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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양이의 2차대전 영국군 전차 리뷰



3장,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달려라 사막의 십자군




죽을 쑤는 순항전차


1935년부터 시작된 보병전차 개발이 그럭저럭 쓸 만한 결과물을 내놓은 반면, 1934년부터 진행중이던 순항전차는 연이어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1936년 개발된 A9, 순항전차 Mk.1이 영국군의 요구 사항을 맞추었다고는 해도 고작 14mm 수준의 전면장갑에 기관총탑을 주렁주렁 달고는, 아주 빠른 것도 아닌 40km(당시로선 빠른 편이지만...)의 속력 정도 뿐이었고, 애초에 보병전차로 설계되었다가 실패하고는 난데없이 순항전차 자리에 불쑥 주저앉아버린 A10, 순항전차 Mk.2는 30mm 전면장갑에 속력도 26km로 어느것 하나 내세울 장점 없이 이도저도 아닌 실패작이 되어버렸습니다.



순항전차 Mk.1. 아직 다포탑전차 인디펜던트의 영향이 남아있는지 차체 전면에 기관총탑을 두 개나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무장도 중량도 기동력도 장갑도, 그럭저럭 왕립 육군의 기준을 맞추긴
했다만... 그 기준이 기관포에도 벌집이 되어버릴 씌우다 만 약골이었다는게 문제였습니다.



 
보병전차로 개발되었다 실패한 후, 느닷없이 순항전차 타이틀을 꿰다찬 순항전차 Mk.2.
제식 판정에서 탈락했다가 이듬해 어떤 이유인지 생산이 시작되어 175량이 생산되었습니다.
보병전차와 순항전차 양 쪽에 어중간히 걸치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 지극히 영국스러운 전차라 하겠습니다.



영국산 크리스티식 순항전차의 개발


이렇게 순항전차에서 연이어 죽을 쑤며 속을 끓이고 있던 왕립 육군에게 한 줄기 생명수같은 떡밥소식이 내려왔으니, 1936년 아치볼트 웨벨 장군을 따라 소련군 참관단의 일원으로 다녀왔던 마텔 중령이 거기서 소련군의 BT 시리즈 전차들을 보고 감동해 본국에 제안한 크리스티식 현가장치였습니다.



비운의 전차 개발자 그로테와 쌍벽을 이룰만한 발명가 존 월터 크리스티. 최초로 4륜 구동 자동차를
개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비록 조국인 미국에서는 그의 전차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 사람의 
기술은 이후 영국과 소련에 이어져 각각 크루세이더와 크롬웰, BT 시리즈와 T-34로 그 결실을 맺게 됩니다.




크리스티 전차의 계보를 이은 소련의 BT-5 고속전차. 크리스티식 현가장치의 덕택에 최대시속
70km에 육박하는 괴력을 과시하며 씽씽 날아다녔고, 마텔 중령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마침 자국의 순항전차가 영 시원찮다고 생각했던 왕립 육군도 얼씨구나 이 싱싱한 떡밥을 덥썩 물었고, 모리스 사를 앞장세워서 크리스티에게 거래를 제안하게 됩니다. 마침 돈이 궁했던 크리스티도 '조쿠나!'를 연발하며 모리스 사와의 거래에 응했고,  트랙터로 위장한 크리스티식 전차 차체 2량이 1936년 말엽 영국에 도착합니다. 곧 모리스 사 산하의 전차회사인 너필드 사에서 이 전차들의 차체를 영국식으로 개조하고, 340마력짜리 너필드 리버티 엔진과 순항전차 Mk.1의 전차장 큐폴라를 확대한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 장비 포탑을 장착해 1937년 A13, 순항전차 Mk.3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장갑이 순항전차 Mk.1과 같은 수준인 14mm였기 때문에 장갑을 좀더 덧붙여 방호력을 최대 30mm까지 늘려낸 A13 Mk.2, 순항전차 Mk.4를 1938년 추가로 개발해냅니다.



순항전차 Mk.3. 크리스티식 현가장치 덕에 기동력이 월등히 향상되었지만 아직 주력전차로는 모자랐습니다.




1938년이 되어서야 왕립 육군에서도 좀 쓸만한 순항전차가 등장합니다. 순항전차 Mk.4.
순항전차 Mk.3의 장갑 강화형으로, 포탑 디자인은 이후 크루세이더에게 이어집니다.



이들은 성능에서 영국군을 전반적으로 만족시킨 덕에 각각 665량과 655량이 생산되어 프랑스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1942년 경까지 독일 전차들을 상대로 활약합니다. 하지만 이들 신형 순항전차도 왕립 육군의 눈에는 뭔가 모자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결국 이들이 개발되기 무섭게 1938년부터 새로운 순항전차의 개발이 시작됩니다.


영국 전차사 희대의 삽질물, 순항전차 Mk.5 카베난터


1938년부터 시작한 차기 순항전차 개발은 너필드 사와 LMSR 사와의 경쟁 구도로 시작되었습니다. LMSR사는 자신들이 진행 중이던 A14가 복잡하고 결함이 많은 물건으로 판명나자 이를 취소하고 1939년 4월 기존의 A13에 미도우 사제 Flat-12 D.A.V.엔진을 장착하고 장갑을 추가해 발전시킨 A13 Mk.3를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차고를 낮추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는데, 이 중 가장 엽기적인 것은 엔진과 라디에이터를 분리하고 이 라디에이터를 조종수 측면에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덕에 전차의 냉각시스템이 작동하지를 않아, 조종수의 전차 조종에 문제를 끼침은 물론이고, 전차 자체가 자주 퍼져버리는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 외에도 리벳으로 도배된 포탑과 지나치게 좁아진 포탑 바닥 덕에 포수와 장전수의 작업에 애로사항이 생기고, 심지어는 전차장의 다리가 포탑 회전시 끼어버릴 수도 있는 또다른 문제점도 일어납니다. 정말 어이없는 것은 이러한 심각한 결함들이 A13 Mk.3가 영국 청교도들의 이름을 딴 순항전차 Mk.5 '카베난터'라는 제식명을 받고 생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다.



순항전차 Mk.5 카베난터. 겉으로야 일단 멀쩡해 보이지만, 그 내용물과 카베난터와 관련된 비사를 살펴보면
영국 전차 역사상 최대의 코미디입니다. 하기야... 철도회사가 전차를 만들겠다고 뛰어들었으니...




내부 결함이 워낙 많으니 도저히 주력 순항전차로 쓸 성능이 아니었던...


거의 같은 시점에서 크루세이더가 개발되었고, 크루세이더가 신뢰성에서나 성능에서나 카베난터를 압도함에도 불구하고 LMSR 사의 입김이라도 불었는지, 영국 왕립 조병창은 그들이 2차 세계대전 동안 내린 결정 중 가장 멍청한 결정을 합니다. 카베난터는 크루세이더와 함께 영국의 제식 순항전차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위기에 처했던 1940년 여름에, 영국은 그동안 쌓아두었던 모든 막장력과 잉여력을 폭발시키고 맙니다. 영국군은 1943년까지 이 결함투성이 잉여 전차를 크루세이더와 병행 생산해, 1771량이나 찍어내었습니다.
일단 찍어내었으니 어떻게 소비라도 해야 할 참이라 카베난터는 폴란드 제 1 기갑사단에 선심쓰듯이 내팽개쳐졌고, 폴란드 제 1 기갑사단이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파견되면서 영국 제 9 기갑사단에 이양되었지만, 영국에서도 문제가 속출하는 카베난터가 뜨거운 중동에서 어찌되었을지는 너무나도 결과가 뻔했습니다. 결국 카베난터는 대부분이 영국 본토에서 썩을 수밖에 없었고, 실전은 택도 없었습니다.
카베난터가 격파당한 유일한 사례는 1942년 5월 31일 카베난터를 운송하던 열차가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된 것뿐이었습니다.



잉여전차든 뭐든 개선도 해보고 파생형도 만들어보며 어떻게든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형편없는 태생은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베난터와 왕립 조병창, 그리고 영국 육군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1943년에 접어들면서 카베난터의 잉여함에 질려버린 왕립 육군이 1700여 량에 이르는 카베난터들을 전부 스크랩 처리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형편없는 설계로 탄생한 카베난터는 자신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 존재이유조차 찾지 못한채 용광로에서 그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아니... 이럴거면 애초에 왜 만든 건데...


LMSR도 울고 왕립 조병창도 울고 카베난터도 울었습니다. 



십자군의 탄생,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의 등장.


카베난터 개발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순항전차 Mk.3, Mk.4를 개발해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은 너필드 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후계 순항전차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경쟁사인 LMSR 사가 기존의 A14를 그만두고 카베난터 개발을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진 너필드 사도 기존의 A15 계획을 중단하고 새로운 A15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개발 기간을 줄이기 위해 카베난터의 포탑을 차용하고 순항전차 Mk.4의 부품 상당수를 유용한 신형 A15는 카베난터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다만 카베난터의 라디에이터가 있던 조종수 측면 공간에는 베사 기관총을 장비한 기관총탑이 탑재되었는데, 이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A15 전차는 1939년 7월 완성되고, 순항전차 Mk.6으로 제식화되어 총 5300량 가량이 생산됩니다.



이제야 왕립 육군을 만족시킨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Mk.1 버전으로, 차체의 기관총탑이 특징입니다.



사실 제원만 놓고 따지면 43km의 최대시속, 2파운드 주포나 카베난터보다 한 정 많은 두 정의 베사 기관총, 40mm 전면장갑 등 카베난터와 큰 차이는 없어보였지만, 기계적 문제나 주행성, 항속 거리등을 따져보면 Mk.6은 한심해 빠진 카베난터를 완전히 능가하는 성공한 순항전차였습니다. 카베난터의 문제있는 리벳 뭉치 포탑을 그대로 가져온 덕에 포탑 공간이 좁은 것 외의 단점은 여전했고, 차체 기관총탑이라는 불필요한 무장을 장착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전의 순항전차와 달리 양쪽 로드휠을 5개로 늘려서 중량 밸런스를 조절하고, 카베난터의 약점을 극복한데다, 항속거리도 두 배로 늘어난 Mk.6의 성능은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하기에 충분했고, 영국군은 이를 마틸다와 함께 1941년에 6월에 계획된 대규모 반격작전인 배틀액스 작전에 순항전차 역할로 처음 투입합니다. 



격파된 4호전차를 지나치는 크루세이더, 비록 전투는 졌지만 크루세이더 전차의 활약은 준수했습니다.



물론 이 작전은 88mm 고사포를 앞세운 롬멜횽아 장군에게 영국군이 조낸 쳐맞는 참패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Mk.6은 2파운드 전차포의 빈약함, 초기형에서 등장하는 잦은 잔고장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기동력과 지금까지의 순항전차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쓸만한 방호력을 보여주며 왕립 육군을 만족시켰습니다. 뒤이은 크루세이더 작전에서도 투입된 Mk.6은 여기서도 순항전차로 투입되었고, 크루세이더라는 이름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크루세이더 또한 2파운드 전차포의 약점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고, 카베난터보다야 적긴 했지만 사막의 거친 환경에서 높은 신뢰성을 보여주던 발렌타인과는 달리 여기저기서 잔고장이 속출합니다. 또한 라이벌 격인 3호전차가 추가 장갑을 덧붙이고 장포신 50mm 전차포를 장비하며 크루세이더는 독일 전차와의 성능에서 점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틸다도 못 버티는 넘사벽 88mm 고사포야 말할 것도 없고 



주요 라이벌이었던 3호전차가 계속 강화되어가면서 독일군은 크루세이더로도 상대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크루세이더 전차 또한 기관총탑을 제거하고 장갑을 증가시키면서 기계적 신뢰성을 개선했고, 동시에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로 주포를 교체하는 개량을 진행했지만, 6파운드 전차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포탑 공간덕에 크루세이더는 2인용 포탑으로 역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북아프리카 전선이 종결되어가며 왕립 육군은 셔먼과 크롬웰 등의 더 훌륭한 전차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결국 북아프리카 전선 이후 크루세이더도 이들에게 주력전차의 위치를 빼앗기며 일부 파생형들만이 전장에 남게 됩니다.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의 개량형과 파생형


크루세이더의 개량형은 비교적 적은 편으로, 3개가 존재합니다. 기관총탑을 장비한 초기의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Mk.1, 기관총탑을 없애고 장갑을 49mm까지 늘린 순항전차 Mk.6A 크루세이더 Mk.2, 그리고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를 2인승 포탑에 장착한 크루세이더 Mk. 3입니다. 하지만 Mk. 3은 144량만이 생산되었으니, 크루세이더의 실질적인 주포는 2파운드 전차포입니다. 



크루세이더 Mk.1. 마땅한 사진이 없어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차체의 기관총탑이 식별포인트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크루세이더 Mk.2. 차체 기관총탑뿐만 아니라 기관총까지 들어내버린 영국스러운 개조가 돋보입니다.



최종형인 크루세이더 Mk.3. 6파운드 전차포 덕에 화력은 늘었지만
2인용 포탑 덕에 전차장이 장전수까지 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의외로 크루세이더의 파생형은 그리 다양하지 않습니다.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한 크루세이더 CS(근접지원차량)와 대공전차 시리즈가 주를 차지하며, 탄약 운반차 또한 개발되었습니다. 그 외에 잡다한 불도저, 상륙전차, 지뢰제거차량 버전이 있지만 처칠과 발렌타인 개조차량에 밀려 실용화되지는 않았습니다.



크루세이더 역시 3인치 유탄포를 장비하고 근접지원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40mm 보포스 기관포를 오픈탑식 포탑에 장비한 크루세이더 AA Mk.1.
오스트빈트나 M19 GMC, ZSU-37과 그 역할이 비슷해 보입니다.



포탑을 20mm 오리콘 기관포 2정과 폐쇄식 포탑으로 대체한 크루세이더 AA Mk.2. 이쪽은
비르벨빈트와 M16 GMC에 비교할 만하군요. 여기서 무전기를 교체한 것이 Mk.3입니다.



크루세이더 포운반 차량. 주로 17파운드 대전차포나 25파운드 야포같은 중형 견인포를 운반했습니다.



크루세이더는 동시대에 등장한 전차치고는 그리 성능이 나쁘지도 않았고, 영국의 순항전차의 기준에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연합군의 좀더 발전한 전차인 셔먼과 크롬웰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과도기형 전차일 뿐이었고, 그 임무를 훌륭히 마친 뒤에는 마틸다와 발렌타인이 그러했듯 전장에서 한발 물러서게 됩니다.



순항전차 Mk.6 크루세이더 스펙(Mk.2, Mk.3)

중량: 19000 / 22100kg
승무원: 5 / 4명
엔진:

Nuffield Liberty Mark III/IV / 12실린더 / 340마력

속도: 43km/h
항속 거리: 도로: 322/204km
연료 용량: 120 gallon
전장: 5.98 / 6.41m
전폭: 2.64m
전고: 2.24m
무장:

40mm 2파운드 L/52 전차포
/ 57mm 6파운드 L/43 전차포
& 2 x MG
(1 x 7.92mm 7.92 mm Besa MG - 동축)
(1 x .303 cal(7.7mm) Bren - 대공 )

탄약:

40mm / 57mm - 110 / 65발
7.92mm - 5000발

장갑: 7-52mm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mk-v.asp
http://www.wwiivehicles.com/unitedkingdom/cruiser/mk-vi.asp
구글 내 이미지 검색, 만인의 출처 위키피디아


짤방 출처 : 베르세르크/정열맨 만화 장면을 본인이 수정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6.22 12:06 신고

    일본이나 영국이나 같은 섬나라끼리 기기묘묘한걸 만드네요....

    그나마 전투기 쪽을 제외하면 졸작과 괴작들 --

  2. 2010.06.22 17:44 신고

    잘봤습니다. 영국특유의 전차개념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순항전차와 보병전차로 이분화시킨 것도 그렇고...
    전차를 처음 해군성에서 발주한 것이 이런 화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원래 순항전차와 보병전차의 개념이 순항전함과 전함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암튼 재미있게 봤습니다. 감솨..

  3. 2010.06.24 18:18 신고

    엄마 귀엽긴한데..

    저거 왜써?....

  4. 2010.06.26 16:56 신고

    짤방보고 왔다능.. ㅇㅅㅇ

  5. 2010.09.14 23:41 신고

    아 네;.....

  6. 2011.10.12 19:26 신고

    근데 BT-5라 올려주신 사진은 5가 아니라 BT-2 같네요.

  7. 2012.02.10 19:40 신고

    음..... 어쨰 미국은 천조국 답게 전차 성능은 독일 넘사벽이고 결국 물량 승부고 ㄷㄷ;(하지만 일본군과 싸울때는 엄청난 성능을 발휘했다던) 영국은 그래도 전차가 준수 한데 거의다 경사장갑이 아니고 어째 경전차가 대부분인거 같고 그나마 소련은 경사장갑을 최초로 썼다나 해서 전차 성능은 준수하고 물량은 쩔었다는데 개인적으로 소련 전차가 가장 좋은듯 ㅇㅅㅇ?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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