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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6장, 경전차 Mk.7 테트라크, 글라이더와 코만도의 친구



 
영국 경전차의 전성기와 몰락


1920~30년대만 해도 영국은 비커스 사의 카덴로이드 탱케트 시리즈를 개량한 각종 경전차를 1000여 량 이상 보유한 경전차 왕국이었습니다. 싸고, 간단하고, 그러면서도 기계화가 필요했던 국가들에게 이런 영국의 탱케트들은 당시 프랑스의 르노 FT 17과 더불어 매우 좋은 선택이었고, 또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의 전차 중 상당수가 영국의 카덴로이드 Mk.6 탱케트에 기반한 경전차들이었고, 그들의 기계화부대에서 주력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여러 유럽 국가들에 수출된 카덴로이드 Mk.6 탱케트. 장갑차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4톤 정도의 장갑차량이었지만 당시 싼 값의 군 기계화를 원했던 많은 나라에겐 FT-17만큼이나 매력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영국의 탱케트 경전차 시대를 연 경전차 Mk.1. 영국 또한 탱케트를 기반으로 경전차를 개발했습니다.



전격전의 첫 희생양인 폴란드의 주력전차는 영국제 탱케트를 개조한 TKS 탱케트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북아프리카 전선 초기의 사실상의 주력전차였던 CV33/35는 물론이고, 후반에
등장한 M15/42와 같은 전차들도 그 차체의 기반은 영국제 탱케트의 확장형이었습니다.



독소전 초기에 독일 전격전의 칼날을 막아내야 했던 T-26도 그 기원을 탱케트에 두고 있었습니다.



시대는 지나갔고 1930년대 말엽에 들어서 왕립 육군은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라는 2원 체제를 정립합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탱케트 기반 경전차들중 그나마 최신형이었던 Mk.6마저도 정찰이나 맡는 찬밥 신세가 되던지, 아직 수량이 부족한 순항전차의 대체제로서의 역할 외에는 그 존재이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탱케트 기반 경전차들 자체가 강해지는 추축군 전차들에는 더 이상 적수가 될 수 없는 약체였습니다.



비커스 사의 경전차 Mk.6. 최후기형에 가봐야 5톤 중량에 15mm 중기관총 무장이 전부였지만, 
정찰용으로 사용되거나 순항전차의 대역을 치르며 1942년까지 연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탱케트 개량 경전차는 이 무렵에 와서는 더이상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경전차는 점점 영국의 관심에서 벗어나갔지만, 1930년대 말엽 비커스 사는 아직 경전차의 황금시대를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37년 초, 비커스 사는 이제까지의 탱케트 기반 경전차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전차를 왕립 육군에 채용시키겠다는 목표 하에 신형 전차의 개발을 개시하게 됩니다.


크리스티식 경전차, Mk.7의 개발과 시련


새로운 경전차 계획인 A17의 골자는 2파운드 전차포로 무장한 선회포탑을 탑재하고, 14mm의 최대 전면장갑과 당시 영국 순항전차에 사용되기 시작한 크리스티식 서스펜션 갖춘 7톤의 차량이었습니다. 큐폴라가 없는 3인승 경전차였기 때문에 전차장이 장전수 또한 겸하게 됩니다. 14mm라는 기관총이나 겨우 막을 장갑은 솔직히 당시로서도 경장갑이었지만, 당시 영국군의 제식 순항전차였던 순항전차 Mk.1도 최대장갑이 14mm인 마당에 비커스 사도 A17에 굳이 장갑을 더 붙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계획은 매끄럽게 진행되어 1937년 12월 A17의 첫 시제차량이 무난히 생산을 마칩니다.



무난하게 개발을 마친 A17 경전차. 시대에 뒤지기는 했지만 비커스 사도
그동안 경전차를 개발해온 경력만큼 회사 나름대로의 내공이 있었습니다.


A17은 당시로선 그다지 기술적으로 우수할 것도 없는 165마력의 메도우즈 사제 MAT 엔진을 사용했지만, 7.5톤이라는 가벼운 몸체와 크리스티식 전륜 덕에 최대시속 64km로 펄펄 날아다녔고, 비커스 사도 이 따끈따끈한 신형 경전차가 빈약한 무장과 장갑 때문에 주력 채용은 무리더라도 최소한 정찰용 경전차로는 채용되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A17은 경전차 Mk.7로 채용되지만 당시 영국의 상황은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왕립 육군은 이미 성능이 입증된(?) 경전차 Mk.6의 생산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Mk.7의 생산은 지연됩니다. Mk.7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생산이 재개되려던 1940년 6월, 이번에는 덩케르크 철수로 대량의 기갑장비를 상실한 왕립 육군은 7.5톤의 경전차 따위보다는 당장 전장에 끌어갈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생산에 더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실제 생산은 1940년 11월에야 재개되고, 북아프리카에서 성능실험이 행해지지만, 열대 기후에서는 그다지 적합하지 못하다는 판정을 받고 또 배치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계속해서 물을 먹는 Mk.7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Mk.7의 시련은 1941년 Mk.7에 주목하던 영국 공수부대가 이를 글라이더 탑재용 공수전차로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여기고, 자신들의 부대에 채용을 요청하면서 어느정도 끝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경전차를 탑재할 대형 글라이더가 아직 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Mk.7이 빛을 보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공수전차로 재탄생하다. 경전차 Mk.7 테트라크


어쨌든 Mk.7은 1941년 소련에게 20량이 공여되기도 하고, 1942년 5월에 와서는 전차병들에게 인도어에서 근거한 이름인 '푸다'라 불리며 마다가스카르 작전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물론 경전차였던 만큼 직접적인 전투에서는 푸다의 첫 실적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속력은 무척 빨랐고, 크리스티계 경전차답게 궤도 파손시 여차하면 궤도를 벗겨내고 전륜만으로 주행이 가능한 등 기동 면에서는 딱히 꼬집을 면이 없었지만, 최대장갑이 고작해야 14mm였던 터였고, 주포도 2파운드 전차포인 만큼 동시대의 영국 경전차라고 할 만한 발렌타인에 비해 딱히 이렇다 할 전투력에서의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 일부 투입되기는 했다만 Mk.7의 앞날은 아직 불투명했습니다.


하지만 1943년 Mk.7을 수송할 수 있는 하밀카르 글라이더가 개발완료되면서 고작 커튼 자락 취급('푸다'는 커튼을 의미합니다.)밖엔 받지 못하던 Mk.7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하밀카르 글라이더에서 내리는 테트라크, 솔직히 그리 많이 쓰이진 않았지만, 자국 전차
로서 실전에서 제대로 쓰인 공수전차는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테트라크가 유일했습니다. 



영국의 소영주를 의미하는 테트라크로 개명된 Mk.7은 본격적으로 제 6 공수사단의 공수 기갑정찰연대에 인계되었고,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소수 투입되어 공수부대를 지원합니다. 이후 1945년에는 미국제 공수전차인 M22 로커스트와 라인 강 도하작전에 동반 투입되면서 공수전차라는 역할에 들어맞게 적지만 충실한 활약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1949년 영국의 글라이더 부대가 해체되면서 테트라크 역시 퇴역을 맞게 됩니다.
테트라크의 총 생산량은 177량으로, 1940년부터 1949년까지 소량이지만 생산이 이어졌습니다.


리틀존 어댑터


비록 7.5톤의 경전차일 뿐이지만, 테트라크에겐 공수전차라는 것 외에 또 하나의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쓰인 독일군의 독특한 대전차탄중 하나인 APCNR(Armour Piercing Composite Non Rigid) 계열의 40mm 포탄을 2파운드 전차포에 사용 가능하게 한 '리틀존 어댑터'라는 장치입니다. 구경감소포라는 특이한 포에서 발사되는 APCNR은 대전차 관통력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유탄 위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차피 2파운드 전차포에는 유탄도 없겠다, 이에 주목한 영국군은 2파운드 전차포가 APCNR 포탄을 사용할수 있게 포구에 끼우는 어댑터를 개발해 내니, 그것이 리틀존 어댑터였습니다.



테트라크에 장착된 리틀존 어댑터. 포구에 끼우는 식인데다 구경감소도 40mm->35mm여서
독일제만큼 강력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탄 자체가 텅스텐인지라 위력은 꽤 늘었습니다.



위력이 독일제만큼 크게 는 것은 아니었지만 독일제 APCNR의 위력과 기본 2파운드 전차포의 관통력을 통해 유추해 보면 대략 4호전차 정도는 문제없이 관통할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잘나봐야 경전차인 테트라크에겐 이정도 위력이면 충분한 셈이었습니다.
이 리틀존 어댑터는 테트라크의 후계로 개발되었던 경전차 Mk.8  해리 홉킨스에도 장비가 가능했지만, 해리 홉킨스 자체가 글라이더 수송이 불가능해 매장된 차량이었던지라 그쪽에선 쓸 일이 없었습니다.



리틀존 어댑터는 해리 홉킨스에도 부착이 가능했다만 별 의미는 없었습니다.


경전차 Mk.7 테트라크의 개량형과 파생형


테트라크에는 딱히 개량형이 없었고, 파생형도 2파운드 전차포의 유탄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3인치 유탄포 장착형 테트라크 CS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사용되었던 DD 셔먼의 DD 키트 실험용인 테트라크 DD 둘 뿐입니다.



테트라크에도 2파운드 장착형 전차들과 비슷한 목적으로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한 CS 사양 차량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소련에 공여된 마틸다 Mk.2. 테트라크 CS 자체의 사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


 

테트라크의 차체에 실험용으로 장착된 DD 키트는 이내 셔먼으로 옮겨갑니다.


테트라크 자체는 사실 이미 영국군 내에서 가치를 상실한 구식 개념인 경전차였고, 주포도 장갑도 빈약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벼운 중량 덕분에 영국 공수부대라는 의외의 고객을 만나는 데 성공했고, 2차 세계대전 동안의 전차역사에서 적게나마 공수전차로서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경전차 Mk.7 테트라크 스펙


중량: 7620kg
승무원: 3명
엔진:

Meadows MAT / 12실린더 / 165마력

속도: 64km/h
항속 거리: 도로: 225km
연료 용량: ??? gallon
전장: 4.11m
전폭: 2.31m
전고: 2.12m
무장: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
& 1 x MG
(1 x 7.92 mm Besa MG - 동축)

탄약:

40mm - 50발
7.92mm - 2,025발

장갑: 4-14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tanks-light/tetrarch.asp
http://glob.egloos.com/2603482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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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5 23:48 신고

    테트라크는 확실히 공수부대에 효과적이였을듯... 전투가 벌어질때, 방어가 취약한 곳을 골라서 보병 + 경전차를 글라이더로 내려보내니.... 그나마 테트라크가 공수부대에 이름을 날렸으니 다행일지도?

  2.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3 21:12 신고

    근데 영국 전차들보면 성공한게 왠지 쿠르세이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