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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가진 열차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Schwerer Geschütz는 인간 역사상 최대 크기의 구경가지며, 최고 중량의 포탄을 사용한 열차포입니다. 물론 구경으로만 따진다면야 미육군이 개발한 36인치(914.4mm)의 박격포(일본 침공 계획시에 공성 박격포로 개조)인 리틀 데이비드(Little David) 있었습니다(이는 나중에 리뷰를 하겠습니다).

자 역시 첫번째 순서로 실물과 의인화를 보도록 할께요.

   


 

병기 출처국은 분명 독일인데 의인화는 왜 일본 세라교복을 입고 있느냐 라고 질문하시면
저는 "내가 어찌알아?" 라고 할 수 밖에요.
뭐 잘보시면 스카프가 독일제국을 상징하는 금빛 독수리로 얽애여 있어요. 구스타프 하면 선로이지요.



[제원 / 성능]
이번 리뷰부터 보기 힘든 도표는 버리고 보기 쉽게 그냥 한글로 하겠습니다. 저도 편하고 독자분들도 편할테니깐요.(웃음)


명칭 : Schwerer Geschütz
분류 : 열차포
사용 국가 : 독일
사용 시기 : 1941-1945
개발자 or 개발사 : Krupp
계획 시기 : 1934
대당 가격 : 7백만 마르크
생산 시기 : 1941
생산수 : 2
             1호 차량 - 구스타프 
              2호 차량 - 도라
중량 : 1,350 t
전장 : 47.3 m
포신 길이 : 32.48 m (L/40.6)
너비 : 7.1 m
높이 : 11.6 m
승무원 : 250 명 - 3일간(54시간) 열차포 조립 
             2,500 명 - 선로를 설치 및 제방 작업 
             2개 방공 대대 - 대공 공습으로부터 열차포 보호
구경 : 800 mm (31.5in)
포각 : 최대 48°
발포속도 : 1발 발포 하는데 30~45분 / 평균적으로 24시간동안 14발 발포
포구속도 : 고폭 탄두 - 820 m/s 
                 관통 탄두 - 720 m/s
유효사거리 : 약 39 km
최대사거리 : 고폭 탄두 - 48 km
                    관통 탄두 - 38 km
포탄 : ① 고폭 탄두
               탄두 무게 - 4.8 t
               폭약 질량 - 700 kg 
               탄흔지 - 가로/10 m 세로/10 m 
           ② 관통 탄두
                포탄 길이 - 3.6 m
                탄두 중량 - 7.1 t
                폭약 질량 - 250 kg 
                관통력 - 최대 각(45도) 에서 특수 장약으로 발사시 7 m 콘크리트 벽 파괴

[파생형]
파생형 역시 가공할 수준인데요. 명칭은 Langer Geschütz 입니다. 일부 제원만 본다면

구경 : 520 mm
포신 길이 : 43 m
사거리 : 190 km (초장거리 로켓 추진제 사용할시)
포탄 : 680 kg의 로켓 추진제

라는 와선이 됬을시 연합군을 사지로 몰아 넣을 수 있는 성능을 가졌었으나, 영국 공군의 Essen 공습의로 인해 안타깝게도 완성이 되지 못하고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지요.

또 밖의 파생형으로는
Landkreuzer P. 1000 Ratte (리뷰 예정)
Landkreuzer P. 1500 Monster (리뷰 예정)

들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계획안으로만 끝이 나버린 비운의 전차들입니다.

[탄생기]
1943년, 마지노선이 완공이 되기 전, 독일의 최고 사령부에서는 Essen의 Krupp(크루프)사에게 마지노선의 요새들을 격파 할수있는 포의 개발을 요청 하게 됩니다. 개발 조건은 "적의 포격 사거리 밖에서 7m의 강화 콘크리트와 1m의 장갑판을 격파 가능"이였습니다. 이러한 조건덕에 크루프사의 기술자 Erich Müller(에리히 뮐러) 박사는 그 조건을 충족 시키기 위해서는 포의 구경이 약 800mm, 포신은 30m 이상, 여기에 탄두는 7 t 이 넘어야 한다는 것을 계산을 합니다. 그리고 만약 완성이 된다면 포의 중량은 1,000 t 이 넘어갈 것이라는 결론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진행이 잘되었으며 히틀러 총통이 현실성에 대한 의혹을 갖기 전까지는 유유 자적했습니다. 게다가 히틀러가 변다른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개발은 꾸준히 진행이 되었고 1937년 초에는 설계도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의 여름부터 1호차량의 개발이 시작이 되었지만, 이듬해인 1940년 봄까지의 제작 되기가 힘들다는게 서서히 들어 납니다(거대한 크기덕에 서서히 느려졌지요).

39년 말에는 테스트 모델이 완성이 되어 Hillersleben(힐러슬레벤) 사격장으로 운반이 되어 실험이 되었으며, 수직으로 쏘아 올렸을 경우 최고 사령부가 내걸었던 "적의 포격 사거리 밖에서 7m의 강화 콘크리트와 1m의 장갑판을 격파 가능" 조건이 성립이 되었습니다.

전시에 포는 열차 차량이 특수 제작된 2개의 셰시에 거치가됩니다. 각각의 열차에는 20개의 차축이 있으며, 모든 열차의 차축의 총합수는 80개에 달합니다. 크루프 사는 이포의 명칭을 회사의 설립자인 Geschütz Krupp von Bohlen und Halbach(구스타프 크루프 폰 보흘렌 운트 할바흐)의 이름을 따 Schwerer Geschütz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사용 포탄은 관통 탄두보다 가벼운 고폭 탄두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연장된 84 m의 포신에서 사용이 가능한 사거리 150 km의 초장거리 로켓 탄두도 계획이 되었습니다. 실제로도 이 탄두는 영국을 목표로한 포격에서도 사용이 가능했었습니다.

크루프 사는 천번째 상품에는 가격을 받지않는다는 전통에 따라 가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만, 2호 차량인 Dora(도라 : 이 이름은 선임 기술자의 아내의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는7백만 마르크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매겨졌으며, 이후 독일군은 더이상 슈베러 구스타프급의 열차포를 생산 하니 않았다고 합니다.

[과거]

1942년 2월경에 제 672 중형야포부대(E)가 재편성이 된 후에 크림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슈베러 구프타프를 운반하는 열차의 차량 수만 25였으며 그 길이가 1 마일(1,609.344 m)에 육박했습니다. 같은 해 3월, 중형야포부대는 4월 초까지 점령하기로 계획이 되어있는 페레콥 지협에 도착 합니다. 그후 작업은 곧 바로 전개가 되었습니다. 특수 선로 지선이 10마일이라는 길이로 심페로폴에서 부터 세바스토폴까지 건설이 되었으며, 선로의 끝부분에는 열차포를 위한 4개의 반원혀으이 선로가 놓아 졌습니다. 사실상 이때에는 슈베러 구스타프의 첫 전투이자 성능 테스트를 위한 실험장이나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열차포는 5월부터 발사 준비를 시작했으며, 마침내 6월 5일 금요일에 발사가 가능해 졌습니다.



1942년 6월 5일 금요일
1. 25,00 m 밖에 위치 해있던 해안포에 8발 포격
2. Stalin(스탈린) 요새에 6발 포격

1942년 6월 6일 토요일
1. Molotov(몰로토프) 요새에 7발 포격
2. Severnaya(세베르냐야) 만의 수중 30미터 깊이에 위치한 '하얀 절벽' 지하 저장고에 9발 포격(이때 저장고는 10 m의 강화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9발을 밮사후에 저장고는 완전히 파괴가 되었으며 세베르나야 만에 정박해 있었던 모든 선박은 침몰이 되었습니다.

1942년 6월 7일 일요일
1. 수드웨스트스피체(Sudwestspitze) 공격 시 지원포격으로 7발 포격

1942년 6월 11일 목요일
1. Siberia(사이베리아) 요새에 5발 포격

1942년 6월 17일 수요일
1. Maxim Gorki(맥심 고르키) 요새와 그 내부의 해안포에 5발 포격

1942년 7월 4일 토요일
슈베러 구스타프는 Sudwestspitze(수드웨스트피스체) 공습이 종료가 될때까지 무려 30,000 t 의 포탄을 쏜 결과 도시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48발을 발포 하였으며, 그동안 실험 및 성능 향상을 위해 총합 250여발을 발포를 하였습니다. 그 덕에 포신의 수명은 다 닳아 새로운 포신으로 교체 하기위해 Essen(에센)까지 운반이 됩니다. 그후 슈베러 구스타프는 Leningrad(레닌그라드) 공격 준비하던 동부전선까지 운반이 되어 Leningrad(타이지) 정거장 근처 도시에서 30 km 떨어진 곳에 배치가 됩니다만, 모든 포 방열준비가 끝난 직후 공격은 취소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1942년과 1943년, 약 1년동안을 Leningrad(레닌그라드)의 주변에서 별다른 임무를 받지 않고 조용한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길고도 짧은 휴식 후에는 재정비를 받기위해 본국, 독일로 돌아가게 됩니다. 1944년, 폴란드 Warszawa(바르샤바)에서 폭동이 일어나게 되자, 몇몇 사람들은 슈베러 구스타프를 폭동 진압용으로 사용하는 목적으로 주장을 하기도 하였으나 거부가 되었습니다. 1945년 4월 22일 토요일, 연합군은 슈베러 구스타프의 노획과 기술 유출을 사전에 방지 하기위해 파괴를 한듯한 잔해가 발견이 되었으며, 이는 Auerbach(아우어바흐)에서 북쪽으로 9 마일 떨어진 지점이였습니다.

오늘도 즐겁게 보셨으면 합니다. 좋더 좋은글로 쓸 수 있게 노력 하겠습니다!


의인화 출처 : 병참본국 격납고
실물화 출처 : google images.
데이터 출처 : 구글 위키피디아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12.23 12:46 신고

    편집장님 이댓글 보시면 도움좀 부탁 드릴께요.
    현재 180%로로 맟추어 글을 수정해도 계속해서 이상태에서 변하지를 않습니다.
    50%로 해봐도 이상태이구요.

  2. 2010.04.21 16:48 신고

    덩치도 크고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녀석이라 그다지 큰 전과를 올리지 못할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게 뭔가요.... 대단한 전과를 상당히 거뒀군요 :)

    그 당시 각국이 열차포개발에 괜한 힘을 쏟은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돼겠네요

  3. 2011.04.09 05:24 신고

    이거 진짜 무식한 무기구만 ㅋㅋㅋㅋㅋ.............
    한번 목적지를 가려면 무조건 특수선로를 깔아야하는건가요 ?
    이게 만약 자주화가 된다면 정말 무섭겠군요 ㅋㅋㅋ... 국제법으로 금지시켜야합니다 이 무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