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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기 이전인 1900년대 초반 미군은 기존에 사용하던 리볼버를 대체할 자동권총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군의 개인화기 채용사를 잘 아시는 분이라면 이 과정에서 존 브라우닝이 제작한 명작 자동권총 M1911이 미군에 채용이 되어 최근까지 쓰인걸 알고 있으실텐데, 미군의 경우 이 당시 미국 회사 뿐만 아니라 타 국가에 있는 개인화기 전문 회사에도 적합한 자동권총을 만들면 채용할 의사를 표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소재 개인화기 회사인 DWM사의 경우 자사가 가지고 있던 루거 자동권총(이후 독일군에 의해 P08이라는 제식명을 갖게되는 그것)을 미군에 보내 실전 테스트를 치루게 하는 과정을 치루게 하는데, 루거 자동권총의 경우 초기형은 .30 루거(혹은 7.65 x 22 mm), 후기형에서는 9미리 파라블럼을 사용하기 때문에 미군이 원하던 "저지력이 강한 권총탄"이라는 기준점을 충족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미군에 채용이 될 가능성이 낮아진 DWM사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 도전이 바로 .45 루거 권총입니다.

 



.45 루거 자동권총은 기존의 루거 권총의 디자인이나 작동방식은 그대로 유지하되, 사용 탄약을 9미리 파라블럼이 아닌 미군의 신형 권총탄환인 .45 ACP를 사용하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이 버전 생산을 위하여 1906년 여름 약 5천발의 .45 ACP탄이 DWM사로 배송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DWM사는 .45 구경 루거 자동권총을 1907년 2월 말 완성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립을 완료한 프로토타입 2정(각인에 1번/2번이라고 새겨져 있는 물건들)은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3월 28일날 양도되었고, 테스트를 위하여 1번 프로토타입이 실제 격발시연에 사용되게 됩니다.

.45 루거의 시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미군은 테스트를 종합해서 해당 권총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렸는지는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루거 자동권총이 테스트에서 M1911 자동권총와의 경쟁에서 패배한것은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해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와 별개로 DWM사가 테스트 패배 통보 이전에 .45 루거 자동권총에 대한 생산을 일찌감치 중단한것을 보면 해당 회사가 이미 .45 루거에 대한 희망을 버린것을 얼추 짐작할 수 있지요.




이러한 실패로 인하여 .45 루거는 몇정 생산되지 못한채 그 당시 찬밥신세로 전락하였지만 현재는 부르는게 값일 정도로 비싼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물건은 2번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프로토타입이 전부이며, 나머지 권총들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번 프토토타입의 경우 몇년전 인도네시아 갑부에 의해 1백만 달러(한화로 현재 약 11억)에 판매가 되어서 현존하는 자동권총중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P.S) 정설에 따르면 45 구경 루거는 세상에 딱 6정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처음 2정은 미군 테스트를 위해 스프링필드 조병창으로 배송되었고, 그 다음 2정은 혹시나 모를 분실사고를 대비하여 DWM사가 추가 생산하였다가 미군의 테스트 실격으로 인해 독일 민간 총기시장에 유통(다만 4번의 경우 1945년 세계 2차대전 종전 당시 노획되어 미국으로 옮겨졌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2정은 어떻게 생산되어 어느 경로로 유통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P.S) 참고로 21번이라는 각인이 세겨진 .45구경 루거 자동권총의 카빈도 존재합니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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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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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2 08:34 신고

    구입할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