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용탄약: 8 x 50 mm R Lebel
전체무게: 9.07 kg
전체길이: 1,143 mm
총열길이: 470 mm
장탄수: 20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240발



참호전이라고 불렸던 세계 1차대전은 최초로 기관총이 엄청난 양으로 쓰이고, 그 엄청난 양으로 인해 수백만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첫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기관총은 여럿 전쟁에서 쓰이긴 했지만,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세계 1차대전은 전투의 특징과 기관총의 장점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 거의 모든 전쟁에서 기관총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상 세계 1차대전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은 제식 기관총을 적어도 1개 이상은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됨으로서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전투에서 효과적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의 경우 기관총이라는 장르가 대세였다고 하긴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수냉식 기관총에 국한된 이야기로서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혹은 공랭식 기관총)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주목을 받았던 경기관총의 중요성과 다르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기관총의 경우 수냉식 기관총이 가질 수 없는 무게와 운용방식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만, 죽치고 앉아서 총열이 과열되도록 쏘는것이 일반적이였던 1차대전 당시 전투 양상과 비교했을때 수냉식 기관총은 공랭식 기관총을 압도하는 우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2차대전까지 공랭식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 1차대전 당시 경기관총들은 모두 묻혔다고 하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세계 2차대전에 비하면 꽤 적은, 그리고 낮은 생산량을 기록했지만 1차대전 당시에도 "보병이 들고 같이 움직이며 쏠 수 있는 기관총"에 대한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이에 몇몇 군에서는 독자적으로 경기관총을 발명하거나 다른 곳에 제작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제식 경기관총으로써 쓰이고, 다른 연합군에도 많은 양이 퍼졌던 쇼샤라는 경기관총도 이러한 경기관총의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나온 녀석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쇼샤의 경우 경기관총이라는 범주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세계 1차대전 이전에 개발이 시작된 녀석이다 보니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나 우습게 생기고 전체적인 작동방식도 많은 면에서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러 특징들을 보면 이 녀석도 확실히 경기관총이라는 범주의 메리트를 확실히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일단 이 녀석은 경기관총이라는 이름에 맞게 무게가 9 kg정도로서 비록 오늘날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 무거운 수준이지만 그 당시 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가벼웠다는 평가를 받았고, 발사속도는 약 분당 240발로서 빠른 발사속도로 반동 컨트롤이 어렵지 않아 자동사격시에도 정확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20발 박스탄창을 사용함으로서 총열에 대한 과열걱정이 사라지고 운용인원도 벨트식을 사용했을때와 다르게 1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그 당시 쓰였던 중기관총들과 비교했을때 꽤 괜찮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쇼샤의 경우 이러한 장점들과는 다르게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녀석으로 기억된다고 할 수 있는데, 당장 작동방식이라고 쓴 롱 리코일의 경우 꽤 긴 총열과 노리쇠과 긴 거리를 왕복하는 특징 때문에 반동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총의 경우 꽤 조밀하게 설계되고 탄창도 잔탄 확인을 위해 옆쪽에 구멍이 크게 뚤어놓음으로서 1차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후였던 진흙탕에서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의 경우 탄창 뒤에 보조 손잡이가 달린 기형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서서 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고, 경기관총용으로 운용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 특수 제작된 탄창의 설계 조차도 기형적으로 만들어져 재장전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한 탄창당 담을 수 있는 탄약의 양이 20발 밖에 되지 않는등 끊임없는 문제점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문제는 사실상 쇼사가 "세계 1차대전 당시 쓰인 가장 최악의 기관총"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세계 1차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새로 개발한 경기관총인 FM 24/29에 의해 대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총 자체의 성능은 둘째치더라도 그 당시 경기관총을 만드는 곳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생산속도가 빠른 녀석인지라 쇼샤의 경우 성능과 별개로 많은 양이 생산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1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연합이였던 미국이나 러시아같은 곳에서도 꽤 많은 수를 수입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물론 실제 성능을 확인하고 나서는 대부분 폐기되었지요).


본문출처: 위키백과
퍼가실때는 꼭 댓글을 남겨주세요




Posted by [에일리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6.17 13:46 신고

    생긴건 그럴싸 한데
    총탄을 보니 조루보다 더 심한 발기부전 정도?

  2. 2011.12.02 22:23 신고

    들은 바로는 미군용 '30.06 스프링필드'를 사용하도록 만든 모델은 말 그대로'개악'이라고 하던데
    총이 고장나는 건 둘째치더라도 내부부품이 박살나는 게 흔하다고 들었스비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