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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4.34 kg
전체길이: 851 mm
총열길이: 203 mm
장탄수: 32발, 50발 박스형 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2차 세계대전 초반 연이은 패전은 물론 덩게르크 철수작전으로 유럽 본토 내 기점을 잃어버린 영국은 독일을 포함한 추축군의 본국 침공이라는 야욕을 막기 위해 철수작전이 끝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방어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본토 사수라는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던 영국군은 끊임없는 물자부족으로 인하여 이도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겪었는데, 이러한 난감한 상황은 그 당시 영국군이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그저 본토 사수만 가능하다면 어떠한 시도라도 해보는 저돌적인 자세를 가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지요. 란체스터 기관단총도 이러한 결과물들중 하나였습니다.

란체스터 기관단총의 개발역사는 덩게르크 철수작전 이후의 영국군의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군과의 보병단위 전투에서  기관단총의 실용성을 처음 깨닫게 된 영국군은 철수 직후 곧바로 자국산 기관단총 개발에 착수하였지만 물자적 부족이라는 난관과 더불어 기관단총에 대한 제대로 된 개발 노하우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후 영국군의 제식화기로 선정될 스텐 기관단총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는 몇몇 군사조직들은 이를 기다리는 대신 기존에 있던 것들을 재활용하거나 배껴쓰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그들의 눈에 들어온것은 바로 주적인 독일군이 쓰고 있던 MP28입니다.


MP28 기관단총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최초의 실용적인 기관단총으로 인정받은 MP18 기관단총을 개량한 물건으로, 나중에 MP40 같은 걸출한 기관단총을 개발한것으로 알려진 휴고 슈마이저의 지휘로 만들어진 화기였습니다. 간단해진 탄창과 자동/반자동 셀렉터를 탑재함으로서 약간이지만 성능 향상을 염두하고 만들어진 MP 28는 그 당시 나온 물건들중 가장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기관단총이였다는 것은 사용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물론 이를 접한 사람들도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였는데, 비록 적군의 화기이기는 하지만 물불 가릴새가 없었던 영국군은 이를 카피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란체스터 기관단총(란체스터라는 이름은 해당 화기의 생산을 맡았던 스털링 조병창의 책임자인 조지 허버트 란체스터의 이름을 따서 명명)은 영국군을 위해 만들어진 MP28의 카피판이지만, 사실은 영국 육군 보병들이 사용하는것을 염두한것이 아니라 영국 공군이 비행장을 지키는 용도로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하지만 개발 당시 영국 육군도 스텐 기관단총이 나오기를 무작정 기다릴 바에는 이것이라도 쓰겠다는 심정으로 개발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작 란체스터 기관단총을 가장 많이 쓴 부서는 육군이나 공군이 아닌 해군인것을 감안하면 그 당시 영국군의 사정은 눈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는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MP28의 단순한 카피형으로 나온 만큼 란체스터 기관단총은 기본이 되는 물건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단순 블로우백이라는 작동방식이나 좌측에서 탄창을 급탄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던가 등등) 기관단총에 쓰이는 목재 개머리판이나 총검 장착대는 리-엔필드 소총의 것을 강하게 참고하기도 하였고, 이후 나온 개량형 버전(Mk.1)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생산할 수 있게 자동/반자동 셀렉터를 없애고 조준기를 단순화 시키는등 영국군이 필요로 하는 몇몇 특징도 도입했다고 하는데, 복제도 철저히 한 덕분에 성능상으로는 기본작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좋은 물건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란체스터 기관단총은 1941년 중반 첫 5만정 생산을 시작으로 1943년 말까지 생산을 지속하였고(28개월이라는 기간동안 매달 약 3,400정씩 생산한것으로 추산), 이 당시 만들어진 물건들은 영국 해군같이 기관단총의 수요가 은근히 많은 곳에 요긴히 쓰였습니다. 영국 해군은 란체스터 기관단총을 예비물자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 가지고 있었고, 쓰지 않는 물건들은 콜렉터들에게 팔거나 이를 필요로 하는 타국에 판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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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98 kg
전체길이: 732 mm(개머리판 펼쳤을때) / 552 mm(접었을때)
총열길이: 198 mm
장탄수:  28발 박스형 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작동방식: 단순 블로우백



세계 1차대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고 실전에서 호평을 받은 기관단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2차대전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관단총이라는 범주에 대한 성능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벌어지는 거리가 일반적인 소총이 가지고 있는 사거리보다 훨씬 짧았다는 점은 근접전에서의 화력만큼은 소총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기관단총이 상대적으로 위력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연합군이건 추축군이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자국산 기관단총을 개발하거나 타국의 기관단총을 배껴서 쓰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하였습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라는 위치에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위상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호주는 영연방 소속 국가중 하나였고, 태평양 전선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본군에 맞써서 싸워야 하는 호주군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기관단총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호주군은 영연방 소속이라는 특징을 살려 영국군이 그 당시 쓰고있던 스텐 기관단총을 받아서 쓰는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만, 이 당시 영국군은 스텐 기관단총을 영연방 소속 국가들한테 대량으로 지급할 만큼 넉넉한 병기사정을 가지고 있질 않은지라(애초에 스텐의 개발이유가 영국군 병기부족의 결과였습니다), 호주군은 어쩔 수 없이 자국산 기관단총에 대한 개발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텐 기관단총(오스텐은 "오"스트레일리아제 "스텐"을 줄인 명칭입니다)은 호주군이 쓸 기관단총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개발되었지만 호주군에 맞춰서 개발되는 신형 기관단총이 아닌, 이미 존재하고 있는 화기들의 특징이나 외관상 구조를 최대한 많이 참고하여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오스텐 기관단총이 개발될 당시 참고가 된 기관단총은 영국군이 썼던 Mk.II 스텐과 독일군이 사용한 MP-40로 알려져 있는데, 이 화기들로부터 물려받은 특징은 아래와 같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텐으로부터 받은 특징: 총열, 리시버(혹은 총몸), 방아쇠 구조
MP-40로부터 받은 특징: 접이식 개머리판, 노리쇠, 공이, 그리고 왕복 용수철용 덮개


오스텐 기관단총은 MP40와 스텐의 특징을 꼽아 만들었지만 단지 카피작이라고 보기에는 독특한 특징들도 포함하고 있었던걸로 유명합니다. 이 화기의 독자적 특징이라면 반동제어를 위한 수직 손잡이가 기본적으로 부착되어 있다는 점(그리고 이 손잡이 안에는 청소용 도구가 수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몇몇 부품은 다이 캐스팅 주조방식을 사용하여 생산성은 물론 생산단가도 낮췄다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것도 모자라 개량형까지 개발되었던 오스텐 기관단총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오스텐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총 자체의 성능이 너무 나빴다기 보다는 같은 시기 호주군을 위해 만들어진 오웬(Owen) 기관단총의 성능이 너무 높게 평가되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오웬 기관단총은 정글전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아무런 고장 없이 잘만 작동해주는 놀라운 신뢰성을 보여준 반면에 오스텐 기관단총은 그런 인상을 심어주진 못한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호주군의 오웬 기관단총 제식 채용으로 인해 더이상 구매의사를 보이는 나라가 없어진 오스텐은 2만정이 안되는 생산량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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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8 x 22 mm 남부
전체무게: 3.5 kg(50발 탄창 장착시)
전체길이: 641 mm
총열길이: 229 mm
장탄수: 5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전쟁을 치룬 많은 국가들은 기관단총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권총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거리라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겠지만, 자동발사로 근접전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이 물건은 그 당시 쓰이고 있던 보병용 소총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보여주게 되었고, 이는 2차대전이 시작되는 시점에 가서는 대다수의 강대국들이 자의적이나 반 강제적으로 기관단총을 제식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기관단총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은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쓴 제식 기관단총인 100식 기관단총이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 않았고, 그나마 생산된 양도 특수부대나 공수부대쪽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 기관단총이 그런 대접을 받게 된것은 그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던 기관단총에 대한 이해 부족도 있지만, 기관단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일본군영의 편견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상부가 기관단총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것과 다르게 일본군에서는 기관단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차대전 이후 일본 육군과 해군은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던 기관단총(혹은 그 당시의 명칭으로는 기관권총)을 수입하여 이 물건들에 대한 작동방식을 연구하고 있었고, 그런 모델중 하나인 SIG사의 7.63 mm급 기관단총인 모델 1920(Model 1920)은 2차대전이 시작된 이후 동부전선에서 소수이지만 사용될 정도로 일본군이 가지고 있던 기관단총의 관심, 혹은 사랑은 다른 나라들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기관단총을 수입해서 사용하는것은 어느정도 한계가 있는 선택입니다. 자국산 화기를 사용하는것보다 가격도 비싸고 해당 화기를 생산하는 국가와의 외교적 수준에 따라 수입량이 차이가 날 수도 있는지라 1920년 말부터는 일본군영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자국산 기관단총을 생산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러한 개발의 선두주자에 있던 인물이 바로 키지로 남부였습니다.


일본군 개인화기 개발사에 있어서 빼먹을 수 없는 유명한 인물중 하나인 키지로 남부는 군용 화기라는 분야에서만 따져본다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그가 운영하고 있던 회사인 "남부-주 세이조쇼 K.K"사를 통해 1934년 일본에서 최초로 개발되는 기관단총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기관단총이 바로 2식-A형의 기반이 되는 1식 기관단총입니다.

1식 기관단총(2가지 버전이 있는데 모델 A는 분당 발사속도가 300발, 모델 B는 600발로 알려져 있습니다)은 그 당시 일본군이 소수나마 쓰고 있던 베르그만/SIG제 기관단총에서 쓰이고 있던 작동방식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그 당시 나온 기관단총들과 비교하였을때 상당히 놀라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래에 나온 사항들은 그 당시 1식 기관단총이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특징들입니다:

1) 권총 손잡이에 탄창이 들어가도록 설계하여 전체길이가 685 mm밖에 되질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권총 손잡이에 탄창이 들어가는건 체코제 Vz.23이 최초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남부의 디자인이 최초)
2) 권총 손잡이에 들어가는 탄창은 일반 박스탄창이지만 무려 50발이나 되는 장탄수를 자랑합니다
3) 탄창 끝에 접혀있는 철사 부품을 통해 특정 물체에 고정시켜놓고 지속사격을 할 수 있습니다


1식 기관단총은 이러한 특징들을 기반으로 1936년부터 1934년까지 군용 테스트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1식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바로 전체적으로 내구성이 좋지 못해 군용으로 쓰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점 때문이였는데, 총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가지고 있던 테스트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키지로 남부는 1식에 대한 개량 및 수리 요청을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개발된 남부의 개량형이 바로 2식-A형 기관단총입니다.

1935년 10월 정식 특허권을 받게된 키지로 남부의 2식-A형 기관단총은 1식의 내구성 문제점을 개량하고 나왔어야 했지만 실제로 테스트 했을 시 일본군 관계자들의 눈에 들 만큼 좋은 성적을 보여주진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1937년 8월 일본군 기병대가 다시 실험을 하고 개량사항을 요구할 정도로(특히 기병대의 경우 중국 내에서의 작전시 이를 소수지만 사용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해당 기관단총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높았고, 이러한 관심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아직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았던 1936년 1월에는 영국군이 군용 테스트를 위해 1정의 2식과 테스트용 1,000발의 권총탄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채용거부와 더불어 8미리 권총탄의 생소함으로 인해 생긴 해외에서의 판매 한계는 남부의 2식-A형 기관단총은 이렇다할 판매 실적을 보여주진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매부진은 결국 남부사는 다른 화기들에 대한 생산을 이유로 해당 화기에 대한 생산을 전면 중지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이후 100식 기관단총의 생산량이 모자라 다른 기관단총의 채용을 생각하고 있던 일본정부의 요청으로 인해 2식 기관단총에 대한 재생산이 잠시나마 언급되기도 했습니다만 이 마저도 전시상황으로 인해 흐지부지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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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45 ACP /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63 kg / 3.47 kg
전체길이: 757 mm(개머리판 펼쳤을때) / 579 mm(개머리판 접었을때)
총열길이: 203 mm
장탄수: 3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450발



1차대전까지만해도 찬밥신세였던 기관단총은 2차대전에 와서는 엄청난 성공을 이룩한 대표적인 개인화기입니다. 비록 권총탄을 사용한다는 단점 때문에 사거리면에서는 소총보다 낮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보았을때는 그리 효과적인 녀석은 아니라는것이 1차대전까지의 정설이였습니다만, 2차대전때 쓰인 기관단총의 수나 이 화기의 실제 활용도를 보면 기관단총은 이론적으로보다는 훨씬 더 쓸모있는 녀석이라는것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지요.
 
기관단총은 2차대전이라는 시기에는 성공의 절정기를 달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참전한 대부분의 국가는 모두 자국산 기관단총이나 타국에서 수입 혹은 라이센스로 생산한 기관단총을 무장시키고 있었고, 이때 생산된 기관단총의 숫자는 약 1천만정이 넘어간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이 당시 기관단총의 수요나 공급은 장난이 아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장난 아닌 수요와 공급은 기관단총이라는 장르가 큰 성공을 거두게 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이러한 성공을 이루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이 2차대전 당시 주요 기관단총으로 사용하고 생산했던 톰슨의 경우 비록 성공은 했어도 처음 채용한 시기부터 나중에 퇴역될때까지 꽤 많은 뒷 이야기를 만든 대표적인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톰슨은 사실상 성공적인 녀석으로 평가되는 기관단총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맨 처음 등장했을 시에는 꽤 비싼 가격과 무게, 그리고 낮은 생산성을 자랑했기 때문에 군용으로는 쓰기가 곤란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던 M1928과 이후 미군 육군의 제식 기관단총으로 채용된 M1/M1A1이라는 버전은 굉장히 많은 변화를 줌으로서 생산성을 늘리고 가격도 낮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톰슨은 결국 미군이 계속 줄기차게 쓸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것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톰슨이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시간동안 쓰이지 못한 이유는 가격과 무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톰슨이라는 물건 자체는 군용으로 변형되면서 많은 디자인 및 내부구조적 특징이 변경되는 개량을 거침으로서 생산성이나 가격이 대폭 낮아지긴 했습니다만,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톰슨은 여전히 비싸고 생산성도 낮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총 자체가 목재나 철제 부품을 대폭 사용한것 때문에 무게도 무거웠고, 이는 전선에서 톰슨을 사용하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꽤 불만의 대상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톰슨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대체품이 바로 M3 그리스건이라는 녀석입니다.

M3 그리스건(잘 알려졌다시피 그리스건은 주유기처럼 생겼다는 점 때문에 생긴 별명이지, 실제 제식명은 M3/M3A1입니다)은 일단 나오게 된 이유가 톰슨의 문제(문제라고 하기보다는 미군의 불만사항)을 해결하게 나온 녀석인 만큼, 톰슨에서 지적된 몇가지 사항이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일단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목재 개머리판과 핸드가드를 제거하고, 그 자리를 철판 프레스 개머리판으로 대체함으로서 무게를 줄이도록 설계되었으며, 총의 부품역시 대부분이 철판 프레스 공법을 대폭 도입해서 생산성과 무게를 줄였다는 것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건의 경우 사실상 톰슨의 대체품으로 나왔기 때문에 톰슨과 비슷한 성능을 보여주도록 설계되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저가 기관단총이라는 장르에 맞추려 개발하다보니 정확성이나 정밀성 자체는 톰슨보다 훨씬 낮아지게 되었고, 디자인적 설계도 병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은 아니였지만, 이전작과 비교했을때는 꽤 쓰기 불편한 녀석으로 평가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불편한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로 장전손잡이와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장전 손잡이는 M3에서는 크랭크식으로, M3A1부터는 아예 크랭크가 없이 손가락을 볼트에 넣어서 장전하는 식으로 변경했기 때문에 상당히 문제가 되었으며, 총의 중요한 부품중 하나인 안전장치도 탄피배출구를 닫으면 작동하고 열면 헤제되는 것으로 간략화되어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M3/M3A1 그리스건은 위에서 말했듯이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개발한 녀석인 만큼 톰슨보다 많이 생산되고 오랫동안 쓰여야 하는게 정상이였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이 녀석은 3년밖에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된 비운의 작품입니다. 비록 싸게, 쉽게,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녀석이긴 했습니다만 그리스건이 나온 시기는 1942년 말이였고, 3년후인 1945년 세계 2차대전이 종전되면서 미군은 "더이상 추가 M3 그리스건을 받지 않겠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그리스건은 그 성능이나 생산성은 둘째치고 일단 종전 이후 생산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게 되었지요(물론 생산 중단의 이유는 종전의 이유도 있습니다만, 이미 톰슨의 물량이 꽤 많이 남아있는 점도 있지요). 


하지만 저가 기관단총 답게 그리스건은 3년이라는 짧은시간동안 68만정이라는 높은 생산률을 기록했고, 이 생산량 덕분에 많은 수의 그리스건이 2차대전 이후 한국전쟁은 물론이고 베트남전에서도 꽤 많은 수가 남베트남군과 미군에 들려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특히 한국전쟁의 경우 2차대전 당시 북한군이 톰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혼동을 막기위해 미군은 M3 그리스건을 다수 사용하게 됩니다)

P.S) M3 그리스건의 경우 딱 한가지 개량형(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그 개량형이 9 x 19 mm을 사용하는 M3A1 그리스건입니다. M3A1의 경우 M3 그리스건에서 제기되었던 몇가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나오긴 했습니다만, 가장 큰 특징은 9미리 파라블럼을 사용한다는 점인데, 이 녀석의 경우 미군보다는 다른 국가들(특히 아시아나 유럽권 국가들)에서 많이 쓰이게 됩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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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8 14:09 신고

    톰슨보다 많이 생산되고 오랫동안 쓰여야 하는게 "젓앙"이였습니다만

    젖앙 -> 정상

    적절한 오타 크리티컬

  2. 2010.08.18 21:10 신고

    어라 예전에 리스건 리뷰하지않았던가요?

    왠지 본거같은데..;;;???

  3. 2010.08.18 21:34 신고

    손가락을 넣고 장전하라니 어떻게 보면 스텐만큼 배려심이 없음 ㅇㅇ

  4. 2011.02.14 22:59 신고

    퍼기요

  5. 2011.07.13 00:53 신고

    일본 육상자위대가 저것을 상당기간 쓰다가 대체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죠. 1979년작인 영화 전국자위대에서도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6. 2011.08.21 23:16 신고

    퍼가요



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5 kg
장탄수: 32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급한상황에서 개인화기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개인화기라는것이 사실상 보병이 들고 다니는, 그러니깐 다시 말해 군사적으로 봤을때 가장 기본적인 녀석인 만큼 다른 대형장비와 비교했을때 훨씬 개발이나 생산이 쉽고 가격도 싸기는 합니다만, 어느정도 군에서 쓰기에 합당한 조건을 만족하면서 군이 원하는 시간 안에 대량으로 만들어 싸게 보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모든 개인화기가 항상 군용으로 채택되지는 못하고 쓰디쓴 좌절을 맛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군용 개인화기를 개발 및 채용시키는 것은 굉장히 힘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릅니다만,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국가의 존폐위기가 나오는 시기인 전쟁 중반에서는 꼭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총이라고 해서 다같은 총이 아니고, 아무리 많이 찍어내는게 쉽다고 해서 총의 기본적인 내구도나 효율성이 완전 제로 수준까지 떨어진 막장 화기를 사용해야 할 만큼 국가가 막장인 상태로 치닫는 경우도 굉장히 드뭅니다만, 시간에 쫓기고 돈이 모자라면서 동시에 엄청난 양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어느정도 성능이나 구조적으로 희생을 하게 되고, 이는 몇몇 화기가 군용으로 채택되긴 했어도 과연 군용으로 쓸 만한 수준의 화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는 사례를 만들었다 할 수 있지요.


세계 2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개발된 Mk.2 스텐이라는 기관단총은 이러한 "막장 화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인데, 2차대전 초반 독일군의 잠재적인 능력을 과소평가한 영국군이 유럽 대륙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이러한 과정중에 엄청난 양의 개인화기를 손실함으로서 당장 빠른 시간내에 개인화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등장한 이 기관단총은 현존하는 기관단총들 중에서는 가장 단순한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고(물론 이 녀석을 더 다운 그레이드한 작품도 있긴 합니다만, 그러한 녀석들은 총이라는 범주 자체에도 들어가기 힘든 수준의 내구성을 자랑하게 되었지요), 가격과 생산시간이 기존의 기관단총들보다 훨씬 적게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기관단총들이 개발 및 제식으로 전군 배치하는데 사실상 오래걸린것과 다르게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양을 생산함으로서 영국군이 가지고 있던 군용 화기 숫자의 부족을 깔끔하게 해결한 공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지요(실제로 1941년부터 생산된 기록으로 따져봤을때 약 600만정 이상까지 생산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스텐은 사실상 개인화기 부족에 시달렸던 영국군의 구원자 같이 등장하여 많은 수의 병사들이 간단한 자동화기로 전투를 치룰 수 있게 했다는, 이론상으로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 전투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총을 단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성능에 대한 희생은 각오를 했어야 했지만, 스텐의 경우 잘못 건드려도 오발사고가 날 만큼 간단하게 만들어진 단점이 있었고, 디자인 자체도 두손으로 쏘기 힘든 구조를 채택함으로서 병사들에게 많이 지적을 당하는등 여러모로 안타까운 점이 많았고, 이는 세계 2차대전 이후 Mk.2 스텐은 거의 전량이 폐기되거나 회수되어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다만 Mk.2을 제외한 후기형들은 꽤 괜찮다는 평을 받아 이후에도 스털링 기관단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많이 쓰였다고 하네요).


2차대전 이후 스텐의 경우 양산형으로 등장했던 마크 2 시리즈가 사실상 퇴역당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것은 2차대전 당시 억지로 쓰긴 했지만 전후 사정이 나아진 영국군이 이 녀석을 얼마나 신뢰하지 못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2차대전 중반에도 이 녀석보다 좀 더 나은 녀석을 만들려는 시도는 꽤 많이 있었습니다. 뭐 정규군용으로 대량 생산을 해야하는 시점에서 스텐은 그 어떠한 화기들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영국군 제식 기관단총으로 다른 녀석을, 그것도 전쟁 도중에 바꾸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만, 이러한 생각은 사실상 정규군에만 한정된 이야기였고 소수만 만들어서 사용해서 큰 문제가 안되는 영국 특수부대들의 경우 아무래도 여러가지 임무를 극한 상황에서 수행해야 되나보니 신뢰성을 믿기힘든 Mk.2 스텐보다는 조금 더 나은 수준의 화기를 만들려 했고, 이러한 요청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BSA Welgun이라는 기관단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SA Welgun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정규군으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적진 후방에서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장려하고 간첩 행위를 하도록 만들어진 SOE(Special Operation Executive)라는 특수부대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 부대가 수행하는 미션이 일반적인 전투를 주로하는 정규군과 다르게 여러가지 극한 상황에서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해야 하는(특히 근접전에서 확실하게) 부대답게 일반적인 스텐보다는 좀 더 복잡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명중률이나 내구성이 꽤 증가하여 일반적으로 군용으로 쓰이는 기관단총 수준의 퀄리티를 요구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물론 이 녀석 이전에도 Norm Gun이라고 해서 SOE같은 특수부대를 위한 고급형 기관단총이 등장하긴 했습니다만, 성능은 둘째치고 영국군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가격 때문에 프로토타입형에서 추가 개발이 중단된 녀석이지요)


BSA Welgun 구조 자체는 사실 2차대전 이전이나 그 당시 나온 녀석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녀석입니다. 작동방식의 경우 단순 블로우백에, 사용하는 탄약도 그 당시 독일이나 영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9미리 파라블럼, 그리고 탄창도 32발 박스탄창을 사용하는, 다시 말해 지극히 평범한 녀석이였다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이 녀석의 경우 아무래도 스텐과는 다르게 급한 상황에서 대량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 아니고 특수부대의 요청으로 조금 정밀하게 만들어진 녀석이였던지라 스텐과는 꽤 수준 차이를 보여주였고, 실제로 테스트를 했을때 이 녀석을 사용했던 병사들이 꽤 만족해할 만큼 괜찮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Welgun은 가격면에서는 스텐보다는 비쌌지만 성능면에서는 스텐보다 낫다는 평이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SOE용 기관단총으로 채용되어 생산되어야 하는것이 당연한 결과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이 나오는 시점에서는 Mk.2 스텐 뿐만 아니라 그 후기형까지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후기형들의 경우 막장이라고 불리는 Mk.2보다는 나은 수준의 정밀도와 내구성을 보유하면서 가격은 굉장히 싸게 나오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녀석들 중에서 Mk. IV 스텐 기관단총이 BSA Welgun 대신 특수부대용 제식 기관단총으로 채택됨에 따라 Welgun은 프로토타입만 남겨둔채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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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2 14:58 신고

    저,,저놈도 ㄷ,대충만든 티가 보인다능!!
    내눈은 못속여..
    근데 이녀석도 내구성이 꾸질한가요?
    제가 듣기로는 스텐이 바닥에 떨구면 오발이 잦았다는 걸로 기억합니다만...

  2. 2010.05.22 18:43 신고

    스텐 은근히 인기있었네 ㅇㅅㅇ



사용탄약: 9 x 19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6kg
전체길이: 892mm ~ 950mm
총열길이: 250mm ~ 308mm
장탄수: 32발 박스탄창(MP40 탄창) X 2
발사속도: 분당 300발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제식 기관단총은 MP-38/40이였고, 이 두 녀석은 2차대전 기간동안 수백만정이 생산되어서 독일군을 비록한 추축군에서 많이 쓰인다음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쓰인 성공적인 기관단총입니다. 보통 MP-40의 특징을 따진다면 철판 프레스 방식으로 만든 기관단총인데도 정밀도와 정확성이 높다는 평을 받은 녀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일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MP-40의 경우 대량생산을 목표로 개발된 녀석인 만큼 이전작인 MP-38이 절삭가공을 했던데 반해 MP-40은 철판 프레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산시간이 크게 단축된것은 사실이고, 한 정당 가격도 군용으로 적합한 수준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전이 임박한 시점에서 연합군의 독일 본토 폭격으로 인해서 군수산업은 큰 차질을 빚게 되었고, 자원의 부족이나 인력부족도 심각하게 대두되는 입장의 독일에서는 MP-40도 사실 생산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녀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게 바로 저가 화기들인데, 이 화기들의 경우 사수에 대한 배려나 정확성, 정밀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총알만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만을 충족시킨 화기들이였습니다. 이런 화기들의 경우 현대에 와서 실험을 하면 총이 사격을 하다가 폭발할 정도로 저질의 내구성이나 성능을 증명해준 녀석들이였고, Kar-98k나 MP-40같은 고급 화기들을 만든 독일이 이렇게 망가진 화기도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좋은(...) 녀석들이였습니다. 뭐 대부분의 저질 화기들의 경우 볼트액션 소총이였던 Kar-98k 단순화를 목표로 만들긴 했습니다만, MP-40도 단순화가 필요한 바, 저가 기관단총으로 Erma사에서 새로운 녀석을 만드는데, 이 녀석이 EMP-44입니다(제식명 EMP는 핵폭발시 생기는 Electromagnetic Pulse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일단 EMP-44의 개발목표는 "저가 기관단총"이였기 때문에 MP-40보다 훨씬 단순하게 제작을 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략 MP-40보다 훨씬 간단하고 싸게 만들어야 하는게 조건이였는데, Erma사는 이걸 충족시키기 위해서 총의 내부에 있는 자그마한 부품들이나 피스톤, 심지어 트리거 그룹까지 다 철판 용접식으로 단순하게 제작을 했고 목재를 안쓰기 위해서 개머리판이나 손잡이의 경우 다 철을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물론 MP-40도 목재를 쓰진 않았습니다만, MP-41의 경우 목재 스토크를 사용한 적은 있습니다) 뭐 그리고 사수에 대한 배려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위의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당장 권총손잡이나 개머리판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EMP-44의 경우 1943년에 디자인이 완료되었고 1944년에 실제 프로토타입이 나와서 독일군 제식채용을 위한 오드넌스 테스트를 받았습니다(한글로 하자면 병기 테스트) 이 테스트에서는 통과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EMP-44은 독일군 정식화기로 채용은 되지 못했는데, 아직까지 총에 대한 어느정도 수위를 고집하고 있던 독일군 상부 지휘층에서는 "이렇게 싼 총까지 쓸 필요는 없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저가"를 위해서 디자인을 이상하게 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점(너무 이상하게 생겼다)등등 여러가지의 문제로 인해 결국 대량생산은 하지 못하게 됩니다.
뭐 EMP-44의 경우 저가 기관단총인지라 사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긴 했습니다만, 총 자체에 대한 디자인은 나름 세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일단 오픈볼트 방식을 사용해서 총열이 과열될 수 있는 위험을 줄였고, 화염을 줄이기 위해 소련군의 PPS43에 달린 소염기를 참고해서 자체 소염기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자적인 탄창이 아니라 기존에 남아도는 MP40의 탄창을 쓴 것도 어찌보자면 이 총이 가진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특징은 사실상 군 지휘부에 크게 어필하지 못했고, Erma사의 EMP-44는 프로토타입 몇정만을 남긴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P.S) 추가적인 특징으로 EMP-44의 경우 MP40용 탄창을 2개를 꽂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MP-40/2라는 녀석이 이러한 비슷한 특징으로 2차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많이 쓰인 소련군 기관단총인 PPSH-41와 비슷한 수준의 장탄수를 만들려는 시도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MP-40/2에서는 이러한 것이 급탄기구의 불량성으로 실패했고, EMP-44는 사실상 생산숫자가 거의 없다 시피 해서 이러한 점은 주목자체를 받질 못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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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3 11:29 신고

    저렴하게 생겼어도 나름 성능은 좋았군요 ㅎㄷㄷ

  2. 2009.06.08 14:20 신고

    불을 뿜는 쇠막대기가 이런건가요.. ㅎㄷㄷ

  3. 2010.05.13 10:21 신고

    EMP 가 현대의 EMP 였다면..
    저건 신의 병기가 되는건가..
    아니 그당시 기계류는 EMP의 영향을 안받나..ㄷ

  4. 2010.05.14 19:24 신고

    진짜 스텐은 양반인 수준이군하 ㅇㅅㅇ;;;

  5. 2010.05.15 05:35 신고

    처음에 설명을 보면 아 기관단총이구나.. 사진을 보며 2가지 생각을 했지요
    어 화염방사기인가? 독일이 화여..아 아니구나.. 개머리 판에 구멍이 뽕뽀.... 아 거꿀로 봤구나..

    총구쪽에 뚤려있는 자체 소염기쪽이 개머리 판인줄..
    앞이랑 뒤쪽이 모양이 같으니..쿨럭쿨럭. 돋읻이 이렇게 가놘할 줄이야 ..

  6. 2010.09.20 12:05 신고

    이럴수가! 저걸 독일이 만들었다고요! oh my god!

  7. 2010.09.25 15:18 신고

    스텐건과 생산시간이 비슷할거 같아...



사용탄약
: 9 x 19mm 파라블럼탄
전체무게: 3.18kg
전체길이: 760mm
총열길이: 196mm
장탄수: 32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세계 2차대전 당시 영국군이 개발했던 스텐이라는 이름의 기관단총은 자동화기라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게 개발되어 실전에 채용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사례중 하나였습니다. 스텐의 경우 2차대전 초반 당시 독일군에게 수적 및 전술적 열세를 가지고 있던 영국군 보병이 유럽 본토에서 철수하는 동안 많은 양의 개인화기를 독일군에게 노획당하거나 손실한 영국군의 화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9미리 파라블럼용 기관단총으로서, 비록 높은 신뢰성이나 명중률은 보장할 수 없어도 많은 양의 자동화기를 빠른 시간내에 개발하여 채용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2차대전 이후 나오는 저가 기관단총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화기로 자리잡게 되었지요.

스텐의 경우 영국군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저가형 기관단총이다보니 일단 생산이나 개발은 무조건 영국군을 위해서 진행된것이 일반적이였습니다만, 어느정도 절박한 상황이 해결된 이후에는 많은 양의 스텐 기관단총은 프랑스같이 독일군에 의해 점령된 곳의 레지스탕스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비밀리에 이런 땅에 투하되는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독일군의 손에 떨어진 적진에 개인화기를 대량으로 투하한다는것이 그리 쉽진 않습니다만, 저가 기관단총을 레지스탕스에게 지급함으로서 독일군의 후방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은 분명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 이는 이런 점령지역이 연합군의 손에 다시 들어갈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스텐 기관단총을 적전에 떨어트려 그 지역의 레지스탕스들에게 지급한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게슈타포의 경우 놀라운 정보수집을 통하여 레지스탕스가 스텐 기관단총이 투하되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이는 독일군이 많은 양의 스텐 기관단총을 아무런 문제없이 노획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진에 투하된 스텐 기관단총들이 모두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많은 양이 독일군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요)

Mk.II 스텐 기관단총의 경우 독일군에 의해 곧장 쓰이는 것보다는 나치에 협력하는 병력들에게 지급되는 경우가 많았고, 독일군 자체는 사실 맨 처음부터 노획된 기관단총을 제식명을 부여해 사용하려는 계획은 아니였습니다만, 적어도 이러한 저가 기관단총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후 사정이 불리해질 경우 이러한 화기들은 최전선에서의 병력 손실로 인한 개인화기 숫자의 부족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잠재적 능력에 대해서는 독일군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만든것이 바로 포츠담 장비라는 이름의 기관단총입니다.


포츠담 장비는 사실상 Mk.II 스텐의 카피판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인데, 이 녀석의 경우 카피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완벽하게 복제를 했다는 점 때문에 특이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스텐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들려고 했던 저가 기관단총이기 때문에 스텐과 비슷하다는 것은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점입니다만, 이 녀석의 경우 오늘날 존재하는 스텐과 비교했을때 실제로 어느 녀석이 포츠담 장비이고, 어느 녀석이 스텐인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복제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츠담 장비가 이렇게 스텐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은 디자인과 부품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 몇가지 가설이 존재하는데, 가장 신뢰성을 받고 있는 가설은 바로 저가 기관단총을 많은 양을 만들어놓고 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에 이를 보급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이 실제로 등장하는 1944년 초반부터 독일군의 경우 연합군의 공세에 의해 많은 양의 병력과 개인화기를 잃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스텐과 비슷한 저가 기관단총을 만들어서 보급을 한다면 나중에 생기는 개인화기 부족사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독일군에게 필요한 대비책이였고, 이러한 이유로 포츠담 장비가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이런 점 이외에도 독일군이 연합군에 의해 패배할 경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같이 적진에서 저항활동을 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 웨어울프 작전을 위해 만들어 졌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포츠담 장비의 경우 약 2만 8천정밖에 생산되지 않은, 생각보다 굉장히 생산량이 적은 기관단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스텐을 완벽하게 개조하기 위해서 설계도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함과 동시에 기계 부품을 정확하게 복제하기 위한 노력으로 돈과 시간이 많이 들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포츠담 장비는 실제 스텐이나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제식 기관단총이였던 MP-40보다도 더 비싼 가격을 자랑하게 되었지요(하지만 성능은 Mk.II 스텐과 별로 다른점이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포츠담 장비는 훨씬 더 간략화된 저가형 기관단총인 MP-3008에 의하여 생산이 중단되었고, 종전 이후에는 사실상 스텐과 혼동되어 같이 회수되었기 때문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포츠담 장비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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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8 04:02 신고

    아아 머 손잡이두 없구,,
    탄창도 업구
    어떻게 잡고 쏘라는건지...
    킁...

  2. 2010.03.05 00:08 신고

    어째서일까
    스텐의 느낌을 받아버렸어 앗흥

  3. 2010.09.20 12:02

    비밀댓글입니다

  4. 2015.01.22 07:24 신고

    ......가격은 비싸면서 성능은 스텐과 비슷하다니...
    이보시오! 이보시오!



사용탄약:
7.62 x 25 mm Tokarev
전체무게: 2.95 kg
전체길이: 907 mm(개머리판 펼쳤을때) / 641 mm(접었을때)
총열길이: 273 mm
장탄수: 35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세계 2차대전 당시 새로운 개인화기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큰 손해를 본 경우는 꽤나 많습니다. 특히 소련군의 압도적인 물량들 때문에 고민이 많던 독일군을 위해 등장한 화기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꽤나 쓸만하다거나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지는 녀석들은 거의 모두 동부전선에서 시험적인 평가와 데뷔를 마쳤고, 이는 동부전선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병사들이 전투를 해야 하는지를 절실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소련군의 경우 독일군의 개인화기에 영향을 받아서 개인화기를 스스로 개발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세계 2차대전 이전에 이미 겨울전쟁을 겪으면서 핀란드군이 사용했던 수오미 기관단총(제식명은 M31)의 실질적인 성능을 알게 되어 PPD-40을 제식으로 생산했지만, 이를 전군으로 대체할 만큼 많이 생산하지는 않고 있던 와중에 독일군이 침공하면서 보여준 MP40의 위력은 소련군이 부랴부랴 대량생산이 가능한 저가 기관단총을 개발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주게 되었지요.


독일군의 이러한 영향으로 개발된 PPSH-41은 오늘날에도 명작이라고 불릴만큼 꽤 성공적인 녀석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반자동 방식은 물론이거니와 정확도를 전혀 설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나쁜 평가를 받았지만, 몇시간의 작업끝에 만들어질 수 있었음과 동시에 하루에 3천정까지 생산이 가능했다는 점은 확실히 전선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음과 동시에 개인화기 숫자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는 소련군이 세계 2차대전 종전까지 기관단총을 가장 많이 생산 및 사용한 국가로 발돋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PPSH-41은 여러모로 근접전투에서 꽤 좋은 화기이고, 생산량도 굉장히 높았습니다만, 실질적으로 더 많은 생산량과 더 단순한 구조를 원했던 소련군에게는 아직도 모자란 존재(물론 그런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종전 까지 PPSH-41의 생산 중단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에 따라 PPSH-41을 좀 더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것이 바로 PPS-42입니다.


일반적으로 PPS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PPS-43을 곧바로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실 PPS-43가 등장하기 전에 오늘 리뷰하는 PPS-42라는 녀석이 미리 존재했었지요. PPS-42는 굉장히 재미있는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레닌그라드 전투(전투 보다는 포위전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입니다만, 전투라고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와 큰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레닌그라드 전투는 1940년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위해 시작한 바르바로사 작전의 일환으로 스탈린그라드와 더불어 소련의 대표적인 대도시로 평가되었던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해 독일군이 이 도시를 포위하고, 도시에 있던 잔병력과 시민들이 방어전을 펼친 방어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50만명의 독일군이 포위하는 상황에서 거의 3년 가까이 전투를 하면서 끝까지 함락당하지 않은 유명한 방어전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전투는 소련군 및 소련 시민들이 독일군에 맞써서 싸우는데 큰 용기를 주게 되었고, 이후 스탈린 그라드 전투 이후 시작된 소련군의 총 반격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지요.


레닌그라드의 경우 사실상 겨울이 되어 호수로 인한 물자 수송이 가능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소수의 물자로만 독일군을 방어해야 했는데, 이 당시 개인화기 숫자 부족의 경우 PPSH-41라는 녀석을 통해서 해결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목재가 사용되야 하고 어느정도 복잡한 기술이 요구된다는 상황(물론 PPSH-41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던 녀석으로 유명했습니다만, 레닌그라드에서는 이것도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았지요)에서 PPSH-41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는 불가능했고, 이러한 개인화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것이 바로 PPS-42입니다.

PPS-42는 생산성, 그리고 재료의 희귀성 때문에 만들어진 개량형으로 PPSH-41을 생산할 수 없었던 시기에 나온 새로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PPSH-41에서 요구되었던 점보다 더 단순하면서 빠르게 만들 수 있었고, 목재를 사용하지 않도록 접절식 철제 개머리판(구조를 보면 MP40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을 사용한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지요. 이와 동시에 PPSH-41에서 사용하던 71발 탄창보다 더 단순하고 신뢰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35발 탄창을 사용한 점도 새로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PS-42는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 소련군이 전멸하지 않을 수 있었던 주요 원인중 하나엿다고 할 수 있는데, 공장에서 갓 생산된 PPS가  시험 테스트도 없이 곧바로 전투로 투입되어 사용되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만들 수 있었던 PPS-42의 생산성은 개인화기 손실이 높음과 동시에 빠른 시간내에 새로운 병력들을 자동화기로 재무장 시켜야 하는 소련군의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안이였고,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 이 녀석은 레닌그라드에서만 4만 5천정 이상이 생산될 정도로 극강의 생산성을 자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PS-42 기관단총의 경우 레닌그라드 전투를 성공으로 이끈 주요 이유중 하나였습니다만, 이후 나온 PPS-43와 비교했을때 소련군 제식 개인화기로 채택할 만큼 높은 신뢰성이나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평가되지 못해서 제식으로는 채택되지 못하였고, 레닌그라드 전투의 승리 이후에는 PPS-43에 의하여 생산이 중단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세부적인 컨셉이나 디자인은 PPS-43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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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6 13:11 신고

    이야 하루에 3천정씩 뽑아 대다니... 쿨럭,쿨럭,
    멀로뽑은겁니까??
    기계?? 반 수작업??

  2. 2010.09.25 15:33 신고

    연방의 무기 개발사상은 맘에 듭니다(단순하고 내구성 조낸 좋아야 함), 인구가 많은만큼 많이 뽑을수 있게 설계하고 공장도 많이 지어서 많이 나오는 군요... 연방제 무기는...

    • 2010.09.26 02:11 신고

      그쪽이야 물량으로 밀어 붙이던 시대에 만들었으니
      자연스레 그쪽으로 맞추려면 일단 제대로 많이 뽑을 수 있는게 필요했죠
      그 사상이 AK47까지 전달되었고 말입니다

  3.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06 14:40 신고

    역시 소련산 기관단총은 별로안막히고 m16처럼 너무 정교하지않아



사용탄약: 7.62 x 25 mm Tokarev
전체무게: 3.04 kg
전체길이: 820 mm(개머리판 펼쳤을때) / 615 mm(접었을때)
총열길이: 243 mm
장탄수: 35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세계 2차대전 당시 새로운 개인화기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큰 손해를 본 경우는 꽤나 많습니다. 특히 소련군의 압도적인 물량들 때문에 고민이 많던 독일군을 위해 등장한 화기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꽤나 쓸만하다거나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지는 녀석들은 거의 모두 동부전선에서 시험적인 평가와 데뷔를 마쳤고, 이는 동부전선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병사들이 전투를 해야 하는지를 절실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소련군의 경우 독일군의 개인화기에 영향을 받아서 개인화기를 스스로 개발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세계 2차대전 이전에 이미 겨울전쟁을 겪으면서 핀란드군이 사용했던 수오미 기관단총(제식명은 M31)의 실질적인 성능을 알게 되어 PPD-40을 제식으로 생산했지만, 이를 전군으로 대체할 만큼 많이 생산하지는 않고 있던 와중에 독일군이 침공하면서 보여준 MP40의 위력은 소련군이 부랴부랴 대량생산이 가능한 저가 기관단총을 개발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주게 되었지요.


독일군의 이러한 영향으로 개발된 PPSH-41은 오늘날에도 명작이라고 불릴만큼 꽤 성공적인 녀석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정확도나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나쁜 평가를 받았지만, 몇시간의 작업끝에 만들어질 수 있었음과 동시에 하루에 3천정까지 생산이 가능했다는 점은 확실히 전선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음과 동시에 개인화기 숫자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는 소련군이 세계 2차대전 종전까지 기관단총을 가장 많이 생산 및 사용한 국가로 발돋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PPSH-41은 여러모로 근접전투에서 꽤 좋은 화기이고, 생산량도 굉장히 높았습니다만, 실질적으로 더 많은 생산량과 더 단순한 구조를 원했던 소련군에게는 아직도 모자란 존재(물론 그런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종전 까지 PPSH-41의 생산 중단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에 따라 PPSH-41을 좀 더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것이 바로 PPS 시리즈입니다.


일반적으로 PPS 시리즈라고 생각하면 PPS-43을 곧바로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실 PPS-43은 PPSH-41의 직계자손이라고 하기보다는 PPS-42라는 다소 생소한 녀석의 직계자손이라고 할 수 있지요. PPS-42의 경우 레닌그라드 전투당시 소련군이 독일군에 의해 포위된 상태에서 PPSH-41가 너무 생산하기 복잡하고 목재 구조를 사용하기 때문에 목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에 등장하였는데, PPS-42는 레닌그라드 전투당시 레닌그라드에서 싸우던 소련군이 화기 열세로 전멸하지 않게 해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지요. PPS-42는 이후 PPS-43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제식에서 물러나게 됩니다만(사실상 PPS-42는 레닌그라드 전투 이후 공식적으로는 쓰인 일이 없기 때문에 제식이라고 하기도 조금 뭐합니다), 이 PPS-42의 컨셉과 디자인은 이후 PPS-43의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요.

PPS-43은 앞서 언급한 PPS-42의 개량형으로 PPSH-41보다 훨씬 더 싸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 녀석의 경우 PPSH-41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목재 부품을 완전히 제거함과 동시에 접절식 개머리판을 채택하였고, 이와 동시에 PPSH-41하면 떠오르는 71발 탄창이 잼을 잘 일으키고 무거움과 동시에 생산라인을 복잡하게 한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35발 바나나식 탄창을 사용하도록 고안(물론 35발 탄창은 PPSH-41에서도 사용이 가능했습니다만, PPS-43 전용으로 나왔기 때문에 PPS가 더 많이 썼지요)했다는 점을 들 수 있지요.


물론 이러한 점들 때문에 PPS-43가 생산성이 높아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성능이 PPSH-41와 비슷하거나 나빠졌다고는 할 수 없는게, PPS-43의 경우 생산성을 높이는 점과 동시에 PPSH-41에서 생산성을 제외한 전체적인 성능에서 나온 문제점도 같이 해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둘 수 있지요. 이 녀석의 경우 일단적으로 PPSH-41보다 좀 더 안정적인 성능을 위하여 안전 장치도 개선되었으며, 탄피 배출구나 탄창의 각도를 조절함으로서 PPSH-41에서 지적되었던 급탄 불량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성공적이였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전체적으로 PPS-43은 2차대전 당시 개발된 기관단총들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싸게 만들 수 있는 기관단총들중 하나로서(다른 녀석들은 Mk.2 스텐같은 녀석들을 들 수 있겠지요) PPSH-41을 공식적으로 대체하려고 만들었습니다만, 전쟁 기간동안 생산된 PPSH-41의 생산 숫자, 그리고 긴박한 전황 때문에 쉽게 파파샤를 대체하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2차대전 이후 생산이 중단된 PPSH-41와 다르게 이 녀석의 경우 1968년까지 생산되면서 AK-47가 제식으로 전군보급이 시작되는 시점 이후에도 널리 쓰였으며, 소련 뿐만 아니라 공산권 국가들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지요(대표적으로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이 다수 넘겨받아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중공군도 43식이라는 이름하에 데드카피 버전을 생산 및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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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9 08:48 신고

    pp-19하고 똑같이 생긴 저 소염기!



사용탄약: 9 x 19 mm 파라블럼
전체무게: 4.24 kg
전체길이: 840 mm
총열길이: 200 mm
장탄수: 24발, 32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40발



시어도어 베르그만이 개발한 MP-18이라는 기관단총은, 오늘날로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고 쓰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 녀석입니다만 적어도 세계 1차대전 말에 나온 화기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자리잡은 녀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자동화기라고 하면 무겁고 여러명이서 운용하며, 진지에 박아놓고 쏘는것이 보편화된 고정관념인지라 들고 다닐 수 있는 자동화기라는 개념의 기관단총은 비록 위력은 기본적인 볼트액션 소총에 비하면 터무니 짝이없이 약하긴 했지만, 적어도 참호를 청소하는 용도로서는 그 시대에서는 최고의 성능을 발휘했지요.

비록 MP-18의 경우 세계 1차대전 말기에 등장해서 전선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했지만, 이를 습득하거나 세계 1차대전 이후 기관단총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연합군 국가들의 경우 기관단총에 대한 개발 및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경우 MP-18을 카피한 렌체스터 기관단총과 이후에 개발된 저가 기관단총인 Mk.II 스텐을 사용하였고, 미국은 M1928/M1 톰슨과 M50/M55 레이징 기관단총을 사용하였고, 마지막으로 소련은 PPSH-41와 PPS-43을 제식으로 사용하면서 기관단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지요.


세계 1차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의 경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하여 새로운 화기 및 군용 장비에 대한 개발 및 군 증강에 대해서 여러가지 제약을 받았지만, 비밀리에 군용 기관단총을 새로 개발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MP-18가 아무리 기관단총의 개념이나 기본 원리를 제공한 녀석이였지만, 대량생산을 하기에는 스펙적으로 문제가 많았고, 총 자체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냥 쓰는것 보다는 기본 원리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새로 개량을 하는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지요.

독일의 새로운 기관단총 개발에는 시어도어 베르그만의 아들이였던 에밀 베르그만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에밀의 경우 아무래도 아버지가 만든 MP-18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혹은 맨 처음 많은 참고를 했던 MP32 기관단총이 MP-18과 많은점에서 비슷해서인지 몰라도 MP18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BMP-34(나중에는 베르그만 MP-34 기관단총으로 명명)을 개발하게 되었지요. 이 녀석의 경우 사실 맨 처음에는 군용이 아니라 경찰용 및 민수시장(민수시장이라고 합니다만, 사실상 민수시장이 아니라 다른나라 경찰용으로 흘러 들어간게 대부분이지요)으로 판매되었고, 이후에 독일 국방군에 채용되기 위해서 새로 기관단총을 개량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MP-35 기관단총입니다.


MP-35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베르그만이 디자인했던 녀석인지라 MP-18와 여러가지 면에서 동일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9 x 19 mm 파라블럼탄을 기본으로 급탄하는것 이외에도 옆에서 탄창을 장착해서 사용하는 구조(다만 MP-18와는 다르게 오른쪽으로 탄창이 급탄되는 형식이였습니다)나 목재 스톡을 사용하고 무게가 무겁다는 점을 포함해서 총의 대부분의 특징들이 사실상 MP-18와 비슷하지요. 다만 MP-18에서 제기되었던 급탄시 불량 문제나 가격문제에서는 개량을 통해서 군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수준까지 맞추게 되었고, 그에따라 독일 국방군에서 세계 2차대전당시 쓰인 주력 기관단총중 하나로 자리잡게 됩니다.

베르그만 MP35의 경우 사실상 MP40이 개발되기 전에 나온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상 특징 때문에 제식 기관단총으로 최전선에서 전군에 배치되는 행운을 얻지는 못했습니다만, 적어도 생산량이 4만정 이상이라는, 꽤 높은 숫자 때문에 독일 국방군에서 유명했던 무장 친위대(Waffen SS)의 제식 기관단총으로 사용되는 행운을 얻었지요. 이러한 점 덕분에 MP-35는 1945년 종전까지 계속 사용되었고, 종전 이후에도 볼리비아, 스페인, 스웨덴에 수출되어 수년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이 당시에는 M39라는 이름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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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8 x 22 mm 남부탄
전체무게: 3.38 kg
전체길이: 900 mm
총열길이: 228 mm
장탄수: 3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800발



세계 1차대전 당시 처음 등장한 "들고다니는 휴대용 자동화기"라는 개념(오늘날에는 기관단총으로 분류되는 화기들)은 사실상 1차대전 당시에는 그리 큰 빛을 발하거나 유행을 이끌지는 못했지만, 2차대전이 시작되는 시기부터는 엄청난 양과 종류가 등장함에 따라 오늘날 여러모로 찾아보기 쉬운 화기가 되었지요. 기관단총이라는 분류 자체는 사실상 오늘날 많이 퇴색되었고, 돌격소총같은 자동화기가 등장함에 따라 굳이 기관단총을 사용해야 하는 의견도 등장했습니다만, 적어도 2차대전 당시에는 기관단총이 병사들에게 쥐어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어느정도 안정적인 성능 및 가격을 가졌던 유일한 자동화기였지요.

2차대전 당시 참전했던 나라들은 거의 대부분 한개씩의 기관단총은 하나씩 보유하고 있었는데, 추축군으로 참전했던 일본도 이와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지요. 비록 1차대전 당시에는 기관단총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 운영 가능성 및 실전 효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던지라 기관단총을 개발하자는 의견 자체가 대두되진 않았지만,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많은 국가들이 기관단총의 성능 및 효과를 알게 됨으로서 일본 군부 내에서도 기관단총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게 되었지요.


일반적으로 일본군의 경우 사실상 기관단총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굉장히 늦은 시기에 기관단총을 개발한것으로 유명한데, 일본이 2차대전에 참전한 시기는 1939년이였지만 실제로 기관단총을 개발 및 채용한 시기는 이로부터 3년뒤인 1942년이라고 할 수 있지요. 1942년 당시 일본군에 제식으로 채용된 기관단총이 바로 오늘 리뷰에서 언급되는 100식 기관단총입니다.

100식 기관단총의 경우 일본군이 최초로 개발 및 채용을 한 기관단총으로서, 이 녀석의 경우 디자인에서 볼 수 있듯이 1차대전 말기 독일이 개발했던 MP-18 기관단총에서 출발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녀석의 경우 그 당시 일본군용 권총 탄약이였던 8x 22 mm Nambu(남부) 탄약을 쓰도록 개발다는 되었고, 기본적인 스펙에 관해서는 그렇게 크게 언급할 만한 특징이나 단점은 없습니다만, 이러한 점들과 다르게 굉장히 논란이 많이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100식 기관단총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저지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이 문제는 총보다는 총알의 문제라고 해야 맞겠지만, 100식 기관단총에 쓰인 남부탄의 경우 독일 및 서유럽에서 쓰인 호신용 권총 탄약인 .380 ACP보다 약간 낮은 운동에너지 및 저지력을 가졌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기관단총으로 쓰기에는 약간 모자란 성능(낮은 사거리와 낮은 저지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이러한 이유로 후기형의 경우 초기형보다 2배나 빠른 발사속도를 가졌다고 하네요). 이와 더불에 100식의 경우 전쟁이 끝나말 무렵에는 대량생산을 위하여 총의 부품들이 굉장히 나쁜 질을 가져서 사용하기에 여러모로 불편했다는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100식 기관단총 자체는 그리 나쁜 녀석이 아니였습니다. 총 자체는 초기형이 나왔을때 꽤 높은 내구도를 가지고 있었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하여 기관단총에서는 보기힘든 양각대를 채용하는듯 여러모로 신경을 쓴것을 볼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상황이 연합군쪽으로 기울면서 화기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되자 성능이 나쁘더라도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결국 100식은 그리 좋지 않은 녀석으로 낙인찍히게 되었지요.


100식 기관단총의 경우 오늘날 잘 알려진것과 다르게 별로 큰 생산량을 기록하지는 못했습니다. 총의 생산능력은 둘째 치더라도 일본 군부에서는 기관단총에 대한 효율성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고, 소총 및 기관총 생산에만 주력한 나머지 100식 기관단총은 성능 및 평가를 떠나서 종전까지 약 3만정 이하로만 생산이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100식 기관단총은 특수부대 및 공수부대용으로만 지급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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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4 13:37 신고

    귀중한 100식 기관단총이 뿌려지는 콜오브듀티5! ㅋ

  2. 2009.09.04 18:54 신고

    태클은 아닙니다만, 자꾸 보이는 거라서요
    '구지' -> '굳이' 가 맞습니다

  3. 2009.09.04 22:28 신고

    예나 지금이나 일본군 무기는 신뢰 할 수가 없어요 -_-;;...이렇게 따지니 같은 섬나라인 영국무기도 그렇네요...일본보다는 덜 하지만요(.....)
    아, 자동화기로서 기관단총이 풍미하던 2차대전...로, 로망이다 ㅠ_ㅠ 사방으로 긁어주는 모습을 보여 달란 말이야이야이야이(.....)

  4. 2009.09.08 10:40 신고

    뭐야 일본군도 공수부대가 있었습니까!?

  5. 2009.09.12 08:44 신고

    궁금한게 있는데 왜 2차대전 당시의 총화기(스텐이나 FG-42같은거, 사진에 녀석도 포함)들은 탄창을 측면에 꽂는 디자인이 많은가요?

    그당시에 완충스프링 제작기술이 좀 떨어졌습니까?

  6. 2010.09.25 15:27 신고

    이건 착검도 가능했다고 하네요(칼 덕후 일본군), 그리고 섬나라 총기의 안습의 내구성의 결정판은 SA80이 되겠죠...(한탄창 아무 문제없이 비우면 머신갓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라고밖에 말 할 수 없죠)

    • 2010.09.26 02:11 신고

      어짜피 기관단총 착검은 미군도 시험삼아 해봤고
      영국군은 실제로 실천한 경험이 있으니 뭐라고 하긴 그럽니다

      그리고 100식의 문제점은 총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디자인이 구리고, 탄약이 약하다는게 문제였다고 할 수 있죠



사용탄약
: 9 x 19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22kg
전체길이: 556mm(개머리판 접었을때) / 730mm(펼쳤을때)
총열길이: 197mm
장탄수: 32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최대 분당 650발

 
폴란드라는 국가는 세계 2차대전이 시작되자 마자 독일군에 점령된 최초의 국가로서 큰 저항을 하지 못하고 독일군의 전격전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힌 국가중 하나입니다. 폴란드의 경우 특이하게도 독일에만 점령당한게 아니라, 소련에게도 점령을 당했는데, 소련과 독일의 협정으로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침공과 1939년 9월 18일 소련의 침공으로 반반씩 점령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뭐 폴란드군도 제식군대가 있었고, 그에따라 전시 초기에는 어느정도 저항을 하긴 했습니다만, 군사력의 엄청난 차이와 기술력의 부족, 그리고 지형적인 약점에 의해서 독일과 소련에게 통합이 되게 됩니다.


사실 2차대전 당시 저항군, 혹은 "레지스탕스(Resistance)"을 말하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들을 말하는게 대부분인데,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여러나라에서 레지스탕스의 활동은 존재했었고, 폴란드도 그런 레지스탕스를 보유한 국가중 하나였습니다. 레지스탕스들의 경우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을 수 없었고,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들의 경우 영국이 몰래 지원해주는 스텐이나 기타 총들(FP-45 리버레이터도 여기에 포함)과 구호품에 의존하면서 저항활동을 벌여왔습니다.

많은 국가들의 레지스탕스들이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원을 받았긴 했습니다만, 독일 본토에 근접한 폴란드 레지스탕스들에게 이런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그에따라 폴란드는 특이하게 아예 무장단체에서 새로 기관단총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사용될 기관단총은 생산성이 높고 저가여야 한다는 게 가장 최우선 과제였는데, 본문에 나온 브위스카위차 기관단총은 이런 조건들을 만족한 총중에서 폴란드 레지스탕스에 채용된 최초이자 마지막 기관단총이였습니다


이 총을 만든 개발/채용한 레지스탕스 조직은 1942년에 설립된 무장독립단체인 Armia Krajowa 였는데, 이 단체에 있던 Waclaw Zawrotny라는 엔지니어가 다른 조직 기술자들과 만든 총이 바로 이 브위스카비차 기관단총입니다. 브위스카비차기관단총의 경우 "값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실용성이 높고 숙련되지 않은 기술자들도 만들수 있는 자동화기"를 목표로 개발되었고, 그에따라 별로 큰 성능을 기대할 수는 없는듯 보입니다만, 사실 이 녀석은 그 당시 나온 저가 기관단총들 중에서는 가장 고급품질을 자랑(?)하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위스카비차 기관단총은 생긴것은 전혀 다르지만, 내부구조나 컨셉은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많이쓰인 기관단총인 MP-40와 Mk.II 스텐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총열밑에 탄창 삽입구를 장치하는것과 총의 안쪽으로 접을 수 있는 개머리판은 MP40에서 따왔고, 블로우백 방식과 오픈볼트 사격방식은 스텐 기관단총에서 참고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서 "내구도는 스텐이지만 정밀성은 MP-40"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요


브위스카비차 기관단총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는 1943년 5월에 완료되었고, 프로토타입은 9월에 나와 성공적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9월 생산요청이 공장에 보내어졌고(1300정), 생산이 시작되었었습니다(철 담장을 만든다는 핑계로 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생산은 레지스탕스들이 봉기한 템페스트 작전때까지 총 600정 정도가 생산되었으며, 바르샤바 봉기때까지는 추가로 40정이 더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이후로는 독일군의 감시로 인해서 레지스탕스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에따라 지속적인 생산은 잠정적으로 중단이 되게 됩니다.

P.S) 특히 템페스트 작전과 바르샤바 봉기당시 독일군에 의해서 생산일정이나 장소가 돌통났고, 생산시설이 완전히 부서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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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8 14:17 신고

    왠지 저런 총을 들고 싸웠을 분들을 생각하면 씁슬해짐 -_-;; 바르샤바 봉기같은 경우엔 어디선가 자세하게 읽은적이 있는데, 소련군이 오기 전에 독일을 내쫓아서 어떻게 공산화를 막아보겠다는 생각이었던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안남

    • 2009.06.08 14:58 신고

      소련군이 오기전에 독일을 내쫓으면 오히려 공산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거 아님?? =ㅅ=;;;;

    • 2011.02.13 11:36 신고

      그게 아니라 당시 폴란드 임시정부가 2개로 갈라져있었는데 하나는 런던임시정부고 하나는 루블린위원회였음(참고로 루블린위원회는 공산주의) 그런데 폴란드레지스탕스는 런던 임시정부를 지지했음. 그런데 독일이 패배해서 물러가고 소련이 오고있는데 루블린이 소련군 오고있으니 봉기하라고 떠들어 댐.만약 봉기 안하면 레지스탕스는 독일에 맞선 저항세력은 커녕 나치부역자로 찍힐 판인지라... 어쩔수없이 이래죽나 저래죽나 바르샤바시민들과 레지스탕스는 봉기하여 ss친위대와 시가전을 벌임. 결국 이기기는 했으나 20만명이 사망.



사용탄약: 9 x 19mm 파라블럼탄
전체무게: 4.21kg
전체길이: 806mm
총열길이: 247mm
장탄수: 33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700발

 

세계 2차대전 당시 호주군은 미국, 영국, 프랑스와 함께 연합군의 입장에서 추축군인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에 맞써서 싸운 국가중 하나입니다. 비록 2차대전사에 잘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호주군도 2차대전 당시 연합군으로서 큰 역할을 했고, 특히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군과 함께 일본을 저지하는데 큰 몫을 한 국가중 하나입니다.

보통 2차대전 화기를 공부하게 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건 누가 뭐래도 연합군의 대표격이였던 미국과 영국의 화기, 그리고 추축군의 대표격이였던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의 화기가 나오게 되는데, 호주군의 경우 자체적으로 개인화기를 개발하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많이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뭐 생각해보면 호주군의 경우 미국이 지급해준 M1 개런드나 M1A1 톰슨을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따로 화기를 개발해서 사용했지요. 기관단총도 마찬가지인데, 호주군이 개발한 기관단총을 이야기려면 일단 이 기관단총을 창시한 오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 오웬이라는 사람은 호주에 사는 호주 시민인데, 그의 나이가 24살이였던 해, 즉 1939년 7월에 이 오웬은 새로운 기관단총(혹은 자동카빈이라고 불리는)을 만들게 됩니다. 그게 바로 오늘날 오웬 기관단총의 시초가 된 ".22구경 기관단총"이였는데, 그당시 오웬은 그 기관단총을 자국인 호주(오스트레일리아)군의 주력 기관단총으로 채용시킬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어떻게 개발하게 되었는 지는 잘 설명이 안되어 있네요). 그러나 기관단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호주군은 이 화기를 채용하지 않았고, 오웬은 이등병으로서 세계 2차대전에 참전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꿈을 접어버리지 않았던 오웬은 전쟁에 참전한지 2년째 되던 1941년 직접 "군의 관계자와 이 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라는것을 결심하고 그당시 군 관계자였던 워델이라는 사람에게 이 총을 보여주게 됩니다. 워델은 이 총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고, 이걸 다시 군 채용으로 하기위해서 로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몇가지 문제점을 보완해야 했기 때문에 채용에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오웬이 맨처음 개발한 기관단총은 오늘날 존재하는 오웬 기관단총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까 말했듯이 초기 오웬 기관단총은 9미리 파라블럼이 아닌 .22구경 탄을 사용하고 있었고, 탄창도 기존 막대식이 아니라 드럼탄창을 쓰고있었기 때문에 호주군은 이걸 수정해야 한다고 오웬에게 요구를 하게되고, 그걸 수정한 버전이 드디어 나오게 됩니다. 이 버전이 바로 오늘날 잘 알려져 있는 오웬 기관단총의 원형입니다.
 
오웬 기관단총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 시대에 나온 저가 기관단총들 보다는 가격이 비쌌을지는 몰라도 전장에서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데, 일단 9mm, .22 구경, .38 S&W등등 다양한 탄약을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기존 기관단총에서는 잘 보기 힘들었던 상부 급탄 시스템을 채용한것과 탄피 배출구를 탄창에 장치한거, 그리고 리시버와 볼트를 개별로 개발한 점이나 빠르게 총열을 교환할 수 있는점 들이 이 총에 대한 효과를 입증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군과의 접전을 벌이던 태평양 지역의 정글에서 고장없이 잘 작동했고 이 총을 써본 병사들은 이 총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태평양 전선은 총들이 잘 고장나는 환경으로 유명한데, 오웬 기관단총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 총은 1942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서 1945년 종전 전까지 약 3년동안 무려 50,000정이나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당시 독일군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어 생산을 시작했던 STG-44의 생산량(MKb.42 시리즈 포함)에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양이지만 기관단총으로서는 꽤나 많이 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총은 호주군뿐만 아니라 미군, 영국군, 뉴질랜드군에서도 쓰였으며 2차대전이후 한국전쟁, 그리고 심지어 베트남전때까지도 쓰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녀석의 경우 약 4가지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기본 스펙은 동일하지만 사용탄환만 다른 버전입니다(접절식 개머리판 버전도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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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8 14:19 신고

    사진의 총기는 뭔가 페인트볼 발사기처럼 생겼군요 -_-;; 도색을 요상하게 해서 그런가.

  2. 2014.02.18 20:04

    비밀댓글입니다

  3. 2014.02.18 20:05 신고

    그리고 정보잘알고가요~~



사용탄약: 9 x 19mm 파라블럼탄
전체무게: 3.18kg
전체길이: 760mm
총열길이: 196mm
장탄수: 3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500발


 
세계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 유럽전선은 독일 vs 영국 + 프랑스 이런 대결구도로 진행되었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서 소련과 반땅을 나눠먹은 다음 다른 나라들을 엿보는 것을 본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다시한번 세계대전을 일으킬 것이라 예측을 하고 미리 선전포고를 해서 초반에 제압할 계획을 꾸미게 됩니다. 하지만 1919년부터 이를 부득부득 갈아오면서 기술개발과 군비확충에 전념했던 독일군의 망령을 이기기에는 영국과 프랑스는 너무나도 약했었고, 결국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한 이후로 남은 영국군들은 부랴부랴 철수작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대게 스텐 기관단총을 이야기하면 등장하는 작전이 하나 있는데, 이 작전이 스텐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덩게르크 해안 철수작전입니다. 사실 말로만 작전이였지 이것은 영국군들이 유럽대륙에서 독일군이 말살을 시키기 전에 영국 본토로 도망가는 작전(나중에 한국전쟁때도 흥남 철수작전이라고 비스무리한게 진행되기는 합니다)을 실행하게 되는데, 이때 성공적으로 영국군을 본토에서 철수시키긴 했습니다만(자료에는 전혀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지만, 독일군은 1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지요) 몸만 급하게 빼오느라 리엔필드나 빅커스 중기관총같은 개인화기들을 같이 빼올 수는 없었다는게 문제로 지적되기 시작합니다.


전쟁에 있어서 개인화기는 샤프의 샤프심처럼 가장 원초적인 구성요소이면서 가장 중요한 필수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개인화기를 영국군은 덩게르크 해안, 혹은 독일군의 점령지에 던지고 왔었고, 남은 병사들을 재무장 시키려면 빠른 시기에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화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뭐 S.M.L.E 리엔필드 볼트액션 소총같은 경우 생산량이 꽤 많았긴 했습니다만, 빠른 시간내에 만들 수 있는 그런 간단한 화기도 아니였고, 더 빨리, 더 많이, 성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나올 수 있는 그런 녀석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 독일군이 사용했던 MP시리즈에 대한 타격도 어느정도 받은 지라 기관단총을 새로운 화기로 채택할 생각을 하고 만든게 바로 스텐시리즈입니다.

P.S) 뭐 2차대전 당시 미국이 랜드리스라는 명목하에 톰슨을 지급한 적은 있습니다만, 별로 많진 않았고 이거로 정규군을 모두 무장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군이 제시한 기관단총의 최소조건은 "9미리 파라블럼 탄환을 쓸 수 있어야되고, 거의 대부분의 부품이 철판프레스로 제작되어야 하며, 그 누구라도 쉽게 조립, 분해, 제작이 가능해야" 라는 것이였습니다. 물론 신뢰성과 내구성을 완전히 버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였습니다만, 어느정도 이 두가지를 약간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였지요. 뭐 결국 나오게 된 스텐(Sten) 시리즈으 경우 5명이서 1시간동안 조립하는것으로 완성할 수 있었으며, 부품의 개수도 50개 미만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정당 가격은 6천원($6)이였다고 하니, 영국군이 원하는 최소한의 조건은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스텐의 경우 몇가지 종류가 나왔지만, 가장 많이 생산되고 쓰인 녀석은 단연 Mk.II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초기 대량생산용 버전인 Mk.I의 경우 Mk.II와 다르게 총열을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있었고, 개머리판도 단단한 구조에다가 저가 기관단총 주제에 컴팬세이터까지 달려있던 녀석이였지요. 하지만 이런 점들이 스텐의 가격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었고, Mk.II부터는 사실상 아주 최소한의 사수를 위한 배려가 아닌 다른 점들은 다 탈락을 시키게 됩니다.


Mk.II스텐은 1941년부터 생산되어서 1945년 생산을 잠정적으로 중단(물론 그 이후 바리에이션들은 지속적인 생산이 됩니다)하게 되었습니다만, 4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460만정이라는 높은 생산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이 녀석이 얼마나 대량생산에 적합한지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생산량이 높다고 이 녀석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일단 사수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디자인(앞손잡이가 없어서 사수들은 탄창을 잡고 쏴야 했습니다만, 탄창을 잡고쏘면 스프링 문제로 잼이 걸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에다가 총의 품질 자체도 참 저질이였던 이 녀석은 나중에 "스텐에게 바치는 송시"가 나올 정도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영국군은 같은 9 x 19 mm 파라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독일군의 MP-40을 노획해서 사용하는것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P.S) 다만 아이러니한 점은 2차대전 당시 독일도 영국과 같이 상황이 급박해지자 스텐을 카피한 포츠담 장비, 그리고 이 포츠담 장비보다 더 열약한 구조의 MP-3008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스텐 시리즈(특히 Mk.II)는 사실상 2차대전 이후 개발된 스털링 기관단총에게 제식자리를 내어주고 퇴역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만, 이 녀석의 바리에이션들은 스텐의 가장 대표적인 Mark 2보다는 훨씬 나은 특징(사수 배려는 물론이고 소음기를 단 버전도 출시)들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전쟁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다수가 사용되었고,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양이 수출및 라이센스 판매가 된 녀석입니다(중공내전때도 사용된 기록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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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8 14:22 신고

    mp18리뷰할때 느낀거지만, 유럽의 많은 기관단총들이 mp18이란 녀석한테 영향을 받았더군요 ;; 렌체스터인가 하는 녀석도 mp18의 영국 카피버전이고 (2차 세계대전때 영국군에 의해 쓰였다던데?)

    저건 대장간에 설계도만 들고가면 만들어준다는 소리가 돌던데, 실제로도 구조가 그렇게나.. 간단한겁니까?

    • 2009.06.08 15:01 신고

      1. MP-18이라는게 사실상 최초의 기관단총이다 보니까 디자인을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최후 방법이 바로 MP-18의 디자인을 최대한 많이 참고하면서 각자 총을 따로 개발하는것이 되었음. 하지만 문제는 MP-18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능이 "씨X"수준이였으니 =ㅅ=;;;

      2. 대장간에 가면 몇개는 만들겠지만, 총열과 트리거 부분은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권장하지는 않는수준이랄까???

  2. 2010.01.17 21:16 신고

    랜드메스가 아니라 랜드리스 lend lease 아닌가요

  3. 2010.09.25 15:39 신고

    이거 던지면 총이 격발된다는데... 이걸 이용한 사례는 없나요?(예를 들면 독일군 참호에 수류탄대신 끼얹는다거나...)

  4. 2010.11.04 18:19 신고

    후기형은 개머리판이 좀 바꼈든데....

  5.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5 09:49 신고

    영국군이 사막에서 스텐별로 안쓰고 톰슨??썻다?

  6. 2011.01.28 19:44 신고

    이거 미이라3에서 나온 듯

  7.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01 18:37 신고

    이거 전투기에서 미이라3에서 쓰던만 ㅋ 병마용갱 죽일때 ㅋㅋ

    주인공 아내의 형: 죽어 죽어 이망할것들아 ㅋㅋ

    비행기 조종사: 욕하지마 ,,,!!


구경 : 9x19mm 파라블럼
전체무게: 3.97kg
전체길이 : 630mm(개머리판 접었을때) / 833mm(개머리판 펼쳤을때)
총열길이: 251mm
장탄수 : 32발 박스탄창
발사방식: 오픈볼트, 블로우백
발사속도 : 분당 500발


세계 1차대전당시 독일군은 기관단총을 처음으로 군용 채용한 국가중 하나입니다. 그 당시 독일이 채용한 총은 독일 내 총기회사중 하나인 슈마이저(Schmeisser, Hugo)사가 제작한 기관단총(그당시엔 기관권총으로 불린) Maschinenpistole 18(MP18)인데, 이 녀석의 경우 참호전이 주로 이루어졌던 1차대전 당시 이 총의 위력은 상당히 쓸모있었습니다(톰슨이 개발된 이유도 이것 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MP18의 경우 기관단총의 개념이 정확히 바로 잡히지 않은 시기에 개발된 녀석인지라 한정당 가격이 2차대전 당시 개발된 녀석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비싸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뿐만 아니라 고장이 나는 열약한 내구성과 무게,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문제점(부품이 철판 프레스가 아닌 절삭가공이라는 점) 때문에 대량으로 쓰이지는 못하고 세계 1차대전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기관단총의 개념을 정확히 바로잡았다는 의의와 함께 나중에 영국군에서 렌체스터 기관단총이라는 이름으로 카피생산이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세계 1차대전 이후 독일군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서 병기에 대한 개발 및 생산에 큰 제약을 받긴 합니다만, 개인화기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개발을 하게 되었고, 기존의 MP18에 대해서 개량을 몇번에 실시한 끝에 MP-35라는 이름의 최종 진화형(?)이 나오게 됩니다만, MP-18부터 시작된 시리즈의 경우 고질적인 문제점이 발생하자 독일군은 MP-18의 디자인이 아닌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채용하게 되는데, 그 디자인이 바로 엘마사의 MP-38이였습니다.

엘마사의 MP-38은 MP-18/28/35이 사이드에서 탄창급탄을 하고 나무 목재 스토크를 사용했던데 반해 MP-38은 아래서 급탄을 하고 철제 개머리판 및 몸통을 사용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MP-38의 전체적인 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나중에 개발된 기관단총들과 다르게 정밀가공한 부품을 사용했고(절삭가공), 주조를 할때 알루미늄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격이 굉장히 비쌌었습니다. 게다가 MP38가 꽤 쓰인 1939년 폴란드 침공당시 탄걸림현상과 총 폭발등등 심각한 문제들이 대두되었던 점들때문에 독일군은 이걸 개량한 총을 채용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MP40입니다.


MP-38와 비교했을때 가장 큰 차이점은 제조방식인데, 절삭가공을 함으로서 생기는 가격보다 싸게 하기위해서 철판 프레스로 대부분의 부품을 제작하도록 변경되었고, 기존의 38보다 노리쇠를 무겁게 해서 엔간한 먼지나 고장에는 끄떡없이 작동하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개선을 통해서 MP-40은 1940년 독일군에 제식 기관단총으로 채용되게 됩니다.

1940년부터 생산되어 1945년 종전 전까지 MP-40은 약 100만정 이상이 생산되었고, 전후를 기점으로 많은 양이 다른 나라에 지급되거나 수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계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MP-40을 노획해서 사용하는것을 선호해 할 정도로 성능이나 품질로서는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목재 스토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추운 날씨나 더운 날씨에는 잼을 일으키거나 사수에 대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었다는 단점이 있었고, 자동발사 방식만 가능하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었었습니다(나중에 BD-38라고 반자동이 가능한 녀석이 나오긴 합니다만, 극소수만 생산된 버전입니다)


MP-40의 주요 바리에이션은 71발 드럼탄창을 사용해서 독일군의 MP40의 두배에 달하는 장탄수를 자랑했던 PPSH-41에 대항하기 위해서 개발한 MP40/II(탄창이 2개가 장착이 가능해서 한 탄창이 비워지면 자동적으로 다른 탄창에서 탄이 나가는 형식)이 존재하고, 나무 목재 스토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변경한 MP-41이 존재합니다(MP-40/II의 경우 잼이 잘 걸리는 문제와 무겁다는 이유로 별로 생산되지 않았고, MP-41은 정규군보다는 비 정규군이나 국민돌격대 같은 곳에 지급되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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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2 10:37 신고

    나무 부품을 사용하는 녀석은 동부전선으로 보내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2. 바실리자이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12.15 21:45 신고

    근데게임할때마다 모든총기에비해 연사력이 구린거같은 이압박감은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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