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용탄약: .410 산탄
전체길이: 767 mm
총열길이: 640 mm
장탄수: 1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당시 리엔필드 소총을 주력으로 운용하던 영국군은 리엔필드에 대한 생산권을 자국뿐만 아니라 영국제국의 산하에 있던 영연방 국가들(혹은 식민지들)에도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영국의 라이센스 제공은 수많은 영국 연방 소속 국가들이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영국군이 냉전 초반 L1A1 소총을 채택한 이후에도 계속 리엔필드를 주력으로 운용하거나 생산하는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영국 식민지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인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도의 경우 영국으로부터 리엔필드 소총을 직접 받아서 쓰기보다는 직접 공장을 차려 생산하는것이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이라 판단되어졌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이샤포어(Ishapore) 조병창같은 군수무기 생산공장이 인도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1947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도 이샤포어는 7.62 mm NATO급으로 재탄생한 리엔필드 소총(제식명 2A1)을 생산 및 판매할 정도로 리엔필드 소총의 생산에 대한 노하우, 혹은 일가견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대형 공장의 존재와 더불어 오랫동안 생산을 했다는 시기적 특징 덕분에 그 당시 인도 내에서 리엔필드 소총을 목격하는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국내 치안사정에 대한 해결을 리엔필드 소총만 가지고 해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불안정한 시기였던 1900년대 초반 인도의 경우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전투경찰이나 교도관의 중요성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이들이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범주의 화기는 소총이 아닌 산탄총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신형 화기에 대한 개발이 절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것이 바로 이샤포어 조병창의 리엔필드 산탄총입니다.

이샤포어 조병창의 신형 산탄총이 개발하는데 있어서 중요시한 최우선 과제는 바로 이미 인도 내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리엔필드 재고품들을 재활용하는 것이였습니다. 이 때문에 리엔필드 소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면서 단순한 개조로 산탄총으로서의 성능을 구현하고자 한것이 바로 이샤포어 .410 산탄총의 기본 컨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샤포어 산탄총들은 리엔필드 소총의 부품을 대부분 그대로 활용하면서 기존의 .303 브리티시 탄약에서 필수적인 부품들만 교체해서 .410 산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다만 이 컨버전 과정에서 .303 소총탄용 탄밀대와 스프링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이샤포어 산탄총은 단발장전만이 가능합니다)


이샤포어 조병창의 .410 산탄총은 각인으로 보았을때 최소 1920년대 초반부터 1940년 후반까지 생산 및 사용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언제까지 쓰이다가 퇴역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투경찰이 폭동을 진압할때, 그리고 교도관들이 교도소 내 수감자들에 대한 경계를 설때 쓰다가 이 보다 더 좋은 화기가 배치됨에 따라 이샤포어 산탄총들의 상당수는 퇴역 이후 미국의 민수용 총기시장에 들어와 판매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다만 그 당시 이샤포어 산탄총에 쓰이는 .410 산탄은 미국 내 .410 산탄과 많이 다른 물건인지라 수입과정에서 또다른 컨버전 절차가 진행되었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퍼가실때는 꼭 댓글을 남겨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에일리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탄약: 12 게이지, 16 게이지, 20 게이지, 28 게이지
전체무게: 2.8 kg ~ 3.2 kg
전체길이: 버전에 따라 다름
총열길이: 버전에 따라 다름
장탄수: 5 + 1발




군용으로 산탄총을 사용한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펌프액션이나 자동 산탄총, 혹은 반자동 산탄총이 등장하기 전부터 12게이지나 다른 게이지를 사용하는 산탄총은 꽤 오래되었지요. 이는 다시 말해서 군용으로 산탄총을 쓰는것은 현대에 들어와서 그리 놀라울것이 아니라는 것 중 하나입니다만, 현대에 들어와서 군용으로 산탄총을 대량생산 및 사용을 하는것은 생각보다 많이 어색한 것이 되었지요. 이는 사거리가 굉장히 늘어난 소총이 등장함에 따라 기본적으로 사거리가 짧은 산탄총을 군용으로 대량생산 및 채용하는것이 그리 실질적으로 쓸모있는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강선이 파이고 탄피가 사용된 소총이 대량으로 쓰이기 시작한 첫번째 세계대전으로서 엄청난 양의 소총이 사용되었는데, 1차대전의 주요 전쟁 양상은 특이하게도 참호전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호전의 경우 각 진영에서 참호를 하고, 각자 시간마다 병력을 보내서 상대방의 참호를 점령하려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을 의미하지요.


참호전의 경우 기관총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만큼, 사실상 참호간 사이의 거리를 건너는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였기 때문에 참호간 사이를 좁히거나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과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에따라 이를 해결할 여러가지 방식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만(대표적으로 전차 및 전투기, 그리고 독가스라고 할 수 있지요), 정작 참호를 점령했을때 참호 안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것에 대한 대비는 하지 않았다는것이 문제였지요.

물론 참호안에서 쓰일 수 있는 화기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경우 참호안에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기관단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화기를 개발하였고, 이는 2차대전부터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각자 기관단총을 개발 및 생산하는 주요 이유로 부각되었습니다만, 1차대전 당시에는 기관단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을 제외하고는 다른곳에서는 사용되지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실상 종전 말기에 기관단총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실제로 톰슨이 개발한 기관단총이 1919년 후반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만, 1919년이라면 이미 종전이 임박한 시기이기 때문에 대량생산 및 사용이 불가피하고, 미군 내에서도 사실상 기관단총에 대한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사용을 꺼려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이 사용한 근접용 화기는 이미 예전부터 사용한 산탄총이였지요. 산탄총의 경우 이미 잘 알려져있다 시피 장거리전에서는 굉장히 불리한 화기이지만, 근접전에서는 따라올 만한 녀석이 없을정도로 효과가 대단하였고, 그에따라 미군의 경우 참호전에서 참호내 전투를 위해서 산탄총을 제식으로 채용하는것을 선택하였지요.

윈체스터사에서 개발한 Model 1912는 미군이 맨 처음 군용 제식 산탄총으로 전군에 채용시킨 Model 1897의 후속작으로 나온 녀석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 일반적으로 외관적인 특징을 보면 M1897과는 다른점이 없습니다만, M1897에서 제기되었던, 혹은 이전부터 산탄총에 대해서 불만사항이 있던것을 상당수 해결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인 녀석으로 평가된다고 할 수 있지요.


M1912가 해결한 대표적인 문제는 바로 해머의 제거입니다. M1897까지는 공이를 치기위한 해머가 따로 존재했고, 이는 슬라이드가 후퇴하면서 이 해머를 뒤로 매번 젖혀줘야 한다는 점 때문에 총 자체의 부품이 많아져서 결과적으로는 가격이나 내구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도 있지만, 이 해머를 사용함으로 인해서 오발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 M1912는 해머가 없는 디자인을 사용해서 이러한 문제점을 확실히 해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점 이외에도 M1912부터는 트리거 그룹을 변경함으로서 이전의 산탄총과 다르게 방아쇠를 당긴 상태에서 펌프만 움직이면 자동으로 탄이 발사되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근접전에서 효과적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기는등 여러 점에서 M1912는 M1897보다 나은 성능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M1912는 비록 M1897보다 조금 늦은 1912년 미군에 채용되었습니다만, M1897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녀석으로 유명합니다. 이 녀석의 경우 1차대전 당시 평가를 위해 2만정 정도가 미군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이후 2차대전은 물론이고 한국전까지 총 10만정 이상이 미군(특히 미 해병대와 미 해군)에 의해서 쓰였다고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이 녀석의 경우 생산이 1963년에 중단된 버전이였기 때문에 베트남전 당시 쓰인 대부분의 M1912는 노후화를 문제로 퇴역하였으며(이 퇴역 덕분에 이사카사의 M37가 잠깐 미군에서 쓰이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요), 현재는 모스버그와 레밍턴사의 산탄총이 이 자리를 대체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퍼가실때는 꼭 댓글을 남겨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에일리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8.21 18:53 신고

    1897보다 효율적이지만 대신 간지가 안나서 무효

  2. 2010.08.21 19:55 신고

    그냥 군용으로 적절하네

  3. 2010.08.21 22:15 신고

    그냥 스펙만 좋구나

  4. 2011.06.21 17:36 신고

    이런방식이 현대에도 있나요? 그러니까 방아쇠 당긴채로 펌프만 당기면 뿜뿜뿜뿜!

  5. 2011.12.08 22:15

    비밀댓글입니다



사용탄약: 12 게이지 산탄
전체무게: 3.6 kg
전체길이: 1,000 mm
총열길이: 510 mm
장탄수: 5발 튜브탄창



군용으로 산탄총을 사용한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펌프액션이나 자동 산탄총, 혹은 반자동 산탄총이 등장하기 전부터 12게이지나 다른 게이지를 사용하는 산탄총은 꽤 오래되었지요. 이는 다시 말해서 군용으로 산탄총을 쓰는것은 현대에 들어와서 그리 놀라울것이 아니라는 것 중 하나입니다만, 현대에 들어와서 군용으로 산탄총을 대량생산 및 사용을 하는것은 생각보다 많이 어색한 것이 되었지요. 이는 사거리가 굉장히 늘어난 소총이 등장함에 따라 기본적으로 사거리가 짧은 산탄총을 군용으로 대량생산 및 채용하는것이 그리 실질적으로 쓸모있는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강선이 파이고 탄피가 사용된 소총이 대량으로 쓰이기 시작한 첫번째 세계대전으로서 엄청난 양의 소총이 사용되었는데, 1차대전의 주요 전쟁 양상은 특이하게도 참호전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호전의 경우 각 진영에서 참호를 하고, 각자 시간마다 병력을 보내서 상대방의 참호를 점령하려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을 의미하지요.


참호전의 경우 기관총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만큼, 사실상 참호간 사이의 거리를 건너는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였기 때문에 참호간 사이를 좁히거나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과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에따라 이를 해결할 여러가지 방식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만(대표적으로 전차 및 전투기, 그리고 독가스라고 할 수 있지요), 정작 참호를 점령했을때 참호 안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것에 대한 대비는 하지 않았다는것이 문제였지요.

물론 참호안에서 쓰일 수 있는 화기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경우 참호안에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기관단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화기를 개발하였고, 이는 2차대전부터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각자 기관단총을 개발 및 생산하는 주요 이유로 부각되었습니다만, 1차대전 당시에는 기관단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을 제외하고는 다른곳에서는 사용되지가 않았지요.
 
 
미국의 경우 사실상 종전 말기에 기관단총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실제로 톰슨이 개발한 기관단총이 1919년 후반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만, 1919년이라면 이미 종전이 임박한 시기이기 때문에 대량생산 및 사용이 불가피하고, 미군 내에서도 사실상 기관단총에 대한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사용을 꺼려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이 사용한 근접용 화기는 이미 예전부터 사용한 산탄총이였지요. 산탄총의 경우 이미 잘 알려져있다 시피 장거리전에서는 굉장히 불리한 화기이지만, 근접전에서는 따라올 만한 녀석이 없을정도로 효과가 대단하였고, 그에따라 미군의 경우 참호전에서 참호내 전투를 위해서 산탄총을 제식으로 채용하는것을 선택하였지요.

윈체스터사의 Model 1897은 미군의 개인화기 개발사에 있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존 브라우닝(John Browning)이 개발한 산탄총으로서 맨 처음에는 윈체스터사의 민수용 산탄총으로 나왔던 Model 1893의 여러부분을 보강하고, 산탄에 쓰이는 화약을 무연화약으로 교체한 버전을 위해서 만들어진 녀석으로 나왔는데, 군용으로는 사실상 채용 가능성이나 목적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그 당시 미군이 구할 수 있는 산탄총 중에서는 가장 구하기가 쉽고 성능도 괜찮은 수준이였던데다가, 결정적으로 가격도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였기 때문에 미군에 채용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요.


M1897(군용으로 채택되면서 군용을 의미하는 M이 앞에 붙어 M1897이라는 제식명으로 활동)은 미군에 1897년 개발이 완성되었을 때부터 소수가 채용되기 시작하여 1차대전이 발발한 시점에서는 제식으로 채택되어 생산 및 사용이 된 녀석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 산탄총으로서는 특이하게 총검을 장착할 수도 있고, 그 당시 나왔던 산탄총들과 다르게 슬라이드를 뒤로 당겼을때 챔버에 한발을 더 넣을 수 있기 때문에(기본적인 장탄수는 5발입니다만, 빠르게 6발로 바꿀 수 있지요) 군용으로 근접전을 치룰때 굉장히 효과적인 성능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 덕분에 M1897은 나중에 해머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산탄총들(레밍턴 M870이나 윈체스터 M1912)이 등장할때까지 제식으로 사용되었지요.

M1897은 사실상 1950년대 후반 새로운 군용 산탄총들이 등장함에 따라 제식에서는 퇴역했습니다만, 군용이나 민수용으로 많은양이 판매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에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산탄총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생산이 중단될때까지 약 100만정 이상 생산된 산탄총중 하나로 남아있지요)


본문출처: 위키백과
퍼가실때는 꼭 댓글을 남겨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에일리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10.19 08:32 신고

    험; 윈체스터가 펌프 액션 식으로도 샷건을 만들다니; 정말 윈체스터 샷건의 간지란;

  2. 2009.10.20 00:12 신고

    어라..윈체스터 는 인디언 잡는 총으로 유명하지않나요??

    저런식이 아니라.. 발사손잡이 부분으로 장전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예전 터미네이터가 썻던것처럼 말이죠..??;;

    그건 윈체스터가 아닌가요?

    • 2009.10.20 00:30 신고

      T2에 아놀드가 썼던 산탄총은 윈체스터 M1887 산탄총입니다.
      일반적인 펌프액션이 아닌 스윙레버 방식이죠.
      영화 '놈놈놈'에서 정우성이 사용한 윈체스터
      M1873(산탄총 아님)과 같은 작동방식 입니다.

    • 2009.10.20 13:49 신고

      레버액션도 있고, 산탄총도 있지요 ㅇㅅㅇ

  3. 2009.10.20 00:22 신고

    M1897 산탄총은 '건슬링거 걸'에서 트리에라가 주무기로 사용했죠.
    심지어 종종 대검까지 끼운 상태로....
    2차대전후에는 M12로 이름을 바꾸고 베트남전까지 일부를 사용했습니다.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02 12:14 신고

    이거 전설의 참호 총소기 ㅋㅋ 음.. 근데 이거 미국은 자꾸 총열 위에 가스방식이 잇네요 총이



사용탄약: 12 게이지, 16 게이지, 20 게이지
전체무게: 3.62 kg
총열길이: 762 mm
장탄수: 4+1발 (기본버전), 8발(경찰용)



세계 2차대전 장비, 특히 미군의 개인화기 장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존 브라우닝이라는 사람을 한번쯤은 들어보게 되는데, 존 브라우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미군의 개인화기 다수를 디자인 및 개발해서 제식으로 채용시킨 사람으로서 그 당시에는 거의 개인화기계의 천재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사람이였습니다.

존 브라우닝의 경우 사실상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도 개인화기를 디자인하는 기술자였는데, 미군의 차기 소총 개발사업(궁극적으로 M1 개런드가 차기 미군의 제식소총으로 발탁된 그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민수용 개인화기를 중점적으로 개발하면서 여러 회사를 떠돌아다니던 일종의 프리랜서 기술자였습니다만, 2차대전 당시 유명했던것과 다르게 만든 개인화기들이 무조건적으로 민수용 총기 판매 및 제작 회사에 항상 환영해줬던 것은 아니였고, 열심히 만들었지만 해당 회사가 거절했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화기도 상당수 존재했었지요.
 
존 브라우닝은 사실 거의 모든 분야의 개인화기에 관심이 있던만큼 이 당시 여러 종류의 개인화기를 개발하고 그 개인화기를 채용시키거나 생산 및 판매를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다니는것을 주로 했었는데, 브라우닝의 경우 특히 산탄총이라는 분야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산탄총을 만들었던것으로 유명했습니다(특히 미군이 세계 1차대전 당시 사용했던 M1897을 개발했던것 때문에 일찍이 이러한 화기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지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존 브라우닝의 경우 M1897의 성공 이후 지속적으로 개인화기, 특히 산탄총 개발사업에 열을 올리게 되었는데, 1900년대 초반 브라우닝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프로젝트가 바로 "반자동 산탄총"이였습니다.

19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산탄총의 가장 큰 흐름은 펌프액션 산탄총이라는 방식이였습니다. 펌프액션의 경우 총열 밑의 튜브탄창과 그 튜브탄창에 있는 산탄을 밀어주는 슬라이드를 사용하도록 고안된 방식으로서 간단하고 신뢰성 있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일찍이 브라우닝이 M1897이라는 대박 산탄총을 만들기 전부터 여러 분야에서 쓰여온 방식이였습니다만, 사실상 여러 리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일일이 산탄을 슬라이드를 밀어서 급탄해줘야 한다는 점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했다는 평을 받은만큼, 이 펌프액션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었던 기술자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만, 대게 새로 나오게 되는 신종 산탄총들의 경우 내부구조가 복잡하거나 실질적으로 생산해봐도 그리 큰 성공을 이루지 않을거라는 회사들의 생각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었습니다만, 존 브라우닝의 경우 오랜시간 개발을 해왔었기 때문에 이러한 분야에 대해서는 깔끔한 해답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깔끔한 해답이 바로 "Recoil Operation"이였습니다.


Recoil Operation, 혹은 리코일 방식이라고 불리는 작동방식은 사실상 맥심이라는 사람이 개발한 Maxim 기관총에서 성공적으로 입증된 방식인데, 이 리코일 방식의 경우 총알이 발사됨으로서 생기는 반동을 이용하여 챔버에 있는 탄피를 배출하고 볼트가 다시 전진하면서 새로운 탄을 챔버에 급탄하는 방식으로서 그 당시 놀라운 성능으로 큰 주목을 받은 방식인만큼 여러 화기에서 후기에 사용되었습니다만, 정작 산탄총이라는 분야에서는 이 방식을 사용할 생각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존 브라우닝의 경우 사실상 개인화기 내부구조에 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화기인 기관총에서 사용되는 이 리코일 방식을 산탄총으로 이식하는것을 손쉽게 할 수 있었고, 그에따라 나오게된 처음 프로토타입 산탄총을 그 당시 유명했던 미국 내 개인화기 전문회사중 하나인 윈체스터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만, 이 프로토타입의 경우 그리 순탄치 않은 길을 걷게 됩니다.

사실상 윈체스터의 경우 존 브라우닝의 M1897을 세상에 내놓게 해준 곳으로서 존 브라우닝과 이미 예전부터 수차례 개인화기와 관련하여 손을 잡은 회사로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사실상 모험적인 시도인 이 새로운 반자동 산탄총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펌프액션이 대세인 그 시기에 반자동 산탄총을 무리하게 개발하는것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것이라 판단하여 결국 이 프로토타입에 대한 생산 및 추가적인 개발 지원을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존 브라우닝은 윈체스터에서 벗어나 또다른 회사인 레밍턴 회사를 찾아가게 됩니다만, 이 화기를 보여주기 직전 레밍턴의 CEO가 사망함에 따라 레밍턴에서도 이 녀석은 자연스레 물을 먹게 되었지요. 이러한 낙오끝에 존 브라우닝은 미국 내 회사가 아닌 타국의 개인화기 회사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이 회사가 오늘날 유명한 개인화기 회사중 하나인 FN 헤르스탈입니다.


FN 헤르스탈까지 가게된 브라우닝의 새로운 반자동 산탄총 디자인은 FN사에서 본격적으로 추가적은 개발 및 생산을 시작하여 1902년 처음으로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이 산탄총의 이름은 Auto-5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Auto-5라고도 불리고 A-5라고도 불리는데, 사실상 4발의 산탄과 추가적으로 챔버에 1발이 들어가는 산탄총이기 때문에 A-5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지요) 이 당시 이 녀석의 경우 그리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사실상 그 당시 나온 반자동 산탄총으로서는 가장 안정적인 성능과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민수용 뿐만 아니라 군용 및 경찰용으로도 판매가 시작되었고, 그러한 점들 덕분에 레밍턴과 Franchi, Savage라는 개인화기 회사들에서도 라이센스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점들 덕분에 Auto-5의 경우 오늘날 나오는 반자동 산탄총중에서는 가장 많은 판매량과 가장 긴 생산 기록을 가진 녀석으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Auto-5의 경우 사실상 브라우닝이 개발한 유일한 반자동 산탄총으로서 내부구조가 간단하고, 여러가지 산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면서 동시에 비싸지 않은 가격과 민수용으로 판매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녀석이였기 때문에 100년이나 되는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녀석으로 남게 되었고, 오늘날 민수용 반자동 산탄총으로서는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녀석이 되었지요. 궁극적으로 어느 군에서 대량으로 채용한 사례는 없습니다만, 세계 2차대전 당시 미군에 의해 소수가 쓰였고, 미국 내 사법조직에서도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 여러가지 산탄총이 등장하고 개발된지 100년이 넘었기 때문에 1998년 추가적인 생산이 중단되었고 대부분이 군용이나 정부용에서 퇴역했습니다만, 여전히 민수용으로는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퍼가실때는 꼭 댓글을 남겨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에일리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07.20 14:43 신고

    하, 저 당시에도 반자동 산탄총이라는 장르는 존재했었군요.. 지금처럼 자리를 꾀차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2. 2009.07.21 08:22 신고

    저 산탄총은 배필1942 비빌병기 엔지니어의 간지나는 샷건이다~

  3. 2009.07.29 19:00 신고

    이놈...어디서 사진을 봤는데
    은행강도인 존 딜린저일당이 사용한 무기이기도 하죠. 어디서 낯이 익나 했더니 이렇게 보네요....
    역시 림은 좀 마이너인듯 ㅇㅇ(.....)
    ....아놔 이번에 개봉하는 [퍼블릭 에너미] 꼭 보고 싶다는...존 딜린저를 소재로 한 갱스터무비 >ㅁ<!!
    톰슨! 콜트!! 모에스러운 45구경 형제에다가 조니 뎁에 크리스찬 베일까지!!
    역시 헐리우드는 노는 물이 틀리다는 ㅇㅇ(.......)

    • 2009.07.30 05:37 신고

      퍼블릭 애너미 = 공공의 적

      ;;;;;;

    • 2009.08.19 08:44 신고

      35~40 kg가 아니라 35~40 lb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화상에서는 M1919 B.A.R 총열 자른 버전을 들고다니는데, 이 녀석의 경우 10 kg가 안되는 수준의 무게이거든요 ;;;;

    • 2009.08.19 14:49 신고

      크리스찬 베일의 경우 총열을 자른 B.A.R와 드럼탄창을 장착한 M1928 둘다 사용하는것으로 나옵니다. 개머리판을 제거했는지 제거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다만 임의적으로 제거하기는 쉬운게 톰슨 개머리판이죠)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02 12:12 신고

    콜오브듀티5에서 구출댈때 처음으로 죽은넘이 들고잇던 산탄총아닌가요 ??

  5. 2012.01.20 23:44 신고

    퍼시픽어썰트에 나오는거아닌가

이전버튼 1 이전버튼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