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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30-06 스프링필드
전체무게: 7.2 kg
전체길이: 997 mm
총열길이: 457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미국 내 범죄예방 및 종교적 이유를 토대로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지속된 금주법은 미국 내 주류시장에 대한 엄격한 단속을 의미하였습니다만, 실제로는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마피아와 경찰간의 경쟁이라는 부가적인 단점을 낳았습니다. 특히 금주법이 시작되기 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자동화기들은 민수용으로 비싸기는 했지만 아무런 제약없이 구입 및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돈이 많은 마피아들에게 주로 쓰이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경찰 조직이 범죄 조직보다 화력에서 밀리는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지요.

물론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경찰조직들은 이 자동화기의 화력에서 밀리게 된 경찰들은 공권력 강화 및 마피아 진압을 목적으로 그들이 쓰고 있던 속칭 "시카고 타이프라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톰슨 기관단총을 구입하기 시작하였고, 미국 내 전반적인 강력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미 연방수사국)도 그 당시 국장이였던 후버에 의해 본격적으로 자동화기에 대한 배치가 시작되었는데, 기대와 다르게 톰슨 기관단총의 전격적 배치는 그리 큰 변화를 가져오진 못하였습니다.


톰슨 기관단총은 자동화기를 특성상 근접전에서 적을 사살하는 점에서는 효율적이라는것이 입증되었습니다만, 권총탄을 사용한다는 특성상 약간의 장갑이라도 있는 차량이라면 제대로 된 성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초반 대중에 널리 보급되고 있었던 민수용 자동차들의 경우 심한 경우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철모보다 더 두꺼운 문과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근접거리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차문을 관통하는것은 쉽지 않은 것이였고, 이는 다시 말해서 차량을 이용해서 치고빠지는 전술을 사용하는 마피아들에게는 경찰의 톰슨 기관단총은 전혀 쓸모가 없다는것을 의미하는 것이였다 할 수 있지요. 콜트는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찰을 위해 새로운 물건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콜트 모니터 자동소총입니다.

콜트사의 경우 존 브라우닝이 개발한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B.A.R)의 경우 2차대전 당시에는 전군에 보급되어 사용될 만큼 큰 인기를 끌은 물건이였습니다만, 19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군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인하여 큰 매출을 보여주진 못하였고, 이 때문에 많은 수의 B.A.R가 민수시장에 풀리는 결과를 낳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온 버전들은 군용을 그대로 민수용으로 판매하던 것인지라 무게나 부피라는 측면에서 사용하기 굉장히 껄끄러운 물건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콜트는 R80을 개발할때 FBI같은 사법조직이 범죄소탕이라는 목적으로 쓰는것을 염두하였고, 이는 콜트 모니터가 오늘날과 같은 외형을 갖게 된 주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R80 콜트 모니터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찰이 시가전에서 사용하는것을 목적으로 한지라 많은 부분에서 개량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대표적인 개량을 뽑아보자면 전체적인 길이와 부피, 그리고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총열, 개머리판, 그리고 총열용 손잡이가 교체된것을 주로 들 수 있고, 이로 인한 반동제어가 힘들것을 염두하여 기존 B.A.R에는 존재하지 않는 소염제동기(M1928에 쓰였던 컷츠 컴팬세이터 개발사가 만들었다 합니다)와 권총 손잡이가 설치된것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작동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기존의 M1918 B.A.R을 그대로 답습하였기 때문에 굳이 따지고 보자면 B.A.R의 단순한 개량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31년 개발 완료 및 생산이 시작된 콜트 모니터 자동소총은 총 125정이라는 낮은 생산숫자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중 대부분(정확히는 90정)이 후버 국장이 직접 시연사격을 하는것을 필두로 FBI에 의해 쓰이기 시작하였고, 그중 하나는 금주법 당시 대표적 범죄자중 하나였던 보니 & 클라이드를 매복 공격하는데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보니 & 클라이드 소탕작전 당시 쓰인 B.A.R와 R80들은 해당 인물들이 타고 다니던 차량에 대한 무력화를 위해 철갑탄을 장착하고 사용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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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303 브리티시
장탄수: 3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두 국가가 전쟁을 치룰 시 총력전에 돌입한다는 가정하에 본토의 제공권을 지키는것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는 적의 침략으로 정부의 수뇌부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점도 있지만, 본토 내에서 군용 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군수공장들의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2차대전 말기 높은 수준 높은 기술이 첨가된 장비를 뽑아낼 수 있는 여건이 있어도 연합군의 공습으로 생산라인에 큰 차질이 빚어 결과적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없었던 독일의 마지막은 이러한 제공권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제공권 보호의 중요성은 2차대전 말기 독일이 의도치 않게 좋은 예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전쟁 초기만 해도 이러한 상황은 독일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었습니다. 2차대전 초기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인해 프랑스가 함락되고 서유럽의 대부분이 나치 독일의 손으로 들어감에 따라 독일은 영국 본토에 공습을 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게 되었는데, 영국은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 1940~1941)으로 독일의 침략의도를 꺾을때까지 군수공장들이 폭격을 당해 생산라인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러한 군수공장 생산라인에는 대형장비들도 있었지만 리-엔필드 소총이나 브렌 경기관총 같은 개인화기들도 마찬가지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다양한 종류의 개인화기를 생산하고 있던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Royal Small Arms Factory)은 그 규모와 중요성으로 인해 독일 공군의 공습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던 상황이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개전 초기 잇따른 패배로 개인화기 무장이 부실하다 판단되었던 영국 육군을 공습 걱정없이 무장시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었는데, 이를 위해 나온것이 바로 Besal 경기관총입니다.

Besal 경기관총의 경우 그 당시 영국군의 주력 경기관총이였던 브렌 경기관총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물건입니다. 외관에서도 볼 수 있듯이 Besal의 경우 브렌과 상당히 비슷한 특징이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Besal 경기관총이 브렌을 대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영국 왕립 소화기 공장이 폭격으로 인해 생산에 큰 차질을 빚어도 영국군이 충분히 무장할 수 있는 수량의 경기관총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비록 브렌 경기관총의 수요가 부족할 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되긴 했지만, Besal의 경우 단순한 보완용 경기관총으로 개발되지만은 않았습니다. 비록 브렌이 경기관총으로서는 높은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자잘한 단점이 없는것은 아니였고, 기왕 보완품을 만드는 김에 브렌을 그대로 카피하기 보다는 약간이라도 개선점을 추가해보자고 한것이 Besal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개량 시도로 인해 Besal 경기관총은 브렌 경기관총보다 가볍고, 생산 가격이 더 저렴하며, 생산라인에서 조립 및 생산을 하는것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와 다르게 Besal 경기관총은 브렌과 같이 영국군 제식 경기관총으로 채택되는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는 Besal 경기관총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1940년 후반 독일 공군의 영국 본토 공습이 점차 줄어듬에 따라 새로운 생산라인을 가동하면서 부품 호환이 되지 않는 경기관총을 굳이 생산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영국 정부에서 내려졌고, 이에 따라 Besal 경기관총은 프로토타입 제품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이 되지 않는 운명을 맞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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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7 x 57 mm / 6.5 x 55 mm / 7.92 x 57 mm / 7.62 x 54 mm R / 7.62 x 51 mm NATO / .303 브리티시
전체무게: 9.07 kg
전체길이: 1,143 mm
총열길이: 584 mm
장탄수: 25발, 30발, 4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450발



1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전차도, 독가스도 아닌 삼각대에 거치된 중기관총이였습니다. 진흙탕 범벅이 된 참호간의 평지를 건너는 병사들에게 적의 참호에서 날아오는 중기관총의 소리와 총알은 단순히 무시할 수 없는 압박감이였고, 실제로 1차대전 당시 기관총으로 인해 죽은 사상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는것은 잘 거치된 중기관총 하나가 얼마나 전선에서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 뼈아픈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비록 1차대전 당시 참호전으로 인해 중기관총의 효율성이 입증된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기관총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화기였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무게가 무겁고 운반하기 힘들다는 점은 중기관총이 교착화된 전선에서 쓸모가 있을지는 몰라도, 급박하게 바뀌는 전장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지는 못한 만큼 보병에게 큰 두려움을 안겨준 중기관총이라는 물건도 나름 문제는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중기관총의 휴대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것이 바로 탄창 급탄식의 경기관총입니다.


탄창 급탄식의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것이 아닌 독자적으로 개발된 녀석이기 때문에 중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중기관총이 전선이 앞으로 움직이면 보병들과 같이 움직이며 지원사격을 할 수 없지만 경기관총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전선이 후퇴할 시에는 중기관총은 최악의 상황시 버리고 도망가야 하지만 경기관총은 보병들과 같이 후퇴하며 엄호사격을 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경기관총은 1차대전 당시 그리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경기관총의 특성상 쉽게 과열된다는 점과 탄창을 급탄방식으로 쓰기 때문에 지속사격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당시 나온 경기관총들의 경우 너무 무거워서 경기관총이라고 부르기 어렵거나 내구성의 문제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녀석들중 그나마 평가가 좋았던 화기가 바로 오늘 소개하는 마드센 경기관총입니다.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마드센 경기관총은 오늘날 잘 알려진 경기관총들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 가장 독특한 특징이 바로 작동방식입니다. 현대 개인화기들의 경우 반동작동식을 사용한다면 쇼트 리코일이나 롱 리코일 둘 중 하나를 사용하는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마드센은 이 두 방식을 조합한 작동방식을 채택헀다는 점이 상당히 희한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레버액션용으로 개발되어진 볼트를 사용한다는 점은 마드센이 그 당시 나온 단순한 경기관총들과 다르게 상당히 복잡하면서 정교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화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마드센에서 쓰인 작동방식은 마드센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똑같이 쓰인 기록이 없습니다).

마드센의 경우 군용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실용적 경기관총으로서 덴마크군에 1902년 채택된 이후 덴마크군의 제식 경기관총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덴마크군을 제외하고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마드센의 탄창 급탄방식을 높게 평가하며 채용하였고,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쓰인 명작이라고 할 수 있지요(노르웨이군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쓰인 마드센의 경우 내구성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 만큼 절대적으로 좋은 물건은 아닙니다). 마드센의 경우 이후 현대형 기관총들이 속속 등장함으로서 대부분의 국가들의 제식 자리에서 내려오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많은 수가 예비로 비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최근 브라질군이 공여한 마드센을 브라질 경찰이 개조하여 사용한 기록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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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26 23:25 신고

    mad(미친)
    sen?

  2. 2012.10.28 18:53 신고

    메드센하면 1930년대가 주로 생각나는... 1차대전 이후 2차대전 초반정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종종 본것 같습니다.

 

 

사용탄약: 7.92 x 57 mm 마우저
전체무게: 10.5 kg
전체길이: 1,150 mm
총열길이: 672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참호전이라고 불렸던 세계 1차대전은 최초로 기관총이 엄청난 양으로 쓰이고, 그 엄청난 양으로 인해 수백만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첫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기관총은 여럿 전쟁에서 쓰이긴 했지만,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세계 1차대전은 전투의 특징과 기관총의 장점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 거의 모든 전쟁에서 기관총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상 세계 1차대전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은 제식 기관총을 적어도 1개 이상은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됨으로서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전투에서 효과적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대세였다고 하긴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수냉식 기관총에 국한된 이야기로서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혹은 공랭식 기관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주목을 받았던 경기관총의 중요성과 다르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만, 죽치고 앉아서 총열이 과열되도록 쏘는것이 일반적이였던 1차대전 당시 전투 양상과 비교했을때 수냉식 기관총은 공랭식 기관총을 압도하는 우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2차대전까지 공랭식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들은 모두 묻혔다고 하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비록 공냉식 기관총이 수냉식 기관총에 비해 지속 사격률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1차대전 이후 참호전이 아닌 전투의 비율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무겁고 운반하기 힘든 수냉식보다는 가볍고 운반하기 쉬우면서 다수의 인원이 필요하지 않은 공랭식 기관총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냉식 기관총의 대표주자로 나온 녀석중 하나가 세계 1차대전 이후 체코군에 의해 채택된 ZB vz.26입니다.

Zb.26은 세계 2차대전이나 그 이전에 등장한 경기관총들과 큰 차이가 없는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탄창의 위치와 탄창의 작동방식이 다른 경기관총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기관총들의 경우 탄창이 아래서 위로 급탄되는것이 일반적이고, 그리 자주 보이진 않지만 2차대전 당시에는 옆에서 약실로 급탄되는 탄창을 사용하는 경기관총도 몇몇 나온적이 있는데, 무거운 소총탄을 사용하는 만큼 옆이나 밑에서 급탄되는 탄창들의 경우 탄창의 급탄불량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탄창을 최대한 품질이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점이 있었지만, 다소 약한 스프링을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이 급탄이 가능했다는 점은 Zb.26가 다른 경기관총들보다 훨씬 더 고장이 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탄창이 위에서 급탄된다는 점이 zb.26의 유일한 장점은 아닙니다. 세계 2차대전 이전에 개발된 개인화기 치고는 상당히 사수에 대한 배려가 높으면서(개머리판에 반동을 줄이기 위한 어깨 받침대가 있다던지, 총열 밑에 잡을 손잡이 대신에 열로부터 최대한 떨어진 부분에 총열 교환용 수직그립을 설치했다던지 등등) 총 자체도 신뢰성이 상당히 높기로 소문난데다가 무게도 다른 경기관총들과 비슷한 수준(하지만 수냉식 기관총들보다는 훨씬 가볍다는 점) 덕분에 체코군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와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에 합병된 이후에는 독일국방군이 MG 26(t)라는 이름으로 제식명을 부여하면서 섰고, 영국군이나 일본군의 경우 2차대전 당시 zb.26을 기반으로 자국산 경기관총을 만들어 제식으로 사용한 만큼 zb.26은 2차대전 당시 경기관총 역사에 나름 큰 영향을 끼친 물건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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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2 16:14 신고

    묘하게 간지난다, 탄창 위에 달린거 말이죠



사용탄약: 7.62 x 54 mm R
전체무게: 13.0 kg
전체길이: 1,272 mm
총열길이: 605 mm
급탄방식: 47발 쟁반탄창 / 200, 25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600발



탄창을 급탄하도록 고안된 분대지원화기들은 실질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실용성에 대해서 많은 의문점이 제기된 몇 안되는 화기중 하나입니다. 탄창이라는 특성상 빠른 급탄과 재장전이 가능하여 실전에서 사용했을 시 다양한 장점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벨트를 급탄하는 화기들과 비교했을때 지속사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은 이러한 종류의 화기가 개발이 되는 순간부터 실제로 군용으로 제식 배치가 될때까지 상당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 때문인지 몰라도 무서운 속도로 나오던 탄창급탄식 분대지원화기들 중에서 현재 군용으로 널리 쓰이는 녀석들은 별로 없는것을 볼 수 있지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무서운 공세를 막아내고 반격을 시작한 소련의 경우 탄창급탄식 분대지원화기의 딜레마를 심하게 겪은 몇 안되는 국가중 하나였습니다. 소련군의 경우 2차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개발이 끝나 생산이 시작되었던 데그차료프의 DP와 개량형인 DPM을 사용하고 있었고, 총 자체는 신뢰성이나 내부구조가 단순하여 군용으로 쓰기 좋다는 평가를 받은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쟁반 탄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DP/DPM은 나름 고충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DP/DPM이 벨트를 급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거나 벨트급탄식 지원화기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벨트급탄식 지원화기로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쓰기 시작한 PM M1910 맥심 중기관총이나, 비록 제대로 된 생산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 개발을 완료했던 DS-39같은 화기들도 있었기 때문에 지속사격을 위한 기관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물론 여기에는 전쟁 후반부에 생산이 시작된 SG-43 고류노프도 포함됩니다), 맥심이나 DS-39같은 경우 분대와 함께 움직이며 쓸 수 있는 분대지원화기가 아닌 진지사격을 고안해서 만든 중기관총이였던지라 빠른 움직임을 가져야 하는 분대로서는 쉽게 운용할 수 없었던 물건이고, 자연스레 분대지원화기로 쓰이는 DP/DPM에 벨트급탄 방식이 적용되는것을 원하는게 자연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요청으로 인해 등장한 물건이 바로 RP-46이라는 이름의 경기관총입니다.

RP-46의 경우 이름은 DP/DPM와 상당히 다르게 나왔지만 실질적인 디자인은 데그차료프의 DP/DPM을 그대로 사용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RP-46의 경우 전작과 비교했을때 한가지 개량을 거쳤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결정적 차이점이 바로 벨트급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벨트 급탄용 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RP-46의 경우 위에서 설명했듯이 DP/DPM과 똑같은 디자인과 작동방식을 사용하지만 벨트급탄 부품을 사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급탄 키트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소련군에 의해 쓰였던 SG-43 고류노프 중기관총용의 벨트(200발과 250발 버전이 있지만 더 길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를 사용한다는 점이 DP/DPM와 다르게 지속사격이 가능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DP나 DPM 자체가 사실상 경량화급 분대지원화기였기 때문에 벨트 급탄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총열같은 쪽을 가볍게 만든만큼 RP-46의 경우 지속적인 사격이 가능하도록 총열을 굵게 하고 운반손잡이도 새로 장착하는등 나름 많은 쪽에서 개량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 덕분에 RP-46의 경우 가벼운 무게에 맥심이나 고류노프같은 중기관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지속사격을 보유한 완벽한 분대지원화기가 되어야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운반을 쉽게 하고 비상시 쟁반탄창을 사용할 수 있게 벨트 급탄 키트는 아무런 문제없이 탈부착이 가능하게 설계를 했습니다만, 총열을 비롯해서 몇몇 부품이 좀 더 다양한 능력을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무게를 늘렸고, 이로 인하여 경기관총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거운 무게를 가졌다는 단점이 존재하지요. 물론 이러한 점을 염두하고 개발했던 지라 실질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경기관총으로서 쓰기에는 조금 버겁다는 점과 더불어 2차대전 이후 7.62 x 39 mm M43탄이 대량으로 보급됨에 따라 이를 사용하는 분대지원화기인 RPK와 RPD, 그리고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PKM에 의해 자리를 물려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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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1.26 18:25 신고

    총열이 나팔관 (응?) 같이생겻으니 왠지 소련거라는게확신이되군요..

    • 2011.12.02 09:07 신고

      뭐 이쪽은 나팔모양의 소염기를 애용하는게 현실이니....
      그렇다고 러시아가 아닌곳이 소염기를 이렇게 만들지 않는건 아닙니다

  2. 2011.11.26 22:09 신고

    이 무게는(13kg이라니!) 어디 거치하고 쏘라는거지, 들고 쏘기엔 좀 거시기 합니다...(냉온수기 물통 큰게 18.9L인데 물의 밀도를 1g/ml로 잡으면 대략 18.9kg이라는 계산인데, 그걸 들고 휘두를 수 있는 사람만 들고 쏠 수 있겠군요)

  3. 2012.01.31 09:43 신고

    근데 정작 중요한 총열교환 가능 개조를 안하시다니... 고자라니!



사용탄약: 7.62 x 54 mm R
전체무게: 10.5 kg
급탄방식: 벨트
발사속도: 분당 1800발(ShKAS) / 분당 3000발(UltraShKAS)

 
특정 상황에서 쓰이는 개인화기는 일반적으로 보병들이 들고다니는 개인화기보다 더 많은 능력이나 요구조건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특수 상황에서 쓰이도록 개발되었고 사용하는 빈도가 그 상황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일반적으로 이렇게 특수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개인화기는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보병용 제식 개인화기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나 작동방식, 혹은 전혀 다른 스펙을 보유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정 화기들의 구조적 특이성은 이러한 화기들이 그 상황에 맞춰서는 꽤 좋은 성능이나 결과를 보여줄 지는 몰라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인 범용성에서는 꽤 떨어지는 단점을 보유한다고 할 수 있지요(다만 아무래도 한곳에서만 집중적으로 쓰이고, 아주 레어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용도로 쓰질 않기 때문에 이러한 화기들은 생각보다 낮은 불평/불만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군용 대형장비에서 쓰이도록 고안된 기관총들의 경우 이러한 "특수 목적을 위한 특수 화기"의 가장 대표적인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관총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보병용 기관총과 별반 차이가 없긴 합니다만, 이쪽은 보병이 들고 다니고 쏘는 기관총과 다르게 개발시에 고려해야 하는 디자인도 다르고, 장착될 장비의 특성상 어떤 스펙을 높여야 하는지도 다르며, 결정적으로 몇몇 경우에는 인간이 쏘는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서 작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형장비에 장착하기 위해 나온 기관총들과는 사뭇 다른 특징이나 모양새를 보인다고 할 수 있지요. 


항공장비의 경우 방어용이나 기총사격용으로 개발하는 기관총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야 하는 녀석중 하나입니다. 전투기 같은 경우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장갑이 날아 다니는 장비의 특성상 지상에 있는 차량들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낮은 고도에서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지 못하고,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지상에 있는 적을 공격할때는 빠른 기동을 하면서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도록 빠른 발사속도를 자랑하는 기관총을 사용해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방어용으로 후방에 달리는 기관총도 적 항공장비를 공격할때 단시간에 최대한 화력을 퍼부어 효과적으로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기총소사용 기관총과 마찬가지로 발사속도가 총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항공기용 기관총이 다른 보병용 기관총들 보다 빠른 발사속도를 원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의 발사속도를 끌어 올리는것은 총의 내부구조나 작동방식에서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딱히 어느쪽이 발사속도를 최고로 낼 수 있는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힘듭니다만, 총열과 약실이 1개씩 있는 일반적인 기관총의 구조로서는 어느정도 한계점을 지나면 총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발사속도가 제한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상 약실에서 탄을 급탄하고, 그것이 발사되면서 총열을 지나가는 시간동안 탄피의 배출과 더불어 새로운 탄약의 급탄이라는 일반적인 기관총과, 1개씩 총열과 약실을 사용하는 디자인상 아무리 빠르게 총알이 발사되게 만들려고 해도 분당 1500발 이상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힘들며, 만약 이 이상으로 발사속도를 올리게 되면 총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총이 고장나거나 부서지는등 아무리 주어진 환경이나 기술이 좋다고 해도 총에는 발사속도와 관련된 한계가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빠른 시간동안 총알을 발사해서 적기를 맞추거나 지상을 공격해야 하는 전투기의 입장으로서는 이보다 더 빠른 발사속도를 가진 화기를 찾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등장한 화기범주가 바로 "게틀링"과 "리볼버 기관총"이라는 장르입니다.


게틀링의 경우 잘 알려져 있는 다총신 화기의 장르로서, 약실은 하나만 존재하지만 총열이 여러개로 돌아가면서 탄약을 발사하기 때문에 일반 기관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높은 화력을 자랑한다는 장점을 가졌습니다만, 여러모로 쓰기가 불편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일반적인 보병용 기관총으로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만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장르이고(게틀링을 현대화 하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린것은 이를 충분히 증명한다고 할 수 있지요) 부피도 기존의 기관총과 비교했을때 상당히 커지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와 기동성을 유지해야하는 프로펠러 전투기에서는 쓰기가 굉장히 곤란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게틀링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구조가 바로 리볼버 기관총이라는 장르라고 할 수 있지요.

리볼버 기관총은 게틀링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쪽은 총열이 여러개고 나뉘는 대신에 약실만 여러개로 나뉘고, 약실이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탄을 발사하고 회전하는동안 탄피를 배출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일반적인 게틀링이 다총신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피가 큰것과는 다르게 약실만 여러개로 조정해야 하는 장점 덕분에 부피도 적고 만드는데 그리 큰 문제를 발생시키지도 않으면서, 추가적으로 가격도 게틀링과 비교했을때 상당히 저렴하다는 장점을 가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ShKAS 기관총은 리볼버 기관총이라는 장르를 사용한 화기중 소련에서는 가장 유명한 녀석으로서 무려 1934년에 개발이 완료된, 기발한 디자인과는 다르게 꽤 오래전에 개발된 기관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리볼버 기관총의 특성인 "1총신 다약실" 방식을 제대로 사용해서 기본 버전인 ShKAS의 경우 분당 1800발, 이보다 더 빠른 발사속도를 갖추기 위해 개량된 UltraShKAS는 분당 3000발이라는 높은 발사속도를 자랑한다는 장점을 가졌으면서, 동시에 게틀링과 다르게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무게도 가벼운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실제로 4정의 ShKAS 기관총에 각각 650발의 탄약을 탑재했을때 총 무게는 160 kg밖에 되지 않았다는 수준으로 만드는것이 가능함에 따라, 전투기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게틀링에 버금가는 발사속도를 갖추게 된것은 확실한 디자인적인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ShKAS의 경우 이러한 장점을 가진것과 동시에 단점도 꽤 많이 가졌던 녀석으로 평가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일단 구조적으로 좀 복잡한 면이 있고, 설계당시 디자인을 독특하게 만든것 때문에 이론상 ShKAS의 경우 일반적인 총이 몇가지 변수로 인하여 잼이 걸릴 수 있던것에 반해 이 녀석은 48가지의 이유로 잼이 걸릴 가능성이 많았다고 합니다(실제로 UltraShKAS의 경우 발사속도를 리볼버 기관총으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린것 때문에 다른 ShKAS와 다르게 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UltraShKAS의 경우 ShKAS의 성공과 다르게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 못했지요). 이와 동시에 ShKAS의 경우 리볼버 기관총의 특성상 오랜시간동안 연사를 하면 총열이 금방 달아오르고, 탄약소모도 꽤 빠른지라 전투기에서 오래 쓰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지요.


이러한 점 때문에 ShKAS의 경우 세계 2차대전 당시 I-153 전투기와 I-16 전투기를 비롯해 다른 종류의 폭격기나 전투기에도 꽤 많은 수가 장착되어 사용된 기록은 있습니다만, 놀라운 디자인과 발사속도가 가진 장점과 다르게 그렇게 크게 성공은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ShKAS의 기본적인 구조나 디자인은 이후 소련이 ShVAK 리볼버 기관포를 개발하는데 큰 참고가 되었다고 하기 때문에 소련군의 전투기 무장 발달사에는 꽤 큰 영향을 미친 녀석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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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9 11:25 신고

    공중전에서 적의 꼬리를 딱 잡았는데 총이 잼이 걸린다면... ㄷㄷ



사용탄약: 7.62 x 54 mm R
작동방식: 가스 작동식, 자동 리볼버 방식
급탄방식: 벨트
발사속도: 분당 3600발



특정 상황에서 쓰이는 개인화기는 일반적으로 보병들이 들고다니는 개인화기보다 더 많은 능력이나 요구조건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특수 상황에서 쓰이도록 개발되었고 사용하는 빈도가 그 상황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일반적으로 이렇게 특수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개인화기는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보병용 제식 개인화기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나 작동방식, 혹은 전혀 다른 스펙을 보유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정 화기들의 구조적 특이성은 이러한 화기들이 그 상황에 맞춰서는 꽤 좋은 성능이나 결과를 보여줄 지는 몰라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인 범용성에서는 꽤 떨어지는 단점을 보유한다고 할 수 있지요(다만 아무래도 한곳에서만 집중적으로 쓰이고, 아주 레어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용도로 쓰질 않기 때문에 이러한 화기들은 생각보다 낮은 불평/불만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군용 대형장비에서 쓰이도록 고안된 기관총들의 경우 이러한 "특수 목적을 위한 특수 화기"의 가장 대표적인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관총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보병용 기관총과 별반 차이가 없긴 합니다만, 이쪽은 보병이 들고 다니고 쏘는 기관총과 다르게 개발시에 고려해야 하는 디자인도 다르고, 장착될 장비의 특성상 어떤 스펙을 높여야 하는지도 다르며, 결정적으로 몇몇 경우에는 인간이 쏘는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서 작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형장비에 장착하기 위해 나온 기관총들과는 사뭇 다른 특징이나 모양새를 보인다고 할 수 있지요. 


항공장비의 경우 방어용이나 기총사격용으로 개발하는 기관총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야 하는 녀석중 하나입니다. 전투기 같은 경우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장갑이 날아 다니는 장비의 특성상 지상에 있는 차량들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낮은 고도에서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지 못하고,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지상에 있는 적을 공격할때는 빠른 기동을 하면서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도록 빠른 발사속도를 자랑하는 기관총을 사용해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방어용으로 후방에 달리는 기관총도 적 항공장비를 공격할때 단시간에 최대한 화력을 퍼부어 효과적으로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기총소사용 기관총과 마찬가지로 발사속도가 총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항공기용 기관총이 다른 보병용 기관총들 보다 빠른 발사속도를 원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의 발사속도를 끌어 올리는것은 총의 내부구조나 작동방식에서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딱히 어느쪽이 발사속도를 최고로 낼 수 있는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힘듭니다만, 총열과 약실이 1개씩 있는 일반적인 기관총의 구조로서는 어느정도 한계점을 지나면 총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발사속도가 제한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상 약실에서 탄을 급탄하고, 그것이 발사되면서 총열을 지나가는 시간동안 탄피의 배출과 더불어 새로운 탄약의 급탄이라는 일반적인 기관총과, 1개씩 총열과 약실을 사용하는 디자인상 아무리 빠르게 총알이 발사되게 만들려고 해도 분당 1500발 이상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힘들며, 만약 이 이상으로 발사속도를 올리게 되면 총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총이 고장나거나 부서지는등 아무리 주어진 환경이나 기술이 좋다고 해도 총에는 발사속도와 관련된 한계가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빠른 시간동안 총알을 발사해서 적기를 맞추거나 지상을 공격해야 하는 전투기의 입장으로서는 이보다 더 빠른 발사속도를 가진 화기를 찾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등장한 화기범주가 바로 "게틀링"과 "리볼버 기관총"이라는 장르입니다.


게틀링의 경우 잘 알려져 있는 다총신 화기의 장르로서, 약실은 하나만 존재하지만 총열이 여러개로 돌아가면서 탄약을 발사하기 때문에 일반 기관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높은 화력을 자랑한다는 장점을 가졌습니다만, 여러모로 쓰기가 불편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일반적인 보병용 기관총으로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만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장르이고(게틀링을 현대화 하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린것은 이를 충분히 증명한다고 할 수 있지요) 부피도 기존의 기관총과 비교했을때 상당히 커지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와 기동성을 유지해야하는 프로펠러 전투기에서는 쓰기가 굉장히 곤란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게틀링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구조가 바로 리볼버 기관총이라는 장르라고 할 수 있지요.

리볼버 기관총은 게틀링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쪽은 총열이 여러개고 나뉘는 대신에 약실만 여러개로 나뉘고, 약실이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탄을 발사하고 회전하는동안 탄피를 배출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일반적인 게틀링이 다총신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피가 큰것과는 다르게 약실만 여러개로 조정해야 하는 장점 덕분에 부피도 적고 만드는데 그리 큰 문제를 발생시키지도 않으면서, 추가적으로 가격도 게틀링과 비교했을때 상당히 저렴하다는 장점을 가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Savin-Narov라는 이름의 중기관총은 이러한 리볼버 기관총의 장점을 모아서 만든 프로토타입 기관총으로서, 소련에서는 거의 최초로 만들어진 소총탄을 사용하는 리볼버 기관총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인데, 이 녀석의 경우 크기는 일반 기관총과 큰 차이가 없게 만든 덕분에 전투기에 장착하는건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만 생긴것과 다르게 이 녀석은 분당 3600발이라는, 일반 기관총에서는 절대로 발휘할 수 없는 빠른 발사속도를 가진것 덕분에 단시간동안 엄청난 화력을 지상이나 적에게 퍼부을 수 있다는 특징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요.

Savin-Narov 중기관총은 이러한 빠른 발사속도와 작은 크기를 자랑한 덕분에 세계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의 전투기에 실려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만, 실제로 어떤 전투기에 장착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생산되어 언제까지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성능이나 평가는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녀석이 나온 시기와 비슷하게 ShKAS 기관총이 나왔고, 둘의 작동방식이 많은 선에서 비슷하거나 동일한것으로 보아서 SN 기관총은 프로토타입정도로 나왔고, 이후 ShKAS가 이를 기반으로 개발되어 성공적으로 소련군 전투기 무장으로 쓰였다는것이 정설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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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8 x 50 mm R Lebel
전체무게: 9.07 kg
전체길이: 1,143 mm
총열길이: 470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240발



참호전이라고 불렸던 세계 1차대전은 최초로 기관총이 엄청난 양으로 쓰이고, 그 엄청난 양으로 인해 수백만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첫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기관총은 여럿 전쟁에서 쓰이긴 했지만,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세계 1차대전은 전투의 특징과 기관총의 장점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 거의 모든 전쟁에서 기관총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상 세계 1차대전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은 제식 기관총을 적어도 1개 이상은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됨으로서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전투에서 효과적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대세였다고 하긴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수냉식 기관총에 국한된 이야기로서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혹은 공랭식 기관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주목을 받았던 경기관총의 중요성과 다르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만, 죽치고 앉아서 총열이 과열되도록 쏘는것이 일반적이였던 1차대전 당시 전투 양상과 비교했을때 수냉식 기관총은 공랭식 기관총을 압도하는 우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2차대전까지 공랭식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들은 모두 묻혔다고 하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세계 2차대전에 비하면 꽤 적은, 그리고 낮은 생산량을 기록했지만 1차대전 당시에도 "보병이 들고 같이 움직이며 쏠 수 있는 기관총"에 대한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이에 몇몇 군에서는 독자적으로 경기관총을 발명하거나 다른 곳에 제작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제식 경기관총으로써 쓰이고, 다른 연합군에도 많은 양이 퍼졌던 쇼샤라는 경기관총도 이러한 경기관총의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나온 녀석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쇼샤의 경우 경기관총이라는 범주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세계 1차대전 이전에 개발이 시작된 녀석이다 보니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나 우습게 생기고 전체적인 작동방식도 많은 면에서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러 특징들을 보면 이 녀석도 확실히 경기관총이라는 범주의 메리트를 확실히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일단 이 녀석은 경기관총이라는 이름에 맞게 무게가 9 kg정도로서 비록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 무거운 수준이지만 그 당시 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가벼웠다는 평가를 받았고, 발사속도는 약 분당 240발로서 빠른 발사속도로 반동 컨트롤이 어렵지 않아 자동사격시에도 정확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20발 박스탄창을 사용함으로서 총열에 대한 과열걱정이 사라지고 운용인원도 벨트식을 사용했을때와 다르게 1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그 당시 쓰였던 중기관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괜찮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쇼샤의 경우 이러한 장점들과는 다르게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녀석으로 기억된다고 할 수 있는데, 당장 작동방식이라고 쓴 롱 리코일의 경우 꽤 긴 총열과 노리쇠과 긴 거리를 왕복하는 특징 때문에 반동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총의 경우 꽤 조밀하게 설계되고 탄창도 잔탄 확인을 위해 옆쪽에 구멍이 크게 뚤어놓음으로서 1차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후였던 진흙탕에서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의 경우 탄창 뒤에 보조 손잡이가 달린 기형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서서 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고, 경기관총용으로 운용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 특수 제작된 탄창의 설계 조차도 기형적으로 만들어져 재장전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한 탄창당 담을 수 있는 탄약의 양이 20발 밖에 되지 않는등 끊임없는 문제점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문제는 사실상 쇼사가 "세계 1차대전 당시 쓰인 가장 최악의 기관총"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세계 1차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새로 개발한 경기관총인 FM 24/29에 의해 대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총 자체의 성능은 둘째치더라도 그 당시 경기관총을 만드는 곳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생산속도가 빠른 녀석인지라 쇼샤의 경우 성능과 별개로 많은 양이 생산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1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연합이였던 미국이나 러시아같은 곳에서도 꽤 많은 수를 수입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물론 실제 성능을 확인하고 나서는 대부분 폐기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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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7 13:46 신고

    생긴건 그럴싸 한데
    총탄을 보니 조루보다 더 심한 발기부전 정도?

  2. 2011.12.02 22:23 신고

    들은 바로는 미군용 '30.06 스프링필드'를 사용하도록 만든 모델은 말 그대로'개악'이라고 하던데
    총이 고장나는 건 둘째치더라도 내부부품이 박살나는 게 흔하다고 들었스비낟.



사용탄약: .30-06 스프링필드
전체무게: 47.0 kg(총, 삼각대, 탄약, 냉각수 포함)
전체길이: 981 mm
총열길이: 609 mm
급탄방식: 25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450발 ~ 600발



수냉식 기관총이라는 물건은 기관총이 얼마나 놀라운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기관총의 범주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사실상 세계 최초로 큰 성공을 거둔 베스트 셀러 기관총인 맥심 기관총의 경우 기관총이라는 분야의 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냉식이라는 방식을 사용하였고, 세계 1차대전 당시를 대표하는 녀석들중에 수냉식 기관총은 무조건 들어가는것만 봐도 이 녀석이 얼마나 전투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는 전선을 뒤바꿀 수도 있었는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수냉식 기관총이 세계 1차대전을 대표하는 물건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1차대전 당시 처음으로 도입된 참호전이라는 전투 개념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적과 대치하면서 참호를 파고, 참호 안에 여럿 기관총을 설치해 돌격하는 적을 소탕하는 시점에서 수냉식 기관총은 공랭식 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성능, 그러니깐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많은 양의 총알을 뿜어낼 수 있고, 총열을 바꿀 필요없이 냉각수만 바꿔주면 계속 사격하는게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은 분명 한 자리에서만 수천명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1차대전의 전투양상에 가장 적합한 물건으로 자리잡게 되었지요(실제로 1차대전 당시 가장 많은 적을 죽인 무기가 수냉식 기관총이였다는 것을 보면 이 녀석이 생각보다 꽤 쓸모있고 무서운 녀석이라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냉식 기관총이 세계 1차대전을 기점으로 엄청난 양이 팔리는 베스트 셀러 범주가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기관총이라는 장르는 꽤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유명세를 타서 만들어진 녀석들중 하이럼 맥심의 수냉식 중기관총이 가장 성능이 좋고 괜찮다는 평가를 받아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맥심의 디자인은 이후 세계 1차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 러시아, 그리고 심지어 중국까지 맥심의 라이센스 버전이나 이 녀석을 기반으로 한 버전을 만듬으로서 수냉식 중기관총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세계 1차대전 당시 맥심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중기관총들은 전선에서 수천명 이상의 적군 병사들을 학살하면서 그 성능을 몸소 입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들이 무조건 훌륭한 성능과 내구성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맥심의 디자인의 경우 수냉식 총열을 사용함으로서 지속 사격시간이 높아졌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무게가 병사 혼자서 운용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높아졌다는 단점이 있었고(이 녀석들을 개량하여 좀 더 가볍게 만들려는 녀석들, 예를들어 삼각대나 운반대를 제거하고 양각대를 달았던 MG08/15같은 녀석들 조차도 무겁다는 평을 받게 됩니다), 리코일 방식이라고 해서 반동을 이용하여 총기내 부품을 움직이기 때문에 크랭크식 장전 손잡이가 발사시 빠르게 왕복해 사수의 손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등 여러가지 자잘한 문제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단점을 해결하고 조금 더 나은 성능을 가지기 위해서 등장한 녀석이 바로 M1917이라는 이름의 중기관총입니다.


미국 개인화기 발달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 브라우닝이 디자인 및 개발한 M1917 중기관총은 사실 맥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녀석입니다. 물론 맥심과 같이 삼각대를 사용하고 수냉식 총열을 사용하는 중기관총이라는 기본적인 특징, 그리고 반동을 이용한 작동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은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를 제외하고는 존 브라우닝은 애초에 M1917을 개발할때부터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만(심지어 리코일 작동방식도 맥심이 만든 작동방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특허도 따로 나와있는 상태입니다), 생김새의 비슷함으로 인하여 맥심 기관총의 미국 라이센스 버전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지요(실제로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미군은 이 녀석에 대한 흥미조차 없었고, 결국 존 브라우닝은 1차대전 이후 미군의 새로운 중기관총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점 덕분에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1차대전 당시 미군의 차기 중기관총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온 M1917은 그 이전에 쓰였던 어떠한 중기관총들보다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미군의 경우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사용하였던 기관총들의 성능이 그렇게 좋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고(미군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맥심 중기관총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하였고, 이 녀석 이외에도 다른 나라들에서 개발 및 채용되었던 기관총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M1914 호치키스 중기관총이나 쇼사 경기관총 등등을 소수 구입해서 사용하였지요), 실제로 좋은 녀석이 나왔다로 할 지라도 그 당시 미국에서 나온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제식으로 채용하기가 뭐했고, 이러한 상황 덕분에 괜찮은 성능을 가진 M1917은 미군의 차기 중기관총으로 제식화되어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지요(물론 그렇다고 해서 M1917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시대를 잘만나 성공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맥심 및 맥심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중기관총들보다 훨씬 가벼우면서 조준기를 개량해 정확도도 높이고, 내구성도 굉장히 높아 첫 테스트와 두번째 테스트에서 각각 2만발과 2만 1천발을 쉴새없이 사격하고도 고장을 일으키지 않는등무서운 성능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M1917 중기관총은 1차대전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녀석이였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별로 쓰이지 못하고 다음 일어난 전쟁인 세계 2차대전까지 기다려야 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는데, 비록 1917년 제식화가 되었어도 대량 생산에 대한 적합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약 2천정밖에 사용되지 못했고, 이 마저도 사실상 약 3달정도밖에 쓰이지 못하여 실전 데뷔는 성공적으로 치루진 못했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세계 2차대전 당시 이 녀석과 이 녀석을 좀더 가볍게 만든 M1919 브라우닝 공랭식 경기관총은 미군의 제식 기관총으로 큰 활약을 했고, 세계 2차대전 당시 미군에서 쓰인 이후로 여러 나라에 판매되어 사용되는등 꽤 괜찮은 판매실적을 자랑하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녀석의 주 고객이였던 미군은 세계 2차대전 이후 한국전은 물론이고 베트남전까지 제식 및 비제식으로 사용했으며, 꽤 많은 버전이 이후 남베트남군에 지급되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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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9 10:22 신고

    나..나는 먼소리인지 모르겠어...
    근데 저렇게 앞이 큰놈이 한국전쟁과 배트남전에서 활약했다는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능!!
    고로 아무리 무겁더라도 쓸만하면 장땡........

  2. 2010.05.19 21:51 신고

    요것이 존 바실론이 들고 잽스를 때려잡은 바로 그 물건!



사용탄약: .30-06 스프링필드

전체무게: 14.7 kg

전체길이: 826 mm

총열길이: 610 mm

급탄방식: 25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400 ~ 500발

 

 

 

M1919시리즈는 2차대전 당시 미군 보병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게 쓰인 분대지원화기중 하나입니다. 존 브라우닝에 의해 개발되어 세계 1차대전 당시 미군의 제식 중기관총으로 쓰였던 M1917의 몸통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지만, 수냉식 총열로 인하여 무게가 무거워 분대지원화기로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던 M1917과 다르게 공냉식 총열을 사용하고 삼각대에 걸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M1919은 중기관총으로서의 지속사격력은 상실하였지만, 그만큼 가벼워져서 3명 이상 운용할 필요없이 사수와 부사수만으로 충분히 운용이 가능한(물론 탄약은 부사수와 다른 제 3자가 같이 들어야 하는 상황) 최초의 기관총으로 나왔고, 이 덕분에 M1919는 미군이 개발한 경기관총으로서는 최초로 제식으로 등록되어 많은양이 세계 2차대전과 한국전 당시 쓰이는 행운을 엊게 되었지요(물론 이건 기본버전의 이야기이고, 나중에 개발된 NATO전용 제식탄인 7.62 x 51 mm NATO탄을 사용할 수 있는 버전은 무려 1990년대 초반까지 쓰이게 됩니다)

M1919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버전인 M1919A4가 이렇게 큰 성공을 가질 수 있었던 주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삼각대의 사용과 공냉식 총열의 사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삼각대를 사용함으로서 빠른 거치와 이동이 가능하고, 수냉식 총열을 사용함으로서 무게를 줄여 빠른 이동시간을 가지게 한다는것은 그 당시 미군이 가진 기관총중에서는 가장 혁신적인(물론 전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그렇게 혁신적인것도 아니였지만) 녀석이라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만, 이 특징중 삼각대를 사용한다는 점은 단지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야기했던 녀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M1919는 삼각대를 기본적으로 사용하도록 고안되어 나온 녀석이다 보니 일반 경기관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개머리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개머리판이 없어짐으로서 전체길이가 짧아 휴대성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생겼지만, 이와 동시에 삼각대가 없을때에는 반동제어를 효과적으로 하여 명중률을 높이지는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물론 M1919 자체의 무게 특성상 아예 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삼각대를 거치한 상태와 비교했을때는 확실히 정확도가 떨어지게 되지요). 이와 동시에 삼각대 자체도 부사수가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번거로운 점이 있었고, 경기관총의 특성상 삼각대보다는 차라리 양각대가 오히려 더 쓸모있는 옵션이 아닌가하는 의문점(사실 경기관총에 삼각대를 다는건 미국이나 하는 짓이였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냥 양각대를 다는것으로 해결을 보았었습니다)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바리에이션이 바로 M1919A6이라는 녀석입니다.

M1919A6은 사실상 M1919의 바리에이션중 하나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동방식이나 성능은 그대로입니다만, 몇가지 특징이 바뀌어 M1919A4가 가졌던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녀석의 경우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인 M1919하면 떠오르는 삼각대가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양각대를 총열에 달아주고 개머리판을 달아줌으로서 좀더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그리고 추가적으로 서서 쏘기에 편하게 총열 교환 손잡이도 따로 부착하는등, 거치용이 아니라 일반적인 자동소총처럼 쓸 수 있게 디자인을 고친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점 덕분에 M1919A6은 기존의 M1919이 가지지 못했던 장점을 몇가지 새로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보병 2명이서 삼각대와 총을 따로 운반해야 했던 M1919 시리즈와 다르게 A6부터는 총을 혼자서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부사수는 탄약만 들고 다니면 된다는 점(물론 사수 혼자서 탄약과 총을 동시에 들고 다닐수도 있습니다)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M1919A4의 무게(삼각대를 포함하면 약 20 kg)보다 훨씬 가벼운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점 덕분에 공수부대같이 무게가 가벼운 화기만 소지해야 하는 부대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특징도 새로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M1919A6은 발상은 굉장히 좋았던 녀석입니다만, 이러한 발상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실제로 전투에 투입되는 시기는 종전이 임박한 1945년 초반이였기 때문에 생산량은 2차대전 기간동안 약 4만 3천정밖에 되지 않았고, 이러한 문제 때문에 A6은 2차대전 당시에는 그렇게 많은 수가 보급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점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이후 발발한 한국전 당시 빠르게 운용할 수 있는 경기관총이 필요한 상황때문에 A6가 다시 전선에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한국전 동안에는 꽤 많은수가 현역으로 활동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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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5 06:03 신고

    헉헉,.. 우리 1919짱@@
    가..가같구... 시퍼 핡핡핤.;;

  2. 2010.03.16 20:25 신고

    @_@).. 멋쟁이 에어리언님...

    죄송합니만..궁금한점이있어서 이렇게 적어봅니다..본문과 상관없는 리플이여서 죄송할 따름이구요..ㅠㅠ

    혹시 알고계신지 모르겟지만..

    일반적인...부비츄렙 과.. IED급조폭팔물) 의 차이점이 뭔가요?

    혹시..알고계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ㅠㅠ/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 2010.03.18 06:37 신고

      부비트렙은 일반적으로 정규군이나 게릴라 모두 사용하는 것이고, IED는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처음 등장한 녀석이지요. 뭐 부비트렙중에서도 박격포탄이나 곡사포탄을 사용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군용으로 쓰이는 부비트렙의 경우 C4같은 플라스틱 폭탄을 사용하는데 반해, IED는 전쟁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자중에서 폭발성을 지닌 녀석들(박격포탄이나 포탄의 경우 전쟁지역에서는 꽤 구하기가 쉽습니다. 특히나 불발탄의 경우 꽤 많고 쓸데도 없는지라 이런데 쓰이지요)을 가지고 만드는게 일반적이지요 ㅇㅅㅇ

  3. 2010.03.26 16:03 신고

    어? 전에 본거 같은데, 왜 새글 목록에 있지? -ㅅ-

  4. 2010.08.16 16:21 신고

    오..멋진발상...근데 1919같이 개머리판없는 모델은 정말 삼각대없으면 눈돌아갈듯..



사용탄약: 7.62 x 54 mm R
전체무게: 11.3 kg (DP/DPM), 21.3 kg (RP-46)
전체길이: 1,266 mm
총열길이: 605 mm
장탄수: 47발 쟁반탄창 (DP/DPM), 200/250발 벨트 (RP-46)
발사속도: 분당 600발
 
세계 1차대전에서 소련군은 여러가지 개인화기/중화기를 실전에 배치하면서 세계 2차대전까지 대부분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계속 사용했던 것은 M1891/30 모신나강 볼트액션 소총과 M1910 맥심 중기관총이였습니다. 이 두 녀석은 여러모로 서로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던 개인화기들인데, 지속사격력은 맥심이 맡고 기동성은 M1891/30 모신나강이 맡는다는 점이였습니다.

실제로 군부도 "맥심과 모신나강이면 충분하다"라는게 전반적인 의견이였고, 이러한 점은 세계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속됩니다만, 당장 분대지원화기가 속속 다른나라들에서 등장하는 시점에서 세계 1차대전 유물들을 가지고 전쟁을 할 수 없는것이란 것을 소련군은 잘 알고 있었고, 그 당시 유명한 기술자중 한명인 데그차례프를 데려다가 "가볍고 이동이 빠르지만 맥심처럼 지속사격이 어느정도 가능한 녀석"을 개발하라고 지시하는데, 그때 나온게 DP라는 기관총이였습니다.


데그차례프의 경우 총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기술자로서 전쟁에서 분대지원화기가 해야할 역할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따라 맥심이나 다른 기관총과는 조금 다른측면에서 총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뭐 소련 개인화기의 기본적인 특징들인 단순한 내부구조나 값싼 가격은 기본이였고(부품의 수가 약 80개 미만), 거기에 전장에서 숙련되지 않은 병사들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조립/분해가 쉽도록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거 말고도 데그차례프가 새로 적용시킨 방식이 있는데, 바로 그 녀석이 DP/DPM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쟁반탄창입니다.


쟁반탄창의 경우 사실 DP에서 처음 등장한 신개념 탄창은 아니였고, 이미 영국군이 사용했던 루이스 기관총부터 쓰이기 시작한 방식인데, 쟁반탄창은 기존의 탄창들 중에서 밑에서 급탄하는 녀석들은 20발 이상의 탄창을 사용할 시 포복자세에서 사격이 불편하다는 점(물론 쇼사 경기관총은 이런 문제를 바나나 탄창으로 해결하긴 했습니다만, 그리 효과적인 성능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브렌이나 Zb.26 같은 상부급탄 시스템의 경우 30발 이상의 탄창이 사용 가능하지만 사수의 시야를 쉽게 가린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녀석으로 상부급탄 시스템을 약간 바꿔서 두 녀석들 보다 휴대도 쉽고 장탄수도 많게 되었다는 장점을 가진 녀석입니다


DP/DPM의 경우 쟁반탄창을 사용한 화기중에서는 가장 나은 성능을 보여주는데, 기본 DP와 1944년에 개발된 DPM(DP의 개량형으로 리턴 스프링이 노리쇠의 뒤로 옮겨졌으며 손잡이를 약간 작게 만들고 양각대는 보다 튼튼한 재질로 만들었으며 총열 덮게에 부착하는 방식을 채택한 버전)의 경우 소련군 내에서 세계 2차대전이나 이후 공산권 국가들의 분대지원화기로서 좋은 성적을 발휘하게 됩니다.

DP/DPM의 경우 2가지 주요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무게가 11 kg정도로 분대지원화기로 하기엔 약간 무거운 수준이라는 것과 47발짜리 쟁반탄창을 사용하는 지라 재빠른 재장전이나 지속사격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뭐 11 kg라는 문제점은 끝까지 개선이 되지 않았지만, 47발 쟁반탄창의 경우 DP/DPM을 탄띠급탄식으로 개조한 RP-46이 나옴으로서 어느정도 해결이 됩니다. RP-46의 경우 DP/DPM이 퇴역한 이후에도 일정기간 보병용으로 사용되었지만 이 녀석은 분대지원화기 주제에 21 kg라는 말도안되는 무게와 더불어 총열과열 현상이 쉽게 일어난다는 단점으로 인해서 나중에 나오는 RPD나 PKM에 자리를 물려주고 퇴역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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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11:34 신고

    음... 총구가 나팔
    탄이 나올때 마다 소리가 풍풍풍풍풍

  2. 2010.02.27 11:26 신고

    Ruchnoy Pulemyot Degtyaryova Pekhotnyi (Ручной пулемёт Дегтярёвa Пехотный)
    는 이 총을 만든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이 총 자체의 이름일겁니다.
    해석하자면 '데그차례프의 보병 경기관총' 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직역하면 '데그차례프의 손의(손에 들고 쏘는) 보병 기관총' 이지만, 손에 들고쏘는 기관총 이라는 말이 소련측에서 경기관총을 부르는 말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3. 2010.02.28 03:58 신고

    이거 예전에 어떤 겜에서 봐는데
    카르마 1
    맞어맞어
    좋아서

    먼 총이름이 DP냐 했는데.

  4. 2010.05.20 10:45 신고

    콜오브듀티 1 확팩 유나이티드 오펜시브에 나왔던...
    멋있는데 쏠라면 거치해야했던 귀찮은녀석...
    자리만 잘잡으면 그 방에서 일등은 쉬웠지만.

  5. 2012.08.02 00:26 신고

    Agen Ibcbet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사용탄약: 7.92 x 57 mm Mauser
전체무게: 17.8 kg(화기) + 3 kg(냉각수)
전체길이: 1,445 mm
총열길이: 720 mm
급탄방식: 100발, 200발 벨트
발사속도: 분당 450발



19세기 말 맥심이라는 사람에 의해 개발된 맥심 중기관총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전쟁의 양상을 확연하게 바꾼 녀석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일전에 게틀링이 개발한 자동화기가 있었지만, 그 게틀링과 다르게 맥심은 전자동으로 사격이 가능한 최초의 기관총이였고, 이 기관총이 등장한 이후 전선에서는 라인배틀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참호전이라는 전술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지요. 이때 등장한 참호전은 실질적으로 오늘날 전쟁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만, 기관총이라는 분야는 오늘날에도 세계의 모든 군대들이 생산 및 사용을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지요.

맥심이 개발한 중기관총은 사실상 참호에서 상대방 참호에서 나오는 병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다 보니 오랜시간 사격을 하면서 내구성이 어느정도 뛰어나야 하는데, 이러한 문제 때문에 맥심 중기관총을 비롯한 라이센스 생산품(대표적으로 독일의 MG-08과 영국의 빅커스 중기관총)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운용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요. 물론 기관총을 들고 다닌다는 발상이 아니라 한곳에 박아놓고 적을 섬멸할때까지 계속 쏴야 하기 때문에 수냉식 총열을 사용한다는 점은 나중에 맥심같은 중기관총들이 1차대전 이후 큰 빛을 발하지는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온것이 1차대전 말기부터 등장한 경기관총들인데, 경기관총들의 경우 수냉식 총열이 아니라 공랭식 총열을 사용하고, 다소 간편한 급탄 방식(벨트를 사용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탄창 급탄식)을 사용하고, 이러한 점 덕분에 휴대가 간편하면서 무게도 어느정도 낮다는 특징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만, 경기관총이 빛을 발하게 되는 시기는 세계 1차대전이 아니라 2차대전 부터였고, 1차대전 당시에 나왔던 경기관총들은 너무 늦게나와 많이 쓰이질 못하거나, 일찍 나왔어도 나쁜 내구성과 평가를 받은게 대부분이였지요.

맥심은 확실히 우수한 성능의 중기관총입니다. 맥심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참호전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꽤 쓸만한 내구성을 보여주었는데, 경기관총을 새로 개발해서 모험을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맥심을 조금 더 가볍게 개조해서 사용하면 훨씬 쓰기도 편하고 내구성도 좋아서 신뢰성도 괜찮을 거라는 의견으로 만들어진 녀석이 바로 MG08/15라는 바리에이션입니다.


MG08/15 경기관총은 사실상 베이스가 MG08, 그러니깐 맥심의 독일군 버전이다 보니 맥심과 전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여러가지 개량을 실시한 것은 꽤나 돋보인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녀석의 경우 기존의 지속 사격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냉식 총열을 계속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지만, 맥심하면 떠오르는 운반용 수레나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개머리판과 권총 손잡이를 달아준 다음에 양각대를 다는 방식으로 개량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점 덕분에 기존의 맥심이 기본 30 kg을 넘어갔던 점에 비해 이 녀석은 수냉식 총열에 냉각수를 채워도 전체무게가 20 kg밖에 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보유하게 되었지요.

MG08/15이 실시한 개량은 사실상 큰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습니다만, 그 효과는 꽤 대단했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 1차대전 당시 맥심의 무게에 학을 떼던 병사들은 20 kg 내외의 새로운 MG08/15의 등장을 환영하였고, 실제로 이 녀석을 운용해본 병사들은 기존의 맥심의 지속 사격력과 신뢰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무게는 한층 가벼워진(물론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아직도 무겁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무게가 줄어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특징 덕분에 이 녀석은 종전 전까지 MG08 기본형보다 4배 더 많은 숫자가 독일군에서 쓰였고, 이후 2차대전 초반에 MG-34/42의 부족으로 1942년 초반까지는 독일군에서 많인 양이 쓰였다고 합니다.

P.S) MG-08/15의 성공 이후 사실 이 녀석을 기반으로 공랭식 총열을 사용하여 무게를 더 줄인 MG-08/18이라는 녀석이 등장하였습니다만, 종전 직전에 개발된 녀석이다 보니 큰 빛을 발하지는 못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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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3 12:58 신고

    그러니까 흔히들 슈판다우라고 부르는 게 이녀석임?



사용탄약: 6.5 x 50 mm 아리사카
전체무게: 10.2 kg
전체길이: 1,100 mm
총열길이: 443 mm
장탄수: 30발(5발 클립 6개)
발사속도: 분당 500발



기관총이라는 물건은 지속사격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보니 일반적인 소총이 사용하는 탄창과는 약간 다른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데, 기관총의 경우 보통 특수한 이유가 아니라면 탄창이 아니라 벨트를 사용하는것을 기반으로 고안이 되게 되었지요. 벨트라는 물건의 경우 사실상 여러개를 계속 끼워넣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장탄수의 제한이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기관총에 쓰이기에는 최적의 급탄수단으로 각광받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벨트의 경우 기관총의 급탄방식으로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상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개인화기와 급탄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군용 소총들과 탄창 및 벨트가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을 야기하게 되었지요. 물론 기관총과 소총 급탄방식을 구지 호환시켜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없습니다만, 이왕 같이 사용하는 군용 화기이라면 같은 급탄방식을 사용한다면 그만큼 군수체계도 많이 복잡해지지 않고, 유사시에는 서로 자신의 탄창을 빌려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됨에 따라 오늘날에는 벨트식 이외에도 탄창으로 급탄이 가능한 공용화기들이 등장하게 되었지요.


세계 2차대전 당시에는 볼트액션 소총이 제식 소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탄창보다는 5발 혹은 6발 클립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인하여 클립으로 급탄을 하는 기관총이 개발되면 여러모로 편할거라는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만, 클립을 사용하여 급탄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효과적이나 실용성 있는지, 또한 실질적으로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과연 기관총의 신뢰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지에 대하여 여러가지 의문점이 나왔고, 이러한 이유로 클립 급탄식 기관총은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는듯 보였습니다만, 일본의 경우소총용 클립을 급탄하는 기관총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 기관총이 바로 11식 경기관총입니다.

11식 경기관총은 세계 1차대전을 겪은 일본이 시험적으로 개발한 경기관총중 하나로서 그 당시 개발된 기관총들 중에서는 가장 독특한 급탄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관총의 경우 그 당시 일본군의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었던 Type 38(38식) 소총에서 사용되는 6.5 x 50 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하는 5발 클립을 6개 급탄하도록 설계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11식 경기관총의 경우 그 당시 유일하게 볼트액션식 소총과 급탄방식이 동일한 녀석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유일하게 소총을 사용하는 분대원 전원이 부사수로 급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녀석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요.


이론적으로 11식 경기관총의 경우 소총과 같은 급탄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장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을것이였습니다만, 실제로는 굉장히 나쁜 평가를 받은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일단 5발 클립을 옆에서 급탄해줘야 하기 때문에 급탄구조가 다른 기관총들과 다르게 꽤 오픈적으로 되었고, 이는 총에 먼지 및 모래가 자주 들어가서 신뢰성을 떨어트림과 동시에 잼을 유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요. 또한 6개의 클립을 사용하다 보니 발사속도도 분당 500발 정도로 꽤 느리게 되었고, 급탄도 한번에 30발씩 차곡차곡 클립을 쌓아줘야 하기 때문에 사격 지속시간도 줄어들게 되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11식 경기관총은 이론상 뛰어난 성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는 병사들에 의해 꽤 나쁜 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총의 신뢰성 및 전체적인 성능이 낮은것으로 평가됨에 따라 이 기관총의 경우 결국 30발 상부급탄 탄창을 사용하는 96식 경기관총에 의해 대체가 되었으며, 생산량도 3만정 이하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기관총으로 평가받았습니다만, 전후 사정이 나빠짐에 따라 1945년 종전까지 2만 9천정 전부가 전선에서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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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8 19:43 신고

    쩝, 질 좋은 제품 만드는 일본도 2차 세계대전 때엔 참 병맛같은 것들도 많이 만들었군요 ㅇ.ㅇ;;; 뭐, 전쟁 상황 때문에 전부 사용한 건 좋은데 쯧쯧쯧..

  2. 2009.09.08 23:02 신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큰 갭이 존재하는군요 -_ㅜ

  3. 2009.09.12 08:28 신고

    5발 클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끼운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메카니즘....

    혹시 팅 소리 6번은 아니겠죠? (팅~팅~팅~팅~팅~팅~!)

  4. 2009.09.12 21:18 신고

    진짜 2차대전 일본군 화기보면...만든 사람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차라리 일본도로 슥샥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_-;;(실제로 정글 같은 곳에서 일본군 군도에 베인 미국인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이건 뭐 소드마스터도 아니고....) 그래서 미군에서도 '부시마스터'라는 마체트(정글도)술을 가르쳤다더군요.)

  5. 2010.01.21 07:33 신고

    how about make its variation that using .30-06 clip of M1 Garand or 7.62 mm clip of Kar98k?
    it will be nice lol



사용탄약: 7.5 x 54 mm
전체무게: 9.75 kg
전체길이: 1080 mm
총열길이: 600 mm
장탄수: 25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450발



세계 1차대전을 대표하는 전쟁의 양상은 누가 뭐래도 참호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참호전으로 인해서 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이 참호전으로 인해서 각 국가들은 전술과 전략, 그리고 기관총이라는 물건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 일어난 세계 2차대전은 참호전이 주종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러 전투에서 참호전은 엄폐해서 공격을 하는 적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지요.

세계 1차대전 당시 참호전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단연 기관총이라는 녀석이였습니다. 참호당 몇정씩 지급되는 기관총은 참호사이의 공간을 건너려는 병사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잔인성을 보여주었고, 기관총에 대한 위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국가들도 참호전을 겪으면서 기관총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으로 인해서, 혹은 세계 1차대전 덕분에 기관총이라는 물건은 오늘날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지요.


궁극적으로 세계 1차대전 당시 사용된 주요 기관총들의 경우 중기관총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짜피 그리 한번 참호에 거치하면 줄기차게 사격하도록 고안된 녀석들인지라 지속 사격능력 및 정확도를 위해서 지나치게 무거워졌었습니다. 물론 세계 1차대전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가 크게 등장하진 않았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사실상 참호전에 대한 양상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무작정 중기관총만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게 되었지요.

실제로 1차대전 이후 각 나라마다 중기관총을 지속적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경기관총이라는 물건을 개발하기 시작하는데, 프랑스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사실 세계 1차대전부터 경기관총이라는 개념을 운용해온 몇 안되는 나라였고, 화기 목록을 보면 프랑스의 경우 쇼사라는 녀석이 제식 경기관총으로 운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영국도 사실 그 당시 루이스 경기관총을 운용했지요)


쇼사라는 녀석은 Mle 1915라는 이름으로 프랑스군에서 제식 기관총으로 활약한 녀석인데, 이 녀석의 경우 사실 생긴것은 굉장히 특이한 녀석으로서 세계 1차대전 당시 큰 성과를 거둔 녀석이였습니다만 정작 프랑스군 내에서는 불만의 대상이 되어왔던 녀석입니다. 이 녀석의 경우 탄창 급탄방식에 공랭식인것은 큰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만 총 내부가 복잡하기 때문에 고장이 자주 나는 현상이 일어났고, 탄창 자체도 사실상 많이 뚫려 있는 녀석인지라 먼지가 들어가서 잼이 발생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탄창의 2/3은 거의 잼 발생 때문에 사용하지도 못하고 버려졌다고도 합니다) 또한 총 디자인 자체도 인체공학적 설계나 반동흡수와는 전혀 거리가 멀게 나왔고, 작동 방식도 강력한 탄환을 사용하면서 롱 리코일 방식을 채용한 지라 반동도 높아서 명중률도 그닥 좋지는 않았다고 평이 나왔지요.

뭐 세계 1차대전이야 워낙 급한 상황이다 보니 새로운 기관총을 채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남으로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된 프랑스군은 쇼사를 대체할 기관총을 새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일단적으로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성공적인 경기관총들 몇몇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대표적으로 Browning M1918 B.A.R가 언급되었지요) 실제로 어느 프랑스내 회사에서는 브라우닝을 기반으로 한 기관총을 만들었습니다만 결국 프랑스군은 브라우닝의 내부구조를 약간 비슷하게 만든 녀석을 채용하게 되었고, 이 녀석이 바로 오늘날 FM 24/29의 베이스가 되는 녀석입니다.


실질적으로 이후에 쓰이는 녀석과 1930년 초반에 등장한 프로토타입은 내부구조 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만, 사용탄환이 7.5 x 57 mm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두고 있었지요(사실상 구경은 똑같습니다만, 프로토타입에 쓰인 탄약의 경우 이후 쓰이는 제식 탄환보다 탄피가 길고 장약량이 많아서 실질적으로 반동이 상당했고, 탄 자체도 굉장히 허접하게 만들어진지라 잼도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기존에 쓰이던 프로토타입들은 이후 등장하는 제식버전이 대량 생산이 시작된 이후 대부분 제식에서 퇴역했다고 합니다.

FM 24/29은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경기관총입니다. 25발 상부급탄 탄창을 사용하는 방식의 기관총들의 평가가 좋았듯이 이 녀석 또한 내구성이나 정확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요. 사실상 세계 2차대전 동안 프랑스 영토가 독일군에 점령되는 바람에 계속 생산을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다수가 독일군에 포획된 뒤 독일군은 이 녀석을 많이 전선에서 사용했으며, 이후 2차대전 말기 북 아프리카 전선에서 재집결된 프랑스군도 이 녀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맨 처음에는 M1919A2가 지급될 예정이였습니다만, 프랑스군의 경우 이 녀석이 브라우닝 자동소총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되진 못했지요) 이 녀석은 세계 2차대전이 종전을 맞이함으로서 새로 개발된 AA-52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만, 2000년도까지 프랑스군 경비대(Gendarmerie Nationale Regional Brigades)에 의해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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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6 14:21

    이용약관위배로 관리자 삭제된 댓글입니다.

  2. 2011.01.23 07:50 신고

    방아쇠가 두개야.. 징그러워..



사용탄약: 6.5 x 52 mm
전체무게: 10.6 kg
전체길이: 1230 mm
총열길이: 450 mm
장탄수: 20발 클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세계 1차대전을 대표하는 전쟁의 양상은 누가 뭐래도 참호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참호전으로 인해서 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이 참호전으로 인해서 각 국가들은 전술과 전략, 그리고 기관총이라는 물건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 일어난 세계 2차대전은 참호전이 주종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러 전투에서 참호전은 엄폐해서 공격을 하는 적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지요.

세계 1차대전 당시 참호전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단연 기관총이라는 녀석이였습니다. 참호당 몇정씩 지급되는 기관총은 참호사이의 공간을 건너려는 병사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잔인성을 보여주었고, 기관총에 대한 위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국가들도 참호전을 겪으면서 기관총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으로 인해서, 혹은 세계 1차대전 덕분에 기관총이라는 물건은 오늘날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지요.


궁극적으로 세계 1차대전 당시 사용된 주요 기관총들의 경우 중기관총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짜피 그리 한번 참호에 거치하면 줄기차게 사격하도록 고안된 녀석들인지라 지속 사격능력 및 정확도를 위해서 지나치게 무거워졌었습니다. 물론 세계 1차대전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가 크게 등장하진 않았습니다만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사실상 참호전에 대한 양상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무작정 중기관총만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게 되었지요.

실제로 1차대전 이후 각 나라마다 중기관총을 지속적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경기관총이라는 물건을 개발하기 시작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우 비록 세계 1차대전에서 그리 큰 활약을 하진 못했습니다만 역시 경기관총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새로운 경기관총을 개발하도록 시작했지요. 사실 그 당시 경기관총이라면 체코제 ZB.26같은 녀석이나 M1919같은 공랭식 기관총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군의 경우 경기관총을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1930년대 초반 브레다 30라는 녀석을 새로 이탈리아군 제식 경기관총으로 채용하면서 이탈리아군은 세계 2차대전에 참전을 하게 됩니다(실질적으로 세계 2차대전은 1939년 처음 시작되었으니 그 즈음 되서는 이탈리아군의 제식 경기관총은 Breda 30라고 할 수 있겠지요)


브레다 30의 경우 경기관총으로서는 굉장히 독특한 녀석인데, 그 당시 유럽에서 나오던 경기관총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적으로 공랭식이나 기존의 소총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녀석들과 동일합니다만, 브레다의 경우 급탄방식의 경우 벨트나 20발/30발 박스탄창이 아니라 20발짜리 클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녀석들과 굉장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사실 브레다의 경우 외장 박스탄창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탈부착이 불가능하고 20발 클립으로 장전을 한다음 총에 붙여서 사용하는, 일종의 내장 탄창(Internal Magazine)같은 녀석이지요). 이 탄창의 경우 사실상 이탈리아의 브레다 30과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개발된 11식(Type 11) 경기관총에서만 표현된 방식이고, 이후에 나오는 기관총들의 경우 이러한 방식을 쓰지 않게 되었지요.

브레다는 사실상 세계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제식 경기관총으로 활약한 녀석인만큼 많은 양이 생산되기는 했습니다만, 그 당시 나온 경기관총중에서는 가장 나쁜 평가를 받은(물론 일본을 제외한 유럽 대륙에서) 녀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의 경우 20발 클립탄창을 사용하기 때문에 재장전도 어렵고 경기관총이 가지고 있어야 할 지속사격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총열교환 능력조차 없기 때문에(물론 총열을 빼서 다른 녀석으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만, 문제는 총열 손잡이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총열이 달아올랐을때 총열을 식힐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기관총 주제에 클로즈드 볼트를 사용하기 떄문에 총이 쉽게 달아올라 총알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는데 발사되는 쿡오프 현상도 자주 발생하게 되었지요(그리고 마지막 단점으로 탄약을 들 수 있는데, 탄약의 경우 그 당시 등장했던 소총탄 중에서 일본의 6.5 x 30 mm 아리사카탄과 비슷한 수준으로 굉장히 약하다는 평을 받았지요)


실질적으로 브레다 30의 경우 이탈리아군 내에서도 굉장히 나쁜 평가를 받았고, 이탈리아군 내부에서도 이 녀석에 대한 대체가 필요하다는 평에 따라 새로운 탄을 급탄하고 지속 사격능력도 겸비하고 거기다가 총열 교환능력도 생기고 오픈볼트로 발사할 수 있는 브레다 37(M37) 중기관총이 개발되었습니다만, 탄약이 아예 다른 녀석이기 때문에 보급 체계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그리 많은양이 전선에 보급되지는 못했고, 결국 이탈리아군은 브레다 30을 종전까지 계속 사용하게 되었지요. 브레다 30의 경우 종전을 맞이함과 동시에 거의 전량이 폐기처분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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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5 18:48 신고

    1분에 8발이군요;; MG42와는 비교도 안되는 저건....

  2. 2009.08.06 02:18 신고

    그래도 제고 없으면 저거라도 쥐어야죠 뭐(그런 최악의 상황까지 오지 않길....-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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