 점이 크게 주목되거나 문제될 점은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반자동 소총을 가지고 있던 미군이 등장함에 따라 개인화기 면에서 어느정도 밀리는 면도 있었고, G-43도 개발되었고 StG-44도 나오는 시점인 1944년이 지난 시기에 볼트액션 소총을 새로 개발해서 채용한다는 것이 사실상 따지고 보면 그리 괜찮은 아이디어는 아니였고, 아무리 저질격인 국민돌격대라지만 어느정도 화력은 갖춘 화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대두되어서 나온 녀석이 바로 VG 1-5 반자동 소총입니다.


Gustloff-Werke라는 곳에서 만들어진 구스틀로프 VG 1-5라는 이 녀석은 사실상 개발배경부터가 굉장히 특이한 녀석인데, 사실 이 녀석의 경우 다른 VG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맨 처음 독일 군부에서는 채용 및 개발을 반대했던 녀석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고 할 지라도 Kar-98k 시리즈 생산에 차질을 줄 수 있는 국민 돌격소총(국민돌격대에 쓰이기 위한 소총이여서 국민 돌격소총이지, StG-44같은 Assault Rifle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능과 잠재적인 능력은 아예 고려되지 않은채 채용이 거부되었습니다만, 전쟁이 끝나가가는 시점에는 사실상 군부에 대한 통제력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소총을 채용하였고, VG 1-5도 그 중에 하나였지요.

VG 1-5는 사실상 그 당시 나온 VG라는 이름의 화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입니다. 다른 녀석들이 볼트액션 방식을 고집했던 반면에 이 녀석의 경우 약간 복잡한 반자동 소총으로서 개발이 되었지요. 물론 볼트액션보다 복잡한 방식이 바로 반자동을 사용하는 소총이겠지만, 반자동 소총을 사용함으로서 얻는 이득이 있고, 반자동 소총을 가진 적을 상대하려면 반자동 소총이 필요하다는 의견 때문에 개발이 되었지요(비록 반자동 방식이라고는 합니다만, 그 당시 나온 반자동 소총중에서는 가장 단순한 구조와 빠른 생산능력을 가진 녀석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반자동이라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총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에 2차대전 당시 많은 양이 생산된 제식 소총탄인 7.92 x 57 mm 마우저탄이 아니라 StG-44용으로 개발되었던 7.92 x 33 mm Kurz탄이 사용되었지요(그러한 점 덕분에 30발 탄창 장착이 가능한 점도 특징으로 나오게 되었지요).


VG 1-5은 아무래도 VG 시리즈중에서 유일하게 반자동(이후에는 자동발사가 가능한 버전까지 나옵니다만, 아무래도 종전이 임박한 시점인지라 생산량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에따라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을 사용하는 녀석임과 동시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저가 소총이라는 점에서 꽤 주목을 받았고, 나중에 연합군 손에 몇몇 VG 1-5가 들어감으로서 이 녀석에 대한 대량생산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을거라 예상이 되었습니다만, 전쟁이 임박하면서 물자 압박에 시달리고, 폭격으로 인한 생산설비 마비, 그리고 제식 생산이 아니라 단지 한 관구에서만 진행된 생산이다 보니 VG 1-5의 생산량은 1만정을 조금 넘긴 생산량만 보유한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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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6 15:58 신고

    6번째 문단 첫번째 문장에서 VG 1-5라는 소총이 그전에 나온 그것과 다르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VG 1-5라는 놈은 구스틀롭 베르케에서 만든 놈도 있고 다른 곳에서 만든 녀석들도 있다는 말씀입니까?(조금 다른 경우지만 그래도 굳이 예를 들자면 제식명이 같은 56식 보총...?)

  2. 2009.10.07 08:05 신고

    외계인 고문하는 독일도 이렇게 형편없는 (?) 무기들을 만들어서 썼다는걸 생각하면 안도가 됩니다. (??) 그래도 StG 만든 자존심이 있다고 30발들이 볼트액션 소총을 만들지는 않았군요!

  3. 2009.10.09 16:51 신고

    망하기직전에 반자동소총같은 호화(?)스러운걸 만들다니!!!

  4. 2010.01.03 06:57 신고

    왠지 모르게 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들은 후반기로 갈수록 비운의 무기를 많이 남기는 것 같아. FG-42나 G43같은 것은 비운의 총기잖아요. ㅎㅎ

  5. 2010.10.07 15:07 신고

    STG-44랑 왠지 많이 닮았다 했음



사용탄약: 7.7 x 58 mm 아리사카
전체무게: 4.14 kg
전체길이: 1099 mm
장탄수: 10발 Internal Magazine(5발 클립 2개)


세계 2차대전은 볼트액션 소총이 주종을 이룬만큼 사실상 세계 1차대전과 다를것이 없었습니다만, 여러가지 화기들이 새로 등장함에 따라 세계 1차대전처럼 참호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에따라 볼트액션 소총도 서서히 퇴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반자동 소총에 대한 개발의 요구 및 관심이 높아지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만, 당장 전쟁이 코앞인데 반자동이나 볼트액션을 운운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1차대전에 쓰던 볼트액션 소총이나 그 녀석을 개량한 개량버전을 세계 2차대전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일본도 세계 2차대전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던 나라중 하나였기 때문에 사정은 마찬가지였는데, 실제로 일본의 경우 종전 직전까지 아리사카 시리즈(대게 아리사카 시리즈라면 6.5 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하는 38식 소총과 7.7 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하는 99식 소총으로 나뉩니다)을 사용하면서 볼트액션이라는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뭐 총이나 이 총에 쓰이는 탄환의 경우 여러모로 말이 많았습니다만, 어쨌거나 정성을 들여서 개발한 물건들이였고(물론 2차대전 전에 개발이 끝나고 생산에 돌입) 종전이 임박하면서 질이나 수량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계속 사용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지요.


일본군이 세계 2차대전 후반에 주적으로 상대한 곳은 미군이라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미군이 세계 2차대전 당시 제식 소총으로 M1 개런드를 사용했다는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실상 세계 2차대전이라는 상황에서 반자동 소총의 경우 미군이 가장 먼저 채용을 했고, 가장 많이 제식으로 사용한 국가이기 때문에 유럽전선이나 태평양 전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일본군이 볼트액션 소총을 사용한데 반해서 반자동을 사용함으로서 미군의 경우 보병 개인당 화력으로는 일본군을 압도하는 수준을 가지게 되었지요.

사실상 반자동이나 볼트액션이나 각각 고유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녀석을 딱 꼬집어 말해 낫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만, 전선에서는 반자동이 볼트액션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인기가 많은건 사실입니다. 볼트액션의 경우 정확성이 높아서 저격용으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만 당장 2~300 m 거리에서 교전을 여러번 하게되는 2차대전 당시에는 1 km 이상의 정확도를 가진 볼트액션보다는 정확도가 덜 떨어져도 발사속도가 훨씬 빠른(물론 리엔필드의 경우 반자동 못지않게 빨랐다고 합니다만, 그건 숙련된 사수에 한해서 적용되는 이야기지요) 반자동이 훨씬 나은건 잘 알려진 정설입니다. 일본군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따라 고심끝에 개발한 녀석이 바로 4식 소총입니다.


기본적으로 4식 소총은 M1 개런드와 비슷한 점이 많고 디자인 자체도 M1 개런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4식 소총은 미군의 M1 개런드를 노획해서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7.7 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M1 개런드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M1 개런드와 다르게 4식 소총의 경우 10발 인터널 탄창(총 내부에 탄창이 장착된 버전으로 탈부착이 불가능한 내장 탄창입니다)을 사용하며, 급탄은 5발 클립을 2개 삽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등 M1 개런드와 비슷하지만 나름 다른 디자인을 시도했다는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4식 소총의 경우 궁극적으로는 M1 개런드에 대적할만한 성능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사실상 실전기록에 대해서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 4식 소총에 관해서 영문이나 한글로 된 자료가 굉장히 드문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상 4식 소총의 경우 2차대전이 끝나기 얼마 남지않은 1944년 말기에 처음 디자인이 등장하였고 그로인해 실제 생산량은 250정 미만으로 나왔기 때문에 전선에서도 굉장히 레어한 물건으로 취급받았고, 그 마저도 종전을 맞이하고 나서 연합군에 의해 거의 100% 파기되었기 때문에 자료나 사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4식 소총의 경우 자료가 전무한 만큼 실전 기록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만, 총 자체의 성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10발 박스탄창을 사용하는 반자동 소총으로서 기본적인 스펙은 M1 개런드를 능가합니다만, 클립을 2개를 사용해서 급탄하는 시스템이나 7.7 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찌감치부터 신뢰성이나 저지력에 대하여 총의 성능이 의문시 되었고, 4식 소총 자체도 잼을 잘 일으키고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녀석인지라 굉장히 나쁜 퀄리티를 자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 도중에 일본군이 만든 실험용 반자동 소총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성능과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몇몇 측면으로는 일본군 개인화기 개발사에 큰 발전을 이뤘다는 의의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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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5 16:36 신고

    5식 소총의 실총사진을 보고 싶군요. 거의 100%파기라니... 콜렉터들에겐 꿈의 총일지도..

    저는 일본총은 그렇게 선호지는 않지만요..

    • 2009.07.16 01:55 신고

      위에나온 조그마한 사진이 현재 인터넷상에서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5식 소총의 사진입니다(저거찾는데 3시간 걸렸지요 =ㅅ=) 저거 말고는 배필 1942 스샷 아니면 구할 수가 없다지요..... 한번 진짜 사진 큰거를 보고싶긴 한데 구글에서도 자취를 감춘 녀석이라 그냥 GG친 일화가....;;

    • 2009.07.21 19:44 신고

      에일리언 // 배틀필드 1942 가 아니라 새로 나오는 1943 일껄요

    • 2009.07.22 01:58 신고

      배필 1943에는 개런드가 나오고 아리사카가 나오는데, 배필 1942 패치를 하면 일본군 엔지니어 총이 Kar-98k에서 Type 5로 바뀜 ㅇㅅㅇ

  2. 2009.07.15 17:52 신고

    일본제무기는 2차대전때나 현대나 그리 신뢰하고 싶지 않달까요 -_-;;

  3. 2009.07.15 23:02 신고

    인터널 매거진이라.... 그 당시에도 상당히 구시대적인 발상이었을 것 같군요...

    • 2009.07.16 01:56 신고

      인터널 메거진 자체는 사실상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나온 녀석이기 때문에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만, 그나마 현대적이였던 M1 개런드도 인터널 메거진이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계속 쓰는 방식으로 남게 되었다지요 ㅇㅅㅇ;

  4. 2009.07.21 19:43 신고

    m1 의 카피형이라는 그녀석이군요 ㅇㅅㅇ;;

    사진이 작습니다 쿨럭.

  5. 2009.11.25 20:43 신고

    저거 530만달러인가 팔던거 같던데요.

    어떤 총기사이트에서

  6. 2010.07.09 12:13 신고

    http://www.jamesdjulia.com/auctions/div_catalog_233_sh.asp

    이쪽에서 5식소총을 판매하고있습니다만

    국내반입 불가한건 다아는..

  7. 2010.10.07 15:08 신고

    ㅇㅇ

  8. 2010.11.29 08:29 신고

    리엔필드에서 영감을 따온거 같기도 하네요.

  9.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5 09:30 신고

    오옷!!!반자이 돌격님 이거가지고 착검하고 에일리언님 왼지 찌를거같은???

  10. 2011.10.28 20:45 신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
    탕탕탕 투투투투투
    으앙 쥬금ㅋ

  11. 2011.11.06 16:54 신고

    하여간 2차대전 일본군은 뭘 해도 망작과 삽질의 연속.. 대한민국 독립 유공장 츠지 마사노부&무다구치 렌야 만세! 만만세! 아리사카의 막장성도 만세! 원샷라이터 제로센 만세! ㄲㄲㄲ

  12. 2011.11.06 16:55 신고

    +협궤 만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3. 2011.11.13 22:21 신고

    10식 말입니다 ㅎ


사용탄약: 7.92 x 57mm Mauser
전체무게: 3.9Kg (스코프 미장착시), 4.1Kg (스코프 장착시)
전체길이: 1.130mm
총열길이: 546mm
장탄수: 5~25발 (탄창마다 다름)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공냉식



바바롯사 작전은 독일이 1941년 소련과 맺었던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대대적으로 침공한 작전명으로서 약 560만명의 독일군, 3,600여대의 탱크,  그리고 4천대가 넘는 전투기를 이용하여서 소련을 1941년 12월까지 압박했던 작전입니다. 이 당시 소련군은 엄청난 손실을 입고 퇴각했으며, 스탈린 그라드 전투 이후 독일군을 소련영토에서 밀어내기 전까지 힘든 사투를 벌이게 되지요.


어쨌든 이 작전동안 독일군은 소련군의 무기를 다수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게 되는데, 이 소련군의 보병화기중 대부분은 M1891/30 모신나간트 볼트액션 소총이였지만, 그중에서 다수의 반자동 소총이 발견되게 됩니다. 이 반자동 소총들의 경우 소련이 모신나간트를 대체하기 위해서 개발한 녀석으로서 모신나간트가 썼던 7.62 x 54 mm R을 사용하고 있었지요. 이 녀석이 우리가 잘 아는 토가례프의 SVT-38 / SVT-40 반자동 소총입니다.


사실 바바롯사 작전이 끝나기 전까지 반자동 소총이 아니라 Kar-98k 볼트액션 소총을 제식으로 사용하던 독일군으로서는 이 녀석에 대한 충격이 굉장히 강했었습니다. 기존의 소총탄을 쓰면서 동시에 반자동으로 화력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소총이였으니 말이죠. 더군다나 바바롯사 작전당시 소련군 3명중 1명은 SVT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었던게 밝혀지면서 독일군의 "반자동 소총 패닉"은 극에 달했습니다.



아무리 볼트액션 소총이 정확도가 높다 한지라도 전장에서 필요한것은 정확도보단 화력지원이란것을 안 독일 국방군(Wehrmacht)은 여러 회사에 새로운 반자동 소총을 채용한다는 방침을 밝히게 됩니다. 그 당시 나온 독일 국방군은 대략 이런 조건들을 내놓게 되지요



1. SVT-38/40을 기초로 하는만큼 당연히 반자동 소총이여야 한다


2. 기존의 7.92 x 57 mm 마우저 탄환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탄창 급탄식이여야 한다


3. 탄을 장전할때 Kar-98k에서 사용하는 5발 클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당히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소총을 개발하기 위햐서 2개의 독일 총기회사가 참여하게 됩니다. 이 화시들이 바로 월터사와 마우저사였지요(독일내에서 그당시 가장 알아주는 회사를 2개 뽑으라면, 단연 이 두 회사를 뽑을 수 있겠지요) 이 화시들은 제작주문을 받은 1941년부터 디자인을 시작해서 그해가 끝나기 전에 프로토타입을 각각 하나씩 내놓게 됩니다.


이 프로토타입들의 경우 각각 G41(W)와 G41(M)로 불리게 되었는데(W은 Walther의 약자, M은 Mauser의 약자입니다) 이 두녀석의 경우 거의 세부구조를 빼고는 비슷비슷 했었습니다. 하지만 G41(W)의 경우 약 6,600정만 생산되고 생산이 중단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고(내부구조가 복잡했고, 생산단가가 비쌌으며, 고장이 자주나는 3박자 문제를 가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남게된 G41(M)도 가스 시스템의 문제, 내부구조가 복잡하여 분해/조립이 어렵다는 점때문에 그리 많은 양애 생산되지는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G41을 그냥 쓸수도 없고, 기존의 Kar-98k을 계속 사용할 수 없다는것을 알게된 독일 국방부는 G41(M)의 기본 구조와 SVT-40에서 쓰인 가스 시스템을 개량한 새로운 메카니즘을 사용해서 새로운 버전을 만들게 됩니다. 이 녀석이 우리가 잘 아는 Gewehr 43입니다(43은 1943년에 개발되었다는 뜻이지요)



이 G43의 경우 기존의 G41(M)을 개량한 녀석답게 일단 신뢰성과 내구성에서는 독일 국방군에게 합격점수를 맞았고, 그로 인해서 대량 생산을 곧바로는 시작하지는 못하지만 꽤 많은 양을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 G43(Gewehr 43)을 받게 된 독일군 병사들은 이 녀석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볼트액션 소총만 쏘다가 반자동 소총을 쏘니 그럴만도 하지요 ㅡㅡb) 독일 국방군도 지속적으로 이 화기를 생산할 것을 계획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총의 전설은 사실 여기서 그냥 끝나게 됩니다. 왜냐면 독일의 그 유명하고도 유명하고도 이후 세계 모든 군에 큰 영향을 미친 그 "녀석"이 등장하게 되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 "녀석"은 바로 슈트름게베어 44, StG-44입니다.



사실 StG-44의 경우 이전에 MKb.42라는 이름하에 개발되서 동부전선에서 시험테스트를 거친 녀석이였지만 G43과 Kar-98k에 의해서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헤넬사가 이 총의 개발을 거의 끝마칠때쯤 독일 군부에 의해서 이 녀석은 대량생산이 불가하도록 명령을 받았고, 그에따라 히틀러가 어느 한 병사로부터 MP44의 이야기를 듣기전까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총으로 분류되는 녀석이였습니다. 하지만 대략 아돌프 히틀러가 이 녀석의 위력을 실감하고서 대량생산을 시작한 이후로 G43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지요



P.S) 사실상 G43은 StG-44가 대량생산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생산이 되기는 합니다만, 애초에 기획된 대량생산은 StG-44 생산라인때문에 그냥 물거품이 되고 말지요.


이 녀석의 경우 1945년까지 약 40만정이 생산된 녀석으로서 나중에 나온 StG-44와 거진 비슷한 숫자를 생산했습니다만, 그리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뭐 StG-44가 개발하기 전까지는 독일 보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긴 했지만 거의 굇수수준의 StG-44가 나온 이후로는 그냥 "볼트액션 소총대신 쓸 수 있는 반자동 소총"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그냥 묻혀버린 녀석으로 분류되지요.


하지만 이 녀석이 독일군 전선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일단 소련군이 바바롯사 작전 이후 SVT 시리즈대신 M1891/30 모신나간트를 더 주력적으로 생산한것과는 다르게 G43은 종전 직전까지 생산됨으로서 소련군보다 약간 앞서는 화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는게 첫번째 장점입니다(뭐 SVT는 100만정 이상 생산된 녀석이라서 숫자면에서는 한참 뒤지는게 사실입니다만, 병력대 지급비율을 보면 G43이 더 많이 보급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또한 명중률이 반자동 소총으로서는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수의 독일 스나이퍼들이 G43/K43(K43은 Karabiner 43의 약자로서, G43의 후기형인데,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냥 어디다 스탬프를 찍었는지만 다를뿐이지요)에다가 그당시 유명했던 스코프인 ZF-4를 부착해서 사용할 만큼 인기도가 높았던 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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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2 10:30 신고

    독일군은 이곳저곳 쑤시지 말고 한 우물만 제대로 팠으면 성공했을법도 한데 말이죠 -_-;; 쩝

  2.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5 09:26 신고

    발터라고 도 불리나요 궁굼해서요 ㅜㅜ 죄송합니다 (뻘짓이면..)

  3. 2011.02.08 20:02 신고

    게베어가 이거구나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2 10:23 신고

    내나라 러시아 꺼 배낀주제에 독일놈들!! svt 배끼네 ㅜㅜ 어차피 쓰레기엿지만.. 고장도잘나고



사용탄약:
6.5 x 50 mm Arisaka
전체무게: 3.95 kg
전체길이: 1280 mm
총열길이: 800 mm
장탄수: 5발 클립



일본제국은 1차대전 이후부터 2차대전이 끝날때까지 볼트액션만 고집한 나라중 하나로서, 볼트액션 소총에 대해서는 꽤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의 경우 다른 나라와 다른점이 한가지 있었다면 2차대전중 사용된 소총과 1차대전 이전부터 쓰인 볼트액션 소총의 개발자가 동일한 인물이였다는 것이지요. 이 기술자의 이름은 그가 만든 총에서 알 수 있듯이 아리사카 나리아키라라는 이름을 가진 기술자였는데, 그가 만든 볼트액션 중에서 Type 30이라는 이름의 볼트액션 소총이 일본제국의 제식 소총으로 처음 선정되게 되었습니다.

Type 30 소총(30식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는 메이지 30년, 즉 1897년에 채용이 된 소총이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본에서 제식 소총으로 채용된 녀석들의 대부분은 Type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다 메이지 년도를 기준으로 채용된 녀석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의 경우 그 당시 아리사카가 개발한 6.5 x 30 mm 아리사카탄이라는 그당시 일본군의 제식 탄환을 사용하도록 고안되서 나온 녀석이였는데, 이 녀석의 경우 이전에 채용되었던 Murata(무라타)라는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볼트액션 소총보다 작은 구경을 가지면서 동시에 높은 명중률을 가지기 위해서 개발된 녀석이였습니다. 이 녀석과 함께 30식 소총은 어찌된 일인지 정식으로 채용된 1897년이 아니라 약 6년이 지난 1903년 러-일 전쟁때 처음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러-일 전쟁당시 처음으로 실전에서 활약을 한 30식 소총은 그때 같이 쓰인 무라타 소총보다는 훨씬 좋다는 평을 받은것은 사실입니다. 탄약도 소구경이고 사용하는 화약도 무연 화약이였기 때문에 조작이 훨씬 쉽고 반동제어도 쉬웠던게 이 녀석에 대한 좋은 평가가 나오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였습니다. 이 러-일전쟁 당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30식 소총은 나중에 기병대를 위한 카빈 버전인 30식 기병총과 해군에서 쓰이기 위한 35식 소총이 개발되면서 일본군 최전선에서 쓰이게 됩니다.


30식 소총에 대한 좋은 평가가 그당시 존재했기 때문에 일본군에서 제식 소총으로 사용된건 사실이지만, 30식 소총에 대한 불만도 없던것은 아니였습니다. 그 당시 30식 소총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이라고 하면 단연 내구성을 들 수 있는데, 당장 첫번째로 사용되었던 러-일 전쟁 당시 극한 기후에서 30식 소총은 고장을 내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알이 날라다니는 전장에서 필드 스트립을 통해서 다시 고치는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만, 30식 소총의 문재는 분해를 통해서 고장을 찾아내서 고친 다음 발생했다고 합니다. 30식 소총의 경우 방금전에 언급했듯이 100% 수작업으로 개발된 녀석인지라 설계초기부터 많은 문제가 발견되었었습니다. 특히 대량생산이 아닌 수작업이라는 것 때문에 각 소총의 부품들이 아주 약간씩 스펙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고, 이러한 문제는 소총간의 부품 호환성에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지속적인 개량을 실시하면서도 계속 언급되었고(가장 큰 문제가 수작업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는것을 일본군은 알아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아리사카는 1905년부터 새로운 제식 소총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고 30식 소총에 기반을 둔 38식 소총을 개발하게 됩니다(30식 소총을 참고했지만 개발 당시 마우저사의 볼트액션 소총의 디자인도 참고했었다고 합니다). 이 38식 소총의 경우 기존의 30식 소총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만큼 볼트의 기본구조를 바꾸는등 대대적인  개량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개조를 한 이후 38식 아리사카는 1906년부터 일본군의 제식화기로 쓰이게 됩니다


38식 아리사카에 대한 평가는 사실 리뷰를 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몇몇 사람들은 명중률 높고 저지력도 적당했고, 전체길이도 길어서 백병전때 총검 장착시 백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고 나오면서 좋은 녀석이라고 리뷰를 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리뷰를 하는 사람들은 아리사카하면 거의 다 쓰레기 수준의 나쁜 소총이였다고 치부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때 38식 소총은 "군용으로서 문제가 많긴 했지만, 쓰기에는 문제가 없었던 소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총열이 길어서 휴대가 불편한건 사실이였지만 반동이 낮은 탄환을 사용하면서 전체길이가 길게 된것은 38식 소총에 대한 명중률을 향상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기존 30식에 비해서 훨씬 나아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38식의 경우 다른 리뷰어들이 이야기했듯이 문제가 몇가지 있었습니다. 일단 탄환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6.5 x 50 mm 아리사카탄은 일본군으로서는 어떻게 느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30-06 스프링필드나 같은 추축군이였던 독일의 마우저탄, 그리고 2차대전 당시 그리 큰 활약을 하진 못한 이탈리아군의 칼카노 소총에서 쓰인 소총탄보다 약한 저지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였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2차대전이 발생하기 전에 중국의 독립세력들이 사용했던 장개석 소총(Kar-98k을 중국버전으로 카피생산한 버전)과의 비교에서도 지적되었습니다. 물론 2차대전이 시작되면서 .30-06을 사용하는 미국의 M1903와도 비교해도 너무 낮은 평가를 받은건 사실입니다(뭐 M1 개런드나 카빈이 나오면 거의 쓰레기 수준이라고 취급받은건 사실입니다)



탄환 말고 또 지적된게 무엇이 있냐면 바로 생산방식이였는데, 30식 소총의 단점이였던 수작업을 이 녀석에서 수정을 하지 못한것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장 생산량이 느린건 둘째치더라도 일단 소총에 대한 전체적인 질이 그리 높진 못했습니다(수작업으로 만든다고 무조건 총이 잘 나온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녀석에 대한 대량생산을 해야했으니(일본군이 몇천명 수준도 아니고, 몇백만명 수준인 상황에서 수작업으로 총을 만들려니,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였을 겁니다 ;;;) 총의 전체적인 질은 상황이 조금씩 나빠지던 2차대전 말기로 갈 수록 눈에띄게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2차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충분히 증명되었고, 그에따라 일본은 38식 아리사카를 개량해서 좀더 강력한 탄환인 7.7 x 58 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하는 99식 볼트액션 소총을 개발해서 1939년부터 일본군의 제식소총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잔뜩 개발되어서 생산된 38식은 2차대전 당시 99식과 함께 종전까지 쓰이게 됩니다(38식은 약 340만정 정도가 생산되었다고 하네요)


끝으로 38식의 바리에이션을 보자면 38식이 너무 길어서 기병대에게 사용하기는 무리이기 때문에 기병대를 위해서 전체길이를 줄인 38식 기병총과 1937년부터 배치가 된 97식 저격총(38식 저격총처럼 38식 소총중에서 명중률이 높은것을 뽑아 망원 조준기를 단 버전>>> 아주 약간의 변형이 있었지만 기본 베이스는 38식과 거의 동일)이 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 월드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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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8 22:40 신고

    38식이 한국군 건군 초창기에 제식화기로 쓰였던 녀석 맞지요?

    그러면 30식은 형님뻘 되는건가?

  2. 2009.07.14 19:58 신고

    일본군도 Tyep5 라는 반자동 소총을 사용했습니다만
    수작업으로 만드는 안습적이게 높은 생산단가, M1게런드 카피품치고는 저질성능 등등 으로 인하여
    그냥 "아리사카" 쓰자는 결론이 나와서 ...

  3. 2010.04.08 23:42 신고

    그냥 2차세계대전일본총100식 기관단총빼면 그냥 안습인거 같음 ㅡ
    그중에서 권총이 가장 안습

  4. 2010.06.26 23:54 신고

    38식의 장점도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때 저격용으로 사용하던 38식의 경우 긴 총신 덕에 장약이 총신내에서 거의 전량 연소되어 총구 화염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저격수의 위치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하죠.

  5.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5 09:27 신고

    반자이덴노이까 할때 무섭던.. 독일놈들이 그러면 어떻할까??

  6.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1 20:03 신고

    이거 미군이 총알 없엇 을때 들엇는데 부셔졋다는데 ㅋㅋ 졸라 웃김

  7. 이터널1건파이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2.02.12 14:07 신고

    만약 이총이 기계로 막 찍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군요



사용탄약:
7.92 x 33 mm Kurz
전체무게: 5.22 kg
전체길이: 940 mm
총열길이: 419 mm
장탄수: 30발
발사속도: 분당 500~600발


2차대전이 시작된 이후로,  독일군은 다른 나라의 군들처럼 기존의 제식 볼트액션 소총이나 기관단총, 그리고 기관총으로 무장을 했었습니다. Kar98같은 경우에는 사거리가 강하고 파괴력이 셌지만, 볼트액션이다보니 연사가 불가능했고, 반동이 너무 강했습니다.

MP18 MP28 MP40같은 기관단총의 경우는 연사가 가능하고, 근접전에서 효과가 있었지만, 사거리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독일도 꽤나 큰 고민에 빠졌고, 1940년 이후 FG42나 G43같은 신무기를 개발했으나, 대부분 고장이 많았고, 단점(사거리는 좋지만 반동과 무게의 단점이 있었습니다)이 꽤나 컸기 때문에 기존 제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은 소련과의 전쟁을 시작하자 더 크게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소련은 SVT40이라는 반자동소총을 개발해서 실전에서 운용을 많이 했고, PPSH41을 대량생산해서 독일군이 사거리에 닿기만 하면 다 쓸어버리는 역할을 했기때문에 독일의 동부전선은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지휘관들은 "새로운 탄의 개발필요성"을 느끼고 새로운 탄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게 바로 STG44에 쓰이는 커츠(Kurz)탄입니다. 이 탄은 기존 볼트액션 탄보다는 사거리와 파괴력을 줄이되, 기관단총처럼 연사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탄입니다. 이 탄이 바로 현대 돌격소총이 쓰는 탄의 "아버지"격의 탄환입니다.

이 탄을 기초로 하넬사와 월터사가 각각  Mkb42(M)와 Mkb42(W)를 제작하게 됩니다. 이 두 프로토타입은 동부전선에서 평가를 받았고, Mkb42(H)이 채택되게 됩니다(Mkb42(W)는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탈락) 이 총은 그 이후부터 MP43이라는 이름하에 독일군에서 쓰이게 됩니다.


맨처음 나왔던 MP43는 몇가지 사소한 문제로 인해 조금 개량을 받았고, 1944년 MP44라는 명목으로 운용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존 보수진영파에서는 기존 제식탄이 남아도는 입장에서, 구지 새로운 보급체계를 구성하는건 안된다고 버텼고, 아돌프 히틀러가 이들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바로 "생산중지" 명령이였습니다. 물론 이 이후조치이후로 생산체계가 완전히 차단된것은 아닙니다. 동부전선에서는 이 총이 꽤나 쓸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PPSH41의 사거리보다 길기때문에 사거리에 들면 PPSH41에 피해를 입기전에, 소련군을 전멸시킬수 있었던 이 총은 꽤나 동부전선에 필요했고, 월터사는 꾸준히 보내게 됩니다. 결국 히틀러가 이 사실을 알게되었고, 대량생산을 지시하게 됩니다.

이때 히틀러는 이 총의 혼동을 막기위해(맨처음의 MP는 자동카빈이라는 말이였기 때문에 오해가 많았습니다) STG(Sturmgewehr 44)라는 새로운 제식명으로 생산하도록 지시하게 됩니다. 비록 세계 2차대전 말기에 생산이 시작된 돌격소총이지만, 42만 5천정이라는 꽤나 많은 양을 제작했습니다.


이 총은 현대에 존재하는 "돌격소총들의 아버지"라고 불리울만큼 현대 돌격소총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AK47도 STG44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제작되었습니다 - 이말이 AK가 STG44를 베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숙련되지 않은 철판 프레스를 사용한 이유로 인해 사격시 총열이 많이 달아올라서 잡기가 불편한 단점과, 무게가 무거워서 운용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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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37 신고

    분명 ak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어디까지나 made in 절므니

    • 2009.04.10 11:40 신고

      StG-44의 경우 내부구조는 확실히 AK-47와 다릅니다. 하지만 외부는....누가봐도 AK-47 = StG-44같은 느낌이 나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ㅇㅅㅇ

  2. 2010.11.20 00:08 신고

    히틀러 : 다른탄약 쓰는 총 찍으면 안돼! 귀찮아져! 금지!
    발 터 : 이걸 어떻게 한다? 옳지! 자동발사도 되니까 MP43으로 고치자! MP40 개량형인줄 알거야!
    히틀러 : 이거 뭐지? MP43? MP40개량형인가? 승인!
    발 터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월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ㄳ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몰래 동부전선에 쓰여졌다는 스토리...

  3. 2011.01.16 01:07 신고

    찬양하라! 이분이 최초시니라!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5 09:54 신고

    참이건.. 정말 1944년에 ak47로불리는 총 ㅋㅋ stg이총은 콜오브듀티 1.2 완전 레어총인데..

  5.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12 10:36 신고

    ak47:아버지!! ar10:아버지!! m16:할아버지 m4a1:증조할아버지 ㅜㅜ scar:고조할아버지 이이후로레이져총?? ㅋㅋ

  6. 2011.02.12 23:05 신고

    히틀러 : 이보게, 동부전선에서 필요한것이 무엇인가?
    병 사 : 한대의 티거랑 한정의 [새로운 소총]이지 말입니다!
    히틀러 : 음, 티거랑 [새로운 소총]이라? 난 분명 [새로운 기관단총]을 보냈는데?
    병 사 : 네? 자동사격이 됐긴 하지만 이녀석은 그렇게 치긴 살상력이 더 좋고 사거리가 좀 길지 말입니다!
    발 터 : 뜨끔



사용탄약:
7.62 x 54mm R
전체무게:
4.2kg
전체길이: 1260mm
총열길이:
627mm
장탄수:
15발 탄창

2차대전 이전에 개발이 되어서 2차대전 당시 소수가 쓰인 AVS-36 자동소총입니다.


그당시 어느 나라도 반자동 소총을 개발을 해서 채용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심지어 그 흔하다는 M1도 2차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도입) 소련의 세르게이 시모노프는 생각이 달랐었습니다. 그당시 볼트액션이 굉장히 뛰어난 총이기는 했지만 여러 리뷰에서 언급을 했듯이 장전시간이 너무 오래걸리고, 사거리가 지나치게 길다는 문제가 병사들의 실전경험에서 계속 지적이 되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시모노프(참고로 이 시모노프는 나중에 SKS45를 개발하게 됩니다)가 1930년부터 디자인을 시작해서 1931년에 첫 프로토타입이 선보이게 되었고, 3년의 수정 기간을 통해서 1934년 총의 거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끝내고 그 다음년인 1935년 토가례프가 디자인한 총과 경합을 벌여서 마침내 AVS-36이라는 이름으로 소련군에 정식 채용이 되게 됩니다(AVS는 Avtomaticheskaya Vintovka Simonova의 약자이고, 36은 1936년 모델이라는 것의 약자입니다).


이 총은 생긴건 별로 특이해 보이진 않았어도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개런드와 같은 클립식이 아닌 탄창식을 통해서 한번에 15발이 장전이 가능했고, 특이하게도 이 녀석은 반자동 사격 이외에도 자동 사격(!!!)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를 했고, 또 다른 바리에이션 없이 저격총으로도 사용이 가능해서 거의 "M1 개런드같은 대박"이 가능할것 같았던 총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총의 운은 거기서 끝이였습니다. 이 총이 1938년 모스코바에서 처음 실전테스트를 받았을때 이 총의 결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내구성"과 "조작성"이였습니다. 자동/반자동 사격이 가능하게 했던 만큼 총의 부품수는 많아지고 구조도 볼트액션에 비해 엄청나게 복잡해졌으며, 그에따라 먼지가 조금만 들어가도 고장이 쉽게 나게 극악의 내구성을 증명(?)했었습니다(특히 핀란드와의 전쟁에서는 그리스가 발라진 상태로 AVS-36을 쓰다가 그 윤활유가 얼어버리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런 점은 AVS-36의 문제점이라고 하기보다는 소련군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 이 총은 전자동 사격시 엄청나게 높은 반동으로 인해서 "자동사격시 컨트롤을 할 수 없다"라는 소리까지 나왔고, 또 이 자동사격이 가능하게 15발 탄창을 채용한 것에 대해서 "너무 길어서 휴대가 불편하다"라는 지적도 받기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런 단점들로 인해서 1938년 다시 실시한 채용 시험에서 시모노프의 총은 탈락하고, 토가례프의 총이 나중에 승리를 하게 되면서 이 총은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참고로 토가례프가 설계를 했던 총은 나중에 SVT-38로 소련군에 채용이 되게 됩니다)

비록 SVT-38에게 지기는 했지만, 이 녀석은 짧은 기간동안 무려 65,800정이나 생산되어서 소련군에 공급이 되었고, 나중에 이 총은 시모노프의 PTRS-41이나 SKS45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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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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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8 23:35 신고

    7.62X51보다 반동이 강하고 SVD 드라구노프에 쓰이는
    탄을 자동으로 쏠 생각을 하다니 ㅎㄷㄷ

  2. 2010.07.21 14:59 신고

    SKS도 어차피 주력으로 쓰이진않는걸로 기억하는데요 SKS다음이 무슨총이었더라

  3.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2.15 21:51 신고

    연사사격 인정못함 그거쓰면 넌정신나감 이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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