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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중량: 2.5톤
전체길이:
17 m
생산댓수: 약 5대
운용인원: 300명(운반), 8명(조작)
최대사거리: 약 30 ~ 40미터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개발과 구상이 끝났지만 정작 실전에서의 대량사용은 한참 지연이 된 화염방사기는 처음 참호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을때 병사들에게 공포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실제 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능을 떠나 불을 뿜는 병사라는 이미지는 화염방사기가 확실히 적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심리적인 장점과는 다르게 이 물건은 대량으로 쓰여도 좋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화염방사기가 같은 시기 처음 대량으로 쓰여 군 개인화기 개발사에 큰 영향을 미친 기관총과 다르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에는 화기의 한계점이 큰 몫을 차지하였습니다. 보병이 휴대할 수 있게 만든 화염방사기는 발사시간이 굉장히 짧거나 아니면 사거리가 짧은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고 해서 발사 지속시간과 사거리를 늘린 물건을 만들자니 보병 여러명이 이를 운송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고 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1차대전 당시 등장한 리벤스 대형 화염방사기는 이러한 보병용 화염방사기의 성능상 한계를 해결하고자 등장하였습니다.


영국군 공병 출신 장병인 윌리엄 하워드 리벤스(William Howard Rivens)는 1차대전 당시 뛰어난 아이디어 제공으로 인해 화학전과 화염방사기 개발에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만든 리벤스 대형 화염 방사기는 사거리나 성능을 희생시켜 보병용 화염방사기를 만들 바에는 차라리 대형 화염방사기를 만들어 제대로 된 성능을 구현하도록 하자는 발상을 통해 개발되었고, 실제로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개인단위로 운반이 불가능하게 커진지라 300명의 병사들이 전선으로 분해된 화염방사기 부품을 나르고 8명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이를 조립 및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시제품 4대가 1916년 처음 솜 전투 당시 참호간의 처음으로 시연을 보일 예정이였지만 독일군의 포격으로 인해 4대중 2대가 부서져 버린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4대중 온전히 남아있던 2대는 공세시작 직후 사용이 되었고,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배치된 지역은 영국군이 적은 사상자만으로 최전선 돌파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리벤스 화염방사기가 운반하기 힘든 만큼 제 몫을 해냈다는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요.


솜 전투 이후 1917년 벨기에 딕스마이데(Diksmuide)시 근처 공세 당시에도 쓰인 기록이 존재하는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그 성능이 입증되기는 했지만 참호전에서 쓰려면 무인지대(No Man's Land, 적군과 아군 참호간의 평지를 지칭하는 단어) 아래로 화염 방사기를 묻을 수 있는 터널을 파야한다는 번거로움과 더불어 실제 성능이 대량생산을 해야할 수준으로 보이지 않다는 평가에 의해 솜 전투와 딕스마이데시 공세 이후 생산 및 사용이 중단되었습니다(이후 버려진 리벤스 화염방사기는 2010년 5월 영국에서는 부품을 모은 몇몇 전문가에 의해 실제 성능이 구현된 모델이 재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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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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