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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4장, 보병전차 MK.4 처칠, 전차가 된 수상 가카.



주의 : 본 글은 특정 인물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특정 단체나 인물을 비방하려는 일체의 의도도 없음을 미리 알립니다.

마틸다의 후계자

1939년 영국 전차위원회는 마틸다의 자리를 이을 차기 중보병전차의 계획을 수립하긴 했다만, A20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차기전차계획은 그다지 쓸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차대전 노장들의 보병전차 컨셉을 다수 수렴하여 이뤄진 이 A20은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에 맞춰 진행되었습니다.
  • 포탄 구멍과 수렁 돌파가 가능할 것
  • 장애물과 참호 돌파가 가능할 것 
  • 37mm 대전차포가 방어 가능하도록 장갑을 최대 60mm까지 장비할 것
  • 최대시속 16km 이상일 것
  • 2파운드와 베사 기관총을 차체 양쪽에 설치할 것, 차제기관총과 2인치 폭탄 발사기(;;;?)를 갖출 것(이후 마틸다의 포탑과 차체 양쪽에 기관총을 갖출 것으로 조정됨) 
  • 중량제한은 37.5톤일 것 


여기에 1차대전식 전훈과 프랑스제 보병전차들의 노하우가 녹아들어가며 탄생한 A20의 프로토타입은 마틸다 시리즈만도 못한, 전형적인 1차대전식 전차였습니다. 이런 전차로는 장차 개선될 적국의 신형전차들을 상대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습니다.




진보는 커녕 퇴보한 느낌만 잔뜩 드는 A20. 1차대전을 겪은 노장들에게 새로운 전차 개발은 무리였고,
이후 그들이 만들어낸 TOG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보병전차로서 개발이 계속되던 A20이었지만,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왕립 육군은 이런 모자란 전차계획은 차기 전차전에는 다 개뿔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1940년 6월 A20 계획을 때려치우게 됩니다.


수상 가카의 이름을 얻다, 보병전차 Mk.4 처칠의 탄생


1940년 A20계획 취소 후, 보병전차 사업에 눈독을 들이던 벅스홀 사는 A20의 차체 규모를 줄이고 양산을 좀더 쉽게 해 새로운 보병전차를 개발할 수 있다고 영국 전차위원회를 구워삶습니다. 전차위원회가 제시한 주 요구 조건은 A20보다 장갑이 향상된 100mm 이상의 전면장갑과 시속 20km의 최대속력, 그리고 2파운드 급의 주포였습니다.
당시 상황이 퍽 급했던지라 왕립 육군과 전차 위원회는 1년 안에 개발을 마치라고 벅스홀 사를 들들 볶았고, 벅스홀 사는 개발기간도 줄이고 참호 돌파능력도 남길 겸이었는지 A20의 차체를 개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됩니다. 우선 350마력짜리 베드포드 사제 가솔린 엔진으로 갈아끼우고 추가장갑을 덧씌운 다음, 2파운드 전차포의 유탄이 없다는 약점을 보완하기위해 3인치 유탄포를 차체에 설치하며(Mk.2부터는 효율 문제로 베사 기관총으로 교체됩니다.), 차체 양쪽의 포탑들은 탈출용 해치로 바뀌게 됩니다. 
1941년 6월, 벅스홀 사는 1년만에 A22의 개발을 마치게 됩니다. 완성된 14량의 시제전차는 차후의 상륙작전을 의식했는지 흡기관과 잠수장비까지 갖추며 영국 육군을 만족시키긴 했지만, 원본의 형편없는 품질이 어디 갈까, 개량판인 A22의 성능도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긴 했다만, 도로기준 시속 25km라는 속력과 잦은 고장과 조종상의 어려움 등 기동 계열에선 형편없는 퍼포먼스를 자랑했습니다.
물론 차기 보병전차가 필요했던 만큼 선정이야 되었겠지만, 어쩌면 그다지 큰 성공을 보이지 못했을지도 모를 A22에게 한줄기 서광이 비쳐옵니다. A22의 성능이 마음에 들었던 당시 영국 수상가카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A22에 양산 우선 순위를 부여한 것입니다.




처칠 가카 : 저...저거슨 크고 아름답다능! 있는 대로 지르라능!



그에 대한 답례인지, 벅스홀 사는 새롭게 제식전차로 선정된 보병전차 Mk.4에 처칠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후 처칠 보병전차는 1941년부터 1945연까지 총 약 5640량이 생산되며 영국의 주력 보병전차, 사실상의 중전차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A22는 곧 영국군 가카에게 인정받고 네번째 보병전차인 처칠 가카로 제식 전차가 되었습니다.



성능시험중인 처칠 전차 2량. 사실 초기형의 처칠 가카는 아직 A20에 3인치 유탄포 단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영국의 상황이 위태로웠던 만큼 처칠의 차체를 이용한 3인치 유탄포 탑재형 자주포가 일부 생산되지만, 50량만이 만들어졌고, 이후 등장한 비숍과 섹스톤에 밀려 전부 홈가드용으로 인계됩니다.



처칠의 차체를 사용한 자주포, 독일 침공에 대비해 싸고 많이 만들고자 한 것이지라 BOB 후 존재가치를 잃고 맙니다.



일단 마틸다에 비해 40mm가량 두터워진 장갑과 추가된 잠수능력 덕에 처칠 전차는 왕립 육군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지나치게 긴 차체와 기존의 단점 덕에 조종은 어렵고 고장도 잘 나는 전차라는 사병들의 불평거리가 되며 실전능력을 의심받게 됩니다. 이러한 단점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1942년 8월에 시행된 디에프 상륙작전에서 왕립 육군이 상륙전력으로 6000여 명의 병력과 30량의 처칠 전차를 주력으로 투입하며 처칠의 첫 실전이 시작됩니다.


디에프의 실패와 북아프리카의 성공, 가카의 환골탈태와 칠전팔기


디에프에서 행해진 영국과 캐나다군의 야심찬 상륙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6000여 명의 병력 중 반 이상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고, 상륙한 처칠들의 대부분도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 참담한 실패 앞에서 영국군 수뇌부나 수상 가카나 모두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지만, 당장 북아프리카 전선을 눈 앞에 둔 터라 영국군은 곧 패배의 충격을 극복하고 처칠의 대대적 개선에 들어갑니다. 




처칠 가카 : 그런데 뭐라능? 우리 처칠짱이 어쨌다능? 피쉬앤칩스를 코로 먹여주겠다능!
헬캣 : 사... 살려주세요!




디에프의 재앙 이후 다시 태어난 처칠 가카. 좀 허접해 보였던 초기형과는 다르게 Mk.3(사진은 증가장갑
 장착형인 듯)부터는 여러 약점들을 수정하며 서서히 왕립 육군의 중전차로서의 역할을 잡아갑니다.



처칠의 세번째 개량형인 Mk.3에서는 처칠의 약점 중 하나인 노출된 궤도에 장갑을 씌워 보강하고, 마침 새롭게 등장한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를 신형 대형포탑에 장비하며 화력에서나 방어력에서나 환골탈태하게 됩니다. 이렇게 강화된 처칠은 제 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 투입되며 디에프에서의 오명을 어느정도 씻어내지만,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펼쳐야 할 기동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짧은 항속거리와 속력, 부족한 신뢰성이 또다시 불거지면서 처칠 가카는 탄핵당할 위기까지 맞습니다. 


 
엘 알라메인의 처칠 전차들. 제 7 차량화여단 소속의 가카들은 무식한 중장갑을 앞세워 사막을 돌파하지만, 여러 결함이
가카을 탄핵시킬 지경까지 몰고 갑니다. 하지만 튀니지에서의 활약이 전환점이 되어서 왕립 육군에 잔류하게됩니다.



처칠의 주된 운용 방식은 보병지원전차라는 용도에 알맞게 2개 보병여단에 1개 처칠 여단을 합친 혼성여단이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보병전차 개념 자체에 대한 불신이 늘어갔고, 처칠 자체도 보병지원용 전차로서는 영 아니라는 의견에 따라 1943년부터는 이러한 비효율적인 편제를 폐기하고 기갑여단 편제를 따르게 됩니다. 오오, 발전하는 영국군~



하지만 그 뒤를 이은 횃불 작전과 튀니지 전역에서 처칠은 중장갑을 내세우며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제 역할을 다해냅니다. 덕분에 1943년 폐기될 뻔했던 처칠은 수명연장에 성공하며 3개 기갑여단까지 영국 기갑부대내에서 그 규모를 불리게 됩니다. 또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6파운드 전차포의 유탄의 위력 부족은 발렌타인뿐만 아니라 처칠에게도 고민거리였기 때문에 기존 처칠 Mk.3, Mk.4의 포탑에 격파된 그랜드나 셔먼의 미제 75mm 전차포를 6파운드 전차포 대신 장비하는 처칠 NA가 즉석에서 개장되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전훈으로 이후의 처칠 Mk.4 후기형과 Mk.6, Mk.7은 75mm 전차포로 무장하게 됩니다. 또한 처칠 Mk.3 중 후기형의 일부는 신형 57mm 6파운드 L/50 전차포로 교체하며 대전차 전투력이 더욱 강화됩니다.
이후 처칠 전차중 일부가 소련군에 공여되어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군의 한 축을 맡으며 독일의 성난 맹수군단과 맞서 싸우지만, 이미 KV-1이라는 처칠보다 빠르고 두꺼운 전차를 보유하고 있던 소련 적군 앞에서 이 파릇파릇한 수상 가카들은 다른 영국산 전차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Russia's Churchill
소련군에게 공여된 처칠 전차. 하지만 소련의 차디찬 벌판에서 수상 가카가 중전차 노릇을
하기에는 이미 한자리 차지하고 앉은 보로실로프 원수님의 텃세가 너무 셉니다.



이제는 프랑스로! 노르망디의 가카


마틸다와 발렌타인은 이미 영국군에서 나가떨어졌지만, 처칠은 서부전선에서까지 질기게 살아남아서 빈약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중기형과 후기형이 투입되어 연합군의 중전차 역할을 맡고, 개중 일부는 각종 파생전차로서 역할을 다하며 전장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다소 모자란 듯 한 보병전차였던 처칠이었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전개될 무렵에는 많이 진화해 75mm 전차포와 두터운 152mm 전면장갑으로, 덤으로 40톤 급으로 몸집까지 불리며 충분한 중전차의 품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노르망디에서 이동중인 처칠 전차. 독일 전차는 점점 강해지는데, 
처칠의 주포인 75mm 전차포는 이들을 관통하기엔 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독일군이 강해봐야 4호전차 후기형에 불가한 급이라 처칠이 충분히 상대할 정도의 급이었다면, 새롭게 등장한 판터와 티거, 쾨니히스티거 그리고 각종 구축전차는 오히려 6파운드 전차포를 사용하는 중기형이라면 모를까, 철갑탄의 위력이 떨어지는 후기형 처칠의 75mm 전차포로는 상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왕립 육군도 1943년부터 더 강력한 포인 17파운드 대전차포를 처칠에 탑재하는 A43 '블랙 프린스'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처칠 전차는 구식의 설계 덕에 포탑링이 좁았고, 이를 수정하며 개발기간이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1945년 5월에 이르러서야 시제품 6량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코메트와 센츄리온을 개발한 왕립 육군은 이 무겁고 느려터지기 짝이 없는 고도비만 가카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좁아터진 포탑링을 극복하고 어찌어찌 17파운드 전차포를 달기는 했다만, 속력은 시속 18km로 줄어들었고,
17파운드 플랫폼이 이미 충분한 상황에서 처칠 원판도 소화하기 버거웠던 영국군은 블랙 프린스를 무시했습니다.



또한 초기형에는 그나마 25km 정도였던 최대속력도 후기형에 이르러 무장과 장갑이 강화되며 점점 떨어져 20km 수준으로 줄어있었습니다. 처칠 전차는 새로운 적수들에게 있어 방어력에 있어서라면 모를까, 공격력에 있어서는 셔먼과 크롬웰이 그런 것처럼... 꼼짝없는 고자 수준이었고, 그나마 느린 기동력 덕에 도망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여러 사례에서 처칠 전차는 강력한 독일산 전차들이나 대전차포에 마구 얻어맞았스니다. 특히 야크트판터 3량에게 10량이 격파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1량에게 19량이 격파되기도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전장에서 처칠 전차를 개량한 퍼니 전차 시리즈는 각종 공병임무에 투입되며 제 역할을 마쳤고, 처칠 전차 자체도 M26 퍼싱이 등장하기 전까진 변변한 중전차가 없었던 연합군에게는 든든한 방어력을 가진 우군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좋은 시절은 지났지만, 처칠 가카는 아직 보병전차로서의 소임을 다하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처칠 전차는 이제까지의 전차들과는 달리 아직 성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한국전쟁에서 보병전차로 투입되기도 하였고, 1965년까지 현역을 유지하며 2차 세계대전 중 개발된 전차 치고는 비교적 긴 삶을 누렸습니다.


보병전차 Mk.4 처칠의 개량형


처칠 보병전차의 일반적인 개량형은 총 8종류에 달하며, 이 중 대표적인 종류를 들자면 2파운드 전차포의 초기형의 Mk.1과 6파운드 전차포의 중기형의 Mk.3, 75mm 전차포의 후기형의 Mk.7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처칠 Mk.1. 2파운드 전차포와 차체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하고 궤도가 노출된 초기형입니다. 디에프 상륙작전의 주역이었으며, 제 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 투입되었고, 일부는 질기게 살아남아 이탈리아 전선에서 고딕 라인에도 투입되었습니다. Mk.2와는 3인치 유탄포가 베사 기관총으로 교체된 것이 식별포인트입니다.



중기형의 대표격인 처칠 Mk.3. 궤도 상면에 장갑이 씌워졌고, 6파운드 전차포를 탑재한 좀더 대형의 포탑을 채용했습니다. 처칠 Mk.4는 용접이 아닌 주조포탑을 사용한 버전이고, Mk.5는 95mm Mk.1 L/20 유탄포 장비형 보병지원 전차입니다.
Mk.6부터는 75mm 전차포를 탑재하고, 후기형부터는 152mm로 전면장갑이 강화되어 88mm 고사포도 막아내는
무식한 똥맷집을 자랑합니다. (물론 88mm 대전차포까지 튕겨내기는 좀 어렵습니다.) 



처칠 전차의 실질적인 최후기형인 처칠 Mk.7. 궤도 앞부분까지 장갑이 씌워지고, 양 측면의 탈출용 도어가
원형으로 바뀝니다. 또한 중량이 늘며 속력이 시속 20km로 줄어들어버렸지만, 향상된 서스펜션과 변속기로
교체해 신뢰성은 오히려 향상되었습니다. 노르망디에 Mk.4, Mk.6과 함께 주력으로 투입되었고, 
Mk.7 중 상당수가 화염방사전차 처칠 크로커다일로 개조되어 맹활약합니다. 


호바트의 만화들, 처칠 퍼니 전차 시리즈


1942년 디에프 상륙작전을 말아먹은 후 연합군은 단순히 수륙양용전차로는 상륙작전에는 택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에 다음 상륙작전에 사용할 다양한 공병전차의 개발을 모색합니다. 그러던 중 영국군의 브룩 원수와 몽고메리 원수는 이 일에 딱 어울릴 최고의 적임자를 발굴해내니, 그가 바로 퍼니전차의 아버지 퍼시 호바트 경이었습니다.
참조 - http://cafe.naver.com/nuke92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23916#



보기에도 괴팍하고 한성깔 하실듯한 이 분이 퍼시 호바트 경입니다. 일찍부터 기갑전술과 사단 발전에 관심이 많았고,
한때 웨벨 원수에 의해 강제로 퇴역당하기도 하지만 이후 복직되어 연합군을 위한 공병전차 개발에 힘쓰게 됩니다.


호바트 소장은 여러 전차를 이용해 일명 '호바트의 만화'라 불리는 각종 기발한 공병전차의 개발에 힘썼고, 이들 퍼니 전차는 센토어, 셔먼, 발렌타인 등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보병전차 처칠이었습니다. 기발한 괴짜 발명가 호바트 소장과 무겁고 육중한 처칠 가카는 환상의 칵테일을 이뤄냈고, 개발된 처칠 퍼니 전차의 대부분이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연합군의 훌륭한 일원으로 활약합니다. 다양한 처칠 퍼니 전차가 있지만 이미 링크된 글의 저자이신 카이텔님께서 소개를 하셨으니 그 중 대표격인 일부만 다뤄볼까 합니다.



유명한 화염방사전차인 처칠 크로커다일,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잡것들을 태워버리겠다는 가카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칠 Mk.7로만 제작되었고, 차체의 베사 기관총이 있던 자리에 뒤에 달린 연료통에서 연료가 보급되는, 일명 '크로커다일 키트' 라고 불리우는 대형 화염방사기를 장착했습니다. 화염방사기의 지속력에서나 화염의 위력에서나 매우 뛰어났고, 연료통이 피탄되면 곧바로 분리가 가능했기 때문에 피격 시 위험도 비교적 적은 수작 화염방사전차입니다.
크로커다일 키트는 셔먼 전차에도 사용되어, 셔먼 크로커다일 화염방사전차가 소수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처칠 퍼니 전차인 처칠 AVRE. 기존 주포를 철거하고 290mm 스피곳 박격포,
즉 발사봉식 박격포를 장착한 공병전차입니다. 사거리는 짧았지만, 중장갑을 앞세워 단점을 상쇄시켰고, 
290mm나 되는 대구경 HESH(점착유탄)탄의 무식한 위력을 십분 살려 요새 및 벙커 파괴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각종 키트를 장착해 다양한 작업용도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산을 깎고 땅을 다지겠다는 가카의 건설정신이 보입니다.



처칠 ARV. 이미 구식이 된 처칠 Mk.1 혹은 Mk.2의 포탑을 제거하거나 훼이크 포탑을 달고
2정의 브렌 경기관총 마운트와 전차회수 크레인을 장착한 전차회수차량입니다. 
구식 전차를 되살려 망가진 전차 하나하나 재활용하겠다는 가카의 절약정신의 결정체입니다.



처칠 가교차량. 잠수능력을 살려 하천에 직접 들어가는 방식으로 가교를 설치했습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강을 메우고, 다리를 놓고, 운하를 파겠다는(...응?) '수상 가카'의 위대한 개척정신에 저도 모르게 감격에 젖습니다.



처칠 보병전차는 비록 처음에는 부족한 계획과 적절한 로비의 결과물로서 다소 부족한 성능의 전차로서 시작되었지만, 꾸준히 현장에 엔지니어를 파견해 부족한 점을 메우는 벅스홀 사의 프로정신과 계속된 개선과 보완으로 인해 최고는 아니지만 2차 세계대전을 치르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강화된 성장형 전차였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보병전차라는 개념 자체가 현대전에서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구식 개념이었고, 이에 충실했던 처칠은 보병전차의 약점인 부족한 기동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보병전차 Mk.4 처칠 스펙(Mk.3, Mk.7)

 

중량: 38500 / 40100kg
승무원: 5명
엔진:

Bedford Flat Twin Six / 12실린더 / 350마력

속도: 25/20km/h
항속 거리: 도로: 198/145km
연료 용량: 682 liters
전장: 7.35m
전폭: 3.25m
전고: 2.78m
무장:

57mm 6파운드 L/52 전차포
75mm Mk.V L/36.5 전차포
& 3 x MG
(1 x 7.92mm 7.92 mm Besa MG - 차체)
(1 x 7.92mm 7.92 mm Besa MG - 동축)
(1 x .303 cal(7.7mm) Bren - 대공 )

탄약:

57mm / 75mm - 84 / 84발
7.92mm - 8050발
7.7mm - 600발

장갑: 16-102/152mm


57mm 6파운드 L/50 전차포(후기형)
장갑에 대한 수직 관통력

탄약: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CBC Shot Mk.IX 92mm 82mm 71mm 61mm 52mm
APDS Shot Mk.I 142mm 127mm 110mm 95mm 83mm
 
 
APCBC Shot Mk.IX (APCBC) - Armor Piercing Composite Ballistic Cap
APDS Shot Mk.I (APDS) - Armor Piercing Discarding Sabot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infantry/churchill.asp
http://cafe.naver.com/nuke92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23916#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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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3 18:25 신고

    영국 전차는 개량형이 참 많은듯 ㅇㅅㅇ

  2. 세미욘 티모셴코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0.07.14 00:29 신고

    보병전차 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활약을 했군요 ㄲㄲ
    개인적으론 290mm 박격포를 장착한 AVRE에 흥미가 생기는군요
    저걸 야크트티거에 쏘면 어떻게 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ㄲㄲ

  3. 2010.08.05 09:07 신고

    그나저나 독일군을 고자로 만들고 티거와 맞짱을 떴던 T-34는 언제 리뷰?!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3 21:09 신고

    참 처칠이 톰슨기관총 든거 퍼가고 싶군요 ㅋㅋ 근데 못퍼가는 1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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