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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탄약: 7.62 x 54 mm R(Rimmed)
전체무게: 9 kg(PK) / 7.5 kg(PKM)
전체길이: 1203 mm(PK) / 1175 mm(PKM)
총열길이: 658 mm(PK) / 645 mm(PKM)
급탄방식: 100발, 200발 벨트 탑재 탄통
발사속도: 분당 650발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이 가져온 군사관련 기술은 이후 여러 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오늘날 나오는 대부분의 전투기나 화기들은 거의 다 독일의 2차대전 당시 쓰인 군사정비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군사관련 기술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개인화기 면에서 독일의 경우 두가지 유명한 장르를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한데, 그 대표적인 두가지 장르는 돌격소총(Assault Rifle)과 다목적 기관총(General Purpose Machine Gun)이였습니다.

돌격소총이나 다목적 기관총이나 독일에서 처음 대량으로 생산을 시작한 물건에서 나온 장르로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용하는 개인화기 목록에는 이 두 녀석이 꼭 포함되어 있지요. 특히 다목적 기관총의 경우 여러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고, 그 기능이 우수하기 때문에 오늘날 거의 100 % 모든 국가들의 군사장비 보유 목록에는 GPMG, 혹은 이 다목적 기관총의 노릇을 하기 위해서 나온 기관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련의 경우 세계 2차대전 당시 가장 큰 인명손실 피해를 입은 나라로서 다목적 기관총과 돌격소총에 관해서 엄청난 피해를 최전선에서 입었던 만큼 종전이 임박하고 독일의 StG-44(MP-44)나 MG-42을 슬슬 입수하면서 이 녀석들에 대한 범주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에따라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돌격소총을 채용한 나라로 자리잡게 됩니다(AK-47의 경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47년 소련군에 정식으로 채택된 돌격소총이지요)

돌격소총 부문에서는 소련이 가장 먼저 독일 다음으로 채용을 한 공식적인 국가가 되었습니다만, 다목적 기관총에 대해서는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었습니다. 일단적으로 소련의 경우 미국같은 나라들과 같이 GPMG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있는 총들을 그때그때 필요한 상황에 갔다 쓰자는 의견 때문에 여러가지, 여러 범주의 기관총을 동시에 운용한 대표적인 나라중 하나였습니다. 이 당시 소련의 개인화기(기관총) 목록을 보면 한두개가 아니라 자그마치 5개씩이나 운용을 했던것을 보면(DPM, M1910, SG-43, DS-39, DShK) 그 당시 소련 군부의 생각을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지요.


사실상 2차대전이 끝나가면서 기관총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등장했던 맥심 M1910은 새로 등장하는 공산권 국가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해주거나 폐기처분을 하는것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만, SG-43이나 DS-39, DPM, DShK 같은 경우 2차대전 중간에 개발된 녀석들이라 계속 쓰게 되었고, 이에 미하일 칼리시니코프가 개발한 AK을 기반으로 한 RPK, 데그차례프의 RPD까지 겹치게 되면서 소련군은 다시 엄청난 양의 기관총을 처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일단적으로 경기관총의 노릇은 RPK와 RPD(물론 RPD는 RPK가 등장한 이후 퇴역), 경기관총 및 중기관총의 노릇은 SG-43와 DS-39, 본격적인 중기관총은 DShK, NSV같은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베트남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되게 됩니다. 이 상황 때문에 사실상 소련군은 경기관총 따로, 중기관총 따로 부품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에따라 생산시설도 복잡해지고 군수 보급체계도 상당히 난감해지는 상황에 봉착하게 됨에 따라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하던 GPMG라는 개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에따라 한 기술자에게 새로운 GPMG을 부탁하게 되는데, 그 기술자가 미카일 칼리시니코프입니다.


미카일 칼리시니코프의 경우 그 당시 AK-47및 AKM 돌격소총을 만들고 RPK까지 만드느라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만, 그 당시 천재 기술자로 불리는 만큼 새로운 GPMG에 대한 개발의뢰도 선뜻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하지만 돌격소총과 다르게 기관총 관련 개발은 상당히 난해한 과정을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GPMG라는 개념이 없었던 만큼 미하일 칼리시니코프는 기존의 기관총을 개량한 녀석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을 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졌고, 미국같은 서방권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미 일찌감치 GPMG을 개발 및 채용을 하고 있던 상황인지라 시간적으로 재빠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7.62 x 54 mm R이라는 녀석이 림식(Rimmed)이기 때문에 기관총 내부의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지만 소련군의 요청에 맞게 내구성에서는 괜찮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가지 변수가 미하일 칼리시니코프를 괴롭히게 되었지요. 하지만 천재 기술자답게 미하일은 1960년대 초반 PK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GPMG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PK는 기존에 존재했던 소련의 기관총들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디자인이나 성능, 그리고 내부구조는 확실하게 다른 녀석이였습니다(사실상 보고 따라할 수 있는 기관총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함에 따라 초반에는 PK에 대한 내구도나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적잖게 지적되었습니다만, 전반적인 성능을 평가해본 소련군은 이 녀석을 1965년 제식 다목적 기관총으로 선정하게 되었지요.

PK, 그리고 후기형으로 현대화가 실시된 PKM(PK와 다른점은 철판 프레스 공법을 대폭 사용했다는 점과 경량화에 주력했다는 점, 그리고 소염기 구조 변경등 세세한 사항이 전반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의 경우 GPMG로서는 굉장히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데, 서방측 GPMG들(예를들어 FN-MAG이나 M60)과 비슷한 수준의 무게를 자랑하면서 오히려 내부구조는 복잡한데도 신뢰성에도 우수한 평가를 받는등 미하일 칼리시니코프의 천재적인 디자인을 엿볼 수 있는 녀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 녀석의 경우 기존의 소련군이 원했던 대로 여러가지 역할을 큰 구조변경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오늘날에도 러시아군의 주력 GPMG로서 사용이 되고 있지요(다만 양각대 대신 삼각대를 장착한 버전이나 나이트 비전을 장착한 버전도 전혀 다른 바리에이션으로 분류해서 소련군의 개인화기 분류가 약간 복잡해졌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PK/PKM은 오늘날 구 공산권 국가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관총은 아닙니다만, 이미 많은 국가들로 수출이 된 녀석으로서 현재 나온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를 포함해 약 40개국 이상이 이미 제식으로 채용을 하거나 소수 도입해서 현역으로 사용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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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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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6 16:11 신고

    발사속도가 왜 저렇게 느린겁니카..?

  2. 2009.06.26 16:52 신고

    생긴건 조잡하게 생겼는데...쓸만하니깐 쓰고 있는 거겠죠 0ㅅ0

  3. 2009.06.26 23:30 신고

    괸히 천재 개발자 소리를 듣는 칼라쉬르니코프가 아니군요.

  4. 바실리코러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1.01.25 09:37 신고

    이거 둥둥둥둥둥 이러던데,,, (배필온 사용자) 꽤낫긴한데.. 반동제어가 심하네요 ㅋㅋ

    왠지 1944 에쓰던 소련의 darove 같네요

  5. 2011.08.26 16:32 신고

    이거구나... 리비아에서 지금 한창 뛰고 있는 얘(7.5kg이라... 드는덴 지장이 없겠구나) 맞죠?