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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7.62 x 25 mm Tokarev
전체무게: 2.95 kg
전체길이: 907 mm(개머리판 펼쳤을때) / 641 mm(접었을때)
총열길이: 273 mm
장탄수: 35발 박스탄창
발사속도: 분당 600발


세계 2차대전 당시 새로운 개인화기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큰 손해를 본 경우는 꽤나 많습니다. 특히 소련군의 압도적인 물량들 때문에 고민이 많던 독일군을 위해 등장한 화기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꽤나 쓸만하다거나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지는 녀석들은 거의 모두 동부전선에서 시험적인 평가와 데뷔를 마쳤고, 이는 동부전선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병사들이 전투를 해야 하는지를 절실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소련군의 경우 독일군의 개인화기에 영향을 받아서 개인화기를 스스로 개발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세계 2차대전 이전에 이미 겨울전쟁을 겪으면서 핀란드군이 사용했던 수오미 기관단총(제식명은 M31)의 실질적인 성능을 알게 되어 PPD-40을 제식으로 생산했지만, 이를 전군으로 대체할 만큼 많이 생산하지는 않고 있던 와중에 독일군이 침공하면서 보여준 MP40의 위력은 소련군이 부랴부랴 대량생산이 가능한 저가 기관단총을 개발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주게 되었지요.


독일군의 이러한 영향으로 개발된 PPSH-41은 오늘날에도 명작이라고 불릴만큼 꽤 성공적인 녀석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반자동 방식은 물론이거니와 정확도를 전혀 설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나쁜 평가를 받았지만, 몇시간의 작업끝에 만들어질 수 있었음과 동시에 하루에 3천정까지 생산이 가능했다는 점은 확실히 전선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음과 동시에 개인화기 숫자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는 소련군이 세계 2차대전 종전까지 기관단총을 가장 많이 생산 및 사용한 국가로 발돋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PPSH-41은 여러모로 근접전투에서 꽤 좋은 화기이고, 생산량도 굉장히 높았습니다만, 실질적으로 더 많은 생산량과 더 단순한 구조를 원했던 소련군에게는 아직도 모자란 존재(물론 그런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종전 까지 PPSH-41의 생산 중단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에 따라 PPSH-41을 좀 더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것이 바로 PPS-42입니다.


일반적으로 PPS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PPS-43을 곧바로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실 PPS-43가 등장하기 전에 오늘 리뷰하는 PPS-42라는 녀석이 미리 존재했었지요. PPS-42는 굉장히 재미있는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레닌그라드 전투(전투 보다는 포위전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입니다만, 전투라고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와 큰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레닌그라드 전투는 1940년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위해 시작한 바르바로사 작전의 일환으로 스탈린그라드와 더불어 소련의 대표적인 대도시로 평가되었던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해 독일군이 이 도시를 포위하고, 도시에 있던 잔병력과 시민들이 방어전을 펼친 방어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50만명의 독일군이 포위하는 상황에서 거의 3년 가까이 전투를 하면서 끝까지 함락당하지 않은 유명한 방어전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전투는 소련군 및 소련 시민들이 독일군에 맞써서 싸우는데 큰 용기를 주게 되었고, 이후 스탈린 그라드 전투 이후 시작된 소련군의 총 반격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지요.


레닌그라드의 경우 사실상 겨울이 되어 호수로 인한 물자 수송이 가능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소수의 물자로만 독일군을 방어해야 했는데, 이 당시 개인화기 숫자 부족의 경우 PPSH-41라는 녀석을 통해서 해결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목재가 사용되야 하고 어느정도 복잡한 기술이 요구된다는 상황(물론 PPSH-41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던 녀석으로 유명했습니다만, 레닌그라드에서는 이것도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았지요)에서 PPSH-41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는 불가능했고, 이러한 개인화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것이 바로 PPS-42입니다.

PPS-42는 생산성, 그리고 재료의 희귀성 때문에 만들어진 개량형으로 PPSH-41을 생산할 수 없었던 시기에 나온 새로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의 경우 PPSH-41에서 요구되었던 점보다 더 단순하면서 빠르게 만들 수 있었고, 목재를 사용하지 않도록 접절식 철제 개머리판(구조를 보면 MP40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을 사용한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지요. 이와 동시에 PPSH-41에서 사용하던 71발 탄창보다 더 단순하고 신뢰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35발 탄창을 사용한 점도 새로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PS-42는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 소련군이 전멸하지 않을 수 있었던 주요 원인중 하나엿다고 할 수 있는데, 공장에서 갓 생산된 PPS가  시험 테스트도 없이 곧바로 전투로 투입되어 사용되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만들 수 있었던 PPS-42의 생산성은 개인화기 손실이 높음과 동시에 빠른 시간내에 새로운 병력들을 자동화기로 재무장 시켜야 하는 소련군의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안이였고,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 이 녀석은 레닌그라드에서만 4만 5천정 이상이 생산될 정도로 극강의 생산성을 자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PS-42 기관단총의 경우 레닌그라드 전투를 성공으로 이끈 주요 이유중 하나였습니다만, 이후 나온 PPS-43와 비교했을때 소련군 제식 개인화기로 채택할 만큼 높은 신뢰성이나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평가되지 못해서 제식으로는 채택되지 못하였고, 레닌그라드 전투의 승리 이후에는 PPS-43에 의하여 생산이 중단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세부적인 컨셉이나 디자인은 PPS-43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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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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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6 13:11 신고

    이야 하루에 3천정씩 뽑아 대다니... 쿨럭,쿨럭,
    멀로뽑은겁니까??
    기계?? 반 수작업??

  2. 2010.09.25 15:33 신고

    연방의 무기 개발사상은 맘에 듭니다(단순하고 내구성 조낸 좋아야 함), 인구가 많은만큼 많이 뽑을수 있게 설계하고 공장도 많이 지어서 많이 나오는 군요... 연방제 무기는...

    • 2010.09.26 02:11 신고

      그쪽이야 물량으로 밀어 붙이던 시대에 만들었으니
      자연스레 그쪽으로 맞추려면 일단 제대로 많이 뽑을 수 있는게 필요했죠
      그 사상이 AK47까지 전달되었고 말입니다

  3.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2.06 14:40 신고

    역시 소련산 기관단총은 별로안막히고 m16처럼 너무 정교하지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