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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8은 보병이 사용할 수 있는 대전차용 57 mm 무반동포(혹은 무반동총)로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당시 미군에 의해 쓰인 물건입니다. 무반동포는 견인포에서 쓰이는 것과 비슷한 구조의 포탄을 사용하지만 기존의 탄약보다 느린 속도로 발사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무유도 로켓같은 대전차화기들보다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발사시 사수가 반동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M18 보병이 사용할 수 있는 화기로서 후장에 달린 폐쇄기를 통해 1발이 장전이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대전차용으로 개발되었지만 대인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화기는 보병의 어깨에 짊어진 상태나 지지대로 받친 상태에서 발사가 가능하며, M1917용 삼각대를 개량한 신형 삼각대를 통해 발사하였을 경우 가장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발과정]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포병대는 독일군이 사용하던 10.5 cm Leichtgeschütz 40을 기반으로 105미리 무반동포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 개발이 진행되던 시기 당시 미군 소속의 엔지니어 2명(Musser와 Kroger)은 프리랜서 형식으로 보병이 사용할 수 있는 57미리짜리 무반동포에 대한 개발도 진행하였는데, 이 보병용 대전차 화기에는 독일군이 사용하던 견인포에서 쓰였던 포탄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영국군이 썼던 "탄피의 옆구리 부분에 수백개의 구멍을 뚫어 탄피에서 나온 가스가 배출되는 방식"을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방식을 사용함으로서 M18은 한가지 장점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 장점은 바로 탄피의 옆구리에서 배출된 가스를 통해 탄두가 추진이 됨으로 인해 기존의 포탄 발사방식보다 마찰면으로 인한 속도저하가 상대적으로 낮아져 포탄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릴 수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M18의 개발에 참여하였던 두 엔지니어들은 이와 더불어 탄피에 플라스틱 덮개를 삽입하여 방수처리를 함과 동시에 탄두에 강선을 새겨 발사시 총열에 새겨진 강선과 맞물리게 했다는 특징도 추가하였다고 하는데, 탄두에 강선을 추가하는것은 이론과 다르게 실제로 큰 효과를 보여주진 못한지라 나중에 개발된 탄약들에서는 이 방식이 접목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개발을 마친 보병용 신형 무반동포는 엔지니어들의 가족이름을 혼합해서 만들어진 "Kromuskit"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데, T15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이후 1943년 11월 처음 시연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테스트 당시 보병용 57미리 무반동포의 성능이 105미리 견인포보다 더 높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옴에 따라 포병용 105미리 개발 프로젝트는 취소되고 1944년 T15 무반동포는 M18이라는 군 제식명을 받고 실전에 투입되게 되었습니다.

실전 투입당시 M18 무반동포는 4가지 탄약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는데, 이 탄약들은 HEAT(대전차 고폭탄), HE(고폭탄), 백린을 사용하는 연막탄, 그리고 연습용 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945년 초반에 드러서 약 2천정의 M18와 이에 쓰일 80만발의 탄약이 생산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군의 사용기록]
1) 2차 세계대전
M18의 첫 생산량중 약 50정 정도가 유럽전선에 투입된 시기는 1945년 3월이였습니다. 이 50정이 배치된 이후 상당한 숫자의 M18들은 태평양 전선에도 투입되게 되었는데, M18의 첫 실전은 독일 에센시에서 미군 제 17 공수사단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첫 실전경험 당시 미 공수부대원들은 M18의 고폭(HE)탄약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렸지만 대전차 고폭탄(HEAT)탄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표시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M18의 장갑 관통능력이 90도 각도로 발사했을 시 고작 63.5 mm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였습니다(그 당시 쓰였던 M1A1 바주카의 장갑 관통능력은 약 120 mm).

이런 유럽전선에서의 혹평과 다르게 태평양 전선에서의 M18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M18을 지급받은 미군들은 가벼운 무게를 자랑함과 동시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M18을 다른 대전차 화기들보다 더 선호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1945년 6월 9일 오키나와 전투에서 처음 실전경험을 치룰 당시 고폭탄과 백린 연막탄을 사용하여 숨어있는 일본군 병사들을 쉽게 섬멸할 수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합니다.

종합을 해보자면 M18 무반동포는 대전차 고폭탄(HEAT)을 제외한 다른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은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한국전쟁
한국전 당시 투입된 미군들은 중대당 3기의 M18 무반동포를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M18은 주로 적군의 기관총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쓰였다고 하는데, 이는 대전차 화기로서 소련제 T34 탱크를 무력화시키는것이 상당히 힘들었기 떄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M18을 통해서 T34 전차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측면이나 후방을 공격하는 것 밖에 존재하질 않았는데,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이 상당히 부족한지라 결국 미군은 M20 "수퍼 바주카"를 실전 배치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타국에서의 사용기록]
미군은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을 지원하기 위해 M18의 설계도를 보내주었는데, 중국 공산당이 M18을 생산하는 공장을 점령한 뒤로 생산시설과 설계도를 통해 36식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 중국이 생산한 36식 대전차화기는 1963년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 그리고 1960년대 독립을 선언한 탄자니아 공화국에도 지급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중국군의 36식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탄약과 미군제 탄약을 둘 다 사용할 수 있지만 미군의 M18은 중국군의 탄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M18 무반동포는 1984년까지 브라질 주재 Hydroar사에서 정식 라이센스를 통해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제원]
개발년도: 1942
타국 버전: 36식(중국제 카피판)
전체무게: 48.6 kg
전체길이: 1,560 mm
운용인원: 1~2명
사용탄약: 57 x 303 mm R
구경: 57 mm
총구속도: 365 m/s
유효사거리: 450 m
최대사거리: 3.97 km
조준경: M26 스코프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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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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